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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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1/02/06 09:31
- 아침에 일어나서 된장찌개를 데워 김치와 참치, 연근조림, 계란프라이로 든든하게 밥을 먹었다. 동생들은 각 방에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있었다. 그러나 나는 소리를 최대한 적게 내려고 주의하지 않는다. 그릇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화력 좋은 가스렌지는 가스를 요란하게 내뿜었으며 수저와 젓가락마저 부주의한 소음으로 아침의 적막을 찢었다. 이렇게 먹는 식사라는게 맛이란게 있을리 없으므로 의무처럼 한그릇을 비운다. 나는 주어진 의무를 다했으므로 설거지는 이후의 몫이다. 어제까지 며칠 동안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하던 나는 오늘 아침부터는 다시 현실을 직면하기로 하고 커피를 끓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헤드폰을 쓰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의식을 잠시 놓고 있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핀다. 싸이월드, 트위터, 지메일, 핫메일, 자주 찾는 블로그, 등등. 그러고나면 아침의 결의는 온데간데 없다.

- 얼마 전, 나른하던 겨울 밤을 회상했다. 손님들과 일년에 두 번 있는 의례 한 번을 치르고 모두가 낮잠을 자고 났던지라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던 밤이었다. 좁은 방에 포근한 이불을 덮고 둘러 앉게 된 네 명의 사람. 한 사람은 이들을 각각 280일 씩 몸안에 품었던 사람이고, 세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피와 살과 땀과 눈물을 착취하며 유기체로서 생존한 사람들이었다. 다른 방에는 몇년 동안 마음이 많이 따스해진 오십대 남자 사람이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셋 중 하나로 반쯤 누워 혼곤한 상태로 그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이다. 특별히 따뜻할 것도, 특별히 지루할 것도, 특별히 기억할만한 것도 없이 적당히 끊기는 대화들이 오가던 시간. 나는 졸리다면서 가장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 장면이 오래 기억에 가리라는 걸 직감했다. 스물 일곱이 되는 해 초입에, 기억할 만한 순간, 혹은, 그렇지는 않더라도,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은 순간.

- 좋은 비평이란 무엇일까? 비평이 예술작품에 '기생'한다는 통념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평은 그런 통념과는 달리 비평 자체로의 독립을 주장해야 하니까. 그렇기에 나는 비평이 비평대상보다는 비평가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를 해준다는 이야기를 믿는다. 그렇다면 좋은 비평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비평가가 되어야 하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하나의 비평은 그 자체로 내적 질서, 내적 소우주를 갖추어야만 한다고까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비평가가 가진 온갖 것들, 이를테면 언어와 문체, 이론, 지식, 삶의 배경 같은 것들이 작품과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한 만남과 여정의 기록, 혹은 그렇게 만나서 이루는 성좌(constellation)의 제시(그러므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땐 차라리 실패한 만남에 대해 고백적인 에세이를 쓰면 된다). 인용구와 유명한 이론을 들먹이는 건 물론 괜찮다. 그것도 비평가가 가진 것이니까. 하지만 17세기, 존 밀턴이 각주와 인용문을 즐겨 쓰던 연극비평가 윌리엄 프린을 놀리면서 했던 말, "텍스트 안에서 재주를 부리지 않기 위해서 언제나 텍스트 밖에서 재주를 부린다"는 말만큼은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 무엇인가를 '잘한다'는 관념은 사실 인정투쟁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내가 무엇을 '잘' 하고, 또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무뎌질 때면 언제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텍스트를 꼼꼼히 읽는 것도 못하고 글을 딱히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발상이 딱히 창의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기억력이 좋지도 않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림이나 음악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잘하길 하나 연애를 잘하기를 하나 주목받고 싶어 안달이기를 하나 쩝. 아, 더 땅굴 파기 전에 얼른 해야할 일을 시작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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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조각들 / 2008/08/03 17:34

나에게 계급이란 무엇일까? 인종, 성, 장애 등등, 소위 '사회적'인 분류를 위한 범주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까?

벨 ㅎ스의 새 책, <벨 훅ㅅ: 계급에 대해 말ㅎ지 않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슬펐다.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데,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벨 훅ㅅ가 어렸을 때와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 그리고 자신이 성장한 집 주변에 있는 여대에 진학 했다가 겪었던 온갖 계급-인종 차별들, 좀 더 인종적으로나 계급적으로 평등함을 지향한다고 알려진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했을 때에 겪었던 모든 계급성들...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현실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살아 나가기에 한국도 엄청나게 끔찍한 공간이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다를 바는 전혀 없었던 셈.


그렇다면 나의 계급은 어떨까? 나도 완전 잘사는 집안의 아이는 못된다. 아빠는 한 시골에서는 제법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행정 관료이고, 엄마는 읍내의 한 병원에서 사무일을 본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는 3명의 자식이 있고, 첫째와 둘째는 이름만 대면 많이들 아는 대학에 다니고 있고 셋째는 집에서 2시간 거리인 다른 도시에서 유학중인 고등학생이다. 이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빠듯하기는 하지만 내 부모님은 다 대주고 있다. 나의 경우에도 매달 34만원의 방세와 6만원 가량의 핸드폰 비, 그리고 10여만원 정도의 용돈 보조를 해주고 있다. 나도 40만원의 과외 수입을 갖고 있으며 이걸로 그냥 한달은 그럭저럭 살아간다. 놀 것도 다 놀고 살 것도 대충은 다 사면서. 약소하지만 1만원의 후원금도 내고 있고.

어쨌든 나는 무리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학비를 마련하거나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든지, 돈을 벌기 위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쿨하게', 그리고 내 하고 싶은 짓 다하면서 졸업을 앞두고 있다. 교지에서 5학기를 보냈고 다른 단체나 학회 등에서도 시간을 많이 보냈다. 이렇게 '운동권 경계인'의 감수성으로 학교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 소속 과의 수업들을 경멸하면서, 그리고 많은 타인들을 경멸하고 비난하고 증오하면서, 그러면서도 나와 어딘가 비슷한 이들과는 잘 어울리면서 4년 반을 보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과정에서 계급은 굉장한 역할을 했다. 아이들을 만나는 과정들을 쭉 돌이켜보면, 나는 나와 비슷한 아이들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울의 아이들과는 거리를 뒀고, 대부분 지방에서 유학을 온 아이들에게 친밀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부모님이 교수 등의 전문직인 아이들이라기 보다는, 대개 행정 관료나 선생님 내지는 (어느 정도의 수입이 있는) 노동계급의 아이들 사이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가난해 보이거나, 너무 부자처럼 보이는 아이들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일은 굉장히 어려웠다. (물론 '보이는'게 문제 였다. 실제로 그 아이가 어떤 계급에 속해 있든 상관없이!)

아마 계급은 나에게 '환상'의 영역이었던 것 같다. 계급성, 계급투쟁의 대의, 이 모든 것에 동의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었다. 가끔은 계급이 어떻고 저떻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그 '남의 일'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는 점을 느끼게 되면, 나는 아마 입에 똥을 물고 끔찍한 말들을 내뱉으며 경멸하고 거리를 뒀을지 모를 일이다. 가난은 그저 끔찍하거나 아니면 아름답거나 둘 중 하나여야만 했다. 물론 그것은 같은 것을 지칭하는 다른 어휘일 뿐이다. '아름다운 가난'이나 '끔찍한 가난'이나, 둘다 계급이나 가난을 타자화하는 말인 점에서는 완전히 똑같다.

생각해 보면, 내가 다니는(이제 곧 졸업이군) 대학은 계급이 높은 학생들이 주로 다닐 것으로 생각되는 학교이다. 단지 경제 자본 뿐 아니라, 문화 자본까지도 두루 갖춘 부모들을 둔 학생들이 실제로 굉장히 많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옷과 신체와 행동거지와 사고 방식 모든 것에 반영되어 있다. 촌스러움과 세련됨 사이에서 많은 아이들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랜 시간 젖어 있어서 '자연스러운' 세련됨을 풍기는 아이들과, 이제서야 세련됨을 학습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거리감과 요원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웬만한 노력이 없으면 이 거리는 좁힐 수 없었다.

정치적 올바름마저 계급을 따라가곤 했다. 그것도 세련됨의 일종이었으니까, 잘 나가는 아이들은 너그러운 휴머니스트로서 정치적인 올바름까지도 쉬이 가질 수 있게 되는 모양이다. 비싼 옷과 가방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공정 무역, 가난한 사람들, 환경 오염에 대해 운운하는 모습에 심한 불편함이나 때론 역겨움을 느끼면서도 그건 단지 불편함이나 역겨움일 뿐이었다. 그것을 말할 사람도 별로 없었으니까.

나는 그런 점들을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서 굳이 의식하거나 표현하려고 한 적은 없었다. 주변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은 잘 하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들도 계급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성, 장애, 환경, 인종 등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언제나 계급은 껄끄러운 주제였다. 자기가 '현재' 돈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아이들은 많았지만, '왜' 돈이 없는가, 즉 자기의 계급 내지는 자기 부모의 계급이나 재산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 모두는 이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의 관계를 지배하는 일종의 규범 내지는 규칙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는거. 계급에 대해서 말한다는 건,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열등감 이런거, 잘 인정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고, 내가 다니는 이 학교는 이 사회의 '중심부'에 있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네가 잘나서 잘하면 되는거지 왜 남 탓을 하느냐, 너도 잘나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니냐, 너도 이제 계급 상승을 하고 있는거 아니냐 하는 암묵적인 이야기들이 모든 구성원들을 지배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암묵적인 이야기'라는 말은, 설령 자기 스스로는 계급 시스템의 모순 등을 알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음에도, 정작 자기 문제가 되면 자기 탓 내지는 개인 탓으로 돌리기 쉽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때로는 이 사회의 계급성이나 가난을 목격했을 때 '슬퍼할' 줄도 알아도, 그건 결국 1시간 지나면 잊어 버릴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럼 '나'의 계급성은 결국 '나' 스스로 열심히 극복해야 한다. 그걸 다른 사회적 범주와 차별 탓으로 하는 건 안된다. 학벌도 갖췄는데 뭐가 문제랴. 하는 생각들.


