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단어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어들은 서로 불화하고 선택적 친화력을 가지며, 따라서 그것들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를 그린다. 혹은 저마다의 '진영(陣營)'을 뽐낸다. 그것들은 특정한 분위기를 풍겨내며, 어떤 것들에는 인력(引力)을, 어떤 것들에는 척력(斥力)을 내뿜는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서로의 자장 속에 존재한다. 포함적(inclusive)이면서 동시에 배제적(exclusive)이다. 그리고 요즘 나는 그것만이 내 공부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70%는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느끼고 있다. 어딘가에는 '진리(Truth)'가 있을 것이라는 기획을 포기한 자리에 여전히 남아서 조금씩 썩어가던 미련은, 적어도 작은 '진실(truths)'들은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미련마저 잘라낸 자리에서 움트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단어라는 그런 희망과 신념 뿐이다.
이럴 때 단어들은 결코 단순한 '수사'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가장 확실하면서도 물질적인, 특정한 장소와 주체(의 입)을 갖는, 그리고 가장 독특(singular)하면서도 또한 고도로 정신적인 그 무엇일 것이다. 예컨대 네가 뱉어낸 "그리움"이라는 단어와 다른 네가 뱉어낸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전혀 다른 무게와 부피를 가지고 전달된다. 따라서 단어들은 단순히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에 새겨진다고 보는 것이 옳다. 또한 우리는 어떤 단어(의 우주)에 참여함으로써,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다르게 지각하고 인식하고 사유한다. 만약 우리가 저마다의 사전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인지/인정하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저마다가 편찬하고 있는 사전의 짜임새와 어휘풀이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너의 입에서 전달된 단어들은 네가 쓰고 있는, 또한 네가 살아가면서 편찬하고 있는 사전의 일부이다. 따라서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수사'가 아니다.
물론 논리의 확실성, 명료성만을 글쓰기의 규범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수사는 거치장스럽거나 화려할 뿐인 허망한 장식품일 것이다. 그들은 수사를 논리를 왜곡하거나 논리의 불명확함을 술수를 부려 극복하려는, '메이크업' 같은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어들은, 벤야민의 말을 바꾸어 표현하자면, 스스로를 '통해서' 어떤 것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어들은 스스로의 '속에서(안에서)' <어떤 것>을 전달한다. 그 <어떤 것>은 물론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며, 우리를 우리로 가능하게 하는, 느낌과 정서와 감정의 복합체이며 우리의 삶과 미래를 향한 지향 그 자체를 담고 있다(나는 아직까지 그것을 <어떤 것>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따라서 그 <어떤 것>은 단어와 불가분이(어야 한)다. <어떤 것>의 본질이 따로 있고, 단어(언어)는 단순히 그것을 전달하는 한갖 매개인 것은 아니다. 단어는 어떤 것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실현한다. 다시 말해, 내가 쓰는 단어는 나와 너의 관계를 표현하고 동시에 실현한다.
덧) 대학원에 와서 내 글에 대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ㅡ아마도 비난일 것인데ㅡ"화려하다"였다. 나는 내 글이 한번도 화려하다 느끼지 못했다. 나는 의도적으로 멋있게 쓰려고, 있어보이게 쓰려고 한적이 없다. 나는 자랑하려고 쓰지 않는다. 또한 포장하려고 쓰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자랑할만한 것도 나는 가지고 있지 않고, 포장하고 싶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추상적인 독자 K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내 글은 K와 연결되는 방식이다. 혹은 K와 공존하는 상상적인 소세계를 창조하고 그곳에 거주하면서 그곳으로 향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나는 내가 K에게 표현하고자 했던 것, 그것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들더러 "화려하다"라고 비난한다면 나는 당신과 어쩌면 전연 다른 사람일수도 있을 것이며 당신은 절대로 K일 수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활동했던 동아리를 나오고 난 후로 나는 지난 몇 년간 혹시나 하는 기대로 몇 가지의 기획에 발을 담그었지만, 돌이켜보건대 그 어느 것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모든 기획했던 것들은 죄다 무너지고 내게 남은 것은 허약하디 허약한 몇 마디의 말 뿐이다. 아니, 말의 순간, 선언의 순간은 이미 지나가버렸고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흐릿한 기억일 뿐이다. 그런 모래알 같은 기억들을, 마치 마지막 남은 희망의 소포인 것인양 포장을 뜯어 내용물의 실체를 확인하지 않은 채 끈질기게 내 품에 소유하려드는 것은 오래된 내 불치병이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겉포장의 그럴싸함이 배고프고 무능한 청춘의 양식이자 구호품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약속의 달콤함이었다. 그것은 또한 어떤 욕망에 대한 우리들의 공동서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소포 안에 든 것이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것처럼 해골인지, 멍청이라고 쓰인 쪽지인지, 아름다운 초상화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침내 포장을 뜯어야 할 때다. 모든 것들은 실패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거나, 멍청이라고 쓰여 있거나, 해골이거나, 아름다운 초상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마침내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확인할 순간이다. 그러나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무너져 버릴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무너짐과 실패와 더 이상 아무것도 충실함을 띄지 못하는 무의한 언어들 뿐이다. 또한 무의한 언어가 헛도는 관계를 직유하는 것은 아니라고 애써 부정하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물론 같이 일을 한다는 것, 그러니까 기획이란 것이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몇 번의 실패나 무산이 총체적인 기획무능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런 취약한 기억에 의존하는 나 자신이다. 왜 기억(약속)을 상기시킬 때 모종의 죄의식을 느끼면서 말을 건네야 할까(왜냐면 우리는 모두 이런저런 일들로 분주할 나이니까?). 왜 나는 여전히 그런 것들에 의존해야만 할까(왜냐면 현실은 늘 시궁창이고 언젠가는 빠른 속도로 벗어나고 싶으니까?). 왜 우리는 기획을 실현시키지 못할까(왜냐면, 아니, 어쩌면 기획과 약속의 언어 자체가 이미-항상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결국 모든 기획했던 것들은 무너지고 내게 남은 것은 안타까운 질문들 뿐이다. 당분간은 일을 벌리지 않아볼 것이다. 상대적인 수동성 속으로 침잠해서 도대체가 무엇이 왜 불가능해졌는지,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이 가능할 것인지를 따져볼 것이다. 감각을 예민하게 정련할 것이다. 대화와 독서, 글쓰기 모두가 그런 감각의 세련을 위한 훈련이 될 것이다. 배수아의 <독학자>처럼 되어 볼까? 그러나 나는 그것이 불가능한 기획이라는 걸 잘 안다. 나는 그것마저도 '혼자'는 아니면 좋겠다고 희망하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끈질긴 역설이고 아포리아다. 불치병이다. 결국 내게 돌아오는 가장 큰 문제는, 너와 나의 (가능한) 공동서명인 것이다.
특정한 문화적 기호에 대한 선호를 '취향(taste)'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문화적 기호를 통해 정치, 즉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행위를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커트 보네커트를 좋아하든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든, 쇼팽을 듣든 라흐마니노프를 듣든, 홍대 인디 음악을 듣든 대중가요를 듣든, 그 선호가 사람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주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네가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취향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 각인된 문화적 기호와 맥락 속에서 실천되는 문화적 기호의 생생한(혹은 진부한) 삶에 대해 말해줄 뿐이다. 그건 문화적 기호의 다면적인 유통 방식에 대해 말해줄 뿐이다. 하지만 취향은 구체적인 컨텐츠가 아니라, 의미작용의 이너라이프, 해석의 방식, 사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실천, 관계의 윤리 같은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취향은 내용이라기보다는 형식이며, 또 우리의 영혼이고 퍼스낼리티다. 우리가 같은 것을 좋아하더라도 그것을 제 각기의 삶으로 끌어가는 방식은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취향은 정치적이지만 문화적 기호는 그렇지 않다. 취향은 나의 의식적 차원에서도, 전/무의식적 차원에서도(예컨대 신체에 각인된 행동 양식) 동시에 작동한다. 오로지 취향만이 너와 나의 케미스트리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문화적 기호에대한 선호, 즉 너와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고 좋아하며 싫어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러므로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문화적 기호는 취향과 다른 문제다. 착각하지 말자. 그러나 우리들, 블라인드 스팟을 가진 우리들은 언제나 문화적 기호로 취향을 판별한다.
벤야민은 기억이라는 단어의 어원에는 매개물(medium)이라는 뜻이 있다고 지적한다. 달리 말해, 벤야민의 '기억'은 과거에 체험했던 것을 '발굴'하기 위한 하나의 매개이다. 그렇다면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많은 부분에 '기억'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을 한 때 하나로 묶어주었던 과거의 체험을, 기억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재의 장에 소환하는 것. 그리하여 각자의 일상에 충실하느라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던 관계를 재건하고, 체험의 공백에 다리를 놓으려는 것. 같이 체험을 했다는 것은, 어떤 시간과 공간을 '의미있게' 보냈다는 것, 그리하여 각자의 몸에 서로를 새겨 넣는다는 것, 다시 말해 경험을 체현했다는 것.
그런데 그렇다고 기억이 체험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여 사고하는데 익숙하지만, 오로지 형식만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보증할 수 있을 때가 많다. 형식이자 내용으로서의 형식, 그리고 표현하고자 하는 바로서의 어떤 <무엇>이 있다(그 <무엇>을 우리는 어떤 책의 제목을 따라 <영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벤야민을 따라 기억이 매개라고 이해하더라도, 우리는 그 기억이 체험과 분리될 수 있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기억이라는 행위(형식)은 곧 체험(내용)이다. 기억하는 방식, 기억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우리의 체험 조차도 결정짓는다. 몸에 체현한 경험들은 기억에 의해 다시 배치되기 마련이고 우리의 <무엇(영혼)>도 변한다. 그러므로 오랜 관계도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얼마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다..
2.
여기서 '기억'이라는 의미를 지닌 영단어(remember)를 조금 더 뜯어보면 어떨까? 의미상으로 remember는 re/member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member는 무슨 뜻인가? '어느 집단의 일원'이라는 뜻 아닌가? 그러므로 '기억한다'는 것은 벤야민의 '기억'의 의미에 덧대어보면 집단의 성원권을 '재re'확인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이상 일원이 아닌 사람들이, 다시(re) 어느 모임의 일원(member)이 된다는 것. 이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기억하는 행위의 일상적인 측면이다.
그런데 member에는 '신체의 사지'라는 뜻도 있다. 그리하여 dis/member는 '팔다리를 절단하다'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re/member는 이렇게 절단된 사지를 다시 접합한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폭력에 의해 절단되었던 사지를 비로소 잇는다는 것.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하여 감히 기억하는 자만이 고통 끝에 잘려나간 신체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기억하는 행위의 정치적인 측면이다.
1. 관람 문화가 싫다.
특히 락 페스티벌에 가면 슬램이니 뭐니 해서 정신없이 뛰어들 노는데, 나는 내가 다칠까봐 엄청 무섭기도 하지만 또 익명의 땀 묻은 살결이 닿는게 끔찍하게 싫다. 또 좋은 공연에 과하게 신이 난 사람들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자체를 말아 먹는 꼴을 보고 있으면(동시에 그걸 또 정당화 한다) 피지컬한 나쁜 충동을 느낀다.
2. 좋은 자리 잡는 게 어렵다.
이어폰/헤드폰으로 듣는 음악은 최고의 음질은 아니지만 일정한 음질은 보장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라이빗한 감상을 지원한다. 그러나 페스티벌에 갈 경우 음향이 좋은 자리에 있는게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자리를 잡는게 사실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정석이 아닌 이상은 말이다. 앞서 말한 슬램 따위나 밀집한 관중들 때문에 구석진 자리로 몰려나고나면, 내가 음악을 들으러 온건지 혹은 나중에 블로그 따위에 페스티벌에 갔다 왔다고 인증하려고 온건지 헷갈려진다.
3. 락페에 온 20대라면 락페의 모든 부분을 좋아해야 하는 것 같은 분위기.
나는 음악 들으러 가는 거지 '락페'를 즐기려고 가는 건 아니다. 난감한 사람들에게 항의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는 것도 싫다. 그리고 나는 유스 컬쳐가 싫다. 락페는 마치 유스 컬쳐인 것처럼 이해된다. 10대 후반~20대 혹은 30대 일부를 포괄하는 사람들이라면 즐길 수 있는 문화처럼. (사실 그런 방식으로 호명된 모든 하위문화들이 싫다. 청소년문화는 청소년문화로 이해되어서는 안되고 노년 문화도 노년 문화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뭐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락페엔 언제나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_- 듣기 싫은 음악(예컨대 지루하거나 나쁜 음악)이나 시간을 죽이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들어야한다는지 하는 문제는 그리 나쁘진 않다.
아마 결국 난 앞으로도 락페엔 영영 못갈거야. 스무살 대 초반에 갔다온 걸로 만족해야지. 나는 그냥 분위기 좋은 작은 공연장에서 자리를 잡고 맥주를 홀짝이며 조곤조곤 노래하는거나 들을래.
기억과 망각은 서로 완전히 배타적이고 모순적인 관계이기 쉽다. 기억하고 있는 것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고, 잊어버린 것은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나의 형편없는 기억력에 좌절한다. 또 기억하기 위해 쏟아붓는 시간도 아까워 한다. 학부에 다닐 때는 일부러 객관식 시험이 없는 수업만 골라 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이런 인식은 기억을 특권화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인식과 관심범주는 늘 제한되어 있기에 모든 국면을 총체적으로 전부 다 기억할 수는 없다는 사실, 또 우리 뇌의 기억력은 늘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은폐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좋은 기억력은 늘 부러운 대상이었다.
그러나 삶의 어느 순간에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 차라리 망각일 때가 있고, 망각했던 것이 차라리 기억일 때가 있다. 특히 경험과 역사를 언어화할 때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경험을 부분적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이 발화되는 순간 그 기억이 거짓일 수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때때로 기억은 순전히 어떤 사실을 망각하기 위해서 존재할 때도 있다. 그렇게 기억은 차라리 망각의 한 형식일 때도 있다. 또한 망각도 기억의 한 형식일 수 있다. 그것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수정하고, 동시에 우리의 기억과 경험을 수정한다.
억양을 버려야만 프랑스 문학계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내 억양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여겼다.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의 억양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부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억양이 더 두드러졌다. 가족끼리 있을 때, 혹은 친숙한 곳에서 화를 내거나 감탄할 때, 공적인 자리보다는 사적인 자리에서 그랬다. 하지만 나는 출판물에서는 나의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의 억양이 드러나지 않으면 좋겠고, 그렇게 바라도 좋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으로서는, 그리고 반박하는 입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독서를 통해' 내가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없을거라 생각한다. 나 자신이 그런 언질을 주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처럼 세심하게 억양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나는 일종의 후천적인 지식을 얻었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무슨 교의로 삼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프랑스어 억양은 무엇이든 간에, 특히 억센 남부 사투리의 억양은 공적 발언의 지적 위엄과 양립할 수 없다.
