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thecommentfactory.com/will-the-cat-above-the-precipice-fall-down-slavoj-zizek-on-iran-2259/comment-page-1

When an authoritarian regime approaches its final crisis, its dissolution as a rule follows two steps. Before its actual collapse, a mysterious rupture takes place: all of a sudden people know that the game is over, they are simply no longer afraid. It is not only that the regime loses its legitimacy, its exercise of power itself is perceived as an impotent panic reaction. We all know the classic scene from cartoons: the cat reaches a precipice, but it goes on walking, ignoring the fact that there is no ground under its feet; it starts to fall only when it looks down and notices the abyss. When it loses its authority, the regime is like a cat above the precipice: in order to fall, it only has to be reminded to look down…

권위주의 정권이 마지막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 정권의 붕괴는 대개 2개의 절차를 따른다. 실제로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불가사의한 균열이 시작된다. 갑자기 사람들이 게임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들은 다만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는 정권이 단지 정당성을 잃어버렸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의 집행이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공포에 입각한 반응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만화의 고전적인 장면을 알고 있다. 고양이는 절벽에 다다른다. 하지만 고양이는 자신의 발 밑에 땅이 없다는 사실을 모른 채 계속해서 걷는다. 고양이가 밑을 바라보고 심연을 발견했을 때가 되어서야 고양이는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정권이 권위를 잃으면 정권은 이렇게 절벽 위의 고양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정권이 붕괴하기 위해서는, 밑을 내려다 봐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기만 하면 된다.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이 정권에 대한 분석들은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분석들에는(그 분석을 집행하고 널리 알릴 채널이 없으니) 당연히 힘이 없고 그만큼 우리는 냉소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런 냉소주의 중에 가장 악질이 '국개론'일 것이고, 가장 평이한 것으로는 다음 총선(혹은 다음 보궐선거) 내지는 대선을 기약하자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 중에 공통적인게 있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 정권은 무능하다" 일지도 모른다. 물론 경찰이나 검찰이 휘두르는 무기가 무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눈앞에 어른대는 서슬퍼런 흉기가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본능적인 반작용일 뿐이다. 그 반작용은 두려움, 공포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당연히 복종도 있을리 없다.

그러니까, 얼마 안 갈거야 얼마 안 갈거야 얼마 안 갈거야 얼마 안 갈거야 얼마 안 갈거야 얼마 안 갈거야 얼마 안 갈거야 얼마 안 갈거야 얼마 안 갈거야 얼마 안 갈거야 얼마 안 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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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6. 9 작가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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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람의 말   6.9 작가선언


작가들이 모여 말한다.
우리의 이념은 사람이고 우리의 배후는 문학이며 우리의 무기는 문장이다.
우리는 다만 견딜 수 없어서 모였다.


모든 눈물은 똑같이 진하고 모든 피는 똑같이 붉고 모든 목숨은 똑같이 존엄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은 극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절대 다수 국민의 눈물과 피와 목숨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 한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고통스럽다. 본래 문학은 한계를 알지 못한다. 상대적 자유가 아니라 절대적 자유를 꿈꾼다. 어떤 사회 체제 안에서도 그 가두리를 답답해하면서 탈주와 월경을 꿈꾸는 것이 문학이다. 그러나 문학 본연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 차라리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다급한 마음으로 1987년 6월을 떠올린다. 박종철의 죽음이 앞에 있었고 이한열의 죽음이 뒤에 있었다. 그 죽음들의 대가로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힘겹게 그것을 가꿔왔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을 망각할 권리가 없다. 이명박 정권 1년 만에 대한민국은 1987년 이전으로 후퇴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가 하나의 정부인 작가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조직도, 집행부도, 정강도 없다. 

우리는 특정한 이념에 기대어 발언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아무런 이념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세운 ‘중도실용주의’라는 가짜 이념은 집권 1년도 못 돼 폐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도처에서 헌법 위에 군림하는 독재의 얼굴을 본다. 용산 철거민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와중에 여섯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도 이명박 정부는 끝내 사죄하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여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지만 저들이 행한 일은 위선적인 사과와 광범위한 탄압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 장악을 기도했고 도심 광장과 사이버 광장에 차벽을 치고 철조망을 세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는 이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천박한 관료주의로 문화예술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전직 대통령을 겨냥한 사상 최악의 표적수사와 비열한 여론몰이는 그를 벼랑에서 투신하게 하였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매장되었다. 

이 모든 일에 적극 가담한 정치검찰과 수구언론을 우리는 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을 울린 종지기들로 고발한다. 살아있는 권력에는 굴종하고 죽은 권력에는 군림하면서 영혼을 팔고 정의를 내던진 정치검찰들, 증오와 저주의 저널리즘으로 민주화의 역사를 모독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조롱하는 수구언론에 우리는 분노한다. 우리가 저들과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혹해진다. 저들을 여전히 검찰과 언론이라고 불러야 하나. 곰팡이가 온 집을 뒤덮었다면 그것은 곰팡이가 슨 집이 아니라 집처럼 보이는 곰팡이일 뿐이다. 저 권력의 몸종들과 함께 민주주의의 일반 원리와 보편 가치를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 달려온 이명박 정권 1년은 이토록 참담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서 우리는 깊은 절망을 느낀다. 저들은 수치를 모르고 슬픔을 모른다. 수치와 슬픔을 아는 것이 사람이고, 사람됨이라는 가치에 헌신하는 것이 문학이다. 우리는 문학의 이름으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한다. 

이곳은 아우슈비츠다. 민주주의의 아우슈비츠, 인권의 아우슈비츠, 상상력의 아우슈비츠. 이것은 과장인가? 그러나 문학은 한 사회의 가장 예민한 살갗이어서 가장 먼저 상처입고 가장 빨리 아파한다. 문학의 과장은 불길한 예언이자 다급한 신호일 수 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과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종이와 펜이 있다. 그러니 동의하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끝내 저항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원을 갈아엎고 있는 눈먼 불도저를 향해, 머리도 영혼도 심장도 없는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 저항할 것이다. 가장 뜨거운 한 줄의 문장으로, 가장 힘센 한 문장의 모국어로 말할 것이다. 사람의 말을,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사람이니까 해야 하며 사람인 한 멈출 수 없는 그 말을. 아름답고 정의로운 모든 문학의 마지막 말, 그 말을. 

우리는 작가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을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글을 씁니다.
우리는 각자의 나라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의 바탕에 언제나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념이 아니라 사람의 편에 섭니다. 

우리는 모였습니다.
참혹한 오늘을 불러온 것도 우리이지만
참다운 내일을 만드는 이도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권의 야만에 분노합니다.
사람의 설 자리가 사라진 현실에 분노합니다.

우리는 보고 싶습니다.
이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민과 소통할 줄 아는 정치가의 얼굴을.
우리는 듣고 싶습니다.
아첨과 왜곡의 목소리가 아니라 공정하고 진실된 언론의 발언을.
우리는 느끼고 싶습니다.
이 땅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확신과 자부를.
우리는 되찾고 싶습니다.
본래 우리 것인 광장과 집과 대지, 스스로 흘러 생명일 수 있는 강물을.
우리는 꿈꾸고 싶습니다.
그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는 사회,
양심과 이성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
자유와 평등은 원래 사람의 것이라 믿고 자라날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우리는 입을 엽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입니다. 


'한줄선언' 참가자 명단

강경희 강성은 강   진 고나리 고명철 고봉준 고인환 고찬규 곽은영 구효서 권   온 권혁웅 권현형 권희철 김경인 김경주 김경후 김  근 김나영 김남극 김남혁 김대성 김명기 김미월 김미정 김민정 김사과 김사람 김사이 김   산 김선재 김성중 김소연 김   안 김양선 김애란 김   언 김연수 김요일 김윤환 김이강 김이은 김이정 김자흔 김재영 김정남 김정란(소설가) 김지녀 김지선 남상순 맹문재 명지현 문동만 문혜진 박대현 박민규(시인)  박   상 박상수 박성원 박수연 박슬기 박시하 박연준 박정석 박창범 박형서 복도훈 박형숙 박형준 박혜상 방현희 배영옥 백가흠 백지은 서성란 서안나 서영식 서영인 서효인 서희원 성기완 손세실리아 손홍규 송기영 송승환 송종원 신용목 신해욱 신형철 신혜진 심보선 안상학 양윤의 양진오 여태천 오창은 우대식 원종국 원종찬 유용주 유정이 유형진 유홍준 윤성희 윤예영 윤이형 윤지영 이경재 이기성 이기호 이덕규 이도연 이동욱 이만교 이문재 이민하 이선우 이성미 이성혁 이순원 이시영 이신조 이   안 이영광 이영주 이용임 이용헌 이은림 이장욱 이진희 이  찬(평론가) 이현승 이현우(로쟈)   이혜경 이혜미 임수현 임영봉 임지연 장무령 전도현 전성욱 전성태 전형철 정여울 정영효 정우영 정은경 정주아 정한아(시인)   정혜경 정홍수 조강석 조동범 조성면 조연정 조연호 조용숙 조원규 조   윤 조   정  조해진 조형래 조효원 주영중 진은영 차미령  채   은 천운영 천수호 최성각 최진영 최창근 하성란 하재연 한세정 한용국 한지혜 함기석 함돈균 해이수 허병식 허윤진 허   정 홍기돈 홍준희 황광수 황규관 황호덕  총18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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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권력에 대한 환상

일기 2009/05/25 23:27

내가 '당비를 안내는 당원(당원이 아니란 얘기다)'인 한 당게에서는 '논쟁'이 한창이다. 말이 좋아 논쟁이지 제 손에서 주물주물한 똥을 이리 저리 던지는 꼴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내가 당원이 아닌 입장에서 이런 말들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쨌든 화가 몹시 나므로 글이라도 써야지 싶다.


전 노무현 대통령을 무작정 미화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지금은 때가 때니 만큼 최소한 죽은 이에 대한 예의는 갖춰야 하는 상황이므로 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말들을 쉽게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전 노무현 대통령 임기 시절에 있었던 수없이 많은 일들을 상기시키면서 그를 애도하는 자들에게 똥물을 끼얹는 사람들은 대체 뭐하자는 건지?

전 노무현 대통령이야 말로 시카고 發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 도입의 첨병이었으며, '제국주의적' 이라크 파병의 주역이었고, 수없이 많은 노동탄압의 기수였으며, 대표적으로 '대추리'에 가해진 국가 폭력의 최종 심급이라도 된다는건지? 아니,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믿고 있는 건지? 물론 이런 저런 조건들, 이런 저런 사건들이 전 노무현 대통령 임기 시절에 도입되었고 또 일어났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전 노무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직격탄으로 이어질 수 있는건지? 그의 죽음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아도 될만한 이유가 되는건지?

분석적이고 '혁명가적 풍모를 지닌' 어휘를 평소에 즐겨 쓰는 이들이 어찌나 이렇게 권력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도 역시 복잡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 위치한 인물이라는 점을. 한국이 어디 왕정국가라도 되는가(심지어 가장 폭력적인 왕들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니, 뭐 신정국가라도 되는건가? 그는 독재자도, 홀로 선 주체도 아니었다. 그의 주변에 포진한 수없이 많은 이들과 수없이 많은 이해관계에서 그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임기 내내 조중동과 한나라당과 싸워야 했으며 심지어는 중간에 어이없게 탄핵까지 당해야 했다.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한은 (그의 계급 정치의 한계 내에서) '부르주아' 정치에 맞서 싸웠던 인물이었다. 그의 권위는 쉴 새 없이 공격받았고 뭉개졌다. 게다가 어디 신자유주의 논리가 5년 임기에 불과한 한 국가의 원수가 혁명 일으킨다 해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런 것인가?

그렇다고 그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어쨌든 많은 기대를 받았고 또 그 기대를 저버렸다. 수없이 많은 인명을 희생한 시대에 '노무현 정권'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던 중심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신이 아니다. 왜 그를 이제와 실패한 신으로, 따라서 마땅히 추방되어야 하고 죽어 마땅한 신으로 만들려고 하는지? 민주주의와 경제평등을 외쳐야 하는 사람들이 왜 이제와 신을 소환하는건지? 그는 모두가 환멸하고 진흙탕이라 생각하는(그래서 모두가 꺼리는데다 한 번 발을 들이면 오염된 인간 취급하는) 판에 발을 깊숙히 담그고야 말았던 정치 주체이자 '실정법'이 부여한 이름인 바 대통령이지, 신이 아니다. 지금 상황이 엉망이라고 해서, 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분노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권력에 대한 환상은 걷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조금씩 다른 것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진부한 권력 이론을 갖다 들먹이지 않더라도, 권력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언어와 분석이 끊임없이 향해야 하는 지점이다. 2mb 2년차 시점에 지금 대통령은 어렵고 말도 안 통하니 접어두고, 그래도 듣는 귀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하려면, '노무현과 아이들'에서 노무현만 보지말고, '아이들'에 하나하나 구별하고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미리 했었어야 한다. 그러나 놀랍지 않게도 '아이들'은 아예 생략되어 버리거나, 그냥 '386 민주화 운동 세대'라는 이름 정도로만 불리고 땡!이다. 이런 분석 과정 없이는 분풀이용 희생양만 계속 만들어낼 뿐이다. 정치에 '절대권력'이라는 신을 소환하려드는 말 많은 사제들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2mb 대통령 한 명 희화화하고 놀리는 건 지긋지긋하다. 어떤 에세이스트의 말마따나 "우리 모두가 2mb"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 물론 정작 그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낯짝도 몰수 했으니 대통령직 그만두고도 천수의 곱절을 누리며 살겠지만.


다시 한 번,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의 사진 앞에서 흐느끼는 모든 이들의 눈물에, 부질없이 한 방울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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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Uncritical Exuberance?

번역 2009/04/10 01:02

어젠가 그제에 포스팅 했던 대로 오바마의 당선에 부치는 버틀러의 글, "Uncritical Exuberance?"를 옮겨 둔다. 역시 인터넷에 원문은 많이 돌아다니니 원문 링크는 일단 패스^^; 이 글은 앞서 올린 지젝 글보다 훨씬 더 번역하기 어려웠다 헥헥; 전체적인 양은 지젝의 글이 한글 기준 2000자 정도가 많지만 버틀러의 글이 단어나 문법 선택이 역시 beyond me이기 때문에 -_-; 이번 뉴레프트리뷰에 올라온 마이크 데이비스의 글도 흥미로울 것 같지만 분량이 너무 많아 번역은 포기했다. 어쨌거나 비록 퇴고도 못한채 출근을 위해 일단 잠을 자야하기에 초고를 올려두지만, 어쨌거나 무려 4시간이나 걸려서 사랑스러은 셸든이 나오는 빅뱅이론 봐도 될 시간에 (어디까지나 나름대로지만) 독자를 고려한 번역을 끝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그녀의 글에 엄청나게 지적 자극을 받으면서 그녀에 대한 바보같은 애정이 한층 깊어졌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싶어졌다. 덧붙여 약간의 행복감마저 느끼며, 그렇기에 오역은, 에라 모르겠다 알아서들 하세요, 하는 무책임한 말을 던지며, 나는 이만 총총... 수정은 천천히...
 

무비판적인 열광(Uncritical Exuberance)?

by Judith Butler
translated by 비앙


이 순간, 이 흥분 상태에 무감할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내 좌파 친구들은 나에게 “구원”같은 느낌을 받는다고도 말했고, “이 나라가 우리에게 돌아왔어!”라고도 말했고, “마침내 백악관에 동지가 생겼군!”이라고도 말했다. 물론 나 역시도 오바마의 승리가 확인된 날, 부시 정권이 마침내 끝장나버렸다는 생각이 엄청난 위안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믿을 수 없이 흥분 상태에 빠져있었다. 생각이 깊고 진보적인 흑인인 오바마의 생각들은 역사의 토대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우리는 그가 만들어 낸 새로운 지형들을 따라 대변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뀐 지형들에 대해서 주의 깊게 생각해보자.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이 지형의 윤곽을 완전히 그려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버락 오바마의 당선은 이제부터 평가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구원이 아닐뿐더러 구원일 수도 없다. 만약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라고 오바마가 제안했던 과장스런 동일시 상태나 “그는 우리 동지야”라는 우리들의 제안에 찬성해버린다면,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특히 오늘날의 정치적인 삶을 구성하는 적대 관계(antagonism)를 넘어설 수 있다고 믿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국가적 연합”을 이상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할 좋은 이유는 항상 있었으며, 정치 지도자를 향한 절대적이면서 흠집하나 없는 동일시를 의심하는 생각을 키워야 하는 좋은 이유들 역시도 항상 있었다. 무엇보다도, 파시즘은 부분적으로는 지도자를 향한 흠집하나 없는 동일시 상태에 의존한다. 공화당은 정치 감정을 조직하기 위해 파시즘과 같은 노력을 기울인다. 예컨대 엘리자베스 돌(Elizabeth Dole)은 그녀의 청중들을 쳐다보며 “나는 당신들 각각을 사랑하고, 당신들 모두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오바마의 당선에 대한 열의 넘치는 동일시의 정치학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오바마에 대한 지지가 보수적인 대의에 대한 지지에 부합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자면 말이다. 이는 그가 “지지 정당을 바꾸는 투표(cross-over)”로 성공했다는 점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캘리포니아에서 오바마는 60%의 득표를 기록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그에게 투표했던 사람들이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서는 52%의 반대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명백한 괴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먼저, 오바마가 동성 결혼권에 대해서 분명하게 지지한 바가 없었다는 점을 기억해보자. 더 나아가, 웬디 브라운이 주장했듯이 공화당원들은 최근에 있었던 선거들과는 달리 유권자들이 “도덕적인” 이슈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오바마에게 투표한 이유는 분명히 경제 때문인 것처럼 보이며, 그것은 종교 문제 보다는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에 의해 완전히 구조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권자 다수가 도덕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던 공화당 소속 알래스카 주지사인 페일린(Palin)의 정치 회합이 결국 실패했다는 점을 부분적으로 설명해준다. 하지만 총기 규제나 낙태권 그리고 게이의 권리 같은 “도덕”적인 이슈가 예전과는 달리 더 이상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이는 이 도덕적인 이슈들이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의 다른 칸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해, 우리는 정치적 신념의 새로운 형상화(configuration)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형상화 안에서는 명백히 모순되는 관점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 예컨대, 특정한 이슈에 대해서는 오바마에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해도 여전히 오바마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그들의 인종주의를 명백히 드러내면서 어쨌든 간에 오바마에게 투표하겠다고 말했고, 투표장에서는 백인 후보에게 투표하면서 여론조사나 출구조사에서는 비백인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하는 브래들리 효과(Bradley-effect)의 반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현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었다. “오바마가 무슬림이자 테러리스트라는 사실을 알아요. 하지만 어쨌거나 그에게 표를 던질 거예요. 아마도 그가 경제에는 더 낫겠죠.” 이러한 유권자들은 그들의 조각난 신념을 해결하지 못하고 감춰둔 채 인종주의를 지키면서 오바마에게 표를 던졌다.