학교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가 성장한 지역을 보면 이 계급 문제는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나는 완전 변두리인 시골에서 자랐고, 그 지역에는 가난한 아이들이 더 많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 아이들 중에 잘 사는 아이들은 굉장히 드물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많은 경우 내가 자란 고향에서 머물고 있으며, 부모님의 계급이나 가업을 그대로 이어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굉장히 드문 케이스이다.

부모님이 종종 하는 말 중에 "대학에 입학한 것만으로도 됐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제야 이 말을 실감한다. 나는 계급 이동에 이미 가까이 다가왔으며, 설령 앞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을지라도 나의 학벌 자원이나 문화 자본 등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일종의 계급 보증서로서 나의 계급 이동을 철저히 보증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모르겠다. 그냥 끔찍하고 슬프고 그렇다.

벨 훅ㅅ의 책의 원제인 "where we stand: class matters" 마냥,
"나(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문.

정말 중요한 주젠데 나는 너무나 부분적으로만 대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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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07/10/11 23:35

‘행복한 삶’(사실 이건 모순 형용 아닌가? 마치 ‘도덕적 자본주의’란 말처럼. 삶의 결핍과 고통 속에 놓여 있을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삶을 ‘의식’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바꿔 말하자면, ‘행복한 삶’이란 삶에 대한 아무런 의식도 갖고 있지 않은 삶이다. 자먀찐(E. Zamyatin)의 분류를 빌자면, ‘행복한 삶’은 ‘살아있고-죽어있는(alive-dead)’ 삶이다. 반대로 ‘살아있고-살아있는(alive-alive)’ 삶이란 모순과 고통, 실수로 뒤범벅이 된 삶이다!)이란 곧 “장례절차만이 남아있는 삶”이라고 떠들어대곤 했으니 행복과 그다지 인연이 없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다(*자먀찐의 에세이에 나오는 내용인데, <우리들>의 국역본 개정판에는 이전판에 실려 있던 이 에세이가 빠져 있다).

(*)나는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는 하지만 신뢰하지는 않는다. 참고로, 행복한 사람은 삶을 ‘의식’하지 않는다. 즉, 당신이 행복을 ‘의식’하는 순간, 행복은 당신과 함께 있지 않다. ‘의식’은 언제나 병과 죽음으로 우리를 이끌며, 행복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정현종의 시구를 빌자면, “의식의 끝은 언제나 죽음이었네.” 좀 현학적으로 말하자면, 행복은 의식의 대상으로서 현전하지 않으며, 언제나 기대되거나 회고될 뿐이다.

 

난 딴게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줄곧 말하곤 했었다. 사실 그 말을 할 때도, '행복'이란 것이 절대로 가능치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 말 자체를 폐기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오늘 <여성 연구소> 집담회에 갔다 와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몇 가지 듣고는 무척이나 우울해지고 슬퍼져 버렸다. 그치만, 아직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이 있겠구나, 적어도 평생 동안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갈수록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다. 갈수록 마음만 급해진다. 대학원 입시용 리딩들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이제는 누구도 보지 않을 책들을 마주하니 마음이 좀 무겁다.

읽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읽어야 할 것도 너무 많다. 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그리워 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너무 많다. 아직 발 디디고 싶은 곳도 너무 많다.

나에게 없는 것은 오로지 시간 뿐인 것 같다.


어쨌든, 아무래도 쉽지 않은 가을, 겨울을 보낼 것 같다. 정말 그 어느 때보다도 만만치 않다. 다시 좀 흔들리고 있다. 대체 생채기 투성이인 일상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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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07/09/26 17:37

- 작년 추석엔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어찌어찌하여 내려가게 되었다. 사실 대학원 문제로 부모님과 상의하기 위한 목적이 컸는데, 결국 가고 싶은 학과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돌아왔으니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 집에 가서 한동안 뜸했던 우울증이 도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지냈던 것 같다. 원래 가족들 앞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못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정말 말 없이 지낸 듯. 귀여운 '찬'이 없었다면 정말 무기력하게 있다가 올 뻔했다.

- 이번 추석에는 '가사 노동'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최소한 설거지는 내가 전담하려고 했고 가능하면 요리 등에도 많이 관여하려고 했다. 그러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적은 듯. 엄마는 물론 작은 엄마들도 자꾸 뭔가를 하려고 드는 나에게 일거리를 주기는 했지만, 급한 일이거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자신들이 하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하려고 하는 '가사 노동'이 그냥 한갖 '도움' 정도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했는데, 역시 별 수 없나 보다.

- 어쨌든, '가사 노동'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건데, 정말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 끝냈다 싶으면 다른 일이 또 있고, 그걸 하고 나면 반나절이 다 가서 또 식사 준비할 때가 된다. 그럼 일어나서 잘 때까지 할 일은 널려 있는 셈. '가부장들'은 가만히 티비나 보고(혹은 아가랑 가볍게 놀아주기), '엄마들'은 쉴 틈도 없이 일하고 있는 장면들을 보면 역시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오르기 마련이다. 분명 예전엔 우리집 '가부장들'도 '가사 노동'을 적잖게 전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해가 갈수록 전혀 '가사 노동'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고 있는 꼴들을 보며 화가 치밀어 오르는 때가 늘고 있다.

- 확실히 '몸'은 '습관'을 기억하는 것 같다. 나는 설거지를 20분 정도만 넘게 해도 허리가 아파오고 접시를 잡던 손이 저릿저릿 해진다. 부엌에서 나오는 수많은 반찬 접시들을 나르는 일 조금만 해도 팔이 아파온다. 2시간 쯤 전을 부치고 있다 보면 허리가 꼬이고 뒤틀린다. 그러다 보면 피곤해져서 집에서는 잠만 자는 일이 많았다; 밥 먹고 설거지 한 담 이것저것 하다가 잠들고, 그러다가 끼니 때가 되면 일어나고; 그 순환의 반복. '엄마들'이 척척 일을 하나 씩 해내면서도 별로 지친 내색도 없을 때, 나는 힘든 티 어려운 티 팍팍 내면서 생색만 내다가 온 것 같다. 정말 얼굴 벌개지는 일.

- 연휴 동안에는 달이 참 예뻤다. 그래서 밤에는 20~30분씩 마당에 있는 조그만 옥상 같은 곳에 나가서 달을 바라보고 들어오고는 했다. 이런 여유도 참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번쩍번쩍한 불들이 없었던 시절, 사람들은 밤에 무슨 생각을, 이야기를 하면서 지냈을까. 방아찧는 토끼와 사람 말 하는 효심깊은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들, 수많은 동네 귀신 괴담들, 혹은 수많은 음담(淫談)들이 그 달빛 아래서 한없이 생산되고 전수 되었겠지. 한껏 고양된 '이성'에 계몽된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릴 일들이겠지만. 그렇기에 오늘날 사람들은 그걸 한갖 '낭만' 정도로 치부하는 것 일테다. 정말 이래저래 빈곤하기 짝이 없는 시대. 그래서 조금은 슬퍼졌다. 나는 달이랑 별 보는게 참 좋다. 가만히 흘러가는 구름이랑 별과 달을 보고 있다보면 그렇게 차분해질 수가 없다. 그러나 서울에선 달을 제외하고는 거의 볼 수가 없다. 이런걸 '광해(light pollution)'이라 그러던가? 밤에 인간들이 내뿜는 불빛으로 인해 더 이상 별을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는.

- 나는 "고향"을 돌아다니는 게 무섭다. 이번에 가서는 초등학교며 중학교를 돌아보고 오리라 결심했었는데. 그렇지만 과거의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두려웠고, 과거의 기억에 남아있는 공간들을 마주하는 것도 무서웠기에 그만두어 버렸다. 나는 어릴 적 어울렸던 동네 또래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아선호 때문인지 유난히 남자애들이 많았다. 태경, 종두, 홍두, 진무 등. 조금 무서운 동네 '아저씨'뻘로는 남철이 있었다. 많이 어울려 놀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얼굴도 기억 안나는 이름들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그 이름들과는 결별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초등학교와 결별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중학교와 결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늘 이런 식이다. 미래에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지?

- 이렇게 나에겐 "고향"이 늘 "타향"이다.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지만 지금의 '나'에게서 폭력적으로 배제된 이름들이 여전히 변치 않은 모습으로 살아있는 공간이다. 이미 한껏 변해 있는 '나'를 변해 있기 전의 '나'로 기억하고 있는 공간이다. 나도 그들을 그 때 당시의 기억으로만 기억하고, 그들 역시 나를 그 때 당시의 기억으로만 기억한다.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마치 서로에게 치부를 들켜버린 것 같은. 분명 그 때는 정겨웠던 상대들이지만 이제는 그렇게 타인이 되어 버렸다. 한두마디 섞기가 무섭게 뒤돌아설 궁리를 한다. 그래도 이제는 "고향"이 지겹고 더럽고 비천한 공간이란 생각은 집어 치웠다. 이것도 성장이라면 성장일까..

- 졸업을 거의 눈 앞에 두고 있는 나에게, 이런 기미가 또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졸업할 학교가 편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이런 내가 싫고, 이 공간이 싫고, 앞으로 마주할 공간이 어떨까 두렵다. 물론 나만 그런게 아닐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모두들 제각기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요즘엔 "허황된 겉모습"과 반대되는 의미에서, 다들 "진실되고 깊은 내면"을 각자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소중하니까요.

- 왜 "가족"은 (나에게도 그렇지만) 우리 세대 친구들에게는 거의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될까? 내가 돌아다니는 블로그의 주인들의 성향이 비슷한 것인지, 추석을 맞아 가족을 만나는 자세가 다들 한껏 우울하기 짝이 없다. 친구들도 그렇고, 역시 나도 그렇고. 그렇지만 지금 20대 초반,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10~20년 뒤에 꾸리는 '가족'의 모습은 과연 어떤 형태를 띌지? 집에서 몇 마디를 주워 들으며 우리 세대가 제 아무리 날뛰어봤자 그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쓴)웃음 짓는 사람들은 늘 있는 것 같다, 고 생각했다. 기분 나쁘게도, 이런 생각을 하던 나는 몹시도 흔들렸다.

