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를 뒤적뒤적. 좋아하는 소설책의 뒤 해설에 보면 자주 나오는 이름이고 글도 썩 마음에 들고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예전부터 누군가 궁금했었는데... 아무튼 반가운 평론집이다. 평론집이니 심심할 때 아무데나 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저께 도착한 <로쟈의 인문학 서재> 같은 다소 인터넷스러운 '산만한' 구성ㅡ블로그blog+북book=블룩blook이란다ㅡ보다는, 여전히 이런 어느 정도는 전통적인 글묶음이 좋다. <로쟈>의 경우엔 이현우씨보다도 편집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가 더 많이 보인다.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출판하는 마음은 아직 잘 이해가 안된다. 발표한 글을 모으는 블로그라면 모를까. 아예 물적 기반이 다르다보니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과 출판된 글은 호환이 잘 안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하는 잡지 프로젝트도 사실 많이 걱정 된다. 웹진 기반의 글쓰기와 실제 출판하는 글 사이의 크레바스는 어떻게 건널 수 있을지.
난 여전히 이런 평론가들의 글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는 애증에 가깝다. 그들의 글이 좋은 이유는, 그러면서 한편에는 불편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그들의 세련된 보편성 때문이다. (신형철의 경우엔 보편성을 거부하고 압도적인 특수성 내지는 매력적인 주관성을 추구하고 싶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이러한 보편성은 그들의 문체나 정치적 이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젠더) 포지션 혹은 그들이 택한 장르적 형식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그들의 글에서는 매일 마주하지만 종종 피하고 싶기만 한 일상의 비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요리책을 뒤적일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엘레강스하고 스타일리쉬한 셰프들은 대개 남자들이다. 그들의 파스타, 피자, 와인은 보편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일상의 비루함을 덮는다. 그들의 요리는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리연구가라고 알려진 여자들의 책은 다른 느낌을 준다. 콕 집어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여하간 읽어보면 매우 다르다. 요리연구가들의 책은 요리가 누군가를 위한 노동이라는 점을 미리 가정한다. 사진, 글, 모든 것에서 그 냄새가 난다. 그건 말하자면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일상이다.
이러한 젠더 차이는 여행책에서도 드러난다. 여행은 보편이 아니라 특수를 지향한다. 개별적인 장소와 시간에서 개별적인 관계를 맺고 개별적인 경험을 하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이를테면 인류애나 에티카, 혹은 여행에 대해 사유하기 위해 여행을 가지는 않는 것이다(물론 서경식씨 같은 경우나, 알랭 드 보통 같은 경우는 예외가 되겠다). 남자 저자들이 실용적이고 감성적인 여행책에서 죽을 쑤는 건 이런 것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본다.
파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아이디어를 텍스트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자못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고, 매력적이기 까지한 텍스트 속에서 발견될 경우엔 더할 나위 없는 것이다. 물론 그 기쁨은 나의 아이디어가 누군가에 의해 '먼저' 텍스트화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질투심'과 동시에 찾아온다. 또한 이미 세상에는 완전히 '신선한' 생각이란 있기 힘든 것이며, 따라서 '각주/미주'가 없는 글이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는 생각까지도 든다.
사실은 모 블로그에서 데리다의 텍스트 일부가 스크랩되어 있는 것을 읽었다. 읽고는 문득 예전에 읽었던 로쟈님의 글이 생각나서 옮겨둔다.. (강조는 namunnib)
출처는 http://blog.aladdin.co.kr/mramor/105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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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데리다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적어내려간 모스크바 통신을 예전에 정리해놓은 줄 알았더니 그냥 넘어간 모양이다. '푸슈킨-도스토예프스키-데리다'란 글의 일부였는데, '푸슈킨과 도스토예프스키'만 따로 정리해놓았던 듯하다. 로일의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앨피, 2007)이 출간된 걸 계기로 그때의 기억을 다시 더듬어 본다(책은 어제 구했다). 내용을 발췌하면서 일부 문구를 교정하고 이미지들을 첨가해둔다. 잠시 3년전 가을 모스크바로 되돌아가본다.
주말부터 모스크바에는 눈이 올 듯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정작 눈을 내리지 않고 있다. 오늘도 눈 싸라기가 잠시 흩뿌리다가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첫눈을 기다리고 있지만, 또 기다리니까 내리지 않는 모양이다. 오후에 일단 오전까지 쓴 걸 PC방에 갖고 가서 인터넷에 띄우고, 지난 2월에 데리다가 가진 인터뷰 기사 '도래할 정의를 위하여(For A Justice To Come)'를 다운받아 와서 읽었다(http://www.indymedia.be/news/2004/04/83123.php). 그리고는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문구점에서 산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을 틀어놓고 이 글을 쓴다.
어제는 막심에게서 마음먹고 후설/데리다의 <기하학의 기원>을 샀다(나는 이 책의 영역본을 갖고 있다). 1996년에 나온 책이라 고서로 분류되어 250루블(10,000원)의 값이 매겨져 있었다. 전부터 봐두었던 책이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방치’하고 있었는데, 그의 죽음에 즈음하여 데리다의 책을 한 권이라도 사야 할 것 같아서 어제 사러 간 것. 한데, 서가에 꽂혀 있지도 않았다. “데리다 있어요?”라고 물어보니까 없다면서 옆의 ‘그노지스’ 서점에 가서 문의해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창고의 서가에서 조심스럽게 꺼내든 것이 <기하학의 기원>이었는데, 보여주기만 하고 너무 비싸다면서 도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해서, 간신히 (비싸도) 괜찮다고 하며 그에게 잔돈으로 받은 250루블을 주고 그 책을 샀다.