강력한 경제적 동기 외에 경험적으로 조금 더 분별하기 쉽지 않은 요소들도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이 선거에서 있었던 탈동일시의 힘 역시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즉 조지 부시가 전 세계를 상대로 미국을 “대표”했다는 점에 대한 불쾌감, 미국이 저지른 고문과 불법 구금에 대한 부끄러움, 엉뚱한 땅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이슬람에 대한 인종주의적 관점을 유포했다는 사실에 대한 혐오감, 과도한 탈규제 경제가 전 지구적 경제 위기를 낳았다는 점에 대한 경각심과 공포심 말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오바마가 그의 인종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의 인종 덕분에 이 국가에서 최종적으로 선택된 대표자가 된 이유 아닐까? 그러한 대의제적 기능을 충족시키면서 오바마는 흑인이기도 하고 동시에 흑인이 아니기도 하였으며(누군가는 “충분히 흑인스럽지 않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너무 흑인스럽다”고 말한다), 그 결과로 오바마는 인종문제에 대해 양의적인 관점을 해소하지 못하는 유권자들 뿐 아니라 그러한 문제를 원치 않는 유권자들에게도 호소할 수 있었다. 대중들이 대중들 스스로의 양의성을 견뎌내고 감출 수 있도록 해주는 공적인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의 인물로 나타난다. 이는 당연히 이데올로기의 기능이다. 그러한 요소는 강렬한 상상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정치적인 힘을 잃는 것은 아니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오바마 개인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은 관심들이 쏠렸다. 즉, 진중하고 신중한 그의 성격, 언제 어디서든 성미를 놓아 버리지 않는 능력, 상처를 주는 공격들과 야비한 정치적 수사 앞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방식,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부끄러운 상황을 회복할 새로운 미국을 건설하자는 그의 약속 말이다. 물론 그러한 약속은 매혹적이지만, 오바마를 선택하면 이 모든 불협화음을 일거에 해소하고 통합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믿음을 낳는다면 어쩔 것인가? 이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가 자신의 과오점을 보여주고 자발적으로 다른 세력과 타협하며, 심지어 소수자들을 팔아치울 때에 우리가 느낄 수밖에 없는 실망에 고통 받는 결과로 끝나 버릴만한 가능성은 또 어떤가? 사실 그는 분명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러한 점들을 보여주었지만, 많은 이들은 이 순간 극단적으로 모호하지 않은(extremely un-ambivalence) 상황을 즐기기 위해 이러한 우려를 “미뤄두고” 있다. 심지어 우리가 더 잘 알게 되었을 때에도 무비판적으로 즐거워하게 될 위험을 무릅쓰고 말이다. 뭐니 뭐니 해도 오바마는 거의 좌파가 아니다. 보수주의 반대세력이 오바마에게 “사회주의자”라는 명칭을 붙여줬다지만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 그의 행동들이 정당 정치와 경제적 이해관계, 그리고 국가 권력에 의해 제한될 것인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이미 타협되었는가? 만약 우리들이 현재의 불협화음을 극복하기 위해 오바마를 지지할 것이라면, 우리는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 기쁨을 즐기기 위해서 비판적인 정치학을 떨궈내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순간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순간이 얼마나 덧없는 것일지에 대해서는 잊지 않아야 한다. “오바마가 무슬림이자 테러리스트라는 사실을 알아요. 하지만 어쨌거나 그에게 표를 던질 거예요”라고 공공연하게 자백한 인종주의자가 한 켠에 있다면, “오바마가 게이의 권리와 팔레스타인을 팔아 치웠다는 것을 아주 잘 알아. 하지만 여전히 그는 우리의 구원이야”라고 말하는 좌파들도 분명히 있다.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I know very well, but still)’라는 말은 부인(disavowal)의 고전적인 형식이다. 우리는 어떤 수단을 통해 이렇게 충돌하는 신념을 유지하고 감추고 있는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정치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가?

오바마의 성공이 미국의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유럽의 사민주의를 닮은 경제 접근법이 도입되면서 경제 규제에 있어서 새로운 원리를 보게 되리라 생각하는 것도 논리적일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외교 문제에 있어서도 부시 행정부가 국가 간의 조화를 파괴해 온 치명적인 흐름을 뒤바꿔 놓을 다변적인 관계로 재편되는 점을 보게 될 것이다. 사회적인 이슈에 있어서도 더 자유주의적인 흐름이 있게 되리라는 점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비록 오바마가 전 국민 의료혜택 보장을 지지하지도 않았고 동성 결혼권을 명백하게 지지하는데도 실패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가 중동에서 정당한 정책을 펴리라고 희망할만한 이유가 많지도 않다. 물론 그가 컬럼비아대 중동문제연구소 소장으로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해오던 라시드 칼리디를 알고 있다는 점이 위안거리가 되기는 하지만.

오바마의 당선에 있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중요성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성공에 암묵적으로 강제된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하고만 관련이 있다. 이 사실은 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격려할 것이며 또 압도할 것이다. 동시에 이 사실은 미국의 자기 정의(self-definition)의 변화를 촉진할 것이다. 오바마의 당선이 투표자들 다수가 오바마에 의해 “대표되기”를 원한다는 의향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는 새롭게 구성될 것이다. 즉, 우리는 많은 인종으로, 각양각색의 인종으로 이루어진 국가(nation)다라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오바마는 우리가 누구로 되어왔으며, 또 앞으로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할 것인지를 인지해야할 이유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대통령직의 대의제적 기능과 대중을 대표하는 것, 둘 사이의 불화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는 기쁨이 넘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속될 수 있는가? 그리고, 지속되어야만 하는가?

거의 메시아에 거는 것만큼 이 남자에게 쏟아진 기대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오바마의 재임기간이 성공적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실망을 불러 일으켜야 하며, 또 실망을 견뎌내야만 한다. 그 분(the man)은 한낱 인간이 될 것이며, 우리가 바랐던 것보다는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정치는 모호함이나 신중함 없는 찬양이기를 멈추게 될 것이다. 사실 정치는 소란스러운 토론과 공중의 비평, 필수적인 적대의 장이지 메시아적 경험은 아니다. 오바마의 당선은 토론과 투쟁의 장이 이동했음을 의미하며, 더 나아지리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의 당선을 잠정적이나마 투쟁의 끝으로 생각한 우리들은 어리석었지만, 오바마의 당선은 투쟁의 끝이 아니다. 우리는 오바마가 시도할 많은 행동들과 시도하지 못할 일들에 의심할 여지없이 동의하고 또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오바마가 그 자체로 “구원”이며 “구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릴때 우리는 그를 무자비하게 처벌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우리는 통합되었다는 느낌과 모호한 점 하나 없는 사랑의 경험을 유지하기 위해 그러한 실망을 거부하거나 억누를 방법을 찾게 될 수도 있다)

필연적으로 따라 붙을 드라마틱한 실망감을 피해가려면 오바마는 빠르고 자알~ 행동해야만 할 것이다. 아마도 “충돌”ㅡ그에게 반대하는 정치 의지를 불러일으킬 심각한 실망ㅡ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 재임기간의 첫 두 달 안에 중대한 행동을 실행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아마도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고 수용자들의 재판을 합법적인 재판정으로 이관하는 일이 될 것이다. 둘째는 이라크에서 병력을 철수할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을 수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셋째로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을 확대하겠다는 그의 호전적인 언급을 철회하고, 그 지역에서 외교적이고 다변적인 해결책을 추구하는 일이 될 것이다. 만약 그가 그러한 단계를 밟아가는 데 실패한다면, 오바마에 대한 좌파들의 지지는 악화될 것이며, 우리는 자유주의적 주전론자들과 전쟁에 반대하는 좌파들 사이의 균열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또 만약 오바마가 시오니스트인 로렌스 서머스 같은 이들을 주요 내각에 지명하거나, 클린턴과 부시가 이미 실패한 경제 정책을 계속한다면, 언젠가 우리의 메시아는 엉뚱한 예언자로 판명되어 경멸의 대상이 될 것이다. 불가능한 약속의 지점에서, 우리는 부시 정권이 저지른 정의(justice)의 끔찍한 폐기를 뒤집기 위해 확실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확실히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환멸(disillusionment)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비판적인 정치학을 되찾으려면 얼마만큼의 각성(dis-illusion)이 필요하며, 극적인 각성을 얼마나 해야 지난날의 정치적 견유주의(cynicism)로 돌아갈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환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우리는 정치란 오바마가 보여줬던바 인간에 대한 것이나 불가능하고 아름답기만 한 약속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여러 어려움들을 극복하며 더 큰 정의의 여건을 만들어줄 확실한 정책 변화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_끝.

 

 

Posted by 비앙

Use Your Illusions

번역 2009/04/07 20:43

오바마의 당선에 대한 지젝의 글을 번역해 옮겨 둔다. 나름대로 의역과 직역의 중간 쯤으로 해봤다. 이희재씨의 <번역의 탄생>을 보고 번역 방식 자체를 조금씩 저울질해보는 중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연습이랄까... 어쨌든 작년 11월 쯤에 올라온 글인걸로 아는데, 이제야 좀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어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찾아서 보고 있다. 원문은 인터넷에 워낙 많이 돌아다니므로 패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버틀러의 글도 있던데, 뒤늦게 발견하였기에 조만간 번역을 해둘까 하고^^ (번역을 해둬야 기억에도 오래 남고 나중에 들춰보기도 좋은 것 같다!) 언뜻 봤지만 버틀러의 글은 역시 너무나 버틀러스럽게도 해체적이고 일반적인 희망과 믿음에 의문을 강하게 제기한다. 나로서는 다소 의외지만 오바마의 승리에서 약간이나마 희망을 읽어내는 지젝의 글과는 묘하게 상충한달까. 지금으로서는 지젝의 글에서 힘을 얻고 있지만, 버틀러의 글, 독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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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이용하라 _슬라보예 지젝

_translated by 비앙



노엄 촘스키는 사람들에게 ‘환상 없이’ 오바마에게 투표하자고 요청했다. 나는 오바마의 승리가 낳은 진정한 결과에 대한 촘스키의 의심에 심히 공감한다. 실용적 관점에서 봤을 때 오바마의 승리는 ‘인간의 얼굴을 한 부시’로 밝혀질 아주 작은 개선만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 그는 기본적으로 부시와 같은 정책을 좀 더 매력적인 방식으로 추구할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부시의 재임 시절에 겪은 재앙으로 손상을 입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효과적으로 강화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에는 무엇인가 심히 잘못된 점이 있다. 아주 중요한 차원이 빠져있는 것이다. 오바마의 승리는 단지 다수자를 위한 끊임없는 의회에서의 투쟁과 그 투쟁이 포함하고 있는 실용주의적 계산과 조작의 변종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는 더 많은 무엇인가의 징후이다. 이것이 그 어떤 환상도 갖고 있지 않은 나의 완고한 좌파 미국인 친구가 오바마의 승리 소식을 들었을 때 울었던 이유이다. 우리들이 의심이 어찌했든 간에, 바로 그 순간에는 우리들 각각은 모두 자유로웠고, 인류의 보편적인 자유에 참여하고 있었다.

<학부간의 논쟁(The Contest of Faculties)>에서 칸트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역사에서 진정한 진보는 존재하는가? (그는 윤리적인 질문을 의미했지, 단지 물질적인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는 진보란 증명될 수 없지만, 진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가리키는 징후는 식별해낼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의 가능성을 지시하는 바로 그러한 징후였다.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던 일이 일어났고,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자유의 평등을 주장했다. 칸트가 보기에 파리의 거리에서 벌어진 (자주 피가 흘렀던) 현실보다 더 중요한 점은, 유럽 전역의 공감적인 관찰자들의 눈에 보였던 프랑스 혁명의 열정이었다. 그리고 이는 서인도 제도의 공화국인 아이티(Haiti) 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세계사적인 사건이 촉발되었다. 최초의 흑인 노예 반란 말이다.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프랑스 혁명의 가장 숭고한 순간은 아이티에서 온 투쌩 루베르뛰르(Toussaint l'Ouverture)가 이끄는 대표단이 파리를 방문한 뒤, 인민 의회가 그들을 열광적으로 평등한 자들 중에 평등한 자로 환영했을 때 일 것이다.

오바마의 승리는 signum rememorativum, demonstrativum, prognosticum이라는 3중의 칸트적 의미에서 역사의 징후라고 할 수 있다. [각주:1] 오래된 과거를 가진 노예제에 대한 기억과 노예제의 폐지를 위한 투쟁이 울려 퍼지는 징후이자 오늘날의 변화를 증명하는 사건이며 미래의 성취를 향한 희망이라는 것이다. 오바마의 당선에 대해 걱정하는 진보주의자들이 꽉 닫힌 문 뒤에서 보여주었던 회의주의("만약 공식석상에서는 부인되어온 인종주의가 투표소라는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다시 등장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는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근본적인 냉소주의적 현실주의 정치가인 헨리 키신저에게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그가 말한 예측의 대부분이 완전히 틀렸다는 점이다. 예컨대 1991년 반 고르바초프 군이 불시의 일격을 가했다는 소식이 서구에 전달되었을 때, 키신저는 즉각 그 새로운 정치체제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군사조직은 3일 뒤에 불명예스럽게 몰락해버렸다. 그 전형적인 냉소주의자는 아주 자신감있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 모든 것이 돈과 권력과 섹스 때문에 일어났다는 점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원칙이나 가치에 대한 언명은 실상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말 뿐이고, 그 말들은 실상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죠..." 그러한 냉소주의자들은 환상의 힘을 무시하는 그들 스스로의 순진무구한 분별력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오바마의 승리가 그러한 열정적인 반응들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모든 역경을 딛고 실제로 오바마가 승리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나아가 오바마의 승리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같은 위대한 역사적인 균열들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공산주의 정권의 썩어빠진 비효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공산주의 정권이 실제로 무너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키신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냉소적인 실용주의의 희생자였다. 최소한 투표 2주 전에는 오바마의 승리를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의 승리는 여전히 놀라운 것으로 여겨진다.

진정한 전투는 오바마의 승리 뒤인 지금 시작하고 있다. 그의 승리가 사실상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전투 말이다. 특히 9/11과 최근의 금융 대폭락이라는 더 불길한 사건의 맥락에서는 말이다. 역사는 처음엔 비극으로, 두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 부시 대통령은 각각 9/11 이후와 금융 대폭락 이후에 똑같은 내용의 연설을 다른 형식으로 발표했다. 두 경우 모두 부시는 미국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위협이 있다는 점, 그리고 즉각적이고 확고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또한 부시는 개인들의 자유와 시장 자본주의를 보증하는 미국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잠시동안 그 가치들을 부분적으로 유예시키자고 요청했다. 이러한 유사점은 어디에서 오는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행복한 90년대'의 시작이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에 따르면 자유자본주의가 원칙적으로 승리했었던 그 시대는, 일반적으로 9/11 이후에 끝났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두 번 죽었어야만 했다. 9/11 이후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 유토피아가 붕괴되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종말로 치닫고 있는 전 지구적 시장 자본주의의 경제 유토피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금융 대폭락 이후 이제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난잡한 불합리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에이즈, 기아, 물 부족, 지구 온난화와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러한 문제들이 아주 시급한 문제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다시 숙고하고 결정을 미룰 수 있는 시간들도 충분히 가졌다. 세계적인 리더들은 발리에 모여 기후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회합은 성공적이었다며 환영받았지만, 그 모임의 중요한 결과가 있다면 2년 뒤에 다시 모여 이야기를 이어가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금융 대폭락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무조건적으로 문제의 시급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돈도 순식간에 마련되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하고 지구 온난화로부터 지구를 지키며 에이즈 치료제를 찾고 굶주리는 아이들을 지키는 일은 어떻게 하고? 그 모든 일들은 잠시 기다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은행을 지켜라!'라는 말은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또 즉각적인 행동을 낳은 무조건적인 명령문이다. 공포는 절대적이었다. 초국가적이고 초당파적인 조직이 즉각 만들어졌고, 세계적인 리더들 사이에서 이 모든 일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지금은 이 재앙을 피해가야 한다는 이유로 잠시 동안 잊혀졌다. (말이 나온김에 말하자면, 꽤나 절찬을 받고 있는 '초당파성(bi-partisanship)'이라는 말은 민주적인 과정이 사실상 유예되었다는 뜻이다.) 숭고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 '진짜' 일을 해결하는데 사용되지 않고 시장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시장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그 이유였던 것이다. 자본이 우리의 삶의 실재, 즉 우리의 사회적이고 자연적인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보다도 더 절대적인 실재라는 점에 대해서는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미국에서만 7000억 달러가 단지 은행 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투입되었다는 점과 가난한 국가의 식량 부족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부유한 국가들이 220억 달러(실제로는 22억 달러만 쓸 수 있었다)를 투입하기로 했었다는 점을 비교해 보자. 식량 부족 위기에 대한 책임을 부패나 비효율성, 혹은 국가 개입주의에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빌 클린턴 마저도 곡물을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의 중대한 권리로 인식하지 않고 단지 일상적인 상품으로만 취급했다며 "나를 포함한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망쳐버렸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클린턴은 자신이 한 개별적인 국가나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연합 또한 세계은행과 IMF 그리고 그밖의 다른 국제 기구들이 추진했던 서구의 정책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국가들은 농부에게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을 삭감하라는 압력을 받았고, 가장 기름진 땅을 돈 벌이가 되는 수출 작물을 기르는데 사용했다. 그러한 '구조 조정'의 결과로 전지구적 경제로 지역 농업이 통합되었다. 작물은 수출되었고, 농부들은 땅을 빼앗기고 노동 착취 공장으로 끌려 들어갔으며, 가난한 국가들은 점점 더 수입 작물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가난한 국가들은 탈식민주의적인 종속 상태에 빠져들었고, 시장의 성쇠흥망에 취약하게 되었다. 즉 (부분적으로는 생물 연료(biofuels)에 사용되는 곡물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는) 곡물 가격의 상승은 곧 아이티로부터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국가의 기아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음식은 다른 것들과 달리 일상적인 상품이 아니다. 우리는 완전히 자급자족하는 식량 정책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자급자족하는 능력을 기르지 않은 채로 전 세계의 국가들을 발전시킬수 있다고 믿었다니 미친게 틀림없다"고 말했던 클린턴은 옳다. 허나 최소한 2가지가 덧붙여져야 한다. 먼저 서구의 선진국들은 그들의 농부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식량 자급자족을 유지하는데 큰 힘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농장 보조금은 유럽 연합의 전체 재정의 거의 반이나 된다. 두 번째로 "다른 것들과 달리 일상적인 상품"이 아닌 것은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음식 외에도 모든 애국자들이 알고 있는 방어라든지, 물, 에너지, 환경, 문화, 교육, 건강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만약 그것들이 시장에 맡겨질 수 없다면, 누가 그것들에 대해서 결정을 내릴 것인가? 바로 여기서 공산주의의 문제가 다시 제기된다.

2006년 6월 5일 타임지의 커버 스토리는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쟁'이었다. 그 기획은 지난 10년간 콩고에서 4백만명의 사람을 죽인 정치적인 폭력에 대해서 자세히 다뤘다. 허나 통상적인 인도주의 시위도 없었고, 단지 2개의 독자 편지가 반응의 전부였다. 타임지는 희생자를 잘못 골랐던 셈이다. 타임지는 무슬림 여성이나 티베트의 승려들을 선택했어야 했다. 이스라엘이나 미국 아이는 말할 것도 없지만 팔레스타인 아이의 죽음이야말로 이름 없는 콩고 사람의 죽음에 대한 기사보다 몇 배는 많은 분량으로 다뤄질 가치가 있다. 왜 그런가? 10월 30일에 AP통신은 콩고의 동부지역 수도인 고마(Goma)를 포위하고 있던 반란군의 장군인 로렌 은쿤다(Laurent Nkunda)가 정부와 직접 대화를 원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고속도로와 철도에 대한 보상으로 중국에게 수십억 달러 어치나 되는 풍부한 콩고 천연광물의 채광권을 제공하겠다는 조약을 반대한다는 이유였다. 신식민주의적인 문제는 잠시 제쳐 놓고 보더라도, 이 협상은 콩고 민주공화국이 통일된 국가로 기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할 것이었기에, 지역 군벌의 이해관계에는 치명적인 위협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2001년 UN은 콩고 천연자원의 불법 착취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고, 콩고의 주요 갈등 원인이 콜탄(contan), 다이아몬드, 구리, 코발트, 금이라는 다섯 개의 주요 광물 채광권과 관리권, 그리고 무역권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지역 군벌과 외국 군대의 콩고 천연자원 착취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었다. 르완다 군은 휴대폰과 노트북에 쓰이는 콜탄의 판매로 18개월 동안 최소 2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UN의 보고서는 콩고의 영원한 내전과 분열은 "모든 수혜자들에게는 '윈-윈'이었다. 이 거대한 비즈니스 벤처의 유일한 패배자는 콩고 사람들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이 종족 전쟁이라는 탈을 쓴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윤곽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극심한 착취 세력은 14년전 제노사이드의 희생자였던 르완다의 투치족들이다. 올해 초, 르완다 정부는 제노사이드에 대한 미테랑 행정부의 공모 관계를 보여주는 문서를 발행했다. 프랑스는 영어를 사용하는 투치족을 희생시키고 르완다 내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심지어 무기까지 제공하면서 후투족의 계획이 실행되도록 도왔다. 프랑스는 근거가 전혀 없다며 철저하게 그 고발을 기각했지만, 암만 좋게 봐도 그러한 행동이야 말로 근거가 전혀 없다. 아마도 미테랑을 그의 사후에라도 헤이그 국제 형사 재판소로 데려가는 일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의 보호자로 활동한다고 사칭했던 일류 서구 정치가를 최초로 재판에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중대한 선을 넘는 일이 될 것이다.

