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특정한 '결정론'의 입장을 가진 사람의 글은 아주 명쾌하게 읽힌다. 모든 모순과 갈등의 원인이 특정한 결정적 모순으로 수렴하니까, 논리가 간명할 수밖에 없다. 데이비드 하비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도 결국에는 유물론자이자 경제결정론자라고 할 수 있지. 그러나 결정론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내공을 가진 건 아니니까, 하비 같은 결정론자라면 즐겁게 글을 읽을 수 있다. (원래는 다시는 이런 종류의 글은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정작 읽으니 재밌더라고 ㅠㅠ)
그나저나 나는 뭐를 번역하면 좋나. 요즘 같이 마음이 복잡하고 우울할 땐 역시 번역만한게 없는데. 네시간이고 다섯시간이고 쉽게 몰입할 수 있고, 그렇게 번역을 하고 나면 탈진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되는데 말이지. 이런저런 글을 뒤지다가 하비의 글이 제일 만만해서 선택했던건데, 이렇게 번역 결과가 있으니 어쩌면 좋나. 그럼 나는 뭐를 번역하면 좋으려나? 게일 루빈이나 버틀러의 에세이는 너무 어려워 오역의 부담이 크고, 뉴레프트리뷰에 있는 에세이들은 잠깐 시간내서 읽기엔 재밌지만 대체로 오래 두고 보기엔 좀 약하고... 크르릉......
참. 네이버에서 이택광 교수가 연재하는 <인상파 아틀리에>의 초창기를 보면, 글의 내용에 등장하는 오스망 남작의 파리 재건축 계획이 어떻게 당시 파리의 회화와 풍속에 연결되는지를 아쉽게나마 읽을 수 있다.
뉴레프트리뷰NLR 53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
우리는 인권이라는 이상이 정치적, 윤리적 공간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데 있어 인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데도 주위에 돌아다니는 인권 개념 대부분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자유주의적/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나 현재 지배적인 합법성 및 정부활동에 근본적인 도전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사유재산권과 이윤에 대한 권리가 다른 모든 권리에 앞서는 세계에 살게 되었다. 이 글에서 나는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이제까지 잘 논의되지 않았던 색다른 종류의 인권에 대해 파헤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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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백 년 사이 놀라운 속도와 규모로 이루어진 도시화가 인간의 복리에 기여해왔는지 묻는다면 그 해답은 도시사회학자 로버트 파크(Robert Park)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다.
도시는 잉여 생산물을 지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집중시키면서 태어났다. 잉여란 어딘가에서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끄집어낸 것이면서도 그 분배는 보통 소수가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시화는 언제나 계급적 현상이었다. 이 일반적인 상황이 자본주의 하에서도 지속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발전과 도시화 사이에는 밀접한 연계가 생겨난다. 도시화가 잉여 생산물의 동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잉여 가치 생산을 위해 잉여 생산물을 생산해야만 하고, 그렇게 생산된 잉여 가치는 다시 더 많은 잉여 가치 창출을 위해 재투자되어야만 한다. 지속적인 재투자의 결과 잉여 생산은 몇 배로 확대된다. 그러므로 물류 곡선(화폐, 생산물, 인구)은 자본축적의 역사와 궤적을 함께하며 동시에 자본주의 하에서의 도시화의 성장경로와 평행을 이룬다.
자본-잉여 생산 및 그의 흡수를 위해 이윤이 나는 영역을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는 끊임없는 필요가 자본주의 정치의 모습을 결정한다. 그 필요는 또한 지속적이고 말썽 없는 확장을 해야 하는 자본가들 앞에 놓인 여러 장벽을 보여준다. 만일 노동이 부족하고 임금이 높다면 자본가들은 기술적으로 실업을 창출하거나 조직된 노동계급을 공격해 그 힘을 약화시키는 등의 방법을 동원해 기존의 노동력을 규제하거나, 이민·자본수출·지금까지는 자본에 종속되지 않았던 사람들을 프롤레타리아로 만드는 등의 방법을 동원해 새로운 노동력을 찾아야만 한다. 또한 자본가들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생산수단을 찾아야만 하고 특수하게는 자연자원을 찾아야만 한다. 자연자원의 탐색은 필요한 천연자원을 생산하는 장소이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쓰레기를 흡수할 장소인 자연 환경에 인간이 가하는 압력을 증가시킨다. 자본가들은 천연자원을 추출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며, 이는 대개 제국주의/신식민지주의의 목적이기도 하다.
또한 경쟁이라는 강압적인 법칙은 열등한 방법을 활용하는 자본가들을 퇴출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자본가들이 새로운 기술과 조직 형태를 지속적으로 채택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으로 작용한다. 혁신은 새로운 필요와 욕구를 규정하고 자본의 회전시간을 줄여주며, 노동력·천연자원·기타 등등의 공급 확대를 꾀하는 자본가들이 활동하는 지리적 영역을 제한하는 공간상의 제약을 약화시킨다. 만일 시장에 구매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해외무역 확장, 새로운 상품과 생활방식 활성화, 새로운 신용수단 창출, 정부와 민간부문의 적자 재정 운영 등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이윤율이 지나치게 낮다면 ‘파멸적 경쟁’과 독점(인수합병)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제와 자본수출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다.
위에 언급된 장벽 중 하나라도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본가들은 그들의 잉여 생산물을 재투자해 이윤을 낼 수 없게 되고 자본 축적은 벽에 부딪혀 위기를 맞는다. 위기 상황에서 자본 가치는 저하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물리적으로 청산될 수도 있다. 잉여 상품은 가치를 잃거나 파괴될 수 있고, 생산력과 자산은 평가절하되거나 사용되지 않는 채로 남을 수 있다. 화폐 자체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노동력은 대량실업으로 인해 평가절하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장벽을 극복할 필요성과 이윤이 나는 활동 영역을 확장할 필요성이 어떻게 자본주의적 도시화를 추동해 왔을까? 이 글에서 나는 군비지출 같은 현상과 나란히, 도시화가 자본가들이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생산한 잉여 생산물을 흡수하는데 특히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주장을 펼치려 한다.