막심네 가게를 나와서는 데리다의 또 다른 책 <목소리와 현상>을 살까 해서 ‘이데아’서점에 들렀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지만) 영역본을 다시 옮긴 이 책에 특별히 ‘해설’이 실려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손에서 놓고, 대신에 두툼한 러시아 상징주의 연구서와 함께 부르디외의 <실천적 의미>를 손에 들었다. 책을 둘러보는 틈에 서점 점원과 한 할머니 교수가 대화를 나누는 걸 엿들을 수 있었는데, 화제는 (강의 교재로 쓰이는지) 책상머리 잔뜩 쌓인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해서, 데리다의 죽음에 대한 시라크 대통령의 메시지, ‘우리 시대는 해체의 시대’라는 주장에 대한 논평을 거쳐서, “요즘은 너무 많은 책들이 있다”는 불평과 함께, 서로가 아는 어느 학자/교수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할머니 교수는 ‘대화가 된다’는 게 반가워서인지 아예 ‘장기전’을 벌일 판이었다. 나는 계산을 치르고 자리를 떴지만, 하여간에 서점 점원과 대학교수와의 대화, 그런 게 (웬만큼은 책을 읽어줘야 가능한) ‘문화’이고 ‘문화의 힘’이다.
내 생각에 다소간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관료 시스템과 엄청난 빈부격차와 민족간 갈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란 나라를 버티게 하는 힘은 바로 그 문화의 힘으로 보인다(물론 러시아에도 기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그러면서 일탈적인 하위문화가 있으며 최근에 젊은층의 이 ‘하위문화’를 분석한 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의 힘을 가능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로 수준 높은 중등 문학교육을 들 수 있다. 초/중/고가 분리돼 있는 우리의 학교 편제와는 달리 러시아는 전체가 통합되어 11학년까지 있다(대신에 대학이 5년이다). 그리고 매 학년 문학교육을 받지만, 대학입시와 직접 관련되는 10-11학년에는 우리의 대학 1-2학년 교양 수준 이상의 문학교육을 받는다.
러시아문학 교과의 경우, 10학년 때는 19세기 문학을, 그리고 11학년 때에는 20세기 문학을 공부하는데 교재가 각각 500쪽쯤 되는 책 2권씩이다(그러니까 2년간 작품은 제외하고 러시아문학 ‘교과서’만 하더라도 2,000쪽을 읽어야 한다). 거기에는 대부분의 중요 작가와 작품들이 다 망라돼 있고, 매 단원/작가마다 작문과제들이 제시돼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배우는 것이 문학일반론과 세계문학(여기서는 ‘국외문학’이라고 부른다)이다. 대학입시에서 이러한 문학과목에 대한 ‘작문시험’이 치러지는 것은 물론이다(프랑스의 철학시험에 대응하는 것이 러시아의 문학시험이다).
물론 러시아란 나라는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러시아인으로서의 공통의 정체성을 내면화하기 위해서 언어와 문학 교육이 유독 강조되는 바가 없지 않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러한 교육의 결과로 ‘책을 읽는 국민’들이 양성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학생시절에 고전을 읽은 경험은 이후의 모든 독서와 사유에 있어서 소중한 자산이자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고려해본다면, 이 점은 중요하다.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그런 경험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 국민 개개인의 교양 수준뿐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 갈라진다고 하면 너무 억지스러운가? 나는 다른 건 제쳐놓더라도 이 나라의 문학교육 수준만큼은 부러워한다(물론 사회주의 시절엔 문학교육도 이념적으로 다소 편향돼 있었다)...
데리다가 세상을 떠난 지난 토요일, 가을비만 추적추적 약간 내리던 날에 나는 시내의 서점에 갔다가 <현대문학이론>이란 앤솔로지가 신간으로 나와 있길래 구입했고, 거기서 다시 데리다란 이름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일요일 오후에 빨래 더미를 들고 빨래방으로 내려가면서 그 책을 집어 들고 가서는 데리다의 약력을 훑어보면서 그가 “인문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그리고 유희”를 발표한 게 새삼스럽게도 지금의 내 나이 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며 들른 인터넷카페에서 메일을 확인하다가 데리다의 죽음을 알리는 후배의 메일을 읽게 된 것. 이어서 자주 들르는 카페와 인터넷 서점 등에서 차례로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 나는 이젠 돌이킬 수 없게 된 그의 삶/죽음에 대해서 몇 마디 써야겠다는 의무감에 다시 한번 사로잡히고, 멍한 상태에서였지만 ‘푸슈킨-도스토예프스키-데리다’란 제목의 글을 구상한다.
하지만 그날은 그런 글을 쓰는 대신에 모스크바에 들고 온 데리다 관련서들을 들추며 몇 쪽을 읽었다. 내가 이곳에까지 들고 온 건 얇은 책 3권인데, 데리다 자신의 책은 영역본 <죽음의 선물(The Gift of Death)>(시카고대학출판부, 1995) 한 권이고(이 책을 챙겨 들고 온 건 순전히 그의 죽음에 대비해서였다!), 나머지는 리처드 비워즈워스(R. Beardsworth)의 <데리다와 정치적인 것(Derrida & the Political)>(루틀리지, 1996)과 니콜라스 로일(N. Royle)의 입문서 <자크 데리다>(루틀리지, 2003)이다(이 3권을 연말까지 다 읽는 것도 데리다의 죽음이 내게 남긴 숙제이다).
데리다의 해체론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해명하고 있는 비워즈워스의 책은 이미 필독서의 한 권이지만(그의 책으론 <니체 읽기>(동문선)가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작년에 나온 로일의 책도 최적의 입문서에 값한다. ‘루틀리지판 비판적 사상가들(Routledge Critical Thinkers)’ 시리즈의 한 권으로 나온 것인데(나는 이 시리즈의 몇 권을 갖고 있는데, 모두 입문서로서 유력하다), 클레어 콜브룩(C. Colebrook)이 쓴 이 시리즈의 <질 들뢰즈>는 이미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알다시피 도서출판 앨피에서 이 시리즈를 계속 출간하고 있다).
이미 <데리다 이후/데리다를 따라서(After Derrida)>(1995)란 저서를 갖고 있는 로일은 얇은 분량 속에서도 데리다에 관해 입문적으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재치 있는 필치로 소개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데리다 자신의 평은 이렇다. “(논변이) 아주 우수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논점이) 분명하고 독창적이다.”(Excellent, strong, clear and original.) 나는 이 두 권의 책 또한 조만간 우리말로 번역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그 기대는 이번에 실현됐다).
