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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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들 / 2009/10/14 00:17
고통은 측정할 수 없다. 숫자로도, 언어로도 그것은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고통은 볼수도, 전시할수도 없다. 고통은 그냥 고약하게 아픈 것이고, 다만 절대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자원을 많이 가졌기에, 심지어 고통을 욕망하고 탐닉할 수 있는(언제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얼치기 딜레당트들이 열정적으로 '느끼고자 하는' 고통은, 엄밀히 말해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굳이 말을 찾자면 '통증'에 가깝다. 살고 있다는 구체적 느낌을 받기 위해, 자위만큼이나 무해한 자해와 폭력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금 다른 경우, 예컨대 잔인한 고문관의 눈을 바라보며 파국을 짐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정의와 도덕 혹은 관계의 가치를 믿는 사람은 바로 그 신학적 믿음으로 인해 곧 다가올 파국 앞에서 신체의 '통증'을 견디어 낼수도 있다.

그러나 고약하게도 우리는 고통을 측정하고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왔다. 우리 시대의 사회과학적 전통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계량 가능성'에 입각해 있다. 만약 사람을 계량하고 측정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느끼는 고통에도 위계와 서열을 매길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그 전통 위에서 우리는 고통의 '계량 불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할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절대로 공식적인 견해로 인정 받을 수는 없다. 그것은 근대 체계가 마련한 사회'과학'의 뿌리를 제거하려 드는 악질 바이러스이므로. 숫자가 없는 사회과학은 아예 존립조차 불가능하지 않은가.

이 점에서는 되레 자연'과학' 분야의 생리학이나 신경과학의 성과가 더 윤리적이지 않은가 싶을 정도다. 적어도 생리학과 신경과학 그 자체로는 고통의 유일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고통을 '보편적인 것', 즉 호르몬의 분비나 뇌 구조 혹은 신경체계의 기능으로 치환해 버리는 놀라운 경향을 가졌기에 이 학문들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고통의 원인을 삭제한 채, 고통에 대해 얼마든 우생학적 처방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리학과 신경과학의 성과는 고통받는 주체에게 역설적인 위안을 주기도 한다. 고통을 언어화하는 순간 일어나는 고통의 상징화, 내지는 고통의 계량화(와 그에 이은 비교)는 늘 절망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언어화도, 수치화도 할 수 없는 나의 절대적인 고통이, 단지 나의 내부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신호나 신체기관의 이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것만큼 역설적인 위로가 되는 일이 또 있을까. 만성 우울증이 단지 쭈그러든 해마나 비정상적인 세로토닌 탓이라면 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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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스크랩 / 2007/12/07 22:50



▲ ⓒ프레시안


"모든 고통은 일회적인 반면 모든 영광은 수치화 된다"
 
서경식 : 한국은 민주화 투쟁을 거쳐 소위 진보세력이 집권하게 됐는데 오히려 폐쇄적인 민족주의 국가로 바뀐 것 같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또 1965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으로 이어진 과거 개방적인 성격의, 또 제국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민족주의가 지금도 한국에 남아 있는지 묻고 싶다.
 
김상봉 : 민족주의가 자기에 대한 기억을 통해 형성된다고 할 때, 저항적 민족주의는 상처, 고통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형성된 자기의식이다. 오늘날 새롭게 등장한 소위 '월드컵 민족주의'는 더 이상 상처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민족주의다. 지금 우리시대 많은 한국인이 더 이상 역사의 상처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서경식 : 갖고 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김상봉 : 그렇게 표현해도 될 것 같다. 내가 위험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이 지점이다. 인간의 상처에 대한 기억이 없는 역사의식은 영광스러운, 자랑스러운 역사로 흘러버린다. 정신적인 허영과 소수자 및 타자에 대한 배제는 늘 짝을 이룬다.
 
인간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엷어지는 게 문제다. 일본에서는 과거 전쟁의 고통에 대한 기억이 엷어지면서 침략의 영광에 대한 향수만 남았다.
 
