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카테고리

전체보기 (484)
일기 (198)
조각들 (74)
독서노트 (79)
스크랩 (57)
영화 (44)
음악 (0)
문학 (17)
번역 (14)
(0)
기타 (1)
미공개 (0)

'그리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1/25 설렘이라기보다는 그리움 (3)
  2. 2007/12/24 연말이 되니까
일기 / 2008/01/25 00:38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 <마음사전(2008)>의 정의에 따르면,

설렘 | 뼈와 뼈 사이에 내리는 첫눈. (p. 308)
그리움 | 최승자 시인의 말대로, 청춘의 트라이앵글 중 하나. 청춘 이후로는, 유일한 정신적 구호품. (p. 306)

이다. 최승자 시인이 말하는 "영원한 청춘의 트라이앵글"이란,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이다. 여기서 마음사전의 정의를 재미삼아 더 살펴보면(좀 층위가 다르긴 하지만),

외롭다 | '외롭다'라는 말은 형용사가 아니다. 활달히 움직이고 있는 동작동사다. 텅 비어버린 마음의 상태를 못 견디겠을 때에 사람들은 '외롭다'라는 낱말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발화한다. 그 말에는 외로움을 어찌하지 못해 이미 움직여대는 어떤 에너지가 담겨 있다. 그 에너지가 외로운 상태를 동작 동사로 바꿔 놓는다. (p. 91)
괴로움 |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인 듯하지만, 실은 이러기도 싫고 저러기도 싫은 상태. (p. 306)

이다.


**

이걸 읽으니, 나이라고 해봐야 반오십도 안먹은 주제에, 벌써 청춘을 다 보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뼈와 뼈 사이에 내리는 첫눈"을 맞아본 적, 오래되었다(혹은, 맞아본 적 없다). 나의 모든 애착, 애정, 우정, 모두 예외없이 설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청춘 따위 벌써 산 너머로 져버렸을까, 아님 누가 내 청춘 앗아갔나. 굳이 회고하지 않더라도 지난 1년간 나의 "유일한 정신적 구호품"은, 결국 그리움 뿐이었다. 그리움이란게 깨어지기 쉽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움에 천착하게 된다. 추억하며 그리워할 사람이나 경험이 많지 않으면서도 그렇다. 앞으로 못보게 되면 그리워질 것 같은 사람들은 있지만 그건 아무도 모를 미-래의 일이다. 그러나 이건 정신적인 성숙이라기보다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에 가깝다. 나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남을 위로하거나 받아들일만한 언어도 없다. 나의 언어는 늘 빈곤하고, 누구에게도 울림을 주지 못한다. 몸은 닿을 수 있어도 마음은 닿지 못한다. 그걸 문득 깨달은 날이면 방에 오도카니 앉아서, 혹은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는 잠들기 전까지 울어버린다. 난 나의 이런 상태를 어쨌거나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싫다.


**

청춘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외롭거나 괴로워질 때면 늘 목소리가 듣고 싶은 친구가 있다. 외롭거나 괴로울 때만 전화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은 얼굴을 볼 수 없는 곳에 있다. 못보게 된 이후로 나는 항상 쓸쓸함이고 기다림이고 외로움이다. 그러면 나는 남겨진다는 것(때론 버려진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며칠이고 꾸욱꾸욱 참다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할 때 나는 애써 목소리를 다듬곤 했다. 그 친구는, 결국 목소리를 들을 때면 괜시리 눈에 물이 왈칵 고이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다.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땐 내가 못 볼 꼴 못 참을 꼴 많이 보여주었는데도 날 버리지 않아주었던, 그런 사람이다. 그 친구가 날 그리워하냐마냐 상관없이 무한히 그리워지는,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표현해도 하나도 부끄러워질 것 같지 않은, 그런 사람이다. 난 이 순간 진실하니까.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하는 것이 부끄러운 이유는, 자기 스스로도 언젠가는 이 고백이 취하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이젠 당분간 그 친구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 머리 속에서는 생생하게 울리는데...

요즘엔 정말이지 보고싶다.



덧) 어제고 오늘이고 자꾸만 히스 레저Heath Ledger의 사망 소식이 신경쓰인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상태라기 보다는, 묘한 동경의 상태. 애도는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차적으로 상실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히스 레저를 '얻고자' 한적은 없었으므로 애도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왜 죽었는지 아무도 모를, 그런 죽음. 뭐, 아무래도 좋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읽기 모임  (8) 2008/01/29
1월 26일  (0) 2008/01/27
설렘이라기보다는 그리움  (3) 2008/01/25
공황 상태  (0) 2008/01/23
아...  (0) 2008/01/20
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07/12/24 02:58
연말이 되서 그런지 어쩐지는 몰라도, 자꾸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밤에 잠을 잘 이루기 힘들다. 제 아무리 잘난 척 뻗대며 시간 따위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해도, 달력의 숫자가 주는 위력이란 자못 대단한 것임에 틀림 없다.

요즘엔 생각이 자꾸 과거로 소급해 들어간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또는 대학교 초반 때. 사실 친구랑 예전에 잠깐 전화통화 할 때도 느꼈던 거지만, 이미 고등학교의 기억도 상당히 지워져 있다. 당시의 친구들 중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가 전혀 없다. 기분 좋은 추억이라곤 없고, 단지 그냥 단편적인 기억들만 있는 시간들. 그래도 그나마 남아 있는 기억들을 한 번 주워모아 보고 싶어서 오늘은 중 고등학교 때는 나름대로 친구였던 사람들의 미니홈피 등을 돌아다녀 보았다. 난 당시엔 무난하게 학교생활 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나를 제외하고 그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살았던 것 같다. 주말이나 평일 학교 끝나고 늘 약속 따위가 있기는 했는데. 사실 뭐, 은따 따위 였을지 모를 일이다.

돌이켜 보면 당시의 나는 사람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다. (혹은, 지금의 나는 그 때와 완전히 단절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연락이 오는게 불쾌하고 설령 연락되도 만나기가 싫다.) 사람에 대한 애착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싸움도 없었고 질투도 없었다. 지금 떠올리기엔 어쨌든 그렇다. 당시에도 자주 만나게 되는 아이들은 있었지만 좋아한다거나 사랑하지는 않았고, 나는 그들이 하는 행동에 다소 냉소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에 대해서는 애착도 없고 아쉬움도 없다. 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당시에는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았으므로 사람을 떠올리면서 애틋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대학교에 와서 시작된 일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덧붙이자면 그리움은 사랑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은 대상은 그립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떠올리면서 애틋해지거나 그리워지거나 하지 않는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내가 당시에 사랑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희미하게 남아 있는 그것들을 부러 모아서 떠올리려고 해도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시에 내가 상실했던 것이 무엇인지 대충은 알 것 같다. 나는 당시에 사랑하는 능력을 상실했었다. 적어도 당시엔 어느 것도 사랑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의 사랑법은 그다지 낭만적이지는 못하다. 물리적으로 단절되면 다른 감정으로 바뀐다. 문제는 사랑하고 있는 당시에는 그 대상을 사랑하는 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리운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보질 못한다. 그러면 그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그냥 물리적으로 단절되었다는 사실에서 유래하는, 그리움에 가까운 감정이 된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7 연말정산 (3)  (2) 2007/12/31
2007 연말정산 (1) - 올해의 영화  (0) 2007/12/29
연말이 되니까  (0) 2007/12/24
우울하구나;  (0) 2007/12/21
나름의 '희소식'  (0) 2007/12/21
Posted by 소이연

글 보관함

최근에 받은 트랙백

달력

« » 2012.0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