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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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10 아브젝시옹abjection
독서노트 / 2007/07/10 20:37
루틀리지의 <Critical Thinkers>시리즈에서 나온 줄리아 크리스테바편을 보고 있다. 라캉의 품아귀에서 놀고 있는 수많은 라캉주의자들과는 다르게, 크리스테바는 라캉을 참조하면서도 중요한 수정을 가하고, 그에 힘입어 라캉이라는 회로 밖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이 보인다. 앞으로 크리스테바도 잘 봐둬야할 것 같다.. 어쨌든 버틀러 세미나 하면서 자주 등장했던 크리스테바의 중요한 개념인 비체(abject)에 대해 다룬 장이 있어 약간 스크랩해둔다. abjection은 "과정 중에 있는 주체의 가장 근본적인 과정 중 하나"로써, "자기 자신에게 낯선 것을 추방하거나 거부하고, 그럼으로써 항상 모호한 '나'의 경계를 창조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런 식의 개념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어찌보면 상당히 시시하다). 정신분석계열의 자아 이론들은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과정 중에 있는 주체"를 설명하고는 하니까. 중요한 것은 그런 주체 개념과 크리스테바의 abjection이 유사하다는 단순한 지점이 아니라, abjection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관여하며 또 얼마나 우리들의 적대antagonism를 설명하는데 유효할 것이냐, 일 것이다. 또한 분명히 abjection은 정치학(?)으로 연결된다는 점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 LP, p.92~] 크리스테바는 거울 단계가 통일성의 감각을 일으킨다는 점에는 동의 하지만, 이 단계 이전에도 유아가 '나'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개별하려고 타자들과 자신을 분리하기 시작한다고 여긴다. (* 여기서 내가 라캉의 거울단계 이론을 보면서 느꼈던 묘한 부족함(?)이 명백해진다) 유아는 그녀가 아브젝시옹이라 명명한 과정, 말하자면 그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몰아내는 과정을 거치며 이 경계들을 개발한다. '아브젝트abject' 는 우리가 혐오하고 거부하고, 거의 폭력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 추방되는 것은 과격하게 쫓겨나지만, 결코 다 제거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유아의 경험 주변을 배회하며, 유아의 모호한 자아 경계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어떤 것이 단지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추방된다는 것은 그것이 의식에서 전적으로 사라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 사람의 깨끗하고 적절한 자아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시에 의식적인 위협으로 남는다. 아브젝트는 경계를 침범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를 간절히 바라고 또 분해한다.


음식물 혐오는 아마 가장 오래되고 기본적인 형태의 아브젝시옹일 것이다. (…) 눈앞이 흐려지는 현기증과 함께 구역질은 나를 우유 크림 앞에서 쩔쩔매게 하고, 우유를 건넨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나를 분리시킨다. '나'는 우유를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품은 욕망의 기호일 뿐이다. '나'는 따르고 싶지 않다. (…) 그러나 음식은 부모의 욕망 속에만 존재하는 '나'에게 타자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나 자신'의 확립을 주장하는 바로 그 동일한 행동으로 '나 자신'을 몰아내고, '나 자신'을 내팽개치고, '나 자신'을 추방하는 것이다. (Kristeva 1982:3)


아브젝시옹을 유발하는 또 다른 현상은 시체의 현존이다. 이 경우에는 죽음이 육체를 '오염시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붕괴된다. 그리고 시체와 대면한 우리는 우리 삶의 덧없음을 경험한다. 여기서 나는 송두리째 오물로서 존재하고 완전히 궁극적인 경계와 마주한다. "만약 똥이 경계의 저쪽, 말하자면 내가 똥이 아니고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을 의미한다면, 오물들 중 가장 역겨운 것, 즉 시체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경계이다. 이제 내가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가 추방된다(ibid:4)" 시체는 내가 죽게될 것이라는 것에 대한, "내가 상상하는 현재 너머의 다른 어떤 곳"(ibid)에 대한 혐오스런 상기물이다. 시체의 현존은 나 자신의 경계를 침범한다. (…) 시체는 상징처럼 어떤 것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 자신의 살아 있음에 대한 직접적인 '오염'이다. 그것은 삶을 오염시키는 죽음, 곧 아브젝트이다. 그것은 거부된 어떤 것으로서, 우리는 그것에서 분리될 수도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다. 아브젝트는 지속적으로 우리 자신의 경계들을 침범한다. 그것은 역겹지만 또한 매혹적이기도 하다. 상상적인 섬뜩함과 실제적인 위협, 그것은 우리를 유혹하고 끝내는 우리를 집어 삼킨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논쟁적일 수 있을 것 같은데(솔직히 크리스테바의 이 지점에 대한 나의 '거부감'에서 유래하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크리스테바에게 아브젝시옹의 가장 중요한 사례이자 대상은 '어머니'가 된다. 유아에게 있어 가장 먼저 추방되어야 할 것이 자신의 기원으로 간주되는 어머니의 몸이기 때문이다.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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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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