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윤종신의 신보에 포함된 <나이>라는 노래는 생각보다 슬픈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어제 노래방에 가서 한 번 불러 보다가, 이건 내가 부를 노래가 아니었군, 하는 당혹스러운 심정이 들었다. 그 노랫말에 대한 잠시의 거리감은, 결국 내가 앞으로 그 노랫말이 표현하는 것들에 끈덕지게 붙들릴 수밖에 없다는 자의식과 범벅되어서 복잡한 마음의 풍경을 그려냈다.
2. 누군가를 헐뜯는다는 것이 결코 올바르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헐뜯는 게 꼭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관계 속에서의 서운함이나 상처 같은 것들을 봉합하기 위한 대화적 의례로서의 헐뜯음은, 나는 우리의 생애 끝까지 필요한 것이라 믿는다. 중요한 관계에서 느끼는 서운함이나 상처는 내버려 두면 결국 나와 그 관계를 파먹고 세계를 파열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헐뜯음이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를 다 함께 헐뜯으면서 생성되는 작은 커뮤니티. 공동의 적이 생겼을 때의 작은 연대감. 동맹과 공모를 요청하는 사람들의 자기연민과 나르시시즘 가득한 눈빛들. 그래서 나는 내게 누군가를 같이 헐뜯자며 말을 건네는 사람들을 보면 당혹감부터 앞선다. 피할 수 없어서 그러한 대화에 공모하고 난 뒤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얼굴부터 벌겋게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한 순간들이다. 주변의 기온이 한층 떨어진 느낌이다.
3. L이라는 친구가 내게 서운함을 표현했을 때 나는 외려 더 서운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이렇게 뭔가로 도피할 수밖에 없는지, L이 그런 것들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 느낌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애쓴다고 최대한 애썼는데, 그래서 손발을 있는 힘껏 휘둘렀었는데, 온갖 악력을 다써서 붙잡아 보려고 했었는데, 그것이 모두다 허무맹랑한 일이었다는 점이 드러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게는 뭔가가 굉장히 무겁고 버거워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무엇을 피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나는 계속 도주하려 할 것이고, 그러나 종내엔 그 무엇에 강박되어 버릴 것이다. E는 그런 깊은 수렁에서 나를 빼내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다.
4. 내일부터는 2012년. 아무런 기대도 회의도 없이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적 관례.
집에 오면 언제나 부채감만 쌓여 간다. 추석 시즌 전에 다른 일로 집에 올일이 있었는데, 동생들은 내가 집에 간다고 하니까 문자 그대로 놀라워했다는 전언이다. 내가 집에 간다는 사실 자체를 놀라워하였던 것이다(물론 나에게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집을 싫어하거나 부모님을 미워하거나, 혹은 고향을 저주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거나 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 만큼이나 장소애(topophilia)를 가진 사람이고 관계에 녹아들어 있는 사람이며, 그것을 부정하거나 과장할 마음도 없다.
다만 나는 "우리 아들"이라는 말이 버거울 뿐이다. 이 말에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운 여러 가지가 함축되어 있다. 그 말에 함축된 주름을 펴보려고만 생각해도 나는 벌써 소진되어 버린다. 이 단어의 놀라울 정도로 버거운 무게를 짊어지기에는 나는 아직 너무 작고 나약하고 힘이 없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결심은 감히 하지 못하고, 단지 내 마음을 키워야겠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지탱해야할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공무원 연금제도가 파산하지 않는한 은퇴후에도 수십년은 나보다 더 잘 사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내 태도와 마음 문제다. 그 무거운 말을 짊어지면서도 내 삶이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견결한 마음을.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효도"라 불리는 일들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의례들에게서 어떤 종류의 부담만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렸을때부터 나는 모든 의례들에서 진심이나 진정성이 아닌 '의무'만을 읽었다. 할머니(시어머니)를 대하는 엄마의 행동에서, 공무원이었던 아빠를 대하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교사를 대하는 학부모들의 행동에서 나는 언제나 '어긋남'만을 읽었다. 친척들 사이에서 따스함이 아닌, 질시와 자기연민과 자기애만을 읽었다. 우리가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모일 이유는, 기실 사회적인 의무와 압력 외엔 전연 없다고 느꼈다(다시 말해, 천인공노할 나쁜 놈이 안되기 위해서이다. 즉 depersonalize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 탓에 그러한 장면에서 작동하는 사회적인 힘에 대해서만 민감했다. 어린 나에게 어른들의 세계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세시풍속이라고, 전통 혹은 민속이라고, 도덕/인륜이라 말하기에도 그것들은 너무 민망한 것들이었다.
물론 이제는 그런 행위들과 몸짓들이, 그 의도와 진정성을 배반하면서도 '전달'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마음 속에서는 칼을 씹고 있더라도 얼굴 표정과 몸짓, 언어로 누군가는 충분히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몸짓이 우리를 느슨한 사회로 구성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도 그런 것들 앞이면 몸이 움츠러들면서 상대를 멀리하게 되었다.
우리는 영원히 그런 몸짓들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들에서 멀리 떨어져서는 생존할 수 없는 것일까?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내가 쓰고 싶었던 글들을 전연 쓰지 못했다. 매주 제출하는 현장 연구 페이퍼, 문헌 리뷰/토론 페이퍼, 기타 등등의 발제문들과 에세이들, 또한 학술지나 자료집 편집 작업 같은 것들이 내 일상을 빼곡하게 채웠다. 그렇게 빼곡하게 들어찬 것들 사이에서, 아무래도 나는 길을 한참이나 잃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몇 달간 항상적인 결핍 상태였고, 그 결핍의 원인이나 이유에 대한 아무런 마음씀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을 방탕하게 보냈다. 그리하여 지난 몇 달간 한 공부는 내 공부가 아니었고, 텍스트가 텍스트를 끝없이 소환하고 참조하는, 결국엔 무의미한 문장들과 인상들의 다발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무런 착상도, 아무런 정관(contemplation)도 하지 못한 채 끝없이 입력에만 집착하는, 그저 탐식가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길려면 글을 써야 한다. 지금 쓰는 글조차도 낯설다는 건, 내가 얼마나 무능하고 소격된 삶을 살았는지를 방증해주는 것일 뿐이다.
그걸 깨달은 건 한참이나 지나서였던 것 같다. 쓰고 싶은 글을 못쓰고 있다고 툴툴 거렸던 적은 종종 있었지만, 그게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이 이어지지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바빠서, 일이 많아서 정도로 처리해버렸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지만, 그건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언제나 분주하고, 또한 읽을 거리가 너무 많았던 상황은 결국 내가 자초했던 것이었다. 항상적인 지적 과식은 영구적인 결핍을 초래하고, 그러한 결핍은 또한 어딘가에서 탐식할 거리를 찾아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허접한 글들 안 읽었어도 사실 그만이었다. 그러한 글들을 읽으면서도 그래도 어딘가에는 보석이 있겠지 했던 기대도, 결국엔 허랑한 것이었다. 좋은 글들을 가려내는 눈이 생겨나고 있다고 믿었으나, 만년 기근 속에서는 옥석을 가려낼 여유 따위도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대학원 생활은 그리 나쁘지는 않다. 나는 공부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고, 그걸 하기 위해서 연구라는 이상한 행위를 하기 위해 더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아직 배운 것은 별로 없지만 더 잘할 수 있을거라 나는 낙관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그리 나쁘지 않게 해오고 있었다고 느끼며, 주변 이들도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결심을 응원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충분히 할만한 상황이라고 믿는다. 다만 다음 학기(석사 3학기)를 맞이하면서 중요한 건, 번잡한 것들을 끊어내야 한다는 점인 것 같다. 관계는 최소화해야 한다. 사람과의 만남이 중요한 공부를 하고 있지만, 그것을 위해서라도 번잡한 관계는 모두 청산해야 한다.
그렇다고하여 관계를 끊고 독학자의 길로 들어서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건 결국 타인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문제다. 외로움을 스스로 잘 견디지 못해왔다는 것. 그리하여 외로움이 주는 불안감에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때마다 자꾸만 여러 이름과 얼굴들을 무한히 떠올려 보았다는 것. 순간순간의 모든 친밀하고도 낯선 감정들에 그저 흔들리기만 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번잡한 상황을 만들고, 불필요한 만남과 감정적 에너지를 쏟아 붓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쏟아 부어댄 에너지들은 오로지 소진되는 목적으로만 움직였다. 그러한 에너지들을 갈무리하여 찬찬히 보살피고, 적절한 곳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는 그런 삶의 지혜가 없었다는 것은 통탄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며칠 사이의 깨달음들은 그래도 자축 파티를 할만큼의 무게감이 있었다. 그걸 조금 더 끌어간다면, 아마 조금 더 괜찮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잔혹했던 2011년 여름의 끝자락에서야 오는 깨달음이다. 그러므로, 부디 가을엔..!!!
오랫동안 활동했던 동아리를 나오고 난 후로 나는 지난 몇 년간 혹시나 하는 기대로 몇 가지의 기획에 발을 담그었지만, 돌이켜보건대 그 어느 것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모든 기획했던 것들은 죄다 무너지고 내게 남은 것은 허약하디 허약한 몇 마디의 말 뿐이다. 아니, 말의 순간, 선언의 순간은 이미 지나가버렸고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흐릿한 기억일 뿐이다. 그런 모래알 같은 기억들을, 마치 마지막 남은 희망의 소포인 것인양 포장을 뜯어 내용물의 실체를 확인하지 않은 채 끈질기게 내 품에 소유하려드는 것은 오래된 내 불치병이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겉포장의 그럴싸함이 배고프고 무능한 청춘의 양식이자 구호품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약속의 달콤함이었다. 그것은 또한 어떤 욕망에 대한 우리들의 공동서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소포 안에 든 것이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것처럼 해골인지, 멍청이라고 쓰인 쪽지인지, 아름다운 초상화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침내 포장을 뜯어야 할 때다. 모든 것들은 실패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거나, 멍청이라고 쓰여 있거나, 해골이거나, 아름다운 초상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마침내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확인할 순간이다. 그러나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무너져 버릴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무너짐과 실패와 더 이상 아무것도 충실함을 띄지 못하는 무의한 언어들 뿐이다. 또한 무의한 언어가 헛도는 관계를 직유하는 것은 아니라고 애써 부정하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물론 같이 일을 한다는 것, 그러니까 기획이란 것이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몇 번의 실패나 무산이 총체적인 기획무능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런 취약한 기억에 의존하는 나 자신이다. 왜 기억(약속)을 상기시킬 때 모종의 죄의식을 느끼면서 말을 건네야 할까(왜냐면 우리는 모두 이런저런 일들로 분주할 나이니까?). 왜 나는 여전히 그런 것들에 의존해야만 할까(왜냐면 현실은 늘 시궁창이고 언젠가는 빠른 속도로 벗어나고 싶으니까?). 왜 우리는 기획을 실현시키지 못할까(왜냐면, 아니, 어쩌면 기획과 약속의 언어 자체가 이미-항상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결국 모든 기획했던 것들은 무너지고 내게 남은 것은 안타까운 질문들 뿐이다. 당분간은 일을 벌리지 않아볼 것이다. 상대적인 수동성 속으로 침잠해서 도대체가 무엇이 왜 불가능해졌는지,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이 가능할 것인지를 따져볼 것이다. 감각을 예민하게 정련할 것이다. 대화와 독서, 글쓰기 모두가 그런 감각의 세련을 위한 훈련이 될 것이다. 배수아의 <독학자>처럼 되어 볼까? 그러나 나는 그것이 불가능한 기획이라는 걸 잘 안다. 나는 그것마저도 '혼자'는 아니면 좋겠다고 희망하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끈질긴 역설이고 아포리아다. 불치병이다. 결국 내게 돌아오는 가장 큰 문제는, 너와 나의 (가능한) 공동서명인 것이다.
