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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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7 3월 17일
일기 / 2010/03/17 21:53
3월의 어느 저녁엔 눈이 많이 내렸고, 나는 여느 때처럼 우산을 챙기지 않고 걸어 나갔다. 어둠에 젖은 시골 중심가에는 여느 때처럼 사람들이 없었고,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 몇 대만이 젖은 마찰음을 내며 스쳐갈 뿐이었다. 가로등 빛은 밝았으되 거리 전체를 밝힌 것은 아니었다. 몇 안 되는 상점의 백열등 조명은 거리의 물기 어린 적막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바람은 다소 강하게 불었고, 또 내쪽을 향해 불고 있던 탓에 많은 눈송이들이 내 점퍼에, 비니에, 가방에 부딪혀 내려 앉았다. 마침 후드티를 입고 나간 터라 목은 훤히 드러나 있었고, 목에 직접 닿은 눈송이들은 쉽게 사그라졌다. 그리고 당연한 물리 작용으로 눈은 몸에서 온기를 앗아갔다. 추웠다. 그 뿐이었다. 오로지 그 뿐이었다. 몸도 마음도, 오직 날씨가 춥다는 감각적 사실에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으아, 춥다.

어느 덧 나도 왠만한 것엔 일희일비하지 않을 정도의 기억과 경험이 쌓이게 되었다. 왠만한 것엔 놀라지 않고, 왠만한 것엔 실망하지 않고, 왠만한 것에는 자극받지 않고, 왠만한 것은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게 되었다. 무언가에 쉽게 매혹되기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고, 그 탓에 더 조심스러워졌고, 더 많은 걸 의심하게 되었다. 관계에 기대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이제는 차라리 모든 걸 걸어야 하는 모험이 되어버렸다. 물론 모든 모험이 그러하듯, 그 안에서 말은 언제나 빗나가고 행동은 실패하지만, 아직은 끝나려면 멀었고 결과도 예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 모험은 이제 스릴 넘치는 도전이라기보다는, 때로는 실패한 단어들 위에 쌓인 기억과 감정의 빚더미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애처롭게 진력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전자냐 후자냐 하는 것도 내 결정의 몫이라곤 전연 할 수 없다.

날씨는 계속 추웠고, 나는 여전히 그 감각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우산을 쓰지 않고 혼자 눈을 맞는 일은 없을 것이다.




눈사람님 덕에 알게된 곡. 이 곡이 연주되었다는 입센의 연극을 꼭 보고 싶은데..
아쉬운대로 이번 주말엔 연극 보러가기로 했다. 입센의 <인형의 집>.
지금 내가 바라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의 연극인데다가, 각색을 좀 했다고는 하지만.. 뭐.

난 언젠간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길게 여행할거다. 기분 좋으면 아이슬란드도 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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