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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면 언제나 부채감만 쌓여 간다. 추석 시즌 전에 다른 일로 집에 올일이 있었는데, 동생들은 내가 집에 간다고 하니까 문자 그대로 놀라워했다는 전언이다. 내가 집에 간다는 사실 자체를 놀라워하였던 것이다(물론 나에게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집을 싫어하거나 부모님을 미워하거나, 혹은 고향을 저주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거나 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 만큼이나 장소애(topophilia)를 가진 사람이고 관계에 녹아들어 있는 사람이며, 그것을 부정하거나 과장할 마음도 없다.
다만 나는 "우리 아들"이라는 말이 버거울 뿐이다. 이 말에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운 여러 가지가 함축되어 있다. 그 말에 함축된 주름을 펴보려고만 생각해도 나는 벌써 소진되어 버린다. 이 단어의 놀라울 정도로 버거운 무게를 짊어지기에는 나는 아직 너무 작고 나약하고 힘이 없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결심은 감히 하지 못하고, 단지 내 마음을 키워야겠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지탱해야할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공무원 연금제도가 파산하지 않는한 은퇴후에도 수십년은 나보다 더 잘 사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내 태도와 마음 문제다. 그 무거운 말을 짊어지면서도 내 삶이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견결한 마음을.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효도"라 불리는 일들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의례들에게서 어떤 종류의 부담만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렸을때부터 나는 모든 의례들에서 진심이나 진정성이 아닌 '의무'만을 읽었다. 할머니(시어머니)를 대하는 엄마의 행동에서, 공무원이었던 아빠를 대하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교사를 대하는 학부모들의 행동에서 나는 언제나 '어긋남'만을 읽었다. 친척들 사이에서 따스함이 아닌, 질시와 자기연민과 자기애만을 읽었다. 우리가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모일 이유는, 기실 사회적인 의무와 압력 외엔 전연 없다고 느꼈다(다시 말해, 천인공노할 나쁜 놈이 안되기 위해서이다. 즉 depersonalize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 탓에 그러한 장면에서 작동하는 사회적인 힘에 대해서만 민감했다. 어린 나에게 어른들의 세계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세시풍속이라고, 전통 혹은 민속이라고, 도덕/인륜이라 말하기에도 그것들은 너무 민망한 것들이었다.
물론 이제는 그런 행위들과 몸짓들이, 그 의도와 진정성을 배반하면서도 '전달'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마음 속에서는 칼을 씹고 있더라도 얼굴 표정과 몸짓, 언어로 누군가는 충분히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몸짓이 우리를 느슨한 사회로 구성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도 그런 것들 앞이면 몸이 움츠러들면서 상대를 멀리하게 되었다.
우리는 영원히 그런 몸짓들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들에서 멀리 떨어져서는 생존할 수 없는 것일까?
이제 내일이면 다시 서울로 간다. 아마 다음 추석이 되기 전까지는 이곳에 올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느낀다. 이곳이 싫어서도 그곳이 좋아서도 아니고 다만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변하지 않으면 좋겠다. 모든 곳이 변해도 이곳만큼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번 올때마다 들리는 부고 소식은 여기에서는 매우 범상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곳도 결국엔 나의 바람과는 달리 모두가 변할 것이다. 몇 달 만에 본 강아지는 많이 말라 있었고, 수십 년간 거주하던 사람들은 조금씩 늙어 있었다. 아마 비슷한 함량으로 나도 늙었을 것이다. 늙는 속도는 언제나 우주의 운행법칙을 따른다.
내가 같은 종족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알고 지내던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는 일에 진절머리를 치지만 정작 자신의 결혼식에는 과연 누가 오기나 할지 현실적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동년배인 '우리'에게 이런 걱정은 과연 자신이 결혼에 적합한 인간인지, 혹은 결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이를테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내가 이곳에 거주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건 유전자의 지도를 만들어 준 부모님도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이곳에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 속 깊은 악의가 있는 것처럼 말할 때조차 나는 무엇인가를 위장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중고등학교 내내 서먹했던 친구가 이곳에서 9급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단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그 아이는 9급이고, 공무원이고, 청양에 산다. 그의 아이의 친한 친구들도 9급이거나, 말단직이거나, 청양에 산다. 나는 이렇게 그 아이들을 묘사하는 단어가 어떤 권능으로 어떤 삶을 점지할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건 구체적인 얼굴로 표상된다. 우리는 이제 다른 세계에 거주하는 다른 우주의 개체가 되었다. 물론 여기엔 하등의 아쉬움도, 즐거움도, 비난도, 칭찬도 없다. 나는 이제 몇개의 단어가 사람들을 어떻게 분할하고 어떻게 규정하는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나쁜 현재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가 남은 인생의 숙제일 것이다.