- 아침에 일어나서 된장찌개를 데워 김치와 참치, 연근조림, 계란프라이로 든든하게 밥을 먹었다. 동생들은 각 방에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있었다. 그러나 나는 소리를 최대한 적게 내려고 주의하지 않는다. 그릇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화력 좋은 가스렌지는 가스를 요란하게 내뿜었으며 수저와 젓가락마저 부주의한 소음으로 아침의 적막을 찢었다. 이렇게 먹는 식사라는게 맛이란게 있을리 없으므로 의무처럼 한그릇을 비운다. 나는 주어진 의무를 다했으므로 설거지는 이후의 몫이다. 어제까지 며칠 동안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하던 나는 오늘 아침부터는 다시 현실을 직면하기로 하고 커피를 끓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헤드폰을 쓰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의식을 잠시 놓고 있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핀다. 싸이월드, 트위터, 지메일, 핫메일, 자주 찾는 블로그, 등등. 그러고나면 아침의 결의는 온데간데 없다.
- 얼마 전, 나른하던 겨울 밤을 회상했다. 손님들과 일년에 두 번 있는 의례 한 번을 치르고 모두가 낮잠을 자고 났던지라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던 밤이었다. 좁은 방에 포근한 이불을 덮고 둘러 앉게 된 네 명의 사람. 한 사람은 이들을 각각 280일 씩 몸안에 품었던 사람이고, 세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피와 살과 땀과 눈물을 착취하며 유기체로서 생존한 사람들이었다. 다른 방에는 몇년 동안 마음이 많이 따스해진 오십대 남자 사람이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셋 중 하나로 반쯤 누워 혼곤한 상태로 그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이다. 특별히 따뜻할 것도, 특별히 지루할 것도, 특별히 기억할만한 것도 없이 적당히 끊기는 대화들이 오가던 시간. 나는 졸리다면서 가장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 장면이 오래 기억에 가리라는 걸 직감했다. 스물 일곱이 되는 해 초입에, 기억할 만한 순간, 혹은, 그렇지는 않더라도,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은 순간.
- 좋은 비평이란 무엇일까? 비평이 예술작품에 '기생'한다는 통념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평은 그런 통념과는 달리 비평 자체로의 독립을 주장해야 하니까. 그렇기에 나는 비평이 비평대상보다는 비평가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를 해준다는 이야기를 믿는다. 그렇다면 좋은 비평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비평가가 되어야 하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하나의 비평은 그 자체로 내적 질서, 내적 소우주를 갖추어야만 한다고까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비평가가 가진 온갖 것들, 이를테면 언어와 문체, 이론, 지식, 삶의 배경 같은 것들이 작품과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한 만남과 여정의 기록, 혹은 그렇게 만나서 이루는 성좌(constellation)의 제시(그러므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땐 차라리 실패한 만남에 대해 고백적인 에세이를 쓰면 된다). 인용구와 유명한 이론을 들먹이는 건 물론 괜찮다. 그것도 비평가가 가진 것이니까. 하지만 17세기, 존 밀턴이 각주와 인용문을 즐겨 쓰던 연극비평가 윌리엄 프린을 놀리면서 했던 말, "텍스트 안에서 재주를 부리지 않기 위해서 언제나 텍스트 밖에서 재주를 부린다"는 말만큼은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 무엇인가를 '잘한다'는 관념은 사실 인정투쟁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내가 무엇을 '잘' 하고, 또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무뎌질 때면 언제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텍스트를 꼼꼼히 읽는 것도 못하고 글을 딱히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발상이 딱히 창의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기억력이 좋지도 않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림이나 음악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잘하길 하나 연애를 잘하기를 하나 주목받고 싶어 안달이기를 하나 쩝. 아, 더 땅굴 파기 전에 얼른 해야할 일을 시작하세.
이제 내일이면 다시 서울로 간다. 아마 다음 추석이 되기 전까지는 이곳에 올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느낀다. 이곳이 싫어서도 그곳이 좋아서도 아니고 다만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변하지 않으면 좋겠다. 모든 곳이 변해도 이곳만큼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번 올때마다 들리는 부고 소식은 여기에서는 매우 범상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곳도 결국엔 나의 바람과는 달리 모두가 변할 것이다. 몇 달 만에 본 강아지는 많이 말라 있었고, 수십 년간 거주하던 사람들은 조금씩 늙어 있었다. 아마 비슷한 함량으로 나도 늙었을 것이다. 늙는 속도는 언제나 우주의 운행법칙을 따른다.
내가 같은 종족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알고 지내던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는 일에 진절머리를 치지만 정작 자신의 결혼식에는 과연 누가 오기나 할지 현실적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동년배인 '우리'에게 이런 걱정은 과연 자신이 결혼에 적합한 인간인지, 혹은 결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이를테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내가 이곳에 거주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건 유전자의 지도를 만들어 준 부모님도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이곳에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 속 깊은 악의가 있는 것처럼 말할 때조차 나는 무엇인가를 위장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중고등학교 내내 서먹했던 친구가 이곳에서 9급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단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그 아이는 9급이고, 공무원이고, 청양에 산다. 그의 아이의 친한 친구들도 9급이거나, 말단직이거나, 청양에 산다. 나는 이렇게 그 아이들을 묘사하는 단어가 어떤 권능으로 어떤 삶을 점지할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건 구체적인 얼굴로 표상된다. 우리는 이제 다른 세계에 거주하는 다른 우주의 개체가 되었다. 물론 여기엔 하등의 아쉬움도, 즐거움도, 비난도, 칭찬도 없다. 나는 이제 몇개의 단어가 사람들을 어떻게 분할하고 어떻게 규정하는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나쁜 현재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가 남은 인생의 숙제일 것이다.
지난 해부터 올해 초까지 계획했던 일들이 하나씩 무산되고 있다. 모두가 마음 속에서는 결코 원하지 않았던 일들이라 별로 아쉽지는 않다. 다만 불안하고 걱정될 뿐이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도 펠로우쉽, 장학금 따위의 공고를 훑어봤다. 모두가 이곳보다 윤택하고 선명하다. 그래서 모두가 나에게 가능한 선택지인 것처럼 착각한다. 대학원 1학기를 끝마친 지금으로서는, 단지 몇 단어와 숫자로 나타나는 그 세계가 석사 논문보다도, 잡히지 않는 관계보다도 훨씬 더 구체적이다.
며칠 전엔 가장 최근에 출간된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하필 세밑인데다 나이에 대한 감각이 또렷해지는 마당에, 시간의 감각에 대한 가장 훌륭한 시집을 만난 것 같아 충격을 받았더랬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나머지 시집을 모두 주문했다. 다행인 것은 그 시집을 읽고서도, 적어도 우울해지지는 않았다는 것. 사실 나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 자체로 우울한 적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나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어하는 축에 속했으니까.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축 늘어진 시계 그림처럼, 우울증자의 시간 감각이 삶 전체를 질퍽하게 적셔오는 것처럼, 그리고 남들처럼, 나는 나의 이십대를 견뎌내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권태로운 오후의 햇볕이 창틀 너머로 몇 움큼씩 쏟아져 들어오는 시간들, 차츰 더 고요해지면서 푸른 빛으로 물들어가는 새벽의 시간들을 나는 아무래도 참을 수 없었고, 그래서 뭔가에 쫓기듯이 뭔가를 꾸역꾸역 해내가며 그 시간을 탕진했었더랬다. 알콜이 없으면 잠들지 못했던 날이 몇 달 몇 년이었다. 지금은 훨씬 덜한 편이고 잠도 잘 자지만, 나는 아직은 그런 시간들을 쉬이 견뎌내지는 못하고 있다. 초 단위로 침을 움직이는 시계가 시간을 날카롭게 분할하는 소리가 방안의 공기를 진동할까 싶어서 방에 시계도 두지 않는다. 아날로그 시계따위 없어도 시간은 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10년 뒤 내 얼굴이 누구를 조금 더 닮아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이십대 후반이다. 매년 말이면 나름대로 해오던 연말 정산도 하지 않고, 내년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이제는 아무런 기념일에도 감흥이 없게 된 나는, 왠지 특별히 연말연초가 되었다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도 어색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내년에도 놀랍고 새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또 누군가를 마음에 품거나 좋아할 것이고 금방 누군가를 싫어할 것이다. 마치 작용과 반작용처럼, 내가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누군가는 멀어질 것이다. 아쉽고 슬프지만 그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관계의 물리 법칙이다. 또 나는 책을 읽을 것이고 잡다한 글을 쓸 것이고 약간의 돈을 벌면서 근근히 살아갈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보면 모두가 그렇다. 나는 그들을 따라 내년에도 그렇게, 내후년에도 그렇게, 그 이후가 되어도 그렇게 살고 싶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 나는 누군가의 말을 귀기울여 들을 것이고, 그 말에 따라 내 마음에 이는 파문의 결을 헤아릴 것이다. 무언가는 기록할 것이고 무언가는 잊을 것이다. 기록되지 않아 기억의 선사시대로 접어드는 과거들을 애도하겠지만 그렇다고 저렴한 후회 같은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특별히 변할 것이 없는 인생이다. 그러나 나는 내년 연말에는 올해 연말이 그랬듯이, 내 계획과는 별개로 또 내 의지나 노력과는 별개로 어떻게든 변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내 이질성과 싸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내년 계획은 없지만 굳이 있다면 이런 점이랄까.
언제나 스스로가 한 시대의 끝을 갈무리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매력적인 자의식의 그늘이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저마다의 시대에 속하기 마련이지만, 그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이전 시대와 다음 시대,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곳에도 정주하지 못한다. 이전 시대가 남기고 떠난 옅은 체온과 냄새를 느끼며 과거를 그리워하되 혐오하며, 다음 시대의 이타성(alterity)과 불가피성을 거부하되 두려워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개인적 진실이 된다. 그들의 개인적 진실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요새와 같은 것이어서 누구도 함락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들의 자의식은 사물과 사람, 그 모두를 대할 때에 뚜렷하게 발현된다. 어차피 어느 시대에나 속하게 될 사물에는 애정을 둘 수 없어 함부로 다루되, 자기처럼 시대와 시대 사이를 둥둥 떠다니는 이들에 대해서는 남몰래 흠모한다. 그러나 그런 흠모에 대해서는 까닭없는 엷은 수치심을 느끼면서.
쓸데 없는 일 때문에 8개월이나 날려 먹어서 더 짧게 느꼈던 2010년도 드디어 안녕이구나..
