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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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8/02 기억은 차라리 망각의 한 형식
  2. 2008/03/30 자꾸 잊고 있어 (2)
조각들 / 2010/08/02 17:46

기억과 망각은 서로 완전히 배타적이고 모순적인 관계이기 쉽다. 기억하고 있는 것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고, 잊어버린 것은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나의 형편없는 기억력에 좌절한다. 또 기억하기 위해 쏟아붓는 시간도 아까워 한다. 학부에 다닐 때는 일부러 객관식 시험이 없는 수업만 골라 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이런 인식은 기억을 특권화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인식과 관심범주는 늘 제한되어 있기에 모든 국면을 총체적으로 전부 다 기억할 수는 없다는 사실, 또 우리 뇌의 기억력은 늘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은폐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좋은 기억력은 늘 부러운 대상이었다.

그러나 삶의 어느 순간에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 차라리 망각일 때가 있고, 망각했던 것이 차라리 기억일 때가 있다. 특히 경험과 역사를 언어화할 때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경험을 부분적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이 발화되는 순간 그 기억이 거짓일 수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때때로 기억은 순전히 어떤 사실을 망각하기 위해서 존재할 때도 있다. 그렇게 기억은 차라리 망각의 한 형식일 때도 있다. 또한 망각도 기억의 한 형식일 수 있다. 그것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수정하고, 동시에 우리의 기억과 경험을 수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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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기억, 망각
일기 / 2008/03/3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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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연극 <레이디 맥베스>를 보고 예술의 전당 근처 카페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대화의 주제가 자꾸만 예전의 주제와 겹치는 것을 느끼고 꽤나 당혹스러웠었더랬다. 예전엔 한 상대방에게 했던 이야기들은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었고, 다음부터는 주제가 겹치지 않도록 부러 노력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자꾸만 헷갈리게 되었다. 얘기를 했는지 안 했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미 내가 많은 것들을 이야기 했는지 안했는지 조차 잊어버리기 시작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으, 끔찍해. 얼마 전엔 이런 경험도 했었는데,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시계를 줬다. 나름대로 신경써서 산 선물이었는데. 그 선물을 받자마자 그 친구는 2년 전에 자기한테 선물로 시계를 줬었다고 말해 주었다-_- (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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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는 자기가 꼼꼼히 읽고 주석까지 달았던 책들을 마치 처음 보는 책인양 다시 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이를 엄청 절망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심지어 몽테뉴는 자신이 썼던 글마저도 썼는지 안썼는지 조차 잊어버리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때로 자기가 쓴 글을 남이 인용한 것을 보면서도, 그게 자신의 글인지 조차 모르는 상황에 봉착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이는 실제로 겪으면 굉장히 무서운 경험일 것 같다. 아무리 다작(多作)하는 작가라고 할지라도 자기가 공들여 직접 쓴 글까지도 못 알아보는 경우까지 생긴다면, 기억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버리는 것은 아닐지 그러다가 자기 자신이 지워져 버리는 것은 아닐지, 공포와 두려움이 당연히 스멀스멀 피어오르지 않을까.

사실 이건 남의 이야기도 아니다. 몽테뉴가 저런 걱정을 했던 나이에 비하면 한참 어린 나이의 나인데도, 블로그처음 시작할 때의 글을 보거나 미니홈피 다이어리를 몇 년 전 것을 보면, 이게 대체 내가 쓴 글인지 남이 쓴 글인지 헷갈려 버릴 때도 있는 것이다. 내가 이걸 스크랩 해 온건지, 직접 쓴 건지도 모르겠고, 대체 이런 글을 내가 왜 남겼던가 이유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남이 쓴 글을 읽듯이 내 블로그의 글을 읽는다. 그나마 글이 익숙하다는 느낌이 난다면 다행이지만,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이것도 끔찍한 경험이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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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글만 기억에서 지워진다면,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제는 사람까지도 제멋대로 지워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워짐과 동시에 사람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입력되지도 않는다. 요즘의 나는, 나와 관계를 맺은 적 없는 타인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말을 건넬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도, 몇 마디를 주고 받고 나면 그 타인들을 이미 '아웃 오브 안중眼中'의 영역으로 추방해 버린다. 대화를 하거나 혹은 말을 건네오고 있는 중인데도, 나는 마치 무엇엔가에 쫒기듯, 혹은 그 자리가 불편하거나 싫은 듯, 대화를 하다 말고 그 자리를 휭하니 떠버리곤 하는 것이다. 나는 저만치 떨어져서야 가겠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건 그 사람이 싫어서 그러는 것이 절대절대 아닌데도. 틀림없이 예의 없고 싸가지 없는, 그런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갈수록 폐쇄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셈이다.

뭐, 이런 것들, 죄다 어쩔 수 없다손 치자. 그렇다면 그나마 안에 남은 기억과 사람들은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노력해서 제대로 보존해야만 할 것이다. 보존 + 가꿈까지 해야겠지. 하지만 요즘엔 그것도 잘 안 된다. 정말 내가 쓴 글이나 읽은 책은 그렇다 쳐도, 나와 구체적 관계까지 맺었던 사람까지 지워지는 건 정말이지 싫은 경험이다. 이래놓고 나중에 문득 생각날 때, 아 그땐 그랬지, 하는 그런 심정으로, 추억거리로 안주 정도나 삼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나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느껴질 미래의 어느 순간, 이런 추억 행위를 하게 될지 모른다는 느낌은 정말 싫다. 에휴 안 그래도 넓지도 않은 인맥, 이러다가 아예 사라져 버리진 않을까;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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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망각,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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