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국제여성영화제가 12회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어느덧!!). 그리고 여전히 빵빵한 기업 스폰서들까지(물론 얼마나 지원받는지는 모르나). 심지어 광장 공연의 인터미션에 스폰서 기업 광고도 상영되더군. 그만큼 영화제가 커지고 영향력 있다는 얘기인지라, 예전에는 반씁쓸함을 느꼈지만 이제는 오히려 아예 왕창 더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4년 여름에 여성주의에 입문(?)한 뒤에 2005년부터는 계속 갔으니까 이제 어느덧 나도 6년 째 도장 찍었다는 거(나도 나이 먹어가는구나). 꾹꾹. 10년, 20년, 30년이고 계속 개근 도장 찍어야지 싶다. 같이 나이 먹어갔으면 좋겠다. 하하
사실 재작년이랑 작년은 별로 흥미가는 영화도 없었지만 어줍잖은 의무감 비슷한 걸로 영화제에 갔었던 기억이다(이건 진짜 부끄러운 일; 이 블로그에는 그때 당시에 쓴 완전 창피한 글도 있다). 그런데 그건 영화제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관객인 나의 매너리즘 탓이었다. 악은 악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에 내재해 있다는 말처럼, 권태로운 눈동자엔 모든 게 권태로워 보이는 것이다. 이번에도 사실 약간은 의무감에 예매를 했지만, 그 결과는 역시, 문제는 갈수록 풍성해지고 세련되지며 외연이 넓어지는 영화제 문제가 아니라, 결국 나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토요일 아침에 서울에 가면서 챙겨 갔던 책은, 다름아니라 사놓고 그냥 책꽂이에 꽂아두었던 벨 훅스의 <벨 훅스, 경계넘기를 가르치기>였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짬나는 대로 술술 읽었던 이 책 덕에 몇년 간 정체되었던 내 문제가 뭐였는지를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었다. 이 책을 5개의 'ing'로 얘기하자면, encouraging, empowering, inspiring, fascinating, easy-going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ㅎㅎ 'easy-going'하다는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킬수 있을 것 같아 첨언하자면, 절대 내용이 쉽다는게 아니라 문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철학적 계보를 후광으로 하는 복잡한 개념어(이 책을 이해하려면 칸트/헤겔이나 프로이트부터 읽어라!!)를 동원하지 않고, 경험과 직관적인 언어를 써서 날카롭지만 또 따뜻하고 설득력있게 글을 이어나간다. 진짜 멋있어! 최고야!!
올해 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다가올 그날(The Day Will Come)>은 정말 멋진 영화였다. 줄거리나 세세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건 그만두고, 인상 깊었던 부분(인지 뭔지) 2가지만. (거칠게 말하는 거니 이상하다 싶어도 패스패스해주세요.)
하나는 흔히 말하는 '모성'에 대한 것이다. 흔히 모성은 자연(타고난 것)으로 간주되지만, 여성주의에서 말해주는 상식은 모성은 전혀 자연적이지 않으며 사회와 경험 속에서 '학습'하고 실현하는 그 무엇이다. 또한 사라 러딕이 <모성적 사유>에서 말했듯, '모성(motherhood)'은 '어머니 역할(mothering)'과 구분되는 것이다. '어머니 역할'은 모성과 관련되어 있지만, '보살핌' 혹은 '양육'에 관한 지침이나 실천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 러딕에게 '어머니 역할'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에게 할당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그 구분법에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모성'과 '어머니 역할'이라는 구분법에 다른 차원(?)을 개입시킬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거칠기 짝이 없지만, 일단 각 개념에 '공식적' 차원과 '비공식적'차원을 고려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오해를 막기 위해 언급하자면 공식적이라는 말은 자연스럽고 탈정치적이며 모두에게 동의되는 올바른 개념이기에 '공식적'이라는게 아니라 다분히 지금의 문화적인 코드를 반영한 것이며, 비공식적이라는 말도 안 중요하기 때문에 비공식적이라는게 아니다.)
'공식적인 모성'은 교훈과 이념화를 지향하며 널리 유통되는 이념이다. 이는 일종의 사회적인 서사나 이야기로 존재한다. 예컨대 고대로 올라가 어머니 자연부터 시작해서, 현대에 이르러 아이가 자동차에 깔렸을 때 번쩍 차를 들어올린 슈퍼 엄마의 이야기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모성'은, 모성은 위대하고 자연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사회적 상식이되며, 대체로 억압적이다(엄마들은 모두 위대한 모성을, 혹은 최소한 모성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공식적인 모성'은 일종의 판타지이지만, 전쟁, 군대, 징병제, 남성성(남성들은 '모성'을 쉽게 폄하하지만, 실제로는 깊은 애착관계가 있다)을 깊은 곳에서부터 유지하고 지탱하는, 정말 중요한 형식이다. 천안함 참사를 둘러싼 언론의 보도들도 상처를 봉합하는데 다시금 '모성'을 동원하고 있다.
