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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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2010/04/19 4월 19일 (5)
일기 / 2010/09/09 22:53

1.

학부 때 그나마 좋아했던 선생님들은 모두 문학 교수였다. 한 분은 영국문학, 특히 시에 관심을 가졌고 다른 한 분은 미국문학, 특히 소설에 관심을 가졌다. 그 중 영국문학 전공교수가 이번 학기에 퇴임하신다고 했다. 정년기념 강연회를 한다는데... 영어교육과에 대한 애정은 털끝 만큼도 없지만 이 강연회는 가봐야 하나 싶어. 정년기념 강연회라니 이렇게 애틋한 이름이 있을 수 있나.

그러나 내 경험상, 영어교육과라는 학과에서 문학의 지위는 늘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에 문학전공으로 들어간 친구로부터는 아마 이 선생님들이 퇴임하시고나면 문학교수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거기엔 어떤 의외성도 없었고 차라리 자연스러움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되어야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문학이란 것은 고작 그런 지위인 것이다.

물론 문학이란 것이 특권일 필요는 없다. 즉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졸업한 영어교육과처럼 실용적인 학풍을 가진 학과에서라면, 문학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것일 뿐이다.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에서 냉소적으로 묘사되었던 바 영문학과에서는 문학이 여전히 가치 있을 수 있겠지만, 영어교육과에서는 교양으로서의 가치도 거의 없다. 문학 수업을 좋아하는 이들은 매우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 영어 공교육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 어느 교과서 텍스트에서도 문학을 쓰지는 않는다. 그러니 부족한 영어학, 영어교육방법론 교수를 초빙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교과서 전문가를 초빙하거나 수업 전문가를 초빙해서 학생들 임용고사 준비를 시키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영어교육과에서는 착하디 착한 얼굴을 한 영어 '전문가'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난 내 출신을 언제고까지 부정하게 될 것이다. 내가 거기를 어떻게 졸업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2.

갈수록 확신은 떨어져가고 그 사람의 이름만 보면 기운이 빠진다. 시작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러는 것인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 계속 가고는 있지만, 이런 무기력한 상태로 그 사람을 봐야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인가 싶다. 여전히 올바름이나 윤리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나는, 실제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면서 이렇게 전전긍긍하기만 한다. 그래서 오늘 했어야 할 전화를 망설이다가 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면대면 상황에서 이야기 드려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비겁한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이해관계가 생긴다는 것이 이렇게 비참한 일인 줄은 몰랐다. 사실 누구라도 이해관계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거기에 속하는 것을 애써 부정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피터팬 컴플렉스라고, 모라토리엄이라고 욕해도 좋다. 그러나 나는 이제 완전히 그 논리에 포섭되어 가는 느낌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오늘도 욕과 한숨으로 하루를 보냈다.


3.

그것에 대해서 나는 "찌질하다"고 표현했고, 그것은 한참이나 언어를 고르고 골라 추상화 한 결과물이었다. 경험의 농축과정, 그 결과물이 "찌질하다"라는 것일 줄은 나도 잘 몰랐다. 그건 내가 가장 거부하고 싶었던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입 밖으로 나와버린 말은, 앞으로 그것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벤야민이 말했듯 말은 생각을 정복하기 때문이다(벤야민에 따르면 글은 그 말을 지배한다. 그러나 나는 내 말에 거스르는 글을 쓸 마음이 없다). 물론 선생님은 "아름답다"라고 말씀했지만, 아름다움이란 결점을 사랑하는 것이어서, 그 결점이 태도를 바꾸어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순간, 그 잔여물에 매달리는 건 최소한의 존엄마저 포기하는 일이 된다. 나의 오랜 집착은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가진 환상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었을 뿐이다. 역사는 처음엔 비극으로, 다음엔 희극으로 온다고 했던가. 그러나 세번째를 위한 드라마는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세번째는 그냥 ridiculous하기 때문 아닐까). 환멸의 영토에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한 느낌이고, 마침내 지쳐버린 것 같다. 지쳐서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다. 지금 당장은 구토하고 싶고, 그러고나면 이제는 연애나 하고 싶다. 여기까지 오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리석었던 시간들에 안녕과 애도를.


4.

이야기에 굶주린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옴니버스 영화 <어떤 방문>의 첫 번째 단편을 보면, 할아버지를 여읜 재일조선인(?)이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남은 족자를 유언에 따라 돌려주기 위해 한 일본 가정에 방문한다. 할아버지는 이 집주인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었고, 그 보답으로 족자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집주인은 방문한 이에게, 이전에 할아버지에게 받았던 부채를 돌려준다. 이 부채의 내력이 있냐고 물으면서 말이다. 내력이라니...! 사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사물에 깃든 이야기를 점점 더 들을 수 없게 된 요즘에는 '내력'이라는 말이 갖는 아우라가 있는 것 같다. 비단 사물 뿐 아니라, 장소에 깃든 이야기 조차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듣기'보다는 기록된 것을 읽어야 하니 말이다. 소설을 '읽는' 것도 조금 지친 것 같다. 꿈 이야기도 좋고 옛날 이야기도 좋으니, 이야기나 좀 듣고 싶어.


5. Must-see 강연!

초청 강연자: 타니 바로우(Tani Barlow) 교수

강연 제목: New Trends in the Debates in Colonial Modernity and Critical Asian Studies
(식민지 근대성 논쟁의 새로운 흐름과 비판 동아시아학)

*일시: 2010. 9. 15 (수) 오후 2:00 ~오후 6:00
*장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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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9/03 13:38

바람이 세게 불었던 어제 아침, 내가 좋아하는 악보가 그려진 검은 우산을 들고 나가면 금방 부서질 것 같아 신발장에서 새 우산을 꺼냈다. 우산은 튼튼해보였지만, 손잡이엔 누구의 칠순잔치라는 게 써 있었고, 그게 창피했던 나는 그걸 모두 긁어내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우산은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에게 그걸 말해두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 우산은 내것이 아니라는 예감, 그러나 좋아하는 우산이랑 비슷하고 지금 필요하니까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 예감대로 나는 커피를 사러 들어갔다가 그 우산을 놓고 나왔고,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두고 나왔고, 열람실에다 놓고 나왔다. 그 때마다 모두 머지 않아 서둘러 돌아가 찾았다.

그러나 택시를 타고 낙성대 역에 도착했을 때, 마침내 그 우산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어제 낮, 해가 떠서 더 이상 우산이 필요 없었을 때, 차라리 우산을 버리고 돌아다녔으면 어땠을까? 그러나 나는 시작부터 내것이 아니었던 우산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다. 내것이 아닌 것 같으면 처음부터 내것이 아닌데. 그러나 나 스스로는 내것이 아닌 우산을 절대 버리지 못할 것이고, 마지막 혹은 파국에 이르러야 내 의지에 역행해서 우산과 결별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여러 일들이 떠오른다. 문제는 <우산>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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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9/01 21:10
2년 반 만에 '개강'이라는 걸 맞이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왠지 긴장되는 마음에 늦잠을 잤음에도 서둘러 집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02번 버스를 타는 줄은 무척 길어서 한참을 걸어서 줄을 서야만 했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았던가. 줄을 따라 햇볕은 뜨거웠고 공기는 눅눅했다. 정수기에서 뜬 차가운 물이 금방 미지근해졌다. 불쾌한 습기가 몸을 엷게 감쌌다. 한여름 장마철에 1회용 우비를 입은 느낌. 오래 된 마을버스는 에어컨도 잘 나오지 않았다. 과연 이게 잘 한 선택인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학교에 가서 아는 얼굴을 많이 만났다. 반가운 얼굴은 적고 피하고 픈 얼굴은 많다. 얼굴만 여러 번 봤던 후배들은 빠르게 지나쳐가는 나를 다시 한 번 힐끗 바라본다. 2년만 더 있다가 학교에 왔어도 이런 곤혹스러운 일은 당하지 않을텐데. 서둘러 단대 열람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는데 에어컨에서는 곰팡내가 난다. 열람실 한 편엔 옛날 NL이었던 사람이 고시인지 임고인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점심은 어쩌다보니 커피로 때웠다. 그 사람은 그냥 자리에서 굶는 것 같았다. 신입생 OT는 그럭저럭 40분 만에 끝났다. 밖으로 나오자 갈데가 없었다. 중앙도서관 열람실에도 내 자리는 없었고 단대에도 없었다. M 말대로 그 방에라도 자리를 잡고 싶었다. 내일 한 번만 더 권해주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제 S와 H랑 오래 술을 먹으면서 (나로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내 욕심이 어디까지인지, 내가 못하는 것 혹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침내 선명해지는 순간들!

유치한 감정들은 여전히 낯설고 내것이 아니어야 할 것 같지만, 이번 학기부터는ㅡ어쩌면 내 인생 사이클에서 마지막일지 모르므로ㅡ당분간 그 감정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다. 치기 어린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여지면 받아들여지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이렇게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이걸 긍정적이라고 볼 것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나를 낯설어하게 될 것 이다. 그것도 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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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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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8/25 22:25
휴가를 나와 이사한 집에서 머물던 동생이 갑자기 뇌수막염 판정을 받고 입원했다. 친척들과 부모님 집들이하랴, 병원 왔다갔다 하랴, 정신없이 보냈던 며칠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동생이 퇴원해서 국군병원으로 간다. 야간엔 눈이 잘 안보이고, 처음 가는 서울 길을 무서워하고, 오래 운전하면 너무 피곤해서 자주 조는, 또 이제는 50 중반 들어선 아빠는, 내일 아침 일찍 동생을 홍천 국군병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서울 집에 와 있다. 그리고 지금은 내 방에서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나는 아마 오늘 밤 잠을 설치게 될 것이다. 엄마는 여느 때처럼 묻지마 세트를 잔뜩 보냈고, 나와 동생은 그것들을 정리하다가 조금 짜증이 났다. 도대체 아무도 먹지도 않는 곶감은 왜 가져왔냐며, 변하니까 도로 가져가지도 못하지 않냐며, 제발 좀 미리 물어보고 주든지 말든지 하라고 대놓고 역정을 내는 자식들에게, 아비는 순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외삼촌과 소주를 마시고 눈이 벌개져 돌아온 아비가 외삼촌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나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궁금해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어지러워 아무 책이나 집고 폈는데, 하필이면 그게 공지영 작가의 옛 소설책이었다. 그 소설책의 몇 소설들은, 90년대식 부채감을 가진 자아로 80년을 회상한다. 90년대식 부채감을 가진 소설의 자아는 '살아남았고', 약간의 죄의식으로 '잘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혹은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전에 두 번 읽었던 이 소설책에서, 나는 이전과는 다른 구절들을 인상 깊게 읽고 책귀를 펴고 접는다. 오늘 만났던 A에게, '삶이 간결해지고 있다',고 말했던 건 실은 이 책에서 읽었던 표현이었다. 원작 소설과는 다른 맥락이었지만 말이다. 이 소설책은 지나간 것들에 대해, 혹은 지나간 것들의 이름으로 현재를 이야기한다.

