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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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21 9월 21일
  2. 2010/03/27 몸에 남은 기억들
  3. 2009/06/24 내가 결국 서울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
일기 / 2010/09/21 01:20
오랜만에 고향 집엘 왔다. 역시나 고속도로는 꽉차 있었고, 평소보다 2배나 걸리는 시간이 들었다. 같이 살던 강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방에 처박힌 지금은 내 방이었던 이 공간이 너무 낯설다. 집에만 오면 생기는 알러지 반응이 역시나 시작되었다. 코가 막히고 재채기가 나오고 머리가 웅웅 울린다. <성균관 스캔들> 7화를 구해 두었다.

서울은 넓고 또 넓고 돈만 있다면 먹고 마실데도 많은데, 왜 이렇게 갈 곳이 없는지 모르겠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주변으로는 당연히 아무 것도 없고, 명동이니 강남이니 하는데도 꾸준히 싫다. 그러다보니 결국 발길을 돌리게 되는 것은 홍대이다. 홍대는 특별하다기 보다는 아주 무난한 동네다. 어제도 그제도 약속이 모두 홍대였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이제 자연스럽게 홍대가 디폴트가 되었다. 옛날엔 자주 약속 장소가 되었던 녹두나 신림, 입구역 근방에서 만나는 건, 조금 궁상스럽게 느껴질 때도 많아졌다. 왠지 이 근처를 약속 장소로 잡으면 미안한 감정마저 든다. 나는 홍대 문화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홍대 피플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언제나 갈 수밖에 없다. 왜 그럴까? 이렇게도 장소가 없는거야?

어제는 오랜만에 Y와 독대했다. 내가 조금만 더 컨디션이 좋았어야 했는데.. 여하튼 가장 일상의 동기가 된 부분만 기술하자면, 우리는 어쨌든 석사 과정에 들어섰고 앞으로 논문을 쓰게 될텐데, 여기에 쏟아 부은 노력들을 석사 논문으로만 내보내고 창피해하는 것보다는, 이 결과를 다른 것들로 전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다. 일본에서 만화 원작이 나오면 영화도 만들고 애니도 만들고 드라마도 만들고 캐릭터 사업도 벌이듯이. 석사 논문을 바탕으로 출판을 한다거나 하는 것. 저자가 되는 것에 대한 욕심, 그래서 최대한 널리 읽히고 독자들과 영향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 그러려면 어떻게 '핫'한 아이템을 찾아서 논문 작업을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버리는 것. 물론 이런 것들이 굉장히 야심차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굉장히 소박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쏟아 부은 노력에 대해, 나 스스로가 나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일 뿐이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얼마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술을 마시게 되면 사실 우리는 술 자체보다는, 어떤 계기의 폭발을 기다리게 된다. 그럴 때 단어들은 질서 정연한 소우주를 위해 폭발을 시작하고,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의 우주를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는 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혹시나 서로 눈치보며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누군가가 꼬인 혀를 빌어 폭력적으로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혹시나 마음이 통하지는 않을까, 혹시나 왠지 싫은 사람이 싫은 이유를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까, 혹시나 무슨 조짐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서, 혹시나 싶어서, 혹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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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3/27 22:48
서경식 교수와 타와다 요코 작가의 서한집 <경계에서 춤추다>에는 고향에 대한 챕터가 있다. 여기서 서경식 교수는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 독일어로는 하이마트(Heimat)가 어디냐는 질문에서 어떤 폭력을 읽는다. 이 책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고, 어딘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서경식 교수의 이런 느낌은 여러 차례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바이고, 고향에 대한 감각이 어떻게 제국주의나 파시즘에 동원되었는지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특히 이 부분은, 뭐랄까, 서경식 교수가 폭발한다고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애써 튀어오르는 감정의 다발을 억누르는 느낌. 그래서 역설적으로 고향에 대한 그의 강한 애착이 느껴지고 상실감이 느껴지는, 그러나 채워질 수 없는, 그래서 강한 추동력이 될 수 있는, 그 무엇.