'비공식적 모성'은 자기에게 소중한 타인, 특히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아이(자신이 낳았든 낳지 않았든, 혹은 어떤 관계에서 아이가 생겼든)에게 갖게 되기 쉬운 강한 애착이다. 차라리 생물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아이의 현존보다는 부재와 상실에서 더 잘 드러난다. 아이의 부재와 상실에는 엄청나게 강한 에너지를 지닌 상실감과 슬픔이 찾아온다. 단지 마음이 슬픈게 아니라, 몸이 반응한다. 사랑은 자기와 관계를 맺을 아이를 만나는 순간에(혹은 그 이전에도) 즉각 시작할 수 있지만(물론 사랑의 실천에는 온갖 우여곡절이 있지만), 그러나/그렇기 때문에 상실의 애도에는 정말 오랜 기간이 걸린다.
'공식적인 어머니 역할'은 '공식적인 모성'보다는 훨씬 역사적인 맥락화가 가능하며 유동적이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덕스럽게 변하는 일종의 규범이다. 이를테면 공식적인 어머니 역할은 아이의 생애주기에 따라 어머니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려준다. 언론과 온갖 전문가들, 혹은 엄마의 엄마나 친구들 등 '주변 사람'들이 '어머니'라면 마땅히 어떻게 해야한다고 조언하는게 '공식적인 어머니 역할'이다. 태교는 모짜르트나 영어 회화로 해야한다는 식의 조언부터, 아이의 대학 입학과 결혼 대상자 선택, 혹은 그 이후에도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어머니 역할'은 온갖 조언들로 가득차 있다(이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하지는 않지만, 어머니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 혹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진 것으로 취급된다).
'비공식적인 어머니 역할'은 '공식적인 어머니 역할'과 얼마나 조응하든 상관없이, 양육하는 개인의 역사나 습관, 혹은 욕망이 반영되어 실제로 실천되는 '어머니 역할'이다. 이는 만고불변이며 보편적인 게 아니라, 개인의 것이며 따라서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개인의 상황 등에 따라 '어머니'로서의 양육이 중단될 수 있다는 것도 함의한다.
이렇게 나눈 것에다가 사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아마도 독일의 적군파? <바더 마인호프>가 생각나는 군)도 고려해야하는데, 그것까지 하면 진짜 나도 병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으니 그만두어야 할 듯. 여하간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구분법이 떠올랐고, 이 구분법은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의 주인공인 알리스와 주디스의 관계, 그리고 주디스와 주디스가 새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들과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키워드가 되었다(그래서 영화에 몰입하지를 못했다 흑흑). 관계 뿐 아니라 관계의 변화하는 측면까지도. 아아.
하나가 너무 길었는데, 여하간 다른 하나는, 이 '모성'을 둘러싼 이해에 성차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과잉 일반화(over-generalization)의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성차가 무조건 실재한다는 게 아니다. 여하튼 영화에서는 알리스ㅡ주디스가 과거 독일에서 낳은 딸ㅡ와 프란신ㅡ프랑스에서 만난 새 남편과의 관계에서 낳은 딸ㅡ이 주디스를 대하는 방식과, 주디스가 프랑스에서 만난 새 남편과 그 아들이 주디스를 대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영화 내에서 여성 인물과 남성 인물의 태도가 다르다는 얘기다. 영화의 초반과 중반에는 알리스, 프란신, 남편, 아들이 모두 주디스를 한 명의 개인이 아니라 각각 '날 버린 매몰찬 생물학적 어머니', '날 이해 못하고 화만 잘내는 꼰대 엄마', '과거를 잘 알진 못하지만 일 잘하고 사랑스러운 아내', '사회운동을 열심히 하긴 하지만 날 사랑하는 엄마'로 이해한다. 이들에게 주디스는 어쨌든 개인사와 의지를 가진 개인이 아니라, 단지 엄마이자 아내이다.
