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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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6 어웨이 위 고
영화 / 2010/03/06 16:41


오랜만에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를 만났다. 가슴 한쪽 구석부터 차오르는 따뜻함, 그리고 다른 한쪽에 남아버린 씁쓸함. bittersweet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적절한 것 같다. 영화는 얼마간 전형적인 로드무비다. 다소 답답해진 일상을 벗어나서 길따라 여행을 떠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겪은 뒤에 마지막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렇게 돌아온 집은 이전의 집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일은 뚜렷하지만 '직업'이 뚜렷하지는 않은 커플, 버트와 베로나는 버트의 부모님 댁을 방문하기로 한다. 베로나는 그 방문이 마뜩찮기는 하지만 아이의 출산이 임박했기에 그들을 찾아가기로 한다. 이제 아이가 생겨날 두 사람은, 이 둘 외에 이 관계를 살피고 도와줄, 그들의 말대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가족 같은 것" 아니면 "친구 같은 것", "친분 같은 것", "우리가 아는 사람 같은 그런 것"을 찾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찾아간 곳에서 버트의 부모님은 2년간 벨기에로 떠나버린다고 뉴스를 전하고, 집도 임대를 놓아버렸다고 한다. 충격. 그럼 이제 이미 떠나온 길을 따라 길을 더 갈수밖에.

피닉스(Phoenix) - 투손(Tucson) - 매디슨(Madison) - 몬트리얼(Montreal) - 마이애미(Miami) - 집의 코스를 밟으면서 이들은 로드무비의 주인공들이 늘 그렇듯, 사람들과 사건에서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읽어낸다. 피닉스에서는 왜 결혼한 커플들이 자신들처럼 사랑하지 않을까를 궁금해하고(결혼은 관계의 파탄일 것이다. 베로나는 끝끝내 버트와의 결혼을 거부하던 중이었다), 투손에서는 베로나의 동생을 만나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애틋하고 얼마간은 애증이었던 관계를 떠올린다(자신이 부모가 될 때에, 비로소 부모라는 것에 대해 진지해질 계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매디슨에서는 정말 인상깊지 않을 수 없었던 버트의 이를테면 사촌인 엘렌을 만나고, 엘렌의 뉴에이지 일상에 충격을 받는다(부모와 태어난 아이와는 '적절한' 거리와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몬트리얼에서는 옛 대학 동기였던 부부를 만나는데, 그들에게서 버트와 베로나 두 사람에게는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방패막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두 사람<만의> 삶은 없어지고 책임감과 인내라는 중요한 가치가 두 사람의 관계를 덧칠하게 된다.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마침내 "친구 같은 것"을 찾아냈다고 생각해서 몬트리얼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던 두 사람은, 버트의 형이 전한 급한 연락을 받고 마이애미로 떠난다. 마이애미에서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던 형네 부부는 이미 파경이었다. 와이프는 이미 떠나서 잠적한 상태고, 버트의 형은 관계와 신뢰, 무엇보다도 평범한(정상적인) 삶이 무너졌다고 절망한다(결혼 생활 중이라도 얼마든 관계는 무너질 수 있고 세계는 붕괴할 수 있다. 아이가 있든 없든. 관계와 세계는 어쨌든 불확실성이 지배한다). 다소 작위적인가?

특히 마이애미에서 버트는 눈에 띄게 불안해 한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두고 무너진 커플의 신뢰 앞에서, 버트는 영 자신감이 없다.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야밤에 콩콩이를 뛰던 버트는 베로나와 인상깊은 장면을 연출한다. 속삭이듯 따뜻한 대화의 연속..

-(버트) 최소한, 결혼은 해줄 수 있겠어? / =(베로나) 절대 안 해. 그러나 절대 너를 떠나진 않을거야. / -(버트) 그래... / =(베로나) 약속할게 / -(버트) 그래 알겠어. 너는 나랑 절대 결혼을 하지 않을거야. 원하지 않으니까. 네 부모님이 결혼식 자리에 없으면 넌 절대 결혼하지 않겠지. 나도 알아. 그런데, 날 떠나지 않는다고 약속 할 수 있어? 우리의 이 아이를 절대 안 떠날거라 약속할 수 있어? / =(베로나) 그럼(I do). / [... 중략 ...] / =(베로나) 우리 딸이 뭔가를 말하려 할 때 진심으로 들어줄거라고 약속할 수 있어? 특히, 아이가 두려워 할때 말야. 그리고 아이가 싸울 때면 마치 자기 싸움인 것처럼 아이 편을 들어줄거라고 약속할 수 있어? / -(버트) 응(I do). 내가 부끄럽게 죽든 진부하게 죽든, 우리 딸한테는 아버지가 850명의 체첸 고아들을 구해주려다가 러시아 군인들과 맨손 격투를 벌인 끝에 죽었다고 말해줄거라 약속할 수 있어? / =(베로나) 응. 체첸 고아들, 알겠어. 응.

보통 결혼식장에서 주례를 보는 사람은 진부한 사랑의 맹세를 늘어놓고 커플에게 "네(I do)"라고 대답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 진부한 결혼식 대신, 그들은 사회문화경제적인 이익을 주는 '제도권' 결혼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두 사람만의 '결혼식'을 거행한 셈이다. 서른 넷이라는 나이에 "우리는 비현실적이야", "우리는 망할 수도 있어"라고 자조하기도 하고 "꼬꼬마야? 혼란스러워? 미숙해? 미국적이야?"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하던 두 사람은, 이렇게 얼마간 성장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비록 추운 날씨에도 히터를 켜면 전기가 나가는 집이기는 하지만... 정말 사랑스럽다.


덧)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하고 살찌는 것 가지고 베로나를 괴롭히던, 그래서 얼마간은 거북함이 들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던, 어벙꺼벙하고 우유부단하며 썰렁한 유머를 구사하던, 키만 껑충하게 큰(191cm) 버트 역을 맡은 존 크래진스키의 인터뷰 중에서 이런 말이. "제 이름은 원래 존 콜린스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재능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이름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크래진스키라는 폴란드 계관시인의 이름을 빌려왔어요. 완전히 쇼비즈니스계를 위한 이름이더라니까요." 아 이 배우 뭐냐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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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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