최근의 질서에 대한 위협과 맞서 싸우기 위해 최근 몇 주 동안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지배 이데올로기가 동원되었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기 소르만(Guy Sorman)은 최근 아르헨티나에서의 인터뷰에서 "이 위기는 충분히 짧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소르만은 이 금융 대폭락을 다루기 위한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적 요구를 충족시켰다. 즉, 상황을 다시 정상화하는 것 말이다. 그가 다른 곳에서 말했듯이, "기술 혁신과 그 자체로 좋은 경제 정책의 힘을 받는 기업가 정신에 의해 추동되는 낡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끊임없이 바꾸는 과정은 부유함을 낳는다. 비록 충분히 이해할만하게도 자신들의 직업이 잉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이 과정에 반대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재정상화 작업은 그 반대와도 공존한다. 다시 말해, 권력자들이 제시한 분명 불공평한 것이 틀림없는 해결책들을 대중이 불가피한 것인양 납득하도록 하기 위해 공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소르만은 시장이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가득차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재빨리 "과도한 정부 규제를 복원시키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행동주의 경제학을 사용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얘기다. 결국 국가는 개인보다도 합리적이지 않게 될 것이며, 그러한 국가는 결국엔 거대한 파괴적인 결말로 치닫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경제 사이클과 정치적인 압력의 위기에 직면한 민주주의 정부와 지도층들의 주요한 임무는, 인류에게 훌륭히 봉사해 온 바로 그 체제를 방비하고 보호하는 것이지, 그 체제가 불완전하다는 점을 구실로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이러한 훈계는 의심할 여지 없이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기 가장 어려운 것들 중 하나다. 이 세계에서 가능한 경제 체계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사실 불완전하다. 경제 과학에서 발견되지 않은 진실이 무엇이든, 자유 시장이야 말로 인간 본능의 유일하고 최종적인 반영이며, 그 자체로 거의 완벽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기능은 더 명징한 용어로는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심각하게 제기되는 비판에 대항하여 현존하는 체계를 옹호하기 위해 그는 자유 시장을 인간 본능의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2008년의 금융 대폭락이 외면상 불행해 보이는 행복이 된다거나, 꿈에서 깨어나는 일이 된다거나, 우리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살고 있다는 일에 대한 분별력있는 암시가 된다거나 할 가망은 없는 것 같다. 이는 금융 대폭락이 어떻게 상징화되며, 어떤 이데올로기적 해석이나 이야기가 그 위기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결정하느냐에 달려있다. 사물의 일반적인 운영이 외상적일 정도로 중단되면, 그 장(field)은 '광범위한' 이데올로기적 경쟁에 활짝 열리게 된다. 1920년대 후반 독일에서 히틀러는 어떤 내러티브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위기에 대한 이유와 그 위기를 탈출하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경쟁에서 승리했다. 1940년 프랑스에서 마레샬 페텡은 2차 세계대전 초 프랑스의 패전 이유를 찾는 컨테스트에서 우승했다. 따라서, 오래된 맑스주의적 용어로 말하자면 현재의 위기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주요 전략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계의 붕괴에 대한 책임을 그 자체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일탈(느슨한 규제, 큰 금융 조직의 부패 등)로 책임을 돌리는 내러티브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항하면서 누군가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즉, 이 자본주의 체계 그 자체의 어떤 '약점'이 그러한 위기와 붕괴의 가능성을 열어 젖혔는가? 라는 질문 말이다. 여기서 가장 먼저 명심해야할 점은 이 위기의 기원이 '자비로운'일이었다는 점이다. 2001년 닷컴 거품이 무너진 뒤, 불경기를 막고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부동산 투자를 촉진시키자는 결정이 당의 정책 노선을 휩쌓았다. 오늘날의 금융 대폭락은 7년전 피했던 불경기의 대가이다.

따라서 진짜 위험은 금융 대폭락에 대한 지배적인 내러티브가 우리를 꿈으로부터 깨워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계속해서 꿈꾸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서 부터 우리는 걱정해야 한다. 금융 대폭락의 경제적 결과 뿐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을 다시 활성화하고자 하는 명백한 유혹, 그리고 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개입주의에 대해서도 걱정하기 시작해야 한다. 오바마의 승리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오바마의 승리는 우리의 자유를 넓혀 놓았고, 그 결과로 우리들의 선택 폭도 넓혀 놓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오바마의 승리는 그의 승리가 없었더라면 어둠의 시대에 살았을 우리들에게 희망의 신호이며, 좌파든 우파든 현실주의적인 냉소주의자들에게 최후의 언어가 속해있지 않다는 신호이다. _끝

  1. 인터넷 검색을 조금 해봤지만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일단 원어로 옮겨 둔다. 혹시 아는 분들 있으면 좀 헬프 미ㅠ [본문으로]
Posted by 비앙

오늘 루틀리지에서 나온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개론서를 읽다가, 나로서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던 접근 방식을 읽었다. 한나 아렌트는 특히 (정치)철학, 그리고 그녀의 삶의 맥락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서 (서양)현대사, 홀로코스트 연구(Holocaust studies), 유대인 연구(Jewish studies) 등에서 알려진 인물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거의 모른다는 이야기다. 나 같은 경우 <인간의 조건>, <전체주의의 기원>을 포함한 몇 권의 국역본을 갖고 있지만, 꽤나 많이 알려진 <전체주의의 기원> 1권의 마지막 장 정도와 <정치의 약속> 일부를 읽고는 너무나 읽기 뻑뻑해서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서 주목 받고 있는 (독특한(?)) '아렌트'에 대해서는, 랑시에르 같이 한국에서 '최신 유행'인 이들의 글을 읽어서, 대략적으로만, 아주 간략하게만 알고 있을 뿐이다. 70년대만 하더라도 '우파'적인 사람으로, 그리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안티-페미니스트'로서 평가받던 아렌트가 최근 들어서 왜 이렇게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만(이에 대해 다룬 글을 읽은 적 있다)... 이는 오늘 끄적이고 싶은 주제가 아니므로 패스.

어쨌든 이 개론서의 저자는 정치철학자로서의 아렌트가 아닌, 문학 연구의 맥락에서 아렌트를 읽자고 제안한다. 아렌트가 문학의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다는 것이다. 특히 문학적 서사(literary narrative)를 말이다. 심지어 아렌트는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어떠한 철학도, 의미의 강렬함과 풍족함이라는 측면에서, 잘 서술된 이야기(properly narrated story)에 비교할 수 없다."고 말이다. 아렌트가 보기에 기존의 고전적인 정치 개념으로는 당시에 새로이 등장하던 유례없는 전체주의ㅡ나는 이를 어떤 현대 철학자가 그랬듯 '절대 악'이라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ㅡ를 이해할 수도 없으며 심각한 왜곡을 초래할 뿐이었다. 그래서 아렌트는 그녀의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래왔듯, 예술과 서사, 그리고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고는, '이론(theory)'에 대한 불신, 내지는 '이론'의 '몰락'이라는 특정한 현실 인식에 기반해 있다. 조금 현대적인 맥락에서 말하자면, 테리 이글턴이 지적했듯(그러나 약간은 새삼스럽게도), 특히 21세기 초의 엄청나게 급격한 변화를 겪는 전지구적 상황의 맥락에서, 이론과 이론가들은 그 변화의 속도에 맞춰가기가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2001년 9월 11일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선포된 미국적인 상황에서 이론은 쉽게 낡은 것이 되거나 현실과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렌트 역시도 당시 현실에 도래하고 있었으며 이미 도래했던 전체주의와 근본주의를 목격하면서, 이론과 서구 철학의 죽음을 읽었다. 간단히 말해 서구 문화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정적인(static) 이해 모델인 반면ㅡ따라서 당시의 현실을 읽어낼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ㅡ, 스토리텔링은 역동적이며 창조적인 모델이다. 특히 아렌트는 그녀의 선생이자 연인이기도 했던 모 철학자가 1930년을 즈음하여 나치에 가입했던 유명한 사건을 두고도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토록 철학적 명민함(subtlety)을 가진 사람이, 나치 정권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들을 갖지 못했다는, 그 놀랍지만 놀랍지 않은 선명한 대조를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플라톤 이래 2000년을 내려온 서구 철학 전통의 추상적 이론화 경향이 어떻게 공적 세계와 사유행위 그 자체에 폭력을 가해왔는지 의문을 쏟아 놓는다.

그에 반해 스토리텔링은 전통적인 이론들이 읽어낼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젖힌다. 아렌트에게 스토리텔링은 역사적인 트라우마와 비극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다. 또한 스토리텔링은, "정의의 오류(the error of defining)"를 저지르지 않고 다른 의미들을 도출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스토리텔링은 지식인의 '독백'에 가깝고 라캉의 표현을 빌자면 언제나 편집증적일 수밖에 없는 '이론'과는 달리, '커뮤니티community'를 가정한다는 점에 아렌트는 주목했다(커뮤니티를 흔히 하듯 '공동체'로 번역하는 것은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를 심각하게 제한한다는 생각이다. community는 commune이라는 동사에서 볼 수 있듯, 친교와 교제와 우정과 공감의 의미도 함께 갖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동체는 '하나의 신체'라는 뜻이다. 너무나 낡고 진부한 유기체적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온갖 위계질서와 기능주의적인 설명이 덧붙여진다. 심지어는 '한 솥 밥을 먹고 한 배를 탄 운명'이라는 식의 가족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이해가 덧붙여지기도 한다). 즉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the teller of the story)", "(이야기 속) 행동의 행위자(the hero of action)", "그 이야기를 심판하고 이야기에 반응하는 청자 혹은 독자"를 늘 가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론으로 설명되면 이해될 수 없는 사건들이, 스토리와 내러티브의 형상으로 묘사되면 더 넓은 청중과 커뮤니티에 의해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다. 즉, '인지가능한(intelligible)' 사건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래서 아렌트는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조셉 콘라드(Joseph Conrad)를 참조하여, 그녀의 정치적 이상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문학적인 방법들에 주목한다..



아렌트의 책을 제대로 읽은 바 없는 나로서도, 이러한 저자의 생각이 아렌트의 사유 체계를 부분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쉽게 지우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아렌트의 이러한 접근은 '정치적 스토리텔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스토리텔링 행위는 '현실' 자체의 문제에 개입하고, 그 지평을 이해함과 동시에 확장(내지는 그 지평 자체의 붕괴)을 시도하려는 끈질긴 노력의 산물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지배적인 상징 체계에 저항함으로써ㅡ프리모 레비는 그의 책에서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그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를 이야기하고 그 공포를 증언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우슈비츠에 대한 우파적인 수정주의적 입장은 얼마나 끔찍한가?ㅡ잊혀져 가는 오랜 기억들을 잊혀지지 않게 할 수 있는 어쩌면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도 회자되고 있는 마케팅 수단으로서의 스토리텔링과는 전연 다른 차원의 스토리텔링일 것이며, 김연수가 얘기한 바 있는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스토리텔링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이러한 아렌트와 이 책의 저자의 생각은 나로서는 매력적이었다. '이론'이냐 '현장'이냐 하는 식의 이분법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이론'에 많은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나로서는 말이다. 또한 나는, 이 세상에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문학적 글쓰기'라고 믿고 있다. 또한, 피에르 마슈레 식으로 말하면, 한 작품 혹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거부하는 것 뿐 아니라, 작품 내지는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주목하고 이야기하고 기록하는 것이, 주위의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면서 평생 공부하는 사람들의 임무라면 임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서사, 내지는 스토리텔링은, 바로 이러한 내 믿음과 연결되는 부분이 분명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대해서도 몇 가지 지우기 힘든 고민들이 남는다.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정치적인 실천이 될 것인가? 어떤 스토리텔링이 '정치적'인가? '정치적' 스토리텔링을 규정하는 속성을 우리는 정의할 수 있는가? 만약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라는 말이 우리가 가진 언어로 쉽게 정의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정치적이라고 '느끼는가'? '정치'란, 바디우같은 이들이 말하듯, '메시아적'이고 '섬광'과도 같은, 그런 급진적인 단절/도약의 순간, 내지는 거부할 수 없는 윤리적 명령을 가진 어떤 '사건에 충실'하면 되는 것인가? 거기에서 스토리텔링의 위상은 어디에 위치시킬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아예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많이 필요할 것 같으므로 패스한다고 치자. 하지만 이러한 의문은 어떠한가. 어떻게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이미지화되거나 스펙터클화되지 않고 그 자체의 유효성과 독특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을 정도로 홀로코스트 역시도 자본주의의 엄청난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화, 만화 등은, 사실 홀로코스트라는 고유한 사건 특유의 정서적 소통 능력을 갖지 못하고, 하나의 끔찍한 사건, 혹은 구경거리로 전락해서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일어나지는 않을, 저 먼 곳에서 일어난 어떤 비극'이라는 식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즉, 프레드릭 제임슨이 지적했듯, 드보르로부터 보드리야르에 이르는 사람들이 늘 말해온 바대로 어떤 사건이 이미지화되고 스펙터클화되는 과정에서, '지시체referent'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가 70년대 흑인 혁명노동자 연맹(the League of Black Revolutionary Workers)의 디트로이트에서의 일시적/부분적 승리와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 짤막하게 분석하면서 이야기했듯 말이다. 그렇다면 스토리텔링은, 애초에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결국엔 통약불가능(incommensurable)한 것이 되지 않겠는가?

그 외에 몇 가지는 생략... ;ㅅ;



덧) 만약 정말 아렌트가 허먼 멜빌과 조셉 콘라드를 참조했다면... 나로서는 웃음만 나올 일이다 ㅋㅋ 왜냐면 내가 학부 시절에 가장 읽고 싶었지만 가장 읽을 수 없었던 책의 주인공들이 바로 허먼 멜빌과 조셉 콘라드이기 때문이다. 허먼 멜빌은 단어와 문법 양면에서 모두(바다와 어선에 관련된 '끔찍한' 어휘들을 보면 알 것이다. 심지어 허먼 멜빌 작품용 딕셔너리도 있다-_-;;), 콘라드는 문법의 측면에서 읽기 너무 힘들고 뻑뻑했다. 그들의 책을 읽으면서는, 지금 내가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라 탐색하고 조사하고 해부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기에... 결국 다 포기하고 국역본만 읽었다네~ㅎㅎ 아렌트의 책들이 뻑뻑한 이유도 부분적으로 설명되는 것 같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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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출처 : 씨네21 [070330]

약자의 테러, 강자의 전쟁

사랑이나 전쟁은 상대방의 존재가 자기 인식과 깊이 연결해 있어서 본래 승부를 가릴 수 없는 모순된 행위다. 우리-속국-동맹-적은 나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이지 배타적 범주가 아니다. 나-연인-연적도 마찬가지다. 자타 경계를 구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저런 인간에게 목을 맸단 말인가”라며 사랑이 끝난 뒤 자기 모멸감으로 괴로워하고, “겨우 계집애랑 붙으란 말이냐”, “세계 최강을 상대로…” 식으로 모든 싸움에서 상대의 ‘체급’을 확인한다.

군수산업체나 안보 국가처럼 전쟁이 존재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정체(政體??)들은 언제나 전쟁의 불가피성을 설파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온갖 모순어법이 등장한다. 대개 전쟁사는 “몹쓸 놈들(적)이 우리를 침략했지만, 우리는 용감하게 맞서 물리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평화’시에는 적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을 과소평가하지만, ‘전시’에는 전과를 과장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일부 보수층이 북한에 대해 절대적 우월감을 과시하면서도 (공격자는 방어자보다 최소 3배 이상 전력의 우위가 있어야 하는데도) 남침 가능성으로 두려워하는 것이나,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으스대면서도 파괴할 건물조차 남아 있지 않은 최빈국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그런 예이다. 그래서 전쟁은 히스테리일 수밖에 없다.

동양의 선현들은 ‘지혜’가 있었는지, 아예 처음부터 이러한 모순을 간파하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자신의 침략 행위에 등급을 매겼다. 수직적 불평등 문화인 유교권에서 전쟁은 정(征), 토(討), 취(取), 침(侵), 습(襲), 벌(伐), 전(戰) 등으로 나뉜다. ‘전’(戰), ‘적국’(敵國)은 동등한 정치집단간의 무력 충돌에만 사용하며, ‘찌질한 오랑캐들’에 대한 무력 행위는 나머지 용어로 지칭했다. 강자의 폭력은 침략이 아니라 ‘어른으로서 벌(罰)주는 것’이라는 논리다. 남의 것을 훔치기 위해 폭력을 쓰면서, 약자를 치는 자기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해 “싸운다” 표현하지 않고 “너를 혼내고 취(取)했다”는 언설의 정치학은, 강자의 전쟁론에 저항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가정폭력 가해 남편이 아내 구타 행위를 “때려서 가르치는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컨대 모두, 강자가 힘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었다가 사망한 고 윤장호 하사를 추모하는 거의 모든 언론 보도와 여론에서, 텔레반의 자살 폭탄 “테러”와 이에 맞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폭력 자체의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고) 미국 정부의 공격은 ‘정의의 전쟁’이고, 텔레반의 공격은 ‘악당들의 테러’란 말인가? 텔레반도 그들 입장에서 전쟁을 수행 중이다. ‘테러’와 ‘전쟁’은 이미 위계적이다. 전쟁은 정당하고 떳떳하며 심지어 영웅적 혹은 자기희생적인 어감마저 풍기지만, 게릴라전이나 테러라는 표현은 뭔가 도발적이고 비겁하며 뒤통수친다는 느낌을 준다. 약자는 전면전을 벌일 수 없기 때문에, ‘치고 빠지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약자는 상대방을 히트 앤드 런(치고 ‘도망가는’)할 수밖에 없지만, 강자는 어디서나 치고 점령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도망갈 필요가 없다(미국은 현재 전세계 144국에 46만명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강자의 폭력과 탐욕을 정상화하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도 문제지만, 윤장호 하사를 추모한다는 일부 여론이 자신을 미국과 동일시하면서 미국의 시선에서 아프간 ‘테러 세력과의 전쟁’을 독려하는 것은 정말 우려스러운 일이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도 “미국의 치어걸”, “부시의 애완견”이라고 비웃음거리가 되는 판에 국제사회에서 한·미 동맹을 평등한 ‘동맹’으로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게다가 군수자본이 주물럭거리는 현대전에서 동맹(同盟), ‘하나의 맹세’라는 말 자체가 이미 난센스다. 연인 사이에서든 국제정치에서든 이해관계가 다른데, 어떻게 사랑의, 동맹의 맹세가 성립하겠는가. 한국이 스스로를 제국의 일부로 착각하는 이러한 부풀린 자아는, ‘국익’도 ‘평화수호’도 ‘안보’도 아닌 보기 민망한 식민성일 뿐이다. 우리의 자발적인 식민주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적으로 상상된 누군가를 살상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윤 하사는 이러한 우리를 대신한 희생자였다. (정희진 /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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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출처 : 씨네 21 [06.09.29]

자주국방 대 한미동맹?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 한국사회 내부의 성별, 계급, 지역 등 권력관계가 반영되게 마련이다. 성희롱은 ‘sexual harassment’의 번역인데, 여성의 시각에서는 오역에 가깝다. ‘harass’는 의도를 갖고 반복적으로 괴롭힌다는 뜻이지만, 장난과 비슷한 ‘희롱’으로 번역되면서 의미가 사소화되었다. 말 자체가 특정 계층의 이해를 대변한데다, 한국 실정과 안 맞는 경우도 많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대표적이다. 노사관계 선진국과 달리 한국처럼 사회안전망이 거의 없는 사회에서 유연성은 “사용자 맘대로 해고”를 미화할 우려가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노동시장이 ‘경직’된 것이 나은데, 경직성은 유연성보다 어감이 나빠 부정적인 이미지를 준다(97년 대선 때 이인제 후보는 노동시장을 “딱딱하게” 하겠다고 공약한 적 있다).