지난 해부터 올해 초까지 계획했던 일들이 하나씩 무산되고 있다. 모두가 마음 속에서는 결코 원하지 않았던 일들이라 별로 아쉽지는 않다. 다만 불안하고 걱정될 뿐이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도 펠로우쉽, 장학금 따위의 공고를 훑어봤다. 모두가 이곳보다 윤택하고 선명하다. 그래서 모두가 나에게 가능한 선택지인 것처럼 착각한다. 대학원 1학기를 끝마친 지금으로서는, 단지 몇 단어와 숫자로 나타나는 그 세계가 석사 논문보다도, 잡히지 않는 관계보다도 훨씬 더 구체적이다.
며칠 전엔 가장 최근에 출간된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하필 세밑인데다 나이에 대한 감각이 또렷해지는 마당에, 시간의 감각에 대한 가장 훌륭한 시집을 만난 것 같아 충격을 받았더랬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나머지 시집을 모두 주문했다. 다행인 것은 그 시집을 읽고서도, 적어도 우울해지지는 않았다는 것. 사실 나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 자체로 우울한 적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나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어하는 축에 속했으니까.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축 늘어진 시계 그림처럼, 우울증자의 시간 감각이 삶 전체를 질퍽하게 적셔오는 것처럼, 그리고 남들처럼, 나는 나의 이십대를 견뎌내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권태로운 오후의 햇볕이 창틀 너머로 몇 움큼씩 쏟아져 들어오는 시간들, 차츰 더 고요해지면서 푸른 빛으로 물들어가는 새벽의 시간들을 나는 아무래도 참을 수 없었고, 그래서 뭔가에 쫓기듯이 뭔가를 꾸역꾸역 해내가며 그 시간을 탕진했었더랬다. 알콜이 없으면 잠들지 못했던 날이 몇 달 몇 년이었다. 지금은 훨씬 덜한 편이고 잠도 잘 자지만, 나는 아직은 그런 시간들을 쉬이 견뎌내지는 못하고 있다. 초 단위로 침을 움직이는 시계가 시간을 날카롭게 분할하는 소리가 방안의 공기를 진동할까 싶어서 방에 시계도 두지 않는다. 아날로그 시계따위 없어도 시간은 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10년 뒤 내 얼굴이 누구를 조금 더 닮아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이십대 후반이다. 매년 말이면 나름대로 해오던 연말 정산도 하지 않고, 내년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이제는 아무런 기념일에도 감흥이 없게 된 나는, 왠지 특별히 연말연초가 되었다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도 어색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내년에도 놀랍고 새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또 누군가를 마음에 품거나 좋아할 것이고 금방 누군가를 싫어할 것이다. 마치 작용과 반작용처럼, 내가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누군가는 멀어질 것이다. 아쉽고 슬프지만 그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관계의 물리 법칙이다. 또 나는 책을 읽을 것이고 잡다한 글을 쓸 것이고 약간의 돈을 벌면서 근근히 살아갈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보면 모두가 그렇다. 나는 그들을 따라 내년에도 그렇게, 내후년에도 그렇게, 그 이후가 되어도 그렇게 살고 싶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 나는 누군가의 말을 귀기울여 들을 것이고, 그 말에 따라 내 마음에 이는 파문의 결을 헤아릴 것이다. 무언가는 기록할 것이고 무언가는 잊을 것이다. 기록되지 않아 기억의 선사시대로 접어드는 과거들을 애도하겠지만 그렇다고 저렴한 후회 같은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특별히 변할 것이 없는 인생이다. 그러나 나는 내년 연말에는 올해 연말이 그랬듯이, 내 계획과는 별개로 또 내 의지나 노력과는 별개로 어떻게든 변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내 이질성과 싸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내년 계획은 없지만 굳이 있다면 이런 점이랄까.