요즘 한국 사회의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도 마찬가지다. 그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고통을 겪었는가를 잊을 수 있다면 모든 역사는 다 아름다워질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식민지 개발론'이 나오는 것도 일제시대에 살아 있는 인격체로서 개인들이 얼마나 고통스런 삶을 살았는지 잊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박정희 시대를 기억한다고 할 때, 그 시대가 얼마나 끔찍한 시대였는지를 알려준 사건이 서승 선생의 '난로 사건'(편집자 주: 1971년 대선을 앞두고 서승.서준식 형제가 간접 혐의로 보안사에 검거된 뒤, 서승 씨는 심문과정 중 심한 고문으로 자신의 의지와 달리 거짓 자백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경유 난로 기름을 끼얹고 분신을 기도한 바 있다)이었다.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으면 그런 방식으로 사람이 죽음을 과감히 선택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 지금까지도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잊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고통을 잊는 한 역사의식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모든 고통은 일회적인 반면 모든 영광은 수치화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통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박제화된 것만 남는다. 수치화된 박정희 정권, 그의 치적만 남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억도 똑같다. 최근 경남 통영을 방문했는데, 고속도로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온통 작곡가 윤이상 선생으로 도배를 했다. 윤 선생은 한국 정부로부터 끝끝내 거부됐지만 그가 죽고 나서 한국 정부에게 더 이상 무해하게 됐을 때, 그의 수난을 그런 식으로 박제화, 상업화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최고의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한국 지식인들이 동아시아인의 공통성을 쉽게 얘기하나"
 
서경식 : 동감한다. '이 나라 사람들이 고통의 기억을 잊어버렸는가'에 대한 의문은 일반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지식인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최근 창비에서 주최한 한 포럼의 주제가 '동아시아인으로서의 공통성'이었다. 동아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서의 공통성을 갖고 미국의 일방주의에 저항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동아시아인으로서의 공통성'은 과거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할 때 내세웠던 논리다.
  
▲ ⓒ프레시안

역사적으로 봤을 때는 한국과 중국은 일본에 계속 배신당했다. 어떻게 한국에서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공통성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루자는 얘기를 그렇게 가볍게 할 수 있는가. 언제, 어느 시점에서부터 일본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가. 최근 <한겨레>에 서강대의 한 중국전문가가 '동아시아인의 건배'라는 글을 썼다. 벌써 건배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한국인들이 역사의 고통을 다 잊어버렸는지 의심이 든다. 일본 시민들의 역사망각증, 즉 역사의 기억을 지우고 자기를 긍정하고 싶은 욕망을 보면서 불안하고 위험하게 느껴졌는데, 한국에 와서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다. 어떻게 이 나라 사람들은 식민지 경험이 있으면서도 일제 식민지 시절의 고통의 기억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
 
김상봉 : 완전히 망각했다 보지는 않는다. 또 외적 조건이 완전히 망각할 수도 없다.
 
지금 우리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기보다는 즉자적이다. 광주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도 그런 부분인데, 역사에서 언제라도 다시 침탈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저변에 깔려 있는 한 방어적 무의식이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
 
다만 역사의 고통에 대한 기억이 매번 즉자적으로 부딪힐 때만 환기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의식의 수면 아래로 내려간다면, 그 슬픔은 힘이 되지 못한다. 수동적인 의미의 고통의 감수성은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든다. 방어적이 되고 자기 보전 본능만 강해진다. 이럴 경우 고통의 기억은 인간을 용렬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고통의 기억은 차라리 없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고통의 기억은 타자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과 타자와 연대를 위해 자기 고통에 대한 성실한 성찰을 요구한다.
 
서경식 : 일본은 전쟁의 가해자인데도 히로시마, 오키나와 등 피해자로서의 기억만 보존해 왔다. 학생들을 데리고 히로시마 평화박물관에 가보면, 전부 피해의 기억이며 다 기호화돼 있다.
 
반면 한국은 피해자로서의 기억을 다 잊은 듯하다. 한국의 시를 보면 김수영 시인도 그렇고 신경림의 '농무'도 패자의 역사, 패자의 아픔을 담고 있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도 같은 범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패자의 아픔을 통해 자기 인식으로 형성된 감수성이 있었는데, 오히려 내가 그걸 잘 기억하고 있고, 한국 사람들이 신기하게 다 잃어버린 것 같다.
 
김상봉 : 더 늦게 전에 우리 시대의 지성사를 성찰해봐야 한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수난의 역사를 살아 왔다. 그러나 타자의 고통에 대한 참여, 또는 연대로 확장되지 못했다. 오히려 단순한 자부심과 긍지, 이를 통해 왜곡된 민족주의로만 나타나는 게 대단히 위험스럽고 걱정된다.
 