사실은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던 바지만, 대학원 석사 1학기를 끝마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학부 시절 내내 나를 보호하는데 사용했던 어떤 상징적 경계를 더 이상 보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섣불리 서로를 판단하지 않았던 친구들, 정치적 올바름(PC)이라는 도덕적 강박은 어쨌거나 '나'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학부 때는 이해관계를 복잡하게 가질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조금만 의견이 틀어지거나 감정이 삐뚤어지는 일이 생기면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것도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어쨌든 대학원 수업은 인정투쟁이 중심인 공간이니 '배움의 공동체' 따위는 상상할 수도 없고, 내가 앞으로 계속 연구자로 살아가려면 평생 만나게 될 지 모르는 사람들이니 조금 뒤틀린다고 해서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치적 올바름이나 윤리 따위는 종이컵 밑바닥에 남은 식은 자판기 커피 들이켜 듯 내다버린 사람들에게 일일히 분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나는 12월 내내 그런 사실을 아프게 깨닫고 있다. 12월 달 들어 여러 차례에 걸친 술자리에서 나는 끝도 없이 지쳐 버렸다. 이제는 좋은 사람이냐 아니냐가 선명하게 구별되지도 않는다. 모두가 선하고 또 모두가 악하다. 모두가 강하고 또 모두가 취약하다. 그렇다고 모두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나에게 이로운 사람이냐 해로운 사람이냐를 가지고 사람들을 판별해야만 하는 것이다.
30대 사람들을 볼 때 나는 아무래도 내 미래를 투사해서 볼 수밖에 없다. 내년이면 이제 이십 대 후반인 나는 자꾸 서른 즈음을 상상하게 된다. 무엇인가를 이루어야지 하는 소소한 희망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서른 쯤에 여태까지 열심히 잘 살았으니까 모아둔 돈 털어서 해외여행을 가야지 하는 계획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이 되어 있지 않겠냐는 상상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그러나 내가 보는 30대들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우울하고 외로운 사람들이다. 혼란스럽고 우울한 거야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삶의 조건이니까 그렇다 치자. 하지만 외로움과 고독함은 다른 것이다. 외로움은 결국 타인의 위안을 바라는 애처롭고 간절한 몸짓이지만, 고독함은 그마저도 모두 이해한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삶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주변의 30대 사람들이 조금만 더 고독해지면 좋겠다. 고독함은 곧 개인의 독특함(singularity)을 나타내는 징표이다.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인생의 비밀을 위해서, 조금만 더 조용해지고 침착해지고 겸허해지면 좋겠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한참 어린 내게 한 줌 위안을 구하지 않으면 좋겠다. 또한 어차피 내가 아니라도 그들은 들어줄 귀만 있다면 어딜 가서든 입을 벌릴 것이다. 이럴 때면 나는 자꾸 황인숙 시인의 '강'이라는 시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발 내게 토로하지 말고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세요, 그곳에선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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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ㄹ님 덕분에 알게 된 무료 '자미두수'. 자미두수가 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재밌게 봤다. 이런 걸 보면 '바넘효과'가 어쩌니저쩌니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이지만, 나는 여전히 이런 게 좋다(물론 다른 사람이 나와 똑같은 결과가 나오면 마음이 안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 바넘효과라는 언표가 무시하고 있는 건 테스트 결과를 읽는 개별 독자들의 해석 가능성과 테스트의 심리적 부수효과이다. 모두 동의해서가 아니라 뭔가를 건드리는 게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터넷 심리테스트나 사주를 본다는 건 왜 무시하는 건지 몰라. 여하튼 "다른 사람의 애인은 옆에서 잘 보지만 정작 자기 짝은 판단을 잘 못하고 속을 안 주는 편으로 좋다 싫다 표현을 안하고 세월만 보내다 흐지부지하는 일이 많은데" 라는 말에 그저 눙물만..
애매모호한 감정들이다. 나는 때론 진단하고, 때론 선뜻 받아들인다. 나는 때로는 공격적이고, 때론 부정하고, 때론 뛰어들고, 때론 침묵을 택하고, 때론 애틋함을 느끼고, 때론 동경한다. 나는 때론 곧이 곧대로 듣지만, 때론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날이 선다. 때론 이 모든 것이 거짓일 수 있다. 나의 과장이고 윤색일 수 있고 무의미일수도 있다. 그걸 너와 나 모두가 안다. 그러나 너는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가 말한 것 이상으로 일어난다. 그 모든 것은 나와 너 모두를 초과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너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절대로 오해하고 오인하지 않으면 좋겠다. 투명한 이해를 성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실패한 오해와 오인이 투명한 이해로 둔갑하여 마지막까지 실패한 기획이 될까봐 두려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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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완전히 이해타산에 지쳤다. 이해타산은 곧 내것이 아닌 옷을 입는 일이다. 이제 나는 내것이 아닌 옷을 입는 게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지 잘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한 번 입기 시작하면 달콤한 옷 냄새와 거울에 비친 썩 만족스러운 내 모습에, 옷을 벗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옷을 여러 벌 들고 재다가 결국 입지 못하고 다른 옷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지금 들어선 옷집은 썩 만족스럽다. 무엇을 몇 사이즈로 입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이해타산이 아닌 것들을 조금 더 믿어보는 것이었다. 그 일이 너무 어렵다는 걸 알아가는 요즘이지만, 여하튼 그렇게 해보고 있다. 우리는 여하튼 냉소보다 믿음을 더 어려워하는 사회에 산다. 믿음은 쉽게 배반당하고, 나 스스로도 믿음을 쉽게 배반한다. 그래서 믿음을 더듬더듬 고백하는 것은, 술이나 권력의 힘을 빌어 냉소를 쏟아내는 것보다 수천배 쯤 어렵고 난처한 일이 되었다.
물론 온갖 벽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대화 속에서도 그 벽들은 너무나 선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궁색해지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여하튼 불안하지만 조금 더 믿어볼 일이다.
하나. 나는 한국에 대해 아는 바가 정말 없는 것 같다. 내가 한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혹은 한국에만 살아서 아는 바가 없을 수도 있다) 어제 유스 문화와 글로벌 시티를 다룬 단행본을 읽는 수업의 토론 시간에, 서울에서 유스들이 많이 가는 공간이 어딜까를 이야기하는데 전혀 생각이 안난다는 걸 깨달았다. 몇군데 좀 흔하고 진부한 공간은 생각에 떠올랐지만, 굳이 그런 장소에 대해 토론 시간에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집 밖에서 무엇을 보고 살고 있는 걸까를 궁리하던 중에, 수강생 중에 한 분이 (자신의 연구 필드인) 인도네시아의 한 도시에 가면 유스들이 어디에 가는지 훤히 보이는데, 서울은 집하고 학교만 왔다 갔다 하니까 잘 모르신다고 말씀하셨다. 그 도시에 가면 필드워크를 하러 와서 할 일이 별로 없으니까, 밤에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느라 잘 알게 된다고... 으악!!! 그렇지 ㅠㅠㅠ 공간 체험은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지...
둘. 마찬가지로 어제 수업 이야기. 수업 때 한 수강생 분(수강생 A)이 탈북자 청소년 사진 교육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제 멍 때리느라 제대로 맥락 이해를 못한 것 같지만) 다른 수강생 분(수강생 B)이 수강생 A에게 그런 '교육' 연구 프로젝트가 과연 얼마나 "인류학적"이냐를 따지듯 물었고, 수강생 A는 이런 저런 말씀을 하던 중에 이 연구에 참여하는 "죄책감"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연구 과정에서 "죄책감"을 어떤 식으로든 만회해야 겠다는 논지였다) 디펜스를 하셨다. 아늬 왜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갔던 걸까? '교육'을 하면 연구 참여자에 대한 연구자의 '개입'이기 때문에, 진정한 "인류학"이 아니라는 논리였을까?
셋. 어제 붙들려 있었던 술자리에서 좋지 않은 예감을 받았다. 뭔가 자리가 엄청 불편한데 떠날 수 없을 때, 내가 저항하기 어려운 권위가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고 있을 때, 내가 '선택'하는 것은 입을 꽉 다무는 것 뿐이다. 그럴 때면 나는 정말로 대답이 필요한 질문에만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yes/no로 대답하고, 대답하기 싫은 것들엔 잘 모르겠다고 혹은 피곤하다고 대답할 뿐,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런 불편한 환경에 대한 유기체적인 '반응'일 뿐이다. 내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몸이 그렇게 '반응'할 뿐이다. 그런 상태로 오랫동안 견디다가, 마침내 마음 속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 하나가 뿌리까지 시들어 버렸다.
어제 오늘일은 아니나, 확신에 차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부담스럽다. 이 확신인(人)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정말 확신에 차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별로 확신 같은 것은 없는데 확신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를 각각 '동물'과 '스놉'이라고 생각해도 좋을까. 하여튼 이런 사람들만 보면 기가 쪽쪽 빨리는 듯하야, 기회만 된다면 재빨리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인 것 같다. 이렇게 자기에 대한 확신이 너무 뚜렷한 사람들은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저게 다 컴플렉스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사회성이 지독히 떨어지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사회성이라는 건 모두와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야한다는 의미로 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어떤 층위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유통될 수 있는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다. 제 자랑을 큰 목소리로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나, 나 스스로도 내 자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면 나는 내가 너무 낯 뜨겁고 부끄러운데, 다른 사람들은 별로 안 그런가봐?
며칠 전엔 친척 결혼식을 이유로 엄마와 아빠가 다녀갔다. 나는 평생 타인으로 지내온 두 사람을 무거운 마음으로 대하나 정작 그 무게 때문에 말을 섞지는 못한다. 나에겐 두 사람에게 아직까지 설명하지 못한 수없이 많은 비밀들이 있고, 그 비밀들을 털어 놓는 순간 관계의 자기장이 어그러지는 장면을 견뎌낼 자신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입을 가질 수 없다면 차라도 귀라도 가지면 될 것을,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아직까지 두 사람의 언어를 들을 귀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입과 귀 모두 닫아 버린다. 앞으로 몇 주는 집에서만 밥을 먹어야 버리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음식 보따리가 두 사람과 같이 도착한다. 나는 그것을 풀어 텅 비어가던 냉장고에 채워 넣는다. 조용한 가운데 전파를 타고 온 라디오의 목소리가 공기를 채우고, 맛있는 음식들이 눈앞에 차곡차곡 배열된다. 냄새가 싫어서 만들지 못했던 생선구이, 맛있는 된장찌개, 만들지 얼마 되지 않은 김장 김치, 신선한 야채, 갓 만든 밑반찬이 상을 가득 채운다. '우리'는 묵묵히 그릇을 비우는 일을 한다. 어색하지는 않으나 편하지도 않다. 아빠는 당신이 서울에 와서 잠을 자면 내가 싫어한다고, 그래서 가는 게 편하지 않다고 직접 말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직접 듣지도 못하고 그나마도 한 다리를 건너서 듣는다. 나는 문책받는 기분으로 그 말을 수신했지만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죄책감의 근원을 부인한다.