_자크 데리다
모두에겐 나름의 사정이 있지. 누군가는 그것을 감추고 싶어할테고, 누군가는 그걸 자원삼아 관계를 지배하는 열쇠로 삼으려고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나름의 사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우리는 그것을 그것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우회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왜냐하면 저마다의 사정이란 것은 저마다에게 주어진 억압의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억압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저마다의 슬픔, 저마다의 상처, 저마다의 억압, 저마다의 과제, 저마다의 이야기. 데리다의 저 이야기는 어떤가? 데리다의 복잡한 철학이 어떤 개인적 사정에서 출발했는지를 조금이나마 보여주지는 않는가?
'모두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과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는 욕망은 언뜻 모순되어 보인다. 나의 사정은 보편적이어야 하지만, 우리 모두에겐 나름의 사정이 있으므로 나의 사정은 절대로 보편적일 수 없다. '저마다'였던 우리는, 그냥 '저마다'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결국 보편을 향한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소설로, 누군가는 논문으로, 누군가는 블로그로, 누군가는 영화나 음악으로 보편을 꿈꿀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의 소설, 나의 논문, 나의 포스팅, 나의 영화, 나의 음악이 오로지 나의 사정이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이면 보편성에 실패하는 탓에,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철저히 암호화한다. 깊은 사정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이 감추고 더 많이 꾸미고 더 많이 분열한다.
발견되길 기다리는 저마다의 사정, 간절히 해독되길 기다리는 저마다의 암호... 그러나 보편성 획득에 실패하고 주목받지 못한, 오로지 개인소장하게 될 뿐인 이야기들. 내가 인터뷰하는 사람 혹은 필드워크 하는 사람이 된다면, 바로 이러한 사정, 암호, 이야기에 흠뻑 빠져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온전히 보편화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것이다.
"아시아"라는 말과 "아프리카"라는 말은 새삼 지적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일상적으로 오용(catachresis)되고 있는 오염된 범주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의 단어 사전에서 "아프리카"라는 말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처럼 설명된다.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상상하지, 구체적인 하위 범주 하나하나를 상상하지 않는다/못한다. 아프리카는 그저 "아프리카"일 뿐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아프리카"라는 단어에 의해 과소 대표된다. 이는 최근 들어 미국이 자기 스스로를 아메리카 대륙의 일개 연합국가로 재현하지 않고, "아메리카(America)"라고 칭하며 스스로를 과대 대표하고 있는 것과는 정확히 반대된다. 여기에 대고 사실 "아프리카"에는 수없이 많은 국가가 있고, 한편에는 국가로 포함할 수 없는 민족과 부족이 여전히 살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역사는 너무나 다양하고 현실의 상황도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아프리카"라는 단 하나의 어휘로는 아프리카를 절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이야기해봤자,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힌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환상으로서, 그리고 지배언어(master word)로서의 "아프리카"이지, 이런 저런 '아프리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전에 찾았던 한 전시회에서, "아시아"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을 만났다. 지도를 크게 붙여 놓고, 관객들이 투명한 필름을 그 위에 대고 자기가 상상하는 '동아시아(East Asia)'를 직접 그려보게 하는 참여식 작품이었다. 나도 하나 쯤 그려보려고 했다. 중국의 민족분리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지도를 그리려고 했는데, 부끄럽게도 정확한 지리적 위치를 몰라서 포기하긴 했지만(-_-;;)... 내 것을 그리는 대신, 사람들이 이미 그려 놓고 떠난 필름들을 비교해봤는데 꽤 재밌었다. 같은 지도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북한만 쏙 빼놓고 한-중-일 3국만 그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남아시아'를 '동아시아'의 범주로 포함하는 사람도 있었고, 몽고를 넣은 사람도 뺀 사람도 있었으며, 서부를 제외한 러시아의 거대한 땅덩이까지 포함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아시아라고 말할 때 같은 것에 대해 말한다고 할 수 있나?
최근에 출간된 어떤 책에서 어떤 정치학자는 '감정의 지정학'을 들먹이면서, "희망의 아시아", "두려움의 유럽", "굴욕의 이슬람"으로 나누어 세계의 정치-경제학적 배치와 관계를 살핀다. 감정이 요새 나의 키워드기 때문에 꽤나 재밌을 것 같아서 서점에서 읽어 봤다가 너무 끔찍해서 그만두었다. 새뮤얼 헌팅턴의 아류, 혹은 희극적 반복일 뿐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헌팅턴의 유명한 '문명의 충돌'이라는 명제를 '무지의 충돌'이라고 비꼬았던 에드워드 사이드도 생각났다. 그렇다면 나도 '감정의 지정학'이 아니라 '무지의 지정학'이라고 비꼬아도 좋을까. 이 책은 미디어 스케이프와 통념적인 현실 정치지형도를 배경으로 추론과 직관으로 쓰였는데, 이러한 직관이 신선하거나 통찰력 있게 느껴지면 모를까 진부하기 짝이 없는 편견의 결정체이자 재생산품에 지나지 않았다. 정치엔 언제나 감정이 동원되고, 동원된 대중 감정은 미디어와 일상의 실천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며, 이렇게 재현된 감정이 '공식적인 감정'이 된다는 당연한 과정을 분석하지 않고, 감정과 정치를 실체화하는 책이다. (마지막에 가서 수십 년 뒤의 모습을 '예언'하려 드는 선지자적 자세도 잊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 범주가 우리에게 주는 이득이 무엇이란 말일까?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움이 되기는 한다는 것일까? 아무 해당 사항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이런 범주는 특정한 정치-경제적인 이해관계의 효과일 것이라는 것. 그 범주는 매우 유동적이며 역사적, 정치적인 범주라는 것. 유럽연합에 터키가 가입하고자 하니까 극렬히 반대하는 유럽연합의회와 유럽 인민들을 생각해 보자(하긴 터키와 유럽 문제는 하루이틀된 얘기가 아니지). 곧 돌아가게 될 학교에는 아시아 연구센터였나 하는 난해한 이름을 가진 연구동도 들어선다고 알고 있다. 돈 깨나 들여 짓는 것 같던데, 한동안은 삐까뻔쩍하게 잘나갈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라는 말은 나름의 힘을 갖고 계속 쓰일 것이다.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돌아가셨다. 새벽 4시 쯤이었나, 혼곤하게 잠에 빠져 있을 무렵 밖에선 약간의 소란이 느껴졌지만 나는 계속 잤다. 일어나니 부모님과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동생을 깨우고 학교에 갔다. 컴퓨터 수업을 하던 도중 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비로소 할머니의 부고를 들었다. 그러나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건, 단지 할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할머니가 해주곤 했던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할머니의 입장에서 봐도 할머니는 매일 아침마다 팔에 찔러 넣던 인슐린 주사도 더 맞을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더 이상 찌를 곳이 없어 찌른 데 또 찌르며 아파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조만간 들이닥칠 시끄러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 순간 가장 궁금했던 건 고부간의 갈등으로 늘 마음 고생을 하며 눈물을 몰래 흘려보내던 엄마의 얼굴이었다. 엄마는, 지금, 기뻐하고 있을까.
수업시간에 불려갔던지라 돌아와서 다시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애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더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호들갑을 떤건 내가 아니라 그 애였다. 너, 그럼 빨리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무슨 수업이냐고, 큰일 났는데 이거 어떡하냐고. 주변이 웅성웅성하면서 내게 시선이 쏠렸다. 나는 너무 놀랐다. 그 순간 왠지 울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울음이 나왔다. 할머니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해서가 아니라 어떤 시선과 압력에 의해서, 나는 울었다. 나는 울먹이며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러라고 했다. 나는 나오면서도 멍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집이 장례식장으로 변해 있었다. 배불뚝이에 검은 양복을 입고 소주를 들이켜는 사내들과 똑같은 파마머리를 한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십이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데 "아이고, 저 어린 것이 너무 충격을 받았나봐유. 눈물 한 점 없네..." 라는 말이 들려왔다. 3일 내내 나는 방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들어 앉아 있었다. 밖은 너무 복잡했고 가짜 통곡 소리로 오염되었다. 과장된 울음 소리는 너무 시끄러웠다. 그래서 이튿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수 앨범과 미니 카세트를 샀다. 바닥에 누워 핑클과 S.E.S의 노래를 들으며 지루한 시간을 견뎠다. 부모님은 너무 바빠서 나를 찾지 않았고, 나는 때가 되면 알아서 나가서 밥을 먹고 다시 드러누워 노래를 들으며 잠을 잤다. 학교도 가지 않았다. 자유, 그것도 기묘한 밀집 속에서의 첫 자유. 해방감마저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죽음의 의미를 잘 모르는 어린애의 반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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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째 되는 날, 마침내 장지로 갈 때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울었다. 아빠와 그 형제들은 소리내어 울부짖었고 그 형제들과 결혼한 이들도 같이 울었다. 할머니의 친구들도 통곡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서 있었다. 이 자리에 불려온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시간은 언제 지나가나. 주위를 둘러보다 엄마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때서야 나는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다른 이들처럼 퉁퉁 불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기대에 따르면 엄마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안되었는데도 말이다. 그것이 연기인지, 혹은 엄마의 분노와 슬픔이 가짜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할머니의 죽음도, 사람들의 슬픔도, 장례식의 온갖 의례들도. 사람들의 울음에 드리운 그림자는, 진짜였을까, 가짜였을까.
내가 비로소 할머니를 애도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어느 날이었다. 돌아가신지 3년이 되던 해, 할머니의 부재가 생생한 어느 날 밤이었다. 할머니의 냄새와 목소리, 할머니의 말투, 할머니와의 기억. 그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나는 기숙사의 침대에서 밤새 울었다. 다음 날도 울었다. 룸메이트들이 깰까봐 베갯닢에 얼굴을 파묻고 3일 밤을 내리 울었다. 그때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슬펐다. 그 때의 슬픔은 진짜였다. 상실에 대한 슬픔은, 무려 3년 뒤에야 찾아왔다.
(만약 그렇다면 사랑하는 감정도 3년 뒤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법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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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모든 시간과 장소에는 그에 합당할 것으로 기대되는 감정이 있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울어야만 하는 시간과 공간은 정해져 있다. 그 테두리를 벗어나 우는 건 심지어 민폐가 될 수 있다. 허나 감정의 시간과 감정의 장소는 현실과 전혀 조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갑작스러운 소중한 이의 죽음 앞에서 슬픔은 너무 뒤늦게 찾아올 수도 있고, 장례식장에서도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보릿자루 같이 한 구석에 처박혀 있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이의 배신을 예상하며 미리부터 고통에 빠질 수도 있고 마침내 배신을 목격하고는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무례하게 구는 사람을 만나도, 보는 눈이 많아 황망히 도망갔다가 엉뚱한 베개에 화풀이를 할 수도 있다. 감정의 적재적소는 지나치게 어려운지도 모른다. 감정은 너무 뒤늦게 찾아오거나 너무 일찍 찾아오고, 부적절한 곳에서 폭발해 버린다.
감정의 적재적소라는 것, 그것은 예의바른 것, 도덕적인 것, 철이 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실제 나의 감정 상태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이방인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 결혼식장에서라면 기뻐하고 장례식장에서라면 슬퍼하는 것, 자기 중심적인 친척 어른 앞에서도 살갑게 굴 수 있는 것, 지루한 말에도 맞장구 치는 것, 일을 하고 피곤에 절어 돌아와서도 같이 사는 이에게 활짝 웃는 것, 그리고 너와 내가 만나면서 기대하게 되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감정이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기대와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감정은 사회적이다. 중요한 건 이들이 자동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의 시간과 장소의 적절함을 어릴적부터 학습해 왔다. (그렇다면 '나의 감정'이란 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나는 이 학습의 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아직도 그 사회화 학교 주변을 떠도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항상 부적절하게 맥락을 놓친다. 중요한 순간에 늘 말을 더듬고 허둥거린다. 그리하여 나는 늘 차가운 사람, 감정이 없는 사람, 정이 없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공부만 할 줄 알고 책만 좋아하지,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 거만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기억과 기대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꺼이 부응한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 새벽의 적막이 몸을 무겁게 누르고 모든 세상 소음을 흡수해버렸을 때, 그리하여 비로소 적요히 혼자가 되었을 때에야, 그때 느끼고 표현했어야 할 감정을 느낀다. 시간과 공간의 어긋남. 뒤틀린 이음새. 때늦은 후회.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삶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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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마음이 복잡할 때 멍하게 들여다 보게 된다(전체 화면을 추천). 어딘가에서 보고 다운 받았다. 다 괜찮을 거라고, 지나갈 거라고, 그 누구의 말보다도 더 설득력있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바다에서 잠수해보고 싶지만, 나는 물을 무서워하므로, 차라리 엄청나게 커서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지는 수족관에 가보고 싶다. 이 영상이 좋은 예다.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수족관.
권위는 개인의 됨됨, 성품, 지식, 인성 같은데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들먹이며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줄 것을 요구하는 권위주의자들은 그냥 스놉들처럼 보일 뿐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경기 교육감은 참 잘 되었다며 기뻐하던 중에 위에 링크한 기사를 읽어서 더 기뻤다. 온화한 외모 만큼이나 일상적인 자리에서의 행실도 참 고까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 또 학생들을 실제로 어떻게 대할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저런 사람도 정말이지 드무니까.
한편 씁쓸했던 건 그의 '탈권위'적인 언행 앞에서 '긴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탈권위'적인 행동을, 교육청 직원들은 새로운 '권위'로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탈권위 역시도 하나의 권력이자 권위가 되는 상황이다. 곽노현 교육감 당선자가 얼마나 탈권위적이고 실제로 권위에 반대하든지 상관없이, 그의 임기 동안 사람들은 새 수장의 방식에 적응하게 될테지만 궁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다음 교육감 당선자가 전통적인 권위적 인물이라면, 교육청 사람들은 이내 거기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물론 지난 대선 결과가 말해 주듯, 선거 한 방, 당선자 1인으로 공직 관료 문화가 바뀔리도 없을 것이다. 대선 한 방에 관료 문화는 얼마나 빠르게 바뀌었는가.