구체적인 소재는 다르지만, 요즘의 내 상태와 책의 정서 구조는 밀접하다. 영원히 정리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무엇인가가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인가는 차곡차곡 정리되어 내 과거의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에 전시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여야만 하는데, 혹은 원래 오늘 가려고 했던 심포지엄의 주제인 어느 철학자의 표현을 조금 빌자면, 오래 지속되는 미래이어야만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하나 둘 씩 자연스럽게 과거가 된다. 지금의 내게 남은 게 별로 없다는 느낌이다. 내일은 S와 이태원에 가기로 했다. J도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했다. 만나면 좋겠는데. 약속 시간은 늦은 저녁이다. S를 만나기 전엔 오랜만에 종로에서 청춘을 다룬 영화 한편을 볼 것이다. 그리고는 좋아하는 커피 체인점에 잠시 앉아 있어야 겠다. 이태원에 가서는 술을 마시겠지만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과음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내일이다.

길었던 8월이 마침내 가고 있다. 비가 많이 온다. 더위도 좀 해결이 되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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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8/19 22:03
요 며칠 중요한 신변의 변화가 생겼고, 이 급격한 변화는 기실 몇 달 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기 때문에 변화 자체에서 혼란을 느끼지는 않고 있다. 변화한 뒤의 여러 날을 미리 살아왔다는 듯이. 하긴 뭐 상징적인 의미만 클 뿐, 실질적인 변화는 아니라고 보아도 좋으니까. 여하튼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해야겠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 핑계가 모두 사라졌으니까. 일상을 조금 더 조여도 좋을 것이다. 느슨한 건 가끔이면 족하다.

오늘 책 정리를 끝으로 이사를 모두 마쳤다. 이번 이사는 그냥 원룸이 아니라, 방 2개(+ 작은 방 하나) 세를 얻어 들어오는 것이어서 살림살이를 모두 마련해야 해서 일이 컸다. 아니, 일이 컸다고 말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 대부분은 구입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집에 이것저것을 설치하고 갔다. 이렇게 서울에 다시 살게 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 특히 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경우엔 사람들이 한없이 친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치가 끝나고 갈 때는 전화가 오면 친절하게 설치를 받았다고 한 마디만 해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이 엄청난 더위에, 온 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싫은 내색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 무시무시한 감정의 조절, 통제, 그리고 감정을 둘러싼 여러 규율들. 얼마 전까지 살았던 동네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다. 거기서는 택배가 온다는 시간도 들쑥날쑥하고, 집에 있겠다고 했다가 잠시 외출이라도 했다치면 전화로 욕을 먹기(?) 일쑤였는데. 그러나 나는 후자가 더 좋다. 나쁜 소리를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나빠지지만, 나는 서울에서 느끼는 어떤 황송함 내지는 부자연스러움이 너무 싫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건지. 피부로 느끼기엔 이런 시스템이 2008년보다 훨씬 더 한데.

간만에 생활인이 되고 나니까 예전엔 귀찮았던 것들을 척척, 하게 되는 것 같다. 빨래도, 설거지도, 쇼핑도, 청소도 미루지 않고 척척, 하게 되었다. 이불도 일어나면 척척, 갠다. 식사도 대충 라면이나 끓이거나 참치나 김 따위로 때우지 않고, 뭔가를 가열하고 요리해서 먹게 되었다. 반찬도 조금씩 만들어보고 있다. 반찬도 보관통채로 꺼내서 먹지 않고, 적당히 먹을 양을 접시에 덜어서 먹는다. 자기 전에는 쌀을 씻어 아침밥 취사 예약을 해놓고 잔다. 이 생활패턴이 자리 잡히면 영양학도 신경쓸 것이고, (지금도 거의 채식이지만) 채식 위주의 식단도 연구해봐야지. 이제 적당한 운동만 시작하면 되는데, 일단은 돈이 들지 않는 러닝을 해볼까 생각중이다. 2분 거리에 학교 운동장이 있으니까. 이렇게 해야 우울하지 않게, 또 건강하게, 성실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당분간은 충실하게 실천해보려고 한다. 막상 행동으로 옮기면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예전처럼 미루면서 해야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 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유명한 이론가들을 읽고 그것을 재맥락화하여 글로 옮기는 것, 그리고 '독창적인' 사유를 하고 글을 쓰는 것,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게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얼마 전까지는 정신분석학(특히 지젝)을 인용하는 글을 보면 부끄럽고, 랑시에르나 바디우, 푸코를 인용한 글을 보면 그저 피곤해지고, 맑스나 알튀세 등등을 인용한 글을 보면 왠지 모르게 입안이 텁텁해진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건 내가 그 이론가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거장들을 읽는 건 자칫하면 '사유능력의 과부하(마치 인용하는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굴다가 글이 자기 통제력을 넘어버리는 것)' 혹은 '사유의 자판기 효과(어떤 현상을 이론적 자판기에 집어 넣으면 자동으로 그 현상을 진단하는 글이 요리되어 나오는 것)'를 낳는다. 그렇다고 그 반대축으로 가버리면 어떨까? 문자 그대로 '독창적인' 사유와 글이 과연 있을까. 외면상 인용이 없다고 한들, 그 글이 과연 거장들을 현란하게 인용하는 글과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가장 바라는 건, 나 스스로도 쓰면서 즐겁고 독자들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글을 쓰고, 현상과 맥락에 맞는 사유를 하는 일인데. 다시 말해 좋은 글을 읽고 쓰고 읽히고 듣는 일인데. 모든게 너무 어렵다. 왜 나는 글을 잘 못쓸까? 앞으로 본격적으로 학교에서 공부 하면서는 심히 노력을 하는 수밖에... 모르는 걸 창피해 말고 내가 가진 것들 사이에서 길을 잘 찾아야지. 적어도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는 서서히 보이고 있다. 아직 명징하지는 않지만, 여하튼 좋은 징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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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8/13 00:08

창문을 모두 열어 놓으니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밤이다. 스피커에서 흐르는 노래도 물을 흠뻑 먹은 듯 질퍽대며 어딘가 힘겨워 잘 들리지 않는다. 김현 평론가가 생전에 즐겨 불렀다는 산울림의 <청춘>을 배경음악으로 깔아뒀는데, 폭우 소리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잠들기 전까지 무한반복해 들을 예정이다. 이 노래가 어쩐지 스물 아홉에 들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특히 서른 넘어갈 즈음에... 비가 과연 쏟아지는 중이다.

황정은의 소설집을 완독했다. 너무 좋아서 어느 작품은 두 번 세 번 읽었다. 신형철 평론가가 <백의 그림자> 해설에서 이 소설집을 발표한 순서대로 읽어보라고 하기에 그렇게 읽었다. 그러자 과연 이 작가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게 느껴졌다. 부러울만한 속도로 말이다. 사실 초기 작품인 <마더>나 <소년>은 조금 평이하다고 느꼈지만(그래도 좋은 작품), 그 이후에 발표한 작품은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좋았다. 내가 느끼기엔 신형철 평론가가 좋아할만한 스타일ㅡ평소에 하던 이야기에 부합하는 스타일, 즉 나 역시 좋아할만한 스타일ㅡ을 갖춘 작가였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 작가가 명사(특히 이름)을 다루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이 작가는 배수아를 좋아할까?). 같이 구입한 <백의 그림자>는 아직 읽지 않았다. 한나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뒹굴거릴 수 있을 때 읽으려 한다.

대가족적인 삶에 대해 동경한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왜냐면 어렸을 적 꽤나 오래 그런 식으로 살았으니까), 최근에 사진을 정리하면서 (재)발견한 동영상 몇개를 보면서 그것도 꽤나 좋을 때가 있으리란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2006년 겨울 <열린 교실> 때였는데... 점심 때 아이들과 함께 김밥을 싸먹고 비빔밥을 해먹던 때였다. 언제나 시끌벅적 했다. 어느 손은 당연하다는 듯 서툴게, 어느 손은 김밥을 좀 팔았는지 능숙하게 밥을 펴고 재료를 깔고 둘둘둘.. 물론 맛있었다. 그리고 큰 양철에 고사리며 도라지며 콩나물이며 참치며 참기름이며를 듬뿍 넣고 사깡에서 사온 공기밥을 털어 넣고 고추장을 넣어 슥슥비벼서 입안 한가득 넣던 10명의 사람들. 내 컴플렉스인 목소리가 많이 들려서 민망했지만 어쨌든.

짐멜의 에세이 <대도시의 정신적 삶>을 읽고 조금은 엉뚱하게 생각했던 건데... 아이들에게 예쁜 걸 입히고 좋은 걸 주고자 하는 마음이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나, 그렇게 하는게 과연 아이에게 좋을지는 의문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반응에 민감하기 때문에, 부모 욕심이라는게 보이면 그것에 은근슬쩍 응해버리기 쉽다. 그건 결국 아이의 감성을 부모의 감성대로 패턴화하는 것, 아이를 작은 부모로 만들어 버리는 것, 달리 말해 자극을 처리하는 방법을 (시행착오 끝에) 아이 스스로 터득할 가능성을 막아 버리고 이미 한 번 처리된 자극만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기 아이의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한 부모들이 조금 거북하다. 아이들마저 레디-메이드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므로 나는 어릴 때는 '촌스러울'수록 좋다고 믿는다. 아이들에게 회사에서 만들어 파는 장난감을 줄 필요도 없다. 벤야민이 말했듯이 아이들은 모든 사물에서 장난감을 발견하니까. 옷도 예쁜 새옷을 입히느니, 어디서 받아와 성장의 흔적이 묻은 헌옷을 입히는 게 좋다고 믿는다. 또 아이의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면 학원에 보내고 비디오를 보일 게 아니라 부모가 먼저 집에서 공부를 하면 된다. 미메시스의 원칙.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 특별히 잘하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 듯 기다리면서. 그리고 아이들 특유의 변덕을 인내하면서. 여기 덧붙인 사진은 나는 아니고 동생 어릴 때인데, 모두 어디서 받은 낡은 옷을 입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예쁘잖아.