이전 세대는 고통이 가까이 있고 거기에 사로잡혀 있다. 거꾸로 지금 세대는 그런 고통의 기억은 없다. 우리 세대가 6.25를 기억 못 하듯 지금 세대는 5.18을 기억 못한다. 이들이 아는 것은 그 이후에 누린 상대적인 경제적 풍요고, 이런 경제 풍요가 고통에 대한 기억을 다 희석시킬 뿐 아니라 막연한 자부심, 자신감을 주기까지 한다. 이런 자신감과 자부심이 그 이전까지 민족적 열등감과 묘하게 맞물려 별로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과도하게 표출된 게 '월드컵 민족주의' 등 '과도한 운동장 민족의식'이 아닐까.
 
서경식 : 지금 세대적 단절에 대한 말씀이 나왔는데, 젊은 세대의 경우 상상을 못 하니까 당시의 고통의 의미가 단순화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 것은 젊은 세대보다 기존 세대의 책임이 무겁다. 프리모 레비 (편집자 주: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했던 유태계 이탈리아인으로 2차대전 말 아우슈비츠로 이송됐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뒤, 40여 년 동안 문학 작품 등을 통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증언'하는 작업을 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홀에서 투신자살해 당시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같은 전쟁 생존자가 자신들이 겪었던 경험을 젊은 세대에 전달하려고 할 때 느껴지는 어려움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윤동주의 시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윤동주의 '서시' 중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을 이부끼 사토(伊吹鄕)라는 일본 사람이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일어로 번역했다. 이부끼는 윤동주는 기독교인으로 그의 시는 기독교적인 사랑의 표출이다, 미움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윤동주 시인의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가 윤동주의 시에 대해 "그는 일본 사람에 대한 미움이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한 것을 자신의 번역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윤동주가 표현한 '죽어가는 것들'은 일제 치하에서 조선적인 것, 사라져가는 것들을 의미한다. 반면 이부끼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라고 번역한 것은 일본의 애니미즘(animism : 모든 것에 신이 깃들여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 것이다.
 
기독교에서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깊은 미움과 동의적 의미다. 미움이 있으니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설사 윤동주가 일본사람들에게 기독교적 사랑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일본인들이 그렇게 주장해서는 안 된다.
 

"목격자는 방관자가 아닌 증언자"
 
김상봉 : 일본 사람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누군가를 학대했는데 그 학대받은 사람이 자기를 사랑해주기까지 바라는 것은 어린애 같은 기대 아닌가. 일본인들의 정신적인 허약함을 보는 것 같다.
 
서경식 : 이런 게 일본의 허약한 제국주의적 인식의 전형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인들에게 '상상 못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생각해보자', '바깥에서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안 보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각해보자'고 얘기한다.
 
민족이 타자, 침략하는 사람에 대한 반동을 통해 형성된다면 그 관계성과 운동성을 제고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윤동주가 민족 시인이라고 할 때 어떤 의미인가. 모순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난 디아스포라이므로 민족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윤동주가 왜 조선말로 시를 썼는가. 조선말밖에 못 썼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간도에서 자랐기에 초중등 교육을 조선말로 받았다. 그래서 자기 진심을 조선말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그 당시 이미 조선의 문학가들은 일본어로 글을 쓸 수 있었다. 일본말을 쓴다는 것을 일본 문화를 배우는 의미도 있다.
 
김상봉 : 윤동주는 연희전문 출신이다. 연전이 당시 우리말에 대한 자의식이 상당히 강했다. 조선어학회 사건(편집자 주 : 1942년 일제가 국학연구의 탄압책으로 조선어학회의 관계자를 대거 투옥한 사건. 최현배 등 조선어학회 관계자들은 1년 동안 일본 경찰의 갖은 야만적인 고문에 시달린 끝에 '학술단체를 가장하여 국체(國體)변혁을 도모한 독립운동단체'라는 죄명으로 기소돼, 6년에서 2년까지 징역을 받았다) 으로 정인보, 김윤경 등이 잡혀가기도 했다.
 
난 윤동주 같은 이가 역사에 있어 '목격자'라고 생각한다. 정신의 강건함이 없는 상황에서는 순수함이 없다. 인간을 감동시키는 순수함은 여린 감수성으로 나타난다.
 
우리 역사를 보면 저항운동에 두 가지 전통이 있다. 하나는 테러리스트의 전통이다. 동학, 항일 의병, 서승과 서준식 선생이 바로 이들이다. 1970~80년대 군부 독재정권에 항거하면서 감옥을 들락날락 했던 이들도 이 전통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 ⓒ프레시안

반면 함석헌, 윤동주, 한용운은 '목격자'들이다. 하지만 '목격자'는 방관자가 아닌 '증언자'다. 시인, 철학자들은 증언자가 돼야 하고, 이 증언은 언어에 대한 치열함, 몰입이 필요하다. 이들은 저항의 역사 속에 같이 존재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증언자의 전통은 별로 진지하게 반추된 적이 없다. 이제 이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미 부여해야 한다.
 
