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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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7 7월 26일
  2. 2010/05/13 5월 13일
일기 / 2010/07/27 00:21
1.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책의 저자는 홍콩 출신으로 미국 학계에서는 깨나 이름 날리는 학자. 그는 미국 문화연구계의 현실을 고발하면서, 포스트콜로니얼한 상황에서의 보편성/특수성과 오리엔탈리즘/지역주의라는 이항 대립 관계, 낭만주의적 태도와 문화주의에 의해 은폐되는 현실의 정치경제학 문제들, 지식인들의 자발적인 서발턴화ㅡ자기를 피해자화하면서 역설적으로 획득하는 권력과 돈ㅡ와 문화연구계에 주류화되는 서발터니티,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더욱 침묵에 빠지고야 마는 사람들, 세계화 된 담론 시장에서 불안해하고 상실감 속에서 우울증에 빠진 제1세계 지식인 주체들, 제국 담론에서 흔히 발견되는 중심부/주변부 이분법 등등의 이면을 치밀하게 폭로한다.

그는 또한 오늘날 말하는 자들이 어떤 포지션에 있으며, 그 포지션은 어떤 현실적인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뒷받침되는지, 그리고 말하는 자들이 발화의 기원을 은폐함으로써 언뜻 중립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을 최상의 정치적 행위자로 만드는 현실에 대해서도 끝없이 심문한다. 논문의 제목, 에세이의 한 구절도 이 학자 앞에서는 최악의 죄로 규탄된다. '대기업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회장들이 이사로 있는 모임에 들어가야'하는 현실도 비난한다. 모두 옳다. 물론 옳은 말들이지만 사실은 너무 피곤하다. 그런데 그런 피곤함이 기분 좋은 것도 사실이다. 그 책의 원제목은 <Writing Diaspora>이다. 글을 쓴다는 것, 혹은 무언가를 '쓰는' 행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물질세계에 자국을 남기는 행위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인 것 같다. 그의 끈질긴 성찰성이 조금은 부럽다. 그러나 그 성찰성을 자기에게도 조금은 투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가 쏟아내는 비판은 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이사를 가는데 제일 문제가 되는 건 역시 책들이다. 한국에선 책이 내용을 담는 도구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상품'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책들이 정말 한결같이 무겁다. 왠만한 소설책도 누워서 읽다보면 손목이 지끈지끈 아플 정도다. 책상에 정자세로 앉아서 허리 건강 생각하라는 배려는 아닐테고... 깔끔한 모노톤의 표지에 포인트를 주고 가벼운 종이를 쓰는 페이퍼백 형태의 저가 책이 나오면 좋을텐데. 수집벽을 자극하는 북디자인이 별로 없다. 펭귄클래식 같은 느낌도 좋을 것 같은데..

여하튼 책의 무게도 무게지만, 이사를 갈 때 집에 두고 갈 책과 가지고 갈 책을 구별하는 큰 일이 남았다. 천권 정도 되는 책들을 다 가져갈 순 없을테고... 아마 대학교 1학년 때랑 2학년 때 샀던 책들을 가져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뜻도 모르고 허세를 부리겠다고 산 책들이 많아서. 3, 4학년 때 충동적으로 산 책들도 그다지 가져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에센스를 뽑아 딱 고것들만 가져가고 싶은데 욕심을 버리진 못하겠다. 유학가는 선배는 책을 나눠줄 생각을 하던데, 나는 왜 그런 행동을 못하지.


3. 이제 4번만 더 나가면 조금 긴 휴가가 있고, 그 휴가의 끝에서 하루를 더 지내면 끝. 돌이켜보면 여유 시간이 많았음에도 시간이 훌쩍 참 빨리 간 것 같은데, 나는 해놓은게 없어서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지금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들도 이미 누군가들은 선취해 놓았다. 그들은 먼저 읽었고 먼저 썼다. 먼저 사유했고 먼저 다른 길로 재빨리 들어섰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글을 쓰든 은연 중에 누군가의 반복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 두려움의 정체는 뭘까? 무엇을 향한 두려움일까? 경쟁자들의 이름을 올린 리스트에서 누락될까봐? 권력을 가진 타자의 인지/인정을 획득하지 못하리라는 불안?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타자의 인지는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할 수도 없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잘 모르니까. 그런거, 잘 모르니까 그냥 할 수 있는거나 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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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5/13 19:25
1. 원서를 내러 잠깐 휴가 냈던 게 오늘로 끝. 다시 일상으로.. (꽥) 한숨을 쉬며 일기나 써볼까..


