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카테고리

전체보기 (484)
일기 (198)
조각들 (74)
독서노트 (79)
스크랩 (57)
영화 (44)
음악 (0)
문학 (17)
번역 (14)
(0)
기타 (1)
미공개 (0)

'김형경'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7/05 담배를 처음 피운 날
  2. 2009/03/15 나쁘지 않은 일상 (2)
독서노트 / 2009/07/05 23:59

사실 담배에 불을 붙일 때까지만 해도 아주 많은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목이 쓰라리고 기침이 나오고 눈이 매워지면서 눈물, 콧물이 쏟아지고……. 그런 부작용들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담배의 첫 모금을 빨아들였을 때 오래 전부터 담배를 피워온 사람처럼 담배연기가 쑤욱 몸 안으로 들어왔다. 순하고 부드럽게,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그때 많이 놀랐을 것이다. 이렇게 쉽다니, 이렇게 별거 아니었다니……. 마음에서 어떤 벽 하나가 툭 소리를 내며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편견과 관습과 자아의 작은 벽이.

김형경, <사람풍경>, pp. 129-30


내가 담배를 처음 피웠던게 언제였더라. 2005년 2월의 어느날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04학번이던 나는 '첫 후배'를 맞이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새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준비를 하다 결국 새터 D-Day가 되었고 나는 새벽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대감' 때문은 아니었고 단지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이었다. 새터 준비하는 과/반 사람들은 <올리브>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고 나는 잠을 자고 싶었기에 짜증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와중에 여차저차 하여 나는 갑작스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맡아 하게 되었다. 역사 관련 교양 프로그램이었던가. 자의 반 타의 반 이었을 것이다. 그때 시간은 새벽 3시 경. 9시~10시면 학교에서 출발이었는데.

물론 나는 그 일을 맡은게 싫지는 않았다. 나는 성격과 달리 데드라인이 코 앞에 닥친 급박한 상황을 즐겨하는 편이다. 내 성품은 그걸 싫어라 하는 것은 물론이오, 그런 방식이 내 기질과 맞아 떨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가끔은 뭐 어떤가. 사실 그런 식으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기분 좋게 투덜거릴 수 있는 것도 어쩌면 특권일 수 있으므로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 나 진짜 바빠. 갑자기 일이 커졌단 말이지. 아 진짜 죽을 것 같애 ㅠㅠ" 이런 식으로. 물론 그런 투정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지만.

하지만 그 때, 모두가 피곤하고 잠을 자고 싶어했던 그 때에 내 투정을 들어줄 사람은 당연히 어디에도 없었다. 그건 아침이나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럴 땐 그냥 혼자 있는게 낫다. 하여 나는 <올리브>에서 먼저 나와 자취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가는 길은 5분 남짓. 어쨌거나 사위는 지나칠 정도로 평온하고 조용했고 그래서 나는 좀 외로움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재목은 아니었고 물론 지금도 아니다.

그래서 자취방 건물 앞에 도착했지만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좀 더 걸었다. 잠시 뒤에 자취생 생활용품과 필수품의 만신전, <패밀리마트>의 초록 간판이 눈에 확, 하니 들어왔다. 한겨울 새벽, '사연 있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맥주를 사 마시면 왠지 간지가 흐르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편의점엘 들어갔고, 잠시 뒤에 내 손에는 맥주 대신 시중에 깔린지 얼마 안 된 담배인 "더 원"과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아마 왠지 '맥주보단 담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정확히 위에 인용한 문단대로 일을 치렀다.

어렸을 때 아빠 근처에서 희미하게 풍기는 담배 냄새를 싫어했고, 집 수리를 하러 온 아저씨들이 며칠 동안 머물며 뿜었던 담배 연기도 싫어했고, 담배를 소유한 것이 무슨 훈장이라도 되는 것 마냥 자랑스러워 하는 초/중등학교 때의 아이들을 싫어했었던 내가, 내가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 그것도 아주 부드럽~게. 술은 마셔도 담배는 안 해! 라고 다짐하고 다짐했던 과거는 단지 과거가 되었다. 꼭 담배가 나를 위해, 바로 이 순간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니, 드디어 내가 만나야 할 것을 만났다는 느낌이었다. 담배소명설.

이상하게도 그 해의 봄엔 과/반에 유달리 흡연 인구가 많았더랬다. 과/반에서만 스물 몇 명이었던가로 기억한다. 2004년엔 담배 안 피우는게 자랑이었던 과/반이었는데. 04학번 동기 중 딱 1명을 제외하곤 모두 비흡연자였는데. 그 해는 참 이상했긔…. 참으로 이상했긔…….

