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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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5 나쁘지 않은 일상 (2)
  2. 2009/01/31 1월 31일 (4)
일기 / 2009/03/15 18:19

1. 과히 나쁘지 않다. 끄덕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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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잠깐 동안 했던 임고 준비를 또 접어두고(ㅋㅋ;;) 그냥 쉬자는 마음으로, 이것 저것 가능성들을 재점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좀 더 나한테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그리고 너무 초조해 하지 않기로 했다. 삶의 불확실성, 그로 인한 불안, 불안 끝의 절망과 우울증, 긴 우울을 헤치고 나온 뒤의 허탈한 해방감과 평온함, 그 모든 것들을 다시 한 번 제대로 껴안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어차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임고 준비로 '도피'한다고 하여 뭐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또 뭐든 이상적인 것(the ideal)의 잣대로 사물을 대하지 않으면 성미가 풀리지 않는 내가, 설령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던 교사가 된다고 해도 5년 이상 버틸리 만무하니까. 무엇보다 교육학은 물론이고 영어교육론 등등도 내 식성에 안 맞으니까. 아아.. 임고 준비하며 들여다 보는 책들의 내용 중 흥미가 가는 분야가 있다면 화용론(pragmatics)이나 담화 분석(discourse analysis) 정도가 될텐데(좀 더 '순수'하게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통사론syntax 정도?) 임고에 쓰이는 교과서들은 잘해야 개론 수준을 못 벗어 나기 때문에... 하긴 그래도 양이 많으니 어렵다.

어쨌든. 당분간 타이틀은 임고 준비생으로 걸어 두고 다니려고 한다. 난 공식적으로는 임용고사 준비생이다. 흔하디 흔한 고시생. 왜냐면, 대학원에 진학 한다고 또 말하면 예전처럼 굳이 막지는 않으실테지만 엄마 아빠가 과외를 하라는 압력을 또 넣을 게 분명하니까 말야. :p 요새는 민법 책을 보고 있다는 한 친구님이랑 잠깐 얘기했던건데, 과외하기 싫어서 고시생하는 것 같다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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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볼 때마다 다르게 읽히는 소설은 꼭 소장해 두어야 한다. 김형경씨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처음 만난 건 21세였는데, 그 때는 사실 '인구에 회자' 되던 소설이니까 읽어서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막연히, 아, 굉장히 정신 분석학적이군...이란 인상만 받았을 뿐. 소설 등을 읽으면 책 귀퉁이를 접어 두고 후에 그 부분만 다시 펴보는 습관이 있는 내가, 전혀 접어 놓지를 않았었다. 그 담에 만났을 때는 23세. 그 땐 내가 곧 세진이고 인혜였다. 그러니까, 인물과 적절히 거리를 두지 않고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그냥 몰입했달까. 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최근에(25..ㅠㅠ) 다시 만났다.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발견하고 다시 읽었는데... 헉, 했다. 빌려와서 다시 읽다가, 책 귀퉁이를 꼭 접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알라딘 마일리지로 주문(호호^.^)했다. 그 때 안 보였던 문구들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젠 본격적으로 나를 분석할 수 있었다. 소설을 분석하면서, 특히 소설 속에 나오는 임상 상담하는 장면들을 보다 면밀히 읽으면서, 그리고 예전에 접했던 얇디 얇은 정신분석학 지식을 조금씩 동원해 가면서 말이다.

이제는 당분간 정신분석학도 다시 들여다 볼 요량이다. '정치적'인 독서 방식 말고(어떤 책이었던가에서 읽었는데. 정신분석학ㅡ특히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갖는 희한한 특징 중에 하나가, 자신이 해방적이고 혁명적이고 정치적인 학문을 한다고 믿는다고. 헐, 냉소적이구만~ 했다가 이내 끄덕끄덕) 철저히 자아를 탐색하는 도구로서 말이다. 이런 자아야 말로 근대의 산물이요 '개인의 발견' 이후에나 등장할 수 있는 신화적 대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의 무의식과 조금이라도 더 화해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말대로 "사기 치지 않고"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그래서 요새 일상은 그리 나쁘진 않지만 엉망 진창이다. 기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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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푸코의 짧은 글을 읽었다. '지식인의 정치적 기능'이라는 제목의 글인데... 어김없이 너무나 푸코스러운 글이라 피식 웃음이 났다. 그의 글을 제대로 독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독해에 따르면 그렇다. 그는 <보편적 지식인>이나 <구체적(특수한) 지식인>이라는 일반적인 이분법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누군가가 냉소적으로 지적했듯, 최근 수 년간 학계에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똑똑한 척 할 수 있는 말' 베스트 10위안에 들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탈맥락적이지 않나요?", "유럽 중심적이군요." 혹은 "당신은 도대체 어떤 xx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가요?" 류의 말일 것이다. 그 말의 적확성과 정치적 유효성 내지는 효과에 대해 무한히 긍정하는 것을 떠나서, 확실히 요즘에는 구체적 지식인, 특수하게 위치 지어진 지식 등을 언급하는 것에 더 점수를 주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친 자본주의적인 냄새를 풍기느냐하는 점도 지적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 무엇보다도 좀 답답하고.