내가 갖고 있는 철학서들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데리다의 책들과 그와 관련한 책들이다(100권이 조금 안된다). 나는 (독해력이 충분하지 못한) 불어본을 제외하고 내가 구할 수 있는 데리다의 모든 책들을 그간에 사들이거나 복사/제본해 왔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지난 92년인가 93년쯤에 프랑스에 유학을 가 있던 한 선배가 가야트리 스피박이 옮긴 영역본 <그라마톨로지>를 우편으로 보내왔는데, 그것이 내가 접한 최초의 데리다 ‘원서’였다(“봉주르, 데리다!”). 물론 <문학이론입문> 등의 책을 통해서 데리다에 대한 상식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었던 나로선 당장에 그 책을 읽어 내려갈 능력이 없었다(내가 그 당시에 지금의 독해력을 갖고 있었다면 진로를 바꾸었을지도 모르겠다. 모스크바가 아닌 파리로!).
비로소 그의 책들을 본격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건 몇 년 뒤 철학과 대학원에서 한 학기 동안 데리다 세미나를 청강하면서부터였다. 이런저런 핑계로 ‘열심히’ 읽지는 않았지만, 그걸 계기로 해서 데리다 읽기의 가닥은 잡을 수 있었고, 한때는 <기하학의 기원>(1962)부터 차례대로 데리다의 모든 책을 읽어보자는 계획까지 세우기도 했었다. 내가 세운 대부분의 계획들처럼 그 또한 중도에 틀어지긴 했지만(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책읽기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데리다의 모든 책을 긁어 모으는 일만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왜 데리다인가? 그건 데리다를 직접 읽어보면/읽어봐야 알 수 있다(당신은 왜 그/녀를 사랑합니까?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사실, 데리다의 글쓰기는 그 자체로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범례적 사례들이다. 해서, 데리다를 읽는 일은 그의 ‘읽어내기’를 읽어내는 것이다.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다. 데리다는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텍스트를 가장 치밀하게, 그리고 정밀하게 읽어내는 사람이다. 이젠 구호처럼 돼 버린 ‘해체(deconstruction)’란 그러한 정밀한 읽기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러한 정밀한 읽기가 ‘해체’로 귀결되는가? 그것은 그의 읽기가 텍스트의 의미가 구성되고 축조되는 중심, 혹은 이항대립적인 위계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얼마나 수사적인가(혹은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드러냄으로써 의미의 아포리아, 의미의 결정불가능성(undecidability)을 전면화시키기 때문이다.
가령 오늘 읽은 그의 인터뷰('도래할 정의를 위하여')의 한 대목: “[I]n this aggression against Iraq, American responsibility was naturally decisive but it didn’t come about without complex complicities from many other quarters. We are dealing with a knot of nearly inextricable co-responsibilities. I would hope that this would be clearly taken into account and that it wouldn’t be the accusation of one man only. Even if he is an ideologue, someone who has given the hegemony project a particularly readable form, he has not done it on his own, he cannot have imposed it on non-consenting people. So the contours of the accused, of the suspect or the suspects, are very hard to determine.”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게 된다: “이라크에 대한 공격에서, 미국의 책임은 당연히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이란 건 다른 많은 진영들과 복잡하게 연루돼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풀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는 ‘공동-책임’이라는 매듭을 다루고 있는 것이죠. 나는 이 점이 분명히 고려되어야 하며, 단지 어떤 특정인만을 기소하는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설사 그가 핵심 이데올로그인 데다가 그 헤게모니 전략에 특정한 형태를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 일을 자기 혼자서 한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동의가 없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죠. 해서, 누구를 기소할 것인가, 누가 혐의자인가, 혹은 혐의자들인가를 구획짓는 건 매우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이하의 번역은 모두 내가 이해한 바를 좀더 쉽게 옮긴 것이다.)
이런 인터뷰 대목에서도 데리다의 전형적인 논변이 반복되고 있다. “-이다. 하지만, 사실 문제는 복잡하며 결정하기 어렵다.”라는 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다(그래서 지젝이 아주 답답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은 그런 지젝보다도 더 명쾌하다. 데리다-지젝-고진은 그렇게 계열체를 형성한다). 그렇다고 해서, 데리다가 어떤 긴급한 결정/결단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결정/결단은 이루어져야 하고 단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더불어 그러한 결정/결단이 불가피하게 간과하게 될 사태의 복잡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서는 불가피한 폭력의 폭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면서 보다 나은 결정/결단을 모색하는 지혜가 된다.
로일이 책의 서두에서 들고 있는 예이지만, 가령 ‘데리다’를 “1930년에 태어난 (그리고 이제 2004년에 사망한) 알제리출신의 유태계 프랑스 철학자이자 한 남성의 이름”(‘Derrida’ is the name of a man, a Jewish Algerian-French philosopher, born in 1930)이라고 규정할 때, 자명한 것, 자명하게 결정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남성’이란 무엇인가? ‘유태인’이란 무엇인가? ‘알제리계 프랑스인’이란 무엇인가? ‘철학자’란 무엇인가? ‘1930년에 태어남’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제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느 것 하나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 규정이란 언제나 어떤 배제를 함축하기 마련이며, 그런 배제는 또한 폭력(성)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가령, 그는 ‘철학자’인가, 혹은 ‘작가’인가?(그는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였다고 한다.) 한 대담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전적으로 한 명의 ‘작가’라거나 한 명의 ‘철학자’가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물론 나는 작가도 아니며 철학자도 아닙니다.” 그가 작가인가 철학자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는 관행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철학자라고 불릴 따름이며(한편에선 ‘철학자’ 데리다를 인정하지 않으려고도 하지만), 그러한 직함으로 소통될 따름이다(즉 그러한 관행/제도는 임의적인 것이다. 최근에 일부일처제에 대해서 그가 제기했던 비판은 그러한 ‘임의성’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해서, 그것은 ‘논리적인’ 결정이 아니며, 다만 편의적이고 정치적인 것일 따름이다.