부시 대통령은 2000년 당선되자마자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을 추진했다.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이다. 유연성의 핵심은 자유롭고 빠른 이동이다. 미군을 특정한 국가에 붙박이로 주둔시키지 않고, 언제든 출동 태세를 갖춰 세계 곳곳에 신속하게 파견해 전쟁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일(駐日)미군은 극동 지역을 넘어 중동까지 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주한미군은 더이상 북한 대비용이 아니라 중국과 대만 갈등에 개입하는 등 동북아시아를 분쟁지역화하는 데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부시 행정부의 관점에서 유연한 것이지, ‘침략을 받는’ 지역 입장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파괴가 그만큼 신속하게, ‘저항없이 유연하게’ 진행된다는 뜻이다. 폭력과 살인을 목적으로 하는 군대라면, 늦게 도착할수록 아니,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게 바람직한 것 아닌가?

전시 군 작전권 환수를 자주국방이냐 한미동맹이냐로 논하는 것은 현실 왜곡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자주국방’도 ‘한미동맹’도 아니기 때문이다. “작전권 환수=한미동맹 약화=안보 공백”이라고 아우성치는 보수 세력의 무지와 시대착오는 비판하기에도 기운 빠지는 일이다. 이들을 보면, 이승만 정권 당시 주한미군 주둔 이유가 북의 남침만이 아니라, 이승만의 북침 계획을 억제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현재 남한의 국방비는 북한의 9배가 넘어 북한의 GNP에 근접할 지경이다. 방위비 외에도 남한은 북한보다 국민소득 33배, 무역 규모 155배이다. 1994∼98년 무기 수입은 남한 세계 4위, 북한 70위 밖이었다. 지난 10년간 남한의 무기수입비는 북한의 37배였다.

평화네트워크,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등 많은 전문가 집단이 지적했듯이, 군 작전권 이양은 군사주권 문제라기보다는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미국의 필요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사회주의권 붕괴로 인한 탈냉전의 도래는 자본주의의 승리가 아니다. 원래 미국의 안보 세력과 군수 자본가에게 미소 대립이라는 냉전 체제의 목적은 승리나 패배가 아니었다. 사회주의라는 가상/‘실제’의 위협을 강조하여 전세계에 군사적 긴장을 창출하고 억압적인 안보 질서를 구축하는 것, 그래서 세계 경찰로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다시 말해, 전쟁 국가의 목표는 승리(전쟁의 끝)가 아니라 전쟁의 공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소련이라는 공식적인 ‘적’이 사라진 뒤, 미국은 북한과 이라크 같은 새로운 적을 지목했다. ‘적’이 없다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팍스 아메리카나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러와의 전쟁은 적이 존재해서가 아니라 미국이 ‘하고 싶어서’ 하는 임의적인 전쟁이다. 미국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영구 전쟁(permanent war)이다. 미국이 영구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한국 같은 ‘동맹국’의 협조, 즉, 비용 분담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 비용이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헤게모니 확보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한국이 제시한 2012년보다 빠른 2009년경에 작전권을 이양하겠다는 등 적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 작전권을 “빨리 가져가라”고 요구하는 마당에 뭐가 ‘자주국방’이란 말인가?

작전권 환수가 국방비 증가로 이어진다면, 이는 한국이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계획대로 “주변국(북한)을 위협하는” 지역 동맹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자주국방은 주권국가의 꽃”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군대를 통한 국민국가 완성 의지가 아니길 바란다. 부국강병 욕망은 (‘자주’를 위해 극복해야 하는) 미국 모방일 뿐이다. 지금 한반도 정세에서 전쟁 위협에 시달리는 국가는, 남한이 아니라 미국의 선제공격을 두려워하는 북한이다. 지난해 참여정부가 주장한 대로, 한국이 미국과 동등한 ‘동북아 균형자’가 되는 길은 군사비 증강이 아니라 외교력과 민주화, 문화 역량 같은 소프트 파워를 통해서 가능하다. 더이상의 강병은 침략 행위다. (정희진 /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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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홍성흡 옮김, 이학사, 2005)를 보고 있다.. 첫 장은 나름대로 흥미진진 했는데... 4장 쯤 가니까 갑자기 흥미가 조금은, 아주 조금 뚝, 했지만 일단 끝까지 봐야지 싶다는. (사실 흥미만 뚝, 하면 괜찮은데, '이게 뭥미?' 싶은 구절들도 눈에 띄어서... 그치만, 60년대에 쓴 글이니 pass, pass!)

재밌는 얘기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냥 짧은 '의문'이 든 것 중에 하나만.

[...] 강제 혹은 폭력으로서의 정치권력은 사회 내부에 혁신, 변화 그리고 역사성의 동인을 갖추고 있는 역사적인 사회들의 표지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비강제적 정치권력을 지닌 사회는 역사 없는 사회이고 강제적 정치권력을 지닌 사회는 역사적인 사회라는 새로운 기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배열할 수 있다. 이러한 배열은 역사 없는 사회들을 권력 없는 사회로 취급하는 권력에 대한 현재의 사고와는 매우 다르다. [...] (p. 32) [강조는 원문.]


뭐, 일단 여기에 쓰인 '역사적'이라는 개념(여기서 말하는 '역사'란 무엇인지?)과 '비/강제적'이라는 개념, 그리고 '정치''권력'이라는 개념에 대한 보다 명료한 정의(definition)이 필요하겠지만. 내가 혼동이 되어서 말야.

어쨌든, 만약 여기서 쓰인 '강제적 정치권력'이라는 말을, '(군)주권 권력(sovereign power)'정도로 이해해도 좋다면, 결국 클라스트르가 '역사'와 '(군)주권'의 깊은ㅡ어쩌면, 필연적이자 불가분의ㅡ유대 관계를 시사하고 있다고 읽힌다. 그렇다면 '역사'란, 결국 주권의, 주권에 의한, 주권에 대한 담론일 뿐이란 이야기일까? 다시 말해, 주권 권력을 (새로이) 쓰면서 그 근원과 정초foundation를 (탐색 및) 창조해 내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주권 권력의 정통성legitimacy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정당화하는, 그저 그렇게 이러쿵저러쿵한 담론이란 이야기? 

과연 '역사'라는 담론은, 이러한 의미에 한정될 수밖에 없는 걸까? 그렇다면 정말 "비강제적"인 사회는 역사를 쓰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비강제적 정치권력"을 가졌다고 말해질 수 있는 사회란 도대체 어떤 사회인가?) 여기서 푸코를 좀 불러오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지만(사실은 어느 정도 불러온 것 같지만), 깊은 관계가 없는 것 같으므로 일단 접어두자.

그런데 "역사 없는 사회"와 "역사적인 사회"라는 말은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반대되는 의미로 사용한 걸까? 그러니까, "역사적인"이란 말은 정확히 "역사 있는"이라는 의미인건지? (그럴 경우 '있는'이라는 말도 상당히 문제적이겠군) "역사적인"이라는 것은ㅡ어떤 집단, 혹은 어떤 형태의 권력에 의해서ㅡ문자로 꼼꼼하게 기록되고 영구토록 보존될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것에 붙이는 말인지? 혹은 어떤 형태든지 기록이 남을 경우에ㅡ우연이든 혹은 특정한 노력의 산물이든ㅡ붙이는 말인지? 아니면 도대체 어떤 의미로??? (암튼 의문 가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라니까; 그냥 읽자면 그냥 읽겠지만, 궁금해지잖아..)

지저분한 의문, 하나만 더. "역사적인"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든지 상관없이 여기서 과학적 사실 진술을 하듯 말하고 있는 "강제 혹은 폭력으로서의 정치권력은 사회 내부에 혁신, 변화 그리고 역사성의 동인을 갖추고 있는 역사적인 사회들의 표지"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혁신', '변화', '동인'이라는 말들이 어우러지면서 너무나 진보주의적(개량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냄새가 나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도 하고.. "강제 혹은 폭력으로서의 정치권력"과 "역사적인"ㅡ어쩌면 인터넷을 하고 있는 우리는 '역사적인' 사회에 이미 살고 있는 셈 아닐까?ㅡ을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부분에서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주권 권력을 구성하는 '정초적 폭력'이니, '성스러운 테러'니 하는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한 말들은 종종 들을 수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 (정치) 권력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 얼마나 괜찮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설득력 있게 느껴질 때도 많지만, 이런 경향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아서 영 찜찜하기만 해서 말야.

물론 현재까지 '생존'해 있고 또 널리 기록되고 보존되어온 '역사'를 가진 수많은 (정치)권력체들의 정치/사회 구조와 현재엔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볼수도 없고 기록도 보존도 되지 못한 '역사'를 가진 역시 수많은 (정치)권력체들의 정치/사회 구조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근본적인 단절, 차이, 균열이 분명히 있겠지. 근데 그러한 단절이나 차이점들을 설명할 때, '폭력'과 '강제'라는 말을 넣어서 코딩하는 것에는 여전히 거부감을 느낀다. '폭력'과 '강제'라는 말의 뜻도 엄청 애매하거니와, 그 말들이 애매한 채로(사실은 애매하니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특권화 되고, 재생산되고, 특정한 정치 권력의 모델을 옹호하는 것만 같아서 말야.


결론 : ... 아 모르겠다. -_- (무책임한 주인장은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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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ㅡ다들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는 의미에서ㅡ인 폴 윌ㄹ스의 <학교와 ㄱ급 재ㅅ산>을 보다가 문득 이 책의 분석(자체라기 보다는 방법 및 방법적 주의)을 '학생 운동'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는 학생 운동 집단이 늘어나고 있기에(아 진짜... ㅠㅠ),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이 책에서 분석한 바ㅡ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ㅡ영국 노동자 계급 아이들의 ("해머 타운"이라는 특수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편재성을 갖고 있다. 이는 데리다가 말했던 바, "다른 이름을 위한 한 이름"이라는, 일종의 '환유'로서 읽어야 한다.) 소위 "반학교문화"는, 학교 외부의 권력 관계 그리고 계급 관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만 그 자체의 규범, 논리, 작동 기제를 갖고 있는 소문화다. 그런데 "반학교문화"는 절대 수동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는 것이다. 내부와 외부를 가르고, 외부와 관계를 맺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고유한 내적인 일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총화 그 이상의 것이다. 구성원 개인의 내적인 독특한(실제로 독특한 특성이란게 있다면) 속성과는 별로 큰 관련이 없는, 말 그대로 '문화'(구성원 간에 공유된 지식, 내지는 감정 등의 체계)다ㅡ따라서 이 "반학교문화"는 문화가 작동하는 그 자체의 맥락에 들어가 있을 때에만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인터뷰 등의 방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학교의 '공식 문화'와 갈등 관계를 맺으면서, "반학교문화"는 '비공식 문화'로서 자리잡으며, 학교에, 아이에, 교사들에게, 지역 커뮤니티에 뿌리 내린다.

또한 "반학교문화"는 자본주의의 매커니즘에 대한(그리고 학교 제도에 대한) 일련의 직관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ㅇ리스는 이를 "간파penetration"이라 개념화한다. 물론 그것이 체계화된 지식이 되어 외부로 개념화 해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훌륭한 분석이다. 그 간파는 문화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 "간파"만으로 노동자 계급이 훌륭한 프롤레타리아트가 되어 사회주의의 선봉이 되거나 혁명적/정치적 주체가 되지는 않는다. 일련의 문화적/정치경제학적 제한, 윌ㄹ스의 개념으로는 "제약limitation"으로 인해 "간파"는 왜곡되고 교란당하고 흔들린다. 이는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잠재적 가능성은 곧 실패하고 "공식 (지배) 문화"의 하부 구조로 편입된다...

이렇게 요약을 해놓으니 변변찮아 보이기도 하는데, 책을 막상 한 번 정독하면 그 이상의 통찰을 주는 구절들이 있다(그러니 한 번 쯤 읽어도 손해볼 책은 아니라는 이야기^^). 특히 지젝과 푸코의 인상 깊은 통찰 내지는 분석과 연관되는 부분이 읽히기도 하는데, 이쯤 되면 무척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문화기술지/민족지ethnography'라는 형식인데도 불구하고(사실은 현실감 없게 느껴지고 미덥지 않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이 책에 수록된 부분은 상당히 현실감 있게 읽히기 때문에(라포rapport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케 한다)...


어쨌든, 소위 '학생 운동'과 윌리ㅅ가 "반학교문화"라고 보는 것 사이에는 일련의 공유하는 지반 내지는 매커니즘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싸나이lads'와 소위 '운동권'이 공유하는 문화적 매커니즘(집단 정체성의 획득 과정, 하위 문화로서의 문화적 생성 과정, 또한 (대)학교의 '비공식 문화'로 자리 잡는 위치성, 그리고 "간파" 등등등)이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학생 운동'이 (또 얘기하기도 민망하지만) 하향길에 접어 들다 못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전에 문화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번성'할 때 조차도 갖고 있던 내적인 가능성 내지는 한계 등을 거울에 비추어 보듯 살펴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도식적으로, 그리고 표면적으로 "반학교문화"에 대한 분석을 그대로 '학생 운동'에 때려 맞추고 들이미는 것은 명백한 오류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어떤 충동들을 느낀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안 될까. 하는 탄식도 좋고 이미 사라진/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서는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필요하다. 그러나 '왜'에 대한 보다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분석이,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식의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ㅇ리스의 책에서 그 분석의 기초가 될만한 것들의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또한 푸코가 말했듯, 정치권력에 대한 분석은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가장 낮은 곳에서 권력의 현상과 기술 및 과정이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이 과정들이 어떻게 자리를 이동 및 확장하며 스스로를 변형시키는지, 그리고 특히 어떻게 이 과정이 전체적 현상들에 의해 포위되고 병합되었는지 . . . 를 보여주어야 할 것",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p. 49)) 윌ㄹ스의 책은 어느 정도의 키key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기초해서, '학생 운동'에 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들 때마다 포스팅을 하도록 해봐야 겠다. 물론 그것은 윌리ㅅ가 말한 것과 상이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아무래도 (누구의 표현을 빌어쓰자면) '운동권 경계인'이라서 이런 충동/느낌을 갖는 건지도 모른다. 발을 뺐다 넣었다 할 수 있는, 그럼에도 말만 디따 많은. 요즘 들어서 나의 '무책임'함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ㅡ서점 '그날'과 관련된 일들도 그렇고... 아마 이렇게 포스팅 해놓고는 또 딴짓하고 팡팡 놀겠지?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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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제 아무리 하 수상하고, 그로테스크가 일상이 되고, 매일 경악을 하다 못해 왠만한 것에는 경악하지 않게 되어 버린 세상이고 요즘이라지만(우리는 강해지고(=둔감해지고) 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웹상의 풍경 하나.

링크 : http://agora.media.daum.net/event/idea2008/index.html


다음의 아고라에 뜬, 그리고 내가 신뢰하는 국내의 한 단체의 웹 사이트(ㅇㄴ네)에 배너 광고로 떴던, 바로 그 웹 페이지다. 웹 페이지의 일부를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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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상쩍은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단체를 보면, <서울특별시>, <행정안전부>, 그리고 생뚱맞게도(혹은 그럴싸하게도) <기아 현대 자동차 그룹>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세안들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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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눈물 난다 ;ㅁ;

터져나오는 사회적 '불만'을 그냥 잠재울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거리 시위를 허용하자니 윗 사람들의 눈총이 따가운 마당에 궁여지책으로 나온 프로젝트인지, 아니면 정말 생각하는 게 이 수준에 그치고 마는건지 알 수 없는 정말 수상스러운 프로젝트다. 안 그래도 듣기 싫고 귀 따가운 '불만'들이니, 차라리 노래로 승화시키라는 건감? '디자인도시'에 걸맞는 '예술도시' 프로젝트라도 하자는 건지 뭔지.

정말이지 '정치'란게 실종된 요즘이다. 요새 유행하는 '본연의 정치(proper politics)'와 관련된 개념들, 그러니까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것(le politique/the political)'개념이라든지, 바디우의 '진리/사건'개념이라든지, 발리바르의 '평등자유' 개념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끌고 오지는 않더라도(아직 끌고 올만큼 공부도 하지 않았고 그 개념들이 사실은 좀 미심쩍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건 정말 아닌데 싶은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저런 철학자들 중 한 사람 식으로 표현하자면, "본연의 정치가 실종되는" 현상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정치를 행정의 영역으로 끌고오는 것, 그럼으로써 치안을(<행정안전부>라는 이름은 얼마나 이를 잘 표현하고 있는지! 당신들, 천재야!) 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번 행정부의 빼어난 정치적 몸짓들. 너무나 빼어나서 무섭기만 한 그런 몸짓들...

그 밑에 "사회창안대회"라는 것도 클릭해서 대충 내용을 살펴 보아도 슬퍼지는 건 마찬가지다. 이어폰 잭을 통일 시켜 달라, 공공장소에 쓰레기통을 설치 해달라, 하는 것이 "사회창안(social invention)"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하에서 요구된다(물론 그러한 요구들도 정당하고 또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창안이라는 말은, 국어 사전에 보면 "어떤 방안, 물건 따위를 처음으로 생각하여 냄. 또는 그런 생각이나 방안"이라 되어 있다. 중요한 건 창안이 '처음으로' 하는 생각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회를 '창안한다'는 건, 이 사회를 근본적인 층위에서 부터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내는,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사회에서 살기 싫다!"라는 외침으로 수렴되는 혁명적인 히스테리에 의해 발생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창의적인 상상력을 동반해야 하는 거다. 따라서 이건 개념적으로 봤을 때 <행정안전부>가,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가 전유할 수 없는 말이다.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전유할 수 없는 말들을 전유할 수 있게 되려면, 모종의 상징적인ㅡ라클라우 식으로 표현하자면 헤게모니적ㅡ접합(articulation)이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엄청난(?!) 상징 투쟁과 갈등이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는 걸까. 국가 기구가 이런 '혁명적'인 어휘("사회창안")를 전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랑시에르가 지적했던 바, 정치에 대한 부인의 몸짓들 중 '초-정치(para-politics)'ㅡ정치를 행정의 논리로 번역하고, 모든 정치적 주체들의 요구들을 대의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합리적인) 경쟁으로 환원하고 마는 정치체제ㅡ의 (물론, 임시적일테지만)승리를 암시하는걸까? (게다가 이게 무려 '아고라'에 게시되어 있는 웹페이지다...)