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09/03/15 18:19

1. 과히 나쁘지 않다. 끄덕 끄덕

-

2. 잠깐 동안 했던 임고 준비를 또 접어두고(ㅋㅋ;;) 그냥 쉬자는 마음으로, 이것 저것 가능성들을 재점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좀 더 나한테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그리고 너무 초조해 하지 않기로 했다. 삶의 불확실성, 그로 인한 불안, 불안 끝의 절망과 우울증, 긴 우울을 헤치고 나온 뒤의 허탈한 해방감과 평온함, 그 모든 것들을 다시 한 번 제대로 껴안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어차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임고 준비로 '도피'한다고 하여 뭐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또 뭐든 이상적인 것(the ideal)의 잣대로 사물을 대하지 않으면 성미가 풀리지 않는 내가, 설령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던 교사가 된다고 해도 5년 이상 버틸리 만무하니까. 무엇보다 교육학은 물론이고 영어교육론 등등도 내 식성에 안 맞으니까. 아아.. 임고 준비하며 들여다 보는 책들의 내용 중 흥미가 가는 분야가 있다면 화용론(pragmatics)이나 담화 분석(discourse analysis) 정도가 될텐데(좀 더 '순수'하게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통사론syntax 정도?) 임고에 쓰이는 교과서들은 잘해야 개론 수준을 못 벗어 나기 때문에... 하긴 그래도 양이 많으니 어렵다.

어쨌든. 당분간 타이틀은 임고 준비생으로 걸어 두고 다니려고 한다. 난 공식적으로는 임용고사 준비생이다. 흔하디 흔한 고시생. 왜냐면, 대학원에 진학 한다고 또 말하면 예전처럼 굳이 막지는 않으실테지만 엄마 아빠가 과외를 하라는 압력을 또 넣을 게 분명하니까 말야. :p 요새는 민법 책을 보고 있다는 한 친구님이랑 잠깐 얘기했던건데, 과외하기 싫어서 고시생하는 것 같다고-_-...;

-

3. 볼 때마다 다르게 읽히는 소설은 꼭 소장해 두어야 한다. 김형경씨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처음 만난 건 21세였는데, 그 때는 사실 '인구에 회자' 되던 소설이니까 읽어서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막연히, 아, 굉장히 정신 분석학적이군...이란 인상만 받았을 뿐. 소설 등을 읽으면 책 귀퉁이를 접어 두고 후에 그 부분만 다시 펴보는 습관이 있는 내가, 전혀 접어 놓지를 않았었다. 그 담에 만났을 때는 23세. 그 땐 내가 곧 세진이고 인혜였다. 그러니까, 인물과 적절히 거리를 두지 않고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그냥 몰입했달까. 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최근에(25..ㅠㅠ) 다시 만났다.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발견하고 다시 읽었는데... 헉, 했다. 빌려와서 다시 읽다가, 책 귀퉁이를 꼭 접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알라딘 마일리지로 주문(호호^.^)했다. 그 때 안 보였던 문구들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젠 본격적으로 나를 분석할 수 있었다. 소설을 분석하면서, 특히 소설 속에 나오는 임상 상담하는 장면들을 보다 면밀히 읽으면서, 그리고 예전에 접했던 얇디 얇은 정신분석학 지식을 조금씩 동원해 가면서 말이다.

이제는 당분간 정신분석학도 다시 들여다 볼 요량이다. '정치적'인 독서 방식 말고(어떤 책이었던가에서 읽었는데. 정신분석학ㅡ특히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갖는 희한한 특징 중에 하나가, 자신이 해방적이고 혁명적이고 정치적인 학문을 한다고 믿는다고. 헐, 냉소적이구만~ 했다가 이내 끄덕끄덕) 철저히 자아를 탐색하는 도구로서 말이다. 이런 자아야 말로 근대의 산물이요 '개인의 발견' 이후에나 등장할 수 있는 신화적 대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의 무의식과 조금이라도 더 화해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말대로 "사기 치지 않고"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그래서 요새 일상은 그리 나쁘진 않지만 엉망 진창이다. 기반이 없다.