다시 인터뷰에서 예를 들자면, 그는 ‘주권(sovereignty)’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가? “Personally, when I have to take a position on this vast issue of sovereignty, of what I call its necessary deconstruction, I am very cautious. I believe it is necessary, by way of a philosophical, historical analysis, to deconstruct the political theology of sovereignty. It’s an enormous philosophical task, requiring the re-reading of everything, from Kant to Bodin, from Hobbes to Schmitt. But at the same time you shouldn’t think that you must fight for the dissolution pure and simple of all sovereignty: that is neither realistic nor desirable. There are effects of sovereignty which in my view are still politically useful in the fight against certain forces or international concentrations of forces that sneer at sovereignty.”
우리말로 옮기면: “개인적으로, 내가 주권이라는 방대한 주제, 내가 주권의 필수적인 해체라고 부르는 주제와 관련하여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때, 나는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나는 철학적, 역사적 분석을 통하여 주권에 대한 철학적 신학을 해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칸트에서 보댕까지, 홉스에서 슈미트까지, 모든 걸 다시 읽어야 하는 아주 방대한 규모의 철학적 작업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모든 주권을,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게도 소멸시키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건 현실적이지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내 생각에는 주권을 비웃는 어떤 세력들 혹은 그러한 세력의 국제적 조직들에 대항해 싸울 때 여전히 정치적으로 유용한 주권의 효과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데리다가 요구하는 것은 주권을 해체하면서 동시에 그것의 유용한 효과들을 전략적으로 보존하는 것이다. 주권이란 건 국민-국가의 주권을 말한다. 유럽연합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러한 국가의 주권은 차츰 보다 확장된 공동체의 주권에 양도될 것이다. 그것은 방향성이다. 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아직도 다국적 자본 등의 반주권적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주권의 실제적 효과가 요구되는 지점들이 있다. 러시아 정부의 (석유재벌) 유코스에 대한 ‘탄압’이 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억압적’ 주권은 한편으론 돈이 말하는(Money talks!)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Shut up!) 웅변하는 효과를 갖는다. 데리다가 취하는 건 언제나 결정불가능한 더블-스탠스이다. 그가 보기엔 그러한 자세가 현실적이며 바람직하다(realistic and desirable).
그런 맥락에서 데리다가 문제삼는 것은 (내 식으로 말하자면) 커뮤니케이션의 환상, 커뮤니케이션의 형이상학(혹은 신학)이다(기호학에 대한 데리다의 핵심적인 비판은 기호학이 형이상학적인 커뮤니케이션 모델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언제나 결정가능한, 계산가능한 것의 테두리 안에 한정되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독백에 다름 아니다. 그에 대응하여 데리다가 끌어오고자 하는 것은 모든 종류의 결정불가능성, 계산불가능성으로서의 아포리아이다. 시간의 차원에서 그러한 아포리아에 대응하는 것이 (미래가 아닌) ‘도래’(그리고 ‘죽음’)이며, 윤리의 차원에서 그러한 아포리아에 대응하는 것이 (타인이 아닌) ‘타자’이다.
바로 이러한 ‘도래’와 ‘타자’, 그리고 ‘죽음’이 해체 이후에, 해체와 함께 오는 것이다(그는 ‘해체의 철학자’이면서 ‘도래의 철학자’이다). 해서, 해체는 테러리즘이나 가치론적 상대주의(혹은 무정부주의)와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삶의 근원적인 아포리아, 혹은 근원적인 미스터리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포리아/미스터리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존 카푸토의 데리다 연구서 제목은 <데리다의 기도와 눈물>이다. 데리다의 종교론은 그에게 영감을 얻고 있는 카푸토(J. D. Caputo)의 <종교에 대하여>(동문선)에 잘 정리돼 있다. 믿을 수 없는 역자의 번역이라 보증할 수는 없지만). 데리다의 윤리-정치학은 거기에 근거한다.
흔히 그의 종교론은 ‘종교 없는 종교’,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으로 요약되는데, 역시 같은 인터뷰에서 그가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 대목을 보자: “I call messianicity without messianism is a call, a promise of an independent future for what is to come, and which comes like every messiah in the shape of peace and justice, a promise independent of religion, that is to say universal.” 우리말로 옮기면, “내가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이라고 부르는 건 도래할 어떤 것으로서의 자유로운(=계산불가능한) 미래, 마치 모든 메시아가 그러했듯이 평화와 정의의 형태로 세상에 도래할 어떤 것에 대한 요청이며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그래서 보편적이라고 할 만한 약속입니다.”
조금 더 읽어보자: “My intent here is not anti-religious, it is not a matter of waging war on the religious messianisms properly speaking, that is to say Judaic, Christian, Islamic. But it is a matter of marking a place where these messianisms are exceeded by messianicity, that is to say by that waiting without waiting, without horizon for the event to come, the democracy to come with all its contradictions.” “여기서 나의 의도는 반-종교적인 게 아닙니다. 즉, 종교적 메시아주의라고 합당하게 말할 만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대해서 싸움을 걸자는 게 아닙니다. 대신에, 메시아성이 ‘기다림 없는 기다림’, 도래할 사건에 대한, 그 자체의 모든 모순들과 함께 도래할 민주주의에 대한 아무런 기대지평도 갖고 있지 않은 기다림이라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메시아주의들을 초과하는 지점을 표시(언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의 결론: “Messianicity without messianism, that is: independence in respect of religion in general. A faith without religion in some sort.”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이란, 종교 일반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가리킵니다. 종교 없는 신앙 같은 것이죠.”(우리 종교적 인간은 종교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데리다는 (배타적) 종교들을 공격하지만, 한편으론 ‘종교 없는 종교’ ‘종교 없는 신앙’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은 옹호한다(마치 진지하게 ‘고도를 기다리며’ 같지 않은가? 사실 한 대담에서 데리다는 자신이 베케트론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서 너무 ‘견적이 많이 나와서’란 이유를 댔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고진의 용어를 갖다 쓰자면, 데리다가 공격한 것은 ‘공동체의 종교’이고, 그가 옹호한 것은 보편종교로서의 ‘세계종교’이다. 쓰고 있는 용어들은 서로 달라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상통한다.