- 이렇게 또 다시 흔들리는 나를 보며, 어느 시인의 블로그에서 봤던 글을 애써 떠올렸다. 가족이라는 제도가 인간을 어리석게 만들었으며, 인류가 균형있게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였기에 자신은 가족을 싫어한다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본능적으로 싹틀 때마다 그 싹을 찍찍 짓밟아버린다고. 그렇지만 부모들이 돌아가신 뒤에야 자신이 자식을 갖지 못함에 과장되이 헛헛해 할 것이 분명하다고. 나와 경험이 20년은 차이나는 사람이지만, 나도 언젠가는 저와 같은 생각에 완전히 공감할 날이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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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일상, 추석
일기 / 2007/09/08 00:16

'공부'를 계속 하기로 한 것이, 과연 얼마나 괜찮은 결정일까?

요즘엔 아무리 책을 들여다 보고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노트에 옮겨 적어도, 그게 나한테 이식된다거나 혹은 내가 소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질 않는다. 떠도는 텍스트들은 나의 삶에, 나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빙빙 돌고만 있을 뿐. 이게 다 무어란 말이더냐.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라며 자위하기엔 23이란 숫자가 무겁다.

<카모메 식당>을 보면, 사랑스러운 주인공이 "그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무척 인상 깊다고 생각했던 대사다. 그렇지만 만약 누군가 내게 "왜 공부해?"라고 묻는다면, 나도 지금껏 그랬듯 그저 이런 대답만 할 수 있을 따름일까? 거창한 이유를 들먹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왜 공부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만큼은 (최소한 나 스스로에게는) 대답을 마련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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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일상
일기 / 2007/09/03 23:36

오늘 같은 개강 첫날엔 이런 제목을 단 포스팅이 수 만개 쯤 올라올 것 같아서 쓰지 말까 잠깐 고민하기도 했지만, 뭐 어쩌랴 =_=;


오늘은 아감벤Agamben의 <Homo Sacer>를 읽기 시작했다. 만성적인 영어 독해력 부족으로 중간 중간 고전하기도 했으나, 버틀러에 비하면 아감벤은 수월하게 읽히는 편이다. '근대' 정치학들의 감추어진 기본 전제들을 끄집어 내서 여태껏 쳇바퀴만 돌았던 정치 담론들을 폐기하고, 여지껏 감추어져 왔던 근대 지배 권력과 담론의 원리들을 끄집어내서 한번 '근본적'으로 정치학을 재구성해보자, 뭐 거칠게 의도만 요약하자면 이런 시도로 읽히는데, 글쎄다. 어쨌든 끝까지 읽게 될지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충분히 읽는 재미는 갖춘 책 같다. 그리고 최근의 고민과도 연결되어 있는 지점들이 있고.. 아감벤의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비교적 자주 발견되는 걸 보면, 적어도 <Homo Sacer>정도는 확실히 읽어서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다가 버틀러의 <Precarious Life>도 충동적으로 빌렸는데, 과연 반납 기한안에 읽을 수 있을지...


오늘 어떤 대화 속에서 '새삼스럽게' 문득 받았던 느낌인데, 역시 '페미니즘'은 특정 집단의 전유물인 것처럼, 혹은 어떤 아우라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조금 확대 해석하면, 페미니즘에는 침범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 있기에, 혹은 특정 집단의 이해 관계에 연관된 측면이 있기에(그래서 '보편'일 수 없다는. 보편이 뭔지도 모르겠다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얼마 전에 내가 여성학 협동과정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하자, 어떤 (적어도)'친-페미니스트'였던 지인은 나에게 '용감하다'고 했다. 그와 함께 덧붙였던 말은 내가 "경계를 뛰어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사람은 선의로 말한 것 같은데다가 이곳에서 이런 글 따위에 인용되기엔 너무 훌륭한 사람이지만, 대체 뭐야, '경계'라니. 그 경계란 것은 무엇이지? 누가, 왜 설정해 놓은거지? 대체 언제부터 만들어져 있었던거지? 물론 요런 질문들도 우문인 것이 분명하지만, 현답도 나올 수 없는 것 같다. 의미를 경계 짓고 구분하는 '명사noun'의 힘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런 점들은 '페미니스트'건, '페미니스트'가 아니건 심심찮게 종종 볼 수 있는 태도인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ㅡ모든 '위험성'에도 불구하고ㅡ'페미니즘'에 그런 아우라와 '경계' 같은 일종의 판타지들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기사, 통치-행정 권력police와 구분되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s들이라면 '좌파'건 '우파'건 상관없이 때려잡고 보려는(이 상상적 집단들의 얼마 안되는 공통지점이기도 하다) 한쿡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the politics를 주장하는 몇 안되는 분야이기도 하니. (이와 관련해서 덧붙이자면, 랑시에르Ranciere는 폴리스와 폴리틱스의 논리를 분명히 구분한다. 거칠게 정리하면, 폴리스police는 이미 존재하는 포지션에 각 주체들을 배분하고 고정하는 것이고, 폴리틱스politics는 그 사회의 본연의 모습들과 존재하고 있던 포지션에 의문을 제기하고 뒤흔들어 놓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페미니즘에 '적합한' 일정한 주체들을 할당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폴리스적 논리지 폴리틱스적 논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폴리스와 폴리틱스가 명쾌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만...) 또 말이 쓸데 없이 길구만.


어쨌거나 벌써 8학기 째지만 역시 첫날은 적응 안 된다. 사람들 바글바글하고 시끄러워 앞에 앉은 사람이 뭐라 말하는지도 알아 먹기 힘든 식당은 물론이고, 열람실에 속속들이 꽉꽉 들어 앉은 고시생들이라니. 무엇보다 문제는 사범대 부근에서 10분만 서 있어도 지인들을 몇 사람씩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커피 한잔을 사먹으려고 해도 인사를 몇 번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복학한 사람들이 이리 많다니 원. 적게는 한 학기에서 많게는 몇 년씩 못보던 사람들이, 내가 가졌던 기억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서 안 그래도 처리 속도 느리고 용량도 부족해서 골치 아픈 나의 정신 세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나름대로 평온했던 학교여서 정이 들었었는데 정말 갑자기 정나미 떨어지려고 한다. 물론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개개인의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라는 사람 집단 덩어리들이다.

어떻게 하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학교 다닐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 눈에 안 띄고 벤치에 앉아 선선해질 가을 날씨의 바람을 맞으며 책을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밥 안 먹어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일 아침 9시 프랑스어 수업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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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개강, 일상
일기 / 2007/08/31 19:25

*

내일이면 9월이고 곧 개강이다. 사실 2007년이 되면서 이젠 어떻게 살아야 되나, 과연 내가 그럭저럭이나마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1학기는 잘 버텨 냈다고 평가한다. 여름 방학을 맞이 하고서는 역시 마찬가지 걱정을 했었더랬다. 그러나 지금 같아서는 마찬가지로 잘 버텨 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2학기도 마찬가지겠지. 일상에 '제도'적으로 변화가 찾아 와서 내가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늘 이렇게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듯 하다.

확실히 '불안'은 없어지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그럭저럭 버텨나갈 구석들이 생겨서 다행이다. 사실 그런 것들이 '생기는' 건지 내가 '만드는' 건지 확실히 구분할 도리는 없다지만, 어쨌든 있다는 게 다행 아닐까? 참 간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찌하랴. 그것들을 거칠게 거부해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나중에 보면 그러한 거부들이란 것들은 결국 프로이트식의 '부인disavowal'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늘상 깨달아 오지 않았던가.

*

정념의 깊이가 있는 사람은(혹은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은) 한동안 깊이 신뢰할 수는 있어도 오랫동안 '똑같이' 신뢰하기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깊이가 있으면 당연히 함정도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신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 느낌이 들 때 나는 J의 '쿨'이 조금은 부러워진다. 그 친구는 정말 '자타공인'의 쿨쟁이다(오히려 자기 자신은 쿨에 대한 개념이 없는 듯 했다). 나는 약간 무서워하며 J에게 "아마도 너의 그 '쿨'함은 상처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었고, 그 친구는 그 말을 이해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평소에 J의 '쿨'을 부러워하면서도 은근히 시샘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정신분석가가 되어 그 친구가 '쿨'한 이유를 설명해서 납득시키려고 들었다. 나와 J를 보고 있던 K가 "J 얘는 별 수 없이 진짜 타고난 거 같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정말 그런 것 같아서 웃었고, J도 웃었고, K도 웃었다. 돌이켜 보면 좀 어이 없다.

*

'나이'가 경험을 보증해줄 수 있을까. 아니, 라고 말하기엔 탐탁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우연히 찾은 흐른의 노래 <스물 일곱>을 듣고 있다. 지금은 해체한 것으로 알고 있는 푸른새벽의 <스무살>을 좋아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푸른새벽의 노래를 듣던 그 때의 나와 흐른의 노래를 듣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다를까? 지금은 확실히 흐른의 노래에 좀 더 공감가는 것 같다. 그리고 흐른의 다른 노래 <몸은 알고 있다>에 좀 더 공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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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일상
일기 / 2007/08/29 02:32

홍대 부근 극동 방송 쪽에 있는 식당 '밥'에서 맛있게 한정식을 먹고, 카페에서 세미나를 한 뒤에, '낙타'에서 칵테일과 맥주 등을 먹고 밤늦게 지하철 플랫폼으로 내려와서 다음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계단 쪽에서부터 어떤 사람이 휙- 하고 빠르게 우리 일행을 지나쳐 갔다. 나는 빠르게 그 사람을 살폈는데, 짧은 순간이었지만 되게 부러웠다-_-; 남성인 것처럼 보였는데, 정말 예뻐보이고 내가 좋아하는(혹은 닮고 싶은) '스타일'을 갖춘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 일행 중 한 사람이 "봤어요?" 라고 묻기에, 끄덕, 했더니 그 분이 "존 카메론 미첼 느낌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오, 그랬다. 완전 동의했다. 물론 미첼처럼 약간 순해보이지는 않았고 성격 있어 보였지만. 어쨌든 역시 난 어딘가 미첼 닮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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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미첼, 일상
일기 / 2007/08/23 21:55

- 방학 말이 되면 늘 이렇듯 한가롭게 보내는 것 같다. 서점 알바도 그만뒀고, 과외도 2개 밖에 하지 않는다. 동아리(?)일도 잠깐 쉬겠다고 말하여 그나마도 나가질 않는다. 덥다고 안 나가는건 사실 좀 핑계다. 그냥 나가기가 싫은 것이다. 방에 누워서 뒹굴거리며 책을 보거나, 혹은 컴퓨터 앞에 앉아 영화 드라마 따위를 보거나, 그러다 배고프면 뭐 같은 걸 대충 불러먹거나, 그것도 질리면 지인을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고 얘기라도 좀 나누거나. 우울하지도 기쁘지도 뭔가를 욕망하지도 않는 그저 무덤덤하게 보내는 하루하루네. 이런 생활은 나름대로 '평화'롭지만 앞으로 개강하면 단박에 깨어져 버릴 터라서 은근히 스트레스도 받고 있다. 흐흐.