2. 월요일엔 학교에 갔다가 정말 의외로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월요일엔 학관 계단에서 JH를 만났고, 이어서 JH과 밥약속이 있던 JE도 만났다. 그리고는 5개월 만에 YK를 만났고, 이어서 꽃집 앞에서 SH를 만났다. YK랑 헤어지고 R을 만나러 가는데, 거의 2년 만에 Y를 만났다. Y는 이제 석사 5학기로 논문학기라 했다. Y와 잠시 환담을 하고 R을 만나 벤치에서 얘기했다. R을 만나는 중에, 활동을 같이 하진 않았지만 같은 동아리였던 C씨와 인사를 했다. R과 헤어지고 교수와 잠깐 면담을 했다. 생각보다 활기차고 자기 영역에 대한 믿음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인사도 안하는 사이였는데 나보고 착하다고 하셨던 D씨를 길 위에서 봤다. 버스를 타고 J회의를 하러 학교 밖으로 가는데 버스 창 밖으로 TH를 만나 조금 얘기했다. 잡지 발간을 기다리게 됐다. 여하튼 헑,소리나는 월요일의 오후. 1년 동안 만난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버렸으니.

참 이날엔 휴가 기간이면 내가 머물곤 하는 이모네 집에서 아기 100일 파티가 있었다. 이종사촌 아들의 100일. 나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짐풀러 갔다가 급당황했다.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파티엔 가지 못했지만, 왠지 모를 압박감에 백화점을 유령처럼 떠돌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샀다 아하하... ㅠㅠ 도대체 아기 100일엔 뭘 해줘야는거지? 생활무능력자ㅠ


3. 화요일엔 덕수궁 미술관에 기획전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를 보러 갔다. 이번 전시는 내가 갔던 덕수궁 미술관 전시 중에서 가장 공간 활용이 좋았다. 이번 전시에 설치 작품이 많았던 탓인지는 몰라도, 빛의 활용이나 어쿠스틱이 공간감을 잘 살리고 있는 듯 했다. 물론 덕수궁 미술관이 좀 비좁은 곳이니까 한계는 있겠지만.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소설가 한강의 최근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에 등장하는 인상 깊은 작업을 볼 수 있었다. 한은선 작가의 작품인데 제목은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2전시관에서 나오니 작가의 인터뷰도 볼 수 있게 해놓아서 오도카니 앉아 두 번 봤다.

미술관을 나오는데 빗방울이 투두둑,떨어지기 시작했다.


4. 수요일엔 학교 축제에 갔다. 졸업생 이후로 처음 간건데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거야. 복잡한 길 위에서 오래 못만날 것 같았던 사람들도 우연히 만났다. D와 M, 그리고 또 JE와 Y. W와 JH와는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여하튼 잔디밭에 죽치고 앉아 신기한 사람들 구경도 했고, JI, SS, R, YK, H와 술도 마셨다(취하진 않았다). 그러나 자리를 만들었던 S는 오지 않았다(ㅠㅠ)

와플을 먹을 때만 해도 더 학교에 다녀도 좋으리라는 생각을 했었건만, 스타 리그 하는 학교 축제장을 보고 있자니 과연 더 다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이창동 감독의 <시>를 봤다. 처음엔 그냥 중소도시의 문인에 대한 그런저런 이야기일 줄 알고 봤는데, 이 감독이 <밀양>의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다가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 <밀양>에 비해서 덜 종교적이었지만, 더 웅숭깊어졌다. 화면도 그렇고 서사도 그렇다. 조만간 리뷰를 써야지.


6. 유년 시절, 기억의 늪이 있다. 그런 기억은 쉽게 부채감으로 전이된다. 그 부채감은 내가 영원히 갚지 못할 것인데, 가끔은 그 부채를 상환해야할 순간이 갑자기 찾아 온다. 이를테면 J회의 중에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한숨이 너무 무거웠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말을 더듬고 말을 잇지 못하게 되었다. 죄송,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부담스럽다. 말을 아끼다가 다음으로 약속을 미뤘다. 기약 따위는 없었다. 그냥 다음, 다음이 좋겠다,였을 뿐이다. 진작에 집 전화번호는 스팸 리스트에 넣었다. 이제는 계속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고 있다... 이젠 왜 전화를 안 받느냐는 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밉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7. 기억할 만한, 아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1초, 길어야 2초 남짓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엔 무언가 두려워서 시선을 빨리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게도 쉽게 연루되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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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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