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 단어들은 결코 단순한 '수사'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가장 확실하면서도 물질적인, 특정한 장소와 주체(의 입)을 갖는, 그리고 가장 독특(singular)하면서도 또한 고도로 정신적인 그 무엇일 것이다. 예컨대 네가 뱉어낸 "그리움"이라는 단어와 다른 네가 뱉어낸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전혀 다른 무게와 부피를 가지고 전달된다. 따라서 단어들은 단순히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에 새겨진다고 보는 것이 옳다. 또한 우리는 어떤 단어(의 우주)에 참여함으로써,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다르게 지각하고 인식하고 사유한다. 만약 우리가 저마다의 사전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인지/인정하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저마다가 편찬하고 있는 사전의 짜임새와 어휘풀이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너의 입에서 전달된 단어들은 네가 쓰고 있는, 또한 네가 살아가면서 편찬하고 있는 사전의 일부이다. 따라서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수사'가 아니다.
물론 논리의 확실성, 명료성만을 글쓰기의 규범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수사는 거치장스럽거나 화려할 뿐인 허망한 장식품일 것이다. 그들은 수사를 논리를 왜곡하거나 논리의 불명확함을 술수를 부려 극복하려는, '메이크업' 같은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어들은, 벤야민의 말을 바꾸어 표현하자면, 스스로를 '통해서' 어떤 것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어들은 스스로의 '속에서(안에서)' <어떤 것>을 전달한다. 그 <어떤 것>은 물론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며, 우리를 우리로 가능하게 하는, 느낌과 정서와 감정의 복합체이며 우리의 삶과 미래를 향한 지향 그 자체를 담고 있다(나는 아직까지 그것을 <어떤 것>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따라서 그 <어떤 것>은 단어와 불가분이(어야 한)다. <어떤 것>의 본질이 따로 있고, 단어(언어)는 단순히 그것을 전달하는 한갖 매개인 것은 아니다. 단어는 어떤 것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실현한다. 다시 말해, 내가 쓰는 단어는 나와 너의 관계를 표현하고 동시에 실현한다.
덧) 대학원에 와서 내 글에 대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ㅡ아마도 비난일 것인데ㅡ"화려하다"였다. 나는 내 글이 한번도 화려하다 느끼지 못했다. 나는 의도적으로 멋있게 쓰려고, 있어보이게 쓰려고 한적이 없다. 나는 자랑하려고 쓰지 않는다. 또한 포장하려고 쓰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자랑할만한 것도 나는 가지고 있지 않고, 포장하고 싶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추상적인 독자 K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내 글은 K와 연결되는 방식이다. 혹은 K와 공존하는 상상적인 소세계를 창조하고 그곳에 거주하면서 그곳으로 향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나는 내가 K에게 표현하고자 했던 것, 그것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들더러 "화려하다"라고 비난한다면 나는 당신과 어쩌면 전연 다른 사람일수도 있을 것이며 당신은 절대로 K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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