한국 사회에서 탈권위적으로 살려는 노력은 쉽게 좌초하기 마련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학생들을 대할 때 탈권위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처음엔 좀 긴장 관계가 유지되지만(대체로 새로운 방식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훨씬 더 자유롭고 편하게 수업을 할 수 있고 관계도 맺을 수 있다. 탈권위라고 해서 권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훈육가로서 교사의 권위를 벗고(탈권위) 좀 더 인격화된 옷을 입으면 일상적인 관계를 맺는데 훨씬 더 유리할 때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돌발 사건은 생기기 마련이고, 화가 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럴 때 교사의 분노나 포지션은 탈권위적 관계를 쉽게 전통적 권위의 모습으로 재배치해 버린다. 어쨌든 전통적인 권위와 탈권위를 선택할 수 있는 건 학생들이 아니라 교사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교실에서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권력자이다. 곽 당선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떤 책에서 조금 마음 아프게 읽었던 부분이 있었다. 흑인 노예제도가 온전히 살아 있던 미국의 맥락에서 백인 여성 '주인'과 흑인 여성 '노예' 사이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였다. 소수의 마음씨 좋은 백인 여성 '주인'은, 백인 남성들이 지배하는 일상의 맥락에서 자신들의 편이 되어주곤 했던 흑인 여성 '노예'들과 인간애적인 우정을 만들어 나간다. 친구까진 아니더라도, 흑인 노예 '유모'에 대한 추억을 미화하는 내러티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노예'들의 삶은 언제나 불안정한 것이었기에, 이들의 우정도 시한부 우정에 지나지 않았다. 많은 백인 여성 '주인'들은 아름답고 진정했던 짧은 '노예'와의 우정에 대해서 썼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주인'의 입장에 지나지 않았다. 이 여성 '노예'들은 물론 이런 소수의 맘씨 좋은 백인 '주인'에게 호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이 백인 '주인'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 흑인 '노예'들이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면ㅡ특히 권력 관계의 변화를 원하는 듯 보일 때면ㅡ백인 여성 '주인'들은 대개 다시 '주인'의 입장에서 이들을 벌하고 억압했다. 인격적인 관계조차 노예제도와 인종주의의 맥락에서는 변덕스러운 한 개인의 선택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 고어에서 'free'가 자유라는 뜻과 함께 관계/우정이라는 뜻이 있었다는 점도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는 것 같다. 개인들을 분별하고 권력을 차등 분배하는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않은 개인들은, 관계와 우정을 맺을 수 없다는 것. 스놉의 정의가 '타인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타인을 정의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스노보크라시에서는 자리를 넘어 관계와 우정을 맺을 방법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ㅈㅅ의 트윗을 통해 한 때 오래 몸 담았던 동아리(?)의 발족 취지문을 발견하고 처음 들었던 감정은 역시 막연함, 두 번째는 먹먹함, 세 번째는 약간의 우울함이었다. 그 세 가지의 감정이 짧은 시간에 순서를 거치며 스쳐 지나갔고, 이내 뒤섞이면서 마음 속에 작은 물방울 자국들을 남겼다. '막연함'이라는 건 내가 거쳐올 수 없었던 세계에서 있었던 일이기 때문일 것이고, '먹먹함'이라는 건 그 세계에서는 이렇게 통할 수 있었던 것이 내가 속한 세계에서는 왜 이토록 답답한 일이어야 했으며 한편 그 세계는 어디로 또 왜 그렇게 빠르게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울함'은, 지금 내가 속한 세계에서는 가능한 것이 별로 없지 않냐는 약간의 좌절감과 그 세계에 대한 막연한 질투 섞인 환상, 그리고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이 세계에서 하기 위해서는 그런 우울함을 극복하고 완전히 새로운 직물을 짜야하지 않겠냐는 다소 부담스러운 의식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지금으로서는 다 부담스러운 짐짝이다.
물론 그 세계를 미화하는 건 올바르지 못하다. 전혀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았고, 반성 없이 행해진 폭력들도 많았다. 그 세계가 낳은 세계도 그리 썩 훌륭한 편도 아니었다. 그 세계가 남긴 유산이나 그 세계의 상속자들,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지만, 그 세계에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게 있다면, 어떤 사고와 행동을 지배했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바로 형식일 것이다. 이는 이를테면 낭만주의적 사고라 할 수 있겠지. 보수적인 사상가로 알려진 이사야 벌린이 정의한 바에 따르면, "의지의 필연성", "사물의 구조의 부재"로 크게 묶을 수 있는 낭만주의.
'삶'과 나이주의에 치여서 젊은 시절의 낭만주의를 잃는다는 건, 가장 진부한 라이프 스토리다. 여기에 "젊은 시절 맑시스트가 아니었던 사람은 바보"라는 식의 해괴한 말을 대입하는 건, 앞서 언급한 낭만주의 정의와 상충하는 것이다. 낭만주의는 맑시즘이라는 '파파', 아니 '그랜드 파파' 같은 계보/구조를 요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자들은 계보나 족보 따위는 자발적으로 버린지 오래된 이념적 고아들이고, 공모를 바라지만 연대를 강요하지 않는 실천파 길고양이들이다. 끝.
덧) 하지만... 반성하지 않는 낭만주의는 이사야 벌린의 책을 번역한 강 모씨의 표현에 따르면 '지랄'이기 때문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써놓으면 꼭 철 없이 구는 운동권 아저씨들이 떠올라서...
분명 누군가들은 자기의 정체성 자체로 자기 언어를 정당화 할 수 있다. 애써서 존재를 포지셔닝 할 필요 없이, 정체성의 세계에 존재를 등록하고 발언권을 얻은 이들이, 이 사회에는 대다수다. 자신은 남성이니까 남성의 언어로 말하고, 이성애자니까 이성애자의 언어로 말하고, 백인이니까 백인의 언어로 말하고, 비장애인이니까 비장애인의 언어로 말하고, 자본가니까 자본가의 언어로 말한다. 이들의 정체성은 언어에 반영되고, 언어는 정체성을 수행적으로 강화한다. 거기에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고 정상적이며, 따라서 아무런 흠집이 없다. 자연스럽기에 애써 정당화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정당성을 얻는 언어들. 존재와 정체성을 반영하는, 투명한 언어들.
반면 아주 드문 경우 정체성 범주의 주민등록증을 거부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있었다. 그들은 정체성이라는 늪을 거부했으나 차츰 늪에 빠져드는 이들이었고, 그러면서 동시에 언어에 질식해 버리는 이들이었다. 그렇지만 섶을 지고도 불가항력에 불로 뛰어드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건, 오로지 포지셔닝 뿐이었다. 자기에게 사회적으로 할당된 정체성이 자신을 전혀 설명하지 않으므로, 그들이 의존해야 하는 건 오로지 유동적인 포지션 뿐이었다. 포지션이 없으면 언어도 없으므로, 언어가 없으면 곧 죽을 것 같았으므로.
나는 그런 이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어쩌면 매력을 느끼는 걸 넘어 동족으로 인식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이 땅 어딘가에서 트위터나 블로그 같이 작은 창 하나로 숨통을 트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금은 비로소 어딘가에 소속되어 정체성의 영주권을 받았을지도 모르고, 영악하게도 그때의 고민과 고통을 단지 한때의 성장통으로 치부해버리며 어디선가 떵떵거리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다들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다른 이들이야 날 어떻게 보든, 지금 내게 남은 것 혹은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이 포지셔닝 뿐이다. 여전히도 내게 있어서 정체성은 온안하고 온당하며 온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감옥에 가까우므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애매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유랑하는 포지셔닝은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며, 공격과 적의와 의심 앞에 깨어지고 바스라지기 쉽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뿌리 내리지 못한 언어는 성장이 없고, 안정되게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 수척하고 강퍅하며, 비바람 폭풍 앞에서는 쉽게 토대를 잃고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지금껏 나는 오로지 타인들의 환대에만 의존해 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소속될 수 없는 세계에서 일부 할당된 환대의 공간에, 환대의 언어에, 환대의 시간에, 잠시 머물며 흡혈하고 기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환대를 먹고 산다. 그러나 갈수록 자격 미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신감, 수치심, 죄책감, 무력감, 무능감, 이런 나쁜 것들이 요즘의 내 일상을 사로 잡는다. 만성적인 편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어떤 대상을 접했을 때 즉각 느끼는 정서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조건화된 행동ㅡ정신분석학에서 관심을 두는 내면 세계의 역동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겉으로 관찰 가능한ㅡ에 가깝다. 특히 행동주의의 고전적 조건화 모델에서 설명하는 정서의 학습은, 특정한 자극에 유기체의 반응이 연합을 일으킨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관계에서 심각하게 배신당하거나 좌절한 사람은, 이후 비슷한 관계를 마주 했을 때 이전 관계에서 느꼈던 정서를 상기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여러 가지 포비아도 마찬가지다. 몸은 정서를 학습하고, 또 삶의 어느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것을 재생한다.
의식-(전의식)-무의식을 도식적으로 나누면서 정신분석학은 대체로 몸 보다는 정신세계의 역동에 관심을 두고 정신세계의 잠재적 가능성을 신뢰하는데서 출발하지만, 그 정신세계의 역동과 가능성이라는 것은 정신분석학의 온갖 모호하고 난해한 개념들이 암시하듯 그리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정신세계는 원래부터 왜곡하고 과장하고 축소하는데다 온갖 방어기제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로든 심상으로든 정신세계를 끄집어 내야 분석을 할 수 있을진대, 그 매개가 되는 언어와 이미지라는 매체 자체도 한 차례 왜곡(재현)되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의 반응은 매우 적실하고 정직하게 무의식을 재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학습된 몸의 반응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의식이 아닌가 할때가 있다. 권위자와 폭력 앞에서 어깨가 움츠러들고 식은 땀이 나는 것, 특정한 자극에 성적인 욕구든 연민이든 느끼는 것, 어떤 말이나 행동을 보면 이유없이 분노하거나 공포나 사랑을 느끼는 것 같은 그 모든 것들은, 과거의 흔적이자 퇴적이자 무의식이다. 과거에 경험한 사건, 사건에서 느꼈던 정서는 정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몸이 학습하게 되고, 그것이야말로 곧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무의식이다.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에 남은 흔적들의 정신적 근원을 찾아내기 위해ㅡ설령 그것이 상상된 것에 지나지 않더라도 도움이 된다기만 한다면야ㅡ혼란스러운 언어와 이미지의 쓰레기장에서 분투하겠지만, 그러한 분투는 때로 자기파괴적인 충동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적인 관심을 오로지 몸의 반응에 대한ㅡ그래서 관찰이 가능한ㅡ관심으로만 돌린다면 문제는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잘못된 연합의 고리를 끊으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몇 가지 프로그램을 돌려서 일정 기간 몸을 훈련시키면 된다. 몸은 그것도 학습할 수 있다. 우울증의 치료를 위해 기나긴 상담을 받으며 고통을 연장할 필요 없이 그냥 약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근원적이지는 않겠지만 즉각 결과를 주니까. 부작용을 견디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일에 중독되든, 가족에게 헌신하든, 알콜과 니코틴과 카페인에 의존하든.
무의식이라는 심연은 너무나 진지하기에 차라리 우스꽝스러운 진실인 것 같다. 개인에게는 진정하고 진실된 것이라고 해도, 그 개인과 가장 가까운 이에게조차도 믿기 어려운 거짓이자 심지어 수치이다.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없는 이들에게, 그러면서도 사회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심연은 부담스러운 짐이다.
얼마 전에 아빠가 강아지를 데려왔다. 동생이 나이 들면서 이빨이 다 빠지고 냄새가 나는 해피를 싫어하기 때문에... 새로온 강아지는 예전에 얼마간 같이 살다가 엄마에게 쫓기듯 떠날 수밖에 없었던(ㅠㅠ) 지용이(GD)와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다. 자그맣고 눈이 축 처진 탓에 착하고 애틋해뵈는 강아지. (그러나 식성은... 어휴)
강아지는(이름을 아직 못지었다) 눈치를 살피느라 그랬는지 처음 왔을 때는 되게 조용했다. 전혀 움직이지도 않고 몸이 굳은 채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너무 조용한 건 아닐까 싶어 걱정되는 마음에 얼마간 손을 좀 댔더니, 그제야 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밤새 낑낑대기 시작했다(강제로 입양된 강아지라면 처음엔 다 그런 것 아닌가?).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서 강아지가 있던 곳을 보았더니 어제 처음 만난 그 상태 그대로였다. 몸이 굳은 채 움직이지도 않고 벌벌 떨고만 있었다. 추운 날씨도 아니었는데 이상하다 싶어 아빠에게 이상하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아빠는 똥을 아무데나 싸고 하도 낑낑대기에 몇 대 때렸다고 했다. 그랬더니 조용해졌다고, 더 이상 낑낑대지 않지 않냐고, 그렇게 나에게 되물었다. 그리고 귀여운 것을 보는 눈빛으로, 폭력에 시들어버린 작은 몸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서 아빠만큼 강아지를 잘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한국의 아빠들은 젊을 때는(아이들이 어려서 집에 붙어 있을 때) 낚시를 하다가, 좀 더 나이를 먹으면(아이들이 집을 떠나 주 생활공간이 가정 밖이 되면) 반려동물이나 식물에 애정을 쏟기 시작한다] 다른 가족들은 대체로 강아지에 관심을 덜 쏟는다. 그에 반해 아빠는 늘 해피의 밥을 챙겼고, 지금 새로 입양된 강아지의 밥도 따로 챙기고 똥을 기꺼이 치운다(난 태어나서 아빠에게 맞거나 나쁜 소리를 들은 기억이 전혀 없다. 아주 어릴 때, 엉덩이 몇 번 맞은 딱 한 번 빼고는. 동생들이 사고를 쳐도 때리거나 욕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민주적'이지 않냐고 할 정도로.). 그런데 강아지를 때렸다니.
2.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체계화된 폭력으로 유명한 학교였고(기숙사의 정기적인 단체 기합, 일상적인 구타와 욕설 등), 이에 많은 학부모들의 신임을 얻는 학교였다. 파이프, 부러진 테니스 라켓, 텐트의 지지대, 야구방망이등 살벌한 무기를 선생이라면 누구나 소지하고 다녔고 누구나 휘두를 수 있었다. 바닥에 껌을 뱉다 걸리면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혀로 그 껌을 다시 주워먹어야 했고, 침을 뱉어도 엎드려 고인 침을 마셔야만 했다. 학생들은 '학생'이라기보다는 고프만이 말한 총체적 기관(total institution)에 입소한 재소자(inmate)에 가까웠고, 입학 한 뒤로 몇 달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인격을 박탈당해야 했다. 1학년은 2, 3학년에게, 2학년은 3학년에게, 3학년은 교사들에게, 위계에 따라 차례로 폭력이 하향식으로 가해졌다. 2, 3학년은 '지주보다 마름이 더 무섭다'는 말을 상기시킬 정도로 중간 관리자의 치밀함과 악독함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모두 나름의 합리성(폭력을 정당화하는 억견)과 체계성을 갖춘 것이었고, 그 몇 달의 과정을 통과하면 비로소 학생들은 '북일인'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개중에는 한대도 맞지 않고 곱게 졸업한 모범생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늘 모욕을 감내하고 맞아야만 했다. (처음에 나는 전자라기 보다는 후자에 가까웠고, 성적이 오르면서 전자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후자라고 해도 학교와 끈끈한 결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학년을 참고 견딘 아이들은 2, 3학년 중간 관리자가 되었고, 그에 따라 선배후배와 더욱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구타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교사들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은, "맞고 나간 애들이 나중에 학교를 더 잘찾아온다"는 말이었다. 모범생들은 졸업해서 명문대에 가면 고등학교 기억을 헌신짝처럼 집어 던지지만, 학교에서 교사들과 일상적으로 치고 받고 다투고 했던 애들은 나중에 박카스라도 사들고 학교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나는 드디어 이들이 헛소리까지 지껄이는구나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졸업 후에 실제로 이루어졌던 일이었다.
