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04

일기 2010/03/04 23:51
1. 습관적으로 방문하는 블로그들을 둘러보다가, 왜 내가 블로그를 하는지 생각해봤다. *사람들에게 내가 쓴 글을 읽히고 싶어서? -사람들이 블로그를 읽은 체 하면 외려 창피할 때가 많다. *뛰어난 통찰로 사람들을 교화하려고? -그런 글을 쓸 능력도 없거니와, 예나 지금이나 역시 가장 혐오하는 태도 중에 하나다. *허세? '쎈척(SC)'? -뭐 적당한 snob은 해로울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같아선 이 블로그가 그렇게 안보이길 희망할 뿐이다. *단순한 일상 기록용으로? -그렇다면 이 정도 형식을 갖춰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순간에는 늘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다. *파워블로거가 되기 위해서? -이 블로그엔 그럴만한 떡밥도 없고, 유명해지기도 싫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특정한 글쓰기 스타일(조만간 이 스타일을 가리키는 개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을 스스로 뒤집어 써야만하는데 그것도 싫다. *외로워서? -외로우면 그저 맥주를 마시며 <빅뱅이론>을 보거나 헤드폰을 눌러 쓰고 밀린 소설이나 시를 읽으면 된다. 이렇게 하나하나 늘어놓다보니 결국 이도저도 아닌 것 같은데, 이도저도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지 싶다. 끝.

2. 어제는 어떤 책에 대한 간단하면서 호의적인 감상평을 남겼고, 오늘은 그 책을 이어서 읽으면서 단박에 어제 쓴 글을 후회하게 되었다. 이런... 어제 좋게 읽었던 부분은 저자의 차후 연구 과제라고 믿어두자. 저자가 그 주제만 다루는 단행본을 낼 계획이 있어야 할텐데.

3. 그래도 요즘엔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어떤 '씬'에는 성실하게 대응하려고 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굳이 잘 보이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사실 머리가 좀 아프기는 하다. 아직 편한 자리는 아닌 탓일테다. 그래도 뭐, 하하.

4. 어찌되었든 관계에 있어서 아직 학습해야할 부분이 많다. 감정도 학습하는 것이라면 관계맺는 일도 일종의 학습인 셈이다. 욕망의 삼각형은 꼭 풀어야 할 중요한 수수께끼다. 꼭지점 각각이 모두 미지의 항이다. 그러나 그 답에 조금씩 근접해 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직은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A, B, S, 세 명의 사람이 내게 가르침을 주었다. 두 명은 비슷한 방식으로, 나머지 한 명은 약간은 다른 방식으로. 그 세 사람에게 정말 고맙다. 언젠간 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물론 그 사람들은 어이없어 할 것이다. 그 황당해 하는 얼굴도 상상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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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01

일기 2010/03/01 23:18

# 편혜영 소설가의 신간 장편을 읽었다. 예전에 출간된 작품은 읽기가 힘들었는데 이번 작품은 재밌게 잘 읽힌다.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인 <토끼의 묘>를 읽고 부터 갑자기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계속 후속작을 기다려봐도 좋을 것 같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상하지만 소설 속 배경이 되는 공간의 이미지가 잘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별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묘사도 충분한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것이 작품이 원래 노린 효과인가?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와 '메시지'는 남지만, 구체적인 세계를 그려내기 어렵다. 그렇게 읽는 도중에 나 스스로가 어딘가 떠버린 느낌이어서 작품을 '체험'할수가 없다. 소설이 어쨌든 작가의 주관으로 그려낸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고 해도, 깜빡 나의 현실인 것인양 혹은 내가 처해야 하는 상황인양 '체험'하는 경우가 정말 가끔 있는데…. 이건 유명한 외국 소설을 읽고 난 느낌과 비슷하다. 아무리 대문호의 작품이라고 해도 필름 이론에서 말하는 '이야기 세계(diegesis)'를 내가 구체적으로 그릴 수가 없으면 그냥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책 하나 읽고 서가에 꽂아둔 결과 밖에 안되는 것이다.

#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워낙 사람을 안보고 살아서 그런지, 요즘에는 사람들마다 스스로 쳐놓은 벽이 더 자주 더 많이 보인다. 벽의 종류도 여럿이고 높이와 두께도 제각기다. 벽이 예전에는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제 더 또렷하게, 더 완고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건 내 또래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나이를 하나둘 먹어가서 그런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을 점점 더 경계하기 시작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보는 눈이 달라진 탓일까. 어쨌든 또렷히 보이는 벽 탓에 이제는 좀 더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게 된 것 같다. 어차피 영원한 관계는 없다. 지금까지도 많은 관계를 잃었다. 그래도 결국엔 잃을 걸 잘 알지만, 아직은 좀 더 던지고 싶은데…. 근데 이런 종류의 느낌이 항상 그렇듯, 결국엔 나 혼자만 벽을 치고 있다는 사실.

# 나는 아직도 감정의 구분이 명확히 안되는데, 이런 사실은 여태까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도 지지받지도 못했다. 가까운 이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이야기의 끝에 가서는 늘 내 감정을 명확하게 구분하라고 주문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나는 그게 정말 안된다. 감정을 명확히 한다는 건 제 욕구를 사회적 요구에 맞추고 그에 따라 관계의 질서 역시 조절하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감정에 명확해지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 늘 내가 힘들다. 자기들도 잘 구분하지 못하면서, 왜 자꾸 그런 일에 공을 들이는 것이며 나에게도 왜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인지….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는 정유미의 캐릭터가 가장 좋았다. 정유미의 행동을 상처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되려 나쁘다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나는 영화에서 정유미가 감정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영화속 그녀는 어찌보면 다소 우유부단하고 선을 긋지 않아 애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독점적 이성애주의(모든 행위를 모노가미적 섹스주의로 환원하는)에 맞지 않는(그것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관계 패턴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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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25

일기 2010/02/25 22:59
#

피곤과 염증에 쩔어 가만 누워 있는데, 전도유망했다는 어떤 물리학 교수의 죽음을 타전하는 뉴스가 들린다. 연구 압박에 시달리다 자택에서 유서를 남긴 채 뛰어내렸다고 했다. 이어서 뉴스는 변성처리한 다른 교수의 인터뷰도 전한다. 자살 소식을 듣고 물리학 교수 세계에서라면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누구라도 저런 충동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없으리라는 인터뷰였다.

어차피 버려야만 자유롭게 생존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쉽게 버릴 수 있는건 제 목숨일 것이다. 하나 둘 소유를 시작하는 '성인'이 된 후에는, 내가 버리고자 한다고 하여 기꺼이 버려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회가, 관계가, 끈덕지게 그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혹은 "my"라는 소유격 문법은, 마치 나의 의지만으로 소유관계를 맺거나 청산할 수 있으리라는 언어적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my"로 묶여버린 관계는 그때부터 "나의" 것이 아니다. 그때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실존적인 선택은 어쩌면 그 물리학 교수가 한 일일지도.

결국에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한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것도 가지고 싶지 않다.


#

오늘 오후엔 어쩌다가 고기를 먹어야 했다. 근처에서 돼지를 잡았다했다. 냄새가 무척 비렸다. peer pressure로 나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비육식을 한다고 했을 때, 내 선언에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들이 쏘았던 불편한 시선을 기억한다. 아마도 나 스스로가 고기를 먹는 일이 끔찍한 일이라 여겼던 시절의 일이었을 것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자기가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며 끔찍하다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고기를 먹는 일이야 말로 아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할 것이다. 그런 시선을 받을 때면 애써 그들을 달래고 안심시켜야 했다. 나는 네가 고기를 먹는 것을 끔찍한 일로 보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여러 횡설수설(하지만 너도 나도 끔찍해). 그래야 그들은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고기를 즐겼다.

