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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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5
독서노트 / 2010/09/05 23:47
달에서 흘러 내리는 빛은 한낮의 우리 삶이 벌어지는 무대를 비추는 것이 아니다. 달빛이 의심스럽게 빛을 던지는 구역은 지구가 아니라 지구의 반대편, 혹은 지구의 부속지인 것처럼 보인다. 그곳은 더 이상 달이라는 위성을 가진 지구가 아니다. 스스로 달의 위성으로 변한 지구이다. 그 땅의 넓은 가슴은ㅡ그 가슴이 호흡할 시간이었는데ㅡ움직이지 않았다. 마침내 삼라만상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대낮에 빼앗긴 긴 베일을 다시 착용할 수 있게 된다. 나무 블라인드 틈새로 내게 밀려온 창백한 빛을 보면서 나는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불안 때문에 나는 잠을 설쳤다. 들락날락하면서 달은 내 잠을 토막 내버렸기 때문이다. 달이 방 한가운데 들어와 있을 때 잠에서 깨면, 나는 그 방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 방은 달 이외에는 아무도 거기에 들여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벤야민, <달>, <<베를린의 유년시절>> 중.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풍부하게(다른 의미를, 다른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낳는다는 의미에서) '달빛'에 대해서 쓸 수 있는 걸까. 번역자의 번역에 조금 더 유려했다면 좋았겠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한다. 조금 이질적인 느낌의 글이 주는 이국성도 매력일 수 있으니까. 오늘도 그의 글쓰기에 대한 질투는 거세질 뿐이다. 벤야민이 유년시절을 보냈을 저 방도 몹시 탐난다.

습하거나 건조한 달빛, 유혹하거나 관조하거나 물리치는 달빛. 그 어느 것조차도, 언제 어느때라도 모두 매력적이다. 서울은 광해(光害)가 심하기 때문에, 달빛이 강렬할 때 조차도 빛을 느끼기가 너무 어렵다. 그러나 가끔은, 오래된 캐러멜 같은 가로등 빛을 뚫고 달빛이 몸에 내려 앉을 때가 있다. 그럴때면 왜 늑대인간(werewolf)이라는 괴물이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달빛을 뜻하는 '문샤인(moonshine)'은 '밀수입한 술' 혹은 '밀조한 술'이라는 의미도 있다. 엄격한 금주령에 굴하지 않고 밤에 술을 몰래 빚어 달 밝은 밤에 들이켰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애잔하면서도 또 즐겁다. 빛이 세상을 지배하기 이전, 혹은 빛이 세상을 지배해야만 하는 시대 이전에는 밤이 얼마나 길고 달빛이 밝았을까. 

달빛에 대해서는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아주 어릴 적이었는데.. 나는 뒷산에 동네 또래들이랑 쥐불놀이를 하러 올라갔었다. 그날은 정월대보름이었다. 마침 뒷산엔 교회를 짓고 있었고 우리는 쥐불놀이를 하다 말고 춥다는 이유로 폐자재로 불을 때며 쉬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갑자기 담력테스트를 하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뒷산 공동묘지로 올라갔다. 그날은 달빛이 너무나 환해서 불을 켜고 올라갈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한 명이 없어졌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묘지에 올라가서 이리 저리 살피는데- 없어졌던 한 명이 갑자기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혼비백산. 정작 우리가 모두 떠난 자리에 혼자 남은 그 한 명도 덩달아 혼비백산. 그렇게 숨 차오르게 뛰어 산을 내려왔을 때 내 눈 앞에 그 환한 달이 들어왔다. 크고 둥글었다. 세상은 온통 은은하고 차가운 은빛이었다. 그러나 왠지 따뜻한 느낌이었다.

달빛을 한껏 쬐고 싶은 밤이다. 왜 일광욕이라는 말밖에 없는 것이냐. 내일은 월요일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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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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