- 요즘 정말 식욕이 없다. 더위 먹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뭘 먹어도 다 똑같다는 느낌이다. 스파게티를 먹어도 찌개류를 먹어도 라면을 끓여 먹어도 과자를 먹어도, 다 똑같이 일단 먹으면 불쾌해지곤 한다. 속에 들어가면 종이 뭉치를 삼켜버린 듯 영 찝찝하고 그냥 토해내고 싶다(근데 이거 무슨 병 있는 건 아니겠지?;). 원래 딱히 미식가도 아니었고 식탐이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었는데, 요즘엔 좀 과해진 것 같다. 오죽하면 통장 재고가 아직 몇 주는 살 수 있을 만큼 남았는데도, 먹는 데 쓰는 돈이 점점 더 아까워질까; 아무리 싼 먹거리가 나쁘다 중국산 찐쌀이 섞였다 어쩌고 저쩌고 해도 그냥 가장 싼 음식이 가장 좋은 음식이란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역시 학기 중에 맨날 하는 김밥 라이프가 최고라니깐(;;). 번거롭지도 않고 선택하는데 고민할 필요도 없고. 약속 잡아 큰 식당가 주변에서 사람 만나는 일이 생기면, 대체 뭘 먹어야 될까 나가기 전부터 머리 싸매고 고민하느라 만나기도 전에 지쳐서 나간다. 나 같이 '선택 장애' 있는 사람은 자꾸 이것저것 많이 있으니 취향따라 골라 먹으라고 그러면 스트레스만 받는걸. 거기에 상대방까지 '선택 장애' 있으면 흐흐, 만나면 정말 웃음밖에 안 나온다ㅎㅎ 정말 식당 들어가서는 "괜찮은 걸로 아무거나 주세요" 하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라는(그럼 알바하시는 분들 굉장히, 혹은 은근히 스트레스 받으신다;)-_-

- 여유롭지만 사실 좀 늘어지게 있다 보니, 글 쓰려는 욕구도 많이 줄어 들었다. 쓰고 싶은 소재들은 정말 많은데, 굳이 이렇게 앉아 글을 쓰고 싶지도 않고 사실 글을 써봤자 맘에 드는 글들도 안나온다. 그냥 책이나 보고 영화나 보고, 당분간 이러코롬 사는 수밖에; 쩝;

- 정말 진심으로 이사가고 싶다. 지금 사는 세명 들어가면 꽉 차는 이 방을 쫌 벗어나서, 침대도 있고 씽크대도 있고 약간 큰 책꽂이도 서너개 쯤 놓을 수 있게 한 일곱 명 쯤 들어와 놀아도 좁다는 느낌은 많이 안들 정도의 넓이에 베란다도 있어서 화분이라도 좀 몇 개 놓고,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다. 당연히 남향이어서 햇빛도 잘 들어와야 될 것이고, 아예 방이 꼭대기 층이어서 옥상이랑 가까우면 더욱 좋겠다. 신경 쓰이는 이웃들이 없는 공간이면 쫌 더 좋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런 투명 냉장고를 갖고 싶다. 꼭 이렇게 큰 것은 아니더라도, 얼마전 봤던 영화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에서 사토코(이케와키 치즈루)가 자기 방에 갖고 있던 딱 그 사이즈의 아담하고 쪼그만 투명 냉장고! 그 안에 반찬통 이런 것들 넣어 놓지 말고, 딱 예쁘게, 맛있는 맥주나 음료수들 넣어 놓고 밤에 잠 안 올 때 달 뜬 하늘 보면서 (먹기 보다는) 그냥 구경하고 싶다(;;). 다른 것들 막 넣어 놓으면 분명 굉장히 지저분해 보일테니 단일 제품이나 유사 제품으로 예쁘게 정리해서 넣어 두면 볼 때마다 기분 좋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영화 <영원한 여름>에서 재수하던 캉정싱(장예가)의 자취방에도 그런 투명 냉장고가 있었다. 그 투명 냉장고에는 밤에 내용물들을 볼 수도 있게 작은 램프도 달려 있었다. 후이지아가 정싱의 방에 문을 따고 들어가서 우유에 무슨 메시지를 남겨서 넣어 놓는 장면이 있었는데, 앞 뒤 맥락 없이 그냥 그 냉장고가 너무 예뻐 보여서 무척 탐냈던 기억이 난다. 출시 되면 꼭 사고 싶다 흑. 이미 일본이나 대만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진 제품인 것 같다. 영화에도 나오는 소품일 정도면 최소한 출시는 된 제품이겠지. 왜 한국에서는 이런 냉장고를 볼 수 없는걸까? 좀 만들어 주시면 안 되나요? ㅠ_ㅠ

- 요즘 핸드폰 업체에서 무슨 가입 유치를 위한 대규모 행사라도 하는 걸까? 최근 며칠 간 번호가 바뀌었다는 사람들의 문자가 쇄도하고 있다; 오늘만 따져도 3통, 어제도 3통이던가.. 나도 생각 같아선 확 바꿔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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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일상
일기 / 2007/08/03 00:06
        

                황 인 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그러나 강가에 함께 서서는 손을 꼭 잡고 있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오늘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왔는지 몰라 허전하지만 또 덤덤하게 시간을 보내며, 편히 대하고 싶으나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을 떠올리며, 나의 거짓부렁이들을 모두 믿어버리는 사람을 떠올리며, 내가 한 때 거부했지만 그리워진 사람을 떠올리며, 거리를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 사람을 떠올리며, 나에 대한 친절과 보살핌에 감사를 표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며, 신뢰라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게해 준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며, 어느 덧 마음 속 깊이 아끼게 된 사람을 떠올리며, 아직 부치지 않았지만 너에게 수신되었을 나의 메시지를 생각하며, 내게는 수신되지 않을 너의 진정된 이야기를 상상하며, 당장이라도 파국으로 치달을 것 같은 불안을 느끼고, 절망과 슬픔으로 위장한 닳디 닳은 도피의 공간으로 나를 몰아 세우고, 날 선 감정을 감추지 못했던 얼굴이 부끄러움에 벌겋게 타오름을 느끼고, 질투와 시기로 얼룩지고 헤져버린 마음을 다시 추스리며, 그렇게 여느 때와 똑같이 8월 어느 날의 무더운 밤을 보내는, 그 집요하고 또 지겨운 하루, 그리고 8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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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 일상
일기 / 2007/07/26 19:48

- 어제부로, 태어난지 22년이 지나 23년째로 돌입했다. 23살(만 22살), 대학 4학년..

- 나는 생일이란 것은 특별한 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이 날'만' "(개인에게)특별한 날"이라고 축하하고 법석 떠는 것이 귀찮고 번거롭기도 하거니와(나 뿐 아니라 지인들까지도), 일종의 자기 비하 의식까지 합쳐지고, 게다가 태어난 날을 축하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거북하여 생일이란 것과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꾸 생일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도 영 찝찝했었고.

- 그렇기에 작년 같은 경우에는 최대한 생일임을 감추고 싶어서 "7월 25일은 내 생일이 아니야," 라고 홍보하고 다니는 웃기지도 않는 촌극을 벌인 일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얼굴 벌개질 일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굳이 억지로 챙기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냥 상황이 흘러가는대로 내버려 두기로 한 셈이다. 어찌 되었든 꽤나 많은 지인들 덕분에 이번 생일은 정말 소소하게 잘 보낸 것 같다. 생각보다 축하도 많이 받았고, 재밌게 놀기도 했고, 생각지도 않던 곳에서 정말 반가운 전화도 오고. 역시 생일은 사람들과 '같이' 보내는게 더 좋은 듯 하다. 생일 축하 해준 여러분들, 고마워요.

- 중앙대 대학원 총학생회 하계 학술특강에서 민승기 씨의 "지젝: 헤겔과 라캉 '사이'"라는 강연을 어제 처음 갔었다. 첫 번째 날은 가지 못하고 두 번째 날부터 간 셈인데, 처음 강연을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할 정도로 강연은 매우 만족스러웠다(게다가 헤겔이 흥미롭군, 이라고 생각한 것도 거의 처음이었다!). 교재 복사비 5,000원을 내고 3~4시간의 재미있는 강연을 여러 번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분명 흔치 않을 것이다. 정말 민승기씨는 말 그대로 진행도 "유려"했으며, 노련함을 풍겼고, 적절한 유머 센스까지 갖추고 있었다. 타고난 강의 능력 뿐 아니라 강의 준비에 들였을 많은 시간과 노고까지 느껴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들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 방학도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내 주변에 있는 누구나 다 '불안'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줄 수 있길..

- 난 논쟁(특히 언쟁)이 몹시 피곤하다. "모든 주장은 찌르고 움직여야 한다"는 서동진씨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그것은 매우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너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나의 말을 조심스레 건네고, 동시에 서로의 표정과 행동을 주의 깊게 읽고, 그것이면 일단은 족하다. 그리고 서로의 의견에 대한 생각을 숙고하여, 서로를 '향해' 글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제나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그 정도는 실천 할 수 있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논쟁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 다시 말해 나는 천상 말을 많이 해야하는 분위기를 꺼리는 것이다. 내겐 어떤 사람과의 친밀함을 측정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대화 중에 침묵의 시간이 있을 때 상대방이 얼마나 불편함을 느끼는지를 본다. 그 사람이 많이 불편함을 느끼면, 나도 그 사람이 불편해진다. 나는 침묵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많이 할 때는, 대체로 불안할 때이거나 상황이 불쾌할 때이다. 물론 많이 불쾌하면 아예 입을 다물고 상대와의 마음 속의 커넥션을 끊어 버리기도 하지만...

