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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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9 8월 19일 (2)
  2. 2010/04/13 이론 공부
  3. 2010/03/23 이단들을 위한 자리 (2)
일기 / 2010/08/19 22:03
요 며칠 중요한 신변의 변화가 생겼고, 이 급격한 변화는 기실 몇 달 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기 때문에 변화 자체에서 혼란을 느끼지는 않고 있다. 변화한 뒤의 여러 날을 미리 살아왔다는 듯이. 하긴 뭐 상징적인 의미만 클 뿐, 실질적인 변화는 아니라고 보아도 좋으니까. 여하튼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해야겠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 핑계가 모두 사라졌으니까. 일상을 조금 더 조여도 좋을 것이다. 느슨한 건 가끔이면 족하다.

오늘 책 정리를 끝으로 이사를 모두 마쳤다. 이번 이사는 그냥 원룸이 아니라, 방 2개(+ 작은 방 하나) 세를 얻어 들어오는 것이어서 살림살이를 모두 마련해야 해서 일이 컸다. 아니, 일이 컸다고 말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 대부분은 구입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집에 이것저것을 설치하고 갔다. 이렇게 서울에 다시 살게 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 특히 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경우엔 사람들이 한없이 친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치가 끝나고 갈 때는 전화가 오면 친절하게 설치를 받았다고 한 마디만 해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이 엄청난 더위에, 온 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싫은 내색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 무시무시한 감정의 조절, 통제, 그리고 감정을 둘러싼 여러 규율들. 얼마 전까지 살았던 동네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다. 거기서는 택배가 온다는 시간도 들쑥날쑥하고, 집에 있겠다고 했다가 잠시 외출이라도 했다치면 전화로 욕을 먹기(?) 일쑤였는데. 그러나 나는 후자가 더 좋다. 나쁜 소리를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나빠지지만, 나는 서울에서 느끼는 어떤 황송함 내지는 부자연스러움이 너무 싫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건지. 피부로 느끼기엔 이런 시스템이 2008년보다 훨씬 더 한데.