그제는 늘 다니는 학회에서 연례 초청 강연을 했다.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같은 과에 소속된 외국인 교수가 연사였다. 영어라는 외국어에 능숙하지 않은(사실 다시 생각하면 능숙한 게 더 이상한) 한국인 학생들을 오랫동안 대해왔던 교수는 최대한 쉬운 표현을 써가며 느릿느릿한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날 강연에서는 불가피하게 '상처' 받은 사람들이 꽤나 많았던 모양이었다. 모두 영어 때문이었다. 그리고 연사의 말이 공기를 채우지 않을 때 터져 나왔던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 누군가는 자신의 영어 능력 부족을 부끄러운 듯 '고백'했고, 누군가는 영어 공부(도대체 무엇에 대한?)를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누군가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데도 한국에서 편안히 교수를 해먹을 수 있는 현실에 대해 '분노'했고, 누군가는 자신이 리스닝과 스피킹에만 약할 뿐 나머지엔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어했고, 누군가는 지금이 최적의 기회라는 듯 자기가 미국 대학 박사라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었다(그리고 강연이 끝나자 몇몇 사람들은 그 전까지는 별로 존재감 없던 이 누군가에게 말을 걸려고 모여 들었다). 이게 모두 이제는 어떤 강력한 힘을 상징하게 된 영어라는 것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공부해 온 사람들에게도 전혀 다르지 않다. 이제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권력의 이름으로 또한 권력의 맥락에서 체험하고 있다. 대학원 입학 처음에는 이 문제를 연구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다녔었는데 내가 또 잠시 잊고 지냈던 것 같다. 묵혀두었던 몇 가지 아이디어들을 다시 정리해본다. 밤이 짧다.
진부한 언어로는 아무 것도 해낼 수 없다. 클리셰 같은 진단과 처방의 늪을 어떻게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헤쳐나갈 수 있을까. 여하튼 중요한 것은 '무엇'에 대해 말하느냐가 아니라(이제는 누구나 목소리 높여 말하는 정치적인 것이든, 아니면 내 전공의 맥락에서라면 교육적인 것이든), 그것을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이다. 단순히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고픈 내용에 가장 올바르게 상응하는 이야기의 형식을 갖추어야만 발생하는 의미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수사학과 은유의 세계는 그 '어떻게'의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전히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는 그 어떤 것도 간단히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누가'는 그 누군가가 살아온 인생의 경로와 흔적을 따라가며 구성되어 가는, 일종의 생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가'는 되고 싶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되기 싫다고 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누가'라는 기획은 언제나 나를 초과해 있다. 그리고 나는 이 '누가'와 '어떻게' 모두에 걸어볼 것이다. 안되면.. 뭐;
1. 요 며칠 동안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어떤 '해프닝'이 마침내 종결된 것 같다. 종결되었다고 하면 어폐가 있지만, 여하튼 대충은 끝이 보이는 것 같다. 남아 있는 사람들과 이 해프닝으로 인한 여러 상흔에 대해서는 책임질 부분이 있다고 느끼고 있지만,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라 일단은 모르겠다,하고 자포자기하고 있다. 왜 이렇게 모를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았던지 이런 경험이 처음인 나로서는 어리둥절하게 며칠을 보냈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좁았는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얼마나 큰 시차가 있을 수 있는지를 몸이 아프게 느꼈던 해프닝이었다. 여하튼 나는 다시 내 작고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와서 맥주와 함께(응?) 자숙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조용하고 작고 편하고 아늑하고 따뜻하다. 그리고 겨울엔 글을 많이 쓰자. 이렇게 난 뭐든 작은 게 좋다. 일상도 작아야 편하고 모든 물건도, 사람도, 정치도 그렇다. 삶의 비전을 한반도적 스케일이나 세계적 스케일로 꾸리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불편하다. 이건 애초에 내 그릇이 그리 넓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은 일상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노력을 해야할지를 생각하면 가끔 아득하니 공포심이 들기도 하지만, 나 혼자 지탱하면 되는 소규모 일상이니만큼 잘 지켜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2. 오랜만에, 정말 3~4년만이니 오랜만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난 뒤에, 바로 오늘, 고등학교 때 학생회 친구들을 만났다. 내가 거의 대인기피로 지냈던 과거 몇 년 동안 그 친구들은 계속 만나왔으니, 오랜만에 보는 나로서는 정보가 업데이트 되지 않아서 좀 불편한 자리일거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다. 왠만한 사람들하고 있을 때면 네 명 넘어가는 자리에서는 불편함을 느끼고 입과 귀를 닫는 나로서는 의외였다고나 할까... 고등학교의 기억 따윈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나로서도, 정말 여러 차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유쾌한 친구들이 반갑고 또 좋았다. 날더러 많이 늙었다고 표현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세상 참 무정하고 무감하군요.
3. 이제 곧 종강이다. 이상했던 계절을 수상쩍게 보내고 나니 겨울이 되었네. 어제 무슨 대화인가를 하다가 갑자기 가슴 한 가운데에서 배꼽 직전까지 싸늘하게 내려가는 기운을 느끼고 잠시 오싹했었다. 최근 며칠 간 '쓸쓸하다'는 형용사를 많이 들었던 탓에 갑자기 엉뚱한 학습이라도 되었던 것일까. 하여튼 그런 기운은 처음 느낀 것이기 때문에 잘 기억해 두려고 한다. 그 기운이 더 이상 낯설게 되지 않는 날, 나는 조금 더 성장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왠지 그 기운엔 성장의 비밀스러운 레시피가 감추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런 삶의 비밀을 어디 깊숙히 묻어둔 사람처럼, 미래의 어느 순간 내가 조금 더 작아지고 겸손해지고 여유로워질 수 있는 날이 오면, 마음과 기억 한 구석에 켠켠히 접어 정리해 두었던 그 감정들을 차분하게 이야기 속에서 풀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장 죽어도 썩 나쁘지 않다고 여길 것 같다.
1. 요즘에도 틈나는 대로 뭔가를 꾸역꾸역 읽고 있지만, 읽는 것들이 제대로 와닿지 않는 것 같다. 공허하게 밑줄을 긋고, 아무 생각없이 책귀를 접고, 아무래도 나중에는 알아먹지 못할 것 같은 메모를 쉴새없이 끄적인다. 텍스트의 의미는 늘 겉돌고 무언가 중요한 것에 가닿지 못하는 것 같다. 읽는 것 자체로 행복할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읽을수록 결핍감에 시달린다. 이 모든 것이 나라는 독자의 문제인지, 그것도 아니면 오늘날에 소용되는 텍스트들의 전반적인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매력적인 필드를 잡았다고 되는대로 필드 저널을 쓰고 있지만 사실 쓸 말도 (아직까지는) 별로 없고 궁금한 것도 (아직까지는) 별로 없는 것 같아 불안하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하는 독서는 시간을 헛되이 길바닥에서 날려버리고 있다는 불안감을 잠깐 달래주는 것 외에는 남는 것이 없는 것 같다.
2. 하는 일이라는 게 왜 이렇게 비루해먹은지 모르겠다. 마음에도 없는 리뷰 에세이를 써내고, 없는 말을 짜내서 발제문을 쓰고, 별로 관심도 없는 페이퍼를 제출한다. 물론 나는 나름대로 무척 열심히 하고 있고, 그에 상당한, 혹은 과분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나를 완전히 좀 먹게 하는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은 자꾸 쌓여가는데 읽고 무언가 생산해내야 하는 것들은 끝없이 눈앞에 제출 기한을 깜빡이고 있다. 오랜만의 휴일이었던 오늘도 나는 하루 종일 성에 차지 않는 텍스트를 읽었고, "-_-"를 몇번이고 책에 적어 넣었다. 자서전도 좋고 생애 이야기도 좋은데, 그리고 내러티브 탐구도 다 좋아하는 연구방법론인데, 제발 글에서 뻥을 치지는 않으면 좋겠다. 그 뻥이란 대개 양적연구가 주류인 학계를 의식하면서 나타나는 자의식 과잉이라는 느낌을 준다.
3. 내가 이미 겪어왔던 어떤 시기를 아프게 경험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이지 손 내밀어 잡아주고 조금이라도 끌어주고 싶은 마음만 든다. 내가 머지 않아 지나갈 어떤 시기를 거치고 있었음을, 또한 내가 결코 외롭게 이 시기를 견디고 있는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 시기를 조금 더 잘 보낼 수 있었을 것이란 회고 탓이다. 물론 내가 어디로 끌어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당장 나 하나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때 내가 가장 굶주렸던 건 이 시기를 이미 거치고 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조언들이었다. 조언이란 벤야민의 말을 빌자면 "어떤 의문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금 막 펼쳐지려는 어떤 이야기의 연속과 관계되는 하나의 제안"이다. 그러므로 그건 내가 꼰대라고 규정하는 어떤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조언은 무엇보다 조언을 받는 사람의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더 중요하게는 조언을 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4. 얼마 전 강독 수업 시간에 나오는 카프카의 소설을 읽고 얘기를 나누다가 뭔가가 하나 깨어져 나간 느낌을 받았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짧은 소설이 어떤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의미를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파편적인 경험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서사 형식은 고독한 소설이나 공허한 스토리가 아니라 아무래도 알레고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글을 읽으면 얼어붙기부터 했었는데 이제는 좀 진지하게 읽어보고 싶다. 그러려면 독어를 공부해야하는데 아아아아
어제 매달 있는 행사를 치르고 우울하고 무거워진 몸을 질질 이끌며 새벽에 집에 들어와보니 트위터에 달빛요정의 부고 소식이 들렸다. 그가 뇌졸중이라는 이야기도 트위터로 들었고, 그가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는 사실도 트위터로 들었다. 소식은 이렇게 더 빠르고 직접적으로 전해진다. 소식은 먼 곳에서 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앞에 문자 조각으로 현현한다. 그만큼 충격도 매개나 여과 없이 전달된다. 그가 만든 음원의 판매고가 일정량에 미달하여 '도토리'로 수익을 받았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러 소식들을 듣는다. 조금 더 어렸던 시절, 노래방을 좋아했던 나는 <절룩거리네>나 <스끼다시 내인생>을 부르며 혀 밑으로 씁쓸한 무엇을 느끼면서도 깔깔 웃으며 그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는데, <361 타고 집에 간다>를 들으며 그가 361의 어느 곳에 살고 있을까를 궁금해하기도 했는데, 분명히 어떤 시절을 견뎌내던 힘이 되었던 그의 노래였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버린 것이 믿기지 않아서 자기 직전까지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1집 다음으로는 듣지 않았군)
그러나 이렇게 전해진 충격이 얼마나 갈 것인가, 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회의적이다. 우리는 슬퍼하고 애도하는 방법 따위에 대해서는 점점 잊어가기 때문이다. 일상의 공포와 충격, 고통, 슬픔,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감해진 채, 벤야민의 말을 빌자면 일상에서 우는 법을 잊고는 영화관에 가서 우는 법을 학습하는 관객들처럼, 우리는 트위터나 블로그 따위에 애도의 말을 조금 남긴 채 그의 죽음을 잠깐 애도하고는 그를 쉽게 잊을 것이다. 그렇다면 슬픔과 고통에 기초한 윤리, 상실을 부정하지 않는 윤리, 애도를 애도답게 할 수 있는 윤리, 그런 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까? 당분간은 버틀러를 조금 더 따라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의 방식이 아니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예컨대 황정은 소설가 같은 방식이라면 어떨까?