결국 저마다의 방식이란 게 있는 법이어서, 예전 같으면 이기적인 행동 아니냐고 얼굴을 붉혔을지도 모를 어떤 방식에 대해 납득하게 되어버렸다. 납득하게 되었다는 건 나를 그 방식에 던져 넣는 것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게 과히 나쁘지 않다. 관계에 이기적인 건 어디에도 없다. 서로에게 최소한의 예의만 지킨다면, 결국 저마다의 방식으로 만족하게 될 것이니까. 어쩐지 여유가 생긴 느낌이다.


덧) 이게 앞서 언급한 김밥 씬. 이런 동영상이 몇 개 더 있는데... 아 배가 고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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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8/10 17:32
어쩐지 트위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 같아서는 쓸말도 없고, 타임라인에서 읽을 말도 없다. 현직 작가들이나 뮤지션들을 많이 팔로잉 했는데, 그들이 구름 위에서 노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고는 왠지 시시해졌다. 몰랐던 바가 아니지만, 실망했던 것 보면 나름 어떤 기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난 자기의 문제(상처, 사랑하는 방법, 기억 등등)를 작품화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윤리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타인의 문제를(혹은 자기 문제라도 보편으로서 설득할 수 있는) 소설과 시와 노래로 쓰는 사람을 알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문 것 같다. 결여와 결핍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건 너무나 당연한 삶의 조건이니까 조금은 다른 가능성을 보고 싶었던 것 뿐이다. 어차피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요금제가 달라져 휴대폰으로 트위터에 접속할 수도 없다. 차라리 잘되었다는 마음으로 트위터와 얼마 간 절연해 보기로 했다.

집에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가입했던 주택 청약 통장은, 매달 10일이면 꼬박꼬박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 간다. 당분간 수입이 없을 나로서는 너무 큰 부담이기 때문에, 이걸 해지하지는 않더라도 매달 인출 금액을 최소 한도로 맞춰놓고 싶었다. 부모님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왜 그러냐며 반대하신다. 나는 수입이 없는 대학원생이라고, 어차피 난 부유하게 못 살 것이고 그러므로 내 인생에서 집을 구입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얘기했더니, 문자 그대로 펄쩍 뛰면서 그런 소리 말라신다. (그런데 어쩌나, 정말 그럴 것 같은데) 집을 구입하기 위해선 누구나 무리하는 거라고, 누구나 빚을 내면서까지 사는 거라고 설득한다. 대출금 원금과 이자로 뭉텅뭉텅 통장이 잘려 나가고, 행여나 잔금이 모자랄라치면 밤낮 걱정하면서, 다른 데도 아니고 은행에 저당잡힌 인생을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고 말겠다는 얘기까진 하지 못했다.

얼마 전 서울에 가는 버스 안에서 <1박 2일>을 봤다. 내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예능인데,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프로그램의 감수성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 착한 도덕주의 프로그램은 독도에 찾아가서 경비대원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줬다. 경비대원들은 계급 순으로 줄을 서서 자장면을 받아야 했고, 결과적으로 수경과 상경 계급은 일찍 다 자장면을 먹었지만, 일경이나 이경 계급은 군침을 삼키며 노심초사 자장면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다. 카메라는 그걸 매우 재밌는 일인양 담았다. 계급 사회에서 이정도는 당연하다는 듯, 그리고 이런 게 참 재미있지 않냐는 듯. 나라면 씨팔, 이딴 자장면 안처먹고 말아, 라고 했을 법한 (나로서는) 모욕스러운 장면이었다. 한국의 계급(남성)사회에서 하급자에 대한 인격적 모욕은 이렇게 재미있는 것, 추억이 될만한 것으로 정당화 된다. 하급자도 상급자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언어폭력이나 구타가 많이 없어졌다고 해서 그 구조가 바뀐 것은 아니다.

서점에서 뒤적인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인데, 프루스트는 지인들로부터 최고의 친구(사교적이고 사려깊고 친근한 느낌을 주고 쿨한 직업을 가졌고 게다가 유명하기까지 한)라는 찬사를 들었지만, 정작 본인은 우정에 대한 회의를 표현하고 피플들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의 시간을 꿈꾸곤 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소설가인지 나로서는 읽지 못했으므로 사실 알지 못하지만(물론 그는 정전(canon)의 반열에 오른 소설가이다), 당대 사교계의 톱스타급 '지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얼마나 충실하게 수행했는지를 알 수 있다. 체스터톤은 어디선가 "교육을 찬양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 교육에 대해 얼마간 경멸하지 않고서는 누구의 교육도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프루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정에 대해서도, 사랑에 대해서도,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의 생로병사를 경험하고, 그것의 허망함에 대해 아는 사람만이, 그것에 대해 진정으로 깨닫고 있다고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야만 대상을 관조할 수 있는 '거리'가 생기고, 그 때 우리는 그것의 완성을 본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대문 사진 밑에 보면 작은 글씨로 'history'라고 쓰인 게 있는데, 그걸 누르면 여태까지 썼던 대문 사진과 글이 모두 나온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다이어리야 폴더 비공개로 돌리면 간단한 문제지만, 이건 대책이 없어서 죄다 지워버렸다. 더 어릴 적엔 왜 그렇게 싸이월드에 집착했었는지, 한 페이지에 5개 히스토리가 나오는데 이 페이지가 총합 250여 페이지였다. 모두 수동으로 지워야 했으니까 나는 클릭과 스페이스를 최소 1250회 이상 누른 것이다. 왜 지웠냐고? 너무 '쪽팔려서'. 왜 쪽팔리냐면, 그때의 기억들과 행동과 감정들이 모두 그때엔 진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 지난 진정성만큼 창피한 것도 없다. 짝/사랑의 기억,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온갖 고민들, 배신감, 정체감, 공허감, 허세(니체나 체 게바라를 들먹이는), 유치함 따위가 뒤섞인 싸이월드 히스토리를 보는 건 창피한 걸 넘어 정말 미칠 것 같은 일이다. 결국 30분 걸려서 다 지웠다. 대단해.

요즘엔 레이 초우의 글을 자주 읽고 있다. 그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는 섣부른 보편주의도 아니고 맹목적인 특수주의도 아니기 때문이다. 말로만 보편주의/특수주의라는 쌍둥이 이분법을 비판하는 사람들이야 많지만, 레이 초우만큼 이 이분법 너머에서 사유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문화연구라는 매력적인 이론적 도구의 이상적 조합을 보는 것 같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비평가들도 대개 내가 좋아하는 비평가들이다. 당분간은 계속 읽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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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8/08 22:58
1. 처음으로 워크샵에 갔다 왔다. 가서 아주아주 심하게(!!) 걱정되는 바를 알게 되는 바람에, 내가 여기에 발을 들인게 과연 잘한 일인가, 아직 발을 뺄 수 있을 때 빼고 직장이나 다른 대학원을 알아봐야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순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여하튼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는 꽤 좋았다. 왠만한 학회에서라면 다 느껴졌던 어딘가 모를 암울함이나 침체된 느낌, 그리고 '나 잘났다' 따위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차라리 어떤 건전한 활기 같은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사람이 정말 많았고, 표면적으로나마 대화의 순간에는 다들 서로에게 귀를 여니까. 또 모두들 왠지 '착한' 느낌에 예의도 바라서(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하대하거나 막 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또 여러 사람들이 베풀어 준 예상 외의 환대와 관심을 먹고 조금은 무럭무럭 자라서 살을 찌운 느낌이다. 호의에는 호의가 반응한다. 작용과 반작용. 관계에 작용하는 물리 법칙.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2. 이사를 맞이해 엄청난 양으로 쇼핑을 했다. 어차피 오래 쓸 것 같지 않아 중고를 사려고 해봤으나, 돌아다녀본 결과로 중고는 너무나 중고스러웠기 때문에 전부 다 신상품을 사버려야 했다. 아름다운 가게처럼 좀 깔끔하고 예쁘게 정돈해서 저렴하게 팔면 좋을텐데. 여하튼 세탁기, 냉장고, 오븐 겸용(!!) 전자 쿠커(머핀 틀도 있어 ㅠㅠ), 가스레인지, 책상+책장, 서랍장, 전신거울 등등을 모두 다 샀다. 심지어 가장 작은 사이즈 김치냉장고까지. 엄마가 동행하는 바람에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모두 구입해야 했다. 그리고 돈, 돈, 돈... 살림 하나 더 차리는게 이렇게도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니. 그래도 이왕 다 샀으니까 예쁘게 아껴서 써야지. 나중에 중고로 내놓더라도 다음에 쓸 사람이 기분 좋게 쓸 수 있게. 새로 산 물건을 조심스럽게 써서 새것 처럼 유지하는 것도 이 왕성한 소비사회에서는 미덕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살림살이가 생각보다 무지 늘어나는 바람에 아무래도 빈백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아 슬픔.

3. 학교를 벗어난 인간 관계에서 제일 힘든 것 중에 하나는 젠더에 대한 충실이 자연스럽게 요구된다는 점이다. 나는 그리하여 끊임 없이 증명해야만 한다. 내가 나의 젠더로서 생각하고 인식하고 감각하고 행하고 존재한다는 것. 친구들 사이에선 잠시 잊어도 좋았을 것이, 이제는 잠시도 잊어서는 안되는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내 행동과 사고는 식민화 되고 사물화 된다. 문화의 앞에 선 사물. 관계의 망에 걸린 사물.

4. 공간에 대한 기대는 사람에 대한 기대와 같이 간다는 나의 진실을 다시 확인하는 요즘이다.