간만에 생활인이 되고 나니까 예전엔 귀찮았던 것들을 척척, 하게 되는 것 같다. 빨래도, 설거지도, 쇼핑도, 청소도 미루지 않고 척척, 하게 되었다. 이불도 일어나면 척척, 갠다. 식사도 대충 라면이나 끓이거나 참치나 김 따위로 때우지 않고, 뭔가를 가열하고 요리해서 먹게 되었다. 반찬도 조금씩 만들어보고 있다. 반찬도 보관통채로 꺼내서 먹지 않고, 적당히 먹을 양을 접시에 덜어서 먹는다. 자기 전에는 쌀을 씻어 아침밥 취사 예약을 해놓고 잔다. 이 생활패턴이 자리 잡히면 영양학도 신경쓸 것이고, (지금도 거의 채식이지만) 채식 위주의 식단도 연구해봐야지. 이제 적당한 운동만 시작하면 되는데, 일단은 돈이 들지 않는 러닝을 해볼까 생각중이다. 2분 거리에 학교 운동장이 있으니까. 이렇게 해야 우울하지 않게, 또 건강하게, 성실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당분간은 충실하게 실천해보려고 한다. 막상 행동으로 옮기면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예전처럼 미루면서 해야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 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유명한 이론가들을 읽고 그것을 재맥락화하여 글로 옮기는 것, 그리고 '독창적인' 사유를 하고 글을 쓰는 것,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게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얼마 전까지는 정신분석학(특히 지젝)을 인용하는 글을 보면 부끄럽고, 랑시에르나 바디우, 푸코를 인용한 글을 보면 그저 피곤해지고, 맑스나 알튀세 등등을 인용한 글을 보면 왠지 모르게 입안이 텁텁해진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건 내가 그 이론가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거장들을 읽는 건 자칫하면 '사유능력의 과부하(마치 인용하는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굴다가 글이 자기 통제력을 넘어버리는 것)' 혹은 '사유의 자판기 효과(어떤 현상을 이론적 자판기에 집어 넣으면 자동으로 그 현상을 진단하는 글이 요리되어 나오는 것)'를 낳는다. 그렇다고 그 반대축으로 가버리면 어떨까? 문자 그대로 '독창적인' 사유와 글이 과연 있을까. 외면상 인용이 없다고 한들, 그 글이 과연 거장들을 현란하게 인용하는 글과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가장 바라는 건, 나 스스로도 쓰면서 즐겁고 독자들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글을 쓰고, 현상과 맥락에 맞는 사유를 하는 일인데. 다시 말해 좋은 글을 읽고 쓰고 읽히고 듣는 일인데. 모든게 너무 어렵다. 왜 나는 글을 잘 못쓸까? 앞으로 본격적으로 학교에서 공부 하면서는 심히 노력을 하는 수밖에... 모르는 걸 창피해 말고 내가 가진 것들 사이에서 길을 잘 찾아야지. 적어도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는 서서히 보이고 있다. 아직 명징하지는 않지만, 여하튼 좋은 징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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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조각들 / 2010/04/13 23:49
벨 훅스는 상처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 또 치유하기 위해 이론을 공부했다고 고백한다. 내면의 고통이 너무나 격렬해 살아가기 힘든 인생의 순간, 자기의 내부와 주변에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이론에 매달렸다고 했다. 벨 훅스는 이론에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공간, 현재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가정이 주는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 대신 이론의 공간에 머물렀다. 이론의 공간에서는 일상 공간과는 달리 자기의 생각과 분석을 마음껏 '실행'할수도 있었다. 벨 훅스는 이론의 공간에서 자신의 상처가 왜 생겼는지를 밝히고, 자신의 상처를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었다. 이론은 개인에게 공간을 개방하는 몇 안되는 영토 중에 하나이다. 이론은 상징자본이 되어 타인을 지배하는 도구의 계열이 아니라, 오로지 아침이슬이나 반딧불이처럼 고독하고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의 계열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론은 사회에 의해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잡을 수 있는 마지막 풀뿌리이다.

연구자와 이론가는 겹칠 수 있는 범주이지만, 평생 연구자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필연적으로 이론가도 겸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연구자는 되고 싶다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론가는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살다보면 그냥 되는 것이다. 책을 읽거나 쓴다고 해서 이론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실천이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의 삶, 자기의 고통, 자기의 욕망을 설명하는 방법을 찾는 이들은 반드시 이론가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학계에서 일하는 연구자나 여러 단체의 실천이론가가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이론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론가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 개인, 그리고 그 존재와 정체성 그 자체다.