끝끝내 할 수 없는 일을 안 했을 때 순교자가 된다. 수난의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적극적으로 해서 순교자가 된 게 아니다. 악한 사람들이 나의 악에 동참하라고 할 때 거기에 동참하지 못해서 순교자가 된다. 그래서 윤동주는 죽었고 함석헌은 죽지 않았지만 똑같다고 생각한다.
 
삶의 알량한 안락함, 명예, 지위 등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으려면 타협해야 한다. 같은 시인으로서 서정주와 윤동주의 차이는 사소한 것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절대적인 것이다. 자기가 선 자리에서 아닌 것은 죽어도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단순히 소극적이라고만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서경식 : 윤동주의 시 '십자가'를 보면 자기 운명을 아주 냉담하게 예측한다. 하지만 윤동주는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 사람들이 이런 것을 다 잃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김상봉 : 그런 전통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지고 승화될 수 있다고 본다.
 
내 경우를 보면, 무엇이 살아있게 했는가? 내 인생에 각인된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서승선생의 '난로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일방직사건(편집자 주 : 1978년 인천의 동일방직이 여성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노조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노조 사무실을 부수고 인분을 투척한 사건)이다. 내게는 이 두 사건이 하나이자 전부로 삶을 이끌어 왔다. 내가 당한 상처였다면 세월이 지나면서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의 고통이 한 사람의 삶에 지울 수 없이 각인돼 삶의 에너지로 살아 있는 경우가 있다.
 
이들의 고통은 혼자만의 무익한 고통이나 수난으로 끝나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수 많은 다른 타인들의 응답 속에서 역사가 발전한다. 내가 마음속으로 빚지고 있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얘기는 그 고통을 누가 대신해줄 수 없었지만, 그분들이 품었던 이상주의적 열정이 절대로 역사 속에서 속절없이 배신당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민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 때"
 
서경식 : 윤동주의 시 '별을 헤는 밤'을 보면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나온다. 윤동주는 이를 통해 열린 형태의 민족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본다. 민족의식이 형성되는데 타자와의 만남은 아주 중요하다. 타자와 만나지 않을 때 국수주의적 민족의식이 우선한다.
 
윤동주의 모어(母語)는 조선어였다. 나는 일본어가 모어다. 한국에서 일본의 지배는 35년 만에 끝났지만 아프리카처럼 100년 가까이 식민 지배를 받았다면 모어가 없어지고 일본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개인들에게 모어가 절대적이라면 별 문제가 없다. 자기가 쓰고 있는 모어에 대한 의심이 없었다면 나도 운동주의 '서시'를 보고 이부키 같이 번역했을지도 모른다. 일본어를 모어로 하는 내 사고엔 일본적인 사고가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름답다, 좋다는 느낌 자체가 일본어로 구성된다.
 
일본어라는 모어는 자기가 선택한 게 아니고 아기일 때 투입된 것이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것, 그것이 원초적인 폭력이다. 이 과정이 폭력으로 인식되면 근원적인 것도 의심하게 된다. 애국심이나 가장 깊은 수준까지 생각하면 자기가 쓰고 있는 말에 대한 의심까지 든다.
 
김상봉 :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하는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민족이 '실체'냐 '무(無)'냐 하는 잘못된 인식으로 빠질 수 있다. 민족은 '실체'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다. 집단적 주체다. 그것은 '우리'라는 공유된 자기-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있으면 존재하고, 그것이 없으면 사라진다. 진정한 주체성은 타자와 만남을 통해 형성된다. 언제나 타자와 만남을 통해 참된 의미의 주체성이 형성되고 그게 '서로 주체성'이다.
 
나는 이전에 민족을 가리켜 역사와 언어라고 하는 어떤 전제, 조건 위에서 수립되는 '공동 주체성'이라고 풀이했는데, 서경식 선생을 만나면서 내 안에 굉장히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타인과 만남에 전제가 필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역사나 언어라는 전제를 버려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이 땅에 들어온 피부 색깔이 다른 이주민들과의 '공동 주체성'의 형성이란 과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민족은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맞닥뜨린 '만남의 공동체' 정도로 느슨하게 개념 지어져야 한다.
 