이와는 조금 달리, 내게는 구체적으로 고향이 어디냐하는 질문은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게 서교수와 나의 결정적 차이겠지.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고향을 떠나는게(어차피 고등학교가 별로 없었으니 '유학'을 가야만 했다) 학교를 다니는 목적이었고, 고등학교부터는 마침내 그 목적을 성취했다. 그 뒤 얼마 간은 고향의 냄새를 지우는 게 일상의 실천이기도 했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더듬기 일쑤였고, 에둘러 대답을 피하기에 바빴다. 그건 시골에 살았다는게 창피해서도 아니고, 시골에서 사는게 두려워서도 아니다. 시골 출신이라고 말하면 거기서는 제일 가는 수재였겠네하며 눈을 동그렇게 뜨는 서울 사람들의 얼굴을 향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많은 순간들, 그런 촌구석에서 도대체 어떻게 사냐며 자기의 경험 부족과 상상력 부족을 자랑하는 서울 사람들을 뒤돌아 욕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다만 내게 구체적인 고향이 생긴다는 게 무서웠달까. 외롭지만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도시의 부유하는 일상 속에서 어떤 구체성이 붙박히는게 싫었달까.

그 생활을 청산하고, 지난 약 1년 4개월은 불가피하게 '고향'에 있어야 했다. 물론 자주 서울에 다니긴 했지만. 고향에서 중요한 것은 아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 일이었다. 거리에서 중고등학교 동창이나 알던 후배들을 멀리서 보면, 그들을 여전히 쉽게 알아보고 이름을 기억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반가움보다는 당혹감이 앞서 저만치 도망가버리곤 했다. 가끔 나를 알아보고 반기는 어른들이나 동창생들이 있어도 이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주춤 물러나 사라져버리곤 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말 걸고 싶고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아주 구체적인 욕망도, 이 망각에 대한 욕망 앞에선 쉽게 사그러들었다. 그들이 싫었던게 아니라 여기에 나의 구체적인 일상, 구체적인 기억이 박히는 게 싫었을 뿐이다. 여기서 내가 기억하게 될 그 무엇이 더 이상 내 일상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쩌다 중학교 때 앨범을 보게 되었다. 하필이면 오늘은 괜히 심심했고, 한강 작가의 새 장편소설을 마침내 다 읽었고, 읽고 난 뒤 알 수 없는 갈증과 허기를 강하게 느끼면서, 그 공허감을 즉각 피할 수단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앨범이 컴퓨터가 있는 책상에 꽂혀 있었던 탓이다. 짙은 초록색 표지에, 책등엔 2001년 제 54회 ㅇㅇ중학교가 금색으로 새겨진 얇은 앨범이.

그 앨범을 펼치면서 놀라웠던 건, 내게 그렇게도 많은 기억이 남아 있었다는 것, 그 기억은 매우 신체적이라는 것, 그리고 거기엔 여러 감정들이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 친하지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어떤 아이의 손이 사진을 찍는 순간에 내 어깨에 올라왔던 것, 그 손이 유난히 불쾌했었던 기억이 그대로 재생된다. 가볍지만 어딘가 땀에 절어 끈적한 손이 어깨에 올라온 느낌을 받았고 이내 불쾌해졌다. 애들을 테니스채로 마구 때리곤 했던 기술 선생님이 컴퓨터를 잘한다고 알려진 나를 데려다 시험지 채점과 점수 입력을 시키며 내 어깨를 두드리던 것, 그 손길을 뿌리치고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던 기억도 재생된다. 싫다고 짜증을 내던 내 몸을 기어코 만지던 남자애들과의 불쾌했던 경험도 재생되고, 결국 어떤 애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고야 말았을 때 내 주먹에 남았던 그 둔탁한 타격감도 재생된다. 교실의 찌든 냄새도, 애들이 흘린 불쾌한 땀냄새도, 씻지 않아 나는 군내도, 화장실의 지린내도 재생된다. 선생님들의 목소리도 남아서 귓가를 울린다. 여하간 기분이 더럽다. 좋았던 기억이 그리 없구나.