그래서 이론은 쉽게 섞이거나 융합되지 않는다. 이론은 오로지 개인의 것이다. 그래서 이론은 공격될 수도 없고, 이론가 개인이 생존해 있는 한 사라질 수도 없다. 물론 누군가의 연구물이나 삶을 다룬 기록물은 건조하게 암기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론을 공부하는 건, 우선 그 이론가의 존재와 삶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론 공부는 누군가의 이론을 암기하는게 아니라, 누군가의 이론을 나에게 적용해보는 것이며 나 스스로가 흡수하는 것이다. 이론가의 앞에서 정보는 지식이 되고 지식은 이론화 된다. 이론가에게 진정한 공부는 곧 이론화의 과정이다. 그런 탓에 공부를 하면서 누군가의 이론을 비판하거나 비난한다는 것은, 사실 그 이론을 만든 개인에게보다는 차라리 자신을 향해 메시지를 날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론 공부를 통해 무엇인가를 알게 된 것이 단지 하나의 앎-지식으로 그치지 않고, 그 앎에 대한 나의 감정과 나의 역사가 수반될 때 그것은 나의 이론이 될 가능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과 내가 감정 세계를 공유할 수 없다면, 나의 이론은 그냥 외롭고 고독하니 잠자리 베갯닢에 찍힌 긴 물의 흔적과 다를게 없다. 역으로 내가 세운 이론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다른 사람과 내가 감정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그 때 누군가의 이론은 나의 이론이 되고, 나의 이론은 누군가의 이론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래서 이론가들은 필사적으로 자기의 이론이 들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성주의가 너무나 다양하기에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복잡다단한 여성주의(들)일 수밖에 없다면, 부분적으로 여성주의는 단지 이념이나 연구물이 아니라 이론(틀)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주의가 이론(틀)이라면, 여성주의는 개인의 맥락에서, 개인의 감정과 삶을 반드시 수반해서, 그리고 외우고 학습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실천되는 그 무엇일 수밖에 없다. 흔히 언어의 환상 속에서 이론과 실천을 나누어 생각지만, 이론(틀)로서 여성주의 안에서 그 둘은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그렇게 여성주의는 수없이 많은 다른 '-주의'들과는 존재론부터 다른 그 무엇이다. 또한 여성주의는 다른 보통의 '주의'들과는 달리, 내가 앞서 언급한 '이론'을 향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와 학제로서의 여성학은 다른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겹칠 가능성은 있다. 여성학은 학적인 연구 성과일수는 있으나, 이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물론 여성학 연구를 읽는 사람들에 의해 여성학은 이론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루는 소재나 인식론이 얼마나 유사하냐와는 큰 관계 없이, 여성학과 여성주의는 실천되고 공유되는 방식에서 갈리는 것일테다.


어떤 친구들은 내가 어떤 일이든 하게 되면 잘 할 것 같다고 위로해주지만, 나는 내가 어떤 일이든 잘해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규칙적인 주5일 칼 출퇴근이나 안정적인 통장 잔고를 동경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생활을 시작하면 내가 어떻게 차례로 무너져 내리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만약 주말 출근이냐 야근을 해야하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차츰 몸이 무너지기 시작해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될 것이고(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는다. 병원에 가도 단지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랬고, 또 그렇다), 그러면서 마음이 무너질 것이고 이어서 내 생활과 관계 전체가 붕괴할 것이다. 어차피 이런 식으로 내가 안티소셜이자 사회부적응자일 수밖에 없다면, 소위 '사회 생활'에 적응할 수 없다면, 또 일반적이면서 위압적인 이성애적 연애 산업과 시장에도 적응할 수 없다면, 이 세계의 위계 질서와 권력, 억압적인 젠더 체계가 몸서리처질 정도로 싫고 못견디겠다면, 차라리 열심히 공부해서 윤리적인 연구자(혹은 작가)이자 탁월한 이론가가 되는 걸 꿈꿀 수밖에.

물론 지금 가려는 대학원이나 학계가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예술가가 되기엔 언어적 재능도 공간적 재능도 음악적 재능도 부족한 나로서는, 그곳이 이 세계에서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소재와 줄거리, 플롯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언젠가는 소설을 쓰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젠가의 이야기). 나는 거기서 잘 살아남을 것이고, 또 거기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 해야할 것이다.

지금 하는 것도 다 열심히 할 것이고, 또 언젠가는 실패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관계에도 열심히 걸어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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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스크랩 / 2010/03/23 12:41
눈사람님 블로그에서 읽었고, 좋은 글이라 옮겨둠 +_+ 강조는 내가.
출처 : 당비의 생각(http://dangbi.tistory.com/52)