- 물론 나는 대화 치료(talking cure)를 믿고 그것을 실천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것 보다도 (매우 어색하지만 굳이 말을 만들자면) 존재 치료(being cure)를 더 믿는 편이다. 일단 존재 치료가 반드시 전제된 뒤에야 대화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거칠게 예를 들자면 서로에게 서로의 존재가 승인된 사람과의 1분 간의 접촉이(대화를 하든 그렇지 않든), 별로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100분 간의 이야기보다 훨씬 치료의 효능이 좋다는 것이다. 나는 언어를 별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 나의 사자성어 심리테스트 두 번째 결과는 "이심전심"이었다. 이건 너무 부끄러워서 여지껏 말하고 다니지 않았으니, 일종의 고백인 셈이다. 이제는 별로 부끄럽지 않다.

- 나도 수다쟁이는 '남성'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상대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대체로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떠들어 댄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에서는 자기 자신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타자를 직접적으로 동원한 자기 겉 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 <수다>는 대체로 '여성'의 것으로 간주되며, 소위 '일상적'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대화의 소재), 그리고 몇 시간씩 앉아 떠드는 것(대화의 방법)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정의하는 수다는 "상대방의 인정과 공감 유무와는 상관없이 (서로가) 자기 이야기만 내내 떠드는 것"이다. 그것은 대화의 행위자, 소재, 방법과는 상관이 없다. 따라서 내게 있어 수다는 대체로 관계 무능력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단언하건대 나는 내가 아는 '여성'들의 대화에서 '수다'의 징후를 발견한 적이 거의 없다.

- 덧붙이자면 나는 정희진씨의 이 말이 90%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안 때리고 바람만 안 피워도 '좋은 남자'가 된다", 는... 물론 이 말은 너네 못난 남자들 각성해서 더 '좋은 남자'가 되어 더 잘 먹고 잘 살아라! 라는 따위의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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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07/07/18 03:08

나는 사실 음식으로 건강 문제가 해결된다는 둥, 하는 말을 믿지 않는 편이다. 물론 단지 특정 음식을 먹으면 어떻게 된다 수준의 것이 아니라, '식습관'이라는 장기적인 어떤 프로젝트를 통한 몸의 변화라면 가능하다고는 생각 한다. 예컨대 내가 (특히) '다른 사람'들 만날 때에는 고기를 되도록 먹지 않는 것은, 어쩌면 오래된 일종의 실천을 통해 가능해진 나 스스로의 변화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내부에서의 어떤 변화까지 포함해서 어떤 '식습관'이라는 것의 변화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지 습관의 문제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몸의 변화까지 가져온 것 이었다. 나는 이제 일정량의 고기가 몸에 들어가면 다음 날 하루 종일 배가 고생하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잡 얘기가 길었는데, 어쨌든 최근에 어떤 '디톡스' 음료를 우연히 먹은 적이 있다. (디톡스란 몸의 독소를 빼내는 것을 말한다.) 평범한 녹차 음료수였는데, "디톡스 음료로 하루를 바꿔보자"는, 그런 내용의 광고가 실린 뻔한 음료수였다. 그런 약간의 특징을 잡아 두고, 가격은 동급의 상품에 비해 높이 받는 흔한 상품이었으나, 동네 가게에 그것 밖에 없어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 녹차를 먹고 조금 지나가 조금 있단 우울한 기운도 약간은 사라지는 것 이었다. 최소 1시간 가량은 약간은 업된 상태(일종의 조증 상태)로 지낼 수 있었다. 그것이 그 녹차의 효능인지 아닌지 알 턱이 없지만, 나는 집에 들어오는 길에 바로 그 녹차 1.5l 짜리를 구입해버렸다.

이제는 아침마다 그 '디톡스' 녹차를 벌컥벌컥 마신다. 그럼 정말 신기하게도 하루의 시작이 정말 상쾌한 기분이다. 물론 성분 함량을 보면 정말 어떤 '디톡스' 성분이 들어간 것 같지는 않다(그런 것이 가능하다고도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일까? 어쨌든 덕분에 '디톡스'에 관심이 많아 졌다. 디톡스에 좋다는 힐링 요가 책도 구입을 해버렸고, 디톡스를 실천했다는 분의 블로그에 가서 그 일지를 여러번 훔쳐 보았다. 내가 자주 어깨가 결리고 목이 뻐근한 것도, 그 블로그에서는 디톡스를 하면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경험을 풀어 놓는다. 나한테는 매우 매력적이다. 그러면서도 아, 역시 이게 누구네가 말하던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생 담론'인가, 이러고 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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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조각들 / 2007/07/11 02:02

한 사상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또 깨닫고 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보통 마조히스트라고 누가 그랬다)

앨피에서 한창 나오고 있는 루틀리지 출판사의 <Critical Thinkers> 시리즈는 책 한 권당 한 사상가를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맨 뒤를 보면 "~의 모든 것"이라고 하여 그 사상가의 저술은 물론 그 사상가에 대한 다양한 저술, 그리고 참고할 만한 문헌들을 소개해주고 있어 상당한 도움이 되고는 한다. 내가 누구의 전공자도 아닌 이상 특정 사상가만 공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최소한 '깜'정도는 잡기에 적절한 수준으로 생각되기에 많이 수집해 두고(역간된 것 중 2개만 빼고ㅡ폴 드 만, 스튜어트 홀ㅡ모두 갖고 있다. 구입하지 않은 2개는 영 꺼림찍해서 안 샀다) 틈틈히 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상가인 보봐르, 크리스테바, 그리고 자그마치 버틀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와서 세 권 모두 구입했다. 그런데 어제 갓 받아본 <주디스 버틀러의 철학과 우울>의 "버틀러의 모든 것"은 좀 특이했다. "'필수적인' 이론적 읽을거리"라는 파트가 따로 있는 것이다(보통 다른 시리즈물은 그냥 '읽든 말든' 수준의 권유에서 그치고 만다). <The Judith Butler Reader>의 편집자인 사라 살리Sarah Salih가 저술한 책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그마치 "필수적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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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엇이 있을까하여, 살짝만 훑어봤더니 이건 거의 인격모독 수준이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 보봐르의 <제 2의 성>(* 읽어야는데;;), 푸코의 <성의 역사>(* 이건 조만간 사려고 생각중..), 프로이트의 <애도와 우울증>, <The Ego and the Id>, 헤겔의 <정신현상학>, 라캉의 <에크리Ecrits>(* 이건 번역 소식은 들었는데, 대체 나올 수는 있는건가; 번역이 엉망일거면 아예 나오지 않기를 바랄뿐),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은 물론 게일 루빈, 모니크 위티그, 크리스테바(* 땡스, 루틀리지!), 맥키논, 데리다 등 정신없이 많은 저술들이 "필수적인"이라는 이름하에 제시되어 있다. 물론 그 앞에 버틀러가 쓴 논문을 골라 놓은 것과, 버틀러 인터뷰, 버틀러의 저서 및 공저도 많은 양이 제시되어 있지만, 사라 살리는 "필수적인"것으로 제시한 것을 '필수적'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한 사람의 모든 사상을 날로 먹자는 것도 아니지만, 이건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닐까? 버틀러를 그나마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오려나. 버틀러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인 사람들은 당최 버틀러를 읽기는 읽은 걸까? 세미나를 하고 꾸역꾸역 원문으로 보려고 발버둥을 쳐도 자꾸 거리감만 생긴다. 왜 그렇게 당신은 멀리에 있나요. 이 쯤 오면 옷깃에라도 닿을 줄 알았더니, 당신은 왜 안드로메다로 훌쩍 날아가 버리신 건가요;ㅁ; 아니다. 이건 주디스 버틀러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라 살리가 버틀러를 독점하기 위해 독자들을 모욕하려는 음모임이 틀림없다 =_=;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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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조각들 / 2007/06/27 22:43

경험적으로 흔히 ‘포스트-’ 하다고 명명‘된’ 지식인들에 관한 세미나를 하다보면 흔히 나오는 비판/난들은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관념적이다”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곧바로 이어서 나오는 문제제기는, 곧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이다(물론 이는 김훈식의 굶주림과 배채움의 차원이 아닐 수도 있다). 거칠게 말해,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이 저기에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배부른 것이 아니냐는 혹은 올바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즉 이들이 하는 문제제기를 정리하자면, 흔히 ‘포스트-’한 것들은 그다지 ‘절박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 나의 뒤틀린 오버가 시작된다. 읽기 싫은 분들은 읽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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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일상
일기 / 2007/06/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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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학교에 있는 병원에 간단한 수술을 예약해 둔 터라 마음이 무겁게 집을 나섰다. 셔틀버스 줄이 보였지만, 마음도 싱숭생숭해서 그런지 괜히 택시를 타고 빠르고 편하게(학교까지는 기본료 1900원이 나온다) 가고 싶어서, 택시를 성큼 잡고 "학생회관이요"를 외쳤다. 택시 기사분이 막 출발하려는 찰나, 골드 펄 색의 SM5가 택시 앞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빠른 속도로 쐑- 들어 가버렸다. 단 1초만 먼저 출발했어도 충돌 사고가 날 뻔 했던 순간이었다. 택시 기사분은 거의 순간적으로 욕을 내뱉었고, 나는 그 분의 몇 마디 욕설에 마음이 또 불편해졌다.

출발해서 약 50m 쯤 갔을 때, 그 분은 괜히 욕설을 한 것이 미안하거나 신경쓰이는지, 조금 더 안정되고 차분한 목소리로 누구한테 건네는지 모를 이런저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분명히 잘못했다, 깜빡이도 안넣고 그렇게 빠른 속도로 커브를 꺾은 것은 잘못이다, 등등. 나는 그 말에 굳이 대꾸할 필요도 못 느꼈고, 방금 전 그 분이 내뱉은 거친 욕설에 마음이 영 개운치 않은지라 묵묵부답으로 창밖을 내다볼 뿐 이었다. 그 분은 곧 말을 접고 운전에만 몰두하셨다.