도시 개조 사례들
우선 제2제정 시대의 파리를 생각해보자. 1848년은 유휴잉여자본과 잉여노동의 위기였다. 이 위기는 유럽 전역을 휩쓴 최초의 명백한 위기로, 특히 파리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위기는 결국 실업노동자와, 사회공화국이 7월 왕정의 특징인 탐욕과 불평등이라고 생각한 부르주아 유토피아주의자들이 일으킨, 실패로 끝난 혁명으로 마감되었다. 부르주아 공화주의자들은 혁명가들을 격렬하게 억압했지만 위기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 1981년 쿠데타를 주도하고 이듬해 스스로 황제라 선포한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Louis-Napoleon Bonaparte)에게 권력이 넘어갔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대안 정치 운동을 광범위하게 억압했고 경제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 및 해외에서 막대한 기반시설투자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해외에서 기반시설투자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함은 유럽을 통과해 동양으로 가는 철도 건설이나 수에즈 운하 같은 거대 건설 사업에 대한 지원을 의미했다. 국내에서 기반시설투자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함은 철도망 강화, 항만 건설 습지 배수를 의미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조치는 파리의 도시기반시설을 재배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853년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조르주 외젠 오스망(Georges-Eugène Haussmann)에게 파리의 공공건축사업을 맡겼다.
오스망은 도시화를 통해 잉여자본 및 실업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단위 시간당 막대한 양의 노동력과 자본을 흡수하면서 파리시민의 돌출행동을 잠재운 파리 재건설 사업은 사회 안정의 일차적 수단이었다. 오스망은 푸리에주의자나 생시몽주의자가 1840년대에 논했던 파리 재구조화라는 유토피아적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 간에는 한가지 큰 차이점이 있었다. 오스망은 과거의 인물들이 머리 속에 그렸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도시 과정을 계획했다. 건축가 자끄 이냐스 이또르프(Jacques Ignace Hittorff)가 오스망에게 새 가로수길 건설 계획안을 보여주자 오스망은 그 계획안을 던져버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길은 여전히 좁아요… 내가 원하는 것은 폭 120m의 길인데, 당신이 계획한 것은 40m밖에 안되잖아요”. 그는 교외의 재정비도 계획에 포함시켜, 레알(Les Halles) 등의 주거지역 전체를 새로 설계했다. 오스망이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생시몽주의자들이 구상했던 크레디 모빌리에(Crédit Mobilier)와 크레디 이모빌리에(Crédit Immobilier) 같은 새로운 금융기관과 대출 수단이 필요했다. 사실상 오스망은 차입으로 자금을 조달해 도시의 기반시설을 향상시키는 케인즈주의 체계의 원시적인 형태를 구축함으로써 자본-잉여 처분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했던 것이다.
이 체계는 한 15년 정도 훌륭하게 돌아갔다. 이 체계는 도시의 기반시설을 변형시켰을 뿐 아니라 새로운 생활방식 및 도회적 인간형을 구축했다. 파리는 소비, 관광 및 오락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며 ‘빛의 도시’가 되었다. 카페, 백화점, 의류산업, 큰 규모의 박람회 등은 모두 도회적 생활모습을 변화시켰고 소비주의를 통해 막대한 잉여를 흡수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확대되고 투기적으로 변해버린 금융 체계와 신용 구조는 1868년 붕괴되었다. 오스망은 쫓겨났고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가 된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포자기한 채 비스마르크(Bismarck)가 통치하던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패하고 말았다. 전쟁에 뒤이은 공백기에 자본주의의 도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적 사건 중 하나였던 파리 코뮨(Paris Commune)이 등장했다. 파리 코뮨은 오스망이 파괴해버린 세계에 대한 향수와 오스망의 대건설사업으로 인해 가진 것을 강탈당한 사람들에게 도시를 되돌려주려는 바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2]
시계를 빨리 돌려 1940년대의 미국으로 가보자. 전쟁 때문에 막대한 동원이 이루어지자, 1930년대에는 도저히 처치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자본-잉여 처분 문제와 그에 수반되었던 실업 문제가 일시적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모두 두려워했다. 정치적 상황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연방정부는 사실상 국유화된 경제를 운영하고 있었고 1930년대에 등장한 사회주의적 성향의 강력한 사회운동이 존재하는 가운데 공산주의국가인 소련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이다.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당대의 지배계급이 요청한 것이 분명한 엄청난 정치적 억압이 이루어졌다. 이미 40년대 초반부터 나타날 조짐을 보였던 매카시즘과 냉전의 역사가 그 뒤를 이었는데, 이 역시 모두 과거에 경험했던 것이다. 경제 부문에서는 잉여 자본을 어떻게 흡수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었다.