오늘 오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비계를 제거한 부분만 조금씩 먹었고, 그들은 비계가 참으로 맛있다 했다. 나는 비계가 싫다고 했다. 고기에서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입맛을 잃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또 애써서 다른 말을 꺼내서 그들을 달래야 했다. 나는 다른 고기는 좋아한다고, 제일 좋아하는 건 닭이라고, 옛날엔 어떻게 고기를 먹곤 했다고, 지금 먹는 고기는 대충 요리해서 냄새나는 것 같다고(그러면서 고기 요리법 하나를 추천했다), 또 니들이 비계를 좋아하고 고기를 늘 즐겨먹고 붕어와 개를 잘 먹는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내가 단지 못먹을 뿐이라고.

진짜, 이런 식으로 살아야 되나?


#

줌파 라히리의 소설집 <그저 좋은 사람>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영어 원제인 <The Unaccustomed Earth>가 더 마음에 든다. 뭐, '길들지 않은 땅'이라는 소설이 맨 앞에 실려 있고 오늘은 이 소설만 읽긴 했지만. 여하간 작가의 얼마간 날카로운 관찰력과 표현력 덕분에 심심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내가 언젠간 쓰고 싶었던 주제를 먼저 다룬 것처럼 읽히는 대목에서는 질투도 났다. 기억해 둘만한 장면도 있었고.

그래도 여전히 불편함은 남는다. 아직 전부 읽지 않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작가의 이력을 보면 역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2~3세대 이주자이다. 그의 이력이야 그렇다 쳐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부와 경제적 삶의 여유는, 단지 소설의 소소한 배경이나 설정이 아니라 그의 소설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조건으로 읽힌다. 인물의 창조, 관계의 설정, 서사의 유지와 전개를 지탱하는 조건일 뿐만 아니라, 그의 소설이 미국 사회,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유통될 수 있는 어떤 조건 말이다.

거기에서 아슬아슬한 균열이 엿보인다. 허울좋은 다문화주의를 라이프스타일로 제시하면서 이국취향을 즐기는 '고급' 자유주의 독자들의 취향을 거스를만한 어떤 조건들이 역으로 보이는 것이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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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일기 2010/02/21 21:50
예전부터 내가 남겨온 족적은 대개가 수치스럽다. 교지를 하면서 남겼던 것들, 다이어리에 남겼던 것들, 그리고 이 블로그에 남겼던 흔적, 모두가 말이다. 글쪼가리만 수치스럽다면 다행이지만, 천둥벌거숭이 같았던 20대 초반에 맺었던 관계의 흔적도 수치스럽기 짝이 없다. 유치한 언어와 이모티콘, 그 안에 묻어나는 지리멸렬한 욕망, 어쩌다 남아버린 녹음 파일에서 들은 내 음성 그리고 그 안의 감정... 다 싫다. 돌이켜보면 사실 다 언어와 관련되어 있다. 옛날에 썼던 언어들이 싫은 것이다. 고프만이 말했듯 수치란 감정은 사회적인 감정인지라, 그게 누군가에게 읽힐까봐, 혹은 누군가의 기억에 아직도 자리하고 있을까봐 수치스러운 것일게다.

어제 새벽에는 가만히 가라앉아 그것들을 생각했다. 그 전까지 어느새 6년 지기가 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수치스러운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던 탓인지도 몰랐다.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니 이제와 수치스럽게 느껴지는 족적은 대개 남들 보라고 쓴 것들이었다. 관계를 맺고자 했던 것도, 사실은 다른 사람들처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들 다 하고 있는 것 같았기에 그랬다. 내가 자주 쓰곤 했던 화려찬란한 이모티콘도 실은 내 감정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정을 읽는 이에게 알리기 위한 기호에 지나지 않았다. 예의바른 ^^ 부터 공감을 바라는 ㅠㅠ, 읽는 이가 발랄해지길 바라는 >ㅁ<따위의 이모티콘과 그 아류들까지. 이러저러한 상황이라면 마땅히 그렇고저렇게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당신이 그렇게 느끼길 바란다는, 그리하여 진부하고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감정 기호들.

그리고 수치스럽지 않은 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 보라고 쓴 글이었다. 또 수치스럽지 않은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정말 내가 좋아서, 내가 바라서 부단히 노력했던 관계였다. 거기엔 성공과 실패 따윈 없었다. 오로지 과정, 그 과정 하나하나가 중요했을 뿐이었다. 그러한 글, 그러한 관계, 그러한 흔적은 지금도 전혀 수치스럽지 않다. 그런 흔적은 누가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 글을 쓰면서, 그런 관계를 위해 노력하면서, 나는 지독히도 많이 변했다. 내 안에 머물러 있다가 터져나온 언어, 나의 간절한 바람이 비로소 내 몸을 뚫고 나와 투영된 관계. 그것들이 한 번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가장 좋은 소설이 나를, 나의 인식을, 나의 욕망을 온통 뒤흔들어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버리듯이. 마음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것들은 힘이 셌다. 그만큼 진정성도 있었을 것이다.

상당한 시간 나는 침묵했고, 그 중에 많은 것이 쌓였다. 아직은 나오기를 거부하는 찌꺼기도 있지만, 그 찌꺼기가 여전히 나를 머뭇거리게 하지만, 여하튼 뭐든 터트리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만개하는 진달래 꽃 사이사이 혹은 그 꽃 더미 아래 결국엔 트지 못하는 봉오리가 늘 있듯이, 결국 이 바람과 욕심이 만개한 후에도 언제나 잉여가 남아 버리겠지만. 그러나, 이제 조금은 사랑해도 좋지 않을까, 집중해도 좋지 않을까, 폭발해봐도 좋지 않을까, 조금은 구차해져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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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th New Year's Day

일기 2010/02/15 19:23
스물 다섯 번째 맞이하는 설날은 이렇게 지나갔고, 여전히 나는 한국의 혈족 문화와 명절 문화가 싫다. 마치 이런 명절을 같이 보내지 않으면 혈족은 더 이상 혈족일 수 없다는 듯, 1년에 두번 만나는 걸로 서로에 대한 부채를 덜 수 있다는 듯, 아무튼 이상한 전제로 유지되는 것 같은 혈족, 명절 문화.

술에 취한 채로 점쟁이가 뭐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집안이 흥할 수 없다고 했다'며, 그 나쁜 년만 아니었어도,라는 말을 주억거리며 울분에 차곤 하던 삼촌은 다행히 이번에는 오지 않았다.

동생이 많이 컸다며, 많이 예뻐졌다는 둥 희희덕거리며 이상한 농담을 건네고, 자꾸 주변에 두려고 하면서 술 따르라 하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남자 어른 친척 새끼들은 종종 죽이고 싶었다. (왜?) 그들은 무슨 훈장을 차고 찍은 사진을 벽에 걸어 놨거나, 밖에 새까만 큰 차를 주차한 채 5만원권이 가득 든 세뱃돈 봉투를 자랑했다. 그들은 명절의 술자리에서 호기롭게 말을 나누고 호탕하게 웃을 줄 아는 이들이다.

동생은 그런 남자들을 만나면 혼자서 가라 앉았다. 그들의 얼굴에 주름이 패이고 머리에 흰색이 늘어난 만큼, 그들이 세상에서 지워질 날도 조금씩 가까이 왔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많이 늙었다. 물론 그들이 그저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에게 상처받았다기보다는 단지 그들의 여러 행위와 속물성에 분노할 뿐이다. 하지만 절대로 그들의 장례식장엔 가지 않을 것이다.