어쨌거나 푸코는 그러한 이분법을 치워두고, 너무나 푸코 본인 스럽게도 "진리"와 "권력"을 문제 삼는다. 푸코에게 지식인이 보편적이냐 구체적이냐는 별 문제가 아니다. 지식인의 특수성을 거론하는 것은 그에게는 현상 기술적인 말일 뿐이다. 그냥 원래 지식인은 어쩔 수 없이, 태생부터 특수하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진리다. 진리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다르다. 허나 진리라는 것은 권력 밖에 있지도 않으며 권력이 박탈된 순수한 상태도 아니다. 진리의 지위, 그리고 진리가 행하는 정치적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 분석하고, 진리의 권력(혹은, 진리는 권력 그 자체이므로, 진리를)을 진리를 작동케 하는 헤게모니로부터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의 특수한ㅡ단지 이데올로기적이거나 상부구조적이지는 않고 덧붙여 유물론적이며 이에 기반해 진리를 특수한 방식으로 규정하는ㅡ체계(regime) 속에서, 지식인의 정치적 기능이다.

이 말에 여러 가지 의미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게, 보편이냐 특수냐하는 구분이 그 자체로 명백히 정치적인 구분이기 때문이다. 정희진씨가 했던 말대로, "인간 해방"(보편)을 말하는 백인 남성 지식인&담론과, '잘해야' "여성 해방", "게이 해방" 등을 말하는 여러 지식인&담론이, 애초부터 게임이 되겠느냐 말이다. 특히 한국에서 말이다! 그것들은 애당초 잘못된 구도였고, 애당초 피했어야 할 시스템이었고, 따라서 애당초 공격했어야 했을 이분법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잘못된 문제틀(problematic)이었던 것이다.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다른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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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래, 임고 책이 아니라 이런 글, 소설을 읽고 블로그에나마 끄적거릴 수 있을 때, 나는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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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 맞다 가장 중요한 것. 동생이 강하게 주장해서 강아지를 입양해 왔다. 아빠가 모처럼 듣는 자식의 부탁인지라 이곳 저곳에 강아지 입양 공고를 낸 터라 총 3'마리'(마리라는 말이 과히 됴티 아니하다)가 입양되어 왔는데... 원래 같이 살고 있던 '해피'(이제는 완전 할머니다~)에 새로 입양한 아이를 더하면 4'마리'나 되는터라... 2'마리'는 다른 곳에 입양시킬 것 같다. 남매라는데 하나는 흰 털에 까망 점이 찍혔거나 까망 털에 하얀 점이 찍혔거나 한 강아지고 다른 하나는 약간 누런 털을 가진, 귀염성 있는 얼굴을 한 강아지 남매다.

결국 남는 아이는 잉글리시 코카스파니엘이라나; 뭐라더나; 난 순혈인지 혼혈인지는 관심 없는데, 동생 님이 순혈을 극구 주장하여 돈을 좀 많이 들여 데리고 왔다. 40일 밖에 안되서 그런지 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잔다. 그리고 좀 많이 귀엽다 ㅠㅠ

아, 더 중요한 것. 이름이 무려 "지용"이다 ㅋㅋ 내가 지었음. 나중에 공연도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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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09/01/31 22:40

* 너무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사실 약간 고민 중이다. 조금 있으면 이 블로그 주소 호스팅 만기일이 다가오는데, 연장을 할지 말지... 블로그를 폐쇄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namunnib.tistory.com일 때와, 블로그 나름대로 주소를 갖고 있을 때의 느낌은 좀 다르니까 ㅋㅋ