1942년 오스망이 기울였던 노력에 대한 장문의 평가가 <건축포럼 Architectural Forum>에 실렸다. 이 평가서는 오스망이 한 일을 상세히 기록하면서 그의 실수가 무엇인지 분석하려고 시도했지만, 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시주의자 중 하나라는 오스망의 명성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기울고 말았다. 이 논문을 쓴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오스망이 파리에서 저질렀던 일을 뉴욕에서 재연한 바로 그 로버트 모제스(Robert Moses)였다.[3] 다시 말해 모제스 역시 도시 과정에 대한 사고의 규모를 다시 한 번 바꿔놓았던 것이다. 고속도로체계 구축, 기반시설의 변형, 교외화, 일개 도시가 아닌 메트로폴리탄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재건설을 통해 모제스는 자본-잉여 흡수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했다. 자본-잉여 흡수를 위해 이루어지는 도시 확장에 필요한 차입 자금 마련을 위해 신용을 풀어주는 새로운 금융 기관과 세금제도가 활용되었다. 미국 전역에서는 각 지역의 거점 역할을 할 주요 메트로폴리탄 지역이 선정되어 규모 면에서 다시 한 번 변형을 겪은 도시 과정이 진행되었고, 이 과정은 미국이 무역적자를 통해 비공산권 경제 전체에 동력을 공급할 수 있었던 1945년 이후의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안정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의 교외화는 새로운 기반시설의 도입에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의 교외화 역시 제2제정 시대의 파리가 그랬듯 생활방식의 급격한 변화를 이끌었다. 집집마다 새로운 제품인 냉장고와 에어컨이 설치되었고 집 앞 진입로에는 2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으며 석유 소비가 막대하게 증가했다. 미국의 교외화는 정치지형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정부보조로 집을 마련해 교외에 거주하게 된 중산층은 자산가치와 개인의 정체성 보호를 위해 더 이상 공동 행동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들은 보수적 공화당에 표를 던졌다. 빚을 내 주택을 소유하게 된 사람들은 파업에도 소극적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 기획은 도시 내부를 공동화(空洞化)했고 새로운 자산에 접근할 수 없었던 도시 내부 거주자들,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소요를 낳는 대가를 치렀지만 잉여를 성공적으로 흡수하고 사회적 안정을 보장했다.
1960년이 끝나갈 무렵 새로운 형태의 위기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오스망이 그랬던 것처럼 모제스도 권위에서 추락했고, 그가 제시했던 해결책은 부적절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전락했다. 전통주의자들이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지역별로 차별화된 주거지의 아름다움을 내세우며 모제스의 야만적인 근대화 기획에 맞서려 했다. 그러나 교외는 계속 건설되었고 생활방식의 급격한 변화도 지속되었다. 변화된 생활방식은 여러 사회적 결과를 낳았다. 이를테면 페미니스트들은 교외를 그들이 품은 모든 불만의 진원지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파리 코뮨의 동학에 오스망화가 기여한 바가 있다고 한다면 1968년 미국에서 벌어진 극적인 사건에 생동감 없는 교외의 생활 역시 기여한 바가 있다고 할 것이다. 불만을 품은 백인 중산층 출신 학생들은 폭동을 일으키기에 이르렀고 주변화된 집단과 연대하여 시민권을 주장했으며 미국제국주의에 맞서 새로운 종류의 세상을 건설하려는 운동을 펼쳤다. 새로운 종류의 도시적 경험 창출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파리에서는 쁠라스 디딸리(이탈리아 광장, Place d’Italie)와 몽빠르나스 타워(Tour Montparnasse) 같은 ‘고층건물’을 공격하는 식으로 세느강 좌안(左岸) 고속도로(Left Bank Expressway) 건설을 저지하고 전통적 주거지의 파괴를 막으려는 운동이 일어나 68봉기라는 거대한 동학이 일어나는 데 일조했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그의 저서 『도시 혁명 The Urban Revolution 』에서 도시화가 자본주의 생존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치투쟁과 계급투쟁의 중대한 관심사가 되며, 국내의 경우 도시화로 인해 전국을 아우르는 통합된 공간이 형성되어 도시와 농촌 사이의 구분이 점차 제거될 것[4]이라고 예견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농산업에서부터 별장 및 농촌관광산업을 아우르는 현상을 통해 시골에 대한 지배력을 점점 키워가는 도시 과정 전체를 주관할 권리를 의미해야 한다.
68폭동에 발맞춰 대출금융을 통해 지난 십 년 간의 자산가치 앙등에 동력을 공급해왔던 신용기관 내부에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이 위기는 자본주의 체계 전체가 붕괴하기 직전인 1960년대 말까지 추진력을 모으다가 마침내 1973년 전지구적인 자산시장거품 붕괴로 터져버렸고 뒤이은 1975년에는 뉴욕시가 파산했다. 윌리엄 탭(William Tabb)은 뉴욕시 파산의 결과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계급권력을 영구화하는 문제와 자본주의가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생산해내야 하는 잉여를 흡수할 능력을 부활시키는 문제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해결책이 효과적으로 구축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5]
전지구를 호령하다
다시 한 번 시계를 빨리 돌려 현재 국면을 살펴보자. 국제 자본주의는 1997년-1998년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위기, 1998년 러시아 위기, 2001년 아르헨티나 위기 등 지역적 위기와 붕괴를 거듭하며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했고, 자본 잉여를 처분할만한 능력이 줄곧 없었음에도 최근까지 전지구적 붕괴를 용케 피해왔다. 이 상황을 안정시키는데 도시화는 어떤 역할을 맡았을까? 미국의 경우 주택 부문이 경제를 안정시키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1990년대 초반의 팽창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던 요인인 첨단기술산업이 붕괴한 이후에는 도시화가 특히 중요한 요인으로 부상했다. 자산시장은 도시의 중심가 및 교외 주택가 건설, 사무용 건물 건설 등을 통해 엄청난 양의 잉여자본을 직접 흡수했다. 그 과정에서 역사상 가장 낮은 이자율로 무분별하게 남발된 모지기론의 물결에 힘입어 급등한 주택자산 가격은 미국 내수시장의 소비재와 서비스 부문을 부양했다. 미국이 만족할 줄 모르는 소비주의에 자금을 대고 아프가니스탄 전쟁 및 이라크 전쟁의 전비를 대기 위해 나머지 세계에 대해 하루 20억 달러 가량의 막대한 무역적자를 내는 가운데, 미국의 도시 확장은 부분적으로나마 전지구적 경제를 안정시켰다.