3.
우리는 몸-존재 이므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폭력에 노출된다고 하는 어느 현상학자의 말을 들먹일 것도 없이, 폭력은 우리의 존재 조건이며 우리는 늘 폭력에 노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출발해 관념적으로 모든 폭력에 반대하는 것은 쉬운 일일 수 있겠지만, 폭력에도 정도와 종류가 있어 구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때로 폭력이 애정과 결합하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가 어떤 기준과 어떤 목적으로 폭력을 구분하며 정당화하는가의 문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식 차이에 있어, 우리는 결코 합의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폭력에 대한 잠정적인 사회적 합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말 안 통하는 강아지는 때려야 하며, 고집 부리는 아이들에게는 매를 좀 대도 되고, 공부 안하고 학교에 반항하는 학생들에게는 '사랑의 매'가 약이며, 체벌이 금지된 요즘 군대는 군기가 빠져 군대도 아니며, 요즘에도 아내를 때리는 남편들이 있다. 요약하자면, "애들은 좀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민주주의자"이자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러한 가치가 적용되지 않는 인간들의 범주를 우리는 늘 발명해 왔다. 놀랍지도 않은 사실은, 본인 스스로도 폭력의 희생자였기에 폭력을 증오했던 희생자들조차, 그 긴 시기를 빠져 나와서 더 이상 폭력을 당하지 않아도 될 때가 되면, 스스로를 가해자 정체성으로 구성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누구나 일정한 폭력을 인정하고 '필요악'으로서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이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매"가 관계를 잇고 유지하는 중요한 방식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 같다. 매를 맞는 사람과 매를 휘두르는 사람은, 매를 매개로 관계를 맺는다. 그렇기 때문에 매는 아무렇게나 휘둘러서는 곤란하다. 폭력은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에게 고통의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때릴 때는 이유를 설명하고 때린 뒤에는 꼭 안아주어야 하며, 학생들을 마구 구타한 뒤에도 반드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야 하며, 선임에게 맞은 군인은 반드시 구타 후 선임이 건넨 담배를 받아 피워야 하며, 아내를 때린 남편은 다음 날 꽃을 사들고 간다. 이러한 구차한 몇가지 의례로 가해자의 상처받은 양심은 치유되고, 피해자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여전히 관계와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얻는다. 그 둘은 폭력 이전보다 훨씬 더 끈끈하게 결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또한 너무나 쉽게 재생산된다. 매를 맞는 사람들은 매를 맞는 시기를 견디면 곧 매를 때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물론 누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자기가 맞았던 시절의 기억을 정당화하고 미화한다. 물론 매만 그런 것은 아니다. 계급과 직급이 수직 위계로 구성된 조직에서라면 어디에서나 오만 종류의 폭력은 비슷한 방식으로 정당화되고 재생산되고, 그 폭력 안에서 사람들은 관계를 맺는다.
4.
폭력은 언제나 섬세하다. 얼핏 거칠고 혼란스러운 일상의 폭력들도 나름의 이유와 합리성을 가지고 실행된다. 또한 폭력은 폭력행위의 순간에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이전과 이후에 이어지는 어떤 흐름 속에서도 강한 의미를 갖는다. 폭력은 불가피한 것이고, 심지어 우리의 존재조건이기까지 하다면 폭력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기획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 폭력에 반대하는 것은, "폭력에 이로운 문장은 단 한 문장도 써서는 안 된다(어느 소설에 등장하는 빼빼 마른 교수가 비평의 맨 앞에 쓴 말)"와 같은 불가능한 주장의 형태를 띌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폭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 역시도 폭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전히 고기를 보면 식욕이 돌고, 온갖 부당한 것을 만나면 피지컬한 충동을 느끼고, 폭력을 전하는 뉴스를 봐도 감흥없이 볼때가 많다.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떤가. 충동과 절제, 혹은 충동과 억압 사이에서 영원히 분쟁하겠지만, 그러한 사실이 폭력을 반대하지 않는 이유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수학/학업계획서를 쓰다 보니 왠지 모르게 우울해졌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앞으로의 계획을 최대한 '젊은이'스럽게 말하고 있는데도 우울하다니 말이다. 그나마도 짧게 쓰지도 못해서 표준 서식의 5배를 초과해서 써버렸다. 짧게 쓰지 못한 건, 결코 이 정도로는 내 원대한(ㅋㅋ) 계획을 다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5배를 넘게 쓰고 여러 번 줄이기 위해서 잘라내고 수정했지만, 실제로 구상하고 있는 것은 반도 못담았다. 그러나 계획서의 단순 길이는 애초부터 문제가 아니었다. 이보다 더 길게 썼으면 더 좌절했을 것이다. 그건 과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였을까? 처음 생각난건 계획서에서 내가 젊은이인 것처럼 열정을 가장했다는 점이었다. 즉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별로 믿지도 신뢰하지도 않는 학과 커리큘럼이 정말 재미있을 것처럼, 정말 내가 학과에 흥미있는 것처럼 글을 써야만 했고 그렇게 썼다. 학기강의계획서를 하나하나 열어보면, 몇몇 과목을 제외하고는 좀 시시하던데. 그러나 나는 거짓말을 잘하는 편이고, 또 일상에서 거짓말에 죄책감을 가진 적이 거의 없다. 거짓말 없이 어떻게 세상을 산담? 게다가 거짓말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다보면, 그 수행은 어느 새 나와 내 주변의 상황을 규정하는 힘이 된다. 그럼 거짓말은 하나의 진실이 된다. 그러니 이건 문제의 원인은 아닐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난 건, 아직 유예기간인 내가, 내 인생에서 실제로 뭔가가 '되는' 걸 거부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대학교 3~4학년들이 흔히 겪는 병이 아직도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대학원에 간다는 건 사실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교육학과에 가는 건 교육학자가 되겠다는 것이고, 특히 하위 분야에서 질적 연구를 다루는 전공에 지원하는 건 그 중에서도 마이너리티로 가는 걸 의미한다. 물론 나는 진짜로 '그 쪽'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학위는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니까. 최대한 재빨리 처리하고, 기나긴 '본 게임'에 들어가야할 하나의 예비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니까. 갈수록 구조화, 고도화, 폐쇄화 되어가는 이 제도적 몸짓의 장에 들어가야 하는게 못내 씁쓸하지만.
그러니 학위 과정, 학과에 대한 환상은 거의 없다. 다만 어딜 가든 좋은 동료, 선후배, 세미나 메이트, 교수자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만, 그래도 교육학과 교수들은 타과 교수들에 비해 낫다는 평판을 들었다. 그들은 어쨌든 교육학과에 다니니까 교육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 단순한 생각도 든다. 학과에서 케어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나는 알아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쨌든 지금 거기에서 버티고 있는 친구도 있으니, 내가 가서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은 될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 싫다. 지금의 나는 하루바삐 무엇인가가 되고 싶고, 그 무엇인가가 75%만 마음에 들고 25% 남은 내 공간을 옥죄지만 않는다면 뭐든 상관없다. 또 나 같은 사람은 100%가 가능하리라 생각하지도 않고, 100% 만족하는 순간엔 아마도 죽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이것도 문제의 원인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가 오늘에서야 그 끝없는 우울에 대한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읽던 책의 끝을 넘기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마음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내가 고학력자가 되어가는 모든 과정은 믿음을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석박사급 고학력 실업자, 학자금 빚더미와 바꾼 졸업장/학위증명서, 낮은 사회적 지위, 뭐 이런 것 때문에 학위과정에 대해 믿음을 잃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에 (무엇인가에 대한) 믿음을 잃다니, 그것만큼 진부한 대학원생이 어딨어? 하지만 그 안에서의 관계가 문제였다. 이를테면 교수자와 학생의 일방적인 착취 관계, 열정과 흥 따위는 없는 강의실, 서로를 믿지 않는 학생과 교수자들, 뭐 이런 것들이었다. 더 추가하자면, 더럽고 치사하고 비루한 교수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영원히 모를 것이라는, 그럼에도 그들에게 저항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 결국 사람에 대해, 관계에 대해, 내 신념에 대해 믿음을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그 모든 과정이 믿음을 잃어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게 되리라는 두려움. 결국 그게 깊은 우울의 원인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어떤 책을 보는데, 저자는 페미니스트 운동/관점(movement/perspective)과 페미니스트 관심(feminist concern)을 구분하고 있었다. 페미니스트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 참 많아졌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페미니스트 관점을 가졌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관심은, 오랜 기간에 걸친 운동과 관점의 발전에 의해 가능해진 연구 주제다. 페미니즘의 주제와 방법론을 전유했기 때문에 언뜻 보면 페미니즘 연구 같지만, 그 연구자를 실제로 만나보거나 그의 행보를 보면 페미니스트라고 할수는 없는 사람들이 있다. 연구자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이나 삶의 윤리를 성찰하지 않고도 페미니스트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나 역시도 수학계획서에는 페미니즘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젠더 연구, 젠더에 민감한 연구라는 표현을 썼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단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이것조차도 어떤 징후를 감지하게 하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오늘 펴본 어떤 책의 저자는 페미니즘의 죽음을 누가 두려워하랴,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모르겠다.
요새 며칠 몸이 좀 안 좋았다. 오랜만에 다시 재미들린(?) 네이트온 탓에 요 며칠 잠이 부족해서였을까? 혹은 다른 무엇이었을까? 잠을 10시간 넘게 잔 오늘 아침에도 좀 좋은 상태는 아니였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거기에 늘 거주하는 50대 남자사람에게 인사했더니, 이상하게, 아니 너무나 이 사람답게, 이 남자사람이 몇 분동안 막 화를 냈다. 그렇게 인사할거면 아예 하지 말라나. 그렇게 인사하면 차라리 인사를 안하는 것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겠냐고. 너는 부모님이나 윗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인사하냐고. 도대체 너는 왜 사람을 안 쳐다보고 얘기하냐고. 넌 내가 싫냐고, 사람들을 대하는게 싫냐고. 기운이 쭉 빠지는 걸 느끼면서, 뭔 말인지 알겠다고, 지금은 그냥 몸이 안 좋다고, 정신이 없을 뿐이라고 얘기해도, 이 남자사람은 듣지 않고 계속 게거품을 물길래 그냥 귀를 닫고 예, 예, 예 하고 말았다. 그냥 대꾸 안하고 대답만 잘하면 곧 잠잠해지니까. 나도 화가 많이 나고 뭐라고 또 쏘아붙여야하나 하다가, 그냥 또 울컥해버려서 관뒀다. 그랬다간 50대 남자사람이 또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말할까봐 겨우 꾹 눌러참았다. 왜 나는 화나면 눈물부터 나는 걸까? 오래된 컴플렉스.
일상적인 의례보다는 사람을 신뢰하고, 말과 설명보다는 차라리 순간의 눈깜빡임과 눈빛, 숨결, 망설임, 말과 말 사이의 침묵, 체온 같은 걸 더 믿는 나에게, 인사치레 같은 건 아무래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아빠라고 불리는 50대 남자사람도 그렇고, 이 50대 남자사람도 그렇고, 남자사람들은 대체로 나이를 먹으면서 의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집에 왔을 때 내다보지 않거나 차고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집에 같이 사는 50대 남자사람은 정말 상처받는 얼굴을 한다. 내가 대놓고 모욕할 때는 알아채지도 못하면서. 의례와 절차가 전부인, 삶이 죽어버린 사람들. 그래서 차라리 시체들, 좀비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법을 알지 못해서, 오로지 자기에게 치뤄지는 형식적인 경의와 의례로만 관계를 정의하고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사람들. 의례와 삶의 절차가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불안해 견디지 못하는 남자사람들.
때론 나에게도 편리하기 때문에 그들의 일상을 채운 의례와 삶의 절차에 편승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정말 가끔은 그들이 측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무실의 50대 남자사람은 자기에게 하나 뿐인 애인에게도 마찬가지로 군다. 애인이 3번 이상 전화벨이 울릴 때까지 받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놀러가자는 자신의 제안에 1.5초이상 뜸들이면 역정을 낸다. 아따 전화를 왜케 안 받는가이 전화는 어따 놓고 다니는 거란가? 하하. 아따, 왜케 대답을 안하는가이, 진짜로 답답해 죽겠네이. 하하하. 아니, 그럼 예약한 거 취소하란 말인가이? 위약료가 얼만지는 아는가? 하하하하.
이 남자사람은 성질이 급하고 화를 잘 내지만, 그가 정작 화 낼 수 있는 대상은 이 세상에 '부하직원'들이거나, 자기의 아내이거나(사채 놓은 돈 떼였을때 아내에게 막 화를 낸다), 혹은 더 맥락 없게 애꿎은 고객센터의 전화 상담원들일 뿐이다. 지마켓, SK텔레콤 고객센터, 각종 보험회사 노동자분들, 제가 대신 사과드려요. 그 남자사람은 차마 애인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화도 못내요. 화를 못내서 상심하고나면, 나나 다른 애에게 감정노동을 바라더라고요. 저도 이 미친놈 어쩌라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정말 가끔은 불쌍한 사람 같아요.
벨 훅스는 상처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 또 치유하기 위해 이론을 공부했다고 고백한다. 내면의 고통이 너무나 격렬해 살아가기 힘든 인생의 순간, 자기의 내부와 주변에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이론에 매달렸다고 했다. 벨 훅스는 이론에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공간, 현재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가정이 주는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 대신 이론의 공간에 머물렀다. 이론의 공간에서는 일상 공간과는 달리 자기의 생각과 분석을 마음껏 '실행'할수도 있었다. 벨 훅스는 이론의 공간에서 자신의 상처가 왜 생겼는지를 밝히고, 자신의 상처를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었다. 이론은 개인에게 공간을 개방하는 몇 안되는 영토 중에 하나이다. 이론은 상징자본이 되어 타인을 지배하는 도구의 계열이 아니라, 오로지 아침이슬이나 반딧불이처럼 고독하고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의 계열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론은 사회에 의해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잡을 수 있는 마지막 풀뿌리이다.
연구자와 이론가는 겹칠 수 있는 범주이지만, 평생 연구자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필연적으로 이론가도 겸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연구자는 되고 싶다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론가는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살다보면 그냥 되는 것이다. 책을 읽거나 쓴다고 해서 이론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실천이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의 삶, 자기의 고통, 자기의 욕망을 설명하는 방법을 찾는 이들은 반드시 이론가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학계에서 일하는 연구자나 여러 단체의 실천이론가가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이론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론가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 개인, 그리고 그 존재와 정체성 그 자체다.