꿈의 언어를 만들어 내는 것, 가능성의 언어를 만들어 내는 것. 언제나 꿈꾸는 것들이지만, 이런 것들은 충분히 인큐베이팅 되기도 전에 쉽게 사람들의 비판에 노출되고 꺾이고 좌절된다. 사람들은 아직 싹틔우지도 못한 것들을 비난하고 짓밟으면서 만족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들었고 짓밟았고 승리했노라. 그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는 결국 대문자 '나(I)'의 이야기. '나'의 자족성, '나'의 폐쇄성, '나'의 권위.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 혹은 자기가 택한 것들만 바라보고 사는 이들과 이제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들에게 대화란 것이 과연 있을까? 그들은 과연 우리가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젯밤 서해에 비친 하현의 빛은 시리도록 밝고 아름다웠다. 달빛 조각들이 산란하는 바닷길이 수평선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언제까지고 그 길만 바라보고 싶었으나 함께 숙소로 들어가야만 했다. 조명이 많지만 않았다면 몇배는 더 아름다웠을 밤하늘도 기억해 놓을 만 했다. 좋은 카메라가 없었다는 게 아쉽다. 카메라를 찍으면서도 계속 그림이 안나온다고 한탄해야만 했다. 이렇게 찍어 둔 낮의 풍경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더 아름다운 것은 어둠보다는 빛이고, 빛중에서도 햇빛이 아니라 달빛이다. 벤야민이 비평에 대한 광고의 우월함을 궁극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아스팔트 물웅덩이에 비친 네온사인의 붉은 빛이라고 했지만, 그것조차 궁극적으로 압도하는 것은 달빛을 선망하는 인간의 미학과 감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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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이라는 것은 교지에 들어갈 때 말고는 해본적이 없는데 오늘 ㅎㅇㅈ에서 처음으로 3~40분 정도 면접을 치르고 왔다. 면접이라기 보다는 면담에 가까울까? 그 자리에 계셨던 두 분 다 너무 매력적인 분들이어서 나도 조금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면접 뒤에 긍정적인 반응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일단은 나도 기분이 좋고, 그분들에게 확답이 담긴 연락을 받아야겠지만, 여하튼 모든 부분에 있어 조금은 긴장될 수밖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만 그리되면 나도 나름대로 직장인이 되는 건가? 인생에서는 처음이겠구나. 내 몸의 감각들이 견뎌낼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를 곳. 혹은 없던 감각도 깨워줄 무엇을 만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를 곳. 그러나 지금 이곳이 아닌, 어떤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으로 갈 수 있기만 하다면. 지금 이후와 이곳 다음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기만 하다면. 이야기만 들어서는 내가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르니까 조금 불안한 것도 같은데, 아까 그분들께도 말씀드렸지만 거기에 가봐야지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을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이지만, 한시도 잊어서는 안되는 건 나는 필드워크 하러 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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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끌어올린 감정은 가벼운 충격에도 쉬이 사그러든다. 나는 아직까지 무엇에든 절실해본 적이 없고, 이는 단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대체로 마찬가지였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물론 특별한 예외이지만. 그러나 그저께 R은 나를 처음 만났을 땐 내가 사람에게 관심이 별로 없어보였다고 했고, 이는 분명 사실이었다. 지금은 물론 그때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단지 내가 약간 무언가에 조급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에 대해 절실하지 않다는 건 아무 것과도 부딪히지 않겠다는 것, 부딪힐 것 같으면 피해서 안전하게 가거나 포기해버리는 것,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나의 무감각과 무능 때문이라는 것, 나에게 사랑(꼭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은 어디까지나 관념과 윤리의 차원, 즉 이상의 차원에서만 존재했을 뿐 실제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것. 도대체 나는 무엇에 절실했나, 혹은 무엇을 조금이라도 사랑하기는 했었나. 왜 나는 감각에 충실하지 못했고 감정은 부정해 왔나. 감정도 재활용이 되나요, 그렇지만 재활용된 감정은 이전과 같을까요. 폐기처분 된 감정의 쓰레기장에서 조금은 섧어지는 요즘 내 마음의 기후가 부디 빨리 변화할 수 있다면. 그러나 한편 무언가에 절실하고 싶은, 혹은 절실해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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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쓰다 말고 구겨 버린 종이 조각 같다. 마침내 실패한 일상의 문장들. 그러니까, 부정당하고 망각되는 주어, 부적절했던 동사, 그러나 적당했던 형용사와 부사, 그래서 궁극적으로 실패한 문장들. 차라리 잊혀지면 좋으련만 요즘의 내 주변에는 구겨진 종이 조각들이 하릴없이 널려 있을 뿐이다. 소설책을 볼 때 빠르게 넘어가는 페이지를 보면서 인물들의 빠른 인생마감을 걱정하듯, 쉽게 찢겨져 나가는 하루하루를 보며 쉽게 긴장하게 되고 초조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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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일 서해에 갔다오면 11월 이겠구나. 스물 여섯도 이렇게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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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이 말했듯이, 로마인들에게 죽음이란 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Ad plures ire)'라는 의미였다.
학교에서 하는 쇼팽 200주년 기념 행사의 마지막 리사이틀에 갔다 왔다. 별로 기대를 안하고 갔...다고 하기는 좀 무엇한게, 리사이틀 시작 전에 제일 먼저 공연장에 도착했기에... 여하튼 덕분에 제일 앞에 앉을 수 있었고 연주 하는 이의 몸에 쉽게 집중할 수 있었다. 빠르고 능숙하게 움직이는 통통한 손가락, 격정적인 순간에 부르르 떠는 몸, 딱딱 끊어지는 몸짓, 몰아치기 바로 직전에 들이켜는 콧소리, 연주 한가운데서 흐르는 땀방울까지, 이 모든 게 다 가까이서 전해졌다. 일찍 온 게 다행이었지. 연주 시작 직전의 몰입과 침묵의 시간, 연주가 시작하고 끝날 때 수트의 단추를 잠그고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살짝 삑사리 난 부분도 있었는데, 유명한 피아니스트도 삑사리를 낼 수 있다는 게 차라리 정직한 일이겠지. 리사이틀은 너희들 연주 들으러 온거지 다른 거 뭐 필요한 게 있냐는 듯, 인터미션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안내나 소개도 없이 진행되었다. 원래 리사이틀은 다 그런가? (내가 교양이 없어서..) 아무튼 무척 아쉬운 건 피아노 어떤 건반을 누를 때 쇳소리가 살짝 길게 난다는 거. 다른 데도 아니고 음대 콘서트홀에 있는 피아노인데 쇳소리가 나면 좀 그렇지 않나. 이 리사이틀에 비하면, 그제 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공연은 정말... 거기에 쏟아 부은 돈으로 차라리 학생들 창작극에 지원해주면 좀 좋니?
대학원 생활이나 대학원 수업이 재밌냐는 질문을 여전히 많이 받는다. 아무래도 첫 학기니까 그렇겠지만, 악의 없는 이런 질문을 받고 나면 조금 지친다. 모든 질문에 따르는 답변의 형식과 내용은, 이미 질문 자체에 어느 정도 내속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원 공부는 재미의 영역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일 뿐인데. 왜 '재미'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리게 되는 걸까? 아무래도 대학원은 '진정한' 삶이 아니기 때문에? 악의 없는 이런 사교적인 질문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을 보면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요 며칠 동안 왠지 조금 닳아버린 느낌이다. 오전 수업을 듣는 내내 장차 잡혀 있는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내일도 조금 먼 걸음을 해야 하고, 모레와 글피에도 멀리 갔다 와야 한다. 갔다 와서는 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군... 그러면 바로 월요일이 될 것이고, 다시 수업을 들어야 할 것이고... 정말 이번 학기는 지독하게 긴 것 같다. 즐거운 일은 잠깐이고, 씁쓸하고 쓸쓸한 일은 여러 겹으로 한꺼번에 터진다. 가끔 억울해질 때도 있다는 게 싫다.
내가 인문대 친화적인 구석이 있으면서도 인문대에 진학하지 않은 건, 인문대 사람들이 텍스트를 대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무슨무슨 전공자라는 호칭이 따라 붙는 사람들이 태반인 공간엔,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자유가 없다. 나는 뭐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읽는다. 그러므로 내 독해 방식에 대해, 예컨대 그것은 버틀러가 아니다, 그것은 라캉이 아니다, 그것은 헤겔이 아니다, 그것은 푸코가 아니다, 그것은 데리다가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틀렸다,라고 말하면 나는 아무 할말이 없다. 나는 버틀러와 라캉, 헤겔, 푸코, 데리다의 자손도, 후계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지적이 옳다면, 우리는 여기에 같이 앉아 있지 말고 각자가 숭배하는 저자가 쓴 성스러운 텍스트 속으로 침잠해야 한다. 저자가 권위있을수록 그 이름은 제 주변의 정신교통을 더 심각하게 통제한다. 저자의 신호가 불균등하고 불투명하면 할수록 정신교통은 더 쉽게 혼란에 빠지게 된다. 왜 거기서 이전투구해야 하는지 여전히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다만 심각한 오해나 오역만 아니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나는 현상을 읽고 글을 쓸때와는 달리, 책을 읽을 때 노동(혹은 일)하듯 하고 싶지는 않다. 왜 텍스트를 읽으면서 무슨무슨 전문가, 전공자라는 호칭을 통해 서로를 분할하고 제약하고 견제해야 하는가. 왜 담론시장과 학계에 유행이란 것이 생기는가. 왜 최신의 그럴싸한 담론을 수입해와야 유명해지고 밥 숟가락이나 뜰 수 있는가. 이건 서로의 지적 능력과 대화 능력을 의심하는 각자의 자만심, 레퍼런스 없이는 할말을 못찾는 무능함(마치 레퍼런스가 없으면 자신의 비루함이 폭로라도 되는 것처럼), 저자와 텍스트를 대하는 교조적 방식 때문은 아닐까. 다른 사람의 독해에 대해 제대로 읽지 않았다, 정통의 방식으로 읽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동시에 자기에 대한 속박이자 비난이라는 것은 왜 생각하지 않을까?
2.
이미 내가 윤리적이라면, 또는 윤리적인 삶을 살고 있다면, 나는 그냥 이대로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나는 윤리적이지도 윤리적인 삶을 살지도 않기 때문에 윤리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얼마 전 나는 어떤 한 '고통'과 만났고, 나름의 방식으로 그 고통에 응답하여 연루되기로 결심했었다. 왜냐면 그러한 태도가 내가 생각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윤리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윤리는 인식론적이거나 기술적인 윤리였다. 타인의 부름에 응답하는 방식으로서, 판단하기 이전에 반응하고 연루되는 삶의 기획투사로서 윤리를 생각했다. 나는 그것이 거창한 생각이 아니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신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인 나, 몸을 가진 나,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고 구체적인 개인을 대면하고 있는 나는 지금은 어느새 지쳐버렸고, 이야기를 듣는게 지겹고 부담스럽다. 그 고통은 나의 삶과 시공간에 속하지도 않고, 심지어 나에게 말을 건네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냥 그곳에 존재하며 내 어깨에 들러 붙을 뿐이다. 나는 윤리가 아니라 오로지 죄책감으로만 반응한다. 그래서 이제는 그것에 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고통에 처방과 판단을 내리기 시작한다. 도처에 존재하는 다른 고통과 비교 우위를 정하게 된다.
