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와 이론가는 겹칠 수 있는 범주이지만, 평생 연구자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필연적으로 이론가도 겸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연구자는 되고 싶다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론가는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살다보면 그냥 되는 것이다. 책을 읽거나 쓴다고 해서 이론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실천이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의 삶, 자기의 고통, 자기의 욕망을 설명하는 방법을 찾는 이들은 반드시 이론가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학계에서 일하는 연구자나 여러 단체의 실천이론가가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이론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론가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 개인, 그리고 그 존재와 정체성 그 자체다.
그래서 이론은 쉽게 섞이거나 융합되지 않는다. 이론은 오로지 개인의 것이다. 그래서 이론은 공격될 수도 없고, 이론가 개인이 생존해 있는 한 사라질 수도 없다. 물론 누군가의 연구물이나 삶을 다룬 기록물은 건조하게 암기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론을 공부하는 건, 우선 그 이론가의 존재와 삶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론 공부는 누군가의 이론을 암기하는게 아니라, 누군가의 이론을 나에게 적용해보는 것이며 나 스스로가 흡수하는 것이다. 이론가의 앞에서 정보는 지식이 되고 지식은 이론화 된다. 이론가에게 진정한 공부는 곧 이론화의 과정이다. 그런 탓에 공부를 하면서 누군가의 이론을 비판하거나 비난한다는 것은, 사실 그 이론을 만든 개인에게보다는 차라리 자신을 향해 메시지를 날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론 공부를 통해 무엇인가를 알게 된 것이 단지 하나의 앎-지식으로 그치지 않고, 그 앎에 대한 나의 감정과 나의 역사가 수반될 때 그것은 나의 이론이 될 가능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과 내가 감정 세계를 공유할 수 없다면, 나의 이론은 그냥 외롭고 고독하니 잠자리 베갯닢에 찍힌 긴 물의 흔적과 다를게 없다. 역으로 내가 세운 이론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다른 사람과 내가 감정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그 때 누군가의 이론은 나의 이론이 되고, 나의 이론은 누군가의 이론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래서 이론가들은 필사적으로 자기의 이론이 들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성주의가 너무나 다양하기에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복잡다단한 여성주의(들)일 수밖에 없다면, 부분적으로 여성주의는 단지 이념이나 연구물이 아니라 이론(틀)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주의가 이론(틀)이라면, 여성주의는 개인의 맥락에서, 개인의 감정과 삶을 반드시 수반해서, 그리고 외우고 학습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실천되는 그 무엇일 수밖에 없다. 흔히 언어의 환상 속에서 이론과 실천을 나누어 생각지만, 이론(틀)로서 여성주의 안에서 그 둘은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그렇게 여성주의는 수없이 많은 다른 '-주의'들과는 존재론부터 다른 그 무엇이다. 또한 여성주의는 다른 보통의 '주의'들과는 달리, 내가 앞서 언급한 '이론'을 향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와 학제로서의 여성학은 다른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겹칠 가능성은 있다. 여성학은 학적인 연구 성과일수는 있으나, 이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물론 여성학 연구를 읽는 사람들에 의해 여성학은 이론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루는 소재나 인식론이 얼마나 유사하냐와는 큰 관계 없이, 여성학과 여성주의는 실천되고 공유되는 방식에서 갈리는 것일테다.
어떤 친구들은 내가 어떤 일이든 하게 되면 잘 할 것 같다고 위로해주지만, 나는 내가 어떤 일이든 잘해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규칙적인 주5일 칼 출퇴근이나 안정적인 통장 잔고를 동경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생활을 시작하면 내가 어떻게 차례로 무너져 내리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만약 주말 출근이냐 야근을 해야하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차츰 몸이 무너지기 시작해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될 것이고(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는다. 병원에 가도 단지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랬고, 또 그렇다), 그러면서 마음이 무너질 것이고 이어서 내 생활과 관계 전체가 붕괴할 것이다. 어차피 이런 식으로 내가 안티소셜이자 사회부적응자일 수밖에 없다면, 소위 '사회 생활'에 적응할 수 없다면, 또 일반적이면서 위압적인 이성애적 연애 산업과 시장에도 적응할 수 없다면, 이 세계의 위계 질서와 권력, 억압적인 젠더 체계가 몸서리처질 정도로 싫고 못견디겠다면, 차라리 열심히 공부해서 윤리적인 연구자(혹은 작가)이자 탁월한 이론가가 되는 걸 꿈꿀 수밖에.
물론 지금 가려는 대학원이나 학계가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예술가가 되기엔 언어적 재능도 공간적 재능도 음악적 재능도 부족한 나로서는, 그곳이 이 세계에서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소재와 줄거리, 플롯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언젠가는 소설을 쓰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젠가의 이야기). 나는 거기서 잘 살아남을 것이고, 또 거기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 해야할 것이다.
지금 하는 것도 다 열심히 할 것이고, 또 언젠가는 실패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관계에도 열심히 걸어볼거다.
'조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믿음을 상실하는 과정 (0) | 2010/04/24 |
|---|---|
| 50대 남자사람 (0) | 2010/04/23 |
| 이론 공부 (0) | 2010/04/13 |
| 외모를 어찌 말해야할지 (0) | 2010/03/19 |
| 무서운 할아버지들 (2) | 2010/03/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