그래서 이론은 쉽게 섞이거나 융합되지 않는다. 이론은 오로지 개인의 것이다. 그래서 이론은 공격될 수도 없고, 이론가 개인이 생존해 있는 한 사라질 수도 없다. 물론 누군가의 연구물이나 삶을 다룬 기록물은 건조하게 암기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론을 공부하는 건, 우선 그 이론가의 존재와 삶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론 공부는 누군가의 이론을 암기하는게 아니라, 누군가의 이론을 나에게 적용해보는 것이며 나 스스로가 흡수하는 것이다. 이론가의 앞에서 정보는 지식이 되고 지식은 이론화 된다. 이론가에게 진정한 공부는 곧 이론화의 과정이다. 그런 탓에 공부를 하면서 누군가의 이론을 비판하거나 비난한다는 것은, 사실 그 이론을 만든 개인에게보다는 차라리 자신을 향해 메시지를 날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론 공부를 통해 무엇인가를 알게 된 것이 단지 하나의 앎-지식으로 그치지 않고, 그 앎에 대한 나의 감정과 나의 역사가 수반될 때 그것은 나의 이론이 될 가능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과 내가 감정 세계를 공유할 수 없다면, 나의 이론은 그냥 외롭고 고독하니 잠자리 베갯닢에 찍힌 긴 물의 흔적과 다를게 없다. 역으로 내가 세운 이론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다른 사람과 내가 감정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그 때 누군가의 이론은 나의 이론이 되고, 나의 이론은 누군가의 이론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래서 이론가들은 필사적으로 자기의 이론이 들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성주의가 너무나 다양하기에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복잡다단한 여성주의(들)일 수밖에 없다면, 부분적으로 여성주의는 단지 이념이나 연구물이 아니라 이론(틀)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주의가 이론(틀)이라면, 여성주의는 개인의 맥락에서, 개인의 감정과 삶을 반드시 수반해서, 그리고 외우고 학습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실천되는 그 무엇일 수밖에 없다. 흔히 언어의 환상 속에서 이론과 실천을 나누어 생각지만, 이론(틀)로서 여성주의 안에서 그 둘은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그렇게 여성주의는 수없이 많은 다른 '-주의'들과는 존재론부터 다른 그 무엇이다. 또한 여성주의는 다른 보통의 '주의'들과는 달리, 내가 앞서 언급한 '이론'을 향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와 학제로서의 여성학은 다른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겹칠 가능성은 있다. 여성학은 학적인 연구 성과일수는 있으나, 이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물론 여성학 연구를 읽는 사람들에 의해 여성학은 이론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루는 소재나 인식론이 얼마나 유사하냐와는 큰 관계 없이, 여성학과 여성주의는 실천되고 공유되는 방식에서 갈리는 것일테다.
어떤 친구들은 내가 어떤 일이든 하게 되면 잘 할 것 같다고 위로해주지만, 나는 내가 어떤 일이든 잘해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규칙적인 주5일 칼 출퇴근이나 안정적인 통장 잔고를 동경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생활을 시작하면 내가 어떻게 차례로 무너져 내리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만약 주말 출근이냐 야근을 해야하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차츰 몸이 무너지기 시작해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될 것이고(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는다. 병원에 가도 단지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랬고, 또 그렇다), 그러면서 마음이 무너질 것이고 이어서 내 생활과 관계 전체가 붕괴할 것이다. 어차피 이런 식으로 내가 안티소셜이자 사회부적응자일 수밖에 없다면, 소위 '사회 생활'에 적응할 수 없다면, 또 일반적이면서 위압적인 이성애적 연애 산업과 시장에도 적응할 수 없다면, 이 세계의 위계 질서와 권력, 억압적인 젠더 체계가 몸서리처질 정도로 싫고 못견디겠다면, 차라리 열심히 공부해서 윤리적인 연구자(혹은 작가)이자 탁월한 이론가가 되는 걸 꿈꿀 수밖에.
물론 지금 가려는 대학원이나 학계가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예술가가 되기엔 언어적 재능도 공간적 재능도 음악적 재능도 부족한 나로서는, 그곳이 이 세계에서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소재와 줄거리, 플롯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언젠가는 소설을 쓰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젠가의 이야기). 나는 거기서 잘 살아남을 것이고, 또 거기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 해야할 것이다.
지금 하는 것도 다 열심히 할 것이고, 또 언젠가는 실패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관계에도 열심히 걸어볼거다.
말이 나오는 맥락이야 늘 다르지만, 어떤 사람을 불가피하게 외모로 설명해야 할 때가 언제나 있다. 정치적 올바름 같은 건 별로 상관없이 말이다. 그럴 때면 아직도 언제나 비끗해버린다. 아직도 예쁘다, 아름답다, 잘생겼다, 섹시하다, 못생겼다, 추하다, 키가 크다 하는 식으로 외모를 직접 묘사하는 단어를 잘 쓰지 못하겠다. 그래서 아주 노골적으로 "예뻐?", 혹은 "잘 생겼어?" 라고 물어보거나, 마치 뭔가를 아는 듯 "아, 그 사람 예쁘지/잘 생겼지"라고 말하면... 정말 답도 안 나온다. 아직까지 그 말에 전혀 호응을 할 수가 없다. 그럼 서둘러 에둘러 표현할 뿐; 음.. 예컨대 이런 식으로 "(삐질삐질) 어... 어떤 기준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사실 이 단어들은 어느 수준의 '객관'을 가정한다. 즉 이 단어들은 사회적으로/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어떤 (성애적인) 외모 특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주관적 판단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판단에 가깝다. "예뻐?", "잘 생겼어?" 따위의 질문이나 "예쁘다", "잘 생겼다"라는 진술은 잠재적으로 yes나 no로 판단할 것을 요구하게 되고, 주관식 판단은 이단과 탈주로 간주된다. 이 말에 yes, no 따위로 판단하는 건 그 말 안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외모에 대한 이성애 사회의 규범을 일단 승인하고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들을 쓸 때 "내가 볼 땐..."이나 "내 기준에서는" 같은 단서를 붙인다 해도 크게 다를 바 없으며, 그 뒤에 덧붙이는 설명도 단지 변명처럼 들리게 될 뿐이다. (흔히 쓰이는 "귀엽다"는 말은 노골적으로 권력을 드러내는 말이니 사람에 대해서는 더더욱 쓰기 어렵다)
그에 비해 사람의 외모를 표현할 때 "매력적이다", 아니면 좀 고풍스럽게 말하자면 "곱다", 하는 식의 표현은 조금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 같다. 이 단어들은 앞서 언급한 단어군에 비해 '이차적'인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해 이 단어들은 직접 외모에 호소하기 보다는, 차라리 어떤 모종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한 때 유행했던 형용사 "훈훈한"이 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단어는 외모로는 '2급'이지만 친근감 있다는 뉘앙스로 쓰였다). 그것은 주관적 체험을 암시한다. 그 말은 다만 내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전체 호감도를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외모에 대한 사회의 규범을 비판하지는 않아도 슬며시 피해가는 효과가 있다. 쓰기에 큰 무리가 없고 안전하다는 얘기다. 시각보다는 청각과 후각이 더 민감한 나로서는 선택하기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단, 누구도 "그 사람 매력적이야?" 같은 질문을 하거나 "그 사람 되게 매력적이더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게 문제; 또 많은 맥락에서 "매력적"이라는 말은 외모에 관한 말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어떤 지적/감성적 능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쓰인다. 그러니 이제는 고어(古語) 내지는 사어(死語) 느낌까지 주는 "곱다"는 단어는 말할 것도 없다(백석의 시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에 나오는 표현에 꽂힌 탓에 퍽 좋아져 버린 단어인데...). 그러니까 제발 내게 자꾸 묻지 말라고 ㅠㅠ 난 잘 모르겠다고 엉엉
2008년 봄여름, 광화문에 나갈 때 제일 무서웠던 건, 사실 경찰이라기보다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들이었다. 참전유공자의 붉은 띠를 몸에 두르고, 군복을 맞춰 입고 근엄한 표정으로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할아버지들. 월남참전용사회, 뭐 이런 이름의 단체였던가? 고엽제 전우회였던가? 아무튼 이 할아버지들에게 언제 어떻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라서, 행진 대열을 마주치면 괜히 저만치 돌아서 도망가버리던 기억이 많다. 할아버지들에게 정당하게 또박또박 항의하던 사람들은 온갖 욕설과 호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경찰들은 이 할아버지들이 원군이라도 되는 양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사람들에게 못되게 구는 경찰들은 밀쳐도 되고 항의해도 되고 심지어 욕해도 괜찮지만, 아무래도 할아버지들한테는 그럴 수가 없었다. 방패를 쿵쿵 울리며 고함을 질러대는 무리 앞에서 덜덜 떨었어도 괜찮았고 물대포를 맞아 감기 걸렸던 것도 괜찮았고 발암물질이라는 소화기 가루 흡입해도 괜찮았고 도망치다가 진압봉이나 방패로 한두 대 쯤은 맞아도 다 괜찮았지만, 도대체 이 무서운 할아버지들의 욕설과 호통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어쨌든 그들은 '할아버지'였으니까. 할아버지들에게는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랐다. 당시엔 솔직히 말해 그냥 집에서 쉬시지, 손녀 손자도 없나, 이런 나쁜 생각까지 들었다. (에고고;;)
이건 나의 나이주의 탓이기도 하겠지? 근데 나 혼자 나이주의를 집어 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주의는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사람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엮어 주는 사회적 논리이며 사람들이 서로와 관계맺는 방식이니까. 그건 어쩌면 미/추 혹은 쾌/불쾌를 다루는 감성(미학)의 차원에 속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깨기 어려운.
2.
그런데 지난 주 한겨레21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요즘 들어 자주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단체에 대한 르포 기사였다(도대체 어떻게 취재를 다녀올 수 있었을까? 참 대단해). 단체 이름이 대한민국 어버이회였던가? 계란 투척부터 시작해서 온갖 욕설에 모욕에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어디까지나 강퍅한 '남성' 노인들이 모인 단체.. 가장 재밌는 말은 "여기 나와야 그나마 숨통이 트여"라는 말이었다. 또 "노인네들 빨리 죽으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나."라는 말도, "우리는 애국자야. 그런데 요즘 우리가 받는 대접이 뭐야.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한국 사람인데 우리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고."라는 말도, "거기 청년들이 우리더러 '어디서 돈 받고 왔느냐'고 묻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까지는 안 했어."라는 말도, 모두 정말 많은 것을 드러내는 말들인 것 같다(생애사 연구해도 재밌을 것 같다. 내가 할 맘은 없지만). <'과격한 어르신들'의 속사정>이라는 커버스토리에 딱 들어 맞는달까.
물론 기사 자체에 공감하며 읽지는 않았다. 이 기사는 진보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몽적 말투로 이 어버이회 회원들을 분석하고 또 처방하고 있으니까. 예컨대 이 '어르신들'이 삶의 과정에서 반공사상만을 주입받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장단점을 비교해가며 스스로 가치판단을 해볼 수 있는 교육을 박탈당한 세대"라며 이들도 "시대의 피해자"라고 이야기하는 걸 읽고 있자면, 잠시 아연해지면서 너무 단순한 분석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특히 "이들도 시대의 피해자"라니. 이런 알량한 온정에 고마워하기라도 해야할까? 이 기사의 말미에서 어떤 진보자유주의자 교수는 "굴절된 인식을 가진 이 노인들에게 그들의 행동에 대한 비판을 합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그럼 할아버지들에게 다른 가치관을 교육하면 되나? (어디까지나 가치판단이 함축된 단어인) 올바르고 정당한 정보를 제공하면 학습자들은 그걸 스폰지처럼 습득하게 되는 걸까? 그렇게 정당하게 간주되는 정보를 만들어내고 제공/강요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는 걸까? 정말 사람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일상에 대해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3.
이런 기사를 읽으면 사회의 '성원권'이라고 불러야 할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성원권은 개인의 지위를 결정하는 수없이 많은 요인들(출신 지역, 성별, 성정체성, 정치적 성향, 경제력, 학벌, 문화자본 등등등)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러한 요인들을 정당한 것으로 납득시키고 설득하고 강요하는 규범화/주체화의 논리와 테크닉들, 그리고 더 중요하게, 그렇게 규정된 지위와 성원권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속사정, 즉 <마음>에 대한 고려까지 포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세넷의 말을 바꾸어서 말하자면 "성원권의 숨겨진 상처(hidden injuries of the membership)"까지 말이다. 이 할아버지들의 "과격"하고 "날 선 주장"은 기사에서 표현되듯 "소외감"과 "모순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것이다. "소외"된 사람들은 상처입고 취약한 언어를 구사해야한다는 생각은 도대체 누구의 언설인가? 피해자의 정치학.
사회/정치 분석이 단지 학술적, 저널리즘적 언어로 표현되는 <말>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 또 사회적인 인정과 그 인정과 관련된 사람들의 상처도 고려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오랜 기간 관찰하고 소통하면서 발견되는 <행동>의 차원일 것이다. 그런 상처를 애써 봉합하지 않으면, 얼마든 그 상처는 여러 다른 조건에 의해 다른 폭력으로 촉매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분들이 좌파, 빨갱이, 친북 등을 논하는 건 어디까지나 이 분들이 계몽이 덜되서 그런게 아니라, 행동을 정당화 할 때 인용할 수 있는 한국의 역사적 내러티브 자체가 그정도 밖에 안되니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내러티브는 인종이나 계급, 성별, 성정체성 등 어떤 내용으로도 대체가 가능할 것이다. 이제 내러티브 분석은 충분하다고 믿는다.
4.
사실 제일 궁금한건,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의 차이다. 왜 무서운 할머니라기 보다는 무서운 할아버지들이 광장에 나타나는 걸까? "위안부 여성"은 흔히 "위안부 할머니"로 재현되지만, 이들 "할아버지"들은 "어르신"이나 "어버이"로 재현되는데, 이 차이는 도대체 뭘까? 풀어내고 싶은 젠더 연구 과제도 정말 많다.
글쓰기를 다루는 책을 보면 종종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보라는 조언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에도 문장의 리듬을 내심 느낀다는 이유다. 묵독을 할때조차 음성은 영향을 미친다. 고로 소리내어 읽기 좋은 문장은 눈으로 읽기에도 좋다. (그렇다고 구어체로 글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예전엔 이 말이 무슨 말일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요새는 어떤 의미인지 알지는 못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 어떤 외국인이 한국어가 아름답다고, 시적이라고 얘기한 적 있었다. 많은 문장들이 "다."로 끝나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각운이 들어간다는 이유다. 그때는 잘 모르는 소리라고 가볍게 그냥 지나쳤는데, 이제는 한국어가 가장 예쁜 음성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요즘 나를 놀라게 한 건 이런 얘기가 문장에만 해당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문장 말고 문단에도, 물론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소설론을 다룬 어떤 책에서는 문단 나눔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한 소설의 일부를 인용한다. 전쟁, 무기, 싸움, 남자들의 전우애를 다루는 내용인지라 내용에는 호감이 없었지만, 한줄 한줄 읽어 문단을 끝마치는 부분에 다다랐는데 이상하게 호흡이 무척 가빠진 걸 느꼈다. 그리고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면 그 가빠진 호흡이 조금은 안정되었고, 계속 문장을 읽어 나가면서 호흡은 다시 가빠졌다. 놀라운 것은 그게 번역문이었단 점이다. 문단의 길이도 사람의 호흡시간에 맞춰져 있었을 것이다(번역문이었으니 길어질 수밖에). 짧지 않은 인용이었는데 단숨에, 단박에 읽어내려갔다. 신비경이었다.