나에 대한 얘기를 하면 할수록 역한 느낌이 나는 요즘이었다. 아무런 그 무엇도 없는데 괜히 무엇인가 있는 것인양 포장해서 말해왔던 것들이 마침내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는 텅텅 빈 껍데기요, 따라서 어느 것 하나 상처 없이 매끈한 자이다. 요컨대 나는 상처받은 척 하는 영혼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아무것도 없이 보수적이고 영온한 삶 안에서 쉽사리 살아갈 수 있었던 자였다. 생각보다 영악한 나는 상처조차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낼 수 있고, 더더군다나 어떤 상처가 요새 '먹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조금만 더 신경쓴다면 나는 얼마든 그렇게 먹히는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모두 가짜라는 것도 또한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가짜라는 걸 모르고 믿어주는 사람과, 가짜임을 알면서도 진짜인 것인양 믿어주는 더 영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그냥 믿는 자와 더 영악해서 믿는 자. 무엇이 더 올바른가?
하지만 선과 악에 대한 관념,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에 대한 관념이 갈수록 흐릿해져간다. 원래 있었기나 했던가, 혹은 내가 신념이 강하다는 건 무슨 헛소리였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도대체 무슨 신념이란게 남아 있기는 하던가? 신념을 가지는 것 자체로 쉽사리 비웃음 당하고 마는 요즘 세태 아니던가? 여전히 신념을 말하는 자들 앞에서, 나는 오히려 침묵하고 그것을 저주하고 묵살하고자 노력한다. 나는 그들이 무섭고, 또 그들을 만나면 쉽사리 지친다. 사실은 무시하면 그만일 것을 무시하지 못하고 그저 부인할 뿐이다.
오늘 저녁에 수업이 끝나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유독 추웠다. 홑겹 옷을 입으면 이제는 이렇게 벌벌 떨 수밖에 없겠구나. 마침내 가을이 왔고 나는 이제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해야할 듯하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고 독할 것 같다. 날씨 뿐만 아니라 내 마음부터가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것과 싸우기보다는 그것과 화해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같다. 그와 함께, 정말이지 다행스럽게도, 지긋지긋한 인생의 과제 하나가 종결되고 있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지긋지긋한 과제였다. 이제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말하기 조차 싫다. 이런건 아마 날씨 탓도 클 것이다. 가을이렸다. 스무 살 이후 6년 째, 슬럼프는 이 맘때 찾아왔었더랬다.
어제 학술대회 뒷풀이에서는 조금 특이한 분이 있었다. 생년월일을 말하면 사주를 봐주는 게 아니라 '인지구조'를 봐준다는 분이었다. 그 분이 내게 해준 말이 얼마나 '인지구조'스러운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는 남들보다 세 배는 고집이 세고 지배욕이 강하다고 했다. 그러나 무척 예민하기 때문에 앞서 말한 부분과 상보적이다. 한편 신념이 무척 강하기 때문에 신념 때문에 죽고 사는 일이 가능하다고 했다(아직도 그런 신념이 남았던가?). 그래서 주변에 그런 점들을 상쇄시켜줄 가까운 친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행히도 나는 그런 친구를 이미 알고 있다. 대체로 친구들이 에믹(emic)해야 한다고 가정되는 것과는 달리, 에틱(etic)과 에믹을 자유로이 왔다갔다 하면서 서로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조망해주는 친구. 그러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 친구가 최근 1년 간 나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그렇게 좀 생각하지마', '또 그런다' 같은 류의 말들이었다. 나 스스로가 괜찮다고 생각했던 과거에는 그런 말에 서운했던 게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전혀 괜찮지 않다고 생각하는 요즘에는 외려 그런 말들이 큰 도움이 된다. 나의 맥락에서는 온통 서로 다른 경험의 다발이었지만, 그 친구가 가진 관점으로 재구성하면 차이 없는 반복의 연속일 뿐이었다. 내가 나를 너무 '을'스럽다고 말하면, 그 친구는 '너는 을인 척 하는 갑'이라고 말해준다. 덕분에 최근 많은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지.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드문 요즘이다. 뭐 그리 할 말이 많은 삶이라고 조금만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으면 말을 쏟아 내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언제나 이야기에 굶주려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어제 술자리에서는 느낌 좋은 어느 대학의 교수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풍모가 약간 자유인스러운 사람인 탓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문학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교수는 외국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뗐고 그것에 내가 무지한 탓에 처음엔 접점을 찾지 못했던 이야기는 정이현, 공지영, 은희경과 홍상수, 김기덕의 작품을 매개로 접점을 찾았다. 소설가에 이야기를 나눌 때는 좋았지만, 홍상수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만큼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운 감독들도 드물기 때문에, 나는 어느 순간 '나의' 홍상수론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계보를 읊어가면서 이 영화는 어쩌고 저 영화는 어쩌고 홍상수 감독 필모그래피에서 분기점은 어느 영화였고 그 이유는 무엇이며 <옥희의 영화>를 비롯해 최근의 홍상수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고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 교수는 니가 뭘 좀 아는구나, 라고 말했고 그말에 나는 내심 으쓱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말을 부풀렸는지도 모르지. 그 다음엔 교수의 최근 관심사라는, written text와 visual text의 차이, 이미지와 표층의 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는 레이 초우를 들먹일 수밖에 없었다. 그 교수의 관심사였지만, 그보다 내가 더 말을 많이 한 셈. 아마 그 교수는 인내심을 갖고 들었던 것 같고, 잠시 누가 단체 발언 하는 틈을 타 교수는 잠시 화장실에 갔고, 갔다오자마자 가방을 챙겨서 나에게 눈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나는 그렇게 자리를 뜨는 교수에게(아무리 막차 시간이 가까웠지만) 엷은 수치심을 느꼈다.
책임감 없는 사람이 이제는 정말이지 싫고 지긋지긋하다. 책임감이 있다고 하여 그 사람이 특별히 딱딱하거나 재미없거나 능력이 없거나 예술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란 걸, 이제야 알것 같다. 사람의 책임감은 오히려 큰 매력 포인트다. 타인을 기다리지 않게 하는 것, 타인의 사정과 나의 사정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 무엇보다 시간을 지키는 것과 시간을 나누고 배분하는 문제. 절대적으로 시간이 모자라도 시간을 책임감 있게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 그런 것들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잘 알겠으나, 어려운 일이라면 그만큼 힘을 쏟아야 하는것 아닐까? 책임감이 없으면 아예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려고 들지 말아야 하는데, 일을 하려 들면서도 책임감이 없으면 도대체 어쩌란 말일까? 왜 엉뚱한데서 케어를 바라는 걸까? 그건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착취적인 삶의 형태일 뿐이다. 최소한의 배려심, 최소한의 예의, 최소한의 도덕, 최소한의 부끄러움과 수치심만 있어도, 누구나 최소한의 책임감은 가질 수 있다. 그런 무신경한 무책임감에 화를 내는 것은 아주 정당할 것이다. 나도 이제 슬슬 대면 상황에서도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어제 학술대회 일을 도우면서 나누었던 꿈 같은 몇몇 이야기들. 돈이 지금 당장 많은 것도 아니니, 만원 씩 펀드(;;) 에 부어가며 하나하나 구체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전에 이런 이야기들은 몇 번 나왔었고 그때마다 기대와 꿈에 부풀었으나 이내 시들시들해지고 슬퍼지고 말았었는데... 이번만큼은 정말이지 안 그랬으면 좋겠다.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성과가 우리 앞에 있어야, 작은 꿈이라도 구체성을 갖고 추진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관념의 생태계를 살지만, 결국엔 유물론자이기 때문에.
덧) 아직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지 않았던 대학원, 학회의 선배들이 나를 인지하는 것은 고맙고 힘이 되는 일이나, 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던 분들도 나의 출신학과를 기억하고 그것부터 이야기를 꺼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출신학과에 붙은 단어 하나 때문에 그렇게도 잘 각인되는 것일거라 추정해 본다. 그 단어 하나가 가진 막대한 힘.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부러운 건 언제나 거기엔 여행 외에 뭔가가 더 있기 때문이라는 기대 때문에. 당신이 떠나는 여행의 진짜 목적, 여행을 가기 위해 들였을 여러 노력들,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설렘과 기대, 그리고 결국 생활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결정적인 여유 혹은 마음가짐, 또 돌아 오고 나서의 기분 좋은 후유증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이 떠나고 돌아올 과정 모두를 관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결국 잠시라도 떨어져 있음 불안감에 시달릴 사람이고, 그렇기에 결국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떠나지 못할 사람이고, 무엇보다도 외국어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흘리는 눈물의 의미가 무서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를 종내에 떠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일까. 여기서 말하는 여행은 어딘가로 일상을 뒤로한 채 떠나는 행위 만이 아닌, 어떤 삶의 태도이자 윤리로서의 은유적 여행을 의미하는 것. 결국엔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과정을 겪음으로써만 가능한 경험의 기록들을 가지고야 말겠다는 자세, 또한 다녀와서는 이전과는 같지 않은 나와 당신을 발견하지 않겠냐는, 뭐 그런 것. 나는 예전엔 그것이 글이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결국 그것이 향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걸 알 것 같아. 어딘가로 데려가주는 사람이 아니라, 어딘가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요즘.
남루한 당나귀가 풀을 뜯듯 주디스 버틀러의 글을 읽는다. 수업 때문이나 꼭 수업 때문에 읽고 있지는 않다. 언젠간 읽으려고 했는데 마침 번역 강독 수업이 개설되었을 뿐... 조만간 요약을 해야 하는데, 과연 요약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차라리 그걸 가지고 에쎄essai를 써야 하면 쓸 수는 있겠는데. 적어도 그의 글을 몇 년 간은 놓지 못할 거란건 예전부터 알았다. 아카데미커들의 팬덤이 오늘 어제 일은 아니고, 또 나는 지젝이나 바디우, 랑시에르, 들뢰즈 같은 남자 피플에 대한 팬덤이 왠지 모르게 싫지만, 그런 쟁쟁한 스타들의 별자리에서 유일하게 외계 전파를 보내는 사람은 오직 버틀러 뿐이다. 그렇다면 뭐가 그렇게 좋을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먹일 수야 있겠지만, 사실 버틀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은 요즘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유형이 몇 가지 있다. 친해지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기는 한데... 여하튼 버틀러가 해독하기 어렵기는 어렵지만 글을 쓰는 스타일이 그러니 탓할 수 없고, 사실 전달하는 메세지는 꽤 명쾌하다. 오래 머리 속에 남는 게 없어서 그렇지 읽을 때는 어떤 쾌감이 있지 않나. 책에 서로 다른 색깔로 밑줄을 죽죽 그어가며 무릎을 치고 충격을 받는 사람들. 그런 쾌감을 아는 사람과, 그런 쾌감이 싫거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성운과 성운 사이 만큼의 거리가 있을 것이다.
학교에 채식 뷔페가 생겼다. 근데 가격이 무려 5000원이다. 학교 밖의 채식 뷔페에 비하면 싸지만 메뉴를 보면 그렇게나 받아도 되나 싶다. 오늘 처음 만들어졌다고 해서 살짝 넘겨다 보았는데 사람들이 적지는 않았다. 아마 첫날이라 그럴 것이다. 도대체 이 뷔페가 장기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 싶은 가격대이지만, 여하튼 나는 내일 꼭 가볼 것이다. 내 채식이 완전히 물 건너가고 있는 요즘, 이 뷔페 운영의 향방은 내가 채식(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비육식)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어떤 척도가 될 것 같다. 차라리 예전처럼 먹고 싶은 반찬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식단으로 해주지... 나 그럼 매일 그 식당에 가서 진짜 채식 열심히 할 수 있는데.
