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다루는 책을 보면 종종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보라는 조언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에도 문장의 리듬을 내심 느낀다는 이유다. 묵독을 할때조차 음성은 영향을 미친다. 고로 소리내어 읽기 좋은 문장은 눈으로 읽기에도 좋다. (그렇다고 구어체로 글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예전엔 이 말이 무슨 말일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요새는 어떤 의미인지 알지는 못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 어떤 외국인이 한국어가 아름답다고, 시적이라고 얘기한 적 있었다. 많은 문장들이 "다."로 끝나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각운이 들어간다는 이유다. 그때는 잘 모르는 소리라고 가볍게 그냥 지나쳤는데, 이제는 한국어가 가장 예쁜 음성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요즘 나를 놀라게 한 건 이런 얘기가 문장에만 해당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문장 말고 문단에도, 물론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소설론을 다룬 어떤 책에서는 문단 나눔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한 소설의 일부를 인용한다. 전쟁, 무기, 싸움, 남자들의 전우애를 다루는 내용인지라 내용에는 호감이 없었지만, 한줄 한줄 읽어 문단을 끝마치는 부분에 다다랐는데 이상하게 호흡이 무척 가빠진 걸 느꼈다. 그리고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면 그 가빠진 호흡이 조금은 안정되었고, 계속 문장을 읽어 나가면서 호흡은 다시 가빠졌다. 놀라운 것은 그게 번역문이었단 점이다. 문단의 길이도 사람의 호흡시간에 맞춰져 있었을 것이다(번역문이었으니 길어질 수밖에). 짧지 않은 인용이었는데 단숨에, 단박에 읽어내려갔다. 신비경이었다.
일반 독자를 사로잡는 건 비상한 상상력도, 아름다운 단어도, 독창적인 구상도 아니라, 아마 어느 정도는 이런 생물학적 측면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겠지만, 최근에 나오는 멋진 과학 이슈들에도 관심이 점점 생긴다. 특히 뇌과학이나 신경과학 같은 거. "진화"라는 접두어가 붙은 건 종교로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아서 싫지만. 내가 그런 것을 생산하고 싶은건 아니고, 인문학의 기반에서 해석하고 응용하고 인용하고 싶다. 그건 "생물학으로 대동단결"을 외치는 개념인 '통섭'과는 다른 것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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