명절엔 그냥 편하게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쉬고, 필요하다면 각자의 사정에 따라 기념일을 만들어 기념하면 될 일이다. 생일이든, 뭐든, 그거야 말로 상상력이 절실히 필요한 지점이다.

1년에 두 번씩 전국의 도로를 가득 메우는 비환경적인 해프닝은 왜 안 없어지는거야?
도대체 음력 1월 1일이랑 8월 15일이 무슨 의미가 있담?


어쨌든 모두에게 복된 새해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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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예전에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옮겨간지 몇 달, 결국 돌아왔습니다 (..) 다른 블로그에 썼던 글들도 옮겨 뒀구요. 새 블로그에서는 아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가운데, 좀 다른 방식과 내용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결국 지금의 블로그와 같이 되더라고요. 네... 뭐 장소를 옮긴다고 달라지는 법은 없습디다.

메일 계정으로 도메인이 사라질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이 계속 들어왔었어요. 그 블랙메일 탓인지 도메인 소멸 하루 전인 오늘 <간편 연장> 버튼을 눌러버렸네요.. 하; 결제하고 나서는 이 블로그에 미련이 남았나 싶어 예전 글들을 살폈는데, 네, 아무래도 미련이 남았나봅니다.

사실 예전에 썼던 일기라든지, 멋모르고 썼던 이론가들의 말이라든지 모두 창피하기 이를데 없지만, 그냥 껴안고 가려고 합니다. 지금 쓰는 글도 몹시 창피하거든요. 대체 몇 번째 인지.. 예전에 떠난다는 글을 남기고 갔을 때, 댓글에 어떤 분이 몇 번째 보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정말 맞는 말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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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일기 2010/01/31 00:13
<몰락의 에티카>를 뒤적뒤적. 좋아하는 소설책의 뒤 해설에 보면 자주 나오는 이름이고 글도 썩 마음에 들고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예전부터 누군가 궁금했었는데... 아무튼 반가운 평론집이다. 평론집이니 심심할 때 아무데나 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저께 도착한 <로쟈의 인문학 서재> 같은 다소 인터넷스러운 '산만한' 구성ㅡ블로그blog+북book=블룩blook이란다ㅡ보다는, 여전히 이런 어느 정도는 전통적인 글묶음이 좋다. <로쟈>의 경우엔 이현우씨보다도 편집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가 더 많이 보인다.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출판하는 마음은 아직 잘 이해가 안된다. 발표한 글을 모으는 블로그라면 모를까. 아예 물적 기반이 다르다보니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과 출판된 글은 호환이 잘 안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하는 잡지 프로젝트도 사실 많이 걱정 된다. 웹진 기반의 글쓰기와 실제 출판하는 글 사이의 크레바스는 어떻게 건널 수 있을지.
  
난 여전히 이런 평론가들의 글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는 애증에 가깝다. 그들의 글이 좋은 이유는, 그러면서 한편에는 불편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그들의 세련된 보편성 때문이다. (신형철의 경우엔 보편성을 거부하고 압도적인 특수성 내지는 매력적인 주관성을 추구하고 싶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이러한 보편성은 그들의 문체나 정치적 이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젠더) 포지션 혹은 그들이 택한 장르적 형식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그들의 글에서는 매일 마주하지만 종종 피하고 싶기만 한 일상의 비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요리책을 뒤적일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엘레강스하고 스타일리쉬한 셰프들은 대개 남자들이다. 그들의 파스타, 피자, 와인은 보편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일상의 비루함을 덮는다. 그들의 요리는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리연구가라고 알려진 여자들의 책은 다른 느낌을 준다. 콕 집어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여하간 읽어보면 매우 다르다. 요리연구가들의 책은 요리가 누군가를 위한 노동이라는 점을 미리 가정한다. 사진, 글, 모든 것에서 그 냄새가 난다. 그건 말하자면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일상이다.
 
이러한 젠더 차이는 여행책에서도 드러난다. 여행은 보편이 아니라 특수를 지향한다. 개별적인 장소와 시간에서 개별적인 관계를 맺고 개별적인 경험을 하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이를테면 인류애나 에티카, 혹은 여행에 대해 사유하기 위해 여행을 가지는 않는 것이다(물론 서경식씨 같은 경우나, 알랭 드 보통 같은 경우는 예외가 되겠다). 남자 저자들이 실용적이고 감성적인 여행책에서 죽을 쑤는 건 이런 것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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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든다"는 것이, 자기 뿐 아니라 남을 배려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경제적/심리적/물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나이에 일찌감치 "철"들어 버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지금 과외를 하고 있는 남자 아이는(그리고 내 여동생의 경우) 내가 보기엔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아이다. 경제적 능력도 없고, 모든 일상이 부모와 학교에 의해 짜여져 있는 상황에 몹시 답답해 하면서도, 정작 '청소년'이자 '10대'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찾기보다는 남의 시선과 심리적 빚 때문에 끝없이 고통스러워 하는 아이가 되었다.
 
아빠의 권위를 싫어하면서도 아빠의 체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기를 먹여 살려주지 않냐는 생각, 엄마의 간섭, 관심, 학업 성취에 대한 기대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보살핌과 애정을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 또래 집단 남자 친구들의 몰상식과 폭력적인 집단 문화를 경멸하면서도 그래도 자기는 반장이고 그들은 친구 아니냐는 생각, 수학과외 선생을 증오하면서도 그래도 그 사람은 선생 아니냐는 생각 등등. 그러면서도 그렇게 싫은 것들 속에서도 웃어야 한다는 생각, 관계를 유지할 감정노동은 결국 자기가 해야 한다는 생각.
 
어느 때였던가 이런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낸 뒤로, 이 아이는 틈나는대로 현실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디가서는 이런 뒷담화를 얘기할 곳이 전혀 없다는 듯. 이런 얘기를 나눌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이 없냐는 질문에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해하고 외로워 하던 모습을 본 뒤로는, 나는 더 이상 이런 얘기를 귀찮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아이 편에 서서 상대방 욕을 할수도 없는 노릇이기에(그 아이는 그들과의 관계을 셈에 넣고 있으니 내가 그들을 욕하게 되면 사실은 그 아이를 욕보이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얘기를 들어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기숙사가 있거나 자취를 해야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물리적 독립부터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줄 뿐이었다. 일단 물리적으로 독립하고 나면, 비록 힘들겠지만 심리적 독립의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고, 또 나이를 조금씩 더 채워나가다 보면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가 올 것이며, 그렇게 되면 네가 괴로워하는 것들은 차츰 옅어질 것이라고. 옅어지지 않더라도 너 스스로 옅어지게 만들어야지, 안그러면 노예가 될 뿐이라, 넌 지금 "착한아이 컴플렉스"다. 고작 이 정도 말 밖엔 해줄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아립(我立)이란게 마치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사실 "착한 아이"들은 많은 경우 일찌감치 철들어 버린 아이들이다. "착한 아이"들은, 정말 착하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타인, 특히 부모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자신을 조율하는데 능숙해진 아이들을 뜻한다. 부모의 한숨, 짜증, 슬픔, 실망, 웃음, 기쁨에 민감해지고, 자기의 감정도 그에 동화되어 자기의 행동을 규율한다. 부모는 그런 아이를 보며 기뻐한다. 그런 아이들의 일상은 늘 피곤하고 외롭다. 그런 일상, 관계가 싫다는 생각에 죄의식마저 느낀다. 심리적 종속의 소용돌이... 그걸 벗어나지 못하면 언젠가 네가, 그리고 앞으로 네가 만나 가장 소중히 여길 사람이 질식해 죽을지도 모른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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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아이, 일기,

무엇을 원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원했던 것이 사실 뭔지를 몰랐거든요. 정말 원했던 것이 있다면 오로지 관계, 다시 말해 매력적인 사람들을 더 많이 알고 싶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로 옮길 수는 없었지요)
 
내가 거기서 잘 할 수 있을지, 거기에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내가 거기에 어울리는지 하는 문제는 응당 나의 응답책임 영역을 넘어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었습니다. 일단 부딪혀 보면 되는 문제라 생각했죠. 가보면 알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회의가 듭니다. 내가 가진 '조건'들을 자꾸 떠올리게 됩니다. 주관의 의지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다만 주변의 상황에 따라 얼마간 유동적일수는 있는, 그런 조건들 말입니다.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 최대의 억압입니다. 평생을 싸워나가고 싶은, 그래서 공부(혹은 글쓰는 이)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그런 억압입니다. 그래요, 나는 평소에 어떤 얼굴을 하고 있든간에 본질적으로는 낭만주의자 입니다.
 