덧) 혹시 "사회창안(social invention)"이라는 말이, "사회를 창안" 한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창안"이라는 걸까? 그렇다면 아, 뭐 말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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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예전에 학교 주변의 한 서점(ㄱㄴㅇㅇㅁ)에서 주최했던 서평 대회에 냈던 글; 당시에 나의 관심사는 전혀 이 분야도 아니었고 경제학 쪽에도 완전히 깜깜한 문맹이었던 주제에 굳이 이 책으로 서평을 쓰겠다고 발악했던 이유는, 단지 그냥 페미니즘 책으로 서평을 내고 싶어서였더랬다; 왠지 여성학 책으로 서평 쓰는 사람들이 별로 없겠다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상당히 이상한 욕망이었지만. 물론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오래된 말의 패러디이기도 한 '보이지 않는 가슴'이라는 말이 상당히 마음에 들기도 했었고.

어쨌거나 막상 써 놓고 나니 굉장히 부끄럽기도 하고(거의 모르는 내용을 아는 체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죄책감과 출처 없는 부끄러움. 이런, 글을 쓰려면 대타자부터 물리쳐야 할 것이거늘!), 이래저래 이름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기도 해서 실명을 쓰지 않고 제출했었다(그러나 실명이 공개되었다! ;ㅅ;). 어떻게 써야 서평다울까를 고민하면서 쓰다보니(당시엔 돈이 궁했거든요ㅠ) 나는 전혀 쓰고 싶지 않은 식상한 수사들을 자꾸만 동원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어느 순간 부터는 이 글은 내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사실은 '글'을 쓴 이래로는 가장 큰 '(금전적) 보상'을 받았던 글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까지도 '서자 취급' 했던 글. 지금도 여전히 '서자 취급'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냥 기록 삼아 올려둔다. 어쨌거나, 여전히 부끄러워요... *-_-* [방어기제 작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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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변방에서 중심으로
― 지방대에서 학생운동을 한다는 것 ―

양새슬
삼류대에서 학생운동에 기웃거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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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이 글에 접속하여 필자와 본격적으로 소통하기에 앞서 에피소드 하나 풀어 보겠다. 이 원고를 처음 청탁 받고는 서울대 <학회평론>에서 청탁 받았다고 주위에 자랑했다. 동료들은 '서울대'가 주는 '경이로운 무게' 만큼의 부러움과 질시를 보냈다. 그리고 이 유치한 자랑에 유치하게 대꾸했다. '지방대를 다니는 것은 맞지만 니가 학생운동을 하고 있긴 하느냐'고. 동료들의 말뜻은 필자가 열심히 운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글 쓸 자격이 없다는 얘기였지만, '너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그렇게 청탁 받을 만큼의 가치를 갖는 일일까?'라는 자괴감이 근저에 깔려 있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학생운동을 하긴 하나 하는 의문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했다. 즉 우리의 운동이 수준 낮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청탁자가 요구하는 글의 형식이 지역 학생운동의 현황을 담은 주간, 월간지의 '르포'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건 한겨레신문 지방면만 꼼꼼히 수합하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청탁자의 요구는 지방대의 운동 조건과 차별성에 대한 얘기를 써 달라는 것이었다. '지방대에서의 운동'의 외연은 '서울 아닌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운동이지만 그것은 지리상의 위치로 환원되지 않는, 운동에 있어서 상이한 질과 수위를 갖는 변방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그 지역의 특수한 조건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문제겠지만 먼저 변방 일반이 갖는 조건부터 검토해 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할 수 있는 얘기는 초두에서 꺼냈던 동료들과의 유치한 대화만큼이나 너절한 것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멋드러지게 써보려고 시높시스를 짜 봐도 토로와 배설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 이유는 필자의 능력 부족에도 기인하겠지만 이 글의 테마, 즉 '지방대에서 학생운동을 한다는 것'이란 테마 자체가 지방대생이 갖는 의식과 살아가는 삶을 자기 고백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테마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써 가면서 청탁한 이를 맘속으로 '이 따위 주제를 나한테 주다니, 나쁜 놈!'이라고 욕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공부 못해서 지방대 다니는 것도 서러운데 그걸 얼굴도 모르는 독자 앞에 드러내 놓으라는 요구가 괘씸했던 것이다. 그래서 글은 거의 열 받았던 기억을 반추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지금이라도 이 글이 무가치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독자들은 즉각 다음 글로 뛰어넘길 바란다.


go margin 

아무도 우리의 입학을 축하하지 않았다. 그것은 부모님의 기대와 성적, 가정형편 등과의 불만족스러운 타협에 불과했다. 엄청난 양의 입학금과 등록금을 내고서 들어온 학교는 기대에 비해 형편없었지만, 재수, 삼수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그나마 다행스러워 했을 뿐이었다. 지방대가 한국 자본의 교육-노동시장에서 하위 관리자를 생산하는 부위라는 사실을 우린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후진 학교일 뿐이야', '열심히 살면 뭔가 되겠지'라고 위안하면서 계층상승의 욕망을 요체로 하는 향학열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대학은 이미 수직서열화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대학의 서열은 큰 이변이 없는 한 평생에 걸쳐 내 삶에 확대재생산되어 투영될 것이었다. 이 사실이 너무 끔찍스러워 재수를 하거나 편입학을 감행해 보지만, 이는 결국 계층상승 욕망을 더욱 깊숙이 내면화시키고 자본의 질서가 갖는 힘을 절대화시키는 데로 귀착된다.

그러다가 우리 삶에 큰 이변이 생겼다. 재수 없게 학생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 큰 이변은 서열에도 영향을 끼친다. 미국 CIA의 분류에 따르면 한국의 제6계층인 직업적 운동권 계층으로 추락할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누가 뭐래도 한국 학생운동은 직업적 운동가를 양산하는 주요 시스템이다. 80년대 그 치열했던 운동의 역사 속에서 배출된 무수한 학생운동가들이 생을 바쳐 지금의 대중운동을 일구어냈다. 그런데 이 대중운동의 시대에도 '공부도 못하는 게 데모질이야!'라는 말로 대변되는 의식이 우리 내면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지방대 학생운동가들에게 열등감을 갖게 만드는 첫 번째 계기는 운동 바깥에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대학의 서열이다. 운동의 깊이가 더해갈수록 열등감의 계기와 더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지방대 학생운동가는 학생운동사를 읽으며 비애를 느낀다. 70년대와 80년대의 학생운동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서울대운동사였고 90년대 운동은 전대협-한총련 운동의 역사였다. 무림-학림 논쟁이, MT-MC 논쟁이 과연 지방의 대학들에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겠다. 아니 영향받을 학생운동의 주체가 존재했는지도 모르겠다. 학생운동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던 87년 이후라고 하더라도 전대협-한총련을 주도하는 학교는 서울의 학교들과 지방의 메이저 캠퍼스들이었다. 마치 구한말에 족보 산 집안이 그렇듯이 자기 학교의 학생운동사를 공부해 보려고 해도 어느 시기 이전으로는 올라가지 않는다. 전국적 흐름에서 영향을 받아 발생했을 뿐, 자기 운동의 역사가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있었다손 치더라도 전국적 흐름을 선도한 적은 없었다.

이렇게 심화되는 열등감은 캠퍼스 바깥으로 나가 지역 연대질서를 일구어가는 과정에서 또 한 번 결정타를 맞는다. 필자의 지역 연대운동체 회의에서 우리 지역 메이저 캠퍼스는 지역 학생운동에 소극적으로 임하면서도 헤게모니를 잃을 것 같으면 매우 분파적인 발언을 해가면서 '메이저 캠에 걸맞게 대우해줄 것을 은근히 그러나 강력하게' 주장하곤 한다. 그렇다고 그 학교 대오가 수가 많다거나 주도적으로 일을 펼쳐왔는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함께 집회를 치러 내고선 갑자기 분담금을 못내겠다는 등 땡깡을 피우기도 하고, 연대운동체의 일정에 함께 할 수 없다면서 공연히 어깃장을 놓는 등의 힘빼기 전술을 구사하며 은근히 자기 캠퍼스의 서열을 확인하곤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방대 집단 안에까지 존재하는 운동의 서열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운동은 그 모든 억압적 질서로부터의 해방되는 과정이다'라는 진술을 의심케 만든다. 필자에게 쌓이는 스트레스의 정체는 기실 운동 가운데에조차 일, 이, 삼류대가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도 캠퍼스로 돌아오면 우린 여전히 캠 운동을 담당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진 활동가이고, 후배들에게는 절대적 존경을 받는 선배이기에 죽으나 사나 당면한 사안에 대처하기 위해 골머리 싸안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역과 캠운동이 갖는 협소함과 일천함은 또 한 번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수공업적이고 부실한 학습풍토를 개선해 보려고 연세대에서 제기됐던 제2대학 자료를 뒤적여보기도 하고, 고려대 생활도서관 회보를 펴보기도 하지만 입맛만 다시다가 덮곤 한다. 그런 사업을 꾸릴 주체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이용도가 낮을 것이 뻔하기에 '냉면 개시' 깃발을 내걸고 싶은 맘은 굴뚝 같지만 채산성 때문에 접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답답함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단대신문들도 발행되고 교지도 여러 개인 학교나 총학생회 기관지가 우리 학교 교지보다 더 화려하게 나오는 학교를 볼 때, 또 한 학교 학생들이 돈 받고 파는 책을 만드는 『학회평론』을 볼 때도 '없는 자궁'과 '없는 아가미'가 답답한 것이다.

이렇게 답답한 지방대 학생운동 출신들은 또 어떻게 살아갈까? 가끔씩 찾아오는 선배들을 만나면 지방대 출신이 살아가는 모습과 운동권 출신이 살아가는 모습이 심하게 비틀린 채 결합된 군상들을 보게 된다. 운동권의 덕목에 전문성이란 것이 추가된 지 오래되었지만 우리 캠에서 자질과 적성, 전공을 살리는 선배를 본 적은 없다. 한국 사회에서 30세가 넘기 전에 자리잡기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자기의 운동적 전망을 사회에 나가서 선명하게 주도적으로 풀어내는 서울대 출신을 볼 때 왠지 그 이면에 우리 캠 선배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가끔 운동을 하다가 변절했다는 서울대 사람 얘기를 들을 때면, '서울대 놈들이 다 그렇지'라고 예민하게 반응하며 냉소적인 말들을 뱉어 버리곤 한다. 사실, 변절의 기회조차 지방대생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난 직업적 운동이나 삶의 현장에서의 운동을 포기하고 이름도 없는 작은 회사에 취직해 소시민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우리 선배들이 과연 변절했는가 의문을 품곤 한다. 적어도 변절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운동의 포기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출세를 의미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야 '변절'이라는 주홍글씨가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특별히 비운동권에 대하여

'특별히' 비운동권에 대해 발언하고 싶은 이유는 97년 학생회선거를 통해 전국적으로 30여 개 대학에서 비운동권 후보가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의 엄청난 약진 앞에서 경악하기보다는 '96년 연세대사태로 인한 학우들의 일시적 이반'이라고 위안하고 싶어할 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다만 96년 학생운동탄압(특히 NL에 대한)이 전면화되었던 정세 속에서 비운동권 집단이 효율적으로 정세대응을 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들이 운동세력에 비해 조직력이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무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지방대에서의 비운동권 집단의 양태를 보면, 이들 집단이 8∼90년대를 지나면서 끈질기게 살아 남아 성장한 유일한 세력임을 입증한다. 따라서 97년 한 해만의 현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더구나 학생운동세력과 학생대중의 적대적 관계가 조장되고 안착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 비운동권은 기존 운동세력에게 혁신에의 과제를 더 이상 방기할 수 없음을 '실천적으로 보증'하고 있는 것이다.

97년 4월, 광주 전남대에서 열린 한총련 대의원대회에서 호남대학교 교지편집위는 총학생회가 앞장서서 교지편집위를 탄압한 사실을 폭로했다. 한총련 대의원들은 그 대자보 앞에서 모두 공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학생회장이 교지편집위 편집장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하며 해산을 명령하는 일이 어디 있을 법한 일인가? 또 올해 어느 지방대에서는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앞장서서 대학노조 사무실에 쳐들어가 테러와 폭력을 행사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실상, 이러한 사건들은 지방대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주 드문 사례들은 아니다. 90년대를 지나면서 지방대에서 비운동권이 당선되는 경우가 점차 빈도를 더하더니 급기야 97년에는 한총련 탈퇴 선언이 줄을 이었다. 이런 학교에서 운동권 세력과 비운동권 집단간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지방대에서 비운동권이 광범위하게 당선될 수 있는 조건은 지방대 학생대중의 의식의 후진성에 있지 않다. 대학이 밀집되어 있는 서울이나 광역시와는 달리, 학우대중의 상당수가 그 지역 출신인 시, 군 지역 학교는 동문회를 중심으로 지역세가 발호될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된다. 한, 두 고등학교 출신 동문세력 또는 연합동문 형식으로 묶여 있는 이들은 비운동권을 넘어서 반(反)운동권으로서의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단대 및 자치기구, 총학생회에 후보를 조직적으로 출마시킨다. 이들은 거의 모든 과에 골고루 흩어져 있어 선거에서는 위력적인 힘을 발휘한다. 또한 나름의 재생산구조를 갖추고 끊임없이 '활동가'(!)들을 충원 받는다. 이들은 학생운동이 대중화되었던 87년 이후에는 학생운동세력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나, 학생운동과 학생들의 관계가 유리되는 것을 넘어서 적대적 관계로까지 악화되고 있는 현실의 틈을 비집고 자신들의 이념적 입장을 반운동권으로 선명하게 표방했다.

그러나 이들이 반운동권 깃발을 일관성 있게 내걸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백색 세력의 주동력은 학생회비와 졸업 이후의 진로 보장이다. 따라서 캠퍼스 내에서의 역관계에 따라서는 운동권 세력과 일정 지분의 양보를 전제로 한시적으로 연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보통은 독자적으로 또는 비운동권 집단들의 연합 형식으로 출마한다. 이들의 학생회 사업 작풍은 막대한 학생회비를 갖고서도 제대로 된 사업 하나 추진하지 않은 채 1년을 넘겨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며, 각종 비리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또 1년 사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합으로 학생회를 잡은 각 블럭간의 내부갈등으로 집행부가 분열되어 쪼개지기도 한다. 이들의 행태가 폭로되어 탄핵, 사퇴까지 이어지더라도 다시 학생회 선거에서 운동권/비운동권 구도로 쟁점을 형성하면서 학우들의 표를 긁어간다. 또 선거 운동은 1년 동안 축적된 학생회비를 갖고 과학생회장 등을 술판으로 몰아 가는 조직선거 전술을 구사한다. 이들 중 수뇌부는 졸업 이후 학교측에 의해 취직을 보장 받거나, 일부 종교집단이나 지역 관공서에서 '모셔가기도' 한다.

대부분의 지역세력은 또한 학교 밖의 조직폭력배와 연계하기도 한다. 강원도 지방이 타 지역보다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학생회 선거에 지역의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협박, 테러 등을 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가두시위 등의 계획이 있을 때에는 이들과 경찰이나 지역의 조직폭력배들과 함께 미리 입수한 가두시위 장소에 진을 치고 있어 시위 계획을 수포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비운동권 집단이 광범위하게 지방대 캠퍼스를 장악할 수 있는 이유는 대학 바깥에서뿐만 아니라 90년대 끝물의 대학현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금의 대학은 과연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까지 다닐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만큼 그 사회적 위상이 추락했고, 대학인의 '교육'은 고사하고 '관리'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대학은 개인을 훈련시켜 노동시장으로 배출하는 '양성소'에도 못미치는 '대기소'로서 밖에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은 오로지 개인의 몫으로 국한지어지고 그 책임 또한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진다. 파편화되고 원자화된 이들에게 그 어떤 울타리가 공통의 질서와 이념적 지향을 갖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학생회는 관성화된 사업 사이클과 폐쇄적 구조로 대중과 점점 유리되면서 결합 고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게다가 학생 대중을 투쟁의 주체로 세울 수 있는 테마도, 정책도 부재한 상태이다. 정치조직에서는 저항의 주체를 형성하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저항주체 형성의 프로젝트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제출된 생활도서관이나 제2대학, 반대학 같은 사업들은 이벤트화되면서 학생회의 반짝 사업, 공약으로 변질되었다.

대중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슬로건이 민망할 만큼 대중을 전취해내지 못하는 현 지방대 학생운동의 널럴한 정세대응력은 학생대중으로 하여금 학생운동을 공격의 제1대상으로 지목하는 비운동권 집단에게 표를 몰아주게 하는 요인이 된다. 어쩌면 지방대 학생대중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유일한 테마는 비운동권, 반운동권이라는 자기 선언일 지도 모른다. 더구나 96년 연세대사태처럼 정권의 물리적-이데올로기적 탄압이 가중된 시기에는 더욱더 수월하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학생운동의 대중적 외연의 상실과 지방 중소도시의 동문회 집단의 존재, 그것이 비운동권 이익집단이 독버섯처럼 피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go center

97년 한총련 대의원대회 의장선거에는 좌파에서 두 정파가 후보를 냈다. 그 논의 과정에서 한 후보자는 전국 총학생회장단 회의에서 한 지역의 좌파 학생운동을 무당파적이라고 폄하하는 발언을 하여 회의 분위기를 격렬하게 만들었다. 결국 휴회 끝에 후보자가 사과를 하고, 지역 수임자가 사과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회의는 속개되었다. 그렇지만 그 얘기를 들은 지역 활동가들은 모두 씁쓸해 하였다. 지역 활동가들이 씁쓸해 했던 이유는 '정파적 목마름'에 있었다.

원전 속의 당파성은 적대적 계급 가운데 편들기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후보자가 말했던 당파성은 정파적 실천을 갖느냐 안 갖느냐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한다. 보다 세밀하게는 정파운동의 부재 가운데 대중추수적이고 다만 현실에의 안티적 조응으로 일관하는 그 지역 학생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씁쓸해했던 그 지역 운동가들은 캠 운동에서 정파적 관점에 매우 목말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사실 지역 활동가들 상당수는 정파적 실천에 목말라 한다. 한 활동가는 주관적인 느낌이라고 전제하면서 서울의 운동이 그 지역의 운동보다 10년은 앞서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지역 수준으로만 상승되어도 지역의 분위기는 일신될 수 있을 거라고 덧붙이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활동가가 말하는 '수준' 역시도 거의 지역의 정파적 활동에 있어 10년 뒤쳐져 있다는 것일 뿐이다. 운동 수준의 이러한 단순비교는, 특히나 정파적 활동을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운동을 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매우 싱거운 결론이겠지만 지역 학생운동은 자기 캠퍼스 현실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 긍정성을 획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령 그 자기 긍정성이란 이런 거다. 서울의 정파운동은 자신이 갖고 있는 분파적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 상당수 개방했지만 그 정치조직 중앙이 보이고 있는 극심한 파벌싸움을 보면 그와는 일정한 간극을 유지하고 있는 지방대 풍토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건강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 상대적 건강성은 자기 대오를 유지해가는 기풍의 문제이다. 한국 학생운동을 학생회운동, 나아가 한총련운동으로 치환해서 사고하는 우파 운동도, 은연중에 학생운동을 정파운동으로 이해하고 있는 좌파운동의 시각도 문제다. 지리한 조직, 사상논쟁의 과정에서 깨져 나가고 있는 운동 대오의 문제를 일정 정도 방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학생운동의 대중적 외연을 어떤 관점을 갖고 어떤 조직과 저항의 방식으로 전취해낼 것인가이다. 대중의 표정을 읽어내야 한다는 상투적인 결론밖에 얘기 못하는 것은 필자의 한계겠지만, 그 대중의 표정을 연상하는데 있어 도움을 주고자 몇몇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자.