그런 맥락에서, 데리다가 언제나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고유한 것(the proper)이었다(고유성은 언제나 배타적이다). 그가 마르크스와 공유하는 것은 확정적인 소유/재산(property)에 대한 의문(혹은 적대감)이다. 소유/재산은 ‘내 것인 것’에 대한 관심과 집착에서 비롯되지만, 이미 제기한바 ‘도래’와 ‘타자’, ‘죽음’, 그리고 (악명 높은 ‘차연’의 효과로서의) ‘의미’는 모두가 ‘내 것이 아닌 것들’이며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 앞에서 자신을 무장해제하는 것, 자신의 고집과 관성과 편견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Deconstruction, 즉 해체-구축이다.
때문에, 디컨스트럭션은 단순히 텍스트에 대한 한 가지 독법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흔한 오해처럼 데리다가 “텍스트 바깥은 없다”라고 말할 때 그가 모종의 ‘텍스트주의’를 제창한 것은 아니다. ‘바깥이 없는 텍스트’란, 스피노자에게서 ‘세계’가 그러하듯이, ‘무한으로서의 텍스트’이다. 무한으로서의 텍스트(=세계) 바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윤리적, 정치적 결단을 함축한다. 이 결단은 계산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레닌-지젝의 ‘광기’를 동반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러한 결단의 사례로 떠올리는 것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즉 ‘리컨스트럭션(Reconstruction)’이다.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를 해체하고 그 바탕에서 새로운 사회주의를 재구축하고자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유토피아적 기획은 그가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파국에 직면하여 좌초하고 말았다. 그것이 1991년의 일이다. 데리다는 그 직전인 1990년, 그러니까 ‘페레스트로이카의 가을’에 모스크바를 방문한 바 있다. 그해 2-3월에 걸쳐 이루어진 이 여행의 결과로 발표한 것이 이다(모스크바 어딘가에 가면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언젠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책에서 이 영문 텍스트를 복사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전문인지 발췌본인지 알지 못하며(기억하지 못하며) 불어로 발표된 적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한다(*러시아어본이 가장 먼저 출간된 이후에 불어본이 나왔고 이후에 영역 텍스트가 출간됐다). 그것의 러시아어본은 <모스크바의 데리다: 여행의 해체>(1993)인데, 아직 책을 직접 구경하지는 못했다(*구입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복사본을 갖고 있다. 아래의 책이다).
이제 곧 이 철학자에 대한 ‘전기’도 나오겠지만(*작년에 제이슨 파월이 쓴 최초의 전기가 출간됐다), 나로선 데리다의 모스크바 여행이 90년대에 이루어질 그의 작업의 신호탄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1986년에 넬슨 만델라에 대한 텍스트를 발표한 바 있지만, 그의 관심이 소위 ‘정치적인 것’의 영역으로 보다 본격적으로 확장되는 것은 90년대에 들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죽음의 선물>은 1990년 12월, ‘선물의 윤리학(The Ethics of Gift)’을 주제로 개최된 학술회의를 계기로 작성되며, 바츨라프 하벨 등과 함께 <77 인권 헌장>을 공표한 혐의로 체포되어 심문(고문?)을 받던 중 뇌출혈로 사망한(1977. 3. 13) 체코의 철학자 얀 파토치카의 한 에세이를 분석하는 걸로 시작한다(그리고 키에르케고르 읽기로 넘어간다). 이어서 이듬해인 1991년에 발표하는 것이 <다른 곶: 오늘날의 유럽에 대한 성찰>이며(동문선에서 국역본이 나와 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1993), <우정의 정치학>(1994) 등을 연이어 출간한다(그러니 <모스크바의 데리다>를 찾아 읽어야겠다).
이러한 해체론의 정치학과 더불어 말년의 그의 저작목록을 채우고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아듀’에 대한 책들이다(조사(弔辭)들만 모아서 한 권의 책이 묶일 정도이다. 한데, 그의 조사는 누가 읽었는지/읽을 것인지?). 한편으로, 그는 ‘도래’할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착실하게 준비해온 셈이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건 오히려 우리쪽인 듯하다(내가 이런 식의 글밖에 쓰지 못하는 이유이다). ‘포스트-데리다’, ‘데리다 없는 철학의 시대’를 우리는 당분간 그렇게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데리다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의 시대).
데리다, 그는 가고 우리는 남았다. 이제 작별의 인사를 나누도록 하자. “데리다여, 안녕!” 아듀! A Dieu!(그는 진정 나의 우상이고 신이었다!) 그와 함께여서 행복했지만, 이제 그와 함께하지 않더라도 덜 행복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데리다 없는 데리다’가 대신 언제까지라도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짐작하건대, 행복하게도 나는 그의 책들을 미처 다 읽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데리다의 텍스트들을 다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텍스트들은 텍스트-무한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른 텍스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해서, ‘텍스트 바깥은 없다’. 그리고 거기엔 나대로 덧붙이자면, ‘자연사의 바깥은 없다’는 니체적 메시지가 반영돼 있다. 한 대담에서 얘기한 것이지만, 데리다는 내세(來世) 따위를 믿지 않았다. 그가 ‘죽음’에 대해서 그토록 숙고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해서, 사르트르의 죽음에 대한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자면, “그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나의 죽음이 우리를 다시 합쳐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 (제거 불가능한) ‘거리’를 나는 사랑한다(니체라면 ‘운명애’라고 불렀을 것이다. 신에게 결여돼 있는 것은 그 ‘운명애’이다). 어떠한 종교로도 위안 받을 수 없는 그 차이(差移)를!..