5. 좌초하지 말아야 겠다. 사람(들)을 좋아하는 건 그래도 가장 큰 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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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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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8/03 23:40
인생의 사이클에 갈수록 둔감해지는 걸 느낀다(이 뭐 애늙은이 같은 소리람). 이를테면 생일이라든지, 계절이라든지, 혹은 주말이라든지, 한달한달의 흐름이라든지. 나이 먹는 것도 스물다섯이 지나 스물여섯이 된 거에서 차이를 못느낀다. 스물에서 서른으로 넘어갈 때가 되면 이 차이를 크게 느끼려나?

이건 일요일 아침부터 오늘까지 약 3일째 아무데도 나가지 않은 탓인지 모르겠다. 오후 4시 쯤 맥주나 공급해야겠다 싶어서 마트에 잠깐 걸어가는 길에 마주한 더위에 협박당하는 느낌이었다. 이런데도 마트에 가고 싶냐고. 감각으로 말하는 날것의 협박. 면류에 지쳤으므로 주먹밥 거리를 사와서 주먹밥을 해먹었다. 갓한 밥이 뜨거운게 싫어서 얼음물에 식혔다. 내일까지는 그냥 집에 콕 박혀 있어야겠다.

요즘엔 안 본 영화를 보는 일이 말 그대로 '일'처럼 여겨진다. 영화관에 굳이 찾아가지 않으면, 안 본 영화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요새는 그냥 복습을 한다. 요즘엔 굿 다운로더니 뭐니 해서 얼마의 돈을 내면 영화 파일을 쉽게 소유할 수 있다(그래서 외장하드도 하나 샀다). 이전에 봤던 영화를 또 보고, 거기서 이전에 보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좋아한다. (오늘은 무엇을 볼까나)

이런 현상은 위에서 말한바, 인생의 사이클에 둔감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다. 요즘엔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기 보다는,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돌아보거나 내가 잃어온 것들을 자꾸 추수하게 된다. 아마 남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내 나이 또래로 숨바쁘게 사는 친구들을 보면 대단해보인다. 나는 이렇게도 느리고 더딘데, 나는 주말과 방학이 필요한 사람인데.

요즘 나는 시간이 많지만 고민이 많지는 않다. 고민이란 건 어디까지나 미래지향적(실제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든 불안으로 그저 상상해 낸 미래이든)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내가 해야할 행위에 대한 생각이니까. 시간이 많은 요즘 내가 하는 고민이라봐야 아주 사소하다. <1Q84>는 하루키의 대표작일 수 없으며 또 절대로 좋은 소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1권과 2권을 사버렸으니 세트를 완성하기 위해 출간한 3권을 사봐야 하는가, 같은 고민. 사지 않으면 절대 보지 않을 책이므로(돈 아까우니까 보겠지).

시간이 넉넉하다보니 심지어는 요즘 이런 생각도 하고 있다. 정말로 필요한 건 이 세상에 없다는 거. 책이든, 관계든, 물건이든, 돈이든. 어느 정도만 충족되면 된다는 것. 왠지 모를 압박에 센 척 하고 욕망하며 사느니, 그냥 내가 조금 더 작아지면 되는 문제라는 거. 이건 약간 윤리적인 이유다. 끝끝내 3인칭을 거부하고 1인칭으로만 소설을 쓰는 사람들처럼(giving an account of oneself!).

느긋해보이겠지만, 뭐. 사실 어쩐지 폭풍전야 같다는 느낌도 든다.


목요일에는 서울에 갔다가 금요일엔 학회 워크샵에 처음 간다. 나는 그냥 구경가는거다. 애정이나 조금이라도 생기려나 모르겠다. 120여명이 온다는데, 앞으로 좋아할만한 사람 둘셋만 있어도 대성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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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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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7/27 00:21
1.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책의 저자는 홍콩 출신으로 미국 학계에서는 깨나 이름 날리는 학자. 그는 미국 문화연구계의 현실을 고발하면서, 포스트콜로니얼한 상황에서의 보편성/특수성과 오리엔탈리즘/지역주의라는 이항 대립 관계, 낭만주의적 태도와 문화주의에 의해 은폐되는 현실의 정치경제학 문제들, 지식인들의 자발적인 서발턴화ㅡ자기를 피해자화하면서 역설적으로 획득하는 권력과 돈ㅡ와 문화연구계에 주류화되는 서발터니티,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더욱 침묵에 빠지고야 마는 사람들, 세계화 된 담론 시장에서 불안해하고 상실감 속에서 우울증에 빠진 제1세계 지식인 주체들, 제국 담론에서 흔히 발견되는 중심부/주변부 이분법 등등의 이면을 치밀하게 폭로한다.

그는 또한 오늘날 말하는 자들이 어떤 포지션에 있으며, 그 포지션은 어떤 현실적인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뒷받침되는지, 그리고 말하는 자들이 발화의 기원을 은폐함으로써 언뜻 중립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을 최상의 정치적 행위자로 만드는 현실에 대해서도 끝없이 심문한다. 논문의 제목, 에세이의 한 구절도 이 학자 앞에서는 최악의 죄로 규탄된다. '대기업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회장들이 이사로 있는 모임에 들어가야'하는 현실도 비난한다. 모두 옳다. 물론 옳은 말들이지만 사실은 너무 피곤하다. 그런데 그런 피곤함이 기분 좋은 것도 사실이다. 그 책의 원제목은 <Writing Diaspora>이다. 글을 쓴다는 것, 혹은 무언가를 '쓰는' 행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물질세계에 자국을 남기는 행위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인 것 같다. 그의 끈질긴 성찰성이 조금은 부럽다. 그러나 그 성찰성을 자기에게도 조금은 투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가 쏟아내는 비판은 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이사를 가는데 제일 문제가 되는 건 역시 책들이다. 한국에선 책이 내용을 담는 도구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상품'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책들이 정말 한결같이 무겁다. 왠만한 소설책도 누워서 읽다보면 손목이 지끈지끈 아플 정도다. 책상에 정자세로 앉아서 허리 건강 생각하라는 배려는 아닐테고... 깔끔한 모노톤의 표지에 포인트를 주고 가벼운 종이를 쓰는 페이퍼백 형태의 저가 책이 나오면 좋을텐데. 수집벽을 자극하는 북디자인이 별로 없다. 펭귄클래식 같은 느낌도 좋을 것 같은데..

여하튼 책의 무게도 무게지만, 이사를 갈 때 집에 두고 갈 책과 가지고 갈 책을 구별하는 큰 일이 남았다. 천권 정도 되는 책들을 다 가져갈 순 없을테고... 아마 대학교 1학년 때랑 2학년 때 샀던 책들을 가져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뜻도 모르고 허세를 부리겠다고 산 책들이 많아서. 3, 4학년 때 충동적으로 산 책들도 그다지 가져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에센스를 뽑아 딱 고것들만 가져가고 싶은데 욕심을 버리진 못하겠다. 유학가는 선배는 책을 나눠줄 생각을 하던데, 나는 왜 그런 행동을 못하지.


3. 이제 4번만 더 나가면 조금 긴 휴가가 있고, 그 휴가의 끝에서 하루를 더 지내면 끝. 돌이켜보면 여유 시간이 많았음에도 시간이 훌쩍 참 빨리 간 것 같은데, 나는 해놓은게 없어서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지금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들도 이미 누군가들은 선취해 놓았다. 그들은 먼저 읽었고 먼저 썼다. 먼저 사유했고 먼저 다른 길로 재빨리 들어섰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글을 쓰든 은연 중에 누군가의 반복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 두려움의 정체는 뭘까? 무엇을 향한 두려움일까? 경쟁자들의 이름을 올린 리스트에서 누락될까봐? 권력을 가진 타자의 인지/인정을 획득하지 못하리라는 불안?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타자의 인지는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할 수도 없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잘 모르니까. 그런거, 잘 모르니까 그냥 할 수 있는거나 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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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7/25 21:09

오늘은 내가 태어난지 딱 25년 되는 날(해피 버스데이 투 미~♬). 스무살 초반이 넘어서 생일은 보통 일부러 시간을 내서 혼자서 보낼 때가 많았다. 여행을 간다던지, 영화관이나 미술관에를 하루 종일 간다던지, 사고 싶었던 것을 무리해서라도 구입을 한다던지. 지금까지 살아왔다는게 너무 장하다는, 그냥 나에게 주는 하루 어치 선물인 셈이었다. 그게 좋았다 싫었다, 혹은 혼자 지내는게 좋다 나쁘다는 문제가 아니고. 그런데 25살 되는 날 생일에는 발품 팔아 열심히 방을 구해야했으니 이거 원ㅋ 그러나 며칠 만에, 수십 개의 방을 본 끝에, 하늘에서 내린 선물처럼, 그 귀하다는 "맘에 쏙 드는" 전세 투룸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 ㅠㅠ! 동네가 하늘 받드는 곳이라는 지명을 가진 땅이었는데, 하늘과 이번 방을 구하느라 등골이 휜 부모님께 감사를! 이건 최고의 선물이야!! 아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쌩유 베리마치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셰셰 메씨 보꾸 당케 쉔 마할로 그라찌에 그라씨아스!!


대략적인 집의 배치도. 공간의 상대적인 크기 같은 건 잘 모른다. 1.5층에 전용 면적으로는 대략 14.5평 쯤 되고, 방이 2개(하나는 미닫이 문으로 거실과 침실로 사용 가능)이고, 방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크기지만 <서고>로 쓰기엔 괜찮은 작은 방이 하나 더 있다. 혼자 살기엔 좀 넓을지도 모르겠으나 둘이 살기엔 너무 커서 휑하지 않은 적당한 크기일 것 같다. 베란다엔 물건 보관하기 좋으며, 세탁기와 보일러가 있다. 방쪽 창은 넓은 편이지만 앞에 또 건물이 있어 전망은 그리 좋진 않다. 그래도 나름대로 나무도 심어져 있다. 욕실은 좁지 않고 깨끗하다. 베란다 쪽에서는 산이 보인다.