경계는 어떤 경우 최상의 자유와 보호막이 되지만, 어떤 경우엔 최악의 억압입니다. 나는 그 어떤 경계와 싸우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경계는 평생의 숙제이자 적입니다. 또 그것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습니다(그래서 억압인 것입니다). 어떻게 싸워야할지도 몰라 발만 동동구르는 처지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런 억압이 거기서도, 여러분 사이에서도, 나를 억압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불행한 것은 그 억압이란 것이, 구체적인 어떤 사람들이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강요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저는 그들을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결국 그 경계를 만든 것도, 싸우겠다고 드는 것도, 사실 저 자신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 경계선을 느꼈던 것도 저 자신입니다. 그 세계는 얼마간은 사회적 진실이 만들어 냈지만, 실은 주관이 만들어낸 세계입니다.
 
왜 나는 그 경계를 유연하게 넘지 못할까요. 어떤 숲에 사는 주민들은 작물과 인명에 해를 끼치는 야생 늑대를 잡을 때, 늑대가 좋아하는 먹이가 풍부한 지역을 중심으로 줄을 친다고 합니다. 야생 늑대들은 그 줄을 인지한 뒤로는 그 너머로 가지 못한다죠. 그 따위 줄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지나가면 그만인데도, 그 너머에 먹을 게 있는데도, 늑대들은 결국에 굶어 죽고야 만답니다. 참으로 슬픈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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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TAG 우울, 일기

10대 때는 어김없이 20살이 되는 나를 상상했듯, 20대 중반을 접고 들어가기 시작한 나이가 된 나는 30살이 되는 나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20대 초/중반을 지배했던 불안은 여전하지만, 불안을 동력으로 삼아 기꺼이 새로운 일을 추진할만한 열정은 이미 잃어버린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좌절, 너무 많은 실패, 너무 많은 혐오, 너무 많은 환멸, 너무 많은 ... 그러니까, 너무 많은 것들을 이미 지난 몇 년간 지나왔기 때문에.

물론 나이에 따라 열정을 배분하는 건, 한국 사회에 만연한 나이주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그 어떤 소위 '억압적 제도'나 '이데올로기'도 나이주의의 프리즘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 나이주의의 각본에 따르자면 20대엔 열정과 도전정신, 패기로 똘똘 뭉쳐 3~50대 기성세대들이 주는 떡밥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으며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되, 20대 후반이 되거나 30대가 되는 순간 얌전히 제가 찾아 먹을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므로 통상적인 '루저'가 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 2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가 아닐까. 제 짝을, 제 밥벌이를 제대로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러면서 대다수 이들은 보수화되고...

어쨌거나 지금 같아선, 내가 30살이 되면, 그래도 최소한 품위있게 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품위있게, 기품있게. 적어도 초라하지 않게. 모호한 말이지만, 사실 간단하다. 그저 그때 하고 있는 일과 생각에 이런 저런 변명을 붙이지 않을 수 있으면 되는 것 같다. 20대 초/중반 특유의 무지와 오기, 굽히지 않는 고집을 '진정성'이 커버해주었다면 30대가 되면 진정성으로는 커버 불가능한 부분이 생길 것 같기 때문이다. 자기 변명이나 자기 변호를 하지 않아도 내가 납득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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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30세, 일기

고통과 위안

생각 2009/10/14 00:17
고통은 측정할 수 없다. 숫자로도, 언어로도 그것은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고통은 볼수도, 전시할수도 없다. 고통은 그냥 고약하게 아픈 것이고, 다만 절대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자원을 많이 가졌기에, 심지어 고통을 욕망하고 탐닉할 수 있는(언제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얼치기 딜레당트들이 열정적으로 '느끼고자 하는' 고통은, 엄밀히 말해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굳이 말을 찾자면 '통증'에 가깝다. 살고 있다는 구체적 느낌을 받기 위해, 자위만큼이나 무해한 자해와 폭력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금 다른 경우, 예컨대 잔인한 고문관의 눈을 바라보며 파국을 짐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정의와 도덕 혹은 관계의 가치를 믿는 사람은 바로 그 신학적 믿음으로 인해 곧 다가올 파국 앞에서 신체의 '통증'을 견디어 낼수도 있다.

그러나 고약하게도 우리는 고통을 측정하고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왔다. 우리 시대의 사회과학적 전통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계량 가능성'에 입각해 있다. 만약 사람을 계량하고 측정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느끼는 고통에도 위계와 서열을 매길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그 전통 위에서 우리는 고통의 '계량 불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할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절대로 공식적인 견해로 인정 받을 수는 없다. 그것은 근대 체계가 마련한 사회'과학'의 뿌리를 제거하려 드는 악질 바이러스이므로. 숫자가 없는 사회과학은 아예 존립조차 불가능하지 않은가.

이 점에서는 되레 자연'과학' 분야의 생리학이나 신경과학의 성과가 더 윤리적이지 않은가 싶을 정도다. 적어도 생리학과 신경과학 그 자체로는 고통의 유일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고통을 '보편적인 것', 즉 호르몬의 분비나 뇌 구조 혹은 신경체계의 기능으로 치환해 버리는 놀라운 경향을 가졌기에 이 학문들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고통의 원인을 삭제한 채, 고통에 대해 얼마든 우생학적 처방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리학과 신경과학의 성과는 고통받는 주체에게 역설적인 위안을 주기도 한다. 고통을 언어화하는 순간 일어나는 고통의 상징화, 내지는 고통의 계량화(와 그에 이은 비교)는 늘 절망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언어화도, 수치화도 할 수 없는 나의 절대적인 고통이, 단지 나의 내부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신호나 신체기관의 이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것만큼 역설적인 위로가 되는 일이 또 있을까. 만성 우울증이 단지 쭈그러든 해마나 비정상적인 세로토닌 탓이라면 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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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하나. 아는 사람의 결혼 소식.

차츰 나이가 하나 둘 쌓여가면서 덩달아 늘어나는 것이 여러 개 있지만, 그 중에 정말 싫은 것 2가지. 하나는 얼굴과 목에 나이테처럼 늘어가는 주름. 다른 하나는 아는 사람의 결혼 소식.

한 때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블로그에 일종의 '결혼' 소식을 전한다. 진지하게 전공까지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사람인데…. 예전에 얼핏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사진으로 보니 역시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는가 보다. (시각매체야말로 우리 시대의 리얼리티니까?)

배낭여행에서 만나 지금도 가아끔 연락하고 만나는 사람도 올해 잘 나가는 레지던트 외과 의사와 결혼했고,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이었던 아이도 클래식 악단이자 교회에서 만난 이와 결혼했고, 선본 활동이랑 여러 활동을 같이했던 남자 선배 한 명도 올해 결혼했다. 다 내가 마땅히 찾아갈만한 사람들인데, 나는 역시 가지 않았다/못했다. 간다 만다 결혼식 당일 새벽까지도 고민하다가, 아니 결혼식에 가보려고 서울까지 갔다가도, 가지 않았다.