윤동주 시인이 패, 경, 옥 등 이국 소녀 이름들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민족주의 개방성에 대해 개념적인 말로 형상화시켜야 하는 게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디아스포라적인 것을 담아낼 수 있는 지금까지의 민족 개념이 아닌 다른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 혼자서 곱씹으면서 도달한 결론이 우리 시대에 추구해야 할 개념은 만남의 지평 그 자체를 민족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경식 : 5·18에서 '서로 공동체'라고 할 때, 모든 사람이 다 나서서 싸운 것은 군사독재에 대한 분노, 일상적인 지역적 억압에 대한 분노 등이 근간이 됐다. 한국 사람이니까, 광주니까, 이렇게 보는 게 아니다. 다소 진부하지만 정치적 목표를 같이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 ⓒ프레시안

김상봉 : 5·18을 생각하면 정치적 이념에 앞서야 하는 게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의 문제다. 그것 없이 정치적 이념이 먼저 갈 때 인간은 수단화된다.
 
서경식 : 1960년대에 일본에 재일조선인들의 정체성이 문제가 됐을 때 일본 내에서 조선 문화를 얘기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주장은 일본이 고대와 중세 때 백제, 고려 등으로부터 문화를 전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다는 것이다.
 
문화가 있다, 없다는 문제와 지배, 피지배는 다른 얘기다. '문화가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자기가 천대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은 욕심이다. 그렇다면 '문화가 없는' 사람들은 지배당해도 되는가? 이런 사고방식은 서양인들이 인디언들을 문명화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남경태 옮김, 그린비 펴냄)에 보면 식민지 지식인의 인식의 세 단계가 나온다. 처음에는 백인에 동일화하려고 노력하고, 두 번째 자기들이 고대에 있어 얼마나 훌륭한 문화가 있었는지 증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고대 아프리카에 훌륭한 문화가 있었다고 해도 백인들은 그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문화를 시발점으로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눈앞에 있는 싸움을 통해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 세 번째 단계가 바로 디아스포라인 내가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파농도 디아스포라다. 알제리와 별 상관없는 사람이었지만 알제리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새로운 보편성을 위해 싸웠다.
 
김상봉 :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금 나누는 얘기들이 한국 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보편성을 갖고 있다.
 
서경식 : 디아스포라적인 객관성이 있다. 디아스포라야 말로 자신의 존재조건, 즉 언어조차 의심하면서 그래도 남는 자신을 근거로 타자와 서로 공동체를 만들 수밖에 없다. 피부 색깔이 다른 이주 노동자를 한국 사람으로 만드는 게 아니고 그들과 만남을 바탕으로 새로운 보편성을 이 사회에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허무주의에서 나오는 삶의 의지?"
 
어디서 어떻게 죽을까. 언제나 그게 마음에 걸린다.
외국이 숙소에서 눈을 떠, 잠들지 못한 채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삶의 실감이 급격히 흐려질 때가 있다. 죽고 싶은 것은 아니다. 슬프다거나, 우울해진다거나 하는 그런 감정과는 좀 다르다.  (…) '누군가가 뒷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는 말이 있지만, 내 뒷머리를 이승으로 잡아끄는 힘은 너무 약하다.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계속 살아야만 하는가.  (…) 이렇게 나를 이 세상에 잡아매 두는 끈들을 그 어떤 것도 인공적이고 불투명한 것이다. 내가'죽음'을 향해 몸을 내밀었을 때 그 끈들이 나를 꽉 잡아줄 것인가. 그럴 것 같지 않다. 내 쪽에서 손에 쥐고 있는 끈을 살짝 놓으면 그걸로 그만일 것이다.
(<디아스포라 기행> 46~49쪽)
 
김상봉 : 서경식 선생의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제일 가슴 아프게 읽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낯선 도시 호텔방에서 내가 뛰어내린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나를 붙잡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한 인간이 놓여 있는 측량할 수 없는 뿌리 없음, 허무함 등에 대해, 이 절규에 대해 내가 뭐라고 응답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허무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교양인이 아니라는 식의, 우리 시대의 가벼운 허무주의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허무주의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아스포라로서 아주 절대적이고 실제적인 허무의 체험과 또 정반대로 보통 허무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삶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이 어떻게 같이 갈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정말로 서경식 선생이 살아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조금만 더 정면으로 선생이 그 지점을 대면해줄 수 있겠나.
 