언제나 스스로가 한 시대의 끝을 갈무리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매력적인 자의식의 그늘이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저마다의 시대에 속하기 마련이지만, 그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이전 시대와 다음 시대,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곳에도 정주하지 못한다. 이전 시대가 남기고 떠난 옅은 체온과 냄새를 느끼며 과거를 그리워하되 혐오하며, 다음 시대의 이타성(alterity)과 불가피성을 거부하되 두려워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개인적 진실이 된다. 그들의 개인적 진실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요새와 같은 것이어서 누구도 함락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들의 자의식은 사물과 사람, 그 모두를 대할 때에 뚜렷하게 발현된다. 어차피 어느 시대에나 속하게 될 사물에는 애정을 둘 수 없어 함부로 다루되, 자기처럼 시대와 시대 사이를 둥둥 떠다니는 이들에 대해서는 남몰래 흠모한다. 그러나 그런 흠모에 대해서는 까닭없는 엷은 수치심을 느끼면서.
쓸데 없는 일 때문에 8개월이나 날려 먹어서 더 짧게 느꼈던 2010년도 드디어 안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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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한 감정들이다. 나는 때론 진단하고, 때론 선뜻 받아들인다. 나는 때로는 공격적이고, 때론 부정하고, 때론 뛰어들고, 때론 침묵을 택하고, 때론 애틋함을 느끼고, 때론 동경한다. 나는 때론 곧이 곧대로 듣지만, 때론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날이 선다. 때론 이 모든 것이 거짓일 수 있다. 나의 과장이고 윤색일 수 있고 무의미일수도 있다. 그걸 너와 나 모두가 안다. 그러나 너는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가 말한 것 이상으로 일어난다. 그 모든 것은 나와 너 모두를 초과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너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절대로 오해하고 오인하지 않으면 좋겠다. 투명한 이해를 성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실패한 오해와 오인이 투명한 이해로 둔갑하여 마지막까지 실패한 기획이 될까봐 두려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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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완전히 이해타산에 지쳤다. 이해타산은 곧 내것이 아닌 옷을 입는 일이다. 이제 나는 내것이 아닌 옷을 입는 게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지 잘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한 번 입기 시작하면 달콤한 옷 냄새와 거울에 비친 썩 만족스러운 내 모습에, 옷을 벗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옷을 여러 벌 들고 재다가 결국 입지 못하고 다른 옷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지금 들어선 옷집은 썩 만족스럽다. 무엇을 몇 사이즈로 입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이해타산이 아닌 것들을 조금 더 믿어보는 것이었다. 그 일이 너무 어렵다는 걸 알아가는 요즘이지만, 여하튼 그렇게 해보고 있다. 우리는 여하튼 냉소보다 믿음을 더 어려워하는 사회에 산다. 믿음은 쉽게 배반당하고, 나 스스로도 믿음을 쉽게 배반한다. 그래서 믿음을 더듬더듬 고백하는 것은, 술이나 권력의 힘을 빌어 냉소를 쏟아내는 것보다 수천배 쯤 어렵고 난처한 일이 되었다.
물론 온갖 벽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대화 속에서도 그 벽들은 너무나 선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궁색해지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여하튼 불안하지만 조금 더 믿어볼 일이다.
1. 요즘에도 틈나는 대로 뭔가를 꾸역꾸역 읽고 있지만, 읽는 것들이 제대로 와닿지 않는 것 같다. 공허하게 밑줄을 긋고, 아무 생각없이 책귀를 접고, 아무래도 나중에는 알아먹지 못할 것 같은 메모를 쉴새없이 끄적인다. 텍스트의 의미는 늘 겉돌고 무언가 중요한 것에 가닿지 못하는 것 같다. 읽는 것 자체로 행복할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읽을수록 결핍감에 시달린다. 이 모든 것이 나라는 독자의 문제인지, 그것도 아니면 오늘날에 소용되는 텍스트들의 전반적인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매력적인 필드를 잡았다고 되는대로 필드 저널을 쓰고 있지만 사실 쓸 말도 (아직까지는) 별로 없고 궁금한 것도 (아직까지는) 별로 없는 것 같아 불안하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하는 독서는 시간을 헛되이 길바닥에서 날려버리고 있다는 불안감을 잠깐 달래주는 것 외에는 남는 것이 없는 것 같다.
