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 만에 '개강'이라는 걸 맞이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왠지 긴장되는 마음에 늦잠을 잤음에도 서둘러 집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02번 버스를 타는 줄은 무척 길어서 한참을 걸어서 줄을 서야만 했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았던가. 줄을 따라 햇볕은 뜨거웠고 공기는 눅눅했다. 정수기에서 뜬 차가운 물이 금방 미지근해졌다. 불쾌한 습기가 몸을 엷게 감쌌다. 한여름 장마철에 1회용 우비를 입은 느낌. 오래 된 마을버스는 에어컨도 잘 나오지 않았다. 과연 이게 잘 한 선택인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학교에 가서 아는 얼굴을 많이 만났다. 반가운 얼굴은 적고 피하고 픈 얼굴은 많다. 얼굴만 여러 번 봤던 후배들은 빠르게 지나쳐가는 나를 다시 한 번 힐끗 바라본다. 2년만 더 있다가 학교에 왔어도 이런 곤혹스러운 일은 당하지 않을텐데. 서둘러 단대 열람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는데 에어컨에서는 곰팡내가 난다. 열람실 한 편엔 옛날 NL이었던 사람이 고시인지 임고인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점심은 어쩌다보니 커피로 때웠다. 그 사람은 그냥 자리에서 굶는 것 같았다. 신입생 OT는 그럭저럭 40분 만에 끝났다. 밖으로 나오자 갈데가 없었다. 중앙도서관 열람실에도 내 자리는 없었고 단대에도 없었다. M 말대로 그 방에라도 자리를 잡고 싶었다. 내일 한 번만 더 권해주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제 S와 H랑 오래 술을 먹으면서 (나로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내 욕심이 어디까지인지, 내가 못하는 것 혹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침내 선명해지는 순간들!
유치한 감정들은 여전히 낯설고 내것이 아니어야 할 것 같지만, 이번 학기부터는ㅡ어쩌면 내 인생 사이클에서 마지막일지 모르므로ㅡ당분간 그 감정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다. 치기 어린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여지면 받아들여지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이렇게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이걸 긍정적이라고 볼 것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나를 낯설어하게 될 것 이다. 그것도 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같은 개강 첫날엔 이런 제목을 단 포스팅이 수 만개 쯤 올라올 것 같아서 쓰지 말까 잠깐 고민하기도 했지만, 뭐 어쩌랴 =_=;
오늘은 아감벤Agamben의 <Homo Sacer>를 읽기 시작했다. 만성적인 영어 독해력 부족으로 중간 중간 고전하기도 했으나, 버틀러에 비하면 아감벤은 수월하게 읽히는 편이다. '근대' 정치학들의 감추어진 기본 전제들을 끄집어 내서 여태껏 쳇바퀴만 돌았던 정치 담론들을 폐기하고, 여지껏 감추어져 왔던 근대 지배 권력과 담론의 원리들을 끄집어내서 한번 '근본적'으로 정치학을 재구성해보자, 뭐 거칠게 의도만 요약하자면 이런 시도로 읽히는데, 글쎄다. 어쨌든 끝까지 읽게 될지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충분히 읽는 재미는 갖춘 책 같다. 그리고 최근의 고민과도 연결되어 있는 지점들이 있고.. 아감벤의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비교적 자주 발견되는 걸 보면, 적어도 <Homo Sacer>정도는 확실히 읽어서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다가 버틀러의 <Precarious Life>도 충동적으로 빌렸는데, 과연 반납 기한안에 읽을 수 있을지...
오늘 어떤 대화 속에서 '새삼스럽게' 문득 받았던 느낌인데, 역시 '페미니즘'은 특정 집단의 전유물인 것처럼, 혹은 어떤 아우라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조금 확대 해석하면, 페미니즘에는 침범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 있기에, 혹은 특정 집단의 이해 관계에 연관된 측면이 있기에(그래서 '보편'일 수 없다는. 보편이 뭔지도 모르겠다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얼마 전에 내가 여성학 협동과정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하자, 어떤 (적어도)'친-페미니스트'였던 지인은 나에게 '용감하다'고 했다. 그와 함께 덧붙였던 말은 내가 "경계를 뛰어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사람은 선의로 말한 것 같은데다가 이곳에서 이런 글 따위에 인용되기엔 너무 훌륭한 사람이지만, 대체 뭐야, '경계'라니. 그 경계란 것은 무엇이지? 누가, 왜 설정해 놓은거지? 대체 언제부터 만들어져 있었던거지? 물론 요런 질문들도 우문인 것이 분명하지만, 현답도 나올 수 없는 것 같다. 의미를 경계 짓고 구분하는 '명사noun'의 힘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런 점들은 '페미니스트'건, '페미니스트'가 아니건 심심찮게 종종 볼 수 있는 태도인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ㅡ모든 '위험성'에도 불구하고ㅡ'페미니즘'에 그런 아우라와 '경계' 같은 일종의 판타지들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기사, 통치-행정 권력police와 구분되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s들이라면 '좌파'건 '우파'건 상관없이 때려잡고 보려는(이 상상적 집단들의 얼마 안되는 공통지점이기도 하다) 한쿡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the politics를 주장하는 몇 안되는 분야이기도 하니. (이와 관련해서 덧붙이자면, 랑시에르Ranciere는 폴리스와 폴리틱스의 논리를 분명히 구분한다. 거칠게 정리하면, 폴리스police는 이미 존재하는 포지션에 각 주체들을 배분하고 고정하는 것이고, 폴리틱스politics는 그 사회의 본연의 모습들과 존재하고 있던 포지션에 의문을 제기하고 뒤흔들어 놓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페미니즘에 '적합한' 일정한 주체들을 할당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폴리스적 논리지 폴리틱스적 논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폴리스와 폴리틱스가 명쾌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만...) 또 말이 쓸데 없이 길구만.
어쨌거나 벌써 8학기 째지만 역시 첫날은 적응 안 된다. 사람들 바글바글하고 시끄러워 앞에 앉은 사람이 뭐라 말하는지도 알아 먹기 힘든 식당은 물론이고, 열람실에 속속들이 꽉꽉 들어 앉은 고시생들이라니. 무엇보다 문제는 사범대 부근에서 10분만 서 있어도 지인들을 몇 사람씩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커피 한잔을 사먹으려고 해도 인사를 몇 번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복학한 사람들이 이리 많다니 원. 적게는 한 학기에서 많게는 몇 년씩 못보던 사람들이, 내가 가졌던 기억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서 안 그래도 처리 속도 느리고 용량도 부족해서 골치 아픈 나의 정신 세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나름대로 평온했던 학교여서 정이 들었었는데 정말 갑자기 정나미 떨어지려고 한다. 물론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개개인의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라는 사람 집단 덩어리들이다.
어떻게 하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학교 다닐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 눈에 안 띄고 벤치에 앉아 선선해질 가을 날씨의 바람을 맞으며 책을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밥 안 먹어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일 아침 9시 프랑스어 수업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