그러나 이번에 진행된 도시 과정은 전지구로 확대되었다. 즉, 규모 면에서 또 한번의 변형을 겪게 된 것이다. 영국과 스페인 및 여러 다른 나라들에서 일어난 자산시장 호황은 과거 미국에서 나타났던 것과 대체로 유사한 방식으로 자본주의 동학에 동력을 공급하는데 일조했다. 지난 20년 간 진행된 중국의 도시화는 기반시설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그 성격은 달랐지만 그 중요성은 미국의 도시화보다 더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도시화 속도는 1997년 짧은 경기후퇴를 겪은 뒤 엄청나게 빨라졌다. 그 결과 중국은 2000년 이후 전세계 시멘트 공급의 거의 절반을 소비하는 나라가 되었다. 백여 개 이상의 도시가 이 기간에 인구 백만을 넘어섰고 이전에는 작은 마을이었던 선전(Shenzhen) 같은 도시도 인구 6백만에서 인구 천만에 이르는 거대한 메트로폴리스가 되었다. 모두 차입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댐 건설이나 고속도로 건설 같은 막대한 기반시설 기획이 경관을 변형시키고 있다. 중국의 도시화가 전지구적 경제와 잉여 자본 흡수에 가져온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칠레는 높은 구리가격에 힘입어 경기호황이 들었고, 오스트레일리아는 중국의 원자재 수요에 힘입어 번영을 구가했으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도 일부 회복되었다.
그렇다면 중국의 도시화가 오늘날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일차적 안정요인이라는 말인가? 그 답은 “그렇다”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세계 전역에서 차입자금을 활용한 도시개발을 가능하게 만든 경이로운 금융시장의 통합에 부분적으로 힘입어, 오늘날 진정한 의미에서 전지구적이 되어버린 도시 과정의 유일한 구심점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중국중앙은행은 미국 이차 모기지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왔다. 그 사이 골드만 삭스는 뭄바이의 쇄도하는 자산시장에 깊이 관여해왔고 홍콩의 자본은 볼티모어에 투자해왔다. 가난한 이민자들이 물결치는 가운데 요하네스버그, 타이페이, 모스코바 및 런던, 로스앤젤레스 등의 자본주의 나라의 핵심 도시에 건설 호황이 들었다. 중동 두바이와 아부 다비 같은 곳에는 오일 머니로 형성된 잉여를 흡수하는 초대형 도시화 프로젝트가 등장했다. 대부분 화려하고 사회적으로 부정의하며 환경적으로 낭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런 사업을 두고 미련한 짓이라고 할 수 없다면 경이로운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오스망이 파리에서 감독했던 것과 기본적으로 유사한 변형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전지구적 규모다.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나타난 도시화 열기는 모든 도시화가 그러했듯 새로운 금융기관 설립과 도시화를 뒷받침하는데 필요한 신용을 조직할 제도 창출에 의존했다. 1980년대에 순조롭게 진행된 금융 혁신, 즉 각 지역의 모기지론을 유가증권화하고 패키지로 묶어 전세계의 투자자들에게 판매하고, 채권을 담보로 잡는 새로운 금융회사를 구축하는 금융 혁신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혁신은 여러가지 이익을 가져왔는데, 위험이 분산된다거나 잉여 저축풀이 잉여 주택 수요에 쉽게 접근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현상들이 그 이익에 속한다. 금융혁신은 또한 총이자율을 낮췄고 이러한 경이로운 일들을 수행한 금융중개인들은 막대한 이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위험을 분산했다고 해서 위험이 제거된 것은 아니며 나아가 위험이 광범위하게 분산됨으로써 오히려 지역적 행동의 위험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왜냐하면 채무가 어디로든 이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위험 평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 밀려들어온 금융화의 물결은 이른바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 및 주택자산가치 위기로 불거졌다. 그 결과는 일차적으로 미국의 도시와 도시 주변에 집중되었고, 저소득층·도시 안에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여성 가장 가구에 특히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한편 도심의 치솟는 주택가격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러한 현상은 특히 남서부 지역에서 두드러졌다. 이들은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준변두리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애당초 그들은 투기를 목적으로 지어진 택지개발지구의 주택을 싼 이자율에 구입했지만, 유가가 오르면서 함께 오른 통근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동시에 시장 이자율이 올라감에 따라 치솟은 모기지론 비용을 상환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각 지역의 도시 생활과 도시 기반시설에 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현재의 위기는 또한 전지구적 금융체계의 구조 전체를 위협하며 주요 경기후퇴를 촉발한다. 2007년에서 2008년 사이 구제금융을 즉시 지원하겠다고 한 연방준비은행의 대책을 포함해, 지금의 위기를 1970년대와 비교해보면 섬뜩하다. 그 때에 비춰볼 때 머지않아 디플레이션이 일어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달러 강세가 일어나 인플레이션 통제가 불가능해질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 상황은 그 때보다 훨씬 복잡하다. 문제는 도시화 속도가 감소하고 있는 중국이 미국에서 발생한 심각한 붕괴를 벌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게다가 금융체계 또한 이전 그 어느 때보다 더 단단히 엮여 있다.[6] 컴퓨터를 이용해 초단위로 이루어지는 금융거래는 언제든 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해 대량 위기를 낳을 위협으로 작용한다. 이 거래방식은 이미 주식거래에서 놀라운 휘발성을 보인 바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금융자본과 자본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금융자본과 자본시장이 도시화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산과 평화
앞선 확장 국면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장 최근에 일어난 도시 과정의 급격한 확장 역시 생활방식을 상당히 변형시켰다. 소비주의, 관광산업, 문화산업, 지식기반산업이 도시의 정치경제학의 주요 요인으로 자리잡아가는 세계에서, 도시 생활의 품질은 도시 자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포스트모던주의는 소비습관이나 문화적 형식 모두에서 시장적소 형성을 장려하면서, 선택의 자유라는 아우라로 현대의 도시적 경험을 에워싼다. 물론 선택의 자유는 당신에게 돈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이나 공예품시장이 확산되는 것처럼 쇼핑몰, 멀티플렉스, 대형 마트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선다. 도시사회학자 샤론 주킨(Sharon Zukin)의 표현을 빌자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카푸치노로 유지되는 평화’다. 세계 각지에서 꾸준히 이어지는 부조화스럽고 개성 없고 단조로운 교외의 택지지구개발조차 도시적 꿈을 충족시키는 공동체적 생활방식과 고급 소매점의 생활방식을 구매하라고 권하는 ‘신 도시주의’ 운동 속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의 세계에서 인간의 사회화를 틀 짓는 주형은 강도 높은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신자유주의적 윤리, 그리고 그와 계보가 같은 집합적 행동으로부터의 정치적 후퇴다.