6,000명이 넘는 학우들이 참여한 학생총회를 성사시켜 내고 대학교육개혁투쟁에 힘있게 들어간 97년 4월의 인하대학교 사례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대학 사회에서 아직도 학생회라는 기구를 통한 대중적 결집이 가능하다는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학생회를 뛰어넘는 대중자치기구는 아직 없다. 하지만 인하대의 학생회들이 어떻게 대중을 그렇게 조직할 수 있었을까? 엉뚱하지만 굴업도 핵 폐기물처리장 문제로 인천지역 학생운동의 대중동원력과 결합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한다. 인천지역 학생운동은 서울 출신 학우들이 많은 관계로 지역의 사안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기 어려운 조건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업도 핵폐기물 처리장처럼 전국적 이슈가 되는 사안을 갖고 대중과 적절하게 결합했던 결과 캠 내 운동의 지반과 대중적 외연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각 캠퍼스의 현실에 천착하고 대중의 표정을 포착해야 한다는 것은 상투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여전히 거머쥐어야 하는 원칙인 것이다. 92년 경부고속전철의 경주통과안에 반대해 벌어진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대중적 투쟁, 96년 대구 승당마을 철거투쟁에의 지역 학생운동의 결합, 96년 합천 해인사 골프장 건설문제에서의 불교학생회의 투쟁 등도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한총련 주류가 캠별, 지역별로 총파업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96년 8월 연세대사태에서 입었던 타격을 딛고 실천동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또 한편, 96년 시화호 무단방류사건, 여천공단 환경오염 문제 등에 대한 학생운동 진영의 무감성은 안타까운 사례에 속할 것이다.

97년, 서울의 도심개발 계획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시작된 빈민주택가의 철거와 서울 재정비는 일단락 지어지고 이제 광범위한 개발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선진복지통일한국이라는 목표 하에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중심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의 문제는 대부분 빈민주택가 재개발, 철도, 원자력 발전소, 도시개발계획 등이 이슈로 떠오르는 것이다. 이러한 개발은 민중생존권을 철저히 유린하면서 모든 민중에게 환경 오염으로 인한 고통과 비용을 떠 안기게 된다. 또한 이것은 비단 해당 주민들만의 문제로 국한되지도 않는다.

지방대 학생운동은 이러한 이슈와의 광범위한 연대를 구축하는 가운데, 학생대중의 참여와 결집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그 가운데 반자본의 관점으로 각이한 사안들을 정세적으로 바라보고, 학생대중을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할 때 최대한으로 대중과의 접촉 지형이 확장될 것이다.


Log out  ; 모든 변방은 중심이다.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 스스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지방대 학생운동가들. 그들이 운동을 해나가면서 '단지 지방대를 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절망하고 체념해 버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필자 자신도 혹여나 그러하지 않는가 반문하면서 우리의 희망은 어디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현실의 문제로부터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임하는 것, 그것이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는 길이라는 결론을 조심스럽게 얘기하고 싶다. 아니 '모든 변방은 중심이다'라고 말해두고 싶다. 이러한 언급이 힘을 가진 언설이기 위하여 보다 각론화된 검토가 풍성하게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개별적인 문제에 대해 일반적인 풀이법만을 제시하는 건 힘빼기의 공식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 글에서 누락되어 있는 서울 소재 대학의 제2캠퍼스 문제가 그런 경우다. 학생들은 독립채산제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지만, 사립학교법이 걸림돌이 된다. 제2캠퍼스 간의 연계를 통해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지 않는 한 이들 학교의 문제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제2캠퍼스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방대가 안고 있는 제반 문제들과 싸워나가는 것, 그것만이 유일하게 이곳, 변방을 중심으로 가져갈 수 있는 길이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변방인가? 중심인가? 아니 이 우문을 폐기하자. 그저 당신이 서 있는 그곳을 중심으로 가져가야 한다고만 얘기해 두자. 'X'  또는 'bye' 를 치기 이전에 접속 종료 직후 당신이 해야 할 일을 구상하라.

"안녕히 가십시오. 접속이 종료되었습니다."


학 / 회 / 평 / 론 /

Posted by 비앙
한겨레의 문화 일반 코너에서 연재했던 "지젝 신드롬의 허와 실" 기획을 옮겨온다. 나는 당연하게도, 박정수씨 보다는 이현우씨와 이성민씨에 가까운 편. ^.^;



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89298.html

가장 어렵고 가장 대중적인 ‘철학계 괴물’

① 이유있는 열풍

철학에도 유행이 있다면, 오늘날 세계 철학계의 최신 유행은 슬라보예 지젝이다. 모든 첨단 유행이 그러하듯이 지젝 또한 시대의 상식을 파괴한다. 마르크스, 헤겔, 라캉을 접붙인 그는 독일 고전 철학에 바탕을 두고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뒤, 이를 디딤돌 삼아 다시 현대 철학의 새로운 사유를 개척하고 있다. 그는 ‘급진적인 정치 실천적 철학자’의 전형이기도 한데, 고국 슬로베니아에서 1990년 대통령 후보로 선거에 출마했다. 국내에서도 지젝 열풍은 심상찮다. 90년대 중반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됐는데, 2000년대 들어 그가 직접 쓴 책만 10권 이상 번역·출판됐다.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한겨레>는 이번주부터 이 ‘지젝 신드롬’의 속살을 파고들려 한다. 그의 사유에는 과연 새로운 영감으로 삼을 만한 자양분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난해함 빼고는 건질 게 없는 서구적 언어 유희에 불과한 것일까? 지젝의 저작을 국내에 번역·소개하고 관련 논의를 이끌었던 학자들이 그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 이현우 박사가 첫 번째 글을 썼다. 그는 지젝의 사유로부터 우리 시대의 이념 지형을 이해하고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레닌의 혁명 전략마저 넘어서는 전복의 기운이 지젝에게 있다는 것이다. 안수찬 기자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괴물입니다”라고 말하는 철학자가 있다. 자신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의 책을 경탄과 함께 읽어본 독자라면 ‘당신도 인간인가?’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세계 철학계의 이단아’라고도 하는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 슬라보예 지젝이다. 아예 그의 이론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잡지가 나올 정도로 지난 20년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엠티브이(MTV) 철학자’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을 정도로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 그리고 아마도 가장 많은 책을 써낸 철학자, 그가 지젝이다. 그래서 열광하는 독자들까지도 그의 책을 다 따라 읽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매년 두어 권씩 번역돼 나오는 ‘한국어 지젝’에만 한정하더라도 그렇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한 비판자의 표현을 빌리면, ‘지젝주의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젝은 흔히 ‘슬로베니아 라캉주의 헤겔주의자’라고 불리지만 거기에 마르크스와 대중문화가 이론적 틀로 더해진다. 어떤 저자를 읽기 위해서 독일 관념론과 라캉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와 현대 대중문화에 ‘정통’해야 한다면 보통은 다른 저자를 알아보는 게 낫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지젝은 매혹적이다. 그는 가장 난해한 두 사상가, 헤겔과 라캉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헤겔을 어떻게 라캉으로 읽을 수 있으며, 반대로 라캉은 어떻게 헤겔로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독해가 우리 시대의 이념적 지형과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매혹은 동시에 그에 대한 혐오를 낳기도 한다. 그의 담론이 세련된 라캉적 분석과 덜 해체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정신분열적으로 분열돼 있다는 비판은 그의 이런 작업방식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비판 옆에는 그의 철학 ‘퍼포먼스’가 고상한 철학을 대중문화로 더럽힌다는 비난도 빠지지 않는다. 독창성도 진정성도 없는 ‘철학적 재담꾼’ 정도에 불과하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세기적인 ‘재담꾼’을 갖는다는 게 과연 불행한 일인지? 가령, 급진적 철학자로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그가 제시하는 ‘유토피아’에 관한 재담은 어떠한가?

헤겔과 라캉 자유자재로 다루며
마르크스·대중문화 이론적 틀까지
매혹과 혐오의 시선 동시에 받는
21세기 세계철학계의 이단아


지구의 종말을 상상하기는 너무도 쉽지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점점 더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우리 시대의 패러독스라고 지적하면서, 지젝은 그럼에도 우리가 유토피아를 발명해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긴급한 요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그것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유토피아, 곧 ‘불가능한 이상적 사회’와는 무관하다. 유토피아는 어원 그대로 ‘자리가 없는’ 공간의 건설이다. 왜 자리가 없는가? 기존의 사회적 좌표계 내에서는 자리가 할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인 제스처의 사례로 지젝이 자주 드는 것은 1917년의 레닌이다.

레닌주의의 핵심은 자유주의적 ‘선택의 자유’ 대신에 선택 자체를 선택하는 데 있다. 곧 정치적 ‘활동’이 아닌 ‘행위’란 현 상황이 제시하는 강요된 선택 대신에 그러한 ‘정치적 계산’을 돌파하는 어떤 광기이다. 러시아 혁명을 가능하게 한 것은 불가능을 돌파한 레닌의 바로 그러한 ‘광기’였다. 하지만 레닌도 혁명 이후에는 대중의 창조적 역량에 대해 불신하면서 전문가 집단의 역할을 강조했고, 그것은 곧 스탈린주의로의 길을 예비하지 않았던가? 거대 은행이 없다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자본주의적 기구인 중앙은행을 더 크게, 더 민주적으로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젝은 이 지점에서 국가의 관리에 대한 레닌의 ‘전체주의적’ 프로그램을 우리 시대의 상황에 맞게 다시 읽기를 제안한다. 중앙은행의 자리에 오늘날 ‘일반 지성’의 상징인 월드와이드웹을 갖다놓아 보자는 것이다. 자본주의 신경제의 첨병처럼 보이는 월드와이드웹에는 동시에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폭발적인 잠재력이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 경우 레닌적 제스처는 국가기구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과 싸우는 대신에 그것을 사회화(국유화)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사회주의=전력화+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레닌의 공식은 ‘사회주의=인터넷 무료접속+소비에트 권력’으로 변형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두 번째 요소이며, 그것을 통해서만 인터넷은 해방적 잠재력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중앙은행 사회주의’에 대한 레닌의 전망을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의 월드와이드웹에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지젝의 ‘재담’이다.

시대 넘나드는 철학적 재담으로
오늘날 이념적 지형·돌파구 찾아
‘독창성·진정성 없다’ 비판 불구
열정과 광기에 아낌없는 지지를


물론 그의 재담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젝은 또한 ‘소유의 종말’이 예견되는 디지털시대의 ‘탈소유 사회’에 대한 첫 번째 모형을 바로 스탈린시대 소련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알다시피 원칙적으로는 아무런 서열관계도 없는 평등한 사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계급사회인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스탈린주의 사회는 계급이 없는, 무계급 사회였다. 하지만 동시에 ‘권력서열’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권층인 노멘클라투라와 기술관료, 군대 등의 순으로 정확하게 서열화된 사회였다. 거기서 지배계급은 소유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과 통제수단, 물질적·사회적 특권에 직접 접근이 가능한가라는 ‘접속 가능성’으로 결정되었다. 바로 오늘날 현 단계 자본주의에서도 특권이 직접적인 소유가 아니라 뒤에서 조정하고 교육과 경영·정보 등에서 각종 특혜를 누리는 것에서 확인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면하게 된 선택지는 사적 소유(사유재산)와 사적 소유의 사회화(국유화) 사이의 낡은 마르크스주의적 선택이 아니라 ‘위계적인 탈소유 사회’와 ‘평등한 탈소유 사회’ 사이의 선택이다. 여기서 선택은 물론 자명하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이다. 지젝은 다시 레닌적 제스처를 끌어온다. 그가 보기에 레닌주의의 핵심적 교훈은, 당이라는 조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정치는 ‘정치 없는 정치’, 말로만 하는 정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비판은 ‘혁명 없는 혁명’을 원하는 것과 다름없는 ‘신사회운동’에도 가해진다. 과연 폴리페서(정치교수)들처럼 체제에 편승하거나 페미니즘에서부터 생태주의와 반인종주의에 이르는 신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사회적 개입’의 방법이 따로 없는 것일까? 지젝이 보기에 이러한 운동의 한계는 보편성이 결여된 ‘단일 이슈 운동’이라는 데 있다. 곧 사회적 총체성과 연관돼 있지 않다는 것이며, 중도좌파와 좌파 자유주의에 대한 지젝의 비판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다. 백포도주냐 적포도주냐 하는 선택은 ‘근본적인’ 선택이 아니다.

지젝이 “레닌을 반복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반복이 뜻하는 것은 레닌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레닌을 반복하는 것은 레닌이 했던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패한 것, 그가 잃어버린 기회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들이 한갓 ‘혁명을 연기하는 배우’의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레닌을 전체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괴물’의 광기와 열정을 지지한다. 이현우/서울대 강사

[namunnib] 뭐 일단 다른 부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사회운동"이 "'혁명 없는 혁명'" 내지는 "사회적 총체성과 연관돼 있지 않"은 운동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페미니즘", "생태주의", "반인종주의"가 신사회운동의 대표적 주자인 것인양 명명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 모든 운동들에도 개별성을 넘어서 "사회적 총체성"을 고려하는, 혹은 '보편성'을 고려하는 움직임들이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신사회운동"이라 칭해질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속성'들은, 그 어떤 '-이즘'에도 내재할 수 있는 것 같다. 그것과 싸우고 그것과 구별하려는 움직임은 "페미니즘", "생태주의", "반인종주의"에서도 얼마든 찾아볼 수 있을 터. 또한 소위 '개별' 운동들이 총체성과 아무련 연관이 없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우리가 현실적으로 '같지' 않은데, 도대체 어떻게 '초월'하고 '총체성'을 고려하고 어떻게 '보편성'에 이를 것인가. 그렇게 하려는 건 누구의 욕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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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90673.html


현실 비판할 뿐 대안찾기엔 침묵

② 실천 없는 철학

이현우씨는 지난주 이 지면에서 “나는 이 ‘괴물’의 광기와 열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헤겔과 라캉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슬라보예 지젝이 여러 면에서 ‘괴물’ 같은 철학자라 해도 그의 사유가 “우리 시대의 이념적 지형을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두 번째 논자로 나선 박정수씨는 그 기여의 실체에 의문을 표시한다. “이데올로기적 현실의 비실재성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세계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를 바꾸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안하는 실천”이라고 말한다. 지젝의 ‘결여’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는 게 박정수씨의 생각이다. 다음주에는 이성민씨가 지젝에 대한 또다른 견해를 밝힌다. 안수찬 기자

“‘우리는 어떻게 이 일상의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가’라고 묻지 말고 차라리 ‘이 일상의 현실이 그토록 확고하게 실존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이 한 문장 속에 지젝의 비판 철학이 지닌 가치와 한계가 담겨 있다.

지젝은 헤겔주의자이며, 정치적으로 좌파이다. 헤겔 좌파로서 지젝은 물신주의적 믿음 위에 세워진 현실의 ‘근거 없음’을 폭로하는 데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지만 정작 어떻게 그 이데올로기적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 않는다. 모든 철학이 일상의 현실은 생각만큼 확고하게 실존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불교의 연기론은 만물이 서로 의존하여 발생하기에 고정된 실체는 없다고 가르치고, 플라톤은 현실이 이데아의 물질적 복사본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젝은 신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믿는 주체(인간)의 상상적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포이어바흐의 방법을 따른다. 객관적 실재처럼 보이는 것을 주체의 창안물로 되돌려놓는 것, 이것이 지젝의 사유방법이다.

신경증 환자의 실재인 ‘외상’도 마찬가지다. 외상이 신경증의 원인이 되는 것은 그것을 객관적 실재로 믿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은 무의식 속에서 객체화된 외상을 주체 자신의 창조물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객관성의 형식으로 환자를 괴롭히던 외상이 주체 자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환자는 치유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고백처럼 외상의 환상성을 깨달아도 신경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리비도의 체질을 바꾸거나 대안적인 인간관계를 찾지 못하는 한, 증상은 괴롭지만 살아갈 의미이기도 하다. 신이 인간의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도 교회가 사회적으로 유용하다면 신앙생활은 지속되고,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도 다른 민족과 더불어 살 의사와 능력이 없으면 민족주의는 지속된다. 화폐의 물신적 힘은 그것에 대한 믿음에서 생긴다는 걸 알아도 대안적인 교환 방법을 찾지 못하면 화폐 물신주의는 계속되며, 자본의 잉여가치가 노동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도 자본 권력을 대체할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를 구성할 욕망과 능력이 없으면 자본가에게 좀더 많은 지분을 요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래서 이데올로기적 현실의 비실재성을 비판하는 것으로는 세계를 바꿀 수 없다.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를 비판하면서 말했던 것처럼 세계를 바꾸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안하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 실천은 자유로운 연합체를 구성하는 욕망들과 그 욕망들을 결합하는 프로그램에 의해 가능하다. 신ㆍ민족ㆍ자본이라는 초월적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의 욕망이 구성하는 공통적(commune) 삶의 형식, 그것이 마르크스가 기획한 코뮨주의다. 그런 코뮨적 욕망은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삶을 위해 노예가 되는 사회를 당연하다거나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환상 숭배자들에게만 안 보일 뿐 우리의 삶 속에 실재적으로 잠재해 있다.

현실의 비실재성 폭로하면서
어떻게 벗어날까 언급 적어
인간은 서로에 대한 ‘타자’일 뿐
코뮨적 삶 불가능하다 주장도


지젝은 ‘인간’의 조건 속에서 이런 코뮨적 삶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에게 인간은 상징적 질서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상징적 질서는 인간을 자연(사물, 신체)과 분리시키고, 남자와 여자로 분리시키고, 낱낱이 떨어진 개별 인간들로 분리시킨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미지의 타자로 존재하는 상징적 질서 속에서 “인간의 욕망, 그것은 타자의 욕망이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적 시장경제야말로 인간의 욕망에 충실한 삶의 형식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에서 인간의 욕망은 자유롭다고 한다. 아무도 타자의 욕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타자의 욕망은 배려의 대상일 뿐 아니라 유일한 가치척도이다. 시장에서는 아무도 ‘참아라’거나 ‘즐겨라’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다만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라’고 할 뿐이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함으로써 우리는 자유롭고 평등한 가치척도를 갖게 된다고 한다. 이런 시장 민주주의적인 가치척도를 위해 딱 하나 금지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타자의 욕망을 배려하지도 않고, 타자의 욕망을 척도로 삼지도 않는 것이다. 그런 ‘이기적’인 욕망에 대해서는 마땅히 ‘다수’의 이름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의 욕망을 저주하는 것,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적 시장 경제가 대중을 일반적 노예로 만드는 방법이다.

물론 지젝은 ‘너무나 인간적인’ 이 시장경제를 반대하고 그것을 넘어선 세계 질서를 언급한다. 인간의 조건에서는 불가능한 이 기획은 인간 속에 있는 ‘괴물’을 승인하면서 시작된다. 홉스가 말한 ‘국가’라는 괴물. 지젝은 프로이트의 문명론에 내재한 홉스주의를 충실히 반복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 문명은 ‘법’과 ‘초자아’를 필연적으로 요청한다. 욕망을 억압하는 법과 억압을 욕망하는 초자아가 없으면 인간 무리는 욕망의 충족을 향한 만인의 전쟁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지젝 역시 상징적 질서 속에서 만인은 만인에 대해 미지의 타자이며, 평화로운 이웃들의 이면에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이 욕망의 시장 체제를 초극하는 유일한 방법은 보편적 주체 형식으로서의 국가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모든 작은 타자들을 하나의 총체적 집합으로 통합하는 예외적 큰타자, 곧 헤겔의 입헌군주와 모든 작은 괴물들의 욕망을 중화시키는 보편적 욕망의 괴물, 곧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결합한 글로벌한 국가체제(제국)를 수립하자는 것이다. (솔직히, 지젝의 기획이 정말 이걸까 의심했는데, 이현우씨의 독해에 따르면 그렇다.)

욕망의 자유민주주의 벗어난
헤겔·레닌 결합한 제국 기획
‘헤겔 좌파’인지 ‘우파’인지 모호
어떤 삶을 원하는지도 불투명


헤겔의 입헌군주가 정말 ‘텅 빈’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는 상징적 존재로만 남아 있을까? 프롤레타리아 국가기구의 관료집단들이 정말 ‘비계급’으로서의 보편계급을 대변할까? ‘지젝의’ 레닌주의에 따라붙을 이런 의문들은 사실 본질적인 게 아니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젝의 말처럼, 미래를 예견하는 실천은 가짜 행위다. 실천의 근거는 과거의 경험이나 미래의 예견에서 찾을 수 없다. 혁명의 실천은 전대미답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유일한 근거는 그로 인해 창조되는 세계가 좋은 세계라는 자기 확신뿐이다. 지젝은 정말 그걸 확신하고 있을까?