고집인지, 두려움인지, 질투인지, 알 수 없다.


둘. 내 속물 근성.

어떤 친구는 날 더러 지나치게 도덕적이라고 했으나, 나는 지나치게 속물적이다. 그게 속물 근성이란걸 알기에 어떤 면에선 다행이기도 하고, 알기에 더 못 돼 처먹은 구석도 있다.

나도 모르게 속물적인 판단이 머리 속을 스칠 때면 사이드 브레이크를 넣을 수밖에 없고, 그럼 그 즉시 잠이 들기 직전까지 하루종일 녹초가 된다. 끈끈한 점액질의 물체가 뇌를 감싸는 것처럼 머리는 무거워지고 마음은 엉덩이에 불붙은 망아지마냥 가빠져 버린다.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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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일기

사실 담배에 불을 붙일 때까지만 해도 아주 많은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목이 쓰라리고 기침이 나오고 눈이 매워지면서 눈물, 콧물이 쏟아지고……. 그런 부작용들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담배의 첫 모금을 빨아들였을 때 오래 전부터 담배를 피워온 사람처럼 담배연기가 쑤욱 몸 안으로 들어왔다. 순하고 부드럽게,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그때 많이 놀랐을 것이다. 이렇게 쉽다니, 이렇게 별거 아니었다니……. 마음에서 어떤 벽 하나가 툭 소리를 내며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편견과 관습과 자아의 작은 벽이.

김형경, <사람풍경>, pp. 129-30


내가 담배를 처음 피웠던게 언제였더라. 2005년 2월의 어느날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04학번이던 나는 '첫 후배'를 맞이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새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준비를 하다 결국 새터 D-Day가 되었고 나는 새벽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대감' 때문은 아니었고 단지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이었다. 새터 준비하는 과/반 사람들은 <올리브>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고 나는 잠을 자고 싶었기에 짜증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와중에 여차저차 하여 나는 갑작스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맡아 하게 되었다. 역사 관련 교양 프로그램이었던가. 자의 반 타의 반 이었을 것이다. 그때 시간은 새벽 3시 경. 9시~10시면 학교에서 출발이었는데.

물론 나는 그 일을 맡은게 싫지는 않았다. 나는 성격과 달리 데드라인이 코 앞에 닥친 급박한 상황을 즐겨하는 편이다. 내 성품은 그걸 싫어라 하는 것은 물론이오, 그런 방식이 내 기질과 맞아 떨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가끔은 뭐 어떤가. 사실 그런 식으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기분 좋게 투덜거릴 수 있는 것도 어쩌면 특권일 수 있으므로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 나 진짜 바빠. 갑자기 일이 커졌단 말이지. 아 진짜 죽을 것 같애 ㅠㅠ" 이런 식으로. 물론 그런 투정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지만.

하지만 그 때, 모두가 피곤하고 잠을 자고 싶어했던 그 때에 내 투정을 들어줄 사람은 당연히 어디에도 없었다. 그건 아침이나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럴 땐 그냥 혼자 있는게 낫다. 하여 나는 <올리브>에서 먼저 나와 자취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가는 길은 5분 남짓. 어쨌거나 사위는 지나칠 정도로 평온하고 조용했고 그래서 나는 좀 외로움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재목은 아니었고 물론 지금도 아니다.

그래서 자취방 건물 앞에 도착했지만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좀 더 걸었다. 잠시 뒤에 자취생 생활용품과 필수품의 만신전, <패밀리마트>의 초록 간판이 눈에 확, 하니 들어왔다. 한겨울 새벽, '사연 있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맥주를 사 마시면 왠지 간지가 흐르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편의점엘 들어갔고, 잠시 뒤에 내 손에는 맥주 대신 시중에 깔린지 얼마 안 된 담배인 "더 원"과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아마 왠지 '맥주보단 담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정확히 위에 인용한 문단대로 일을 치렀다.

어렸을 때 아빠 근처에서 희미하게 풍기는 담배 냄새를 싫어했고, 집 수리를 하러 온 아저씨들이 며칠 동안 머물며 뿜었던 담배 연기도 싫어했고, 담배를 소유한 것이 무슨 훈장이라도 되는 것 마냥 자랑스러워 하는 초/중등학교 때의 아이들을 싫어했었던 내가, 내가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 그것도 아주 부드럽~게. 술은 마셔도 담배는 안 해! 라고 다짐하고 다짐했던 과거는 단지 과거가 되었다. 꼭 담배가 나를 위해, 바로 이 순간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니, 드디어 내가 만나야 할 것을 만났다는 느낌이었다. 담배소명설.

이상하게도 그 해의 봄엔 과/반에 유달리 흡연 인구가 많았더랬다. 과/반에서만 스물 몇 명이었던가로 기억한다. 2004년엔 담배 안 피우는게 자랑이었던 과/반이었는데. 04학번 동기 중 딱 1명을 제외하곤 모두 비흡연자였는데. 그 해는 참 이상했긔…. 참으로 이상했긔…….

Posted by 비앙

지난 주엔 동생이 갑작스레 사장육부파의 멤버십을 받았더랬다. 아침에 배가 아프다고 칭얼대기에 변비 때문에 응가가 가득차서 그런 줄 알았는데, 위험할 지경까지 맹장이 부어 올랐다고 했다. 지금 내가 머무는 곳은 시골이라 의료 시설이 열악한데다 의료 사고로 여러 번 데인 적이 있었기에, 인근 도시에 있는 제법 큰 병원까지 택시타고 달려가서 30분 만에 간단히 수술을 마쳤다.

그래서 토요일 새벽에 엄마랑 바톤을 터치하고 하루종일 병원을 지켰다. 여기에도 여러번 투덜댄 적 있었지만, 나는 병원을 정말 싫어한다. 내가 '전문가'들에 의해 사물화 되는 경험도 싫고, 내가 내 몸의 통제력을 상실한다는(타인에게 전적으로 위임해야 한다는) 느낌도 싫고, 병원 특유의 냄새도 싫고, 고통에 절어 있는 얼굴들이 병실에 5명씩 들어차 있는 것도 싫고, 맛없는 병원식도 싫고, 문안을 한답시고 찾아와서는 속 뒤집어 놓고 가기 마련인 사람들도 싫고, 암튼 다 싫다.

그 병원에 결국 도착해서 층별 안내를 보았다.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구내 매점이랑 커피숍은 1층에 있었고, 동생이 입원한 병실은 3층에 있었다. 병원은 총 6층이었는데, 5층과 6층은 놀랍게도 '치매 병동'이었다. 한층에 20여 개의 병실이 있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였다. 샤워실, 세탁실, 간호사 휴게실, 식당 등이 명시되어 있었다. 다른 '일반 병동'에는 그런 시설은 적혀 있지 않았는데.. 가슴이 뎅그렁, 하고 울렸다. 뎅그렁, 뎅그렁.. 말년에 치매로 고생하신 외할머니, ㅇㅁㅅ 여사님. 할머니..

동생이 입원한 층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병실은 5인실으로, 거의 꽉꽉 들어차 있었다. 놀랍지 않게도 20여개가 넘는 병실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노인이었다. 하여 잔뜩 긴장한 상태로 병실에 들어가 보니, 그 병실만 '특이'하게도 동생이랑 동생 또래의 여자아이만 쓰고 있었다. 3층을 통틀어 딱 1병실 뿐이다. 특별한 사람, 그러니까 돈이 많거나 위험한 환자거나 하지 않는 이상 5인실에 입원하는게 당연한 코스처럼 되어 있다. 고로 동생도 당연히 5인실이다. 내가 찾아가는 곳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5인실이다.