내가 알았던(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고) 어떤 여성학 교수는 사석에서, 단식원에 들어갔다왔다며, 단식의 놀라운 효과에 대해 장광설을 풀어놓았었다. 거기서 기억에 남는 건 단식의 구체적 과정 같은게 아니라, 단식을 얼마간 할 때마다 몸이 아팠다는 것, 그리고 그 아팠던 부분은 사실 과거에 크게 다쳤던 부분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날이 지날 때마다 아픈 부분은 계속 달라졌고, 놀랍게도 아픈 순서는 다쳤던 순서와 역순으로 일치했다. 다쳤던 부분은 물리적으로는 다 나아서 일상에 지장이 없지만, 몸은 그것을 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구체적인, 신체적으로 남은 이 기억들이 싫다. 앨범을 태워버리고도 싶지만, 그랬다가는 모든 근거들이 사라질까 싶어 차마 그렇게 하진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작가는 서울이 자신을 닮아서 서울을 떠날 수가 없다고, 결국엔 서울로 돌아오고야 만다고 말한 적 있다. 에세이집 <Stay>에서 김영하가 말했던 것처럼(사실은 너무나 흔한 스테레오타입이긴 하지만) 서울은 아무래도 망각에 익숙하다. 물론 서울에도 소중하고 좋아하는 공간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서울이 공간에 대한 망각이 쉽게 일어나는 곳이란 건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공간을 망각한다는 건 그 공간과 연결된 여러 구체적인 기억들을 망각한다는 것과 유사한 이야기다. 잊을 수 있다는 건 슬프거나 피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일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힘이다. 모든 것을 지워야하는 것은 아니다.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따로 있고 나는 그것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144일 남았다. 조금만 더 견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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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독서노트 / 2009/06/24 21:16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중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간혹 서울을 떠났지만 매번 곧 돌아왔다. 도시 전체가 옛 시대의 유산인 곳이나 빼어난 절경을 가진 곳에서도 나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이내 서울이 그리워졌고 돌아오면 안도했다. 서울이 전적으로 태평하고 무사한 도시여서가 아니었다. 대개의 삶이 그렇듯, 그런 날은 일부에 불과했다. 안도감이나 그리움은 서울을 벗어나 있을 때에나 가능했다. 서울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어수선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도시를 영영 떠날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 서울은 나와 가장 닮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 편혜영, 「크림색 소파의 방」서문(???), p. 211


그 도시는 나의 유년시절을 모르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는 될 수 있는 한 철없이 논다.

- 윤성희, 「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서문(???), p. 184



소설집을 들춰보다가 어쩔 수 없이 깊이 공감하게 된 문장. 그랬다. 안도감, 그리움은 서울에 있을 때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곳에서 나는 철없이 놀 수 있었고 철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덧붙여 편혜영씨의 말에 토를 조금 더 달자면, 서울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어수선하기만 한 나와 가장 닮았을 뿐 아니라, 그런 나를 아무 말 없이 나를 가장 받아들여주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서울을 배경으로 <테마 소설집>이 얼마 전 나왔다. 나로서는 상당히 참신한 시도로 읽혀서 책을 샀는데 솔직히 말해 서울은 너무나도 '서울'이기에 다른 문학에서도 충분히 서울을 느낄 수 있고 따라서 특별히 이 소설이 '서울 테마 소설집'이라고 느끼진 못하겠다. (난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건지) 인터넷 그림을 볼 땐 소설집의 '쿨'하고 '감각적인' 북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는데 막상 받아보니 첫 인상에 비해 쪼오금은 실망할 수밖에.

소설집에서는 '서울성(性)'이랄까 'seoulness'랄까, 하는 무언가에 대한 직접적인 사유를 읽어 내기 힘들었다. 내가 기대했던건 어쩌면 이것이었을테다. 다시 말해, 결국 내가 가진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미지에 합치하는 소설은 만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의 조각들을 이리 저리 짜맞추면 하나의 이미지가 그려지기는 하지만, 어떤 총체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이게 곧, 서울인가?). 내 소설 편식증 때문에 전혀 읽히지 않는 소설도 있었고..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일단 잘 읽히고 재밌는 소설들도 많고, 무엇보다도 좋은 문장들을 많이 건졌다. 몽땅 필사해 뒀다는! ^^

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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