로쟈님의 서재에서 예전에 본 적이 있지만 옮겨오지 않다가 오늘 담비에 올라온 것을 보고 다시 읽고는 스크랩해둔다.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앨피, 2007)>말고도 <페미니즘과 정신분석(여이연, 2003)>에도 크리스테바의 이론을 맛볼 수 있는데 여간 재미있는게 아니다. 로쟈님의 글과는 조금 다른 초점을 두고 있지만..
학술저널 담비(07.07.25)
경계선을 신경쓰며 말하는 법에 대한 통찰 로쟈의 종횡書해 (2) 왜 크리스테바인가?
도서출판 앨피의 '루틀리지 크리티컬 씽커즈' 시리즈로 세 명의 여성 철학자가 한꺼번에 출간됐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주디스 버틀러, 시몬 드 보부아르가 그 세 명의 여성이고 이 시리즈를 긁어모으는 나로선 구색을 맞추기 위해 또 모두 주문을 했다(버틀러는 배송일이 달라서 조금 미뤄두었다).
그래서 어제 받아본 책이 노엘 맥아피의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시몬 드 보부아르 익숙한 타자>이다. 맥아피의 원서를 구할 수 있어서 <크리스테바>를 먼저 손에 들었고 서론격인 '왜 크리스테바인가?"를 읽었다. 예전에 '누가 크리스테바를 읽었는가?' 란 페이퍼를 쓰기도 했지만(관심이 있으신 분은 먼저 읽어보시길 바란다), 나름대로는 크리스테바 컬렉션을 갖추고 있을 만큼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라 바쁜 일들에도 불구하고 눈길이 가는 걸 말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내건 나의 타협안은 일단 이 서론만 읽어두는 것이다. 아래는 국역본의 표지로 쓰인 이미지.
"줄리아 크리스테바(1941- )는 우리시대에 가장 주목할 만한 사상가로 꼽힌다. 크리스테바는 '말하는 존재'가 구술문학과 기록문학, 정치와 국가적 정체성, 섹슈얼리티, 문화와 자연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별자리가 된다고 보는 극히 드믄 철학자이다."(19쪽)
'가장 주목할 만한'은 'most original'의 번역이다. 그리고 '말하는 존재'는 'speaking being'을 가리키는데, 원문에는 강조표시가 돼 있지 않지만 크리스테바의 키워드이다. 그녀의 관심대상은 '말하는 존재(speaking being)',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존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크리스테바는 문학과 정치, 섹슈얼리티, 정신분석 등 종횡무진이다. '말하는 존재'는 그 모든 것에 두루 걸치는 '불가사의한 접면(strange fold)'이어서이다.
"크리스테바의 통찰 속에서는 경계의 어느 쪽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 않을 수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변화의 상태에 있는 것이고, 다양한 힘들의 포위 아래 놓인다는 것이다. 그녀가 하는 대부분의 작업이 정통 정신분석학자가 치료하는 '경계성' 환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경계성은 불가리아 출신의 이민자/망명자인 크리스테바의 정체성이기도 하다(이 때문에 국역본에는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란 타이틀이 붙여졌을 터이다). 그녀는 그러한 경계성을 일반화하며 그리하여 "크리스테바의 작업은 소위 주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늘 빈약한 성취에 불과한지, 그것이 왜 결코 완결될 수 없는 역동적 과정인지를 보여준다."(20쪽)
이때 '주체성(subjectivity)'은 '자아(self)'와 구별되어야 한다. "'자아'는 자신의 의도를 완벽하게 지각하고 세계 내의 자율적인 존재로서 완전하게 행동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이성과 지적 능력의 인도를 받는 존재를 지칭할 때 사용돼 온 용어이다." 흔히 '내가 말야'라고 말할 때의 그 '나'를 가리킨다. "관습적인 관점에서 '자아'는 언어를 생각의 전달 도구로 사용한다. 자아는 자기가 의미하는 바를 말하고, 자기가 말하는 바를 의도한다." 곧 자아는 주인으로서의 '나'이다.
이러한 '자아'의 장소를 '주체'로 표시하는 것은 관점의 일대전환을 요구한다. "주체들은 자기를 형성하는 모든 현상을 완벽하게 지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들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그들 자신의 것, 즉 '무의식'이라 이름 붙여진 차원이 존재하기까지 한다." 즉, '나도 나를 모르겠어'라고 말할 때의 목적어 '나'가 주체이다. 그 무의식으로서의 '나'가 표시하는 것은 "의식에 나타나지 않는 욕망과 긴장, 에너지, 억압 등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주체성의 경험은 '자아'로서 인식되는 경험이 아니라, 주체 자신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을 소유하는 경험이다."
"크리스테바는 이 같은 주체성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는 철학적 전통의 한 갈래를 차지한다." 그리고 "1960년대와 70년대에 크리스테바는 철학계와 문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 '탈구조주의' 운동을 예고한 선도적 사상가들 중 한 명이다."(21쪽) 이것은 그녀 자신에 대한 평가와도 일치한다. "나는 탈구조주의의 한 유형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탠 사람들 중 한 명이다."(29쪽) 그 중에서도 크리스테바를 도드라지게 하는 점은, 곧 '왜 크리스테바인가?'란 물음에 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녀가 언어와 문화 사이의 접면에서 나타나는 '말하는 존재'를 언어가 어떻게 생산하는지를 이해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로 제안했다는 점"이다.
해서, "누군가 정신분석 이론과 종교학, 아방가르드 문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널리 펼쳐져 있는 분야의 통찰을 통합하고자 한다면, 크리스테바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꼽힐 것이다."(23쪽)
이러한 평가에 이어지는 것은 크리스테바의 간략한 전기이다. 알려진 대로 그녀는 1941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났다. 의대를 나오고서 교회의 회계사로 일한 그녀의 아버지는 공산당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지 않았고 따라서 어린 줄리아는 공산당원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도미니크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게 된다(그러니까 크리스테바는 수녀들로부터 불어를 마스터하게 된다). 이때 (놀라운 일이지만) 그녀는 러시아 형식주의에 대해 알게 된다. 특히 "그녀는 당시 서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탁월한 사회/문학 철학자인 동유럽의 미하일 바흐친의 작업도 접했다."(러시아 사상가 바흐친을 '동유럽의 사상가'라고 한 것은 특이하다. 다른 뉘앙스가 있는 것인가?)