서경식 : 아주 근본적인 문제다. 민족과 관련된,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허무주의라고 할 때는 두 가지가 생각난다. 가네코 후미코(편집자 주: 조선인 남편 박열과 함께 1923년 히로히토 당시 일본 왕세자와 고관들을 폭살하려다가 붙잡힌 일본인. 1926년 3월 이들 부부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가네코는 석달 후 감옥에서 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무정부주의자는 죽음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주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사생아라서 호적이 없었고, 그래서 소학교도 들어가기 힘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후미코는 가부장제와 국가 제도에 대해 아주 철저한 증오를 갖고 이를 끝까지 관철했던 사람이다. 그는 죽음으로 자기를 관철했다.
 
이봉창(편집자 주: 1932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구의 지시로 일왕 히로히토의 암살을 시도했던 인물로 그해 10월 사형을 당했다)도 마찬가지다. 과자점 직공, 철공소 직공 등을 전전하던 그는 유가다를 입고 게다를 신고 김구 선생을 찾아가 '죽고 싶다. 죽을 명분을 마련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봉창이 마지막에 히로히토를 암살하기 위한 폭탄을 가지고 일본에 갈 때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그는 평생 집착이 없었다. 이봉창도 다이스포라였고 그래서 그런 허무주의자의 분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 ⓒ프레시안

김상봉 : 삶에 집착하는 한 누구도 자유를 쟁취할 수 없다. 죽음을 무릅쓰고 자기를 걸 수 있다는 것은 별로 놀랍지 않다. 오히려 궁금한 것은 삶에 대한 의지다. 삶의 이유, 존재의 이유, 근원적으로 긍정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허무주의 때문에 병든다. 삶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고 냉소에 빠지면 모든 게 다 면죄부를 부여받게 된다. 정반대로 그 허무주의를 참을 수 없을 때 맹목적인 우상숭배에 빠져들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소련이 망하기 전까지 역사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 유토피아도, 절대자도 오지 않는 시대다. 서경식 선생은 디아스포라로 그걸 누구보다도 철저하고 처절하게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살았다.
 
서경식 : 진부한 말이 될 것 같아 쓰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정의'다. 정의롭게 살고 싶다는 욕심이다. 중국의 루쉰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어떤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길이 있다고 해서 걸어가는 게 아니다. 소련이 무너졌다고 해서 그만두는 건 싸움이 아니다. 근거가 없더라도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다. 전부 다 없어도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는 뭐냐고 물으셨는데, 그럼 전부 다 없으면 죽는 것이냐. 개개인의 허무주의와의 싸움이다. 19세기 러시아 허무주의자들은 다 귀족이었다. 사치스럽게 살 수 있었는데 노예를 해방시키고 재산을 나눠줬다. 이런 허무주의적 테러리스트들이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변화가 있었다.
 
김상봉 : 수백년 전 사람이 경험했을 무조건적이고 직접적인 삶의 동력 같은 것은 이제 누구에게도 없다.
 
서경식 : 나는 유한이다. 국가나 국민은 무한이다. 내가 국가를 위해서 죽으면 불사가 된다. 새로운 우리라는 걸 구성할 때는 이런 사고방식을 거부해야 한다. 죽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직시하지 않는 한 국가나 국민이 재생되고, 국가주의나 국민주의로 후퇴할 수 있다.
 
진짜 자유인이 되려면 이것부터 거부해야 한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게 자기 자신의 인생에 주인이 되는 길이다. 마음 아프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를 태어나게 만든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이 삶의 끈을 잡는 행위 자체가 될 수 있다. 이를 놓는 게 패배라고 생각해서 끈을 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내일 여기에서 몸을 던지고 죽었다고 해도 놀랄 필요나 가슴 아프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Posted by 소이연
문학 / 2007/08/15 00:18

소설을 보고 이런 식의 느낌을 받은 것은 오정희씨 소설을 읽은 이후에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오정희씨와 배수아씨 소설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지만.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그 누구에게도 감정 이입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아무래도 저만치 거리를 두고 이 텍스트와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훔쳐볼 수 있는 것들은 이미 제한되어 있다. 이 소설의 서사 속에 어떤 고통이나 멜랑꼴리 따위가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것들에 도저히 다가갈 수 없다. 나 같은 독자가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소설이 너무나 고매하거나 위대하고 또 고귀한 빛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닐게다. 다만 이 소설의 고통은, 혹은 어떤 것은 정말 내가 인식할 수 없는, 재현할 수 없는 것 같단 느낌이다. 내가 개별의 인물들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 순간, 그 인물들은 이미 텍스트에 흉한 상처를 남기고 뛰쳐나갈 것 같다. 그럼 그건 더 이상 배수아씨의 <철수>라는 소설이 아니게 되겠지. 그렇기에 나는 이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밖에 쓸 수 없는 거겠지.

