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에서 Tennessee Williams의 <A Streetcar Named Desire>라는 희곡을 보고 있다. Scene Six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강조는 내가]
BLANCHE : He was a boy, just a boy, when I was a very young girl. When I was sixteen, I made the discoveryㅡlove. [...] He came to me for help. I didn't know that. I didn't find out anything till after our marriage when we'd run away and come back and all I knew was I'd failed him in some mysterious way and wasn't able to give the help he needed but couln't speak of! [...] Then I found out. In the worst of all possible ways. By coming suddenly into a room that I thought was emptyㅡwhich wasn't empty, but had two people in it ... the boy I had married and an older man who had been his friend for years. [...]
Afterwards we pretended that nothing had been discovered. Yes, the three of us drove out to Moon Lake Casino, very drunk and laughing all the way.
We danced the Varsouviana! Suddenly in the middle of the dance the boy I had married broke away rom me and ran out of the casino. A few moments laterㅡa shot!
I ran outㅡall did!ㅡall ran and gathered about the terrible thing at the edge of the lake! [...] Then I heard voices sayㅡAllan! Allan! The Grey boy! He'd stuck the revolver into his mouth, and firedㅡso that the back of his head had beenㅡblown away!
It was becauseㅡon the dance floorㅡunable to stop myselfㅡI'd suddenly saidㅡ"I saw! I know! You disgust me ..." [..하략..]
물론 굉장히 가슴 아플 수밖에 없는 대사다. 허나 내가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 Blanche의 이 대사 때문이 아니라('역겹다disgusting'는 말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 중에서도 얼마나 끔찍한 말인지), 수업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강사가 "이걸 보면 Allan은 게이, 아니 최소한 바이섹슈얼이라 할 수 있죠." 라고 한 마디 던지자 까르르 웃어대는 학생들. 사실 이 인간들은 LGBT 얘기만 나오면 웃어 댄다. 이건 일종의 사회적 각본. 그 인간들의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새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법.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동시에 나는 짜게 식어간다. 그리고 동시에 퍽 우울해 진다.
이 '혐오 발화'들을 다루는데 있어서의 문제는, 사실 '혐오'를 드러내는 '직접적인 발화'들에 있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이러한 '웃음'이라는 일상적 상황이다. 사실 '혐오 발화'들은 얼마든지 다른 과정을 거치면 비난, 비판, 반증, 등등, 그 모든 의미화 과정들이 가능한 기표가 된다. 재의미작용을 거치면 그 말들을 발화한 주체에게로 그 말들을 얼마든지 돌려줄 수도 있다. 그 '혐오 발화'들은 실상 미시 권력적인 일종의 정치적 화행Speech Act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화행'을 그 행위 이전으로 얼마든 돌릴 수도 있고 다시 행하게 함으로써 의미를 재전유하는게 가능하다. 그리고 그 '혐오 발화'를 전유함으로써, 그 발화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 문화적 Corpus에 접근하는 유용한 통로를 찾아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웃음'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걸 '혐오 발화'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한 반응을 했을 때, 실상 그 자리에서 나는 히스테리 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웃음'의 힘, '웃음'의 의미, 그리고 '웃음'을 전유하는 사람들. 누가 무엇 때문에 웃고 누가 웃음의 대상이 되는가. 이 '웃음'들은 사실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혹은 어린 아이)의 웃음, 푸코가 말하는 철학적 웃음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일테다. 이들이 짓던 웃음은, 굳이 말하자면 '낙타'의 웃음.
나는 '웃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웃음'의 다면적인 얼굴을 보면 진절머리가 나기도 한다. 나는 차라리 미간에 주름 잔뜩 잡힌 히스테리 신경증자의 얼굴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걸. 나는 차라리 그 자리에서 까르르 웃어제끼던 얼굴들 보다, 편집증적 지식에 중독된 오만한 지식인의 얼굴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걸.
나는 특정 윤리를 말하는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주체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경우 때론 개입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같다. 물론 윤리, 도덕, 인륜적 습속을 토대로 '물질'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실상 계몽주의의 유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신을 토대로 물질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거기서 우생학적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따라서 비판은 그 자체로 물질과는 분리되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서, 오늘 뉴스에, 미니홈피 등에 "동성애자" 호칭을 써놓거나 하면 '명예 훼손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고 한다. 진정 오 마이 갓.. 이런 것에 단지 '웃음'으로 대답할 길 밖에 없는 것일까?
덧) 내가 왜 강의실의 그 맥락에서 기분이 나빴는지 더 떠올랐다. 그 강사는 "이걸 보면 Allan은 게이, 아니 최소한 바이섹슈얼이라 할 수 있죠."라고 말한 뒤에, "아마도 뭐 '위장 결혼' 같은 걸 한거 같죠?" 이런 말들을 했었다. 몇몇 애들은 "게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웃었고. 확실히 이런건 청자가 LGBT인지 Hetero인지 상관 없이 문제 아닌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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