[7] 자산가치의 방어가 정치적 관심사의 최우선에 나서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캘리포니아주 주택소유자협회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주거지 파시즘의 요새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해도, 정치적 반동의 요새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8]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분할되고 갈등유발가능성이 높은 도시 지역에 살게 되었다. 지난 30년간 이루어진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부유한 엘리트들의 계급 권력을 복원해왔다. 그 기간동안 멕시코는 14명의 억만장자를 배출했고 2006년에는 세계 최고 부자,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을 배출했다. 동시에 멕시코의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사는 도시의 공간 형태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의 도시는 점차 점점이 흩어진 요새화된 공간, 보안이 철저한 주택단지, 24시간 경비하는 민영화된 공공 장소의 집합으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
도시는 쪼개져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으로 분리되었다. 마치 도시 안에 여러 ‘극소국가(極小國家, microstate)’가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부유한 주거지역에는 온갖 종류의 서비스가 제공된다. 그곳에는 아무나 입학할 수 없는 배타적인 사립학교, 골프장, 테니스장, 24시간 순찰하는 개인 경비원이 있고 그 주변에는 불법주거지가 얽혀 있다. 불법주거지역에서는 공동 우물을 이용해야만 식수를 얻을 수 있고, 위생체계라고는 존재하지 않으며 전기도 특권을 누리는 소수에게서 훔쳐다 쓴다. 이곳의 도로는 비만 오면 진흙이 흐르는 강으로 변하고 여러 사람이 한 집에 사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각 구역은 마치 생물체처럼 자율적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며 나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가운데 획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건 꽉 부여잡는다.[9]
이런 조건 하에서 정체성, 시민권, 소유라는 도시의 이상은 이미 암처럼 퍼져 있는 신자유주의적 윤리에 위협받고 있어 지켜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범죄행위를 통한 개인적 재분배 활동이 도처에서 개인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에 대중은 경찰의 진압을 요구하게 된다. 이제는 도시가 정치에 있어 하나의 집합적 실체로 기능할 수 있다는 사고, 즉 도시가 진보적 사회운동이 생성될 수 있는 장소라는 사고마저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고립을 극복하고, 금융권 및 기업이 제공하는 자본과 점점 더 기업정신으로 무장해가는 지방정부기관의 지원을 받는 개발주의자들이 부여한 모습과는 다른 모습의 도시로 도시를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도시 사회운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강탈
도시 변형을 통한 잉여의 흡수는 이보다 더 어두운 측면을 지닌다. 도시 변형을 통해 잉여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창조적 파괴’를 통한 도시 재구조화를 반복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고통받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특권이 없고 정치권력으로부터 주변화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적 파괴는 거의 언제나 계급적 차원을 지닌다. 과거의 잔해물을 밀어내고 새로운 도시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하다. 오스망은 도시를 혁신하고 개량한다는 미명 아래 자산을 강제로 몰수해 낡은 파리의 슬럼을 밀어냈다. 오스망은 노동계급과 도시 중심부의 통제되지 않은 다른 요인들이 공공질서와 정치권력을 위협한다고 파악하고, 신중하고 계획적으로 이들 대부분을 도심에서 제거했다. 오스망은 혁명적 운동을 쉽게 제압할 만큼의 충분한 감시능력과 군사적 통제능력을 갖는 도시 형태를 창조했다고 믿었다. 물론 1871년 그 믿음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1872년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사실 주택문제에 대한 부르주아식 해결책은 딱 하나 뿐이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는 새로운 문제를 자꾸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주택문제를 해결한다. 이게 바로 ‘오스망식’ 해법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 결과는 늘 똑같다. 창피한 좁은 골목길은 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부르주아의 호사스런 자기자랑성 부속품 뒤로 사라져버리지만 즉시 어디에선가 다시 등장한다… 그런 골목을 만들어냈던 것과 같은 경제적 필요가 다른 곳에 그런 골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10]
파리 중심지의 완전 부르주아화가 완성되는 데는 일백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오늘날 그 결과는 주변화된 이민자, 실업자, 젊은층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고립된 교외에서 벌어지는 봉기와 폭력사태로 나타난다. 안타까운 점은 엥겔스가 묘사한 내용이 역사 속에서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브롱크스를 난도질했다’는 악랄한 말을 남긴 로버트 모제스 덕분에 주거집단과 주거운동단체는 길고 큰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파리와 뉴욕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일단 국가의 몰수권에 대한 저항이 성공해서 그 권한을 저지하게 되면, 도시 과정은 국가의 금융규제·자산투기·토지를 ‘가장 가치 있게 활용’하기 위해 회수율에 따라 토지의 용도를 분류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더 교활하고 더 암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엥겔스는 이런 과정 역시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근대적인 거대 도시의 성장은 특정 지역의 토지, 특히 중심에 위치한 지역의 토지가치를 인위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증가시킨다. 이 지역에 지어져 있는 건물들은 변화된 환경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가치를 증가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짓누른다. 그래서 이 건물들은 헐리고 다른 건물로 대체된다. 이렇게 헐리고 대체되는 건물은 다름 아닌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집이다. 이곳은 엄청나게 밀집되어 있음에도, 집세는 정해진 최대값 이상으로 오르지 않거나 오르더라도 아주 느리게 오르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역의 건물이 헐리고 나면 크고 작은 상점, 공공 건물이 세워진다.[11]
엥겔스가 1872년에 묘사한 내용은 150여년 전에 기록된 내용임에도, 델리·서울·뭄바이 등 여러 아시아 지역의 개발 및 뉴욕의 고급주택가 개발 같은 오늘날의 도시 개발에 직접 적용해도 손색이 없다.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과정과 내가 ‘강탈에 의한 축적’이라 부른 현상은 자본주의 하에서 이루어지는 도시화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12] 이 과정은 도시재개발을 통한 자본흡수와 좌우만 바뀐 모습이고 여러해 동안 그곳에서 살아왔을 저소득인구로부터 가치로운 토지를 포획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을 유발한다.