중앙도서관에 열람실에 공부하러 가면 오전엔 괜찮은데 오후 되면 이상한 사람들 정말 많다. 공부하러 가는데 왜 떼로 오는거야? 일은 떼로 해도 공부는 혼자 해야는거 아냐? 니들 머리는 뭐 블루투스로 연결되기라도 한거야? 집합지성이야 니들은? (차라리 연애하는 사람들은 봐줄 수나 있지) 근데 떼로 왔으면 열심히 독려하면서 공부나 하지 왜 다 엎어져 자는거야? 저쪽 너는 도서관에서 코를 왜 고는거야? 떼로 와서는 왜 먹을 걸 나눠 먹는 거야? 왜 열람실에서 인사하고 잡담하는거야? 여기가 니들 사교장이야? 조용한데서 소곤소곤거리면 더 신경 쓰인다는 걸 모르는거야? 도대체 왜 커피를 후루룩 대면서 먹는거야? 왜 쨥쨥대면서 캬라멜을 씹는거야? 과자는 왜 먹어? 밥 먹고 왔으면 트림하는게 당연한거야? 자기 입냄새 맡아본 적도 없는거야? 대체 신발은 왜 벗는거야? 대중 공간에서 신발 벗는 게 무례한거라는거 몰라? 노트 새로 샀으면 밖에서 포장을 뜯어서 가져와야지 왜 들어와서 북북 뜯는거야? 그것도 하필이면 내 앞에서? 미친거 아냐 다들? ㅠㅠ 다들 알면서 그러는거야 설마? 그럴거면, 제발, 제발 좀 나가줘 젭라...
내가 인류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인류학 관련 전공을 택하게 된 이유는 최대한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넘쳐나는 이론들에 질식할 것 같아서 이고, 세상에 있지도 않은 것들을 마치 있는 것인양 과장하느라 큰소리를 덜 치기 위해서이다. 원래 거짓말 칠 때 목소리는 요란하게 커지기 마련이다. 인류학이라고 해서 거짓말을 안하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전혀 있지도 않은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내지는 않으니까. 큰소리를 뻥뻥치지도 않으니까. 물론 이론이 주는 상상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이론을 공부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학문하는 과정에 겨우 첫 발을 들인 이상 일단 자료를 모으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를 한 다음에 이론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A, B, C, D, 이렇게 자료가 하나 둘 씩 쌓여나갈 때, 그 때 비로소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내 이론을 세우는 것이 가장 좋다고 믿는다. 그럴 때 그 이론은 거짓말을 최대한 덜 칠 수 있다. 타인의 이론들을 정합해서 이론을 찾는 것 보다는 훨씬 정직한 과정이다. 또 위대한 이론가들이 젊었을 때부터 이론가였던 것은 아니다. 대개 그들은 이론가가 되기 이전에 우선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했다.
오늘은 학교에서 하는 두개의 컨퍼런스를 구경했다. 하나는 아시아 컨텍스트에서 영어연구에 대한 컨퍼런스였고, 다른 하나는 집에 대한 포럼이었다. 전자에 가서는 홍콩 産 문화연구에 대한 호감을 재확인했고(홍콩은 세계 담론 시장에서 아주 매력적인 생산지다. 역사도 그렇고 정치경제적인 위치도 재밌는 곳이다. 정말 홍콩에 몇 달 가보고 싶다), 후자에 가서는 이렇게 재미없는 포럼은 대체 왜 하는 것인지, 또 의미 있지도 않은 간학문적 접근을 도대체 왜 하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니까 개념도 제멋대로 아무거나 갖다 쓰잖아. 이미 박사가 되어서 특정 분야 말고는 머리가 굳어버린 사람들을 데리고 간학문 하지말고, 학문 초년생일 때부터 타학문에 대한 상상력을 길러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포럼의 발표문은 온통 뻥으로 가득하거나 적어도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질문이 필요하지 않은 글의 전제와 문장이, 선선히 납득할 수 있는 전제와 문장보다 훨씬 더 적을 정도로 형편 없었다. 아무래도 교수라는 직함이 붙으면 다 게을러지나보다. 혹은 게으르고 무능하니까 교수가 되는 건가? 왜 성실하고 멋있는 사람들은 이런 요란한 포럼엔 초대도 안 되는거야? 이름도 요란한 HK니 무슨 포럼이니 하는 것은 이제 다시는 안 갈거다. 작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나 샅샅이 뒤져서 찾아다녀야지.
글은 뭔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쓰는 때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감추기 위해서도 쓴다. 이만큼 이해했거나 이만큼 할말이 많았다고 드러내는 글이 있는 반면, 이해하지 못한 것과 할말이 없는 사실에 대해서 감추기 위해서도 쓴다. 후자는 대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또 대학원 과제는 늘 솔직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왠만해서는 그렇게 쓰지 않는다. 나는 대놓고 드러내는 글이 늘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에둘러가고 최대한 피해가며 최대한 포장한다. 왜냐면 여기에도 그렇게 좋은 것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좋은 것에 대해서는 얼마든 좋게 쓸 수 있겠으나 나쁜 것에 대해서는 나쁘게 쓸 수 없다. 안타까운 딜레마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게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근래 내가 쓰고 읽힌 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을 동시에 얻는다. 긍정적인 반응은 요약컨대 그런 것이다. 뭔가 있어 뵌다, 화려하다, 공을 많이 들였다, 뭐 그런 것. 부정적인 반응은 요약컨대 그런 것이다. 핵심을 안찌른다, 미사여구, 겉멋.. 뭐 그런 것. 이런 말들이 정곡을 찌르는 것이 있기 때문에 썩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완전히 바꿀 생각은 없다. 어쨌든간에 글은 어떤 질감으로든 최대한 있어 보여야 한다고 믿으니까. 그래서 나는 글이 생각을 담는 틀이라는 믿음이 싫다. 글은 다만 글일 뿐이다. 글에는 별 다른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글을 양식화하는데 공을 들일 뿐이다. 뭐 나중에 논문은 논문답게 써야겠지만.
그런데 위에 쓴 부분에서도 읽어낼 사람은 읽어내겠지만 나도 인정욕구에 미친 사람이란게 드러나서 계속 실소가 나온다. 나는 한 줌의 선의와 호의에도 쉽게 감동하고 넘어간다. 그걸로 살아가는 이상 결핍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아는데도, 무엇보다 그게 끔찍하게 싫은데도, 그렇게 몸이 반응한다. 결핍이 결핍으로서 에너지가 되는건 삶을 통째로 갉아 먹는건데도.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흡연모드로 바뀌었고 지난 일주일간 내내 태운 연기로 폐와 혀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숨이 쉽게 가쁘고 혀가 까끌까끌해졌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당분간 피우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건강문제가 아니라 그냥 마음문제다.
아침저녁으로는 몹시 쌀쌀하고 한동안 우울했던 것은 며칠 사이 많이 없어졌다. 무엇을 잃어버렸나, 아직도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 남아 있기는 하나 생각하다보니 겉잡을 수 없이 쓸쓸해졌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좋아할 수 있는 건 사람일 뿐이구나 싶어서 사람을 조금 더 좋아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래도 될만큼 충분히 안전해보이는 사람들을 몇몇 만났다. 이상한 데에 마음 빼앗기는 일도 잦아졌지만, 한편 이상한 데에 마음 쏟는 일도 비례해서 줄어들었다. 이게 조금씩 현명해지는 과정이라 믿는다. 전자는 새로운 것을, 후자는 옛 것을 향한다. 나는 그리 많은 사람에 마음을 쓸 수 없는 소인배. 이 한계 안에서 경제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성균관스캔들 진짜 좋다 ㅠ
박민영, 안내상 둘이 최고 ㅠ 박민영이 제일 좋을 때는 건반! 하고서 밥 맛있게 먹을 때 ㅋㅋ
오랜만에 고향 집엘 왔다. 역시나 고속도로는 꽉차 있었고, 평소보다 2배나 걸리는 시간이 들었다. 같이 살던 강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방에 처박힌 지금은 내 방이었던 이 공간이 너무 낯설다. 집에만 오면 생기는 알러지 반응이 역시나 시작되었다. 코가 막히고 재채기가 나오고 머리가 웅웅 울린다. <성균관 스캔들> 7화를 구해 두었다.
서울은 넓고 또 넓고 돈만 있다면 먹고 마실데도 많은데, 왜 이렇게 갈 곳이 없는지 모르겠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주변으로는 당연히 아무 것도 없고, 명동이니 강남이니 하는데도 꾸준히 싫다. 그러다보니 결국 발길을 돌리게 되는 것은 홍대이다. 홍대는 특별하다기 보다는 아주 무난한 동네다. 어제도 그제도 약속이 모두 홍대였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이제 자연스럽게 홍대가 디폴트가 되었다. 옛날엔 자주 약속 장소가 되었던 녹두나 신림, 입구역 근방에서 만나는 건, 조금 궁상스럽게 느껴질 때도 많아졌다. 왠지 이 근처를 약속 장소로 잡으면 미안한 감정마저 든다. 나는 홍대 문화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홍대 피플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언제나 갈 수밖에 없다. 왜 그럴까? 이렇게도 장소가 없는거야?
어제는 오랜만에 Y와 독대했다. 내가 조금만 더 컨디션이 좋았어야 했는데.. 여하튼 가장 일상의 동기가 된 부분만 기술하자면, 우리는 어쨌든 석사 과정에 들어섰고 앞으로 논문을 쓰게 될텐데, 여기에 쏟아 부은 노력들을 석사 논문으로만 내보내고 창피해하는 것보다는, 이 결과를 다른 것들로 전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다. 일본에서 만화 원작이 나오면 영화도 만들고 애니도 만들고 드라마도 만들고 캐릭터 사업도 벌이듯이. 석사 논문을 바탕으로 출판을 한다거나 하는 것. 저자가 되는 것에 대한 욕심, 그래서 최대한 널리 읽히고 독자들과 영향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 그러려면 어떻게 '핫'한 아이템을 찾아서 논문 작업을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버리는 것. 물론 이런 것들이 굉장히 야심차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굉장히 소박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쏟아 부은 노력에 대해, 나 스스로가 나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일 뿐이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얼마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술을 마시게 되면 사실 우리는 술 자체보다는, 어떤 계기의 폭발을 기다리게 된다. 그럴 때 단어들은 질서 정연한 소우주를 위해 폭발을 시작하고,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의 우주를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는 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혹시나 서로 눈치보며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누군가가 꼬인 혀를 빌어 폭력적으로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혹시나 마음이 통하지는 않을까, 혹시나 왠지 싫은 사람이 싫은 이유를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까, 혹시나 무슨 조짐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서, 혹시나 싶어서, 혹시나.
학부 때 그나마 좋아했던 선생님들은 모두 문학 교수였다. 한 분은 영국문학, 특히 시에 관심을 가졌고 다른 한 분은 미국문학, 특히 소설에 관심을 가졌다. 그 중 영국문학 전공교수가 이번 학기에 퇴임하신다고 했다. 정년기념 강연회를 한다는데... 영어교육과에 대한 애정은 털끝 만큼도 없지만 이 강연회는 가봐야 하나 싶어. 정년기념 강연회라니 이렇게 애틋한 이름이 있을 수 있나.