일반 독자를 사로잡는 건 비상한 상상력도, 아름다운 단어도, 독창적인 구상도 아니라, 아마 어느 정도는 이런 생물학적 측면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겠지만, 최근에 나오는 멋진 과학 이슈들에도 관심이 점점 생긴다. 특히 뇌과학이나 신경과학 같은 거. "진화"라는 접두어가 붙은 건 종교로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아서 싫지만. 내가 그런 것을 생산하고 싶은건 아니고, 인문학의 기반에서 해석하고 응용하고 인용하고 싶다. 그건 "생물학으로 대동단결"을 외치는 개념인 '통섭'과는 다른 것일테다.
"우리가 속한 위치와 역사는 모두 다르지만, 나는 "우리"에게 호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상실은 우리 모두를 갖고서 희박한 '우리'를 만들어 왔다. 만약 우리가 상실했다면, 그로부터 결과하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었다는 것, 우리가 욕망하고 사랑했다는 것, 우리가 우리의 욕망의 조건을 찾으려고 고군분투 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물리적 취약성이 전 지구에 배포되는 방식은 철저하게 다르다. 어떤 삶들은 철저히 보호 받을 것이고, 존엄성에 대한 그들의 요청이 파기된다면 이는 전쟁을 동원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다른 삶들은 그런 즉각적이고 격렬한 지원을 찾을 수 없을 것이고, '애도할만한' 것으로서의 자격마저도 얻지 못할 것이다."
주디스 버틀러, <불확실한 삶>에서
뉴스공급사들은 전 세계 어딘가에서 발생한 뉴스를 신속하고 재빠르게 타전한다. 그리고 각 지역의 언론사들은 그것을 받아 보통 '국제 이슈'의 한 단면으로 다룬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서 본다. 보고 또 봐도 끝이 안나는 뉴스들.
어제 버스 안에서 멍하게 바라봤던 TV에는 ㅌㄱ 축구팀이 총격을 받아 10여명이 사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앵커가 있었다. 물론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ㅌㄱ 축구팀은 어떤 나라에 갔다가, 어떤 사람들에게 우연히 총격을 받은 것이다. 소위 "아프리카"에 있으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 지난 수십년간 "아프리카" 지역은 늘 총성과 함께해 왔기 때문이다. 놀랍지 않다. 충격적이지 않다.
그러나 당연히 그렇게 끝나서는 안될 노릇이다. 왜 폭력, 질병, 죽음, 빈곤이 "아프리카"에 만연한지ㅡ사실 이 말도 틀렸다. 국가도 수없이 많으며 경제 상황도 다르다. 계급별 젠더별 조건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아프리카"로 '그들을' 이해한다ㅡ우리는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으레 그러려니 한다.
어떤 역사적 맥락 위에서 ㅌㄱ 축구팀이 당해야 했는지, 또 축구팀이 상징하는 바, 혹은 더 나아가 스포츠의 정치경제학이 어떻게 이 폭력 사태에 연관되었는지도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설령 안다고 해도 그 앎이 진실된 것인지 보장할수도 없거니와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적당히 여유 있는 중간 계급의 도덕주의적 감상주의 아니냐는 내면의 힐난에 침묵해 버린다. 결국엔 냉소주의와 만난다. 어딜가도 냉소 뿐이다.
이런 얼토당토 않은 냉소주의 앞에서 좌절할 때 가장 좋은 치유책은, 버틀러의 윤리학 관련 책을 읽는 것이다.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소리 내어 한 번 읽어보고, 밑줄치고, paraphrase도 하고, 옮겨 적는다. 복잡한 문장과 꼬인 번역문을 읽는데도 짜증이 일기 보다는 겨울철 때이른 어둠이 어느샌가 세상을 온통 적셔 오듯 왠지 모를 슬픔이 몰려드는 걸 느낀다.
버틀러는 가장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저 위에 적어놓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내 사고 방식을 깨트린다.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사유하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버틀러의 방식은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다. 한국 문학도 윤리를 포기해 가는 마당에, 한국에 이렇게 감동을 주는 윤리학자가 한 명도 없다는 건 정말이지 불행한 일이다.
나의 기억력은 정말이지 형편없는 것이어서, 사람들의 이름이나 소설, 드라마, 영화 따위의 제목과 대사 따위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구나 숫자와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기억하지 못한다. 생일이라든지 날짜라든지 돈의 액수라든지 전화번호라든지 하는 것들. 어릴 때부터 늘 그랬다. 단기 기억은 그럭저럭해서 시험은 그냥저냥 봐도 정작 시험지를 풀면서 자연스럽게 모두 까먹는... 뭐 그런 종류의 휘발성 메모리.
앞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논문을 쓰며, 가끔씩은 소설을 쓰는 생활을 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건 이런 형편없는 기억력이다. 너무 까먹는게 싫어서 1년 넘도록 책을 읽다 좋은 문장이나 아이디어가 나타나면 옮겨 적는게 버릇이 되었다지만, 그게 언젠가 발목을 잡아도 크게 잡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이를테면 오늘 어느 시인이 쓴 블로그의 글도 그렇다. 2년 전 이맘 때 출간한 한 산문집의 어느 파트가 알고보니 어떤 칼럼니스트의 글을 '편집'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어느 독자가 꼼꼼히 짚어가며 의혹을 제기했고, 그 시인은 그 본의아닌 표절을 인정하고 다음 판에는 그 파트를 제외하기로 했다. 예전에 자료조사 하면서 이게 대체 자기가 쓴 메모인지 남의 글을 옮겨 쓰는지 구분하지 않았던 탓이라 했다.
나도 이러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내가 좋아서 몇 번이고 암송했던 문장ㅡ그러나 물론 지금은 까먹어버린ㅡ이 어느날 갑자기 내 손에 출현해서 글로 옮겨져도 나는 그게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나도 메모와 옮겨쓰기를 구분하지 않는 탓이다. 나중에 글을 쓰다 예전에 읽었던 남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겨 오면서 그게 내가 해낸 생각이라고, 정말이지 훌륭하다고 자화자찬하며 무릎을 칠수도 있는 노릇이고.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문학에서도 그렇겠지만 논문을 쓰면서는 정말 최악의 일이 된다. 자칫하면 그쪽에서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표절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내 기억력이 나쁜 탓에 그걸 옹호하기 위해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네 일상에서 오가는 모든 일상적인 언어는 사실 모두 표절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연예인 가십, 상사나 친구의 험담, 친구와의 환담, 혹은 속담과 민담, 심지어 진지한 사랑의 고백까지도 이 모든 것들이 사실 누군가로부터 듣거나 어딘가에서 읽고 본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것 아니던가.
물론 남의 것을 그대로 베껴써서 자기 것처럼 위장하고 그걸로 자기의 업적을 세운다면 그건 반칙인 셈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반칙이고 경고와 주의를 주면서 다같이 고민하고 경계해야할 문제지, 오늘날의 한국은 병적인 수준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정작용과 자기반성, 도덕적인 문제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권 혹은 법의 이름으로 치환해서 다루는 '아메리칸'적 방식.
진중권의 최근작 <교수대 위의 까치>는 그의 유명세(그래서 사실 소설이든 뭐든 그걸로 돈 깨나 벌고 싶으면 일단 유명해진 다음에 출판하는게 더 쉬운 일이다), 그리고 특유의 입담과 깔끔한 문장, 또 그림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 잘 나가는 편인 책이다. 그러나 그가 한겨레21에서 밝혔듯, 그 책은 사실 인터넷의 정보를 짜깁기(편집)한 것이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저자의 관점과 직관인 셈이고, 수없이 인터넷에 널린(한 표현을 빌자면 "자기 산출적 우주"로서의 인터넷) 자료들을 취합해 모종의 논리와 일관성에 따라 편집한 결과물이 바로 그 책인 셈이다. 그건 결국 뭐라 해도 표절이 아니다. 없던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주로서의 저자, 결과물에 대한 무한한 권위자로서의 저자라는, 전통적인 이미지의 저자는 그에게서 한 번 더 무너지는 셈이다. 사실 이런 저자관은 진부한 것이다. 왜냐면 논문 쓰는 사람들은 사실 본질적으로 이런 저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인용을 세련되게 잘 각색해서 원작이 안 보이게 만들면 훌륭한 문학가로 인정받게될지도 모를 일이고. 그래서 난 언젠가 인용으로만 이루어진 잘 빠진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이 있다. 인용했다는 걸 떳떳히 밝히고.
그 시인이 지나치게 자신을 탓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게 논문도 아니고, 그걸 통해 뭐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그저 어디서 참고했다고 작게 명기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지. 혹은 머릿말이나 저자의 말에 그냥 여러 사람의 글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지. 뭐 그런 것이다.
10대 때는 어김없이 20살이 되는 나를 상상했듯, 20대 중반을 접고 들어가기 시작한 나이가 된 나는 30살이 되는 나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20대 초/중반을 지배했던 불안은 여전하지만, 불안을 동력으로 삼아 기꺼이 새로운 일을 추진할만한 열정은 이미 잃어버린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좌절, 너무 많은 실패, 너무 많은 혐오, 너무 많은 환멸, 너무 많은 ... 그러니까, 너무 많은 것들을 이미 지난 몇 년간 지나왔기 때문에.
물론 나이에 따라 열정을 배분하는 건, 한국 사회에 만연한 나이주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그 어떤 소위 '억압적 제도'나 '이데올로기'도 나이주의의 프리즘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 나이주의의 각본에 따르자면 20대엔 열정과 도전정신, 패기로 똘똘 뭉쳐 3~50대 기성세대들이 주는 떡밥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으며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되, 20대 후반이 되거나 30대가 되는 순간 얌전히 제가 찾아 먹을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므로 통상적인 '루저'가 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 2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가 아닐까. 제 짝을, 제 밥벌이를 제대로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러면서 대다수 이들은 보수화되고...
어쨌거나 지금 같아선, 내가 30살이 되면, 그래도 최소한 품위있게 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품위있게, 기품있게. 적어도 초라하지 않게. 모호한 말이지만, 사실 간단하다. 그저 그때 하고 있는 일과 생각에 이런 저런 변명을 붙이지 않을 수 있으면 되는 것 같다. 20대 초/중반 특유의 무지와 오기, 굽히지 않는 고집을 '진정성'이 커버해주었다면 30대가 되면 진정성으로는 커버 불가능한 부분이 생길 것 같기 때문이다. 자기 변명이나 자기 변호를 하지 않아도 내가 납득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고통은 측정할 수 없다. 숫자로도, 언어로도 그것은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고통은 볼수도, 전시할수도 없다. 고통은 그냥 고약하게 아픈 것이고, 다만 절대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자원을 많이 가졌기에, 심지어 고통을 욕망하고 탐닉할 수 있는(언제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얼치기 딜레당트들이 열정적으로 '느끼고자 하는' 고통은, 엄밀히 말해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굳이 말을 찾자면 '통증'에 가깝다. 살고 있다는 구체적 느낌을 받기 위해, 자위만큼이나 무해한 자해와 폭력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금 다른 경우, 예컨대 잔인한 고문관의 눈을 바라보며 파국을 짐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정의와 도덕 혹은 관계의 가치를 믿는 사람은 바로 그 신학적 믿음으로 인해 곧 다가올 파국 앞에서 신체의 '통증'을 견디어 낼수도 있다.
그러나 고약하게도 우리는 고통을 측정하고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왔다. 우리 시대의 사회과학적 전통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계량 가능성'에 입각해 있다. 만약 사람을 계량하고 측정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느끼는 고통에도 위계와 서열을 매길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그 전통 위에서 우리는 고통의 '계량 불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할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절대로 공식적인 견해로 인정 받을 수는 없다. 그것은 근대 체계가 마련한 사회'과학'의 뿌리를 제거하려 드는 악질 바이러스이므로. 숫자가 없는 사회과학은 아예 존립조차 불가능하지 않은가.
이 점에서는 되레 자연'과학' 분야의 생리학이나 신경과학의 성과가 더 윤리적이지 않은가 싶을 정도다. 적어도 생리학과 신경과학 그 자체로는 고통의 유일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고통을 '보편적인 것', 즉 호르몬의 분비나 뇌 구조 혹은 신경체계의 기능으로 치환해 버리는 놀라운 경향을 가졌기에 이 학문들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고통의 원인을 삭제한 채, 고통에 대해 얼마든 우생학적 처방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리학과 신경과학의 성과는 고통받는 주체에게 역설적인 위안을 주기도 한다. 고통을 언어화하는 순간 일어나는 고통의 상징화, 내지는 고통의 계량화(와 그에 이은 비교)는 늘 절망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언어화도, 수치화도 할 수 없는 나의 절대적인 고통이, 단지 나의 내부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신호나 신체기관의 이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것만큼 역설적인 위로가 되는 일이 또 있을까. 만성 우울증이 단지 쭈그러든 해마나 비정상적인 세로토닌 탓이라면 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피실험자들이 실험자가 내리는 명령에 반항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는 권위자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인성이 아무리 정의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 시민들이 만약 옳지 않은 권위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그들 역시 인간의 야만성과 비인간적인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스탠리 밀그램 (이 실험의 호스트)
심리학개론 수업 들으면 종종 언급되는 이 '유명한' 실험이 얼마나 올바른지 얼마나 적합성이 있는건지 얼마나 현실적용성이 있는 건지 하는 문제들은 일단은 (이 실험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니) 차치해두자. 어쨌든 스탠리 밀그램의 결론은 나름대로 유의미한 것 같다. <파시즘의 대중심리>에 나온다는 라이히의 분석처럼.
그러나 밀그램이 "권위자와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무엇보다도 "권위자와의 관계를 단절"해도 '안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단절"하는 건 엄청난 영웅적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내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나의 양심에 비추어보았을 때 거부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권위자의 권위와 '나'를 분리시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단절" 행위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불이익들을 감수하는 일들은 오로지 개인에게 맡겨져서는 안된다. 이러한 "단절"은 권위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고 권위자와 자신을 동일시 하거나 권위를 따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곧 '배신'이기 때문이다. '배신'. 그로인해 '배신자'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왜소한 개인에게 일종의 주홍글자의 낙인으로 부여된다. ㅡ물론 예컨대 '장기수' 같은 경우에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겠지만...
