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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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6/07 '미친소'가 아닌 '병든소' 이야기
스크랩 / 2008/06/07 23:10

언니네 채널넷 특집의 얀새님의 글. 공감 공감~
출처 : http://www.unninet.net/channel/ch_special_vw.asp?ca1=1&ca2=405&ct_Idx=2380


비어있는 자리

안녕. 오늘도 당신들은 우리들의 시야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가 신경 쓸 수 없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 있습  니다. 데카르트인가 하는 사람은 당신들에게 영혼이 없다고 말했다지만,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다지만나는 당신들과 내가 그리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당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병든 당신들의 몸을 이 나라에 수출하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먹고 죽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불 보듯 뻔한 위험을 알면서도 그것들을 수입하기로 한 정부의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합니다. 사람들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나라가 미국의 폐기물 처리장이냐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문제가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라고 보고 있어요. 그리고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한편 마음이 무거운 건 병든 당신들에 대한 이야기의 부재였습니다. 당신들은 그저 ‘30개월 이상의 소’ ‘20개월 미만의 소’와 같은 언어로 정의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묻고 싶었습니다. ‘20개월 미만의 소’라면 괜찮은 것인지, 또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라면 당신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지 말이지요. 나는 당신들이 왜 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는지, 왜 미국이 당신들을 도축해서 팔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 왜 당신들이 '상품'이 되어서 세상 곳곳에서 거래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인류는 소의 기생충이다'라는 어느 작가의 말에 동의합니다. 인간이 먹기 위해 키우는 당신들의 숫자가 십삼억 마리라는 통계를 본 적도 있습니다. ‘광우병’을 둘러싼 이야기들 속에서 저는 당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자리는 텅 비어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의 삶에 관한 일을 꺼내려는 시도조차 비정치적인 것으로 폄훼되곤 했지요.

저는 사람들이 당신들을 먹는 식문화에 대해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소고기를 먹는 일이 비윤리적이라고 소리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당신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하고 싶을 뿐입니다.

고통을 외면하다


미국에서의 축산업은 그 나라의 기반 사업 중의 하나입니다. 축산업은 다른 사업들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합니다. 포드가 합리적인 자동차의 조립과정을 소고기의 해체 작업을 통해 익혔다고 말했던 것처럼, 축산업은 '실용적인' 생산라인의 모형을 제시한 사업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실용적 사고'에는 당신들을 '고기 생산 기계'로 생각한다는 전제가 들어있습니다. '동물기계'라는 데카르트의 사고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동물을 움직이는 기계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당신들은 영혼이 결락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 지배받고 복종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은 당신들에 대한 어떤 종류의 폭력에도 합당한 근거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축산업자들은 '동물기계'라는 전제 위에 '효율적인 이윤 창출'이라는 목표의식을 달았습니다.

축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확대되어갑니다. 고기의 포화상태. 이는 물론 몇몇 국가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의 70%는 비자발적 채식을 합니다. 빈곤 때문입니다. 축산업이 대량화되면서 전세계의 곡물 생산량의 30%가 축산업에 쓰이게 됩니다. 축산업에 쓰일 곡물을 재배하기 위해 제3세계의 삼림이 불에 타고, 자신의 경작지를 잃은 농민들은 몇백만명이나 됩니다.) 많은 국가들이 이런 식의 시스템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효율적인 이윤확대를 위해서 당신들은 사육장이라는 곳에서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탄생과 동시에 어미와 분리되고 엄청난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낳은 자식을 빼앗긴 어미의 고통은 신체적인 병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특히 우유를 생산하지 못하는 수컷 젖소는 제 몸 크기의 사육장 안으로 들어가서 몸도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합니다. 움직이면 고기가 질겨진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 송아지들은 이 개월도 안 돼서 도축되고 아주 비싼 식재료로 팔린다고 합니다. 저는 데카르트에게 묻고 싶습니다. 영혼이 없는 쪽은 동물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발명해낸 사람들이 아니냐고요. 어떤 동물도 자신의 식도락을 위해서 다른 동물의 존엄을 이렇게 함부로 훼손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의 멋진 뿔은 사육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뽑히고, 거세는 흔한 일입니다. 이 공장 안에서 당신들은 자연스러운 상태보다 3배 이상의 우유를 만들어 내고 수명은 과거 25년이었던 것이 현재 4년이 채 못 되게 되었습니다.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서 당신들은 항상 임신 중입니다. 대부분의 사육장에서 당신들을 2평방미터도 되지 않는 아주 좁은 사육장에 가둬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면서 병에 걸리지 말라고 항생제를 주입하고 보다 더 많은 고기를 생산하도록 호르몬제를 투입합니다. 그러면서 사료에 톱밥과 쓰레기, 다른 동물의 사체들을 섞고 심지어 당신들의 동족의 뼛가루까지 먹이기도 했어요. 그런 환경에서 병드는 건 당연합니다. 당신들은 기계가 아닌 생명이니까요. 무기체가 아닌 살아있는 존재니까요.

관계를 생각하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 저는 그것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양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먹는 행위는 인간과 동물이 맺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를 보여줍니다. 저는 그 관계가 너무도 비참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다른 생명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렇게 잔혹하게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부당합니다.

'광우병'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살아있는 당신들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건 오로지 당신들의 사체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당신들과 우리들이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압니다. 지금 저는 왜 당신들이 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합니다. 저는 평생을 폭력에 노출되고, 도살되기 위한 생은 없다고 믿습니다. 아무도 그런 생을 원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합리적' '실용적'이라는 미명 아래 극한의 고통에 노출된 당신들을 생각합니다. '아픈소'를 키운 그 미친 방식에 대해서 회의합니다.

광우병 문제는 당신들에 대한 폭력의 극한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장에 수입 협정이 결렬되고, 이 모든 상황이 ‘해소’된다고 할지라도 당신들에 대한 폭력을 멈추지 않는 한 같은 비극은 되풀이 될 것입니다.


*글을 퍼 가실 때에는 출처를 꼭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언니네 채널넷(www.unninet.co.kr) 2008년 6월 특집 '살기등등' 中
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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