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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4 내가 결국 서울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
  2. 2008/02/12 서울공화국, 그 음울한 환상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중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간혹 서울을 떠났지만 매번 곧 돌아왔다. 도시 전체가 옛 시대의 유산인 곳이나 빼어난 절경을 가진 곳에서도 나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이내 서울이 그리워졌고 돌아오면 안도했다. 서울이 전적으로 태평하고 무사한 도시여서가 아니었다. 대개의 삶이 그렇듯, 그런 날은 일부에 불과했다. 안도감이나 그리움은 서울을 벗어나 있을 때에나 가능했다. 서울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어수선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도시를 영영 떠날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 서울은 나와 가장 닮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 편혜영, 「크림색 소파의 방」서문(???), p. 211


그 도시는 나의 유년시절을 모르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는 될 수 있는 한 철없이 논다.

- 윤성희, 「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서문(???), p. 184



소설집을 들춰보다가 어쩔 수 없이 깊이 공감하게 된 문장. 그랬다. 안도감, 그리움은 서울에 있을 때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곳에서 나는 철없이 놀 수 있었고 철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덧붙여 편혜영씨의 말에 토를 조금 더 달자면, 서울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어수선하기만 한 나와 가장 닮았을 뿐 아니라, 그런 나를 아무 말 없이 나를 가장 받아들여주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서울을 배경으로 <테마 소설집>이 얼마 전 나왔다. 나로서는 상당히 참신한 시도로 읽혀서 책을 샀는데 솔직히 말해 서울은 너무나도 '서울'이기에 다른 문학에서도 충분히 서울을 느낄 수 있고 따라서 특별히 이 소설이 '서울 테마 소설집'이라고 느끼진 못하겠다. (난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건지) 인터넷 그림을 볼 땐 소설집의 '쿨'하고 '감각적인' 북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는데 막상 받아보니 첫 인상에 비해 쪼오금은 실망할 수밖에.

소설집에서는 '서울성(性)'이랄까 'seoulness'랄까, 하는 무언가에 대한 직접적인 사유를 읽어 내기 힘들었다. 내가 기대했던건 어쩌면 이것이었을테다. 다시 말해, 결국 내가 가진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미지에 합치하는 소설은 만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의 조각들을 이리 저리 짜맞추면 하나의 이미지가 그려지기는 하지만, 어떤 총체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이게 곧, 서울인가?). 내 소설 편식증 때문에 전혀 읽히지 않는 소설도 있었고..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일단 잘 읽히고 재밌는 소설들도 많고, 무엇보다도 좋은 문장들을 많이 건졌다. 몽땅 필사해 뒀다는! ^^

Posted by 비앙

2007년 1학기에 교지에 썼던 글. 제목도 마음에 안들고 -.ㅡ;; 늘 제목 센스부터 엉터리였음. 학교명은 다 지웠음.


서울공화국, 그 음울한 환상
- 공간의 문화정치

그런 말이 있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서울 빼고는 다 ‘시골’이라는. 그래서 명절 때 ‘지방’ 사람에게 우리들이 흔히 하는 말이 “시골 내려가?”이지 않던가. 나름대로 뼈 있는 이 말을 뜯어 보면, 한국이란 영토국가가 서울과 비-서울(보통 ‘시골’로 명명되는)이라는 상징적인 두 개의 구획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서울이 아닌 곳이면 그곳이 어딘지 상관없이 ‘비’-서울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서울이 중심-기준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또한 “내려가?”1)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국이 단순히 서울과 비-서울로 나뉜다는 것을 넘어서, 이미 어떤 ‘위계질서’를 내포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서울은 그 위계질서의 가장 상위에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은 한국의 ‘중심’이다. 단순히 가운데 있다는 말이 아니라, 서울이 가진 중력이 한국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서울공화국’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사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 속에는 너무나 많은 의미들이 들어 있다. 정치경제문화 중심지, 과밀 인구, 또 한편으로 ‘서울대학교’ 등등. 그러나 내게는 이미 반복적으로 문제화되었던 그 많은 의미들을 한 데 녹여낼 재간이 없다. 다만 이 글은 작게나마 필자 나름의 서울공화국-공간의 ‘지도’를 다시 그려보는 시도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지도에는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여기서 그려진 내 나름대로의 지도가 일상의 미로 속에서 조금은 다른 길로 걸어갈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할 것이다.


서울과 비-서울, 공간이라는 은유

우리는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간다. 좀 더 구체적으로 ㅇㅇ산 기슭에 있는 ㅇㅇ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공간(空間;space)의 원래 뜻―비어있는―과는 달리, 여기서 말한 ‘공간’은 어떤 기시감을 준다. ㅇㅇ대학교를 떠올리면 무엇이든 보이는 듯이 떠오르고, 강남하면 또 무언가가 보이는 듯 떠오르며, 자기의 방을 생각해봐도 무언가 보이는 듯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공간 없이는 그 무엇도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공간은 시간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존재와 삶의 풍경들이 재생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이며 가장 기본적인 토대인 것으로 보인다. 공간이 없으면 우리는 점심시간에 긴 줄을 서서 학관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친구와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도 없으며 한가로운 오후에 캠퍼스를 느그적느그적 거닐 수도 없다. 이렇게 우리는 실로 공간 안에 배치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간을 배치하는 ‘질서’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 배치되는 것들의 ‘조건’에 대한 물음이다. 이는 공간은 결코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연결된다. 다시 말해 공간은 그 자체로 열려있지 않고 어떤 나름의 규칙들에 의해 폐쇄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얼마 전 인문대 해방터의 ‘김밥 할머니’ ㅇㅇㅇ씨가 인문대 학장단과 행정실 직원에 의해 ‘퇴출’을 당한 바 있다. 당연히 ‘지성인’들인 학장단이 그냥 내보낼 수는 없었을 테고 나름대로 주절주절 이유를 늘어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학내 무허가 영업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영업을 하려면 아무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해프닝은 공간의 작동방식의 한 예―물론 그 일을 전부 이것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를 보여준다. 학교-공간을 통제하는 권력들에게는 ㅇㅇㅇㅇㅇㅇ, ㅇㅇㅇㅇ, ㅇㅇㅇㅇㅇ는 합법―계약의 대상―이고, 김밥 할머니는 불법―퇴출의 대상―이다. 적당한 세련됨을 갖춘 현대적인 점포는 변화하는 학교에 어울리고, 노점에서 음식을 판매하는 할머니는 학교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모양이다. 물론 어찌 이러한 예가 이뿐 일까.

이렇게 공간-권력은 그 안에 배치될 수 있는 주체와 사물을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서울스러운 것이 서울에 배치되고 비-서울스러운 것이 비-서울에 배치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비-서울스러운 것으로 보이는 사물이나 주체가 서울에 배치되는 순간 우리는 지극히 어색해 하며, 그것에 폭력을 가할 수 있다. “제 자리로 돌아가! 넌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라고.

계속보기..


 

Posted by 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