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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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09 깨끗한 것에 대한 강박
조각들 / 2008/02/09 23:43

문득 문득 생각이 나던 것인데, 어쨌든 한국에서 최근 몇 년간 증가하고 있는 '깨끗한 것'에 대한 집단 강박은 소름끼치는 결과를 초래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핸드워시 제품 같은 항균제품의 판매량 증가, 혹은 흡연에 대한 신경증적인 거부 같은 현상들, 정리하자면 세균, 냄새, 박테리아, 추한 것, 이 모든 것들을 '더러운 것'으로 치부하려는 최근의 현상은, 어떤 무엇의 알레고리로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깨끗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단지 개인의 호오(好惡)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깨끗한 것에 대해 강박을 가진 사람들은, 지극히 당연하게도 더러운 것에 대해서 잠재적으로나마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세균이 득실득실하고 비위생적이며 거리의 '미관'을 해친다고 선전함으로써 노점상 철거를 정당화하는 논리도 이와 연결될 수 있다. 또한 '노인 냄새' 난다고 노인들을 실버타운 따위의 '미화된' 장소로 게토화하는 것이라든지, 심지어는 이주자들에 대해서도 더럽다는(잠재적 범죄자 취급, 피부색에 대한 혐오, 다른 냄새에 대한 거부 등) 낙인을 찍음으로써 자신의 차별을 다른 의미로 정당화 할 수 있게 된다ㅡ외국인에 대한 전통적인 편견을 정당화해주는 기제는 냄새였다. 더러운 것에 대한 의미망이 사회적으로 강력하게 존재한다면, 무엇이 더러운 것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결국 사회적 의미-투쟁으로 연결될 것이다. 거기서 정치가 발생하는 것이고.

이런게 더 무서운 것은, 그냥 각 개인-자아들이 그냥 싫으면 싫다는, 아주 평범할 수 있고 사소할 수 있는 그런 이유로 '더러운 것'들을 몰아내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엔 논리적이라거나 이성적인 이유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법칙인가. 싫다는 데 뭐 어떻게 할 것인가. 더럽다는 데 뭘 어쩔 것인가. 혐오스럽다는 데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자기도 잘 컨트롤 할 수 없는) '신체'가 거부한다는데. 참 뻔뻔한 변명들로 느껴지지만, 이런 말들 속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차라리 예전에 "~가 정상적이잖아", "~가 당연하잖아" 하는 식으로 정당화되는 차별 의식은 공박할 수나 있었지...

게다가 오늘날엔 개인의 취향에 대해서 거의 신격화된 존중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 싫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방식이든 접근하기가 힘들어졌다. 이제는 그런 접근들을 '폭력'이라고 의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사람들이 자아의 경계벽을 강하게 쌓여 간다는 점,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나누는 이 구분법이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점, 깨끗한 것에 대한 강박이 인정받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앞으로도 국민-민족국가는 이어질 것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파국의 시나리오 밖에 쓸 수 없다...


덧) 막상 써 놓고 나니 좀 오버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어쨌거나 경계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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