신혼부부가 살던 집이라 벽지도 하얗고 장판도 깨끗하며 거실 한쪽 면에는 포인트 벽지도 붙어서 예쁘다. 센스 있게 칙칙한 철문에 나무때깔 포인트 스티커도 붙여 놓으셨다. 여기에 책장 몇 개, 옷장 하나, 책상 하나, 부엌에 둘 미니테이블과 스툴 몇개 정도 챙겨 오면 가구 배치는 끝. 전자렌지, 가스렌지, 밥솥, 각종 부엌 집기류, 세탁기 이런 건 다 구입해야 한다. 주인 신혼부부는 인상도 좋고 이래저래 성실해 보여서 좋았다. 아기도 엄청 예뻤고. 스윗 홈을 세주고 자기들은 직장 관계로 경기도로 이사가서 살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낡은 싱크대는 교체하고 나간다고 했다.

집에 살게 되면 야심차게 추진할 것들이 있다. 제일 먼저는 <포인트 벽지>와 <포인트 스티커> 구입. 내가 쓸 안방 한 면을 예쁜 포인트 벽지로 덮어버릴거다. 창문에는 스티커를 붙일 거고. 대략 7만원 정도의 돈과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면 해결이 될 것 같다. 다음으로는 <빈 백(bean bag)> 구입. 주말이나 저녁에 집에 돌아와 늘어지듯 빈 백에 누워서 소설이나 시집을 보면 정말 좋겠다. 근데 이 녀석이 생각보다 비싸서 고민하는 중. 마지막으로는 <시리얼 디스펜서> 구입. 예쁘장한 <커피 메이커>는 조금 나중에. 그걸 사려면 그라인더 같은 부수기재도 사야하니까 고민 중. TV는 놓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아쉬운 건 지하철 역에서 10분 정도 걸린다는 거고, 오르막길을 지나야 한다는 것, 주변에 공사를 한다는 것, 뒷산이 예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거실이 넓진 않아서 둘러 앉는 파티는 못하게 될 거라는 것(동생이 오기 전엔 방을 거실로도 쓸 수 있어서 가능하겠지만). 그것 외엔, 뭐, 내가 다닐 학교 근처에 있는 조용한 동네니까 아주 만족한다. 좀 걸어 나가 길을 건너면 마을버스타고 강의실로 바로 갈수도 있고. 바로 밑에 있는 중학교도 밤 12시까지 개방한다고 하고. 조금만 신경 쓰면 재래시장에 가서 장을 봐 올 수도 있고. 만약 노력을 더 한다면 집에서 12~3분 정도 걸어가서 1주일 3시간 강습하는데 한달 수강료가 28,700원 밖에 안하는 수영레슨이나 스쿼시레슨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거 구하려고 정말 눈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눈물의 시간이란 건 문자 그대로다. (ㅠㅠ) 지난 2주는 온통 생활 공간을 구하는데 신경이 쏠려 있었다. 돈 문제, 지역 문제, 부모님과의 가치 갈등, 타이밍 문제 등등 온갖 문제가 일상에 산적하여 책이고 논문이고 뭐고 아무것도 읽지도 못한 채 시간을 모두 쏟아부어야 했다. 사무실에서는 직거래 카페에서 매물 보기에 바빴고... 전세 대란이라더니, 진짜 방 잠깐 보고 생각 좀 해보겠다고 나왔다가 몇 시간 뒤에 전화 걸면 방이 나갔다고 하고 그랬다. 여하튼 이젠 이 번잡한 생활도 끝이구나. 몸 누일 공간 하나 제대로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여기서 5년이고 6년이고 계속 살면 좋겠다. 다 귀찮다. 두 번은 못하겠다.

그리고 제발 8월 중순부턴 여기에 진짜 살게 되길 바란다. 돈도 부쳤으니 계약 파기하시면 안돼요. 흑흑


덧) 미니 테이블은 이런 느낌이면 어떨까? 하지만 난 당분간은 혼자 살잖아? 안 될거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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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6/27 21:41

요 며칠 읽었던 텍스트들엔 빛나는 문장이 참 많았는데, 쉬겠다는 명목으로 흐리멍텅하게 주말을 보내고 나니 모두 사라져버렸다. 하여, 갈수록 내 기억력을 의심하게 된다. 읽었던 책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고, 다시 읽었을 땐 아예 다른 부분에 감동을 받으며, 방금 봤던 영화의 제목이나 주인공의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하긴 언제 내 기억력이 좋았을 때가 있었던가.

갈수록 어떤 절대적인 힘 앞에서 나를 비우는 상태, 즉 케노시스(kenosis)가 절실해진다. 몽테뉴는 "나는 존재를 그리지 않는다. 단지 그 행보를 그릴뿐."이라고 말했다. 나도 존재가 아니라 행보로서 삶을 설명해야 한다.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존재에 대한 유아적 관심은 존재를 실체화하려는 충동에 지배된다. 존재에 대한 실체화 충동은 사춘기의 정체성 탐구에나 적합한 일이다. 그걸 어서 벗어나야 한다.

여기 내 형편없는 기억력 덕분에, 언젠가부터 내 머리 속으로 흘러들어와 새겨진 이미지가 있다. 나는 그것을 어딘가에선가 읽었을 수도 있고, 들었을 수도 있고, 영화 따위에서 봤을 수도 있다. 가로로 6m, 세로로 3m 쯤 되는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일만배(一萬拜)를 올린다. 불상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섬기기 위해 일만배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은 채 행위에만 몰두한다. 그러나 이들은 외딴 섬이 아니다. 그 행위로서, 그들은 진정성으로 서로에게 연결된다. 옷깃 스치는 소리와 바닥에 몸 부딪히는 소리, 거친 숨소리만이 적막을 채우는 공간은,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듯 하다. 서로의 땀 냄새와 체취를 담은 입자들도 후각 세포에 자극을 주지 못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일만 번의 똑같은 행위에 철저히 몰입한다. 일만 번의 행위가 끝난 후, 이들은 모두 이전과 같지 않은 그 무언가가 되리라.

제임스 클리포드는 모든 뿌리(roots)는 도로(routes) 위에서 생긴다고 말한 바 있다. 호미 바바는 "정주하지 않음unhomeliness"에 대해 말하며, 아르준 아파두라이는 어떤 회절(diffraction)에 대해서 말한다. '트랜스'와 '경계border'라는 말을 중심부가 본격적으로 전유하면서 애초에 가졌던 힘을 상실한 오늘날에도,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매력적이다. 앞으로도 전위avantgarde는 될 수 없을 것이고 되지도 않을 것이지만, 케노시스의 과정을 거쳐 돌아와 변경frontier에 서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기에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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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6/20 23:53
* 나에게 차학경의 인상은 어떤 장면으로 남아 있다. 작은 여자아이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 쌓여 있다. 아이는 철저히 혼자다. 그 언어는 힘이 세서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도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그 언어는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이 배울 가치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 언어를 잘 쓰지 못한다. 하여 아이는 그들에게 지적 무능아로 낙인 찍힌다. 아이가 쓰는 언어는 잡음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의 언어는 철저히 부정당하고, 심지어 모욕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자비로운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 연민을 품고 아이에게 언어를 가르쳐주기 시작한다. 아이는 더듬더듬 따라 하고, 부르는 대로 받아 쓰며, 암송하고, 똑같이 옮겨 쓴다. 아이가 잘하지 못하면 그들은 한숨을 쉬거나, 고개를 젓거나 연민의 미소를 띤다. 아이는 그들에게서 경멸을 읽고 약간의 두려움과 수치를 느끼지만, 그런 감정은 서둘러 삼키고 시키는 대로 언어를 모방한다. 반복되는 모방 속에서 그 언어는 의미가 제거된 채 오로지 음성으로만, 삐뚤빼뚤한 글씨로만 존재할 뿐이다.

어제 ㅅㄱ 미술관에 처음 가봤다. 차학경의 작품이 하나 전시 된다고 해서, 오로지 그걸 보기 위해 전시회에 갔다. 가는 길에 있던 건물들이 기억난다. 건물들은 높지는 않았지만, 위압적인 벽과 대문, 철조망, 그리고 CCTV 카메라가 있었다. 어느 골목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건물엔 식당이라고 간판이 있었지만 큰 철제 대문이 있어 안을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대문 앞에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 벨이 붙어 있다. 그 벨을 누르지 않으면 식당에 들어갈 길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감히 누가 그 식당에 들어가려고 할까. 거기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있을텐데, 그들은 누구일까. 이런 것들이 모이면 gated community가 되는 걸까. 그 길을 따라서 미술관에 가는 건 왠지 지치는 일이었다. 골목골목에 설치된 카메라를 모두 부수고 싶었다. 차학경의 작품에 대해서는, 함구.


* 대안영상을 상영하는 홍대 근처의 공간에서 <버라이어티 생존 토크쇼>를 봤다. 사회의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되는, 혹은 이미 노출된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아무래도 고통받고 슬픔에 젖어 제대로 일상을 꾸리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이미지가 구체적인 사람들의 일상을 얼마나 타자화하는지.. 아마 정희진 씨의 글에서 읽었었지.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성산업 종사 여성들을 방문한 자원봉사자들이, 이 여성들이 밝게 웃는 모습을 보자 아이고 밝게 사셔서 보기 좋네요, 라고 말했다던 일화. 이 엄청난 타자화에 깔깔깔 웃지 않을 수 없었지.

폭력에 노출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상징체계로서 사회는 언제나 모든 개인들에게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피해자화' 하지 않고서도 자신에게 가해진 사회적인 폭력을 의미화하고 폭력에 저항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사람이 사회의 온전한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사회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피해를 당당하게 입증할 수 있으며, 심지어 있지도 않는 피해를 만들어낼 권력을 가지고 있다(예컨대 힘을 가진 이들이 명예훼손 고소를 남발하지).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기꺼이 귀 기울인다. 반면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실재하는 피해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에 대해 말하는 입을 부정한다. 그건 그 사람의 무능 탓이거나, 폭력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사회 구조의 탓이다.