그러나 내 경험상, 영어교육과라는 학과에서 문학의 지위는 늘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에 문학전공으로 들어간 친구로부터는 아마 이 선생님들이 퇴임하시고나면 문학교수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거기엔 어떤 의외성도 없었고 차라리 자연스러움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되어야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문학이란 것은 고작 그런 지위인 것이다.
물론 문학이란 것이 특권일 필요는 없다. 즉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졸업한 영어교육과처럼 실용적인 학풍을 가진 학과에서라면, 문학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것일 뿐이다.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에서 냉소적으로 묘사되었던 바 영문학과에서는 문학이 여전히 가치 있을 수 있겠지만, 영어교육과에서는 교양으로서의 가치도 거의 없다. 문학 수업을 좋아하는 이들은 매우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 영어 공교육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 어느 교과서 텍스트에서도 문학을 쓰지는 않는다. 그러니 부족한 영어학, 영어교육방법론 교수를 초빙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교과서 전문가를 초빙하거나 수업 전문가를 초빙해서 학생들 임용고사 준비를 시키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영어교육과에서는 착하디 착한 얼굴을 한 영어 '전문가'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난 내 출신을 언제고까지 부정하게 될 것이다. 내가 거기를 어떻게 졸업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2.
갈수록 확신은 떨어져가고 그 사람의 이름만 보면 기운이 빠진다. 시작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러는 것인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 계속 가고는 있지만, 이런 무기력한 상태로 그 사람을 봐야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인가 싶다. 여전히 올바름이나 윤리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나는, 실제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면서 이렇게 전전긍긍하기만 한다. 그래서 오늘 했어야 할 전화를 망설이다가 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면대면 상황에서 이야기 드려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비겁한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이해관계가 생긴다는 것이 이렇게 비참한 일인 줄은 몰랐다. 사실 누구라도 이해관계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거기에 속하는 것을 애써 부정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피터팬 컴플렉스라고, 모라토리엄이라고 욕해도 좋다. 그러나 나는 이제 완전히 그 논리에 포섭되어 가는 느낌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오늘도 욕과 한숨으로 하루를 보냈다.
3.
그것에 대해서 나는 "찌질하다"고 표현했고, 그것은 한참이나 언어를 고르고 골라 추상화 한 결과물이었다. 경험의 농축과정, 그 결과물이 "찌질하다"라는 것일 줄은 나도 잘 몰랐다. 그건 내가 가장 거부하고 싶었던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입 밖으로 나와버린 말은, 앞으로 그것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벤야민이 말했듯 말은 생각을 정복하기 때문이다(벤야민에 따르면 글은 그 말을 지배한다. 그러나 나는 내 말에 거스르는 글을 쓸 마음이 없다). 물론 선생님은 "아름답다"라고 말씀했지만, 아름다움이란 결점을 사랑하는 것이어서, 그 결점이 태도를 바꾸어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순간, 그 잔여물에 매달리는 건 최소한의 존엄마저 포기하는 일이 된다. 나의 오랜 집착은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가진 환상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었을 뿐이다. 역사는 처음엔 비극으로, 다음엔 희극으로 온다고 했던가. 그러나 세번째를 위한 드라마는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세번째는 그냥 ridiculous하기 때문 아닐까). 환멸의 영토에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한 느낌이고, 마침내 지쳐버린 것 같다. 지쳐서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다. 지금 당장은 구토하고 싶고, 그러고나면 이제는 연애나 하고 싶다. 여기까지 오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리석었던 시간들에 안녕과 애도를.
4.
이야기에 굶주린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옴니버스 영화 <어떤 방문>의 첫 번째 단편을 보면, 할아버지를 여읜 재일조선인(?)이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남은 족자를 유언에 따라 돌려주기 위해 한 일본 가정에 방문한다. 할아버지는 이 집주인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었고, 그 보답으로 족자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집주인은 방문한 이에게, 이전에 할아버지에게 받았던 부채를 돌려준다. 이 부채의 내력이 있냐고 물으면서 말이다. 내력이라니...! 사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사물에 깃든 이야기를 점점 더 들을 수 없게 된 요즘에는 '내력'이라는 말이 갖는 아우라가 있는 것 같다. 비단 사물 뿐 아니라, 장소에 깃든 이야기 조차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듣기'보다는 기록된 것을 읽어야 하니 말이다. 소설을 '읽는' 것도 조금 지친 것 같다. 꿈 이야기도 좋고 옛날 이야기도 좋으니, 이야기나 좀 듣고 싶어.
5. Must-see 강연!
초청 강연자: 타니 바로우(Tani Barlow) 교수
강연 제목: New Trends in the Debates in Colonial Modernity and Critical Asian Studies
(식민지 근대성 논쟁의 새로운 흐름과 비판 동아시아학)
*일시: 2010. 9. 15 (수) 오후 2:00 ~오후 6:00
*장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강당
바람이 세게 불었던 어제 아침, 내가 좋아하는 악보가 그려진 검은 우산을 들고 나가면 금방 부서질 것 같아 신발장에서 새 우산을 꺼냈다. 우산은 튼튼해보였지만, 손잡이엔 누구의 칠순잔치라는 게 써 있었고, 그게 창피했던 나는 그걸 모두 긁어내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우산은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에게 그걸 말해두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 우산은 내것이 아니라는 예감, 그러나 좋아하는 우산이랑 비슷하고 지금 필요하니까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 예감대로 나는 커피를 사러 들어갔다가 그 우산을 놓고 나왔고,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두고 나왔고, 열람실에다 놓고 나왔다. 그 때마다 모두 머지 않아 서둘러 돌아가 찾았다.
그러나 택시를 타고 낙성대 역에 도착했을 때, 마침내 그 우산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어제 낮, 해가 떠서 더 이상 우산이 필요 없었을 때, 차라리 우산을 버리고 돌아다녔으면 어땠을까? 그러나 나는 시작부터 내것이 아니었던 우산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다. 내것이 아닌 것 같으면 처음부터 내것이 아닌데. 그러나 나 스스로는 내것이 아닌 우산을 절대 버리지 못할 것이고, 마지막 혹은 파국에 이르러야 내 의지에 역행해서 우산과 결별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여러 일들이 떠오른다. 문제는 <우산>이었는지도 모른다.
2년 반 만에 '개강'이라는 걸 맞이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왠지 긴장되는 마음에 늦잠을 잤음에도 서둘러 집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02번 버스를 타는 줄은 무척 길어서 한참을 걸어서 줄을 서야만 했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았던가. 줄을 따라 햇볕은 뜨거웠고 공기는 눅눅했다. 정수기에서 뜬 차가운 물이 금방 미지근해졌다. 불쾌한 습기가 몸을 엷게 감쌌다. 한여름 장마철에 1회용 우비를 입은 느낌. 오래 된 마을버스는 에어컨도 잘 나오지 않았다. 과연 이게 잘 한 선택인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학교에 가서 아는 얼굴을 많이 만났다. 반가운 얼굴은 적고 피하고 픈 얼굴은 많다. 얼굴만 여러 번 봤던 후배들은 빠르게 지나쳐가는 나를 다시 한 번 힐끗 바라본다. 2년만 더 있다가 학교에 왔어도 이런 곤혹스러운 일은 당하지 않을텐데. 서둘러 단대 열람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는데 에어컨에서는 곰팡내가 난다. 열람실 한 편엔 옛날 NL이었던 사람이 고시인지 임고인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점심은 어쩌다보니 커피로 때웠다. 그 사람은 그냥 자리에서 굶는 것 같았다. 신입생 OT는 그럭저럭 40분 만에 끝났다. 밖으로 나오자 갈데가 없었다. 중앙도서관 열람실에도 내 자리는 없었고 단대에도 없었다. M 말대로 그 방에라도 자리를 잡고 싶었다. 내일 한 번만 더 권해주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제 S와 H랑 오래 술을 먹으면서 (나로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내 욕심이 어디까지인지, 내가 못하는 것 혹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침내 선명해지는 순간들!
유치한 감정들은 여전히 낯설고 내것이 아니어야 할 것 같지만, 이번 학기부터는ㅡ어쩌면 내 인생 사이클에서 마지막일지 모르므로ㅡ당분간 그 감정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다. 치기 어린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여지면 받아들여지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이렇게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이걸 긍정적이라고 볼 것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나를 낯설어하게 될 것 이다. 그것도 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휴가를 나와 이사한 집에서 머물던 동생이 갑자기 뇌수막염 판정을 받고 입원했다. 친척들과 부모님 집들이하랴, 병원 왔다갔다 하랴, 정신없이 보냈던 며칠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동생이 퇴원해서 국군병원으로 간다. 야간엔 눈이 잘 안보이고, 처음 가는 서울 길을 무서워하고, 오래 운전하면 너무 피곤해서 자주 조는, 또 이제는 50 중반 들어선 아빠는, 내일 아침 일찍 동생을 홍천 국군병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서울 집에 와 있다. 그리고 지금은 내 방에서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나는 아마 오늘 밤 잠을 설치게 될 것이다. 엄마는 여느 때처럼 묻지마 세트를 잔뜩 보냈고, 나와 동생은 그것들을 정리하다가 조금 짜증이 났다. 도대체 아무도 먹지도 않는 곶감은 왜 가져왔냐며, 변하니까 도로 가져가지도 못하지 않냐며, 제발 좀 미리 물어보고 주든지 말든지 하라고 대놓고 역정을 내는 자식들에게, 아비는 순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외삼촌과 소주를 마시고 눈이 벌개져 돌아온 아비가 외삼촌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나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궁금해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어지러워 아무 책이나 집고 폈는데, 하필이면 그게 공지영 작가의 옛 소설책이었다. 그 소설책의 몇 소설들은, 90년대식 부채감을 가진 자아로 80년을 회상한다. 90년대식 부채감을 가진 소설의 자아는 '살아남았고', 약간의 죄의식으로 '잘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혹은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전에 두 번 읽었던 이 소설책에서, 나는 이전과는 다른 구절들을 인상 깊게 읽고 책귀를 펴고 접는다. 오늘 만났던 A에게, '삶이 간결해지고 있다',고 말했던 건 실은 이 책에서 읽었던 표현이었다. 원작 소설과는 다른 맥락이었지만 말이다. 이 소설책은 지나간 것들에 대해, 혹은 지나간 것들의 이름으로 현재를 이야기한다.
구체적인 소재는 다르지만, 요즘의 내 상태와 책의 정서 구조는 밀접하다. 영원히 정리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무엇인가가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인가는 차곡차곡 정리되어 내 과거의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에 전시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여야만 하는데, 혹은 원래 오늘 가려고 했던 심포지엄의 주제인 어느 철학자의 표현을 조금 빌자면, 오래 지속되는 미래이어야만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하나 둘 씩 자연스럽게 과거가 된다. 지금의 내게 남은 게 별로 없다는 느낌이다. 내일은 S와 이태원에 가기로 했다. J도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했다. 만나면 좋겠는데. 약속 시간은 늦은 저녁이다. S를 만나기 전엔 오랜만에 종로에서 청춘을 다룬 영화 한편을 볼 것이다. 그리고는 좋아하는 커피 체인점에 잠시 앉아 있어야 겠다. 이태원에 가서는 술을 마시겠지만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과음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