1990년대의 서울을 생각해보자. 건설회사와 개발업자들은 스모선수 같은 체격의 폭력배를 고용해 서울의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주거지역을 침해했다. 건설회사와 개발업자들은 주택만 파괴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은 가치가 높아진 이 토지에 1950년대부터 자기 손으로 직업 지은 집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가진 모든 것을 파괴했다. 지금 그 언덕배기에는 건설과정에서 불거졌던 잔인성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고층건물이 빼곡히 들어서있다. 한편 뭄바이의 경우 공식통계에 따르면 불법으로 토지를 점유하고 있는 슬럼거주자가 6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도상에는 슬럼이 자리잡은 지역이 빈 공간으로 표시되어 있다. 뭄바이를 상하이에 맞설만한 전지구적 금융 중심지로 변모시키려는 노력이 이루어지면서 자산개발 열풍이 속도를 더했고 불법거주자들이 점유한 토지는 나날이 가치가 높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뭄바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슬럼 중 하나인 다라비(Dharavi) 지역의 가치는 2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적, 사회적 이유를 들어 이곳을 개발해야 한다는 압력은 나날이 거세지고 있지만 그 이유들은 토지 강탈을 가리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금융 권력은 폭력을 동원해 슬럼 개발을 추진한다. 노인이나 아이들이 함께 거주하는 공간에서조차 폭력적인 강탈이 이루어진다. 한편 부동산 개발을 통한 자본 축적은 토지를 거의 무상으로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호황을 누린다.
그렇게 쫓겨난 사람들이 보상을 받았을까? 누군가는 운이 좋아서 약간의 보상을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는 카스트나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의 생명과 복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고 모든 국민에게 주택 및 피난처를 제공할 의무를 진다고 인도헌법에 명시된 것과는 달리 대법원은 이 헌법조항을 다시 쓰는 판결을 내렸다. 즉, 슬럼거주자는 불법점유자이고 대부분 장기간 거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보상받을 권리가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은 헌법이 보장하는 그들의 권리를 인정한다면 소매치기에게 보상해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불법거주자들은 저항하고 투쟁하거나 아니면 얼마 안되는 소유물을 가지고 고속도로변이든 어디든 작은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면 아무 곳이라도 찾아 떠나가고 만다.[13] 덜 잔인하고 더 합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경향을 보일 뿐, 미국이라고 강탈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기존에 거주하던 주민을 내쫓고 콘도나 대형마트 같은 한 차원 더 높은 용도의 토지로 활용하기 위해 토지수용권을 남용해왔다. 토지수용권 남용에 대한 소송은 대법원까지 갔는데, 판사는 지방의 사법주체가 재산세원을 증가시키려는 의도에서 이런 식의 조치를 취한 것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14]
중국에서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점유해왔던 공간을 강탈당하고 있다. 이런 사람의 수는 베이징에서만 3백만명에 달한다. 중국에는 사유재산권 제도가 없기 때문에 국가는 명령 하나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간단히 제거할 수 있다. 정부는 이곳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에게 지원금 명목으로 약간의 현금을 제공한다. 그 뒤 이 땅은 개발업자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에게 큰 이윤을 만들어준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공산당이 자행하는 잔인한 억압에 맞선 광범위한 저항이 일어난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쫓겨난 사람들이 주로 시골 변두리로 가는데, 이는 르페브르가 1960년대에 이미 제기했던 통찰력 있는 주장, 즉 자본주의와 국가의 헤게모니 통치하에서는 한 때 도시와 농촌 사이에 존재했던 분명한 구분이 점차 사라져, 지리학적 불균등 발전을 표상하는 울퉁불퉁한 공간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의미심장한지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경제특구(Special Economic Zones) 조성에 몰두하고 있는 인도에서도 나타난다. 경제특구 조성은 표면상으로는 산업발전을 위한 것이지만 경제특구로 지정된 토지의 대부분은 도시화를 위해 쓰여진다. 이 정책은 농산물 생산자들을 상대로 한 총력전을 야기했고, 이는 마르크스파인 서벵골 주정부가 자행한 2007년 3월 난디그람 대학살에서 극에 달했다. 인도네시아 대기업인 살림 그룹(Salim Group)이 들어설 부지를 마련해주기 위해 집권당인 인도공산당(마르크스파)은 무장경찰을 투입해 저항중인 마을 주민을 해산시켰다. 최소한 14명이 총격을 받아 사망했고 수십명이 부상당했다. 이 상황에서 사유재산권은 아무런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불법거주자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자는 진보적인 듯한 제안은 불법거주자에게 자산을 제공해 빈곤에서 벗어나게 할 것인가?[15] 현재 그와 유사한 제도가 브라질 리우의 빈민가에서 시험대에 올라있다. 문제는 불안정한 소득으로 인해 금융적인 면에서 잦은 곤란을 겪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 자산을 보유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낮은 현금 보상과 교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부자들은 보통 자신들이 소유한 가치 있는 자산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제스가 저소득층 주거지인 브롱크스는 난도질할 수 있었지만 부유한 파크 애비뉴(Park Avenue)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영국에서는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가 사회주택을 민영화했는데 그 여파로 메트로폴리스인 런던 전역에 저소득층, 심지어는 중산층조차 도심 인근에서는 살만한 주택을 찾을 수 없게 만든 임대료와 주택가격구조가 생겨났다. 지금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빈민들이 점유하고 있는 리우의 모든 언덕배기가 15년 안에 모두 목가적인 해안의 경탄할만한 경관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어진 고층 콘도로 뒤덮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빈민가 주민들을 도시에서 동떨어진 주변 지역으로 쫓아내야 할 것이다.