나 아파, 아파요, 라고 노골적으로 떠들어 대는 서사는 도처에 널려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도 어쩌면 이러한 '자기 연민'일 것이다. '나'-미디어인 블로그나 미니홈피들을 돌아다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마도 '나'-미디어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과 목 언저리에 각인된 (어딘가 닮은) 서로의 상처 자욱들을 확인하고, 그것들을 모아서 모든 이들이 퀭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떠돌아 다니는 한밤중의 저잣거리 속에 내던져버리며, 너도 아프구나(그렇지만 내가 더 아파), 라고, 누구에게 전달되는지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되뇌이며 돌아다니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것들은, 슬픔을 온 몸에 체현하고 돌아다니는 수많은 몸뚱아리들의 영원히 반복할 수밖에 없는ㅡ그렇게 하지 못하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리고 그 누구도 그 반복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단언할 수 없는 '자기 설명'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자기의 슬픔과 고통은 온전히 자기 것이고 따라서 자기 서사는 특별하다 생각하며, 자기는 자신의 텍스트 속에서 벌거 벗었다 착각하면서(그러니 너도 벗어! 라고 말하며), 그러나 이미 기표로 둘러쌓인 두터운 외투와 가면을 걸친 채 나 몰라라 하며, 자기의 나르시스적인 독백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면서, 끊임없이 같은 서사를 반복하고 또 생산하는 그 욕망의 지리멸렬한 쳇바퀴들. 그것의 소비, 클리셰, 그리고 카타르시스.

만약 이 텍스트가 그런 구조를 택했다면, 충분히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카타르시스적인 배설이나 만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화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고통'은 아닌지도 모른다. 누구든 무엇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니까. 주인공의 "늑대의 눈" 속에 있는 그 욕망과 고통과 슬픔의 무게들에 대해서는 (적어도 나는) 언어화 할 수 없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하여 나는 배수아씨를 그리고 그녀의 소설을 굳이 특권화 하고 싶진 않다(그러나 어떤 의미에선 '숭고'로 의미화 하고 있기도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소설을 본 이후에 나는 혼란스럽지도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오늘 하루 끊임없이 어디로 튈지 몰라 들끓었던 마음은, 갑작스럽게 편하게 정돈되었다. 어쩌면 배수아씨의 소설을 접하게 된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읽지 않은 배수아씨의 다른 소설이 어딘가 무서워졌음도 말해두고 싶다.

겨우 100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그래서 이불 위에 누워서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끊이지 않고 다 읽어 버릴 수 있었던 이 소설을, 나는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더 설명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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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조각들 / 2007/07/29 10:42

나는 예전에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에 대한 포스팅(http://www.namunnib.net/30)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어딘가 맥이 빠진 듯하"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희생자의 한탄 섞인 어조나 복수심을 품은 사람의 날선 언어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한 것에 대해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여러 가지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레비에게 독자인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는 피해자를 특정한 형태로 유형화하고, 그 안에 가두려는 속셈은(타자를 관리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은) 없었을까? 피해를 받은 사람이면 으레 고통스러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럼으로써 나는 생존자의 행위성agency를 깔끔하게 무시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최근에는 다시 생각이 바뀌고 바뀌고 있다. 정희진씨의 강좌를 들은 탓이다. 정희진씨는 몇 년 전에 '가정 폭력 피해자'에 관한 논문을 썼다. 따라서 그 논문에는 '끔찍한' 실제의 사실들을 많이 기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이게 진짜냐? 꾸며낸거 아냐?" 라고, 심지어는 "아직도 더 할말이 남았냐?"고. 정희진씨는 사건 내용 자체의 끔찍함은 물론, 그러한 사람들의 (몰지각한) 반응 때문에 논문에 담을 내용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 정희진씨의 책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나는 이 책을 읽고 거의 구토할 뻔 했다. 너무 무섭고 끔찍해서...).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은 많은 경우 '미치'거나, '자살'하고는 했다. 프리모 레비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아우슈비츠 같은 끔찍한 폭력 사건의 트라우마는, 생존자들을 끊임없이 붙들어 매고 또 평생 고통을 준다. 성폭력 생존자는 물론이고, 아동 폭력 생존자들도 물론이다. 거기에 빈곤의 극한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쟁 생존자들의 이야기도, 일본 '정신대' 생존자들의 이야기도 물론이다.