한겨레신문사에서 나온 <배신>이라는 제목의 책을 서점에서 살짝 훑어보았다. 그 중에서 예전에 '삼성'의 내부를 낱낱이 고발했던 한 변호사의 글, 그리고 정신의학 전공의의 글을 읽었다. 이중 후자의 글은 재밌게 잘 보았다. '배신'이라는 말의 심리학이랄까. '신뢰'란 건 어쨌거나 정말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ㅡ한번 '배신'이라는 말로 낙인이 찍히면, 그리고 그것이 널리 한 커뮤니티에 일종의 서사적 권위를 지닌 채 전달이 된다면, '매장' 당하는 건 순식간의 일이다... 양치기 소년 우화, 박쥐 우화 등등도 우리에게 '신뢰'의 중요성을 전달하고 '배신'의 위험성을 가르쳐주는 '교훈적'인 역할을 하지 않던가.
게다가 이런 식의 '매장'은 단지 '마을'이나 무슨무슨 모임,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 같은 소규모 커뮤니티 뿐 아니라, 소위 '지식인'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교수의 비리(?)를 언론에 전달했던 한 국문과 대학원생이 완전히 그 커뮤니티에서 축출당했던 (그리고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를) 것처럼. 사람 모인데면 뭐 사실 다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배신>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글에는 이런 식의 질문이 나온다. 한 번 배신했다고 알려진 사람을 과연 당신이 속한 곳에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그래서 결속력 있고 지속성 있는 (제도화 된) 시민 단체, 시민 운동 내지는 공동체 운동의 필요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제도-장치로는 보호될 수 없는, 그런 "단절" 된 사람들을 위해서. 혹은, 더 중요하게는, 집단적 "단절"을 위해서. 급진주의 정치를 표방하며 (제도화 된) 시민단체의 '보수성' 내지는 심각한 '한계' 등을 비웃는 것은 쉬운일 이지만, 그런 식으로 빈정대고 비꼬기'만 하는' 건 역시 자위는 할 수 있지만 큰 도움은 안되는 일이다. 그것은 잡스러운 냉소주의적 좌파 에고이스트로 가는 길이다. 우리에게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그것도 안정적인, 소속감을 주는, 그런 '커뮤니티'. '저항적(이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이라면 더 좋고...
'고전'ㅡ다들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는 의미에서ㅡ인 폴 윌ㄹ스의 <학교와 ㄱ급 재ㅅ산>을 보다가 문득 이 책의 분석(자체라기 보다는 방법 및 방법적 주의)을 '학생 운동'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는 학생 운동 집단이 늘어나고 있기에(아 진짜... ㅠㅠ),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이 책에서 분석한 바ㅡ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ㅡ영국 노동자 계급 아이들의 ("해머 타운"이라는 특수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편재성을 갖고 있다. 이는 데리다가 말했던 바, "다른 이름을 위한 한 이름"이라는, 일종의 '환유'로서 읽어야 한다.) 소위 "반학교문화"는, 학교 외부의 권력 관계 그리고 계급 관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만 그 자체의 규범, 논리, 작동 기제를 갖고 있는 소문화다. 그런데 "반학교문화"는 절대 수동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는 것이다. 내부와 외부를 가르고, 외부와 관계를 맺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고유한 내적인 일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총화 그 이상의 것이다. 구성원 개인의 내적인 독특한(실제로 독특한 특성이란게 있다면) 속성과는 별로 큰 관련이 없는, 말 그대로 '문화'(구성원 간에 공유된 지식, 내지는 감정 등의 체계)다ㅡ따라서 이 "반학교문화"는 문화가 작동하는 그 자체의 맥락에 들어가 있을 때에만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인터뷰 등의 방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학교의 '공식 문화'와 갈등 관계를 맺으면서, "반학교문화"는 '비공식 문화'로서 자리잡으며, 학교에, 아이에, 교사들에게, 지역 커뮤니티에 뿌리 내린다.
또한 "반학교문화"는 자본주의의 매커니즘에 대한(그리고 학교 제도에 대한) 일련의 직관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ㅇ리스는 이를 "간파penetration"이라 개념화한다. 물론 그것이 체계화된 지식이 되어 외부로 개념화 해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훌륭한 분석이다. 그 간파는 문화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 "간파"만으로 노동자 계급이 훌륭한 프롤레타리아트가 되어 사회주의의 선봉이 되거나 혁명적/정치적 주체가 되지는 않는다. 일련의 문화적/정치경제학적 제한, 윌ㄹ스의 개념으로는 "제약limitation"으로 인해 "간파"는 왜곡되고 교란당하고 흔들린다. 이는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잠재적 가능성은 곧 실패하고 "공식 (지배) 문화"의 하부 구조로 편입된다...
이렇게 요약을 해놓으니 변변찮아 보이기도 하는데, 책을 막상 한 번 정독하면 그 이상의 통찰을 주는 구절들이 있다(그러니 한 번 쯤 읽어도 손해볼 책은 아니라는 이야기^^). 특히 지젝과 푸코의 인상 깊은 통찰 내지는 분석과 연관되는 부분이 읽히기도 하는데, 이쯤 되면 무척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문화기술지/민족지ethnography'라는 형식인데도 불구하고(사실은 현실감 없게 느껴지고 미덥지 않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이 책에 수록된 부분은 상당히 현실감 있게 읽히기 때문에(라포rapport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케 한다)...
어쨌든, 소위 '학생 운동'과 윌리ㅅ가 "반학교문화"라고 보는 것 사이에는 일련의 공유하는 지반 내지는 매커니즘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싸나이lads'와 소위 '운동권'이 공유하는 문화적 매커니즘(집단 정체성의 획득 과정, 하위 문화로서의 문화적 생성 과정, 또한 (대)학교의 '비공식 문화'로 자리 잡는 위치성, 그리고 "간파" 등등등)이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학생 운동'이 (또 얘기하기도 민망하지만) 하향길에 접어 들다 못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전에 문화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번성'할 때 조차도 갖고 있던 내적인 가능성 내지는 한계 등을 거울에 비추어 보듯 살펴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도식적으로, 그리고 표면적으로 "반학교문화"에 대한 분석을 그대로 '학생 운동'에 때려 맞추고 들이미는 것은 명백한 오류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어떤 충동들을 느낀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안 될까. 하는 탄식도 좋고 이미 사라진/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서는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필요하다. 그러나 '왜'에 대한 보다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분석이,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식의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ㅇ리스의 책에서 그 분석의 기초가 될만한 것들의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또한 푸코가 말했듯, 정치권력에 대한 분석은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가장 낮은 곳에서 권력의 현상과 기술 및 과정이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이 과정들이 어떻게 자리를 이동 및 확장하며 스스로를 변형시키는지, 그리고 특히 어떻게 이 과정이 전체적 현상들에 의해 포위되고 병합되었는지 . . . 를 보여주어야 할 것",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p. 49)) 윌ㄹ스의 책은 어느 정도의 키key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기초해서, '학생 운동'에 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들 때마다 포스팅을 하도록 해봐야 겠다. 물론 그것은 윌리ㅅ가 말한 것과 상이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아무래도 (누구의 표현을 빌어쓰자면) '운동권 경계인'이라서 이런 충동/느낌을 갖는 건지도 모른다. 발을 뺐다 넣었다 할 수 있는, 그럼에도 말만 디따 많은. 요즘 들어서 나의 '무책임'함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ㅡ서점 '그날'과 관련된 일들도 그렇고... 아마 이렇게 포스팅 해놓고는 또 딴짓하고 팡팡 놀겠지? 아아..
다음의 아고라에 뜬, 그리고 내가 신뢰하는 국내의 한 단체의 웹 사이트(ㅇㄴ네)에 배너 광고로 떴던, 바로 그 웹 페이지다. 웹 페이지의 일부를 보자면,
이 수상쩍은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단체를 보면, <서울특별시>, <행정안전부>, 그리고 생뚱맞게도(혹은 그럴싸하게도) <기아 현대 자동차 그룹>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세안들을 보면,
아, 진짜 눈물 난다 ;ㅁ;
터져나오는 사회적 '불만'을 그냥 잠재울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거리 시위를 허용하자니 윗 사람들의 눈총이 따가운 마당에 궁여지책으로 나온 프로젝트인지, 아니면 정말 생각하는 게 이 수준에 그치고 마는건지 알 수 없는 정말 수상스러운 프로젝트다. 안 그래도 듣기 싫고 귀 따가운 '불만'들이니, 차라리 노래로 승화시키라는 건감? '디자인도시'에 걸맞는 '예술도시' 프로젝트라도 하자는 건지 뭔지.
정말이지 '정치'란게 실종된 요즘이다. 요새 유행하는 '본연의 정치(proper politics)'와 관련된 개념들, 그러니까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것(le politique/the political)'개념이라든지, 바디우의 '진리/사건'개념이라든지, 발리바르의 '평등자유' 개념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끌고 오지는 않더라도(아직 끌고 올만큼 공부도 하지 않았고 그 개념들이 사실은 좀 미심쩍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건 정말 아닌데 싶은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저런 철학자들 중 한 사람 식으로 표현하자면, "본연의 정치가 실종되는" 현상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정치를 행정의 영역으로 끌고오는 것, 그럼으로써 치안을(<행정안전부>라는 이름은 얼마나 이를 잘 표현하고 있는지! 당신들, 천재야!) 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번 행정부의 빼어난 정치적 몸짓들. 너무나 빼어나서 무섭기만 한 그런 몸짓들...
그 밑에 "사회창안대회"라는 것도 클릭해서 대충 내용을 살펴 보아도 슬퍼지는 건 마찬가지다. 이어폰 잭을 통일 시켜 달라, 공공장소에 쓰레기통을 설치 해달라, 하는 것이 "사회창안(social invention)"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하에서 요구된다(물론 그러한 요구들도 정당하고 또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창안이라는 말은, 국어 사전에 보면 "어떤 방안, 물건 따위를 처음으로 생각하여 냄. 또는 그런 생각이나 방안"이라 되어 있다. 중요한 건 창안이 '처음으로' 하는 생각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회를 '창안한다'는 건, 이 사회를 근본적인 층위에서 부터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내는,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사회에서 살기 싫다!"라는 외침으로 수렴되는 혁명적인 히스테리에 의해 발생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창의적인 상상력을 동반해야 하는 거다. 따라서 이건 개념적으로 봤을 때 <행정안전부>가,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가 전유할 수 없는 말이다.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전유할 수 없는 말들을 전유할 수 있게 되려면, 모종의 상징적인ㅡ라클라우 식으로 표현하자면 헤게모니적ㅡ접합(articulation)이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엄청난(?!) 상징 투쟁과 갈등이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는 걸까. 국가 기구가 이런 '혁명적'인 어휘("사회창안")를 전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랑시에르가 지적했던 바, 정치에 대한 부인의 몸짓들 중 '초-정치(para-politics)'ㅡ정치를 행정의 논리로 번역하고, 모든 정치적 주체들의 요구들을 대의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합리적인) 경쟁으로 환원하고 마는 정치체제ㅡ의 (물론, 임시적일테지만)승리를 암시하는걸까? (게다가 이게 무려 '아고라'에 게시되어 있는 웹페이지다...)
덧) 혹시 "사회창안(social invention)"이라는 말이, "사회를 창안" 한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창안"이라는 걸까? 그렇다면 아, 뭐 말이 되네...
유학을 간다고 해서 특별히 똑똑해진다거나 영리해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라는건, 경험적으로 증명되어 왔다. 되려 오랜 기간 유학 갔다오는 동안 '현실 감각' 같은 것이 너무나 무뎌진 탓인지, 아니면 유학의 '계급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뻘소리'만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봤던 것 같다. 유학에 대한 지독한 선망이 있는 것 같은 교수들도 봤고(유학 갔다온 이만이 공부를 하는 건줄 착각하는). 오히려 똑똑하고 영민한 사람은 어디에서 언제 공부를 하더라도 똑똑하고 영민하게 공부한다는 거,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 강사(특히 교수) 임용에 있어서 '국내 박사'의 비중이 적은 국내 학계의 현실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국사학과나 국어국문학과 내지는 의학과 등 몇몇 학과를 제외하고는 대개 '해외 박사'를 선호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설령 외국에서 '생산'(이런 자본주의적인 언어 말고 또 뭐 없을까) 된 지식이 한국 학계나 한국 사회에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한국 사람들이 '생산'하는 지식은 그럼 뭐란 말인가. 게다가 한국 대학원에 가면 맨날 읽고 쓰고 하는게 이런 외국산 지식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 수업 커리큘럼을 봐도 그렇고, 한국어로 쓰인 논문에 달린 참고문헌만 봐도, 정말이지 (영어를 중심으로 불/독어가 중요하게 첨가된)외국어 투성이라 이게 과연 한국산 논문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다.
이런 점들에 대해서, 자기 밑에서 공부한 제자를 배반하고 해외 출신의 박사를 임용하는 국내 교수들의 '배반 의식' 같은 것을 거론한다든지, '학계'의 (신)식민지화('지식'의 식민지화가 아니라)를 거론한다든지 하는 건 너무 쉬운 분석인 것 같다. '배반 의식'이라든지 '식민지화'라는 말은, 한국에서는 너무나 심리학적인 울림을 갖고 있어서 우리는 그러한 기표가 만들어내는 기이한 담론 속에 엉뚱하게 휘말려 들어가기 쉽다. 그렇다고 "문제는 역시 인터내셔널 코스모폴리탄 시대의 지배 언어인 영어!"라고 거론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는 '표면적'인 분석인 듯 하다.
이런 것들 대신에, 오히려 '제의적'인 차원이 지배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해외 박사를 선호하는 대다수의 학과들(특히 사회과학계)도 해외 박사가 국내 박사에 비해 '진짜' 더 우월하고 능력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으레, 해외 박사를 선호하는 것이다. 학계의 관습이, 학계의 의식이 수십년 간 줄이어서 그렇게 변해오고 있으니까. 아마 특별한 이유는 들먹일 수는 없을테지. 물론 학계라는 장(field)에서 이뤄지는 권력의 씨줄과 날줄에 대한 분석도 중요하겠지만, 이 현실에 있어서 그건 그닥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고, 또 뻔한 일을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계급이란 무엇일까? 인종, 성, 장애 등등, 소위 '사회적'인 분류를 위한 범주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까?
벨 ㅎ스의 새 책, <벨 훅ㅅ: 계급에 대해 말ㅎ지 않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슬펐다.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데,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벨 훅ㅅ가 어렸을 때와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 그리고 자신이 성장한 집 주변에 있는 여대에 진학 했다가 겪었던 온갖 계급-인종 차별들, 좀 더 인종적으로나 계급적으로 평등함을 지향한다고 알려진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했을 때에 겪었던 모든 계급성들...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현실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살아 나가기에 한국도 엄청나게 끔찍한 공간이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다를 바는 전혀 없었던 셈.