그리 넓지도 않은 병실에 5개의 침대가 설치되어 있고, 티브이 한대와 화장실과 세면대 하나가 고작이다. 간병인이 쓰는 보조 침대까지 5대 들어와 있으면 아편굴이 따로 없다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프라이버시 따위는 전혀 없고, 병실에서 조차 타인의 시선을 냉혹하게 느껴야 하는, 그런 5인실. 프라이버시를 지킨다고 커튼을 치면 더더욱 수상한 눈길을 받기 마련인, 그런 5인실. 멀쩡히 채워져 있던 자리가 갑자기 왜 비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자리가 비기 바쁘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불쑥 들어와 자리를 채우는, 바삐 제 한 몸 추스려 '얼른 떠나고 말아야 할' 그런 5인실.

그날은 또 유난히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는개비가 왔다가 이슬비가 왔다가, 괜히 나갔다가는 홈빡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히 기분 나쁘게 젖을만한 비가 내렸기에 돌아다니지도 못했다. 내 사랑 삼각김밥을 사러 가기엔 편의점이 너무 멀어 1층 죽집에서 죽을 사먹었고, 죽은 당장이라도 6층 옥상에서 허공에 뿌려버리고 싶은 맛이었다. 그저 동생이 빨리 퇴원하기를, 빨리 엄마가 바톤 터치하러 오기를, 그렇게 바라는 밖에.


김수영 시인의 육필전집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전집 정가 150,000원이다. 알라딘 가면 135,000으로 깎아 준다; 얼마전 신청한 ㅎㄱㄹ21 정기구독료에 맞먹는 값이다. 흐... 이걸 어쩌지. 고민 중이야, 고민 중... 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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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에게 '특혜'를 받아 왔다. 사실은 '알게 모르게'가 아니고,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첫째'란 이유로 할머니와 부모님은 물론이고 친척들에게도 더 많은 용돈을 받고 기대를 샀던 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초등학교 때에도 나는 선생님들에게 예쁨을 받았으면 예쁨을 받았지, 눈에 벗어났다거나 차별을 받았던 기억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선명히 남아 있는 '특혜'의 최초 기억은 중학교 때일 것이다. 나는 무슨 컴퓨터 대회에 프로그램을 출품(?)해야만 했고,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 위해 지루한 작업을 해야만 했다. 사실 그 대회는 내 의지로 준비한 게 아니라 컴퓨터 학원 선생님들과 학교 선생님들의 '야망'이라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학원은 학원 홍보 차원에서, 학교는 실적 차원에서) 나는 흥미를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건 막 욕하고 때리지 않는 이상 절대 착수하지도 않는 외곬수 학생이었으므로, 당연히 그 작업은 하지 않고 탱자탱자 놀기에 바빴다. 으르고 달래도 소용 없었다. 앞에선 네, 네 하고는, 뒤돌아서면 (악의 없이)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그런 학생이었으므로, 마침내 그 작업은 학교 컴퓨터 반 후배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_-; 나는 내 스스로 만들지 않았음은 물론 학교 선생님들의 온갖 뒤 봐주기의 산실이었던 프로그램을 내 이름 석자를 걸고 출품했고, 무려 전국대회에서 입상권 안에 들었고, 그 수상은 하나하나 말하기도 구질구질한 또 다른 뒤 봐주기와 온갖 특혜로 연결되었다.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원 과외는 다 필요 없고 오로지 학교 교육과 교과서로만 수능을 준비해도 충분하다'는 학년 주임 선생님 평생의 '교육 철학'에 완벽히 부합하는 학생이 3년을 통틀어 딱 한 명 나왔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학교 교육과 교과서에 충실했던 학생이 아니라 문제 푸는 기계에 불과했지만, 그 선생님 관점에서 기숙사에 3년 내내 갇혀 지냈기에 학원 수업이나 과외를 못 받으면서도 성적이 상향세에 있었던 아이는 단 한 명 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이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부모 총회 등에서 여러 번 거론되었고, 학년 주임이 베푼 여러 '특혜'들 덕분에 성적이 모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더 편한 환경에 편입되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의 이런 단편적인 기억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① 나는 그 선생님들을 혐오했다, ② 나의 혐오와 적개심에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들은 특혜 베풀기를 멈추지 않았다, ③ 그 특혜들은 내가 원한 것들이 아니었다, ④ 하지만 '전교'에 소문이 곧잘 나곤 했다, ⑤ 그 소문의 주인공을 부르는 이름은 불명예스럽게도 선생님들의 성을 따 '임ㅇㅇ', '한ㅇㅇ' 등이었다(자식이란 얘기;), ⑥ 그리고 나는 그 소문에 저항하지 않았다, 정도를 들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소문이 시작되고, 그 소문은 하루나 이틀 사이에 전교에 퍼지고, 그 소문의 주인공은 갑자기 바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 소문을 가장 마지막에 듣는다. 나는 그렇게 공인된 "teacher's pet"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들이야 내가 그 선생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식으로 특정한 아이에게 특혜를 베푸는 선생들은 대개 인기가 없었으므로, 친구 관계에 별 문제를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닥 유쾌하지만은 않은 경험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내가 그런 소문들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던 것은, 선생들이 '일방적으로' 베푸는 특혜가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혜택을 베풀 때 선생님들은 당사자인 나를 불러서 직접 거론하기 보다는 대개 간접적인 방식을 취했으므로, 나는 그런 불편한 광경을 '실제로' 목격하지 않고도 얼마든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선생들이 베푸는 호의는 때론 매우 편리하게 느껴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의 자아는 투쟁하는 자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주위의 평가에 지나치게 좌지우지되는 귀 얇은 자아도 아니었으므로, 다만 그 특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가까운 아이들에게 선생들을 욕함으로써 평등주의적인 청소년 또래 문화 내에서의 긴장을 해소했다. 일종의 '역겨운 달콤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일종의 공모자이자 공범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런 '특혜'는 대학에 있을 때는 잠시 잠잠해졌다가 대학을 나오고 나니 다시 심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나는 지금 나의 '상사'의 조치 때문에 여러 번 골치 아픈 일에서 '열외'했고, 그런 사건이 반복되자 걷잡을 수 없이 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낌새를 챌때면 자꾸 중고등학교 때의 (불쾌한/달콤한) 경험을 상기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까탈스럽고 싸가지 없는데다 '아랫사람'이라면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면서 "'여자'에게 찝적거리기"로 악명 높은 그 '상사'가 주말에 나를 자기 집에 불러 식사까지 했다는 소문도 나도는 모양이다. 나는 그딴 식사는 천만원을 준다해도 안 할테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기정 사실'인 모양이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이 공간에 전혀 애정이 없으므로, 굳이 일부러 시키지도 않은 일 해가며 고생을 하고 싶지도 않다. 내 '상사'가 베푸는 혜택은 혜택대로 받고, 그 혜택 때문에 느껴지는 역겨움과 불편함은 어서 지워버리고, 빨리 이 공간을 떠나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뭐 그리 신경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이 일하고 있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중고등학교 때야 수십 명씩 같이 있으니 상관이 없지만, 지금 나는 이 아이 단 한명과 같이 사무실을 쓰고 있는 형편이기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할 수 있다. 사실 평소에도 입이 싼 편인 이 아이가 이곳저곳 떠벌리고 다녔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소문이 퍼졌다는 혐의를 지울 순 없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것이다. 에휴, 나 왜 이렇게 산다니. 앞으로도 이렇게 살려나..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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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서 동창생들을 만나는 게 싫다. 나는 그들을 진작에 맘 속에서 밀어내 버렸고, 따라서 그들은 마땅히 내 시야에서 추방당해 있어야 하는 인물들이다. 누군가는 마트에서 이중 취업을 했고, 누군가는 행정 기관에서 청년 인턴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작은 팬시점에서 파트 타이머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타 도시에서 직장을 구하고 가끔 이곳에 들른다. 작은 거리를 지나다 보면 나는 그들을 순식간에 알아 보지만 기꺼이 그들을 모른 체 한다. 대개 그들도 내 시선을 느끼고 내 얼굴을 기억하지만, 내가 모른 체 하고 얼른 시선을 돌리므로 그들 역시 나를 모른 체 한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학창 시절에 친구가 적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기억하고 있는 그들이 싫다. 내가 기어코 지우고자 하는 기억을 공유하는 그들이 싫다.