2. 하는 일이라는 게 왜 이렇게 비루해먹은지 모르겠다. 마음에도 없는 리뷰 에세이를 써내고, 없는 말을 짜내서 발제문을 쓰고, 별로 관심도 없는 페이퍼를 제출한다. 물론 나는 나름대로 무척 열심히 하고 있고, 그에 상당한, 혹은 과분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나를 완전히 좀 먹게 하는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은 자꾸 쌓여가는데 읽고 무언가 생산해내야 하는 것들은 끝없이 눈앞에 제출 기한을 깜빡이고 있다. 오랜만의 휴일이었던 오늘도 나는 하루 종일 성에 차지 않는 텍스트를 읽었고, "-_-"를 몇번이고 책에 적어 넣었다. 자서전도 좋고 생애 이야기도 좋은데, 그리고 내러티브 탐구도 다 좋아하는 연구방법론인데, 제발 글에서 뻥을 치지는 않으면 좋겠다. 그 뻥이란 대개 양적연구가 주류인 학계를 의식하면서 나타나는 자의식 과잉이라는 느낌을 준다.
3. 내가 이미 겪어왔던 어떤 시기를 아프게 경험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이지 손 내밀어 잡아주고 조금이라도 끌어주고 싶은 마음만 든다. 내가 머지 않아 지나갈 어떤 시기를 거치고 있었음을, 또한 내가 결코 외롭게 이 시기를 견디고 있는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 시기를 조금 더 잘 보낼 수 있었을 것이란 회고 탓이다. 물론 내가 어디로 끌어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당장 나 하나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때 내가 가장 굶주렸던 건 이 시기를 이미 거치고 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조언들이었다. 조언이란 벤야민의 말을 빌자면 "어떤 의문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금 막 펼쳐지려는 어떤 이야기의 연속과 관계되는 하나의 제안"이다. 그러므로 그건 내가 꼰대라고 규정하는 어떤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조언은 무엇보다 조언을 받는 사람의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더 중요하게는 조언을 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4. 얼마 전 강독 수업 시간에 나오는 카프카의 소설을 읽고 얘기를 나누다가 뭔가가 하나 깨어져 나간 느낌을 받았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짧은 소설이 어떤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의미를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파편적인 경험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서사 형식은 고독한 소설이나 공허한 스토리가 아니라 아무래도 알레고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글을 읽으면 얼어붙기부터 했었는데 이제는 좀 진지하게 읽어보고 싶다. 그러려면 독어를 공부해야하는데 아아아아
학교에서 하는 쇼팽 200주년 기념 행사의 마지막 리사이틀에 갔다 왔다. 별로 기대를 안하고 갔...다고 하기는 좀 무엇한게, 리사이틀 시작 전에 제일 먼저 공연장에 도착했기에... 여하튼 덕분에 제일 앞에 앉을 수 있었고 연주 하는 이의 몸에 쉽게 집중할 수 있었다. 빠르고 능숙하게 움직이는 통통한 손가락, 격정적인 순간에 부르르 떠는 몸, 딱딱 끊어지는 몸짓, 몰아치기 바로 직전에 들이켜는 콧소리, 연주 한가운데서 흐르는 땀방울까지, 이 모든 게 다 가까이서 전해졌다. 일찍 온 게 다행이었지. 연주 시작 직전의 몰입과 침묵의 시간, 연주가 시작하고 끝날 때 수트의 단추를 잠그고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살짝 삑사리 난 부분도 있었는데, 유명한 피아니스트도 삑사리를 낼 수 있다는 게 차라리 정직한 일이겠지. 리사이틀은 너희들 연주 들으러 온거지 다른 거 뭐 필요한 게 있냐는 듯, 인터미션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안내나 소개도 없이 진행되었다. 원래 리사이틀은 다 그런가? (내가 교양이 없어서..) 아무튼 무척 아쉬운 건 피아노 어떤 건반을 누를 때 쇳소리가 살짝 길게 난다는 거. 다른 데도 아니고 음대 콘서트홀에 있는 피아노인데 쇳소리가 나면 좀 그렇지 않나. 이 리사이틀에 비하면, 그제 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공연은 정말... 거기에 쏟아 부은 돈으로 차라리 학생들 창작극에 지원해주면 좀 좋니?