다큐는 참 좋았다. 아픈 부분도 많았고 즐거운 부분도 많았다. 피해는 실제로 있으며, 그 피해 때문에 괴로운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 괴로움을 평생 안고 가야할지 모른다. 그러나 피해를 피해로서 인정하고, 피해를 정당하게 언어화하며, 피해자 정체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복원하는 순간을 만드는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권리이다. 실제 구속력을 가진 사법의 언어가 성폭력 피해와 폭력을 의미화하는 언어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다큐에서 읽을 수 있던 여러 노력들과 언어들과 관계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사법체계의 언어 따위는 언젠가는 낙후될 것이다. 그리고 사법의 언어만이 유일하게 정당한 언어는 아니므로, 언젠가 우리는 복수의 정당한 언어 체계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는, 신형철 평론가가 인용해서 최근 더 유명해진 한나 아렌트의 말을 여기에 끼워 넣어도 좋을까. 이 말을 이 글에 맞게 조금만 바꾸면, "모든 (성)폭력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아렌트가 제대로 말하지 않은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앞서 말한대로 그 이야기가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관계와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물론 아렌트의 저 말은 그 관계와 공간의 가능성에 대한 선언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런 관계와 공간이 없다면 이야기로 만든다고 하여도 무슨 소용일까. 관계와 공간은 이야기의 선행 조건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쓰고 말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위한 관계와 공간을 만드는 게 몇 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얼마나 더 멀리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할까. 나도 힘을 보탤 수 있다면 보태야지.


* 어제는 오랜만에 S를 만나 꽤 괜찮은 (하지만 예전에 종로 모처에서 먹었던 게 더 훌륭했던) 단호박 해물찜을 먹고, 신림에서 녹두로 가는 길을 걸었고, 녹두에서는 커피를 마셨다. (녹두는 커피 값이 착해서 정말 좋다. 나는 절대 녹두에 살지 않을 거지만, 커피 값이 매우 싼 카페는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나는 뭔가에 굶주렸다는 듯 말을 많이 했고, 어제는 좀 피곤했던터라 말을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던 순간도 많았다. 그리고 교지 모임에도 갔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 반가운 얼굴들. 술을 많이 마셨다. 말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어제 하루는 정말 길었고, 길었던 시간 만큼이나 말도 참 많이 했다. 말을 많이 한 날은 늘 후회하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말도 많이 했던 것 같지만, S라면, 그리고 교지 친구들이라면 아무래도 이해해 줄 것이다.


* 조만간 다시 학생 신분이 된다. 허나 아직은 그냥 합격자일 뿐이다. 그리고 합격자라고 해서 '학생'으로 인정받지는 않는다. 등록기간에 돈을 내지 않으면 학생 신분증을 구입할 수 없다. 돈을 내지 않아 신분증이 없으면 행정 시스템에 접근할 수도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쨌든, 합격했다는 메일을 지도교수가 될 교수에게 보냈다. 합격자가 되기 전에는 존대 어법을 쓰던 교수가 낮춤 어법을 쓰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그러면 나도 같이 낮춰도 되는 걸까? 답장에 있던 표현에 따라 정말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거라면. 하지만 한국의 언어 체계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다. 한쿡말, 불편하고 싫어요. 흑흑.


* 그제 올렸다 지운 글에 함께 올렸던 영상.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아쿠아리움이라고 했다. 가끔 보면 정말 좋다. 느긋해지지는 않아도 왠지 위안은 좀 된다. 잠수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심해에 오래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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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6/13 20:10
1. 어제는 퀴퍼를 갔다 왔다. 매년 핑계만 대고 안 가다가 올해 처음 가봤다. 비가 많이 와서 부스 구경은 제대로 못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거리를 전유하고 행진한다는 건 언제든 기분이 썩 괜찮은 일이다(쫓길 때 말고!). 단체로 산책하는 것 같잖아. 트럭에 탔던 YK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고(대단해!), JH, AR, SS 같이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도 만났다. 비만 안왔으면 음료수나 맥주라도 하나씩 돌리고 잠깐 얘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비가 많이 올지 모르고 신발을 잘못 신고 갔더니, 하루 종일 젖은 양말과 신발을 신고 돌아다닌 꼴이었다.


2. 퀴퍼 전에 조조로 <하녀>를 봤는데 상당히 심심했다. 탐욕스러워야 할 장면에 진지하지 않았고, 아름다워야 할 장면에 피식 웃음이 났고, 분노해야 할 장면에 미지근했다. 대화 부분이 어설프게 쓰인 소설을 보는 것 만큼이나 괴로운 일이었다. 원작을 못 봐서 모르겠지만, 원작을 리메이크할 정도면 제작자가 감동이나 영감을 받았다는 얘기인데, 어느 부분에서 그랬을까? 리메이크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시대 배경을 옮겨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3.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내가 이런 저런 이유로 포기했던 과거에는 늘 죄책감을 안고 가게 된다. 그런 과거들은 삶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튀어 나와 내 옆에 우뚝 선다. 오늘도 어떤 과거의 최근 소식을, 매우 간접적으로 접했다. 한 때 정말 1년 정도는 계속 고민했던 것과 관련이 되는 과거였다. 그건 나의 삶에 매우 밀접하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내 의사와는 상관 없이 어떤 중대한 결정이 나면서 그 과거는 내 삶과 거리가 아주 급속히 멀어져 버렸다. 내 욕심, 내 안위, 내 이해관계에 유리한 것을 따지기 시작하자, 당시 1년 간의 고민은 단지 헛짓이자 죄책감의 근원이 될 뿐이었다.


4. 우연히 초등학교 6학년 때 일기장이랑, 중학교 1학년 때 어떤 캠프가서 작성한 '자기성장' 어쩌고 하는 기록장을 발견했다. 일기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컴퓨터 대회를 준비하러 6시 쯤 학원에 갔다가 선생님이 문제를 안주고 게임만 하길래 나도 밤 10시까지 게임만 했다는 내용이었다. 왜 문제를 안푸느냐고 선생님이 묻자 선생님이 게임만 해서,라고 답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어렸을때부터 남 탓은 잘 했었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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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6/10 21:53
사무실에 출근해서 오늘 오후에 있을 일들을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가득 받고 있는데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강아지가 죽었다는 문자였다. 어떻게 해얄지 모르겠다고. 처음에는 이해를 못해서 잠깐 눈꺼풀만 끔벅끔벅했는데, 곧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알 것 같았다. 집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시든 것이다. 올해 들어서 세 번째, 내가 집에 잠시 살게 된 걸로 따지면 네 번째로 말이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너무너무 건강해서 마당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강아지였는데, 너무너무 사람에게 들러붙길 좋아해서 그제 아침만 해도 스스로 발 밑에 들어와 밟히곤 하던 강아지였는데, 갑자기 죽다니 믿기 어려웠다. 거짓말이면 정말 화내려고 전화해봤는데, 동생 목소리에도 물기가 있는 걸로 보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벌써 파리가 꼬이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무덤을 만들어 줄수는 없겠냐고 하니까 못 하겠다고 했다.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때까지 잠깐 박스로라도 덮어서 파리는 안 꼬이게 해달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에 와서 보니 육개장 라면 박스가 마당 한 구석에 있었다. 그리고 벌어진 틈새로 보이는, 움직이지 않는 갈색 털뭉치.. 죽은 몸은 잠자는 몸과는 달랐다. 숨을 쉬지 않는 작은 몸은 어쩜 그렇게 쉽게 눈에 띄는건지..

슬프기 보단 화가 났다. 출근에 과외에 입시 준비에 바쁜 척 굴었던 나는 이 강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남 탓부터 하고 보는 나로서는, 이 강아지에게 사람들이 가했던 온갖 '학대'들이 먼저 떠올랐다. 먹을 걸 절제를 못하는 개에게 잘 먹는다고 마구 부어준 먹거리들, 똥을 아무데나 싼다며 내려치던 것들, 등등. 입에 독설들이 차올랐다. 같이 살고 있는 다른 강아지에게 내뱉을 말들, 엄마 아빠 동생 등 이 강아지와 관계했기에 강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쏟아낼 독설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향한 독설. 혀 뿌리에 보라빛 피가 쏠리는 듯 했고 터져버릴 것처럼 아팠다. 그러나 내뱉는 순간 누가 다치게 될지는 뻔히 알았기 때문에ㅡ바로 나ㅡ말을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갑자기 죽었을까, 하는 질문은 정말 쓸모가 없다. 제발 집에 다시는 생명을 들이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집에 다시는 동물을 들이지 말자고 말을 해놓은 상태다. 나도 내가 완전히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는, 절대 다른 생명과 같이 살지는 않을 것이다. 다들 너무나 무책임하다. 

무력함을 느낀다. 언제나 현재만을 살아왔고 가끔 과거라는 기억의 쓰레기장을 들여다 보며 살았던 나로서는 생로병사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 태어나는 생명을 알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을 알지 못하며, 병이 들어보지도 병든 사람을 간호하지도 못했으며, 죽은 이와 대면한 적도 없다. 어느 것 하나에도 진짜 책임감을 갖지 못했다. 억울하고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단순한 분노와 슬픔을 느낄 뿐, 정확히 어떻게 해야는지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표현도 없다. 그래서 애도도 없다.

그냥 꿀꺽, 무거운 침 한번 아프게 삼키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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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6/07 14:28
1. 글이 읽히고 쓰이는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특정한 파토스를 공유한 글들이 널리 읽히고 또 쓰일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해서. 새로운 세대는 늘 새로운 번역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우리가 읽고 쓰는 글들도 마찬가지로 세대, 환경, 물질/사회심리적 조건들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조건에서는 어떤 성격의 파토스가 공유되고 있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간 오늘날은 이삼십여년 전 글들이 읽히고 쓰였던 조건인 진정성, 정치, 운동(movement), 연대, 투신/기투 같은 것과는 거의 관련이 없게 된 것 같다. (이거, 무척 새삼스럽고 진부하네.) 하여간, 그건 이를테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올바르고 아름답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대체로 좀 고색창연하고 머리 아프거나 어려운 것이 되었다.
 