뤽 볼탕스키(Luc Boltanski)라는 프랑스 사회학자가 있다. 설치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가 그의 동생이라고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뤽 볼탕스키는, 한국에 그리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피에르 부르디외 이후 프랑스 사회학계의 중심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자신의 형이자 언어학자인 장-엘리 볼탕스키가 부르디외와 친구였던 관계로, 일찍부터 부르디외와 각별한 친분을 맺고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 부르디외의 대표적인 공저자이자 수제자로 꼽혔던 그는 1980년대 들어 부르디외 사회학과 근본적으로 단절하고 독자적인 방향을 모색해 나가면서 프랑스 학계에 작은 파란을 일으킨다. 당시 볼탕스키의 부르디외 비판은 호사가들에 의해 ‘부친 살해(parricide)’라는 이름이 붙었을 만큼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또 프랑스 사회학의 패러다임 전환과 분화를 가져온 의미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볼탕스키가 2008년 소책자를 하나 펴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Rendre la réalité inacceptable』라는 제목의 이 책은 동시에 나온 『지배이데올로기의 생산La production de l'idéologie dominante』이라는 책의 부록과도 같은 성격을 가진다. 좀 더 부연하자면, <지배이데올로기의 생산>은 1976년 볼탕스키가 같은 제목으로 부르디외와 공저한 논문을 책의 형태로 재출간한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는 바로 이 “지배이데올로기의 생산”의 재출간을 계기로 볼탕스키가 그 논문의 기원, 문제의식, 논점, 스타일, 수용 등을 여러 개인적인 일화와 더불어 정리한 책이다. ‘부친살해’ 이전 볼탕스키의 궤적을 부분적으로밖에 알고 있지 못한 내게 부르디외와의 협력 시기에 대한 볼탕스키의 회고는 자못 흥미로웠다. 그 가운데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어떻게 두 사람이 주역이 되어 《악트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라는 학술지를 창간했는지 서술한 대목이다.

《악트》의 놀라운 마법        

 지금은 세계적인 학자들로 자문위원과 편집위원의 진용을 갖춘 프랑스 사회학계의 대표적인 학술지로 성장해 있지만, 초창기의 《악트》는 약간의 저작 경력만 있는 40대와 30대 초반의 사회학자 둘이서 고생 고생해 만들어낸 일종의 ‘학문적 동호회지’나 다를 바 없었다. 물론 거기 실린 논문들이 새롭고도 어려웠으며 신랄하면서도 발랄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부르디외와 볼탕스키는 사회과학고등연구원으로부터 얻어낸 약간의 지원금과 몇 명의 조력자(편집자, 디자이너, 인쇄공)를 데리고 일 년에 자그마치 여섯 호씩 나오는 학술지를 펴냈다. 1975년 첫 호가 나왔으니, 바야흐로 손으로 쓴 원고를 다시 타자로 치고 각종 시각자료를 가위, 풀로 오려붙여 레이아웃을 짜면 연구원 지하 2층의 인쇄소에서 오프셋으로 책을 찍어내던 시절이었다. 부르디외와 볼탕스키는 몇몇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논문 원고를 채우면서, 잡지를 편집, 제작하고, 학교의 아는 사람들을 통해 직접 배포까지 해야만 했다. 그렇게 만든 창간호 2천부가 2주 만에 다 팔리고, 일 년 만에 《악트》의 정기구독자가 1천4백 명을 헤아리게 된 상황을 볼탕스키는 “진정 마법의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초창기 《악트》는 사실 지금 들춰봐도 놀라운 감이 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다양한 주제(이를테면 만화·패션·스포츠·자동차·사진 등등)를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한 논문들, 그리고 종종 중요한 외국 저자들의 번역논문들을 빽빽이 실은 이 학술지는 내용에서만이 아니라 스타일상으로도 전위적이고 도발적이었다. A4 용지 크기의 판형에, 논문의 형식은 내용에 따라 들쭉날쭉했다. 일반적인 논문 외에 한 두 페이지짜리 연구노트나 비평, 서한문이 실리는가 하면, 『지배이데올로기의 생산』처럼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논문도 실렸다. 부르디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마르틴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나는 철학자다』라는 제목으로 국역본이 나와 있다.) 역시 원래 이 잡지에 먼저 실렸던 한 편의 ‘논문’이다. 게다가 《악트》의 논문들에는 그 주제와 개념을 시각화한 그림·사진·도표·통계·만화·인터뷰 발췌문 등이 덧붙었다. 볼탕스키에 따르면, 그러한 구성은 그즈음 프랑스에서 한창 유행 중이던 만화 팬진(fanzine)을 모델로 삼았다는 것이다!