이에 대한 정희진씨의 설명은 이러했다. 이들 '생존자'는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 '말하는(말할 수 있는) 것'에 차이가 있다고, 그 간극이 이들을 미치거나 자살하거나 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물론 어떤 끔찍한 일이 있다고 하여 모든 주체가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그런 끔찍한 일들이 있었지만, 난 그것을 '의미화'하지는 않고 있다. 모든 사건의 피해자를 외부에서 임의로 '피해자화'하는 것과는 다른 맥락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여전히 재발견되고 재사유되고 끊임없이 전유되어야 하는 중요한 가치다.)

서경식씨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보면, 레비가 자살하기 1년 전(1986년)부터 "가스실은 없었다" 따위의 아우슈비츠 부정론이 등장했다 한다. 1985년에는 나치의 범죄를 부정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나치를 긍정하거나 나치를 옹호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으며, 그렇게 하고자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매우 거셌음을 증명한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침공을 정당화 하는데도, 아우슈비츠 담론이 자주 사용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레비가 자살하고 난 이후에도ㅡ후에 '수정주의'라 불리는ㅡ나치를 "객관적"으로 보자는 담론이 등장하였다고 한다. 나치가 나쁘기만 한 것이었냐는 이야기는 물론, 생존자들의 경험은 그들 자신을 특권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므로 해석적이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생존자가 아닌 외부의 사람들은, 끔찍한 일에 대해 대체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아마도 민주주의의 이상, 생명의 존엄, 평등의 가치, 자유의 가치 등 오늘날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포섭되지 않는 가정폭력, 성폭력 등 끔찍하고 '외설적'인 사건 등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 때문일 것이다. 분명 한 사회의 사람들과 자기 자신은 어떻게든 좋게 좋게 살아가는데, 그 내부에서 그에 반反하는 끔찍한 일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인종주의자들의 담론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 세계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 즉 그 안에 (라캉식으로 말하면) objet petit aㅡ일종의 '배설물'ㅡ가 있다는 것, 그 사실 자체가 주체들에게는 공포이자 두려움이 될 것이다. 그 공포는 때로 생존자들을 직접적으로 억누르고 폭력을 행사하는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성폭력 생존자에 가해지는 2, 3차 폭력과 같다. 이는 일종의 '자기 기만'이기도 한데,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항상' 곁에 와 있는 타자의 경험을 못 본체 하거나 부러 보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짓이기 때문이다(먼 나라의 고통에는 민감하면서 자기 주변의 고통을 못본 체 하는 사람들도 해당한다.). 따라서 생존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말할 때 '알아서' 조절할 수밖에 없다. 그 무시무시한 간극. 아.

생존자들의 그 '조절된 경험'들은 결국 어떤 '핵core'이 제거된 것이다. 생존자의 증언을 듣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 공포를 건드리지 않는, 어떤 무시무시한 '핵'이 제거된 경험. 타자의 담론을 무한정 섭취하고 그것을 순환시키는 지배 담론 속으로 편입되는 것을 방해하는(지배 담론의 전체성whole을 해치는) '핵'을 제거한 경험. 그러나 그 '핵'이 제거되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남는 것일까?

생존자의 증언을 듣는 많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책으로 내라고, 더 많이 이야기하라고, 당신은 우리들의 영웅이라고, 그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의 범위를 정해주는 것도 또한 이들이기도 하다. 이 안에서 타자의 경험은 '동일자화' 된다. 핵이 제거된 생존자의 증언은 단순한 이야기거리와 '연민'의 대상이 된다. 고작 이렇게 되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보다("거짓말 하지마! 꾸며낸 거지? 요즘 같은 세상에 절대로 그럴리 없어!" 라고 말하는)는 훨씬 낫다고 말할 수 있는가?

따라서 적어도 한국에서 생존자/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큰 결단을 내리는 경험일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하며, 동일자들의 섭취 대상이 되어야 하며, 그 안에서 더 큰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재현하는 태도,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 고통에 공감하는 태도, 그 어떤 것도 어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 고통이 재현되고 유통되는 순간, 어떤 '핵'이 제거되는 것도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고통, 그리고 공감empathy(연민sympathy과는 구분되는)에 기초한 정치학과 타자 윤리학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라캉의 윤리학이 정확히 맞닿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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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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