* 요새는 너무 피곤했다. 특별히 열심히 하는 일도 별로 없는데, 지금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주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저께는 욕실에서 엄청난 현기증을 느끼며 털썩 주저앉기도 했다. 그 뒤로 약 10~15분간 엄마 아빠를 부르지도 못한 채(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샤워 중이었...^^;), 아무것도 안 보이는 눈 걱정도 하면서 구역질 나오는 것과 두통을 겨우 참으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빈혈 증세와 어지럼증, 두통이 있었던 적은 있지만 그렇게 심했던 적은 없었다구. 그 덕분에 어제 오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링겔도 맞아 봤다. 병원에서 이것 저것 검사를 해봤는데 '탈수'가 심하단다; 그나저나, 잉? 왠 탈수?;

* 요새는 짜증만 너무 늘었다. 덕분에 괜히 엄마 아빠에게 짜증내는 일이 잦아졌다. 엄마 아빠에게 '행복' 혹은 '만족감'이란(혹은, '불행' 혹은 '결핍감'), 대부분의 이들이 그렇듯 '상대평가'를 기준으로 한다. 내가 해야하는 일 때문에 투정을 부리거나 화를 내거나 하면, 엄마 아빠도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거의 반자동적으로 "아이고, 누구누구네 누구는~"으로 시작하는 말을 꺼낸다. 엄마 아빠 당신들이 힘든 일이 있거나, 혹은 주위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되면 "그래도, 누구누구네 누구는~"으로 시작하는 말을 꺼낸다. 엄마 아빠 뿐 아니라 내가 요즘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 그럼 내 뒤틀린 감정 더미들과 컴플렉스는 무한 부스팅해버리게 된다 -_- 그리고는 펑!!! 그래도 내 몇 안되는 친구님들이 주변에 있을 땐 이렇지 않았는데 흑흑.

* 철학이든 사회학이든 어쨌든 아카데믹한 이름을 가진 이른바 '학'을 '계속하려'면 '나', '현실(주위 환경 혹은 세계)', '학' 사이에 <의식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견지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 같다(그렇다고 어느 특정한 것을 물신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여기서 말하는 '계속한다'는 의미가 특정한 '학'적 관점을 갖고 해석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든, 아카데미 제도(조직) 속으로 들어가 그 일원이 된다는 것이든 그 어떤 의미든 전연 상관없이 말이다. 물론 그 사이의 <거리>를 의식하지 못하면, 그냥 '바보'가 될 뿐이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거리를 견지할 때의 긴장감과 회의감 등은,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몫일테다. 그런데, 사실 그 긴장감이나 회의감 따위가 요즘엔 몹시도 싫고 또 두렵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너무 흔들린다는 거다 요즘엔;

* 내가 (조금은) 존경하는 마음을 가진 과 선배가 있는데('문학 소년'이라고 알려진^^;) 그 선배와 한 때 같은 대학원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선배가 했던 말이 있었는데... 건조하게 말하자면 '그냥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학원엘 가더라도 '뭔가 다른 일'을 하고 가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그 선배는 국제 기구 인턴에 많이 지원해보기도 했었고, 얼마 전에는 인권위 인턴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다. 근데 나도 좀 그렇게 생각이 바뀌어가고 있다. 바로 앞에서 말했듯, 그 <거리>란건 그냥 가만히 있는다고 생기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휴.


* 요즘 블로그에 글을 뜸하게 썼던 이유...는 사실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사건들이 너무 빵빵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하나 하나 입에 올리기도 무서운 사건들. 덕분에 나는 그저 도피, 도피, 도피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 뉴스를 읽고 나면 몇 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반드시 해야만 했다. 예컨대 게임 같은 것. 그런게 없으면 나는 지금의 나도 보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처한 상황,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은, 훌륭한 (일시적) 면죄부이자 마취제가 되었다. 물리적으로 몇 시간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런 사건들의 윤리적인 부름도, 그 면죄부와 마취제 앞에서는 알량한 몇 방울 눈물이 되어 흘러 사라져 버리고, 그리고 양심을 위장한 서투르기 짝이 없는 분노(와 회의)로만 표출되었다... 버러지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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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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