대학원 생활이나 대학원 수업이 재밌냐는 질문을 여전히 많이 받는다. 아무래도 첫 학기니까 그렇겠지만, 악의 없는 이런 질문을 받고 나면 조금 지친다. 모든 질문에 따르는 답변의 형식과 내용은, 이미 질문 자체에 어느 정도 내속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원 공부는 재미의 영역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일 뿐인데. 왜 '재미'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리게 되는 걸까? 아무래도 대학원은 '진정한' 삶이 아니기 때문에? 악의 없는 이런 사교적인 질문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을 보면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요 며칠 동안 왠지 조금 닳아버린 느낌이다. 오전 수업을 듣는 내내 장차 잡혀 있는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내일도 조금 먼 걸음을 해야 하고, 모레와 글피에도 멀리 갔다 와야 한다. 갔다 와서는 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군... 그러면 바로 월요일이 될 것이고, 다시 수업을 들어야 할 것이고... 정말 이번 학기는 지독하게 긴 것 같다. 즐거운 일은 잠깐이고, 씁쓸하고 쓸쓸한 일은 여러 겹으로 한꺼번에 터진다. 가끔 억울해질 때도 있다는 게 싫다.
1.
학부 때 그나마 좋아했던 선생님들은 모두 문학 교수였다. 한 분은 영국문학, 특히 시에 관심을 가졌고 다른 한 분은 미국문학, 특히 소설에 관심을 가졌다. 그 중 영국문학 전공교수가 이번 학기에 퇴임하신다고 했다. 정년기념 강연회를 한다는데... 영어교육과에 대한 애정은 털끝 만큼도 없지만 이 강연회는 가봐야 하나 싶어. 정년기념 강연회라니 이렇게 애틋한 이름이 있을 수 있나.
그러나 내 경험상, 영어교육과라는 학과에서 문학의 지위는 늘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에 문학전공으로 들어간 친구로부터는 아마 이 선생님들이 퇴임하시고나면 문학교수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거기엔 어떤 의외성도 없었고 차라리 자연스러움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되어야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문학이란 것은 고작 그런 지위인 것이다.
물론 문학이란 것이 특권일 필요는 없다. 즉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졸업한 영어교육과처럼 실용적인 학풍을 가진 학과에서라면, 문학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것일 뿐이다.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에서 냉소적으로 묘사되었던 바 영문학과에서는 문학이 여전히 가치 있을 수 있겠지만, 영어교육과에서는 교양으로서의 가치도 거의 없다. 문학 수업을 좋아하는 이들은 매우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 영어 공교육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 어느 교과서 텍스트에서도 문학을 쓰지는 않는다. 그러니 부족한 영어학, 영어교육방법론 교수를 초빙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교과서 전문가를 초빙하거나 수업 전문가를 초빙해서 학생들 임용고사 준비를 시키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영어교육과에서는 착하디 착한 얼굴을 한 영어 '전문가'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난 내 출신을 언제고까지 부정하게 될 것이다. 내가 거기를 어떻게 졸업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2.
갈수록 확신은 떨어져가고 그 사람의 이름만 보면 기운이 빠진다. 시작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러는 것인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 계속 가고는 있지만, 이런 무기력한 상태로 그 사람을 봐야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인가 싶다. 여전히 올바름이나 윤리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나는, 실제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면서 이렇게 전전긍긍하기만 한다. 그래서 오늘 했어야 할 전화를 망설이다가 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면대면 상황에서 이야기 드려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비겁한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이해관계가 생긴다는 것이 이렇게 비참한 일인 줄은 몰랐다. 사실 누구라도 이해관계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거기에 속하는 것을 애써 부정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피터팬 컴플렉스라고, 모라토리엄이라고 욕해도 좋다. 그러나 나는 이제 완전히 그 논리에 포섭되어 가는 느낌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오늘도 욕과 한숨으로 하루를 보냈다.