폐쇄된 자유의 공간

책에서 볼탕스키는 이 회고담의 의도를 명확히 밝힌다. 그것은 ‘좋았던 옛 시절’의 노스탤지어나 나르시시즘에서가 아니라, 현실 비판의 의지 속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는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삼십 년 전에도 가능했던 일이 왜 오늘날 이루어질 수 없겠는가?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이는 무엇보다도 대학 사회가 더 ‘규범화’ 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도 장애물은 많았다. 권위적인 학장이 있었고, 땍땍거리는 보직교수들이 있었고, 정치적인 반동분자와 바보들이 있었고, 오만한 구식 관료들이 있었다. 그래도 ‘근대적인’ 경영과 관리 기술이 학계와 문화계 곳곳에 침투해 있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의미의 ‘능력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연구자들과 놀고먹는 교수들이 뒤섞여 있었고,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볼탕스키는 흥미롭게도 다음과 같이 논의를 이어간다. 이러한 관리상의 허점이 바로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만든 자유의 공간을 열어주었노라고. 주변인들은 주변부에서 편하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노라고.

볼탕스키에 따르면, 그 시절 프랑스의 대학 사회가 어느 정도 파편화되고 분절되어 있었기에, 규범은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내면화되어 있지 않았다. 세속적인 성공이나 대단한 보상을 바라지 않는 연구자들은 규범을 무시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적당히 보호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조건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그 결과 지속적인 위반이 이루어졌다. 그럴듯한 경력이나 직위나 성과가 없는 사람들, (부르디외나 바르트나 샤르티에처럼) 박사학위도 없는 사람들, (푸코나 들뢰즈처럼) 때로는 약간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까지 아우르는 대학 사회의 소세계가 있었고, 뭔가 새로운 사건은 바로 거기서 벌어졌다. 이른바 ‘정상과학’의 바깥에서, 지금껏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와 대안적인 접근방식, 예기치 못한 이해관심이 계발되었던 것이다. 프랑스 주류 사회학계의 학회지에 맞선 학술지 《악트》는 그렇게 탄생했고, 새로운 학풍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지금은? 볼탕스키는 씁쓸하게 되묻는다. “오늘날 누가 그런 잡지에다가 자기 논문을 출판하겠다고 나서겠는가? 타자기로 치고 통계와 미키마우스가 나란히 콜라주된데다 노골적으로 비판적인, 편집위원회 조차 없는 프랑스어 잡지. 누가 자기 경력을 위해서 그런 잡지를 바라겠는가? 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단’이 사라진 대학 사회