가끔 성큼 성큼 다가와 말을 건네는 아이들이 있다. 내 눈은 옆으로 새 있지만, 나는 그들의 존재감을 온 몸으로 느낀다. 다가오지 말라, 나는 너를 지운지 오래다. 하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십 수년 만에 만난 동창생에게 기꺼이 아는 체를 하는 아이들의 눈에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넘친다. 그 자신감은 심히 부담스럽다. 저 얼굴에 반짝이는 반가움은, 분명 사교와 사회성을 알고 기꺼이 행하는 자의 것이거나, 오랜 시간 수련을 거친 자의 몫일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거절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내 의지이기도 하지만 내 의지가 아니기도 하다. 여긴 내가 나고 자란 곳이지만, 여긴 내 공간이 아니다. 여기 거주하는 그 누군가에게도 이곳은 '나의 공간'일 수 없다. 이곳은 모두의 공간, 사회성의 공간이다. 눈물 나는 인정 투쟁의 공간. 언제나 구체적일 것임을, 언제나 한결 같기를, 또한 당신은 언제나 그 이름이어야 함을 끊임 없이 확인하고 서로 확인시켜주는 공간. 그래서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도서관에 가는 것도, 마트에 가는 것도 내게는 일종의 모험이고 도박이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지금 누구를 가르치고 돈을 받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사러 가는지, 내가 도서관에 얼마나 자주 가는지, 이 모든 것들이 비밀이 되기를 꿈꾸며, 하지만 그 꿈이 언제나 배반당하고 있음을 느끼며 집 밖으로 나선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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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일기 2009/06/08 20:36

지난 주말은 정말 지독히도 운이 없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버스 시간을 맞추지 못했고, 결국 마구 짜증을 냈고, 괜히 엄하게 그 꼬라지를 본 엄마가 미안해 했다. 나는 거기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아빠는 다음부터는 자기한테 부탁하라고 했다. 분명 나는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았다. 내가 핸드폰 알람을 '월~금'으로 맞춰 놓았을 뿐이었다. 허나 나의 침묵으로 그건 잠정적으로 '엄마의 잘못'이 되어 버렸다. 애써 짜증을 달래고 서울에 간 뒤 Y를 만난 것은 좋았다(하지만 메뉴가 나이스 초이스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각자 볼 일을 보러 나는 청계천에서 종로 2가로 향했고, 약속 장소였던 던킨 앞에서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우물쭈물 했고, 그러는 동안 바로 그 앞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버렸다. 옛날엔 내게 제법 살갑게 굴고 애교도 부리던 친구였는데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간 뒤로 확, 바뀌어 버린 아이여서 이미 몇 년 전부터 내 맘 속에서 지워 버린 터였다. 그 애는 키가 무척 크기 때문에 나 같은 애는 한참을 올려다 봐야 한다. 그 때 그 애는 머리에는 기름을 잔뜩 바르고, 반사율이 높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oh ma eyes!). 내 안에서 지웠던 존재가 내 앞에 이렇게도 급작스레,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풍기니 나는 퍽 당황할 수밖에. 그 애의 선글라스로 내 당황한 모습이 내려다 보였다. 순간 그 선글라스에 펀치를 날리고 싶었다. 그 애가 혐오스러워졌다.

결국 겨우 3시 시간도 못 맞춰 15분 쯤 늦어 던킨에 들어갔는데, 이게 왠걸... 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남자 애들 두 명이 떡, 하니 앉아 있는게 아닌가. 처음 만나는 자린데도 계속 핸드폰으로 문자 쓰고 게임하질 않나 묻는 말엔 대강 대강 뺀질 뺀질 대답하질 않나 다음 주엔 못 나오겠다고 자랑스레 떠벌리질 않나 지네 고향 얘기를 나누질 않나 지네들 출신 중 고등학교 얘기 하지 않나 자기는 남자가 더 좋다고 남자랑 얘기하는게 더 편하다고 헛소리를 지껄이질 않나. 그에 반해 다른 여자 분 두명은 그 난감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이끌어 가고자 노력하는게 보였고, 불행히도 나는 그 남자 sk들에게 은밀한 분노를 품느라 그 노력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고는 서둘러 다른 친구를 잠깐 만나고 황망스럽게 집으로 와버렸다. Y하고도 그렇고, 이 친구하고도 그렇고, 원래 그런 식으로 만나고 헤어지려고 했던게 아니었는데.. 아, 진짜 이게 아니었는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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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31일

일기 2009/05/31 23:59

1.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뭐 해먹고 살지'라는 고민. 나와 좀 가까운 이들이라면 내가 귀가 얼마나 얇은지, 또 확신과 결단이란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을 정도로 없는지 매우 잘 알 터. 따라서 이제 나는 차마 '뭐 해야 겠어!' 라는 말을 남 부끄러워서 입에 담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어휴;) '어떻게 살아야지'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상은 잡혀 있지만, 그 막연한 상을 반영하고 뒷받침해 줄 구체적인 기반이 (아직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쉽게 팔랑팔랑하는 것이라고 위안해 본다. 그래도 일단 정해진 것이 있다. 지금 이 생활이 끝나고 바로 대학원에 들어가야겠어, 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일단 '경제적인 독립'이다. 이 상황을 초월하기 위해 별 짓 다 해봤지만, 일단 지금의 나로서는ㅡ내가 부모님의 친자식이 아니라 어렸을 적에 남 몰래 입양된 아이였고 날 버린 친부모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거액의 유산을 갑자기 미리 당겨 상속해 주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ㅡ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참 멀리 돌아왔다.

2. 어떤 일이 나에게 가장 질투심을 유발하는지를 살피면, 뭐가 내가 선호하는 일인지 전혀 모를 때 대충 감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좋은 것 같애',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건 반드시 내가 해야 하는데! (당신 정말 얄미워/나쁜 인간이야/그만뒀음 좋겠어/없어졌음 좋겠어)', 하는 식의 질투심.

3. 마거렛 미드의 <세 부족 사회의 성과 기질>을 훑어보다가 조한혜정 선생의 역자 해설을 읽었는데, 거기서 나를 뜨끔하게 만든 구절이 있었다. 내용인 즉슨, '작가의 꿈을 키워오던 미드는 글 재주가 빼어난 친구의 글을 읽고 작가의 꿈을 접고 사회과학자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나는 글을 '아름답게' 쓰지도 못하고, '감동적'이게 쓰지도 못하고, '논리적'으로 쓰지도 못하고, '유려하게' 쓰지도 못하는데. 아름답거나 감동을 주거나 논리적이거나 유려하게 쓰는 사람들을, 난 이미 다 알고 있는데..

