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카테고리

전체보기 (484)
일기 (198)
조각들 (74)
독서노트 (79)
스크랩 (57)
영화 (44)
음악 (0)
문학 (17)
번역 (14)
(0)
기타 (1)
미공개 (0)

'1박 2일'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8/10 8월 10일
일기 / 2010/08/10 17:32
어쩐지 트위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 같아서는 쓸말도 없고, 타임라인에서 읽을 말도 없다. 현직 작가들이나 뮤지션들을 많이 팔로잉 했는데, 그들이 구름 위에서 노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고는 왠지 시시해졌다. 몰랐던 바가 아니지만, 실망했던 것 보면 나름 어떤 기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난 자기의 문제(상처, 사랑하는 방법, 기억 등등)를 작품화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윤리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타인의 문제를(혹은 자기 문제라도 보편으로서 설득할 수 있는) 소설과 시와 노래로 쓰는 사람을 알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문 것 같다. 결여와 결핍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건 너무나 당연한 삶의 조건이니까 조금은 다른 가능성을 보고 싶었던 것 뿐이다. 어차피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요금제가 달라져 휴대폰으로 트위터에 접속할 수도 없다. 차라리 잘되었다는 마음으로 트위터와 얼마 간 절연해 보기로 했다.

집에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가입했던 주택 청약 통장은, 매달 10일이면 꼬박꼬박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 간다. 당분간 수입이 없을 나로서는 너무 큰 부담이기 때문에, 이걸 해지하지는 않더라도 매달 인출 금액을 최소 한도로 맞춰놓고 싶었다. 부모님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왜 그러냐며 반대하신다. 나는 수입이 없는 대학원생이라고, 어차피 난 부유하게 못 살 것이고 그러므로 내 인생에서 집을 구입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얘기했더니, 문자 그대로 펄쩍 뛰면서 그런 소리 말라신다. (그런데 어쩌나, 정말 그럴 것 같은데) 집을 구입하기 위해선 누구나 무리하는 거라고, 누구나 빚을 내면서까지 사는 거라고 설득한다. 대출금 원금과 이자로 뭉텅뭉텅 통장이 잘려 나가고, 행여나 잔금이 모자랄라치면 밤낮 걱정하면서, 다른 데도 아니고 은행에 저당잡힌 인생을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고 말겠다는 얘기까진 하지 못했다.

얼마 전 서울에 가는 버스 안에서 <1박 2일>을 봤다. 내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예능인데,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프로그램의 감수성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 착한 도덕주의 프로그램은 독도에 찾아가서 경비대원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줬다. 경비대원들은 계급 순으로 줄을 서서 자장면을 받아야 했고, 결과적으로 수경과 상경 계급은 일찍 다 자장면을 먹었지만, 일경이나 이경 계급은 군침을 삼키며 노심초사 자장면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다. 카메라는 그걸 매우 재밌는 일인양 담았다. 계급 사회에서 이정도는 당연하다는 듯, 그리고 이런 게 참 재미있지 않냐는 듯. 나라면 씨팔, 이딴 자장면 안처먹고 말아, 라고 했을 법한 (나로서는) 모욕스러운 장면이었다. 한국의 계급(남성)사회에서 하급자에 대한 인격적 모욕은 이렇게 재미있는 것, 추억이 될만한 것으로 정당화 된다. 하급자도 상급자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언어폭력이나 구타가 많이 없어졌다고 해서 그 구조가 바뀐 것은 아니다.

서점에서 뒤적인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인데, 프루스트는 지인들로부터 최고의 친구(사교적이고 사려깊고 친근한 느낌을 주고 쿨한 직업을 가졌고 게다가 유명하기까지 한)라는 찬사를 들었지만, 정작 본인은 우정에 대한 회의를 표현하고 피플들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의 시간을 꿈꾸곤 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소설가인지 나로서는 읽지 못했으므로 사실 알지 못하지만(물론 그는 정전(canon)의 반열에 오른 소설가이다), 당대 사교계의 톱스타급 '지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얼마나 충실하게 수행했는지를 알 수 있다. 체스터톤은 어디선가 "교육을 찬양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 교육에 대해 얼마간 경멸하지 않고서는 누구의 교육도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프루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정에 대해서도, 사랑에 대해서도,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의 생로병사를 경험하고, 그것의 허망함에 대해 아는 사람만이, 그것에 대해 진정으로 깨닫고 있다고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야만 대상을 관조할 수 있는 '거리'가 생기고, 그 때 우리는 그것의 완성을 본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대문 사진 밑에 보면 작은 글씨로 'history'라고 쓰인 게 있는데, 그걸 누르면 여태까지 썼던 대문 사진과 글이 모두 나온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다이어리야 폴더 비공개로 돌리면 간단한 문제지만, 이건 대책이 없어서 죄다 지워버렸다. 더 어릴 적엔 왜 그렇게 싸이월드에 집착했었는지, 한 페이지에 5개 히스토리가 나오는데 이 페이지가 총합 250여 페이지였다. 모두 수동으로 지워야 했으니까 나는 클릭과 스페이스를 최소 1250회 이상 누른 것이다. 왜 지웠냐고? 너무 '쪽팔려서'. 왜 쪽팔리냐면, 그때의 기억들과 행동과 감정들이 모두 그때엔 진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 지난 진정성만큼 창피한 것도 없다. 짝/사랑의 기억,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온갖 고민들, 배신감, 정체감, 공허감, 허세(니체나 체 게바라를 들먹이는), 유치함 따위가 뒤섞인 싸이월드 히스토리를 보는 건 창피한 걸 넘어 정말 미칠 것 같은 일이다. 결국 30분 걸려서 다 지웠다. 대단해.

요즘엔 레이 초우의 글을 자주 읽고 있다. 그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는 섣부른 보편주의도 아니고 맹목적인 특수주의도 아니기 때문이다. 말로만 보편주의/특수주의라는 쌍둥이 이분법을 비판하는 사람들이야 많지만, 레이 초우만큼 이 이분법 너머에서 사유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문화연구라는 매력적인 이론적 도구의 이상적 조합을 보는 것 같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비평가들도 대개 내가 좋아하는 비평가들이다. 당분간은 계속 읽고 싶은 사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 19일  (2) 2010/08/19
8월 12일  (2) 2010/08/13
8월 10일  (0) 2010/08/10
8월 3일  (0) 2010/08/03
7월 26일  (0) 2010/07/27
Posted by 소이연

글 보관함

최근에 받은 트랙백

달력

« » 2012.0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