대학에서 프랑스 누보로망에 대한 박사학위논문을 쓰던 중에 크리스테바는 프랑스 정부초청 장학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마침 공산주의자 학장이 모스크바에 가 있던 1965년 겨울 그녀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지도교수가 그녀를 프랑스 대사관으로 데려다 주고 거기서 그녀는 장학금 수혜를 위한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그리고는 막바로 불가리아를 떠나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장학금은 1월부터 받게 돼 있었지만 학장이 모스크바에서 돌아올 경우 유학길을 가로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단돈 5달러만 들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파리에 도착한다(그리고 가방에는 달랑 바흐친의 책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소위 크리스테바의 전설이다. 그야말로 '사무라이' 아닌가?
다행히도 그녀는 우연히 불가리아인 저널리스트를 만나 장학금이 올 때까지 같이 지내게 된다. 그리곤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지식인들의 세대에 합류하게 된다. 파리 고등실업연구원(파리 고등 사회과학연구원의 전신인데, Pratique를 '실업'이라고 옮기나?)에서 뤼시앵 골드만(1913-1970)과 만나게 되는바 "루마니아 출신의 망명 동료이자 문학이론가인 뤼시앵 골드만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크리스테바를 도와주었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그것은 조국에서 추방당한 사람들만이 줄 수 있는 그런 정류의 도움이었다."(26쪽) 이런 자전적인 내용은 크리스테바의 소설 <사무라이들>에서도 자세히 그려진다(한때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었던 골드만의 책은 현재 한권도 구할 수 없는 듯하다). 골드만은 소설의 기원에 관한 그녀의 학위논문을 지도하게 되며 또한 그녀를 롤랑 바르트(1915-1980)의 세미나에 소개한다. 그녀는 롤랑 바르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롤랑 바르트의 가르침은, 내가 환원적이고 호소력 있다고 느낀 형식주의를 이해하는 그 능력 때문에 나를 매혹시켰다."
이 대목은 오역이다. 원문은 "the teaching of Roland Barthes attracted me because of its capacity to make formalism, which I had found reductive, extreamly appealing."(5쪽)이다. "내가 형식주의를 호소력 있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바르트가 형식주의를 '대단히 매력적인(extreamly appealing)'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 다시 옮기면, "롤랑 바르트의 강의는 내가 환원적이라고 생각했던 형식주의를 대단히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그 능력 때문에 나를 매혹시켰다." 1960년대 중반의 바르트라면 구조주의자로서 전성기를 구가할 때이다.
이어서 크리스테바는 파리 지성계의 모든 인물들과 만나게 된다. 레비 스트로스부터 에밀 방브니스트, 자크 라캉, 미셀 푸코 등등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구조주의자들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그녀는 "현재 서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람, 즉 미하일 바흐친과 상호텍스트성, 대화, 소설의 카니발화 등과 같은 개념들을 소개"하며 이것이 곧바로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다(그녀의 이 소논문에 대해서는 '누가 크리스테바를 읽었는가?'에서 다루었다). <세미오티케>에서 그녀는 이렇게 기술했다.
"'학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바흐친은 정태적인 텍스트 분석을 문학적 구조가 단지 '존재하는' 모델이 아닌, 또 다른 구조와 관련하여 생성되는 모델로 대체한 최초의 사람이다. 구조주의에 역동적인 차원을 부여한 것은 '초점'(고정된 의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텍스트 표층들의 교차', 말하자면 저자와 수신자(또는 인물) 그리고 동시대이거나 이전의 문화적 맥락의 여러 저술들 사이의 대화를 의미하는 '문학적 언어'라는 개념이다."(27쪽)
영역본 <언어 속의 욕망(Desire in Language)>(1980)으로부터 인용된 이 대목은 <세미오티케>(동문선, 2005)와 <바흐친과 문학이론>(문학과지성사, 1995)에 각각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한데, <세미오티케>를 당장 갖고 있지 않아서(연구실 공동서가에 꽂아놓았다가 잠정 분실했다) 어떻게 번역돼 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point'를 '초점'이라고 한 것은 오역이다. 그건 말 그대로 '점'이란 뜻이다. 바흐친은 '문학적 언어(literary word)'를 고정된 의미를 갖는 '점'이 아니라 복수적 텍스트의 '교차면'으로 본다는 것이다('이 '문학적 언어'는 아마도 러시아어 'slovo'의 번역어이며, 우리말로는 '말', '담론' 등으로도 번역돼 있다).
여하튼 크리스테바는 바흐친을 서구 이론/지성계에 최초로 소개한 공로가 있다. 그리고 "바흐친에 대한 그녀의 설명과 확장이 널리 인정받게 되면서, 크리스테바는 바로 미국에서 강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안받는다."(28쪽) 이 대목은 처음 알게 된 것인데, 그녀는 그 제안을 당시 미국의 베트남전을 이유로 거절한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의 전위적 문학그룹이었던 <텔켈>지 편집위원으로 가세하게 되며 그 멤버 중의 하나였던 필립 솔레르(솔레르스; 1936- )와 1975년에 결혼한다(작가이기도 한 솔레르스의 작품들은 국내에 몇 권 소개돼 있다. <여자들>과 <모차르트 평전>을 포함하여).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 아래 사진은 만리장성에서의 솔레르스와 크리스테바.