4. <마더>를 봤다. 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후 몸도 맘도 완전 침체기였는데, 계속 이렇게 집에만 틀어 박혀 현실 도피만 하고 있음 정줄 놓고 목이라도 맬 것 같아 선택한게 (어쩌면 고작-_-) 영화 보기였다. 결과는 대 실망이다. 남자들이 뻔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머니 꼴라쥬' 같은 느낌이랄까. 난 아무리 애써봐도 한국 남자들과 한국 어머니들의 전형적인 관계를 좋게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어머니'에게 도덕적 우월성이라는 외피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그렇다고 '어머니'에 존재하는 어떤 모종의 악마성만을 재현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영화는 많은 여지를 남겨 둠으로써 그런 까다로운 문제들을 영리하게 잘 빠져나간다. 김혜자 씨의 연기가 좋다는 사람들이 있던데, 실제로 봐도 인상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 '마더' 보다 더 '마더' 같은 사람들을 일상 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 연기 하나 보려고 영화관에 가야한다는 건 여간 슬픈 일이 아니다. 빈곤은 서글픈 일이고 무서운 일이라는 걸 다들 인정하면서도, 실제의 빈곤을 보는 것 보다는 영화 같은 재현물 속의 빈곤을 보는 걸 선호하는지도 모르듯 말이다. 기대했던 원빈의 연기는 워낙 들쑥날쑥하여 영화의 일관성을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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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悼

일기 2009/05/24 22:34

나의 20대 초반을 같이 했던, 그리고 내게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일깨워 주었던 그의 죽음 앞에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목 근육이 뻐근하다. 부끄러움(shame)을 알고 역사를 믿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죽음을 택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차가운 분석이나 하나마나한 냉소 따위는 집어 치우자. 평온하기 짝이 없었던 이 일상과 주말에 저주를. 그의 죽음 앞에 평생 끝나지 않을 哀悼를. 지금은 맘 뿐이지만, 그의 사진 앞에 꽃 한 송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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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세대 담론'은 아마도 향후 100년간은 사라지지 않을, 아니 적어도 '재생산'이라는 관념이 존재하는 한 영구히 반복될 담론일 것이다. '세대 담론'은 때때로 정치에 대한 공통 감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끌어 안아야 할 담론이다. 서구 역사에서 저 유명한 "신구 논쟁"에서도 고전 문화를 옹호하던 세대에 맞서 젊은 세대들은 수없이 많은 언어와 실천으로 새로운 문화적 장을 열어 제끼지 않았던가. 때로 이렇게 세대 관념은 변화를 촉진하는 요인이 된다. 비록 이전 세대를 비판하던 젊은 세대들 중, 이전 세대가 갖고 있던 각종 지식들에는 완전 무지한, 다시 말해 '함량 미달'이던 이들도 많았지만. 그리고 '세대 담론'이 사회에 존재하는 적대들과 정치들을 단지 '세대'라는 것으로 환원함으로써 적대의 전선을 무력화시키고 정치를 탈정치화 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온당한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세대 담론'은 때로 삶, 생애에 대한 공통 감각을 제공하기도 한다. 앞 세대의 생애를 통해, 앞 세대가 겪은 삶의 사건들을 통해 뒷 세대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들의 삶에 대해서 평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평가는 뒷 세대의 생애에 대한 감각과 비전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일종의 생애주기(life cycle)이라는 것이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든지에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강력한 문화적 자원이 된다는 점에서 '세대 담론'이 제공하는 것들을 쉽게 무시할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세대를 믿지 않는다. 아마도 '세대 담론'의 기본 요소인 세대를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클리셰를 동원하자면 한국의 '격동적인 현대 정치사'를 거쳐온 세대, 예컨대 '386세대'라는 것도 믿지 않는다. 세대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는게 나의 믿음이다. 단지 사람들이 있었고, 집단이 만들어졌고, 이념이 있었고, 사건이 일어났고, 정치가 있었고, (아마도 가장 중요할 것인데) 선택을 했고, 행동이 있었다. 그것은 역사적 무게감이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 존재했었던 것이다.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보면 어떤 한 남자가 등장하는데 소설 속의 그는 결단코 '투사'였던 적이 없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도시에서 만나 자신을 도와주며 같이 살았던 이가 그가 보기엔 갑작스럽게 분신을 했고,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수감이 되었고, 감옥에서 나오자 그는 갑자기 지역의 민주화 투사가 된다. 그리고는 대학에 자리를 잡고 '대학생 친구'들을 여럿 만난다. 대학생 친구들에게 영웅이었던 그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하여 연애를 하고, 또 대학생 친구들에게 성폭력을 하기도 한다..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을 비롯한 것들과 상당히 유사하게 읽히는 이 소설에서, 나는 상당히 불쾌함과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떤 통찰이나 반성을 담고 있었다고도 생각한다. 즉, 본질적인 운동가가 있지도, 또 고유한 정치가 있지도, 이념에 완전히 봉사하는 개인들이 있지도 않았다. 단지 시대적 사건이 있었고, 그이들은 일종의 시대적 기분에 어느 정도는 젖어 있었고, 그에 따라 시대적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것에 '세대'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어디까지나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완전히 허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한갖 개념일 뿐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네 삶에 완전히 무관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세대 담론'이 제공할 수 있는 각종 이점들이 갈수록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세대를 받아들일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세대라는 관념을 받아들이기가 참으로 어렵기 짝이 없다. 현대사를 포함해 역사에 상당히 무지한 편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세대는 나에게 아무런 영감도, 자극도, 동기도 된적이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출생한 이들과 어떤 공통 감각을 형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나 스스로 개인적인 감각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생애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건 '세대'에 대한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어떤 삶을 거쳐간(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선배들, 혹은 스승들에게서 어떠한 감정적 정치적 링크도 느낄 수 없다는 점에 기인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링크들에 대개는 부정적인 입장 밖에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인할 것이다. 생애에 대한 감각은, 곧 '삶의 서사에 대한 감각'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나는 내 삶의 서사를 도무지 그려낼 수가 없다. 생애 서사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내가 보고 배우고 또 내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 도저히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러다 그냥 아무거나 선택한 뒤 끊임없이 단어들을 동원해가며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바쁠지 모른다. 심리학 개론에 보면 나오는 '인지 부조화'이론이 설명해 주듯이. 물론 그런 서사를 아예 제공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현란한 (자기 계발) 성공담의 시대, 무한히 다양한 전문직의 만신전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서점에만 가면 성공담을 다룬 책, 또 전문직 리포트를 수없이 만날 수 있다. 누구누구의 고만고만하고 시시껄렁한 인생 성공담을 목격하고, 겉은 화려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막상 하면 나름의 고충과 애환이 있다고 고백하는 전문직들의 삶을 읽으며, 때로는 이를 강요받기까지 하는 분위기 속에서, 삶의 서사를 그려내지 못(안)하겠다고 투덜대는 건, 전적으로 이 세계에 들러 붙지 못하고 혼자 고고한 척 구는 '재수의 밀도가 떨어지는' 일일 수 있다. 그리고 나만 이런 것도 아니다. 그렇다. 이는 어디까지나 '브로콜리 너마저'적인 의미(?)에서 '보편적'인 것이다.


덧) 5. 18을 맞아 맞이하는 뉴스는 풍작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5.18 행사에 참석치 않았다. 이는 놀라운 사실이 아니지만, 관계자의 말은 충격을 더한다. "작년에 가셨으니까 올해는 총리가 대신 갔다." "올해 4·19 기념식에도 가셨고, 첫해 가셨는데 매년 가서 대통령이 하실 필요는 없지 않느냐"... 아 젠장. 그리고 김지하 시인의 말. "황석영 나쁜 놈 아니다." "작가는 좌로 갔다 우로 갔다 할 수 있어야" 진중권을 일컬어 "진씨는 예술이나 문학에 대해서는 완전히 백치로 작가는 매일 아침마다 변해야 하는 것". 아놔 진짜 이 사람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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