생각해보면 택시 기사 분들이 욕설을 내뱉고 이런 저런 말을 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만났던 그/녀들은 매우 귀찮아하고 불편해 했다. 나도 그런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고, 좀 심하다 싶은 분을 만날 때마다 영 불편한 마음에 친구들을 만나면 그 택시 기사 분을 씹어대고는 했던 것이다.

택시가 정문을 지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택시 기사분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하는. 택시 기사는 친절해야 하고, 말을 붙여 귀찮게 하지 말아야 하며, 얼굴엔 항상 웃음이 있어야 하고 당연히 욕설 따위는 내뱉어서는 안된다는, 우리들의 암묵적인 기대감이 있어 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기대감에 충족되지 않는 기사 분들을 마구 씹어대는 것에 대해서 일말의 죄책감이나 윤리적 책임감도 느끼지 않아왔던 것은 아닐까. 택시 기사 분들에 대한 암묵적인 기대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유래한 것일까.
 
그런 나의 정리되지 않는 생각은, 정문 근처에 하루 종일 서 있는 청원 경찰 아저씨의, 그리고 게이트를 지나면 주차 티켓을 건네 주시는 아주머니들의 가슴 한 켠에, "친절 봉사, 항상 웃으며 모시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서 좀 더 복잡해졌다. 아, 이건 정말 아니구나,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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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일상
일기 / 2007/06/2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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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내내 염원해 왔던 방학도 1주일이나 지났다. 덕분에 나는 '해야할 일must do'에 치일 일이 없어졌다. 나를 옭아맬 뻔 했던 계절수업도 드롭을 확정했다(어찌나 시원하던지! 다만 드롭하면 '절교' 라는 친구님이 조금 난감..). 그렇다고 하여 일이 아예 없으면 언제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엔 '해야할 일have to do'들이 있기에 좀 더 즐거운 일상이다. 예컨대 책을 사 모으고 읽고 하는 짓, 여러가지 강좌를 신청하고 수강하는 것, 프랑스어 배우기, 어떤 책 내는 프로젝트, 그리고 세미나. 그리고 그것들을 압박 덜 받고 하기 위한 약간의 금전적인 배경도 어느 정도는 잡혀간다. 문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블로깅 하고 있는 동안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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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 어떤 손님이 불쑥 들어왔다(당연히 누구든 노크를 하고 들어오진 않는다). 오랫동안 알바를 하다 보니, 이 서점에 자주 오는 분인지 혹은 생전 처음 오는 분인지 가릴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분은 아마도 처음 오는 분인 것 같았다. 그 손님의 온 몸에선 향수 냄새가 진동했다(나는 향수 냄새를 좋아하지만, 그 손님은 너무 과했다). 고개를 돌릴 때도, 팔을 움직일 때도 너무나 독한 향수 냄새는 서점을 잠식해 들어갔다. 그렇게 잠시 둘러보던 그 손님은 다짜고짜 나에게 "이 서점에서 제일 잘 나가는 책이 뭐에요?"라고 묻는 것이다. 나는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고, 마침 능력자인 사장 아저씨가 계셔서 그 분을 데리고 이런 저런 책을 추천해 주셨다. 그 손님이 들고온 책은 내가 좋아한 적이 없는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였다.

계산을 하면서 그 손님을 힐끔힐끔 보았다. 방금 머리를 감거나 미용실에서 드라이를 한 듯한 풋풋한 머릿결에(저녁인데도!) 신경써서 입은 듯한 옷 차림새, 그리고 무엇보다 손에 들린 선물꾸러미! 매우 비싸보이고 맛있어 보이는 아담한 케익 상자, 다른 봉투에는 화려하게 포장된 선물(들)이 있었다. 이제는 책까지 선물인 것인데, 게다가 책 제목도 <우리는 사랑일까?>이다. 이 책도 선물 포장해달라는 그 손님의 말에, 나는 포장지도 조심스럽게 골랐고 포장도 세심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 직감에, 그 손님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것도 비교적 최근. 발그레한 얼굴에 설레는 느낌에 반짝이는 눈빛, 신경쓴 옷 차림에 곧 '그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특유의 긴장감과 초조함까지 섞여서 분주함마저 느껴졌다. 빨리 가야하는데 왜 자꾸 포장은 늦는걸까 하는 책망의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는 터에 나는 마음만 급했다.

책 포장한 것을 건네면서 나는 사랑에 아무래도 단단히 빠져버린 듯한 그 손님이 무척 부러웠으며 괜한 질투가 났다. 아직은 무척 퐁신퐁신해보이는, 아무래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혹은 아직은 설레는 짝사랑의 느낌으로 보이는 그 사람이(만약 그렇다면 상대방의 마음은 확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은 상처를 받지 않았거나 상처 쯤은 간단히 무마할 수 있는 카텍시스를 하고 있었을 그 사람이 나는 어느 정도는 부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물론 그 손님의 과도한 선물은 보상받지 못한 사랑의 반대급부로써의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어젯 밤 그 손님은 케잌과 선물 꾸러미 그리고 <우리는 사랑일까?>를 들고가서, 상대방에게 푸짐하게 건네며 "우리는 사랑일까?"를 물었을 것이다. 결과는 어찌되었을지 궁금하지 않다. 다만 나는 그 손님에게 괜한 투정이라도 부리려는 것인지, 으레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손님에게 건네는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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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얼마 전 내가 사는 동네 주변으로 이사 왔다. 고시 공부를 하기 위함이다. 안 그래도 고시생으로 바글바글한 이 동네에 고시생 한 명이 추가된 것이 좋은 일인지 슬픈 일인지 이제는 판단도 잘 안선다지만, 여튼 제법 반가웠다. 예전에 책을 좋아하던(그리고 작가 지망인) 그 녀석 집에 한 번 찾아가서 책장을 찬찬히 훑어 보았다. 역시 고시생답게 법전 책이 많았는데, 책을 펼쳐 보고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한국 국민으로 등록되어 있기에 법 관련 서적이나 모의고사를 보면 한 두문제는 맞출 수 있겠거니 했건만 당최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 먹을 것 같아 퍽 당황했다.

친구한테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투덜투덜 댔더니(그 아이에게 법 문제-유서 관련-를 하나 냈는데, 못 맞췄다.ㅎㅎ) 그 녀석 하는 말이 우문에 현답 같은 꼴이다. "나도 니 공부하는 책 보면 하나도 못 알아 먹을걸?" 그렇다. 다 같은 한국어로 쓰인 책이라 하더라도 스키마나 에피스테메에 따라, 혹은 나름의 '문법'에 따라, 생전 처음 보는 것이라 해도 얼마든 인식 가능할 수 있고 또 얼마든 인식 불가능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요즘 보는 버틀러, 지젝, 스피박 이런 저자들의 책에 대해서 그녀석은 거의 한 장도 독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법전 책을 한 장도 넘길 수 없듯이..


-

그렇다면 내가 이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고 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내가 앞으로 공부를 계속해서, 좀 더 '전문적'이거나 '학술적'인 글쓰기를 한다고 했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전혀 못 알아 먹으면 하나마나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면 교지에 글 쓸 때도 그랬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내가 공부한 것들을 글에다가 마구 휘둘러 댔고(그건 폭력이었다!) 결국에는 여러 가지 지적을 받으면서 하나하나 빼고 글을 다듬고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빼다보면 내가 의도했던 것들이 드러나지 않거나 삭제되는 것 같아 기분이 퍽 나쁘기도 했지만, 만약에 수정하지 않았다면 그나마 독자들이 내 글을 읽었을지도 의문이다.

사실 이 시대 이 땅의 독자들은 결코 참을성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심지어 같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 조차도 성실한 독자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측면이 있었다. 오늘날 자신의 글을 성실하게 읽어 주는 독자를 가진 작가가 얼마나 될까. 하다못해 나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설이 나와도 사두기는 하더라도 잘 읽지 않으며 읽어도 대강대강 읽는다. 그리고 만약 공부를 계속한다고 하더라도, 동료들은 나의 글과 논문을 성실하게 읽어줄까? 안 그래도 넘쳐나는 활자 텍스트에 거의 신물이 날 지경의 사람들이? 반대로, 나도 동료들의 글을 성실하게 읽을 수 있을까?


-

어쩜 이런 것은 아마도 이미지의 중독성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자-텍스트'가 끈질기게 설득하고 또 부지런하고 꼼꼼한 독해를 요구하고 때로는 엄청난 뒷 배경을 요구하지만, '이미지-텍스트'는 모든 것을 한 눈에 보여주는 명쾌한 특성을 갖는다. 물론 '이미지-텍스트'에도 그림이나 사진과 같은 정적인 부류와 영화와 같은 상대적으로 한 눈에 관찰하기 어려운 동적인 부류로 분리할 수 있다지만, 역시 '이미지-텍스트'의 명쾌함은 '문자-텍스트'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법이다. '이미지-텍스트'란 얼마나 간단한가. 체 게바라의 평전을 읽는 대신, 그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를 방에 붙여두고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면 되는 것 아닌가. 그의 얼굴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굳이 무거운 책 안들고 다니면서도, 또 귀찮고 눈 따갑게 책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얼마든 소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이미지-텍스트도 엄청난 뒷 배경을 요구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예컨대 미술 작품 따위랄까..)