-

4. 푸코의 짧은 글을 읽었다. '지식인의 정치적 기능'이라는 제목의 글인데... 어김없이 너무나 푸코스러운 글이라 피식 웃음이 났다. 그의 글을 제대로 독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독해에 따르면 그렇다. 그는 <보편적 지식인>이나 <구체적(특수한) 지식인>이라는 일반적인 이분법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누군가가 냉소적으로 지적했듯, 최근 수 년간 학계에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똑똑한 척 할 수 있는 말' 베스트 10위안에 들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탈맥락적이지 않나요?", "유럽 중심적이군요." 혹은 "당신은 도대체 어떤 xx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가요?" 류의 말일 것이다. 그 말의 적확성과 정치적 유효성 내지는 효과에 대해 무한히 긍정하는 것을 떠나서, 확실히 요즘에는 구체적 지식인, 특수하게 위치 지어진 지식 등을 언급하는 것에 더 점수를 주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친 자본주의적인 냄새를 풍기느냐하는 점도 지적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 무엇보다도 좀 답답하고.

어쨌거나 푸코는 그러한 이분법을 치워두고, 너무나 푸코 본인 스럽게도 "진리"와 "권력"을 문제 삼는다. 푸코에게 지식인이 보편적이냐 구체적이냐는 별 문제가 아니다. 지식인의 특수성을 거론하는 것은 그에게는 현상 기술적인 말일 뿐이다. 그냥 원래 지식인은 어쩔 수 없이, 태생부터 특수하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진리다. 진리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다르다. 허나 진리라는 것은 권력 밖에 있지도 않으며 권력이 박탈된 순수한 상태도 아니다. 진리의 지위, 그리고 진리가 행하는 정치적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 분석하고, 진리의 권력(혹은, 진리는 권력 그 자체이므로, 진리를)을 진리를 작동케 하는 헤게모니로부터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의 특수한ㅡ단지 이데올로기적이거나 상부구조적이지는 않고 덧붙여 유물론적이며 이에 기반해 진리를 특수한 방식으로 규정하는ㅡ체계(regime) 속에서, 지식인의 정치적 기능이다.

이 말에 여러 가지 의미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게, 보편이냐 특수냐하는 구분이 그 자체로 명백히 정치적인 구분이기 때문이다. 정희진씨가 했던 말대로, "인간 해방"(보편)을 말하는 백인 남성 지식인&담론과, '잘해야' "여성 해방", "게이 해방" 등을 말하는 여러 지식인&담론이, 애초부터 게임이 되겠느냐 말이다. 특히 한국에서 말이다! 그것들은 애당초 잘못된 구도였고, 애당초 피했어야 할 시스템이었고, 따라서 애당초 공격했어야 했을 이분법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잘못된 문제틀(problematic)이었던 것이다.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다른데 있다.

-

5. 그래, 임고 책이 아니라 이런 글, 소설을 읽고 블로그에나마 끄적거릴 수 있을 때, 나는 기쁘다.

-

6. 아, 맞다 가장 중요한 것. 동생이 강하게 주장해서 강아지를 입양해 왔다. 아빠가 모처럼 듣는 자식의 부탁인지라 이곳 저곳에 강아지 입양 공고를 낸 터라 총 3'마리'(마리라는 말이 과히 됴티 아니하다)가 입양되어 왔는데... 원래 같이 살고 있던 '해피'(이제는 완전 할머니다~)에 새로 입양한 아이를 더하면 4'마리'나 되는터라... 2'마리'는 다른 곳에 입양시킬 것 같다. 남매라는데 하나는 흰 털에 까망 점이 찍혔거나 까망 털에 하얀 점이 찍혔거나 한 강아지고 다른 하나는 약간 누런 털을 가진, 귀염성 있는 얼굴을 한 강아지 남매다.

결국 남는 아이는 잉글리시 코카스파니엘이라나; 뭐라더나; 난 순혈인지 혼혈인지는 관심 없는데, 동생 님이 순혈을 극구 주장하여 돈을 좀 많이 들여 데리고 왔다. 40일 밖에 안되서 그런지 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잔다. 그리고 좀 많이 귀엽다 ㅠㅠ

아, 더 중요한 것. 이름이 무려 "지용"이다 ㅋㅋ 내가 지었음. 나중에 공연도 할지도 모른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견 해피  (2) 2009/04/12
오늘의 타로카드  (0) 2009/04/05
나쁘지 않은 일상  (2) 2009/03/15
맘에 드는 음악  (2) 2009/03/04
왠지 억울해  (2) 2009/02/23
Posted by 소이연

글 보관함

최근에 받은 트랙백

달력

« » 2012.0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