어쨌든 1960년대 중반의 파리는 지적으로 생동감과 활력이 넘쳤고 크리스테바에게도 '황홀한 시기'였다. 그녀는 그 시대를 호흡하며 성장하며 당시의 유행사조이던 구조주의를 탈구조주의로 변형시킨다. "탈구조주의는 그것이 역사, 시간, 과정, 변화, 사건 등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새로웠다."(29쪽)고 지적되는데, 단순하게 말하면 구조주의에 시간성/역사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테바와 다른 탈구조주의자들은 앞서 소개한 '자아' 개념을 버리고 역사, 언어, 기타 결정력의 변화에 종속된 '말하는 존재' 개념을 제안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가 내놓은 '가장 중요한 저서'(이면서 가장 어려운 저서)는 <시적 언어의 혁명>(동문선, 2000)이다. 말라르메와 로트레아몽 등과 같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시인들을 다룬 그녀의 국가박사 학위논문이기도 한데, 영역본과 국역본 이 방대한 저작의 모두 부분 번역이다. 이 책에서 크리스테바는 언어적 혁명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모색한다.
1968년 5월 혁명의 좌절 이후 텔켈 그룹과 크리스테바는 중국의 마오쩌둥에 경도된다. 소비에트식 사회주의에 환멸을 느낀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들이 대거 마오이스트가 된 것인데, 이들은 1974년 직접 3주간 중국을 여행한다. 그리고는 '또 다른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를 발견하고서 당혹감과 환멸을 느낀다. "크리스테바 일행은 중국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천상의 사회주의 대신에 크리스테바가 불가리에서 이미 겪은 바 있는 소련식 공산주의의 종말 징후를 발견했다. 중국 여행은 크리스테바가 나중에 말하는 대로 '정치와의 결별'을 예정한다."(32쪽) '불가리'는 '불가리아'의 오타이다.
이 중국 여행의 결과로 나온 것이 "그녀가 나중에 스스로 '서투른 책'이라고 일컬은 <그림자 연극(Des Chinoises)>(1974)"이다. 한데, 이 책은 영어로는 <중국 여성에 대하여(About Chinese Women)>라고 부분 번역된 책이고 또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왜 '그림자 연극'이라고 옮겨졌는지 모르겠다(그런 중의성을 갖는 것인가?).
아무튼 맥아피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이 중국이 크리스테바에게 갖는 의미를 깨우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중국은 크리스테바에게 그녀가 마주칠 필요가 있었던 내부 영토의 섬광을 제공한다. 파리로 돌아온 뒤 그녀는 '우리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유일한 대륙'을 독학하는 길로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기 시작한다."(32쪽)
"1960년대와 70년대 저술이 기호학과 언어에 초점을 맞췄다면, 1980년대의 텍스트들은 말하는 주체의 정신분석학적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게 크리스테바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인데,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중국(=무의식)이고 중국 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크리스테바의 저술은 두 가지의 새로운 전환"을 선보이는데, 일련의 소설들이 그 하나이고 정치학 에세이들이 다른 하나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소설들로는 <사무라이>(1992)와 <노인과 늑대들>(1994), <포세시옹, 소유라는 악마>(1996) 등이 있고, 이 중 두 권은 우리말로도 번역돼 있다. 다만 아직 <국가주의 없는 국가> 등 후자에 속하는 책들이 소개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크리스테바는 현재 파리 7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정신분석의로도 활동하고 있고, 콜롬비아(컬럼비아)대학과 토론토대학의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여전히 많은 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책은 게르만계(독일계) 미국인 이론가(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 프랑스 작가 콜레트의 저술과 생애를 다룬 삼부작이다.
이 중 클라인을 다룬 책의 국역본 <정신병, 모친살해, 그리고 창조성: 멜라니 클라인>(아난케, 2006)은 근간 예정이다, 가 아니라 작년에 출간됐다. 알라딘에 없을 뿐이다...
07. 07. 07.
P.S. 크리스테바의 저작을 소개하고 있는 '크리스테바의 모든 것'이란 장에서 내가 입문서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로스 구베르만이 편집한 <줄리아 크리스테바 인터뷰>(1996)이다(언어학에 대한 동영상 인터뷰 http://www.youtube.com/watch?v=IXLUsoEDYPw도 한번 구경해보시길. 영어 자막이 붙어 있다).
"20년에 걸쳐 이루어진 24개의 상이한 인터뷰들로 구성된 책"으로서 "크리스테바의 사유를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입문서이다. 대화체 어조와 문답 구성 덕분에 그녀의 저술 이면에 있는 사유를 쉽고 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책의 중심부에는 크리스테바의 유년기부터 1960년대 파리 체류기, 그리고 유럽의 중견 문명 비평가이자 분석가로서 활동하는 원숙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20여 장의 크리스테바 사진이 실린 포토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리고 맥아피의 책보다 조금 늦게 나온 책으로 추천할 만한 것은 역시나 크리스테바 전문가인 존 레흐트와 마리아 마르가로니 공저의 <줄리아 크리스테바: 살아있는 이론>(2004). 'Live Theory' 시리즈의 한권이며 존 레흐트는 <한권으로 보는 현대사상가 50>(현실문화연구)의 저자이다...
P.S.3. 크리스테바의 신작소설도 오랜만에 번역돼 나왔다. <비잔틴 살인사건>(소담, 2007). "크리스테바의 장편소설 ‘비잔틴 살인사건’은 팩션과 판타지가 결합된 작품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가상의 도시 산타바르바라를 무대로 전개되는 역사추리소설인 것이다. 마피아와 사이비종교단체가 지배하는 도시 산타바르바라는 현대 서구 문명의 어두운 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음성이 중첩된 형이상학적 탐정소설이란 평가를 받았다. 21세기 현대 문명의 잔혹한 이면을 비판하면서 느닷없이 십자군 전쟁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대입시킨다. 제1차 십자군 전쟁의 비밀을 연구하는 세바스찬 교수가 핵심적 인물로 등장한다. 1000년 전 비잔틴제국의 역사도 되돌아보면서 작가는 자신의 모국인 불가리아의 역사를 탐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이 소설을 통해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조선일보)라는 소개기사를 참조해볼 수 있겠다. 크리스테바 자신은 일종의 '안티-다빈치코드'라고 불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