지젝은 ‘자유’를 원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 같다. 히스테리 환자처럼 타자의 규정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지만(그래서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라고 물어보게 만들지만) 그런 만큼 자유를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자유는 불가능한 몸짓이다!) 그래서 텅 빈 상징으로 존재하는 주인에 의존할 때만 자유롭다는 결론에 도달한 게 아닐까.

주인의 욕망을 저주하는 시장의 노예가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은 단 하나의 상징적 주인 밑에서 보편적 노예가 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릴 때 지젝은 더는 지배적 현실의 환상성을 비판하는 헤겔 좌파가 아니라, 유일한 지배자의 환상으로 수립된 현실을 추구하는 헤겔 우파의 자리에 선다. 그것도 좋다. 좌파든 우파든 중요한 건 자리가 아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삶을 창안하고 싶은가, 어떤 삶의 형식을 욕망하는가? 지젝의 흥미진진한 비판의 뒷맛으로 그가 욕망하는 삶을 느끼고 싶다. 무리인가?

박정수 / 수유+너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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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91981.html

혁명의 주체가 혁명의 대상이다

③ 지젝을 제대로 읽는 법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에 대한 마지막 글이다. 3주 전, 논쟁의 운을 뗀 이현우씨는 우리 시대의 이념적 지형을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며 지젝의 급진성에 주목했다. 박정수씨는 이러 주장을 반박하며 지젝의 사유에 새로운 세계를 창안하는 실천적 돌파구가 결여돼 있다고 했다. 이 논쟁의 마지막 글을 맡은 이성민씨는 박정수씨를 다시 반박한다. 지젝이 말하려는 것은 혁명 그 자체가 아니라 ‘혁명의 조건’이라고 지적한다. 그 조건의 핵심은 욕망하고 향유하는 각 개인, 곧 주체다. (제도로서의) 대안을 말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욕망을 향유하는 개인의 변화다. 그런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지젝이 던지는 급진적 사유의 중핵이라는 게 이성민씨의 생각이다. 안수찬 기자

오늘날, 미국식 세계 자본주의가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지구상에서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물론 오늘날 미국적 문명 자체의 궁극적인 위태로움이 조금씩 감지되고 있지만 말이다. 아마도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정도로 사람들은 또한 저 위태로움을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치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기라도 하는 듯 끊임없이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가 슬라보예 지젝이다. 그런데 그의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누구보다도 혁명이 오늘날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유럽문명의 미래와 관련하여, 혁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젝의 정치적 저술들을 읽을 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혁명에 대한 직접적인 요청으로 읽을 때 반드시 그를 잘못 읽게 된다. 박정수씨는 지젝의 정치적 기획이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결합한 글로벌한 국가체제(제국)를 수립하는 것에 있다고 하면서, 이현우씨의 글을 오독했을 뿐 아니라, 지젝 자신을 오독했다. 지젝은 그런 말을 한 적이 단적으로 없다. 게다가 이러한 오독을 염려하여, 지젝은 레닌의 반복이 레닌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님을 명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오히려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비롯한 레닌의 방식들을 따져보면서, 오늘날 혁명의 조건 그 자체를 탐색하고 있다.

이렇게 말해본다면, 지젝은 혁명 가능성의 조건을 탐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오늘날 혁명이 가능하다고 말하기에 앞서서 반드시 묻지 않으면 안 될 물음을 묻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생략될 수 있는 물음이 아니다. 그것은 혁명에서 혁명적 주체를 생략할 수 없는 만큼 생략할 수 없는 물음이다.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지젝은 전통적으로 정치적 혁명에 대해 가장 회의적이었던 사상을 끌어들인다. 그것은 바로 프로이트에 의해 개시된 정신분석이다. 프로이트는 볼셰비키 혁명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회의적이었다. 라캉이 서유럽의 68혁명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회의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정치·경제체제 변화보다
개인 향유 방식의 변화가 더 시급
“문명의 모든 것을 재발명하라”


지젝의 혁명에 대한 단적인 규정은 이렇다. “근본적 혁명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오래된 해방적인 꿈을 실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꿈꾸는 양태 그 자체를 재발명해야만 한다.” 정신분석적 통찰을 담고 있는 이 말은 무의식을 건드리지 않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혁명은 단지 국가를 전복하는 행위에 불과하지 않다. 그런 일이라면 사실, 서유럽인들은 몰라도 한국인들은 이미 여러 번 해본 경험이 있다. 정신분석이 혁명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는 주체 편에서의 변화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술에 의지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 유명한 남자들이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지젝이 이와 같은 정신분석적 통찰을 자신의 정치적 사유에 끌어들이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혁명을 하지 말자고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혁명에 대한 더욱 근본적인 규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혁명에 대한 이와 같은 규정은 생각해보면 결코 새로운 규정이 아니다. 그것은 예컨대 새로운 학문적 발견이 아니다. 그것은 실상 우리가 심중에서 잘 알고 있는 진리이다.
하지만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어떤 것이다. 오늘날 진보적인 정치학자들이나 활동가들은 지금도 새로운 변혁의 전략을 짜느라고 분주할지 모른다. 혹시 그들이 진보를 믿고 있다면 말이다. 오늘날의 상황이 좌파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명박씨의 눈물 나는 참회가 잘 알려주듯이, 우파에게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의 자부심인 민주주의는 바로 이만큼 정치가들에게 공평한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해서 조금 더 말해보자. 한때 지젝은 민주주의를 최선책은 아니지만 차선이라고 하면서 옹호했다. 서유럽 학자들이 근본적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을 때, 그도 이러한 희망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취소했으며, 민주주의는 궁극적 대안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궁극적 대안이 무엇인지 자기 나름의 의견은 전혀 밝히지 않으면서 말이다. 언뜻 위선적으로 보이는 그의 제스처에서 진리를, 이 시대의 증상을 읽어보자.

혁명에 대한 직접적인 요청 아닌
혁명 가능성의 조건 탐색할 뿐
지젝의 ‘정치적 기획’ 주장은 오독


이 시대는, 이렇게 말해본다면, 문명사적 문제를 우리에게 서서히 내밀고 있다. 이는 단지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문제라거나 어떤 전지구적 문제가 있다는 모호하거나 동원력이 없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류가 스스로의 소비와 향유방식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재고해야 하는 때가 도래하고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오늘날 인류가 처한 환경적 재앙의 문제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본연의 환경 운동은 오늘날, 정치적 장을 벗어나 광범위한 소비 운동과 병행되고 있다.

이러한 문명사적인 문제는 단지 정치적 제도나 경제적 제도 내에서만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이나 예술이나 교육이나 연애 등을 비롯해서 인간의 문명적 활동 전 영역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지젝은 향유를 정치적 요소로서 보아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향유와 향유의 방식 그 자체가 문제라는 핵심적 요점을 담고 있기에 올바른 방향에 서있는 말이다.

아마도 미국인들이 북한에서 발견하고 싶은 첫 번째는 코카콜라나 맥도널드 광고판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의 향유 방식이 이슬람권이든 북한이든 가리지 않고 전세계에 유통되기를 원할 것이다. 아시아인들이나 유럽인들은 그 방식이 얼마나 저급한 것인지를 알 정도의 문명적 존엄감을 아직은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라캉의 가르침에 따라서, 향유를 정치의 핵심적 요인으로 제출하는 지젝의 제스처를 우리가 함께 떠맡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동시에 우리는 민주주의나 여타의 대안적 정치 체계에 대한 논의보다 훨씬 중차대한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감각을 획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안적인 구체적 정치 체계에 대한 지젝의 집요한 침묵에서 내가 읽고 싶은 진리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문명을 구성하는 일체의 것을 재발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다면, 오늘날 각자가 스스로 선택한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은 실로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지젝의 통찰을 빌려, 욕망을 상실한 오늘날의 우울한 주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이성민/도서출판 b 기획위원

Posted by 비앙

"시민고객"

생각 2008/06/04 12:06

어제 이런 저런 일로 지하철을 오고 가면서 근래 본 것 중에 가장 그로테스크한 글귀를 보았다. <2010년 세계 디자인수도 서울>이라고 최근 서울시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게 있는데, 거기 앞에 붙어 있는 글귀였다
 
"시민고객과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시민고객... 시민고객... 시민고객... 시민고객...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최근 오픈한 상담 콜센터 <다산120>인지 뭔지 앞에도 역시 시민'고객'이라는 말이 붙어있다. -_-;

신자유주의의 승리와 자본주의적 마인드의 '자연화'와 '일상화'가, 학계는 물론이거니와 일상의 전 영역에 뻗쳐나가고 있다는 점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나, 이렇게 공공 기관에서도 이런 식의 사고틀을 가져다 쓸 줄은 전혀 예측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

만약 오늘날의 '시민'이, 민주주의적 주체로서 권리를 가진 시민 내지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진 시민이 아니라, 정말 '시민고객'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이제 '시민고객'으로서의 권리란 전통적인 정치 담론이 늘 가정해 왔던 추상적인 담론, 즉 인권 등의 자연법적 원리에 의해서 구성될 틈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다만 그것은 아주 '명시적'인 '계약'에 의해서('사회계약론'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권리와 의무가 구성되고 실천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명시적인 계약은 아주 뚜렷하게 남아 있다. 추상적인 '법'이라기 보다는 현실에 아주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존재하는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법'은 추상과 공백의 위치에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언제나 서로 다른 가치와 입장들의 헤게모니 투쟁에 의해 결정되고 생산되고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곁에 있지만 한편으로 저 너머에 있는 것이다. 또한 누구에게 영속적으로 소속된 것이 아니다. 즉, '법'은 '정치'의 영역이다. 하지만 '법률'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는 것이고, 우리들이 이미 지키기로 계약을 맺었음을 전제한다. '법률'은 오직 적용과 집행의 영역일 뿐이다. 즉, '법률'은 '행정'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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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흐름의 하나는 바로 한국 사회가 미국적인, 너무나도 미국적인 '소송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모든 사회적 갈등은 <법원>을 통해서 '해결'된다. 또한 한국 사회의 심각한 정치적 갈등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주체는 (마치 중세의 최고위 종교 재판소와 흡사한) <헌법재판소>가 되었다. 예전의 탄핵정국과 이번의 쇠고기 정국도 그런 흐름이고.

이제 사람들은 '소송'을 통해 옮음과 그름을 판단하는 정치와 윤리의 문제를 '법률'에 위탁하게 된다. 아주 일상적인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서로가 합의와 토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들의 '계약'에 따라, '합리적'으로, '법률'의 말씀에 의거하여 또한 '판사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판단'하는'게 아니라) 판단 '되'어야 하고, 그것을 충실히 따라야만 하게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시민고객'이라는 말이 가능하게 되는 것 같다. 이 국가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아 그것에 항의할 수밖에 없을때, '시민고객'들은 거리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행정소송을 통해 그것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만약 '법률'에 '구제책'이 없다면? 그냥 무력하게 계약을 지키며 '고객'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 '법률'을 강행돌파 하려는 순간 계약 위반이 되고, '불법'이 되며, '준법정신'이라는 이름으로 전경의 검은 몽둥이와 방패가 내리 꽂힐 테니 말이다. 그 대신 '시민고객'들은 <소비자보호원>같은 기관에 하소연하고 자비와 관심을 베풀어 줄 것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꼭 <인권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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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고객'들의 세상은 얼마나 비참하고 처연한가. '68혁명 정신'이, 68 이후 '자본주의 정신'의 핵심이 되었다는 분석은 역시 유효하다. 마찬가지로 '86년 정신'이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 정신의 핵심이 되었다는 분석도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역시 유효하다. 탈중심과 탈권위 정신은 기존 자본주의의 맹점을 완벽히 메이크-업 해주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현재 '소송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도 필요한 것 같다.

여전히 전문가적 권위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 여전히 우리는 전문가의 시대에 살고 있다. 법률전문가, 경제전문가, 의학전문가 등등의 이름으로. 하지만 그 전문가들은 기존의 '권위'를 갖지는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상품을 제공하는 충실한 '상인'들이 되었고, 우리는 그들의 충실한 '고객'이 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과 우리들 모두는 서로에게 친절하고 호의적인 얼굴을 하고 있을 수는 있다. 늘 미소짓고 서로를 대한다. 계약을 위반하지 않는한, 우리는 서로 얼굴 붉힐일도 없다. 복잡하지도 않다. 그냥 돈을 지불한다음 모든 권리를 위임해서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비참함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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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촛불 집회가 한창이다. 그런데 집회를 자꾸 나가면서, 과연 이것이 '시민'들의 '정치적'인 집회인지, 아니면 '시민고객(내지는 소비자)'들이 '뿔'나서 뛰쳐나온 것에 불과한지 확신을 세우기 어렵게 되었다. 처음에는 분명 정치적 집회라고 생각했건만, 사람들이 주고 받는 말을 들으면서 과연 내가 처음에 생각한게 맞기는 한건지 의심하게 되었다...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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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울시가 '시민고객'을 내세운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지방 도시들이 자기 지역을 상품화하고 '고객'들을 유치하려고 노력했던 건 비교적 오래된 일이다. 특히 제주도가 두드러지는데, 뭐 다른 지역들이라고 크게 다를게 없다. 서울시에서는 군수 내지는 시장들이 양복을 입고 나와서 지역 특산품을 배경으로 깔고 광고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사회적인 것'이 점차 붕괴하고 새로운 논리가 그것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음을 의미한다. '서비스'제공자. 고객. 자본. 사용료. 투자와 이익. 미소. 원칙. 합리성.


덧)

본인 매스컴 탔음-_- (한겨레) 진짜 불쌍한 표정이다 ㅋㅋㅋㅋ (ㅠㅅ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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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을 잊지 않기 위한 사진들. 젠장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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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한겨레 영상.



민중의소리 영상 링크

http://www.voiceofpeople.org/A00000207435.html

이건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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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y Eagleton. The Idea of Culture. Oxford: Blackwell, 2002. 14-5. 의 일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 삶의 모든 형식들은, 그것이 반대하는 사람들(dissident)[*]이나 소수자 그룹의 것일 경우에는 찬미할 만한 것이 되지만, 반면 다수의 것일 경우에는 응징되어야만 할 것이 된다. 따라서 포스트모던한 '정체성의 정치학'은 레즈비어니즘은 포함하지만 내셔널리즘은 포함하지 않는다. 이는 포스트모던한 급진주의자들에 반대되는 낭만주의적 급진주의자들에게는 완전히(wholly) 비논리적인 운동이다. [이글턴은 앞에서 낭만주의 혁명기와 20세기 혁명기를 비교 했음] 정치적 혁명기를 살아왔던 낭만주의적 급진주의자 진영은, 다수의 운동이나 합의가 언제나 무지몽매하다고 믿어버리는 어리석음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었다. 반면, 나중에 번창하였으며 같은 역사 속에서 덜 행복했던 국면을 거친 포스트모던한 급진주의자 진영은 급진적인 대중 운동의 신념을 포기해 버렸다. 그렇게 소중한 운동들을 거의 기억하지도 못한 채로. 이론적으로 봤을 때, 포스트모더니즘은 위대한 20세기 중반의 국가 독립 운동의 이후에 나타났으며, 이는 마치 지진처럼 터져나왔던 정치적인 대 격변을 기억하기에는 문자 그대로나 비유적으로나 너무나도 어리다/미숙하다.

[*] dissident의 사전적 의미는, "정부에 강하게 동의하지 않고 비판하는 사람. 특히 이러한 종류의 행동이 이 사람을 위험으로 몰고갈 수 있는 나라에서."이다.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하지^^;


가끔씩 이글턴의 책을 읽을 때 "교양주의자"라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이렇게 글을 쓸 줄은 몰랐는걸(번역 안된 원서로는 처음 접하는데). 사실 그의 책을 보면 단어도 쉬운 단어를 쓰지 않는 편이라, 단어의 수준만 보면 정말 '교육 받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많다.. 어쨌거나 사실 이 부분을 읽고서는 좀 불쾌해 졌다. 특히 "미숙하다(young)"는 표현에서는. 정말 "교양주의자" + "어르신"스럽다.

정말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어쨌다는걸까? 사실 정체성의 정치학에 관심을 보이거나 하는 사람이, 테리 이글턴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할 듯한 '계급 투쟁'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에 관심을 갖지 않기도 어려운 일이다. 특히 이런 세상에서는. 물론 실제적인 행위나 운동의 차원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될텐데. 또한 '이론적인' 정체성의 정치학들은 사실상 맑스주의에도 큰 빚을 지고 있다. 이글턴은 상당히 LGBTQ 운동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가 알고(만) 있는 LGBTQ 액티비스트들은 반전 집회에도 나가고, 대운하 반대도 하고, 자본주의에도 열심히 반대하더라(물론 다 그런 건 아니야...). 게다가 고기를 잘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흥, 전통 맑시스트들 보다는 훨씬 아름답지 않은감?

대체 이글턴은 누굴 보고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아마 구체적인 대상이 없을 것 같다. 그냥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겠지...


그러고보니, 며칠 전 대강 훑어보았던 Geraldine Harris의 Beyond Representation이라는 책에서도 이런 생각을 본 적이 있다. Harris는 포스트모던 정치학을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정치학, 혹은 친-자본주의적 정치학으로 박음질 한다. 확실히 포스트모던이 '욕'이긴 '욕'으로 취급되는구나...;


덧) 확실히 나도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티, 포스트모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이런 논의들을 보면 갈수록 혼란만 더해간다. 며칠 전에 Oxford 대학에서 나오는 "A Very Short Introduction" 총서 중에 <Racism>, <Postmodernism>, <Poststructualism>, <Ideology>, <Postcolonialism> 5권을 주문 했는데, 요 책들이 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기본 어휘들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 시리즈는, 조나단 컬러의 <Literary Theory>가 괜찮게 읽히길래(이건 동문선에서 나온 번역본으로 구했음) 다른 책들도 주문했는데, 제법 괜찮은 총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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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의 저서 <대처리즘의 문화정치(원판은 Stuart Hall, The Hard Road to Renewal: Thatcherism and the Crisis of the Left, London: Verso)>가 출간되었다기에 리뷰를 옮겨 두고 짤막한 생각을 덧붙이려 한다.. 일단 리뷰부터.


한국일보(08.02.11) 이왕구 기자(원본) [강조는 namunnib]

노동자·농민·88만원 세대는 왜 좌파를 등졌을까
좌파이론가 스튜어트 홀의 '대처리즘의 문화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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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중소자영업자, 노동자와 농민, 88만원 세대들…. 좌파진영에 표를 던져야 할 이들은 왜 보수정권의 등장을 염원했을까?

이명박 후보의 압승으로 귀결된 지난 대선은 좌파진영에 심각한 과제를 던져주었다. 성별, 지역, 세대를 가리지 않고 계급적 정체성을 배반하는 투표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등장한 이명박 정권은 1970년대 노동당 정권의 경제실정을 비판하며 장기집권(1979~1990)에 성공한 마거릿 대처의 출현을 연상하게 한다. 대처의 성공은 오로지 신자유주의 경제드라이브의 성공 때문이었을까?

최근 발간된 영국의 좌파 문화 이론가인 스튜어트 홀의 대처리즘 분석서 <대처리즘의 문화정치>(한나래 발행)는 문화정치의 관점에서 대처리즘의 성공요인을 들여다본다.