요구해야 할 것들
이제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도시화는 지리적 규모를 꾸준히 확장해가면서 자본 잉여 흡수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왔고, 창조적 파괴라는 급성장하는 과정의 대가로 대중에게서 도시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강탈했다. 건물을 지을 장소로서의 지구는 ‘슬럼으로 뒤덮인 지구’[16]와 충돌한다. 이 충돌의 끝은 주기적인 폭동이다. 1871년의 파리나 1968년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 피살 이후의 미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만일 재정적 어려움이 깊어져 가고, 아직까지는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도시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포스트모던적·소비주의적 잉여흡수국면이 끝나 더 광범위한 위기가 찾아오면, 우리의 68은 어디에 있는가 혹은 보다 극적으로 우리의 코뮨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고, 곧 그렇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도시 과정이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의 금융체계 하에서 그 해답은 훨씬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어디에서나 반란의 조짐이 감지된다. 중국과 인도는 만성적인 소요사태에 시달리고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내전이 일어나 큰 혼란을 야기한다. 이런 폭동은 모두 확산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금융체계와는 달리,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도시와 도시 주변에 존재하는 도시화 반대 사회운동은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많은 경우 아무런 연관조차 갖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들이 조그만 연계라도 형성하게 된다면 그들이 요구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마지막 질문에 대한 해답은 간단한 편이다. 바로 잉여의 생산과 활용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 확대다. 도시 과정이 잉여를 활용하는 주요 통로이기 때문에 도시에 대한 권리에는 도시 개발에 대한 민주적 관리체계 수립이 포함된다. 자본주의 역사를 통틀어 국가는 잉여 가치의 일부를 세금으로 가져갔는데, 사회민주주의 국면에서는 국가가 처분할 수 있는 잉여가치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올라갔다. 지난 30년 사이 이루어진 신자유주의 기획은 그 통제권의 사유화를 지향해왔지만 전체 OECD 국가 통계를 보면 1970년대 이후로 총생산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몫은 대체로 비슷한 수준에서 유지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17]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의 공격이 이룬 주요 업적은 공공이 차지하는 비중이 1960년대 수준으로 확장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또한 국가와 기업의 이익을 통합한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를 창조했다. 이 새로운 체계는 금전적 권력을 발휘함으로써, 국가기구를 통한 잉여의 분배가 도시 과정의 모양새를 결정하는 기업 자본과 상류층에 호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보장한다. 그러므로 국가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을 되찾아온다면 국가가 보유하는 잉여의 비중이 상승할수록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도시에 대한 권리가 사적 부문이나 사적 이해관계에 준하는 세력의 손에 자꾸 넘어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뉴욕시의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 시장은 개발업자, 월가(街), 초국적 자본가 계급 구성원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도시를 개조하면서 뉴욕이 고부가가치 사업에 적합한 장소임을 그리고 여행객들이 방문할만한 환상적인 도시임을 선전하고 있다. 사실 블룸버그는 맨해튼을 부자들이 사는 보안이 철저한 커다란 주택단지로 바꾸는 중이다. 멕시코시티에서는 카를로스 슬림이 다운타운 거리를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거리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도시에 대해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는 부유한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시에 재투자할 자원이 부족한 뉴헤이븐(New Haven)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 중 하나인 예일 대학이 자신의 필요에 부합하도록 대부분의 도시 구조를 재설계하고 있다. 이스트 볼티모어에서는 존스 홉킨스 대학이, 뉴욕 지역에서는 컬럼비아 대학이 같은 일을 벌이고 있는데, 지역 주민들은 이에 맞서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인정받고 있는 도시에 대한 권리는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의 바람에 맞도록 도시의 모양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소수의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들에게 한정되어, 지극히 협소한 범위로 제한되어 있다.