그렇다면 나의 계급은 어떨까? 나도 완전 잘사는 집안의 아이는 못된다. 아빠는 한 시골에서는 제법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행정 관료이고, 엄마는 읍내의 한 병원에서 사무일을 본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는 3명의 자식이 있고, 첫째와 둘째는 이름만 대면 많이들 아는 대학에 다니고 있고 셋째는 집에서 2시간 거리인 다른 도시에서 유학중인 고등학생이다. 이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빠듯하기는 하지만 내 부모님은 다 대주고 있다. 나의 경우에도 매달 34만원의 방세와 6만원 가량의 핸드폰 비, 그리고 10여만원 정도의 용돈 보조를 해주고 있다. 나도 40만원의 과외 수입을 갖고 있으며 이걸로 그냥 한달은 그럭저럭 살아간다. 놀 것도 다 놀고 살 것도 대충은 다 사면서. 약소하지만 1만원의 후원금도 내고 있고.
어쨌든 나는 무리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학비를 마련하거나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든지, 돈을 벌기 위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쿨하게', 그리고 내 하고 싶은 짓 다하면서 졸업을 앞두고 있다. 교지에서 5학기를 보냈고 다른 단체나 학회 등에서도 시간을 많이 보냈다. 이렇게 '운동권 경계인'의 감수성으로 학교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 소속 과의 수업들을 경멸하면서, 그리고 많은 타인들을 경멸하고 비난하고 증오하면서, 그러면서도 나와 어딘가 비슷한 이들과는 잘 어울리면서 4년 반을 보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과정에서 계급은 굉장한 역할을 했다. 아이들을 만나는 과정들을 쭉 돌이켜보면, 나는 나와 비슷한 아이들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울의 아이들과는 거리를 뒀고, 대부분 지방에서 유학을 온 아이들에게 친밀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부모님이 교수 등의 전문직인 아이들이라기 보다는, 대개 행정 관료나 선생님 내지는 (어느 정도의 수입이 있는) 노동계급의 아이들 사이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가난해 보이거나, 너무 부자처럼 보이는 아이들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일은 굉장히 어려웠다. (물론 '보이는'게 문제 였다. 실제로 그 아이가 어떤 계급에 속해 있든 상관없이!)
아마 계급은 나에게 '환상'의 영역이었던 것 같다. 계급성, 계급투쟁의 대의, 이 모든 것에 동의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었다. 가끔은 계급이 어떻고 저떻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그 '남의 일'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는 점을 느끼게 되면, 나는 아마 입에 똥을 물고 끔찍한 말들을 내뱉으며 경멸하고 거리를 뒀을지 모를 일이다. 가난은 그저 끔찍하거나 아니면 아름답거나 둘 중 하나여야만 했다. 물론 그것은 같은 것을 지칭하는 다른 어휘일 뿐이다. '아름다운 가난'이나 '끔찍한 가난'이나, 둘다 계급이나 가난을 타자화하는 말인 점에서는 완전히 똑같다.
생각해 보면, 내가 다니는(이제 곧 졸업이군) 대학은 계급이 높은 학생들이 주로 다닐 것으로 생각되는 학교이다. 단지 경제 자본 뿐 아니라, 문화 자본까지도 두루 갖춘 부모들을 둔 학생들이 실제로 굉장히 많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옷과 신체와 행동거지와 사고 방식 모든 것에 반영되어 있다. 촌스러움과 세련됨 사이에서 많은 아이들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랜 시간 젖어 있어서 '자연스러운' 세련됨을 풍기는 아이들과, 이제서야 세련됨을 학습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거리감과 요원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웬만한 노력이 없으면 이 거리는 좁힐 수 없었다.
정치적 올바름마저 계급을 따라가곤 했다. 그것도 세련됨의 일종이었으니까, 잘 나가는 아이들은 너그러운 휴머니스트로서 정치적인 올바름까지도 쉬이 가질 수 있게 되는 모양이다. 비싼 옷과 가방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공정 무역, 가난한 사람들, 환경 오염에 대해 운운하는 모습에 심한 불편함이나 때론 역겨움을 느끼면서도 그건 단지 불편함이나 역겨움일 뿐이었다. 그것을 말할 사람도 별로 없었으니까.
나는 그런 점들을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서 굳이 의식하거나 표현하려고 한 적은 없었다. 주변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은 잘 하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들도 계급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성, 장애, 환경, 인종 등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언제나 계급은 껄끄러운 주제였다. 자기가 '현재' 돈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아이들은 많았지만, '왜' 돈이 없는가, 즉 자기의 계급 내지는 자기 부모의 계급이나 재산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 모두는 이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의 관계를 지배하는 일종의 규범 내지는 규칙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는거. 계급에 대해서 말한다는 건,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열등감 이런거, 잘 인정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고, 내가 다니는 이 학교는 이 사회의 '중심부'에 있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네가 잘나서 잘하면 되는거지 왜 남 탓을 하느냐, 너도 잘나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니냐, 너도 이제 계급 상승을 하고 있는거 아니냐 하는 암묵적인 이야기들이 모든 구성원들을 지배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암묵적인 이야기'라는 말은, 설령 자기 스스로는 계급 시스템의 모순 등을 알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음에도, 정작 자기 문제가 되면 자기 탓 내지는 개인 탓으로 돌리기 쉽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때로는 이 사회의 계급성이나 가난을 목격했을 때 '슬퍼할' 줄도 알아도, 그건 결국 1시간 지나면 잊어 버릴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럼 '나'의 계급성은 결국 '나' 스스로 열심히 극복해야 한다. 그걸 다른 사회적 범주와 차별 탓으로 하는 건 안된다. 학벌도 갖췄는데 뭐가 문제랴. 하는 생각들.
학교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가 성장한 지역을 보면 이 계급 문제는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나는 완전 변두리인 시골에서 자랐고, 그 지역에는 가난한 아이들이 더 많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 아이들 중에 잘 사는 아이들은 굉장히 드물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많은 경우 내가 자란 고향에서 머물고 있으며, 부모님의 계급이나 가업을 그대로 이어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굉장히 드문 케이스이다.
부모님이 종종 하는 말 중에 "대학에 입학한 것만으로도 됐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제야 이 말을 실감한다. 나는 계급 이동에 이미 가까이 다가왔으며, 설령 앞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을지라도 나의 학벌 자원이나 문화 자본 등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일종의 계급 보증서로서 나의 계급 이동을 철저히 보증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모르겠다. 그냥 끔찍하고 슬프고 그렇다.
벨 훅ㅅ의 책의 원제인 "where we stand: class matters" 마냥, "나(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문.
(일부러 촛ㅂ집회, ㅇㅂㄱ이라고 표시했어요. 예ㅂㄱ, ㅇ비ㄱ, ㅇㅂ군이란 뜻입니다. 검색 유입을 막기 위한 나름의 방편입니다 ;ㅅ; 그리고 짜증이 난 상태에서 쓴 글이라 거칠으니 읽으실 분들께는 너그러운 용서를 바랍니다...)
집회에 여러 차례 나가면서, 얼마 전 촛ㅂ집회에 혜성같이 등장하여 갑작스레 '시민을 보호하는' 영웅이 되어 버린 'ㅇㅂㄱ복'을 입은 남자들이 무척 짜증스럽고 역겨웠었더랬다. 하지만 굳이 이런 저런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또 얼마나 폭발적인 반응이 나올지, 또 얼마나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이 나올지, 또 얼마나 과거와 하나도 다를 것 없고 발전된 것 없는 논의들로 나를 이끌지 대충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ㄱㄷ나 ㅇㅂㄱ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다가 ㅇㅂㄱ 논쟁이 진보넷 블로그에서 한창이루어지고 있길래 며칠 동안 살짝 살펴보았다. 여전히 수년 전과 별로 변한 게 없다. 보면 짜증나고 분노만 일 뿐, 역시 나한테 의미있는 말들은 별로 없었다. (몇몇 블로거님들의 글은 많은 참고와 지지가 되었지만^.^) 국가-(군사)남성으로 이어지는 '남성성'과 '보호'와의 상관 관계, 그 담론 안에서 발생하는 <'보호자(남성)'-'피해자(약자/'여성'/'소수자' 등)'-'적(국가권력)'>이라는 삼자 관계 내부의 이데올로기적인 의미작용들, 그리고 그 담론 안에서 순환하는 (ㅇㅂㄱ과 ㄱㄷ를 옹호하는) 진부한 논리와 언어들에 대해서는 별로 하고 싶은 말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글 쓰다 보면 내가 분노와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_-;
어쨌거나 이 '논란'들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은, 예전에 한 포스팅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철(이라도) 드는게 한국 남자들이 평생을 거쳐서 해야 하는 숙명, 업보, 카르마 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ㅇㅂㄱ을 무작정 옹호하는 남자들, 그리고 ㅇㅂㄱ들이 지금 국가 폭력으로부터 누구누구들을 '지켜 주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는 남자들, 여성주의적 마인드로 쓰여진 글들에 대해 블라블라 지껄이는 남자들이 여전히 많다. 이네들은 사회적으로 전혀 성숙하지 못한, 지나치게 '유치한' 발상을 갖고 있다. 막말로 설령 자기들이 정말 시위대를 보호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정받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설령 누군가가 인정받지 않는다고 하여 상처받고, 그것을 (언어) 폭력으로 전이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막말로 그대들 인정해주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도 많잖아? 그리고 너희끼리 서로 위안해주면 되잖아? ㅇㅂㄱ이 그렇게 좋으면 너네끼리 가서 놀라고 제발 -_-)
이렇게 한국에는 '사회적인 인정'에 목 말라하는, "제발 날 좀 봐주세요"라고 절박하게 외치고 있는 남자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너희를 보호해주고 있으니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를 칭찬해달라, 는 외침이다. 좌파/우파,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인정'에 목마르다 못해 폭력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유치한' 남성들이 많은 건 똑같다.
이는 평화운동, 환경운동,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 말들이 여성주의에 대해서는 유독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남/녀 편가르지 말라"부터 시작해서 "여성주의는 이기적", "여성주의는 중산층/부르주아 여성들이나 하는 운동"들이라는, <오해>부터 시작해서 <오만>으로 끝나는 이야기들. 이와 대조적으로 "노동운동이 이기적", "평화운동은 중산층/부르주아나 하는 운동", "환경과 인간 편가르지 말라"는 말들은 잘 성립하지 않지 않는가? 대체 여성주의에 대한 이러한 말들이 겨냥하는 바는 뭘까? 이러한 말들이 욕망하는 바는 뭘까?
나는 이런 이야기들은 다른게 아니라 바로 "남성을 (제발) 인정하라"는 욕망에 기반한, '고만고만한 똑같은 소리'로 읽는다. 그럼 대체 누가 남성을 인정하는가? 바로 "지혜로운 (현모양처 형) 여성"들이다. 특히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이러한 요청은 극에 달한다. 남성들 자기 자신들이 한편으로 '불합리'하고 '짜증스럽게' 느끼는 군대 경험은, 사실상 그들을 일종의 '희생자'로 만든다. 그러한 것들을 많은 남성들이 '희생'으로 의미화하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많은 남성들은 대개 (특히) '여성'들의 감정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것을 누군가가 부정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경험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거기에 대해 무작정 분노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한국 남자들은 '응석받이'나 다름 없다. 이러한 많은 남성들의 '응석'이 얼마나 많은 논의들을 가로막고, 얼마나 많은 관계들을 황폐하게 하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들 중에 하나는, 특히 군대 문제와 관련지었을 때 자주 나오는 말인데, "여성주의는 남성을 끌어안고 갈 필요가 있다"고 운운하는 말들이다. 이런 걱정 섞인 '충고'가 얼마나 웃긴 일인지는, '여성주의'라는 말을 다른 정치적 사상들로 바꿔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탈식민주의는 제국주의자들을 끌어안고 갈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은 자본가를 끌어안고 갈 필요가 있다" 등등. 이러한 말들이 얼마나 그로테스크 한가. 이에 반해 왜 여성주의에 대해서 유독 남성들을 끌어 안고 가야한다고 요구하는 것인가(여성주의가 '남성'들을 배제하고 있다고 보는 것도 참 웃긴 일이라고 생각한다만). 왜 유독 여성주의에 대해서는 보살핌comfort를 요구하는가. 이는 여성주의를 '정치적인 담론'으로 보고 싶지 않아하는,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는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의식의 발로는 아닌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평화운동, 환경운동, 노동운동, 장애인운동, 노점 운동 등이 모두 특정한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이듯, 여성주의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운동도 이해관계와 떨어져서 작동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해관계는 필연적으로 어떤 사회적 '충돌'을 야기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이해관계의 충돌은 당연히도 어떤 특정한 그룹과 그룹 사이의 '배제'의 양식을 띠기 마련이다(이 '배제'를 최대한 상대화하고, 그 매커니즘에 지속적으로 물음을 던지는 중요한 담론 중 하나가 여성주의다). 그러나 그것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구성적인 것이고 일시적인 것이다. 그리고 설령 그 '배제' 과정에서 ㅇㅂㄱ을 옹호하는 수많은 남성들이 소외감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자체로 누가 누구에게 '사과'하거나 할 문제인가? 오히려 그 '소외감'이 대체 뭔지, 그리고 그것을 유발하는 원인부터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 한국 남자들은 매일 '센 척' 하지만 그 한편으로 너무나 말랑말랑한 심장을 가진 것 같다. 그 말랑말랑한 심장을 드러내는 거,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마치 감추고 싶은 진실을 감춘 곳을 콕 찔리면 버럭!하기 쉬운 것 마냥, 이렇게 시끄럽게 굴 필요 전혀 없다. 그 말랑말랑한 심장을 성찰하고 공개적으로(주변의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게 성장의 첫 걸음이다. 많은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 공부하라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운동에 참여하라는 것도 아니다. 지금 껏 하던 짓 그만두는게 나의 작은 바람이지만, 일단 제발 응석부리는 것부터 중단해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 그리고 성장해다오. 그래야 '소통'할 수 있단다. 너희들의 응석을 받아줄 만큼 여유 있는 사람들 별로 없단다.
덧) 보통 일상적으로 늘 '인정'받아 오던 사람들이 한 번 누군가로부터 부정당하면 쉽게 상처 받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유명하고 성공한 뉴요커 남성 예술가의 일상을 다룬 한 영화에서, 그 예술가는 자신에게 미술을 배우고 싶어 찾아온 한 여성을 성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노동력까지도 착취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여성이 그 관계의 종언을 선언하고 자신에게 미술을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자, 그 남성 예술가는 정말 큰 '상처'를 입는다. 이제와서 자기한테 왜 이러냐는 이유다. 그 전에는 일상적인 폭력과 착취에 시달렸던 인물이 순식간에 '가해자'로 둔갑하는 것이다. 늘 어렸을 적부터 인정받고 살아온 모범생들이, 동료간 경쟁과 평가에 더 민감한 것처럼...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때로는 행위에 대한 동기가 되지만, 때로는 (특히 군대나 ㅇㅂㄱ과 관련해서는) 프란츠 파농이 말했던 개념인 "수평폭력"으로 전이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