<꿀벌의 언어>를 보면, 플로베르는 생전에 자기의 소설에 삽화를 넣겠다고 하는 출판사에 역정을 낸 적이 있다고 한다. "삽화는 반 문학적이다. 내가 보여주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쓴 것을 그렇게 쉽게 보여주려고 하는 바보들"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역정이 이해가 간다. '이미지-텍스트'는 세계를 집어 삼킨다. 일부는 잘라내고 또 일부는 붙박음질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왜곡이 없는 세계 그 자체/전체로 받아들여진다. 그 강한 설득력으로 '이미지-텍스트'를 소비하는 우리들의 인식도 가두어 둔다. 결국 '이미지-텍스트'는 작가 지향적이다. 반면 '문자-텍스트'는 플로베르가 말했듯 세계를 잘 보여주지 않거나 (아마도)잘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작가가 잘 풀어놓는다 하더라도 감추어지고 드러나지 않는 의미는 독자가 채워넣어야 한다. 결국 '문자-텍스트 읽기'란 작가의 영역이 아니라 독자의 영역에 가깝다. 독자는 적극적으로 이를 행해야 한다. 피곤하고 또 혼란스럽기에 에너지를 많이 뽈아먹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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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일상
일기 / 2007/04/29 10:00
# 푸념이라도 좀 해야 겠다. 아, 일들이 밀려 있다. 사실 밀려 있다기 보단 한꺼번에 찾아왔다. 그것도 내가 여유가 없을 때. 회피를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해도 늘 꿈자리가 사납기만 하다. 아침에 일어나도 사지가 굳어버리고 머리는 깨져버릴 것 같다. 이부자리가 영 불편한데도 그 안에서 나오기가 싫다. 요즘 가장 끔찍한 순간은, 핸드폰 알람소리를 듣고 눈을 뜨는 순간이다. 그리고 창문 사이로 한가득 포근하게 들어오는 빛을 인식하는 순간. 아, 젠장.

# 사실 일들이 밀려 있다고 해서 하등 힘들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무런 일이 없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닌 것처럼. 때론 일이 없는게 힘들때도 있지 않았던가. 사실 나에게 있어 힘이 소진되는 경우는 거의 관계 때문이다. 물론 힘을 얻는 것도 거의 관계 때문이다. 일이 이보다는 10배쯤 많아도, 관계가 힘들지 않다면 그 일들도 별로 힘들진 않다. 하지만 어제는 하루종일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이 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날이었다. 사실 뭐가 그렇게 심사를 뒤틀리게 했는지, 지금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나에게 그렇게 힘들어 할 정도의 관계란게 있었나,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내가 워낙 충동적인 녀석이 되놔서 그런지, 어제는 그냥 무척 기분이 나빴고 눈물이 터져 나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방에 비적비적 들어가면서 끊기로 했던 맥주를 샀다. 그래놓고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10여분이나 넘게 해버리고(환경 범죄다), 영화를 틀어놓고 맥주를 뱃속에 들이 부었다. 술로 찐 뱃살은 빠지지도 않는다던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별로 소용 없었다. 10여분 만에 700ml 큐팩을 다 들이부었던지라 빠르게 취기가 올라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는 기분 나쁜 꿈을 한가득 꿔 버렸다. 아, 젠장.

# 이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온 몸에서 뭔가 스믈스믈 빠져나가는 듯 하고, 머리 속은 항상 뒤숭숭하다. 글을 쓰더라도 항상 푸념 일색이고, 영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당혹시키고는 한다. 당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또 짜증이 솟구치고, 표정은 자꾸만 일그러질 따름이다. 논쟁을 하는 것도 뇌가 쪼옥쪼오옥 빨려나가는 것 같아 퍽 불쾌하다. 어제만 해도 같이 있었던 조원들은 나를 퍽 불편해 했을 것이다. 하는 일도 없는 주제에 얼굴에는 어두운 기운이 가득했을테니. 말투에도 상당히 독기가 품어져 있었던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나를 만들어버린 사람이 더 싫어졌다. 아, 젠장.

# 모든 고양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지만, 나는 고양이에게 배워야할 점이 무척 많은 것 같다(새삼스런 휴머니즘).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는데, 하나만 들자면 '적당할 때, 아쉬울 때 끊기'. 다시 말하자면 즐거움이라는 것이 고통으로 전화하는 그 순간을 지시하는, 그 향락의 순간을 이 녀석들은 알고 있는 듯 하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선, 녀석들은 정말 대단하다! 나는 정말 그런 것 못하는데. 아, 젠장.

# 사람들이 "~에 대한 OO의 독법은 사기(혹은 오독)다!" 식의 말들을 할 때, 그것이 무엇을 지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특히 그것이 악명 높은 "~"씨들, 예컨대 라캉, 헤겔, 스피박 등 일때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런 글이 블로그 따위에 기재되어 있을 때, 그것에 적극 공감하는 사람들도 꽤나 보이는데(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지독한 경멸의 함의를 띈다), 글을 쓴 사람과 공감하는 사람들이 과연 같은 것을 지시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 행위를 하면서 무슨 오르가즘이나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끼는건진 모르겠으나, 무슨 교조주의자들도 아니고. 아마 5분만 얘기하면 각자가 딴 기의를 지시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될 거면서. 물론 그 푸념같은 목소리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치만 이러한 경우엔 어떤 지식층의 특권 같은 것들이 자꾸 연상되서. 어쨌든, 아, 젠장.

# 어떤 이론 따위로 실재하는 개인을 비난하고 깔아 뭉개는 것은, 난 정말 윤리적 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문단 비평계의 여성 소설가들ㅡ특히 공지영씨에 대한 신랄한 비난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 중에서 특히 내가 가장 혐오하는 비평은 <감정의 낭비와 허위의식, 90년대 여성작가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난 이것이 어떻게 '전문적'이고 '이론적'인 글인지 잘 모르겠다만, 일단 문학비평지에 실렸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허망한 탈을 뒤집어 쓰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이건 거의 증오범죄hate crime다.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전문'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서사들에 저지르는 온갖 범죄들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물론 좀 더 세련된 방식의 이야기들도 있다. 예컨대 <공지영의 상처>와 같은 글들. 물론 다른 험악한 비평들과는 다른 맥락에 있는 것 같지만, 읽으면 묘하게 불쾌해진다. 뭐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젠장.

# 자꾸만 미안해지는 사람이 있다. 별로 건강치 않은 관계인가. 아...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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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07/04/12 02:17

# 4학년이 된 지금에 와서야 처음 듣는 철학과 수업인 <서양근대철학>의 과제는 데카르트의 <성찰>중 제2 성찰, “인간 정신의 본성에 관하여; 정신이 물체보다 더 쉽게 인식된다는 것”의 ‘밀랍의 예’를 통해 그것ㅡ제목 그대로ㅡ을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고작 A4한 장 남짓한 분량으로 쓰면 되는 것이기에, 그리고 데카르트만큼 분명하고 쉬운 언어로 사유를 전개하는 철학자는 드물다는 생각에 방심하고 있었건만, 막상 해보니 나름대로 만만치 않아 골머리를 좀 썩었다. 지금은 좀 정리가 되었지만, 글을 써 내려가면서 계속해서 이와 관련된 오만가지 생각들이 뻗쳐나가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사유는 글을 만들지만, 한편으로 글이 사유를 만들기도 한다는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와 닿았다.

# ‘상처’를 주는 행위 자체가 문제일까, 혹은 우리들이 ‘상처’를 대하는 태도가 문제일까. 이렇게 문제 지형을 만드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지만, 거의 병적으로 ‘착함’에 집착하는 경우들을 보면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그 누구에게도 ‘상처’입히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는 모든 것들과 상생하고 공존해야 한다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서 퍽 불쾌하다. ‘비판한다’는 것은 무슨 짓을 어떻게 하더라도 ‘상처 입힘’을 전제로 한다. 제 아무리 착한 말로 예쁘게 꾸며대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만을 주기위한 비판은 한편으로 당연히 비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배치되는 맥락에 따라서 판단이 얼마든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상처 입히면 안 된다는 ‘당위’로 연결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리포트 첨삭을 보고 괜시리 짜증나서 써버렸다)

# 나는 위와 이어서 보면 결국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 류의 생각들이ㅡ그것에 정치적으로 동의하느냐 어떻느냐 와는 별개로ㅡ어떤 면에서는 문제적이라고 본다. 그것은 지극히 정치적인 언표로, 즉 특정한 상황에서 실행 가능한 ‘전략’이라는 점에 국한되고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결코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언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어떤 초월적 ‘법’의 명제로 모든 윤리적 행위들을, 가능성들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것 아닌가. 또한 그것들이 어떤 정치적 포지션에 있냐는 질문들을 가능하지 못하도록 하는 위험한 도구가 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어떤 ‘선험적’이며 따라서 충분히 ‘노예적’이며 굉장히 쉽고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멍청한 도덕적 ‘미망’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디 가서 “어떻게 모든 생명이 같아?” 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얻어맞을 ‘도덕의 펀치’가 매우 두렵기는 하다. 어쩜 그렇게 즉각적이신지. 난 그래서 입을 꼭 다문다. 그 많은 이론들의 발전과 운동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이 별로 치열하게 ‘정치적’이지 않음은 충분히 미스터리다.

# 몇 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대하기가 쉽지 않다. 예전엔 만나기 ‘거북했다’면, 이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다’. 갈수록 울림을 주지 못하는 이름이 늘어만 간다. 나 역시도 그들에게 울림을 줄 수 없겠지. 다만 편하고 좋은 이(들)가 있어서 다행이야. 결국 안 남으면서도 남는게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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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07/04/08 21:55

# 난 잘 될 거야. 응. 하지만 억지로 나를 위안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잘 안다. 비록 그것이 직접 언어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요즘 행동들은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때로는 즐거운 시간도 죄책감이랄까, 거부감이랄까, 묘하게 반감이 들기도 한다. 지금 꼭 이럴 때가 아닌 것만 같아서. 나는 뭔가 다른 것들을 하고 있어야 할 것만 같아서 그렇다. 오히려 이렇기 때문에 어느 것에도 제대로 몰입할 수가 없다. 아으으.

# 책 구입은 시간이 가도 줄지 않는다. 2월 말에 어학연수 가게 된 친구에게 받아서 새로 들여놓은 책꽂이가 어느새 벌써 다 차버렸다. 매주 굵직굵직 한 것들로 3~4권씩 구입하다보니 다 소화하기는커녕 쌓여만 간다. 서점 아르바이트 하는데, 알바에게는 20% 할인해 주는 혜택이 있어서 아무래도 더 그런 것 같다. 임금은 모두 책값으로. 흐흐. 그래도 ‘책탐’이 식탐 같은 것보다는 나으려나. 오늘 구입한 책은 <젠더의 역사>와 은희경 씨의 신간 소설집인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이렇게 두 권이다. <젠더의 역사>는 서점 아르바이트 할 때 종종 오셔서 페미니즘 서적을 사 가시는 분이 있는데(이런 분에게는 호감 급 상승이다!), 그 분이 들고 가실 때 유심히 봤더니 재밌어보여서 사버렸다. 그리고 사실 은희경 씨 소설은 네 권 정도 갖고 있는데, <새의 선물>을 빼고는 다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나는 대체 뭐를 기대하고 사 버린 걸까. 아아. 오정희 씨 소설집을 읽어야 할 텐데. 소설은 역시 오정희 씨. 굿.