경제정책의 성공 뿐 아니라 대중의 도덕적 복고주의를 자극함으로써 정치적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전통적 계급장벽을 뛰어넘은 이 같은 성공을 저자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예컨대 대처는 탈학교화, 관용적 교육 등이 떠받들여지던 학교현장에 높은 교육수준의 회복과 권위의 수호 같은 이데올로기를 전파했고, 권위와 사회적 가치의 위기를 강조함으로써 필요하다면 도덕적, 법적 무력을 정상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부과해도 좋다는 가치관을 대중들에게 전파시켰다.

좌파의 복지정책에 대해서는 “씀씀이가 헤픈 국가가 벌지도 못하는 부를 함부로 써버리고 일반인들의 자립을 해친다”는 담론으로 대항했다.

또한 복지정책의 수혜자를 사회가 주는 혜택으로 살아가며 제 몫의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로 규정하고, 이들을 자신들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다른 문화권 출신의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치환해 인종주의를 자극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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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런 도덕적 리더십을 포기한 좌파정당은 정책의 유효성과는 별개로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 타임스> <선> <이코노미스트> 같은 대중매체들의 도덕주의 전파도 대처리즘의 성공에 한몫을 했다.

그렇다면 좌파들이 대처리즘의 성공에서 배워야 할 점은 분명하다. 전통적인 계급정치에서 탈피해 문화적 주제에 주목해 대중을 블록화하는 방식으로 지지를 결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역자인 임영호 부산대 교수는 “홀은 1980년대의 영국사회라는 특수한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그의 분석은 시공간차이를 넘어서 문화의 정치성을 주목하게 한다”며 “진보 역시 전통적 지지자를 결집하기 보다는 이른바 전통적인 진보세력 속에 내재한 보수적 요소(인종주의, 가부장주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성찰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의 정체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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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가 집권하던 1980년 이후 약 11년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왠지 귀가 솔깃해지는 분석이란 생각이다.

기사에서 기자가 말하고도 있는, 지난 대선 때 많은 이들이 "제 계급을 배반했다"는 식의 분석은 정말이지, 온당치 않다. 즉 한 유명한 '어르신'의 말마따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으로 분석하는 것은, 실상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88만원 세대, 노동자, 농민은 반드시 민노당이나 사회당에 투표를 해야 했나? 대체 무슨 근거로? 만약 그 당들에 투표를 했으면 제 '계급'에 알맞은 투표를 한 것인가? 이 두 당이 언제부터 그들을 대표했는가? 홀의 신랄한 표현을 빌어서 말하자면, "오, 500만 실업자가 모두 민노당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대는 지금 어디있는가?"

영어 단어 <representation>은, <재현>이란 뜻과 <대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국 말로 번역했을 때 굉장히 다른 영역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두 말은, 실상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이는 단순한 언어 유희가 아니다. 맑스의 <<브뤼메르 18일>>에 나오는 유명한 말을 참조하면(강조는 namunnib),


이들은[* 소농계급]은 거대한 대중을 이루는데, 그 성원들은 삶의 조건이 비슷하지만 서로간에 다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 이들의 생산방식은 이들을 상호교분하는 게 아니라 서로 고립되도록 만든다. [...] 이들은 따라서 의회를 통해서든 대표자 회의를 통해서든 자기 이름을 내걸고 자기 계급의 이해를 집행할 능력이 없다. 이들은 스스로 대변하지 못하며 대변되어야만 한다. 이들의 대표는 또한 이들의 주인, 이들 위에 군림하는 당국, 다른 계급들로부터 이들을 보호하며 저 위에서 비와 햇빛을 내려주는 무한한 통치권력의 모습을 띠어야 한다.


무릎이 절로 쳐지는 구절이다. 맑스는 <재현>과 <대표> 사이의 어떤 균열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지젝은 자신의 글 Against Human Rights에서 맑스의 글에서 이 부분을 인용하면서도 대표와 재현 사이의 차이를 깊게 인식하지는 못하나, 스피박은 Can the Subaltern Speak? 에서 이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깊게 분석한다. 스피박의 분석을 참조하고 나의 해석을 곁들여 말하면, 누군가가(정치인이) 대통령이 된다고ㅡ즉 누군가가 국민의 투표를 통한 합의의 결과 국민들의 <대변자> 혹은 <대표자>가 되겠다고ㅡ나섰을 때, 그/녀는 이미 순수한 의미에서 <대표자>가 아니다. 이미 그/녀는 스스로를 <대표자>로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재현>체계는 그 <대표자>를 둘러싼 의미화 과정을 좌우하는, 정치적 투쟁의 장소이다. 꼭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정당>은 물론 <대의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대표>와 <재현>이 완전히 제도화 된 것 아니던가.

바로 이 순간 <representation>이 가진 두 뜻, 즉 <대표>와 <재현> 사이의 균열이 잘 나타난다. 스피박은 이를 "The complicity of Vertreten[대표] and Darstellen[재현], their identity-in-difference as the place of practiceㅡsince this complicity is precisely what Marxists must expose, as Marx does in The Eighteenth Brumaireㅡcan only be appreciated if they are not conflated by a sleight of word."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복잡한 문장을 대충 발로 한글로 옮겨 보면(어려워서 -_-;), "대표와 재현의 공모성complicity, 그리고 실천의 장소로서 대표와 재현의 차이-속의-동일성은, 단어의 속임수[representation의 애매모호함]에 의해 혼합되지 않아야만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맑스가 <브뤼메르 18일>에서 하고 있듯이 이 공모성은 정확히 맑시스트들이 반드시 폭로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와 <재현>은 분명히 차이가 있지만, 또한 이 둘은 분명히 공모한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이 공모성에 대해서 좌파는 폭로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서 스피박의 분석은 홀의 분석과 만날 수 있다. 홀이 보기에 대처와 보수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어떤 <정치적 요인>이나 <정책적 요인>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문화적 요인>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문화적 요인>이 진짜 어떤 문화 컨텐츠적 요인ㅡ즉 연극, 공연, 영화, 소설 등ㅡ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사에서도 "문화적 주제"니 어쩌고 하고 있지만, 이는 방송이나 신문 같은 언론 매체, 특히 어떤 이미지(재현)를 전파하는 데에 있어 '권위'가 있는 사회문화적 장치들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에 더해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떻게 이 담론들이 유통되고 있는가, 누가 그 담론들을 유통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도 이해해야 한다. 즉 대처리즘의 집권은, '이미지'의 문제,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적 재현>의 문제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었던 것이라 보아야 한다. 대처와 보수당의 장기 집권은, 당시 영국의 현실을 둘러싼 재현 투쟁에서 노동당을 압승했던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홀의 말을 좀 더 들어보면(제임스 프록터, <지금, 스튜어트 홀>의 책에서 재인용, 강조는 namunnib)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대처가 내세운] 각종 세목들을 믿으면서 대처주의에 표를 던진 것이 아니다. [...] 이데올로기로서 대처주의가 한 일은, 사람들의 공포, 불안, 정체성 상실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이다. 그것은 정치를 이미지로 생각하게끔 만든다. 대처주의는 우리의 집단적 환상,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영국, 사회적 상상력에 호소한다. 좌파가 '자신들의 정책' 쪽으로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대처 여사는 이러한 이슈들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물론 선거에서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정말이지 아무런 특색도 없어 뵈고 존재감 없던 정동영 후보는 그렇다 치더라도, 민노당 권영길,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역시 재현 투쟁에 있어서 2MB에게 밀려 있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지난 선거 기간 동안 2MB이 이미지 게임(재현 투쟁)에서 승승장구 하는 동안, 좌파 진영은 어떠한 재현 투쟁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정책'을 공격하고 얼핏 정책 상의 우위에 선다고 해서, 대선을 둘러싼 재현 투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 무심했달까. 혹은 너무 능력이 없었달까. 이를 '위대한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이미지 선거"가 되었다고 개/한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60년 전 한국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언제나 이미지의 문제와 재현의 문제는 선거와 그리고 대표의 문제와 함께 있었다. 그걸 캐치하지 못한 건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 과오이다. 오바마와 힐러리 역시도 이 재현의 문제를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치고 있는가.

위에서 스피박은 <대표>와 <재현> 사이의 공모성을 폭로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폭로 만으로는 사실 부족할 것이다.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폭로> 되었는가. 그 <폭로>역시도 재현 투쟁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폭로 역시도 의미 체계(재현 체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신중하게 관찰하면서 수행해야하는 것이 앞으로의 정치적 과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재현 체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투쟁도 해야 할 것이고...

또한 지금까지의 과정을 쭉 지켜보건대, 2MB는 완전히 이슈 메이커로 잘 자리잡은 것 같다. 모든 의미들이 통용되는 그 장소를 2MB이 아주 적절히 선취해버린 것이다. 모든 이슈와 의제들은 2MB가 설정한대로 움직인다. 대운하, 영어 논쟁, 부동산 등등. 그런 논쟁들에서 국지적으로 승리한다고 해서, 앞으로 뭐가 잘 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재현의 주도권은 2MB이 쥐고 있는 거니까. 우왕좌왕 하다가 앞으로 5년이 파국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대처리즘의 사례에서 좀 더 배울 수 있는 것은, <포클랜드 전쟁>과 관련된 것이다. 대처 정부는 "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언하여 당선이 된 직후 약 2~3년 간 전혀 맥을 못췄다. 경제 성장율은 늘지 않았고, 경제 침체는 계속 이어졌다. 대처리즘이 이러한 정권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던 건, 다름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서였다. 포클랜드라는 대서양에 있는 매우 조그마한 섬은 아무런 '경제적 가치'도 없었지만, 대처 정부는 아르헨티나와 이 영토의 소유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고 그에 따라 대처 정부는 정권을 궤도에 안정적으로 올려 놓을 수 있었다.

대처는 이 전쟁에 대해서 <경제적 이익>이 없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대처는 이를 <도덕적 명분>으로 정당화 했다(제임스 프록터, <지금 스튜어트 홀>, p.190). 즉 사라져가는 영국성englishness, 갈수록 위기 의식이 감도는 경제 등으로 인한 대중들의 공포를 전쟁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이시키고, 자신의 도덕적 명분으로 이를 정당화하면서 대처리즘은 더욱 강력한 권위를 쥐고 통치를 할 수 있었다. 지워져가는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그것을 현재에 이룩할 수 있다며 달콤한 이데올로기적 미끼를 던짐으로써 대처리즘은 (부분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는 위의 기사에도 등장하는 말인 "권위주의적 포퓰리즘"과도 맞물린다.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은, "대중의 공포, 불안, 잃어버린 정체성"에 이데올로기적으로 호소함으로써 대중을 움직이는 정치를 일컫는다(Ibid, p.191). 곧 출범할 2MB 정권은 어떨까? 경제위기 이데올로기가 한국을 휘어 잡은지는 꽤 시간이 흘렀다. 실업 문제로 빈곤문제가 대두된지도 한참이나 흘렀다. 이미 한국 사회를 바라볼 때 불안감 없이 설명하는 것은 힘들게 되었다. 어딘가 대처리즘의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 횡행하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든다. 게다가 전문가주의, 추진력, 실용주의 등등으로 스스로를 재현하고 주류 언론 매체들이 그 재현을 뒷받침 하고 있는 2MB 인수위와 2MB은, 홀이 언급하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의 새롭지만 전형적인 판본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대운하>는 어떨까? 대처리즘의 <포클랜드 전쟁>과 어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대운하는 포클랜드 전쟁과 매우 다른 맥락에 있는 문제임엔 틀림없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대운하는 한국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방심해서는 안 된다. 대운하는 기필코 막아야 하지만, 동시에 2MB 정부의 포퓰리즘에도 대항할 방법들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그건 단지 정책 싸움이라거나 거리의 정치만으로 포괄할 수 있는 건 아닐 것 같다. 이미 그것은 기존의 영역에 속해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좌파가 이데올로기적 <재현>의 문제의 주도권을 전혀 쥐지 못하면 어떻게 대운하는 막을 수 있더라도, 다른 중요한 일들을 막아 내기란 힘들 것이다..


덧1) 물론 대처리즘의 10여년 간의 성공의 원인을 '재현 투쟁'에서 승리한 것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 분명 당시의 어떤 정치경제학적 맥락이 있었을 것이고, 언제나 내재해 있던 자본주의의 위기 아닌 위기가(자본주의는 위기와 불안을 중요한 매개로 작동하므로)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특수한 영국 내의 상황을 알아야겠지만, 지금 내가 알 방도는 없으니..

덧2) 최근 <숭례문 전소 사건>을 둘러싸고 (애도하는 것과는 별개로) 새롭게 민족주의가 시끄럽게 떠오르는 것 같다. 무언가에 의해, 무언가를 위해 동원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너무 흉흉하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뭔가 감이 잡힐 듯 말 듯 한데...

덧3) 이와 관련해서 예전에 썼던 좀 부끄러운 포스팅 2008/01/06 - [생각] - "반대 의견은 수렴하겠지만 운하는 건설한다"와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게 있는 듯 하다... 좀 더 생각을 이어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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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2007년 2학기에 교지에 쓴 글. 나름 거창한 계획을 갖고 시작한 기획이었는데 뜻대로 아니되어 슬프오... ;ㅅ;


우리들의 우울한 시간
-우울의 문화정치경제학


시대의 기분, ‘우울’

우리는 어디서든 우울을 본다. 아침에 사람들로 꽉 들어찬 지하철에서도 볼 수 있고, 강의실에서 내 옆에 앉은 이름 모를 학우의 얼굴에서도 읽을 수 있고, 하다못해 친구의 미니홈피와 수백만 개의 블로그에서도 우울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우울은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우울을 말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우울의 원인은 제각기 갖고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제각기 저마다의 역사와 서사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게다가 개인마다 우울을 경험하는 수준과 방식도 다르다. 그러니 어쩌면 우울에 대해서 ‘시대의 기분’이라고 칭하는 것은 안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990년대 1044건, 2000년대 2318건이라는 숫자를 보자. 검색어 ‘우울’로 C일보 아카이브에서 검색어 ‘우울’로 노출되는 기사의 숫자다.1) 좀 더 흥미로운 건 1980년대엔 고작 65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뚜렷하게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은 2000년대 들어서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7년간 키워드 ‘우울’로 서울 시내 주요 일간지 10개를 대상으로 검색해보면 2000년 1271건, 2004년 2084건, 2007년 현재(11월 17일)까지 2206건으로 거의 순증가추세를 보여주고 있다.2)

이러한 숫자는 갈수록 수다스럽게 우울을 말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하나의 지표로 보아도 될 것이다. 이제 우울은 어느 특정한 곳에서 생산되고 있다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도처에서 이야기되며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 각 개인들은 우울을 끊임없이 말하고 있고, 의사와 상담자등의 전문가들도 그것에 대해 수다스럽게 떠들어댄다. 교육학, 심리학, 언론 등의 제도가 이러한 담론의 생산을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실체 없는 우울 앞에 짓눌리고 있는 (집단적 의미에서) ‘개인들’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우울을 오롯이 개인의 것으로 환원하는 것은3) ‘심리학적 개인’을 우울의 출발지점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렇게 바라보게 됨으로써,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가 어떻게 우울을 생산하는지, 그리고 우울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분석을 중단하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가 아닌) ‘우리’는 왜 우울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 내려가는 일일테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왜 이렇게 더 우울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되었는지, 왜 우울을 더 많이 말하게 되었는지, 그렇게 더 많이 말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조건들은 과연 무엇인지, 그렇게 더 많이 말함으로써 드러나는 것들은 무엇인지, 그렇게 더 많이 말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볼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이 글은 ‘우리들’이 우울하게 ‘된’, 그리고 시대적 기분이 우울하게 ‘된’ 원인에 대한 필자 나름의 분석을 담아내려는 시도의 산물이다.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개괄적이고 포괄적일 수 있는 분석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101가지의 오류는 오롯이 필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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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2007년 1학기에 교지에 썼던 글. 제목도 마음에 안들고 -.ㅡ;; 늘 제목 센스부터 엉터리였음. 학교명은 다 지웠음.


서울공화국, 그 음울한 환상
- 공간의 문화정치

그런 말이 있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서울 빼고는 다 ‘시골’이라는. 그래서 명절 때 ‘지방’ 사람에게 우리들이 흔히 하는 말이 “시골 내려가?”이지 않던가. 나름대로 뼈 있는 이 말을 뜯어 보면, 한국이란 영토국가가 서울과 비-서울(보통 ‘시골’로 명명되는)이라는 상징적인 두 개의 구획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서울이 아닌 곳이면 그곳이 어딘지 상관없이 ‘비’-서울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서울이 중심-기준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또한 “내려가?”1)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국이 단순히 서울과 비-서울로 나뉜다는 것을 넘어서, 이미 어떤 ‘위계질서’를 내포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서울은 그 위계질서의 가장 상위에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은 한국의 ‘중심’이다. 단순히 가운데 있다는 말이 아니라, 서울이 가진 중력이 한국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서울공화국’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사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 속에는 너무나 많은 의미들이 들어 있다. 정치경제문화 중심지, 과밀 인구, 또 한편으로 ‘서울대학교’ 등등. 그러나 내게는 이미 반복적으로 문제화되었던 그 많은 의미들을 한 데 녹여낼 재간이 없다. 다만 이 글은 작게나마 필자 나름의 서울공화국-공간의 ‘지도’를 다시 그려보는 시도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지도에는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여기서 그려진 내 나름대로의 지도가 일상의 미로 속에서 조금은 다른 길로 걸어갈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할 것이다.


서울과 비-서울, 공간이라는 은유

우리는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간다. 좀 더 구체적으로 ㅇㅇ산 기슭에 있는 ㅇㅇ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공간(空間;space)의 원래 뜻―비어있는―과는 달리, 여기서 말한 ‘공간’은 어떤 기시감을 준다. ㅇㅇ대학교를 떠올리면 무엇이든 보이는 듯이 떠오르고, 강남하면 또 무언가가 보이는 듯 떠오르며, 자기의 방을 생각해봐도 무언가 보이는 듯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공간 없이는 그 무엇도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공간은 시간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존재와 삶의 풍경들이 재생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이며 가장 기본적인 토대인 것으로 보인다. 공간이 없으면 우리는 점심시간에 긴 줄을 서서 학관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친구와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도 없으며 한가로운 오후에 캠퍼스를 느그적느그적 거닐 수도 없다. 이렇게 우리는 실로 공간 안에 배치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간을 배치하는 ‘질서’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 배치되는 것들의 ‘조건’에 대한 물음이다. 이는 공간은 결코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연결된다. 다시 말해 공간은 그 자체로 열려있지 않고 어떤 나름의 규칙들에 의해 폐쇄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얼마 전 인문대 해방터의 ‘김밥 할머니’ ㅇㅇㅇ씨가 인문대 학장단과 행정실 직원에 의해 ‘퇴출’을 당한 바 있다. 당연히 ‘지성인’들인 학장단이 그냥 내보낼 수는 없었을 테고 나름대로 주절주절 이유를 늘어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학내 무허가 영업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영업을 하려면 아무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해프닝은 공간의 작동방식의 한 예―물론 그 일을 전부 이것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를 보여준다. 학교-공간을 통제하는 권력들에게는 ㅇㅇㅇㅇㅇㅇ, ㅇㅇㅇㅇ, ㅇㅇㅇㅇㅇ는 합법―계약의 대상―이고, 김밥 할머니는 불법―퇴출의 대상―이다. 적당한 세련됨을 갖춘 현대적인 점포는 변화하는 학교에 어울리고, 노점에서 음식을 판매하는 할머니는 학교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모양이다. 물론 어찌 이러한 예가 이뿐 일까.

이렇게 공간-권력은 그 안에 배치될 수 있는 주체와 사물을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서울스러운 것이 서울에 배치되고 비-서울스러운 것이 비-서울에 배치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비-서울스러운 것으로 보이는 사물이나 주체가 서울에 배치되는 순간 우리는 지극히 어색해 하며, 그것에 폭력을 가할 수 있다. “제 자리로 돌아가! 넌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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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