20세기 후반의 인문학계는 프랑스 학자들이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문학·언어학·역사학·사회학·정신분석학 등 각 분야에서 프랑스 사상은 ‘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포스트모더니즘’ · ‘프랑스 이론(french theory)'·'새로운 역사학’ 같은 다양한 꼬리표를 달고 영미권과 유럽은 물론 아시아 곳곳에까지 퍼져나갔다. 그 덕분에 우리도 프랑스에 세계적인 ‘석학’들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그런데 민족이나 인종 ․ 개인의 ‘천재성’이라는 신화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그들 역시 특수한 사회적 조건 아래 생산된 존재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볼탕스키의 회고는 프랑스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뒤바꾼 학자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의 일단을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곱씹어볼만하다. 그것은 ‘더 많은 이단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해줄 수 있는 대학 사회의 분위기’야말로 학문의 혁신과 발전에 핵심적인 요인이 아니겠느냐고 넌지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왜 《악트》 뿐이겠는가? 《텔켈Tel Quel》, 《코뮈니카시옹Communications》, 《르세르쉬Recherches》, 《트라베르스Traverse》, 《악튀엘 마르크스Actuel Marx》 등등 숱한 아방가르드 잡지와 학술지, 그리고 크고 작은 출판사의 새로운 총서들이 가장 생산적이었던 시기의 프랑스 학계를 들끓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우리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지금의 대학 사회에 과연 이단들을 위한 자리는 있는가? 안타깝지만 규범화의 압력, 정상성의 독재가 우리 사회 다른 어디보다 더 심해진 곳이 바로 대학 사회다. 교수 선발에서는 어느새 영어 발표와 영어 강의가 의무화되었고, S(S)CI와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 목록은 유일하게 권위 있는 평가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연구자들은 학교에 취직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공부한 지역이나 전공분야에 관계없이 영어학원에 다녀야 하고 등재지 논문의 출판에 조바심쳐야 한다. 이렇게 해서 공정한 경쟁의 외양 아래, 영미권 이외의 지역에서 공부한 연구자 집단은 대학 사회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되기에 이르렀다. 다른 연구 관심, 다른 문제틀, 다른 지적 전통 아래 공부하는 이들이 대학교수직에 안착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정규직 임용이나 승진을 위해 연구자들은 무엇보다도 등재지 논문의 양산을 요구받는다. 그러니 누가 등재되지 않은 지면, 정해진 논문 형식에서 벗어난 글, 다작이 어려운 연구를 택하겠는가? 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데 말이다.

‘바깥의 사유’를 위한 자원의 배분이 필요하다

학문의 세계에서 ‘선택과 집중’만이 능사일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자유와 다양성’이야말로 창조의 바탕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정부와 대학 또한 당연히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브레인 코리아’, ‘인문한국’, ‘월드 클래스 유니버시티’를 원한다면, 그런 이름표를 단 프로젝트 추진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외래강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입법과 정책안 마련부터 꾀해야 한다. 그 필요성을 간절히 호소한 개인적 희생이 이미 몇  차례나(!) 있었고, 최근에도 비정규직 교수노조의 장기농성이 있었다. 어렵게 학문의 길을 택한 이들이 대학의 비정규직 위치에서나마 안정적인 연구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일이 왜 그리 어려운 것일까? 학계에 지원할 예산이 있다면, 실속 없는 각종 세미나와 해외석학 초빙, 그리고 대형 프로젝트가 아닌, 강사들에 대한 합당한 지원에 우선적으로 돌려져야 한다. 그들이 연구재단의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얽매이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자신이 원하는(혹은 만든) 지면에 발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학술 출판에 대한 지원 또한 대폭 늘려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원의 절대량보다는 자원의 배분이 문제이며, 그 배분을 결정하고 정당화하는 가치가 문제다. 예산의 새로운 배분은 세미나 준비와 프로젝트 관리에 바쁜 교수들에게 ‘시간’을 지원해주는 역설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수들에게 긴요한 자원은 돈이 아니라 ‘시간’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대학이든 정부든 그들에게 ‘시간’을 지원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현재의 대학 사회와 한국연구재단이 부과하는 ‘규범’이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며, 우리 학계에서 일정한 성과를 일궈냈다는 사실마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규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이상, 어느 시점에서는 그것의 완화 내지 분화가 학문의 발전에 더 효율적인 방편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규범을 최대한 다원화하고 그것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지대, 틈, 사이를 내버려두기. 규범에서 벗어나는 연구들이 학계에서 우글거리며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기. 비정규직 연구자들이 상징적 보상만을 추구하면서도 생활할 수 있도록 대학 강의에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기. 그들에게 사유의 실험과 시행착오를 위한 시간을 보장해주기. 바로 그러한 기반 위에서 학문의 이단은 무럭무럭 성장할 것이며 ‘정상과학’의 혁명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기』를 읽으며 내가 떠올린 생각들이다.  2010.3.22 ⓒ 이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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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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