그러나 알리스가 찾아온 뒤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주디스는 엄마이자 아내로 '묶어두기'엔 <지나치게> 많은 역사와 사연을 가진 개인임이 차츰 밝혀진다. 남편과 아들은 이를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주디스에게 진실의 해명을 요구하고, 해명된 진실 앞에서 주디스를 괴물로 바라본다. 진실이 밝혀지자, 그들의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사람은 분명히 실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들은 이에 묘하게도 배신감을 느낀다(대체 무엇을 믿었고 배신당했다는 것일까?). 그러나 프란신은 주디스가 과거에 은행을 털었다는 사실을 알자 그에 배신감을 느끼기는 커녕 "엄마가? 은행을? 멋진데(cool)!"으로 응수한다. 프란신은 영화 내내 한번도 주디스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디스가 떠나는 장면에서 남편과 아들이 배신감에 휩싸여 주디스를 냉큼 보내는 반면, 프란신은 주디스를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고 잡아두려고 한다. 알리스도 차츰 주디스와 관계를 조율하면서,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비로소 주디스를 '날 버린 엄마'가 아니라, 역사 속의 행위자였던, 정치의식과 신념을 가졌던 한 명의 타인이자 개인임을 인정하고 타협하기에 이른다.
<아시아 단편 경선1>도 봤는데, 다섯 개의 단편 영화가 모두 좋았다. 투표는 <파마>에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거짓말>을 찍을까 했는데, 이 영화는 정말 웰메이드였지만 20대 중후반의 감수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결정은 <파마>로. <파마>는 길지 않은 상영시간에 결혼이주 여성이 한국에서 겪을 수 있는 일, 혹은 한국이 결혼이주 여성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매우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언어의 문제, 일반적인 한국 가족 관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강압적인 위계질서, 소위 '못 사는 나라'에 대한 한국적인 환상(경멸 섞인 동정심), '미혼 남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처방 등에서 시작해서, 개인이 느끼는 감정과 감각에 이르기까지, 정말 섬세하고 넓게 다루면서도, 유머감각까지 갖춘 영화였다. 정말 멋지다능!
오늘 본 영화는 <아시아 스펙트럼 : 인도네시아, 포스트 98>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4개의 단편 영화 중에 마지막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일단은 모두 좋았다. 좋았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보았다는게 아니고, 정말 불편한 마음으로 봤다. 그 중에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이주 노동과 성매매(성노동)를 각각 다룬 <위태로운 삶 : 홍콩의 연인들>, <위태로운 삶 : 중국인 묘지> 2편이 기억에 남는다.
예전에 어떤 논문을 읽으면서, 인도네시아에서 여성 노동력 이주가 심해서 인도네시아 내 '사회적 문제'가 된다는 내용을 본 적 있다. 물론 이 '사회적 문제'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인도네시아 남성들이나 인도네시아 국가의 기준으로 설정된 것이다. 인도네시아 남성의 기준에서 보자면 너무 많은 여성들이 해외로 나가는 탓에 인도네시아 본토의 남성들이 성욕을 못풀고 결혼을 못하게 되었기에 '문제'가 되며(물론 여기엔 계급문제도 끼여든다), 국가의 기준에서 보자면 인구학적인 '재생산' 문제가 달려있기에 '문제'가 된다. 그래서 여성노동자들의 이주가 해결되어야 할 '사회적 문제'로 취급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농촌 노총각'이 재력과 공권력을 투입해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되었듯이(심지어 내가 사는 지역의 관공서에서는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일 년치 예산에 '국제 결혼' 지원 예산도 포함하고 있다).
그 논문의 저자는 유명한 인류학자기는 해도 페미니스트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숫자가 차츰 적어지면서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운 관계'가 깨지고 있다고 본다(기존의 여남 관계가 도대체 얼마나 좋고 조화로웠는지는 알 수 없다. 오늘 본 영화를 보면 그리 좋았던 과거는 아닌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도네시아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이 점점 더 왜곡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즉, 결혼 같은 '정상적'이고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라, 성매매나 성착취가 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지적에 대해서도 귀담아둘 필요는 있지만, 오늘 본 두 영화가 보여주는 것들에 대해서 먼저 제대로 인지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다가올 그날>에 대해 너무 길게 써서 탈진해버렸다. 뒤에 영화들도 이에 못지 않게 할 얘기가 많은데... 난 이제 자야하므로 그냥 내 마음 속에 남겨두자 하하
덧) 티켓 끊는데서 우연히 들은 어이없는 대화. 남자애 - "
와, ㅇㅅ영화제라더니 스텝들도 전부 여자네." 여자애 - "
응, 그렇네" 남자애 - "(선심이라도 쓰듯)
그래, 오늘만큼은 여자의 날이다! 하하!" 아 제발 쫌 -_-;;; 당장 이런 애랑은 헤어지라고 할수도 없고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