3.
그것에 대해서 나는 "찌질하다"고 표현했고, 그것은 한참이나 언어를 고르고 골라 추상화 한 결과물이었다. 경험의 농축과정, 그 결과물이 "찌질하다"라는 것일 줄은 나도 잘 몰랐다. 그건 내가 가장 거부하고 싶었던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입 밖으로 나와버린 말은, 앞으로 그것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벤야민이 말했듯 말은 생각을 정복하기 때문이다(벤야민에 따르면 글은 그 말을 지배한다. 그러나 나는 내 말에 거스르는 글을 쓸 마음이 없다). 물론 선생님은 "아름답다"라고 말씀했지만, 아름다움이란 결점을 사랑하는 것이어서, 그 결점이 태도를 바꾸어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순간, 그 잔여물에 매달리는 건 최소한의 존엄마저 포기하는 일이 된다. 나의 오랜 집착은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가진 환상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었을 뿐이다. 역사는 처음엔 비극으로, 다음엔 희극으로 온다고 했던가. 그러나 세번째를 위한 드라마는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세번째는 그냥 ridiculous하기 때문 아닐까). 환멸의 영토에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한 느낌이고, 마침내 지쳐버린 것 같다. 지쳐서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다. 지금 당장은 구토하고 싶고, 그러고나면 이제는 연애나 하고 싶다. 여기까지 오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리석었던 시간들에 안녕과 애도를.
4.
이야기에 굶주린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옴니버스 영화 <어떤 방문>의 첫 번째 단편을 보면, 할아버지를 여읜 재일조선인(?)이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남은 족자를 유언에 따라 돌려주기 위해 한 일본 가정에 방문한다. 할아버지는 이 집주인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었고, 그 보답으로 족자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집주인은 방문한 이에게, 이전에 할아버지에게 받았던 부채를 돌려준다. 이 부채의 내력이 있냐고 물으면서 말이다. 내력이라니...! 사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사물에 깃든 이야기를 점점 더 들을 수 없게 된 요즘에는 '내력'이라는 말이 갖는 아우라가 있는 것 같다. 비단 사물 뿐 아니라, 장소에 깃든 이야기 조차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듣기'보다는 기록된 것을 읽어야 하니 말이다. 소설을 '읽는' 것도 조금 지친 것 같다. 꿈 이야기도 좋고 옛날 이야기도 좋으니, 이야기나 좀 듣고 싶어.
5. Must-see 강연!
초청 강연자: 타니 바로우(Tani Barlow) 교수
강연 제목: New Trends in the Debates in Colonial Modernity and Critical Asian Studies
(식민지 근대성 논쟁의 새로운 흐름과 비판 동아시아학)
*일시: 2010. 9. 15 (수) 오후 2:00 ~오후 6:00
*장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강당
바람이 세게 불었던 어제 아침, 내가 좋아하는 악보가 그려진 검은 우산을 들고 나가면 금방 부서질 것 같아 신발장에서 새 우산을 꺼냈다. 우산은 튼튼해보였지만, 손잡이엔 누구의 칠순잔치라는 게 써 있었고, 그게 창피했던 나는 그걸 모두 긁어내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우산은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에게 그걸 말해두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 우산은 내것이 아니라는 예감, 그러나 좋아하는 우산이랑 비슷하고 지금 필요하니까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 예감대로 나는 커피를 사러 들어갔다가 그 우산을 놓고 나왔고,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두고 나왔고, 열람실에다 놓고 나왔다. 그 때마다 모두 머지 않아 서둘러 돌아가 찾았다.
그러나 택시를 타고 낙성대 역에 도착했을 때, 마침내 그 우산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어제 낮, 해가 떠서 더 이상 우산이 필요 없었을 때, 차라리 우산을 버리고 돌아다녔으면 어땠을까? 그러나 나는 시작부터 내것이 아니었던 우산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다. 내것이 아닌 것 같으면 처음부터 내것이 아닌데. 그러나 나 스스로는 내것이 아닌 우산을 절대 버리지 못할 것이고, 마지막 혹은 파국에 이르러야 내 의지에 역행해서 우산과 결별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여러 일들이 떠오른다. 문제는 <우산>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