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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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09 9월 9일
  2. 2010/03/19 외모를 어찌 말해야할지
조각들 / 2011/09/09 12:24
모든 단어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어들은 서로 불화하고 선택적 친화력을 가지며, 따라서 그것들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를 그린다. 혹은 저마다의 '진영(陣營)'을 뽐낸다. 그것들은 특정한 분위기를 풍겨내며, 어떤 것들에는 인력(引力)을, 어떤 것들에는 척력(斥力)을 내뿜는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서로의 자장 속에 존재한다. 포함적(inclusive)이면서 동시에 배제적(exclusive)이다. 그리고 요즘 나는 그것만이 내 공부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70%는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느끼고 있다. 어딘가에는 '진리(Truth)'가 있을 것이라는 기획을 포기한 자리에 여전히 남아서 조금씩 썩어가던 미련은, 적어도 작은 '진실(truths)'들은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미련마저 잘라낸 자리에서 움트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단어라는 그런 희망과 신념 뿐이다.

이럴 때 단어들은 결코 단순한 '수사'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가장 확실하면서도 물질적인, 특정한 장소와 주체(의 입)을 갖는, 그리고 가장 독특(singular)하면서도 또한 고도로 정신적인 그 무엇일 것이다. 예컨대 네가 뱉어낸 "그리움"이라는 단어와 다른 네가 뱉어낸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전혀 다른 무게와 부피를 가지고 전달된다. 따라서 단어들은 단순히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에 새겨진다고 보는 것이 옳다. 또한 우리는 어떤 단어(의 우주)에 참여함으로써,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다르게 지각하고 인식하고 사유한다. 만약 우리가 저마다의 사전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인지/인정하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저마다가 편찬하고 있는 사전의 짜임새와 어휘풀이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너의 입에서 전달된 단어들은 네가 쓰고 있는, 또한 네가 살아가면서 편찬하고 있는 사전의 일부이다. 따라서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수사'가 아니다.

물론 논리의 확실성, 명료성만을 글쓰기의 규범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수사는 거치장스럽거나 화려할 뿐인 허망한 장식품일 것이다. 그들은 수사를 논리를 왜곡하거나 논리의 불명확함을 술수를 부려 극복하려는, '메이크업' 같은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어들은, 벤야민의 말을 바꾸어 표현하자면, 스스로를 '통해서' 어떤 것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어들은 스스로의 '속에서(안에서)' <어떤 것>을 전달한다. 그 <어떤 것>은 물론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며, 우리를 우리로 가능하게 하는, 느낌과 정서와 감정의 복합체이며 우리의 삶과 미래를 향한 지향 그 자체를 담고 있다(나는 아직까지 그것을 <어떤 것>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따라서 그 <어떤 것>은 단어와 불가분이(어야 한)다. <어떤 것>의 본질이 따로 있고, 단어(언어)는 단순히 그것을 전달하는 한갖 매개인 것은 아니다. 단어는 어떤 것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실현한다. 다시 말해, 내가 쓰는 단어는 나와 너의 관계를 표현하고 동시에 실현한다.


덧) 대학원에 와서 내 글에 대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ㅡ아마도 비난일 것인데ㅡ"화려하다"였다. 나는 내 글이 한번도 화려하다 느끼지 못했다. 나는 의도적으로 멋있게 쓰려고, 있어보이게 쓰려고 한적이 없다. 나는 자랑하려고 쓰지 않는다. 또한 포장하려고 쓰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자랑할만한 것도 나는 가지고 있지 않고, 포장하고 싶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추상적인 독자 K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내 글은 K와 연결되는 방식이다. 혹은 K와 공존하는 상상적인 소세계를 창조하고 그곳에 거주하면서 그곳으로 향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나는 내가 K에게 표현하고자 했던 것, 그것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들더러 "화려하다"라고 비난한다면 나는 당신과 어쩌면 전연 다른 사람일수도 있을 것이며 당신은 절대로 K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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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조각들 / 2010/03/19 00:06

말이 나오는 맥락이야 늘 다르지만, 어떤 사람을 불가피하게 외모로 설명해야 할 때가 언제나 있다. 정치적 올바름 같은 건 별로 상관없이 말이다. 그럴 때면 아직도 언제나 비끗해버린다. 아직도 예쁘다, 아름답다, 잘생겼다, 섹시하다, 못생겼다, 추하다, 키가 크다 하는 식으로 외모를 직접 묘사하는 단어를 잘 쓰지 못하겠다. 그래서 아주 노골적으로 "예뻐?", 혹은 "잘 생겼어?" 라고 물어보거나, 마치 뭔가를 아는 듯 "아, 그 사람 예쁘지/잘 생겼지"라고 말하면... 정말 답도 안 나온다. 아직까지 그 말에 전혀 호응을 할 수가 없다. 그럼 서둘러 에둘러 표현할 뿐; 음.. 예컨대 이런 식으로 "(삐질삐질) 어... 어떤 기준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사실 이 단어들은 어느 수준의 '객관'을 가정한다. 즉 이 단어들은 사회적으로/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어떤 (성애적인) 외모 특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주관적 판단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판단에 가깝다. "예뻐?", "잘 생겼어?" 따위의 질문이나 "예쁘다", "잘 생겼다"라는 진술은 잠재적으로 yes나 no로 판단할 것을 요구하게 되고, 주관식 판단은 이단과 탈주로 간주된다. 이 말에 yes, no 따위로 판단하는 건 그 말 안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외모에 대한 이성애 사회의 규범을 일단 승인하고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들을 쓸 때 "내가 볼 땐..."이나 "내 기준에서는" 같은 단서를 붙인다 해도 크게 다를 바 없으며, 그 뒤에 덧붙이는 설명도 단지 변명처럼 들리게 될 뿐이다. (흔히 쓰이는 "귀엽다"는 말은 노골적으로 권력을 드러내는 말이니 사람에 대해서는 더더욱 쓰기 어렵다)

그에 비해 사람의 외모를 표현할 때 "매력적이다", 아니면 좀 고풍스럽게 말하자면 "곱다", 하는 식의 표현은 조금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 같다. 이 단어들은 앞서 언급한 단어군에 비해 '이차적'인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해 이 단어들은 직접 외모에 호소하기 보다는, 차라리 어떤 모종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한 때 유행했던 형용사 "훈훈한"이 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단어는 외모로는 '2급'이지만 친근감 있다는 뉘앙스로 쓰였다). 그것은 주관적 체험을 암시한다. 그 말은 다만 내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전체 호감도를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외모에 대한 사회의 규범을 비판하지는 않아도 슬며시 피해가는 효과가 있다. 쓰기에 큰 무리가 없고 안전하다는 얘기다. 시각보다는 청각과 후각이 더 민감한 나로서는 선택하기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단, 누구도 "그 사람 매력적이야?" 같은 질문을 하거나 "그 사람 되게 매력적이더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게 문제; 또 많은 맥락에서 "매력적"이라는 말은 외모에 관한 말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어떤 지적/감성적 능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쓰인다. 그러니 이제는 고어(古語) 내지는 사어(死語) 느낌까지 주는 "곱다"는 단어는 말할 것도 없다(백석의 시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에 나오는 표현에 꽂힌 탓에 퍽 좋아져 버린 단어인데...). 그러니까 제발 내게 자꾸 묻지 말라고 ㅠㅠ 난 잘 모르겠다고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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