매년 1월 뉴욕주 감사관 사무소(Office of the New York State Comptroller)는 지난 12개월간 월가에 지급된 보너스 총액을 추산해 발표한다. 어느 모로 보나 금융시장에 재앙이었던 2007년 월가가 챙겨간 보너스 총액은 2006년보다 겨우 2% 줄어든 332억달러에 달했다. 2007년 한여름 무렵 연방준비은행과 유럽중앙은행은 수십억달러어치의 단기 신용을 금융시장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쏟아부었다. 그러고나서 연방준비은행은 이자율을 극적으로 낮췄고 다우지수가 가파르게 추락할 위협을 받을 때마다 막대한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그러는사이 2백만명 가량의 사람들이 담보로 잡힌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바람에 거리에 나 앉았거나 거리에 나 앉을 위기에 처해있다.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주거지역과 심한 경우 도시 주변의 공동체 전체가 금융기관의 탐욕스러운 임대정책으로 인해 엉망이 되어 집집마다 창문은 판자를 둘러쳤고 약탈당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이 받을 보너스는 없다. 물론 담보물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것은 빚이 탕감된다는 의미지만, 미국에서는 이것도 소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자신이 한번 만져보지도 못한 돈에 부과된 무거운 금액의 세금고지서를 받게 된다. 이런 불균형한 상황은 계급 대립이라는 집단적 형태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개발업자들의) 편의를 위해 토지수용권을 발동해 도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저소득층 거주지를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쓸어버리고 고부가가치의 토지로 변모시키는 ‘금융의 카트리나’가 휘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의 언젠가는 이 같은 개발에 한 목소리로 반대하는 날이 올 것이다. 물론 인도와 브라질에서부터 중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미국에 이르는 세계 곳곳에는 이미 도시 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아주 다양한 사회운동이 존재한다. 2001년 도시에 대한 집합적 권리를 인식한 사회운동이 압력을 가하자, 브라질 헌법에는 도시법(City Statute)이 추가되었다.[18] 미국에서는 금융기관에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7천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재건은행(Reconstruction Bank) 으로 보내야 한다는 요구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이 돈은 담보물이 경매로 넘어가는 일을 막는데 도움을 주며, 자치단체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주거지역 회생노력과 기반시설 재정비 노력에 자금을 지원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의 위기로 영향을 받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거대 투자자들과 금융가들의 필요보다 앞서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회운동은 이런 해결책이 시행되도록 만들 정도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잉여의 생산조건에 대한 통제권은 물론이고, 잉여의 활용에 대한 더 많은 통제권을 얻어내겠다는 같은 목표 아래 모이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도시화 과정이 전지구적 규모로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역사의 현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이 투쟁은 특히 금융 자본을 상대로 하는 전지구적 투쟁이 되어야 한다. 확실한 것은 그런 집단 대결을 조직하는 정치적 과업은 강한 의지를 가졌다해도 쉽게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회는 많이 있다. 앞서 짤막하게 제시한 역사에서 보았듯, 지역적으로든 전지구적으로든 도시화를 둘러싼 위기는 반복적으로 분출되기 때문이며, 오늘날의 메트로폴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고, 부유한 사람들에게 식민화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개발이라는 추진력에 의존해 이루어진 축적을 둘러싼, 감히 계급투쟁이라 칭하고 싶은, 집단 충돌의 장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대한 권리를 우리가 내건 기치이자 정치적 이상으로 삼음으로써 이러한 투쟁을 하나로 모아내는 한걸음을 떼게 될 것이다.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은 도시화와 잉여 생산 및 잉여 활용 사이에 필요한 연계를 누가 주관할 것인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강탈당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거부당해왔던 그 통제권을 되찾고 새로운 도시화 양식을 구축하려면 우선 도시에 대한 권리를 민주화하고 그 의지를 강력히 펼칠 광범한 사회 운동을 구축해야 한다. 광범위한 의미로서의 도시라는 개념을 생각한다면, 혁명은 도시에 존재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르페브르의 주장이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추선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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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id Harvey, "The Right to the City" NLR 53 September-October 2008.
원문 http://www.newleftreview.org/?getpdf=NLR28702&pdflang=en
[1] Robert Park, On Social Control and Collective Behavior, Chicago 1967, p. 3.
[2] 자세한 설명은 David Harvey, Paris, Capital of Modernity, New York 2003을 참고하라. [국역—김병화 옮김,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생각의 나무, 2005.]
[3] Robert Moses, ‘What Happened to Haussmann?’ Architectural Forum, vol. 77 (July 1942), pp. 57–66.
[4] Henri Lefebvre, The Urban Revolution, Minneapolis 2003; and Writings on Cities, Oxford 1996.
[5] William Tabb, The Long Default: New York City and the Urban Fiscal Crisis, New York 1982.
[6] Richard Bookstaber, A Demon of Our Own Design: Markets, Hedge Funds and the Perils of Financial Innovation, Hoboken, NJ 2007.
[7] Hilde Nafstad et al., ‘Ideology and Power: The Influence of Current Neoliberalism in Society’, Journal of Community and Applied Social Psychology, vol. 17, no. 4 (July 2007), pp. 313–27.
[8] Mike Davis, City of Quartz: Excavating the Future in Los Angeles, London and New York 1990.
[9] Marcello Balbo, ‘Urban Planning and the Fragmented City of Developing Countries’, Third World Planning Review, vol. 15, no. 1 (1993), pp. 23–35.
[10] Friedrich Engels, The Housing Question, New York 1935, pp. 74–7.
[11] Engels, Housing Question, p. 23.
[12] Harvey, The New Imperialism, Oxford 2003, chapter 4. [국역—최병두 옮김, 『신제국주의』, 한울, 2005.]
[13] Usha Ramanathan, ‘Illegality and the Urban Poor’, Economic and Political Weekly, 22 July 2006; Rakesh Shukla, ‘Rights of the Poor: An Overview of Supreme Court’, Economic and Political Weekly, 2 September 2006.
[14] Kelo v. New London, ct, decided on 23 June 2005 in case 545 us 469 (2005).
[15] 여기서 제시되는 내용 대부분은 에르난도 데 소토(Hernando de Soto)의 작업을 따른 것이다. Hernando de Soto, The Mystery of Capital: Why Capitalism Triumphs in the West and Fails Everywhere Else, New York 2000; 티모시 미첼(Timothy Mitchell)의 비판적 평가를 참고하라. Timothy Mitchell, ‘The Work of Economics: How a Discipline Makes its World’, Archives Européennes de Sociologie, vol. 46, no. 2 (August 2005), pp. 297–320.
[16] Mike Davis, Planet of Slums, London and New York 2006. [국역—김정아 옮김, 『슬럼, 지구를 뒤덮다』, 돌베개, 2007.]
[17] OECD Factbook 2008: Economic, Environmental and Social Statistics, Paris 2008, p. 225.
[18] Edésio Fernandes, ‘Constructing the “Right to the City” in Brazil’, Social and Legal Studies, vol. 16, no. 2 (June 2007), pp. 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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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9일(화) - 30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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