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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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7 클로이 (2)
영화 / 2010/03/07 22:17

<클로이>는 이른바 '콜 걸'에 대한 영화적이거나 서사적인 '전통'이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면서 시작한다. 다시 말해, '콜 걸'이라면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어떤 문화적인 각본이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또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사랑'과는 별개로 다루어야 하는 '러브 어페어(Love Affair)'라는 주제는 대체로 중간 계급 이상의 계급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다루어지므로,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낭만적 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한 중간계급 이상의 가족을 배경으로 하는 설정 역시도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배경 탓에 잘난 미중년 남편과 역시 남편을 닮아 잘난 청소년 아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중년 여성이 편집증에 빠진다는 설정도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설정 탓인지 어쩐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클로이>는 분명 후반까지는 별다른 특색을 찾아볼 수 없는 영화다. 클로이의 눈길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빼면 말이다. 또한 스릴러 장르라고 선전은 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초반부터 영화의 결말이 예상 가능하다. 우선 문학과 영화를 비롯한 문화적 재현물에서 '팜므 파탈'로 그려지는 인물이 결말 부분에 가면 대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클로이의 미래를 쉽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클로이가 캐서린에게 의뢰를 받아 데이비드에게 접근한 뒤 접근 내용을 보고하는 장면 역시도, 클로이가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감추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 빛을 발한다. 벤야민은 "운율이 맞게 구상되었으면서 나중에 어느 한 구절에서 리듬이 빗나간 글이야말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산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일방통행로』 중에서). 우리는 벤야민의 말에서 '운율'에 맞게 산문을 쓴다는 표현을, 작가의 신성한 창의력에 따른, 혹은 뮤즈의 불가해한 부름에 따른 작품의 무기반적 '창조'가 아니라, 작품 자체의 흐름을 어떤 언어적 전통이나 문법, '질서'와 조율한다는 의미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클로이>는 전통을 무조건 거부하는 아방가르드적 실천을 섣부르게 감행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전통적인 몇몇 규칙과 문법을 적절히 합성하고 변주하며 따르다가 재빠르게 약간은 뒤틀린 모습을 하고 결말로 질주한다. 그 만듦새가 제법 좋다. 또 캐서린이 마지막 파티 장면에서 클로이가 준 핀을 머리에 꽂고 있는 장면이 상징하는 것도 좋다. 캐서린은 더 이상 이전의 캐서린이기를 멈추고 비로소 무언가를 뚫고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남는 하나의 의문. 왜 영화 속의 '팜므 파탈'들은 언제나 '소실하는 매개자(vanishing mediator)'의 역할만을 하냐는 것이다. 클로이는 영화현실 속의 인물이 아니라 차라리 단지 서사를 이끌어 가기 위한 가상의 인물 혹은 단순한 하나의 장치처럼 보인다. 많은 영화들은 '팜므 파탈'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 가에 대해 설명할 때도, 유사 정신분석학적으로 간단히 어릴 적 트라우마나 부모와의 뒤틀린 관계에서 찾을 뿐, 다른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팜므 파탈'을 일상적인 의미로는 이해를 전혀 할 수 없는, 그러나/그렇기에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그 무엇으로 그려낼 뿐인 셈이다. '팜므 파탈'을 만나 주인공의 일상은 파괴되지만, '팜므 파탈'은 결국 죽어 버리거나 어딘가로 사라지기 마련이고 주인공의 생사나 몰락과는 큰 상관없이, 질서는 되찾아진다.


덧1) 오늘 영풍문고에 들렀다가 완전 득템! +_+ 한강의 신작 장편소설이 나왔다!!!!!!! 흑흑 그저 감사합니다 저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웅얼웅얼...

덧2) 클로이가 캐서린의 아들 마이클 스튜어트에게 들려주는 노래가 좀 좋았다ㅎㅎ 캐나다의 인디 밴드 Raised by Swans의 노래라는데, 백조가 키워냈다고 믿기엔 좀...; 어쨌거나 동영상 링크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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