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출근해서 오늘 오후에 있을 일들을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가득 받고 있는데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강아지가 죽었다는 문자였다. 어떻게 해얄지 모르겠다고. 처음에는 이해를 못해서 잠깐 눈꺼풀만 끔벅끔벅했는데, 곧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알 것 같았다. 집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시든 것이다. 올해 들어서 세 번째, 내가 집에 잠시 살게 된 걸로 따지면 네 번째로 말이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너무너무 건강해서 마당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강아지였는데, 너무너무 사람에게 들러붙길 좋아해서 그제 아침만 해도 스스로 발 밑에 들어와 밟히곤 하던 강아지였는데, 갑자기 죽다니 믿기 어려웠다. 거짓말이면 정말 화내려고 전화해봤는데, 동생 목소리에도 물기가 있는 걸로 보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벌써 파리가 꼬이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무덤을 만들어 줄수는 없겠냐고 하니까 못 하겠다고 했다.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때까지 잠깐 박스로라도 덮어서 파리는 안 꼬이게 해달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에 와서 보니 육개장 라면 박스가 마당 한 구석에 있었다. 그리고 벌어진 틈새로 보이는, 움직이지 않는 갈색 털뭉치.. 죽은 몸은 잠자는 몸과는 달랐다. 숨을 쉬지 않는 작은 몸은 어쩜 그렇게 쉽게 눈에 띄는건지..
슬프기 보단 화가 났다. 출근에 과외에 입시 준비에 바쁜 척 굴었던 나는 이 강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남 탓부터 하고 보는 나로서는, 이 강아지에게 사람들이 가했던 온갖 '학대'들이 먼저 떠올랐다. 먹을 걸 절제를 못하는 개에게 잘 먹는다고 마구 부어준 먹거리들, 똥을 아무데나 싼다며 내려치던 것들, 등등. 입에 독설들이 차올랐다. 같이 살고 있는 다른 강아지에게 내뱉을 말들, 엄마 아빠 동생 등 이 강아지와 관계했기에 강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쏟아낼 독설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향한 독설. 혀 뿌리에 보라빛 피가 쏠리는 듯 했고 터져버릴 것처럼 아팠다. 그러나 내뱉는 순간 누가 다치게 될지는 뻔히 알았기 때문에ㅡ바로 나ㅡ말을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갑자기 죽었을까, 하는 질문은 정말 쓸모가 없다. 제발 집에 다시는 생명을 들이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집에 다시는 동물을 들이지 말자고 말을 해놓은 상태다. 나도 내가 완전히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는, 절대 다른 생명과 같이 살지는 않을 것이다. 다들 너무나 무책임하다.
무력함을 느낀다. 언제나 현재만을 살아왔고 가끔 과거라는 기억의 쓰레기장을 들여다 보며 살았던 나로서는 생로병사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 태어나는 생명을 알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을 알지 못하며, 병이 들어보지도 병든 사람을 간호하지도 못했으며, 죽은 이와 대면한 적도 없다. 어느 것 하나에도 진짜 책임감을 갖지 못했다. 억울하고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단순한 분노와 슬픔을 느낄 뿐, 정확히 어떻게 해야는지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표현도 없다. 그래서 애도도 없다.
한 13~4년 쯤 된 강아지랑 같이 살고 있다. 이쯤 되면 강아지라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어쨌거나. 이름은 좀 촌스럽지만 "해피". 최근에는 40일 정도 된 코카스파니엘도 입양했는데, 얘 이름은 "지ㅇ"이다. 권ㅈ용ㅋ 좀 귀엽긴 하지만 가끔씩 한대 콩콩 쥐어박고 싶을 때가 있어서, 딱 빅bang의 그와 너무 닮아서 그렇게 지었다. 물론 13~4년 동안 이 집을 거쳐간 강아지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사고로 저 세상으로 가거나 가출해서 돌아오지 않거나 입양되거나 하여 지금으로서 남은 강아지는 해피와 지용이 둘이다.
