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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31일

일기 2009/05/31 23:59

1.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뭐 해먹고 살지'라는 고민. 나와 좀 가까운 이들이라면 내가 귀가 얼마나 얇은지, 또 확신과 결단이란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을 정도로 없는지 매우 잘 알 터. 따라서 이제 나는 차마 '뭐 해야 겠어!' 라는 말을 남 부끄러워서 입에 담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어휴;) '어떻게 살아야지'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상은 잡혀 있지만, 그 막연한 상을 반영하고 뒷받침해 줄 구체적인 기반이 (아직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쉽게 팔랑팔랑하는 것이라고 위안해 본다. 그래도 일단 정해진 것이 있다. 지금 이 생활이 끝나고 바로 대학원에 들어가야겠어, 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일단 '경제적인 독립'이다. 이 상황을 초월하기 위해 별 짓 다 해봤지만, 일단 지금의 나로서는ㅡ내가 부모님의 친자식이 아니라 어렸을 적에 남 몰래 입양된 아이였고 날 버린 친부모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거액의 유산을 갑자기 미리 당겨 상속해 주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ㅡ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참 멀리 돌아왔다.

2. 어떤 일이 나에게 가장 질투심을 유발하는지를 살피면, 뭐가 내가 선호하는 일인지 전혀 모를 때 대충 감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좋은 것 같애',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건 반드시 내가 해야 하는데! (당신 정말 얄미워/나쁜 인간이야/그만뒀음 좋겠어/없어졌음 좋겠어)', 하는 식의 질투심.

3. 마거렛 미드의 <세 부족 사회의 성과 기질>을 훑어보다가 조한혜정 선생의 역자 해설을 읽었는데, 거기서 나를 뜨끔하게 만든 구절이 있었다. 내용인 즉슨, '작가의 꿈을 키워오던 미드는 글 재주가 빼어난 친구의 글을 읽고 작가의 꿈을 접고 사회과학자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나는 글을 '아름답게' 쓰지도 못하고, '감동적'이게 쓰지도 못하고, '논리적'으로 쓰지도 못하고, '유려하게' 쓰지도 못하는데. 아름답거나 감동을 주거나 논리적이거나 유려하게 쓰는 사람들을, 난 이미 다 알고 있는데..

4. <마더>를 봤다. 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후 몸도 맘도 완전 침체기였는데, 계속 이렇게 집에만 틀어 박혀 현실 도피만 하고 있음 정줄 놓고 목이라도 맬 것 같아 선택한게 (어쩌면 고작-_-) 영화 보기였다. 결과는 대 실망이다. 남자들이 뻔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머니 꼴라쥬' 같은 느낌이랄까. 난 아무리 애써봐도 한국 남자들과 한국 어머니들의 전형적인 관계를 좋게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어머니'에게 도덕적 우월성이라는 외피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그렇다고 '어머니'에 존재하는 어떤 모종의 악마성만을 재현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영화는 많은 여지를 남겨 둠으로써 그런 까다로운 문제들을 영리하게 잘 빠져나간다. 김혜자 씨의 연기가 좋다는 사람들이 있던데, 실제로 봐도 인상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 '마더' 보다 더 '마더' 같은 사람들을 일상 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 연기 하나 보려고 영화관에 가야한다는 건 여간 슬픈 일이 아니다. 빈곤은 서글픈 일이고 무서운 일이라는 걸 다들 인정하면서도, 실제의 빈곤을 보는 것 보다는 영화 같은 재현물 속의 빈곤을 보는 걸 선호하는지도 모르듯 말이다. 기대했던 원빈의 연기는 워낙 들쑥날쑥하여 영화의 일관성을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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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