대신 오늘날에는 훨씬 세련된 윤리나 삶, 스타일 같은 것으로 거시적인 초점이 이동했다. '연대solidarity'에서 공동체로, 정치에서 윤리로, 기투에서 참여로, 죽음에서 생으로, 애도에서 행복으로, (분명한) 책임에서 (불투명한) 죄책감으로, 등등... 그리고 현세적이고 실질적인 관점에서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더 잘 받아들여진다. 그러니까, 생활 공동체, 라이프 스타일, 생활 협동조합, 뭐 이런 것들 말이다. 또한 오늘날에는 일상의 관계에서 '가능성의 언어'를 찾아보기 어려우므로, '워크샵', '강좌', '캠프' 같은 게 더 자주 보이는 느낌이다. 일상에서의 가능성이 막혀있으니 다소 인공적인 모임으로 갈증을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인문학도 생활 속의 인문학이라기 보다는 인문학 공동체 같은 데에서 강좌를 들어야 하는 일이 되었고... '사회에 책임을 진다'기보다는, 무려 '재능 기부' 같은 말이 나오는 현실이고...

사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나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우울하고 허탈하고...
암튼 좀 그렇다. 이건, 뭐 내가 촌스러운 거지.


2. 여하간 나는 어떤 글들을 써달라는 요청을 몇몇 사람들에게 보냈고, 그에 대한 응답은 전혀 받지 못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책보다는 남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인데도, 이번에는 스스로에게 좀 회의가 들었다고 해야 하나. 확실히 이건 과오이자 일종의 착각이기도 했다. 시도 자체가 돌이켜보면 좀 나이브한 측면도 있었고. 일단은 던졌던 질문 자체가 막연하고 어려웠다. 또한 그 질문이 써달라고 요구하는 답변 자체도, 더군다나 오늘날에는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이었다. 질문이 좋은 질문도 아니었지만, 써야하는 글 자체도 위에서 말한 것과 비슷하게 오늘날과 시차가 좀 있는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그리고 내가 보냈던 메일 자체가 풍기는 애매모호한 분위기도 한 몫했을 것이다. 또한 이메일이라는 형식도 그렇고, 추가로 요구했던 사항도 부담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것이 쉽게 통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니까. 이렇게 된 원인이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가장 마음 편하게 보자면, 그냥 깜빡하셨을 수도 있고, 바쁘셨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적확한 원인이야 앞으로도 영영 모를 수밖에 없겠지. 하여튼 오늘 잠시 통화한 ㅇ쌤은, 그 요청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좀 걸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결국엔 알쏭달쏭한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전화로 얘기했던지라 다소 막연하게 들렸지만, 무언지는 조금 알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어쨌거나 나는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힘이 빠진다거나 하진 않고, 오히려 조금 힘이 생기는 것 같다.


3.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문자가 전달하는 내용은 실제로 전달될 수 있는 내용에 비하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어떤 과격한 연구에 따르면, 문자로만 전달했을 때는 실제로 전달할 수 있는 단서의 30%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맥락에 상당히 의존하기 때문이다. 문자메세지를 받고서 송신자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웠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지. 그런데 나에게는 전화도 마찬가지다. 전화는 음성이라는 단서가 추가되기는 했어도, 문자메세지보다 더 나은 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확실히 전화로 얘기하면 이런 저런 공백이 많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전화도 싫고 문자도 싫다. 근데 그것 말고 뭐 다른 방법이 있기는 하단 말인가?


4. 나는 자주 아프거나 한 사람이 아닌데, 어제는 좀 심하게 체했었다. 점심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후에 뭔가 얹힌 것 같고 머리가 살살 아파왔다.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누워만 있다가 잠깐 자고 일어나니 체했다는 게 확- 느껴졌다. 4시 쯤에 아예 이불 깔고 누워서 한숨만 쉬고 있다가, 동생이 준 이상한 한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중간 중간 자꾸 깨면서 아침 7시 반까지 잠만 계속 잤다. 잠을 자면서도 뭔가 이상한 꿈들을 많이 꾸었다. 꿈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잠이 잠깐 깰 때면, 몸은 축 늘어져 있었지만 마음은 너무나 또렷해서, 머리 속에 여러 가지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음에 걸렸지만 해결되지 못한 일들, 마음에 걸리는 일들, 소소히 걱정되는 일들 같은 것. 그것들 생각하느라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렇게 골머리를 썩다가도 다시 잠들고, 꿈 꾸고, 다시 깨어나서 머리 깨져라 고민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아침이 밝아왔다. 그런데 그런 긴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생각나지 않았다는 게, 조금 싫었다. 그냥 어딘가가 아프면 사람들을 잊고 자기에게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겠지.


5. 오늘을 마지막으로 구제역 근무가 끝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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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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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6/03 22:03

나는 교생 갈 때 정장을 입고 오라는 게(교생 때 맞추어 사는 정장은 사범대생들에겐 어떤 통과의례 비슷한 것이다) 속 뒤집힐 정도로 싫었고, 대학 졸업식도 단지 정장을 입는 게 싫어서 가지 않으려 했었다. 단언컨대 나는 정장이 정말 싫다. 정장을 입은 사람도 싫고, 내가 입어야 되는 상황도 싫다. 정장이 상징하는 보수성이나 어떤 체제의 권위, 질서, 통제 같은 것이 정말 싫다. 정장을 입는 순간, 나는 적어도 그 체제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그 체제에 이미 소속된 사람이다. 왜냐하면 옷을 입는 스타일과 취향은 우리 몸과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옷을 입었을 때 우리 몸은 나의 취향과 감수성을 타인에게 전시한다. 나의 옷은 특정한 방식으로 타인들의 인정을 요구하고, 또 인정을 받게 된다. 설령 그것이 실제로 인정 받는 것이 아니라, 현상학적으로 단지 나에게 지각된 것일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정장이 부여하는 취향과 감수성을, 단지 '아 싫어-' 정도가 아니라 physically 하게 싫어한다. 정장을 만지기만 해도 몸에 소름이 돋는 식이다.

사실 복장을 순수한 '자기 취향'에 따라 입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느 광고에 나오듯 낯간지럽게 "내 스따일이야"라는 식으로 말하더라도, 그건 나의 스타일을 '멋진 것'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에 가깝다. 당연히 옷은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게 아니다. 심지어 학부 캠퍼스에서 얼핏 자유로워보이는 캐주얼이 아닌 정장을 입으면 무슨 일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회사원들은 회사 동료와 상사의 요구나 사무실이라는 공간질서가 요구하는 규범에 맞게 자기가 입을 옷을 조율하게 될 것이다. 홍대입구역 5번 출구에 많이 보이는 귀엽고 활기찬 젊은 아기들도 마찬가지로 홍대스러움에 조율을 한 옷을 입는다. 그래서 자기들이 회사원이라는 것(출퇴근 시간 준수, 근무 규율 준수 따위를 상징하는)을 드러내고, 홍대인이라는 사실(젊음, 음악, 세련된 인디 소비문화 등을 상징하는)을 드러낸다. 회사원들도 그렇고 홍대 베이비들도 그렇고 자기들이 보기엔 각자 다른 취향을 추구하고 있겠다고 생각할 순 있겠지만, 밖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순수한 자기 취향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여하튼 나는 정장이 싫다는 것이다.

조만간 면접을 봐야할 일이 있는데 그 면접 자리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장을 입고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수 몇 사람을 앞에 두고 약 10분 정도 면접 및 구술고사를 보는 자리다. 물론 수험생 주의사항에 정장을 입고 오라는 얘기는 없지만, peer pressure도 무시할 수 없는 잠재적인(감추어진) 요구사항이다. 교수들이 면접자의 옷차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이 신경을 쓰는지 안 쓰는지 알 수 있을 리 없고, 만약 교수들이 의외성을 싫어하거나 내 옷 입는 취향을 싫어해서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어 떨어지더라도 알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무난한 선택은 당연히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입고 가는 것 일테다. 스트레스 받고 신경 쓰여서, 지금 거의 돌아버릴 것 같아서 쓰는 글이다. 이런 현상은 학과가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학과여서 그런 걸까, 혹은 다른 학과들도 다 그런 걸까? 아니면 학교의 특성일까? 아니면 대학원이라는 공간의 특성일까?

예전에 무슨 방송연예채용박람회였나에서, 무한도전 김태호 PD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강연 자체는 아쉬웠던 점이 많았지만(본인도 어디 인터뷰에서 망한 강연이라고 했지ㅎㅎ), 자기는 모두가 정장을 입고 방송사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염색 한 머리에 귀걸이를 차고 청바지를 입은 채 들어간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그게 정말이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는 강연을 올 때도 뒤에 커다란 검은 백팩을 찬 채 자유로워 보이는 복장으로 등장했었다. 내가 한 때 방송사 입사를 동경했었다면 바로 그런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니까, 정장 따위는 안 입어도 되는 것 말이다. 여하튼 나는 정장이 싫다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대학원을 너무 편하게 생각했나봐. 하지만 난 그냥 늘 입던대로 입고 갈거야. 이것 때문에 떨어진다고 하면 다시 생각은 해보겠지만 으으.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힌다 화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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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6/01 23:39
내일은 선거 날. 이곳은 몇년 간 자유선진당이 득세해 오던 곳인데, 이번엔 어떻게 판세가 바뀔지 모른다고 한다. "충남정당" 자유선진당이 충남-대전 선거에서 패배한다는 건 좋은 신호라 생각한다. 원래 충청도는 지역색이 애매한 곳. 사투리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뭔가 밍숭맹숭한 곳. 그 와중에 자유선진당이 지역정당을 자임해 왔는데(자선당은 이번 선거에서도 "충남의 자존심"에 호소한다), 이번에 선거에서 자리를 우수수 빼앗기면 어떻게 권력이 재배치 될지 참 궁금하다. 더 이상 지역색을 입지 말고 좀 빼보자고. 파란색은 싫다고!

트위터에서 내가 팔로잉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진보신당 지지자들이다. 내 트위터만 보면 세상에는 진보신당 지지자 밖에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심상정 씨가 사퇴 선언을 했을 때 슬퍼하거나 분노했다. 한 때 진보신당에 이름만 올리고 당비만 내던 당원이었지만, 난 사람들의 말들을 그냥 지켜만 봤을 뿐. 이 상황에서 나는 슬퍼해야 하나, 아니면 분노해야 하나. 나는 그런 것을 선택하는 것조차 학습하지 못했던 걸까, 혹은 다른 이유일까.