# 라캉을 공부하고 싶은데, 라캉이 너무 어렵다. 모 책을 읽다가 봤던 말인데, "진정한 라캉의 독자가 있던가?"라는 말이 그 오묘한 거만함(자신은 알고 있다는? ㅋㅋ)에도 불구하고 와 닿았던 것이다. 어렵긴 어렵구나, 하는. 그래서 라캉이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닌 이차 문헌들을 주로 봤는데도 불구하고, 사실 개념들도 잘 잡히지 않고 논의의 전개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저만치 놓쳐버리고 있었다. 그나마 이진경 씨의 <철학의 외부>에 있는 라캉 논문(?)은 읽을 만하던데. 그래서 나도 최근 라캉 관련 학자(일까?) 중에서는 가장 인기가 있다는 슬라보예 지젝의 책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다음주에는 <기관 없는 신체>를 사야겠다). 아.. 그러나 그 역시도 어렵다. 지젝도 이차문헌을 구해야 하나, 미쳐버리겠네. 그나마 지젝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지만, 페이지 한 장 한 장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이해했다 싶으면 또 딴 얘기 같고, 뭐.

그런데 오늘 아르바이트 할 때 지젝이 종교에 대해 써 놓은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이란 책의 역자 서문을 보고 위안을 받았다. 나와 똑같은 과정을 겪고 있는 역자였다. 라캉이 어려워서 세미나 등에서 이차문헌만 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지젝을 읽고 있다는, 그러다가 번역을 맡았는데 너무 어려워서 정말 죽겠구나 싶었다는. 나만 이런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은 때로 약간의 위안이 되고는 한다.

좀 엉뚱한 얘기긴 한데, 또 다른 책(진보평론 2007년 봄 호)에서는 지젝이 했다는 푸념을 들려주었다. 들뢰즈라는 뛰어난 철학자가 ‘운동권’ 정신분석가 가타리를 만나서 ‘망가졌다’는. 그냥 뭔가 웃겨서 킥킥 댔다. 망가졌다는 생각은 또 뭐냐는 생각도 들었고, 지젝의 글에서 종종 발견되는 유머가 생각나서 그랬나보다.

# 요새 정말 청력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전화 통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내 핸드폰의 음질이 나쁜건가. 어학연수 간 친구의 목소리가 제대로 이해되질 않았다. 바로 앞에서 귀 기울이고 듣고 있는데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거, mp3를 들으면 안 될 것 같다.

# 어제 나의 행동은 정말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내가 가진 언어가 이것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에 자기 직전에 좀 더 슬퍼져서 울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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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07/03/25 23:07

# 또 한동안 블로그를 그냥 방치해둬 버렸다. 자꾸 글을 생산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만, 요즘 글을 쓰다보면 어휘 선택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썼던 분석적 어휘들이, 이제는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새로운 언어를 찾아서 또 길을 잃어버리는 시점인가보다.

# 평택 대추리에 다녀왔다. 2006년 5월경 한 번 진입을 시도하다가 좌절된 이후 처음으로 가볼 수 있었다. 3월 24일이 935회째 촛불집회로, ‘마무리 집회’라 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혼자였다면 그 정보를 들었더라도 발걸음이 선뜻 나서질 않았을 텐데, 같이 갈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고마워요). 이제 남은 주민들은 이 집회를 끝으로 이주를 한다고 한다. 2시간가량 걸려 도착한 그곳의 풍경은, 나의 머릿속에 환상으로만 존재하던 곳과는 확실히 달랐다. 폐허 상태로 수개월째 방치되어온 무너진 집들과, 대추분교는 사진으로만 접할 때는 알 수 없었던 그 나름의 아우라가 있었다. 낮임에도 자욱하게 낀 안개와,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렸던 비에 젖어 질척한 땅바닥과, 여전히 개지 않았던 흐린 하늘, 마을 곳곳의 폐허들, 그리고 덤으로 군사 훈련을 위한 전투기의 소리는 나의 감정을 지배하던 그 무엇이었다. 그곳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진부하고 투박한 언어들도, 예전 같으면 그것에 거부감을 심하게 느꼈겠지만, 이미 감상적이었던 나에게는 그것들도 어떤 ‘진정성’으로 들려왔다(물론 그러한 투박한 것들이야 말로 ‘진정성’을 획득하기 쉽겠지만). 이젠 아마도 다시는 그곳을 찾아갈 수 없을 터. 그 공간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의미화 되어 있지는 않다지만, 어제 갔던 그 공간은 앞으로 나에게 어떤 근저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유명한 ‘진보 인사’로 자리매김한 사람들에 대한 반감은 어제 오늘의 것만은 아니나, 그들의 행태를 보면 때때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진보 경력이 오늘의 그들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닌데도, 그러한 것들 자체가 그들의 어떤 ‘사회적 자원’ 같은 것이 되어 그들의 지위를 분명하게 해주고 그것으로부터 많은 지지와 혜택을 입도록 해준다. 실제로 의미있고 생산적인 이야기를 전혀 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어떤 단체의 후원회 같은 곳에 항상 대표로 이름을 올리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쓸데없이 자기 인생의 회고담 따위를 늘어놓고 강연료를 챙겨가는 그들에게서는(내가 보기엔 대부분 또 남성이다), 때때로 투박하면서도 멍청한 인사들의 말보다 더욱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야 할 듯하다. 온갖 편견과 아집으로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을 학계의 사람들을 생각하니 온 몸이 저릿저릿하다. 적당히 배웠다는 것에 대해 프라이드를 갖고, 그 조악한 프라이드만큼 타인에 대한 경멸 또한 갖고 있을 ‘똑똑한’ 사람들에 대한 나의 (아마도 근거 없을) 환멸 때문이다. 학계에 계속 남고 싶다는 것은 결국 그 많은 사람들과도 관계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또 학계가 폐쇄적이고 지속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학계의 많은 이들이 하고 있는 작업은 ‘상징 자본’의 획득 따위를 위한 것이지, 그것이 직접적으로 ‘삶’으로는 연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있더라도 지금은 알 수 없다). 계속해서 자기 자신의 불완전성과 모순성을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길과 방향성 같은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은 결코 ‘공부’ 따위를 많이 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진보적인 상상력’은 어떤 이론 공부 따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포지션과 어떤 자세나 태도 같은 것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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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07/02/22 01:07
# 블로그 다 열어놓고 또 방치해 뒀다. 천성의 게으름 탓도 있겠지만, 아예 글을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글을 작성하다가 잘 이어지지 않아서 한글로 옮겨 저장해둔 글들이 몇 개 있다. 그런 글들은 대부분 내가 아직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너무 분량이 방대해지거나 혹은 너무 분량이 적어서 부끄러워서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턴 좀 간략한 식으로라도 이 공간을 활용해야겠다. 아무래도 싸이월드 다이어리와는 다른 공간임에 분명하므로.

# 난 아직은 누구와 같이 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 하다. 동생이 며칠 내 방에 머무르는 것이 이렇게 편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부모님과 친척들은 자꾸 동생과 방을 같이 얻어사는게 어떻겠냐고 권유하고 있지만, 난 도무지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것이 침해 받았다고 생각될 때의 짜증과 불쾌감은, 아마 동생을 질식 시켜버리고 말 것이다. 지금도 하루하루 겨우 참아가고 있다.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건 동생이 미워서 그런게 아니다. 내가 이런 사람인 걸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 최근 몇몇 사건 때문인지는 몰라도, '서울 공화국'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솔직해 지자면 나도 서울에 몸 담고 있으며,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를 소비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어떻게 사투리 고쳤어요?"라는 질문을 던진다는지, "이장 선거 때나  쓰는 것 같다", "농협이랑 어울리겠다" 라는 식의 비하의 말을 쉽게 농담으로 할 수 있는건지. '사투리'는 고쳐야할 것이 아니다. 서울말을 표준 규범으로 간주하는 건, 서울 공화국 시민들에게나 공유 가능한 인식일 뿐이다. 더 불행한 것은, 그런 말들이 서울 토박이가 아닌 사람들에게 조차도 '자연'으로, '농담'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코드는 여러 개가 있을 것 이다. 농담이 던져졌을 때 ,그 농담을 던진 대상에게 이입할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진짜 웃음이 터져나올 수 있다. 만약 그 조건을 갖추지 못 한 사람은 그 농담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농협', '이장 선거', '촌스럽다' 류의 발언으로 '농담'을 때우는 경우, 난 그것에는 도저히 이입할 수 없다. 때론 재미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불편한 유머 코드는 이렇듯 특정 대상을 타자화하는 방식이다. 서울 공화국 사람들의 '농담'들은 정확히 그러한 방식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 과외하는 학생 녀석이 "요즘은 엔조이 시대 잖아요" 란다. 자기 친구 중 좀 '놀줄 아는' 아이가 있다며 그 친구 이야기를 하는 도중 나온 말이다. 친구가 콘돔 사는데 따라간 이야기라든지, 친구의 무용담 아닌 '무용담' 까지. 여전히 '성 보수 담론'이 충분히 해체되지 않은 채, 성에 대한 '자유'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엔조이" 방식을 볼 때, 이것도 결국 '성 보수화'의 한 흐름이라고 밖에 판단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자유'의 이름을 띤 '억압'은 역사 속에 얼마나 많이 존재했던가. "즐기자"라는 말 속에 존재하는 피동성과 억압과 반동은 얼마나 끔찍한 의미를 담고 있겠는가. 방향이 제시되지도 않은 채, '성 자유'의 깃발을 단 배는 불행히도 역풍을 타고 표류하고 있다. 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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