지용이로 말할 것 같으면, 그야말로 "뇌마저도 근육으로 이루어진" 강아지다.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없다. 너무너무 예쁘고 귀엽긴 한데, 귀여우면서도 영특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소위 "3대 지랄견"에서 2위로 손꼽히는 강아지니만큼 하는 짓이 얼마나 얄미운지 모른다. 처음에는 실내에 데리고 있다가 하도 힘들게 하기에 밖에 내놨더니 해피와 곧잘 지내는 것 같아 안심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해피한테 많이 혼나고 있다. 이유인 즉슨, 밥을 주면 자기 몫을 게걸스럽게 해치우고 나서 해피에게 달려가 다 뺏어먹기 때문이다. 해피는 아무리 먹을 것을 많이 줘도 자기 먹을만큼만 딱 먹고 아껴뒀다 다음 끼니에 또 먹는 자기 체중도 잘 관리하는 멋쟁이 강아지인데, 지용이는 그렇지 못하다. 자기 먹을만큼 주면 먹고, 바로 그 다음에 또 주면 또 다 먹는다. 허어... 해피 밥을 뺏어 먹을 때 해피가 막 물어 뜯기도 하고 으르렁대기도 하는데, 깨갱소리만 낼 뿐 심지어는 밥그릇 안에 들어가 웅크린 채 다 먹어치워버리곤 한다-_-
어쨌거나 해피 요 녀석은 정말 지용이와 달리 너무나 영특한 만큼이나 방랑벽에 역마살까지 있어서 진짜 뽈뽈거리고 잘도 돌아다니곤 했다. 그래서 로맨스(!)도 많았고, 자식들도 슬하에 참 많이 뒀었다. 하지만 요 집 주변에는 차가 워낙 많이 쌩쌩 돌아다녀서 강아지는 물론 고양이 로드킬도 많이 일어나는 만큼(예전에 키웠던 몇몇 강아지들도 요 주변에서 사망ㅠ_ㅠ) 묶어두는게 해피 안전을 위해서는 좋으리라는 아빠의 판단과, 돌아다니게 내버려 두면 그야말로 하루종일 졸졸 따라다니는(엄마의 직장 앞에서 기다리다가 같이 퇴근하기도 했다) 해피가 귀찮다는 엄마의 판단 하에 내가 서울서 자취 생활을 시작할 때쯤 하여 해피는 구속줄에 묶인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해피를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구속줄에서 풀어줬다. 진짜 오래전부터 풀어 놓고 싶은 맘이 컸는데... 다 내가 게으른 탓인 것 같다 흑. 거의 5년 만이다. 풀어주는 동시에 해피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사방을 쏘다니더니, 내가 잠깐 방에 들어간 사이에 가출을 해버렸다-_-;; 요 근처에 사는 자기 아들 보러 간것 같지만 말야. 그러다가 엄마가 주변에 잠시 볼일 있어 나갔다가 "해피야~"하니까 곧바로 들어와 버렸다.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턴데, 방금 있었던 에피소드다(^^). 해피는 진짜 명견이라고 자랑할 수밖에 없는 백만가지 에피소드 중에 단편적인 에피소드. 방금 전에 난 엄마의 심부름으로 고무장갑을 사러 가야 했다. 근데 마당에 있어야 할 해피가 없는 것이었다! '어휴, 또 나갔군...' 싶어서 그냥 대문을 나섰는데, 밖에서 해피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나는 해피를 집에 들어놓을 요량으로 해피를 부르기도 하고 들어가는 시늉도 여러 차례 했지만 해피는 요지부동이었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가게를 향했는데, 해피가 쫄랑쫄랑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방울 소리가 뒤에서 들리는게 어찌나 기분 좋던지. 가게에 들어가 고무장갑을 사서 나오는데, 역시나 해피는 가게 문 밖에서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는데, 해피가 갑자기 앞장서서 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수상쩍은 옆길이나 창고 같은 데 잠깐 들어갔다가 도로 나오는 일을 반복하고, 내가 일부러 걸음을 멈추니 자기도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기도 하고, 하는 것이 꼭 나를 지켜주려는(;;) 것 같았다. 대문 안에 들어서니 그제야 자기도 폴짝 뛰어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아까는 그렇게 들어오라고 해도 안 들어오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