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나오는 맥락이야 늘 다르지만, 어떤 사람을 불가피하게 외모로 설명해야 할 때가 언제나 있다. 정치적 올바름 같은 건 별로 상관없이 말이다. 그럴 때면 아직도 언제나 비끗해버린다. 아직도 예쁘다, 아름답다, 잘생겼다, 섹시하다, 못생겼다, 추하다, 키가 크다 하는 식으로 외모를 직접 묘사하는 단어를 잘 쓰지 못하겠다. 그래서 아주 노골적으로 "예뻐?", 혹은 "잘 생겼어?" 라고 물어보거나, 마치 뭔가를 아는 듯 "아, 그 사람 예쁘지/잘 생겼지"라고 말하면... 정말 답도 안 나온다. 아직까지 그 말에 전혀 호응을 할 수가 없다. 그럼 서둘러 에둘러 표현할 뿐; 음.. 예컨대 이런 식으로 "(삐질삐질) 어... 어떤 기준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사실 이 단어들은 어느 수준의 '객관'을 가정한다. 즉 이 단어들은 사회적으로/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어떤 (성애적인) 외모 특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주관적 판단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판단에 가깝다. "예뻐?", "잘 생겼어?" 따위의 질문이나 "예쁘다", "잘 생겼다"라는 진술은 잠재적으로 yes나 no로 판단할 것을 요구하게 되고, 주관식 판단은 이단과 탈주로 간주된다. 이 말에 yes, no 따위로 판단하는 건 그 말 안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외모에 대한 이성애 사회의 규범을 일단 승인하고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들을 쓸 때 "내가 볼 땐..."이나 "내 기준에서는" 같은 단서를 붙인다 해도 크게 다를 바 없으며, 그 뒤에 덧붙이는 설명도 단지 변명처럼 들리게 될 뿐이다. (흔히 쓰이는 "귀엽다"는 말은 노골적으로 권력을 드러내는 말이니 사람에 대해서는 더더욱 쓰기 어렵다)
그에 비해 사람의 외모를 표현할 때 "매력적이다", 아니면 좀 고풍스럽게 말하자면 "곱다", 하는 식의 표현은 조금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 같다. 이 단어들은 앞서 언급한 단어군에 비해 '이차적'인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해 이 단어들은 직접 외모에 호소하기 보다는, 차라리 어떤 모종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한 때 유행했던 형용사 "훈훈한"이 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단어는 외모로는 '2급'이지만 친근감 있다는 뉘앙스로 쓰였다). 그것은 주관적 체험을 암시한다. 그 말은 다만 내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전체 호감도를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외모에 대한 사회의 규범을 비판하지는 않아도 슬며시 피해가는 효과가 있다. 쓰기에 큰 무리가 없고 안전하다는 얘기다. 시각보다는 청각과 후각이 더 민감한 나로서는 선택하기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단, 누구도 "그 사람 매력적이야?" 같은 질문을 하거나 "그 사람 되게 매력적이더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게 문제; 또 많은 맥락에서 "매력적"이라는 말은 외모에 관한 말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어떤 지적/감성적 능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쓰인다. 그러니 이제는 고어(古語) 내지는 사어(死語) 느낌까지 주는 "곱다"는 단어는 말할 것도 없다(백석의 시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에 나오는 표현에 꽂힌 탓에 퍽 좋아져 버린 단어인데...). 그러니까 제발 내게 자꾸 묻지 말라고 ㅠㅠ 난 잘 모르겠다고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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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19 외모를 어찌 말해야할지
조각들 / 2010/03/19 0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