정치라는 장에서 정당들의 색깔은, 본질적인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당 사이의 역학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것 같다.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보수파들은 계급 이해관계에 따라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을테고, 보수 정당이 내세우는 안정과 프라이드의 이미지는 이 사회의 가장 불안정한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진보 정당은 당연히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에게 어필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각 정당이 내세우는 정책 같은 건, 결국 당원들의 입김 따라 갈 수밖에 없으니까 나오는 것이지, 정당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어서 신념을 갖고 정책을 내세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보신당 같은 경우엔 정당들 중에서는 가장 훌륭하고 세련된 이념적/이론적 토대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진보신당 구성원들이나 그 정당이 존재 자체로 잘나서 그런게 아니라, 앞서 말했듯 한국 정치 정당들의 이념 스펙트럼에서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이미 규정되어 있던 어떤 상징들을 택한 것 뿐이란 생각이다. 더 삭막하게 말하자면, 다른 정당과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거. 사실 당이 내세우는 것, 면면을 따지고 들어가면 좀 진부하잖아. 이미 있던 것들이잖아. 단지 정당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신선하고 재밌고 좋은 거잖아. 실제로 내부에서 어떤 면면들이 있고 어떤 말들이 오가는지 잘 모르고 밖에서 지지하거나 욕하는 일은 참 쉬운거니까(두 스타 중에 심상정 씨는 잘 모르겠고 노회찬 씨는 몇번 구설수가 좀 있었지). 정당도 결국 이미지를 먹고 사는거고, 정당 정치도 결국 정치니까. 

내가 팔로잉 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숫적으로도 그렇고 파워로도 그렇고 사회의 소수들이니까, 그 사람들이 진보신당에 기대를 크게 갖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도 실제 객관적인 내 위치야 어떻든 마이너 지향이니까 진보신당에 호감을 갖는게 당연한 일이고. 그러므로, 그럴 일이야 10년 안엔 없겠지만 진보신당이 만약 지지율이 5~10%가 넘어가고 차츰 주류화된다면 (감히 칭하건대) '우리'들은 아마 예전 진보신당이 민노당을 나올 때 그랬듯, 치열하게 싸운 다음에 진보신당을 박차고 나와 진보진보진보신당을 기어코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니 가장 좌측에 있는 이들은 숫적으로 주류화되려 하지 말고, 자기들이 가진 생각과 언어의 힘을 키우는데 주력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숫자가 많아서, 돈이 많아서, 높은 자리에 있어서가 아니라, 가진게 고작 말 뿐이어서 오로지 말로써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


어쨌거나 나는 정당 정치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건 뭐, 정당정치는 근본적/근원적인 좌파 정치도 민주주의도 아니어서라는 둥, 선거를 통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당정치는 민중에게서 오히려 권력을 빼앗는 가짜 민주주의이며 실제로는 과두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둥, 모든 운동은 정당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둥 하는, 급진좌파를 자임하는 논객들과 같은 이유 때문에 신뢰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런 논객들에 맞서서 정당 정치의 가능성에 대해 옹호하고 싶으니까.

내가 정당 정치와 거리를 두는 가장 큰 이유는, 그냥 내 성격에 맞지 않아서다. 나는 정치적 의견을 같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비슷한 논리와 말을 구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서울에 있을 때 수없이 오던 문자와 전화, 결국엔 자동 수신거부로 넘겨 버렸던 번호들. 예전에는 이게 되게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근사근 연락을 해야하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고 외로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그렇게 연락을 회피하는 게 너무나 죄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내 일상에 그렇게 침투해 들어오는 걸 받아내는 게, 지금의 나는 너무 어려우니까.

나 같은 사람이 제대로 받아들여지는 정당도 있으면 좋겠다. 친구들이랑 만들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려나?


여하튼 낼 투표는 실수없이 잘 해야지. 대선 때 뻘줌한 표 던진거 생각하면 아직도 창피하다.

그리고 내일 결과도 무지 기대된다. 스릴 있을 것 같애. 여기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건 이미 민심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거다. 근데 여당을 지지하는 말은 공개석에선 쉽게 할 수 있지만, 야당을 지지하는 것(특히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 같은 건 스스로 검열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나는 빨갱이 아니여, 어디가서 신고하진 말어, 하면서 여당과 대통령을 아주 조심스럽게 욕한다(술이 더 들어가면 아주 적나라 하다 ㅎㅎㅎ 투표용지에 그 말들 좀 반영해주세요). 특히 천안함과 이번 선거의 북풍에 대해서, 사람들은 여전히 의혹을 많이 갖고 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고, 이제는 이 나라의 장관이라는 사람이 "그럼 믿지 않으시는 수밖에 없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신념과 선택의 영역으로 넘어 갔다. 일상에서 정부 발표를 믿는 사람은 허세 떨듯 그럼 어쩔거냐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의심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토를 달지 않고 마음 속으로만 의심한다. 반대세력이 되거나 반대의견을 내는게 그만큼 어려워진 정권이다. 불과 몇년 사이에. 내일이 지나면 어떻게 바뀌게 될까?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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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5/27 15:24
1. 어제 오랫동안 웹서핑을 해서 6월 2일에 찍을 사람들을 대략 정했다. 여기는 인구도 적고 후보도 많지 않은데다, 지지하는 정당에서 공천한 후보는 있지도 않으니 대략적인 이력과 공약으로만 찍을 수밖에... 도지사는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 도의원, 군의원, 군수 선거 후보들이 최악이다. 반면 다행히 교육감과 교육의원은 찍을 만한 사람이 있다. 교육감 후보는 2명인데, 한명은 교육감 시절 비리로 실형이 선고되는 바람에 도중 하차한 사람이니까 찍을 이유가 없고, 다른 한명은 현임 교육감인데 그나마 무리 없는 사람이라 찍을만 하다. 교육의원은 3명이 후보로 나왔는데, 2명은 교육관료 출신으로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명이 얼마 전 전교조 해직 사태때 이름을 올렸던 후보이다. 그런데 여전히 교육의원 선거는 의문. 4개 시군을 하나로 뭉쳐서 교육의원을 뽑겠다는 건 도대체 무슨 발상인지 모르겠다. 하아...

2. 지금 하고 있는 어떤 일 때문에 대규모로 이메일을 보냈는데, 계속 신경쓰이고 걱정된다. 메일로 요청한 내용이 사실은 좀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또 한편 '공공'에 글을 게재할 것을 요청한 것이니 이것도 부담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배려를 한다고 했는데, 그리 배려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고, 역시 친구들이 말했듯 원래부터 다소 무리수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A가 말했던대로, 간단히 대답할 수 있게 5문 5답 이런 식으로 했어야 했나? 얼마전 씨네21 홍상수 특집에서, 홍상수 감독과 관계를 했던 사람들이 공통질문 몇개에 답하는 형식이 있었는데 꽤 괜찮아 보였거든... 메일 보낸 것에 하나둘씩 수신 확인하는게 보이긴 하는데 과연 얼마나 답장을 주실지는 모르겠다. 이제 와서 좀 손보고 싶은 욕심이 드는데, 지금 기력도 없고, 이미 늦었다는 생각도 든다. (better late than never? kk)

3. 방 구석에 조그만 플라스틱 책상용 서랍이 있다. 뭐가 들었는지도 몰라 너무 혼잡해서 이사를 할 때 아예 봉인해둔 채로 지금까지 열지도 않았던 서랍인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봉인을 풀고 버릴 것들은 모두 버렸다. 그 안에 있었던 것은 주로 학부 1학년 때의 흔적들. 그래서 손편지와 롤링페이퍼와 스티커 사진과 폴라로이드 사진들. 그때의 관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ㅡ그러나 더이상 나는 그런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겠지. 그리고 따라 나오는 질문들. 내 인생에서 앞으로 손편지를 쓸일이 얼마나 될까? 앞으로 만날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깊은 밤 잔뜩 취한 채 낯뜨거운 롤링페이퍼를 쓸 수 있을까? 이제 곧 스티커 사진을 찍기엔 다소 민망해지지 않을까? 폴라로이드를 갖고 다니기엔 이미 낭만을 포기하진 않았을까? 20대 초반에나 가능했던 것들, 20대 중후반에는 조금 민망하게 느껴지는 것들. 앞으로 민망함을 깨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고, 나는 그런 민망함을 깰 수 있는 관계를 만나면 환호작약할지도 모르겠다. 나이주의와 정신연령의 노쇠를 깨부수는 활력이 필요해. 내 안의 초딩에 산소를 공급하는 일.

4. 트위터 시작. 아 이런 신세계군요 +_+ I'm tweeting on www.twitter.com/namunn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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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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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엔 읽고 있는 책은 많은데, 뭔가를 쓰고 싶도록 하는 책은 없는 것 같다. 재미있는 책들도 많기는 한데 이상한 일이다. 책을 읽고 정리해보는 습관은 갖게된 것 같은데, 쓸 욕심은 아무래도 안난다. 쓰고 나면 늘 바보 같아 보인다. 그냥 지금은 input이 더욱 필요한 시기일 뿐이려나? 예전엔 인풋도 없으면서 미친척하고 아무거나 쓰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샌 일기 밖에 못쓰겠어. 예전에도 이런 내용으로 포스팅 했던게 기억나는 것 보면, 아무래도 순환과 리듬의 문제인 것 같다.


2. 요즘엔 막연한 덩어리들 사이에 실마리가 이어지면서, 옛날에 ㅅㄷㅈ 샘과 했던 세미나의 문제 의식과 연결되는 부분이 보이는 것 같다. 이를테면 가라타니 고진의 네이션 언어학/사적 언어학 분석, (세미나에서 읽었던) 푸코의 근대국가/권력 형성 분석, 얼마 전 다시 한 번 일독한 <지도의 상상력>의 주제, 제국과 제국주의 국가의 구분, 그리고 최근에 어쩔 수 없이 공부하고 있는 책에서 본 어떤 구절이 뒤섞이면서 어떤 큰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오랜만에 탈식민주의 텍스트를 읽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이건 몇 달만의 경험이라 상당히 소중함 ㅎㅎ (그러나 별 다른게 아니네)


3. 요즘엔 생물학에 대해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것 같다. 옛날에는 젠더를 다룰 때 생물학 이야기만 나오면 근본주의/본질주의라고 바로 욕했던 것 같은데. 요즘 같아선 생물학과 관련해서 생리학, 실험심리학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는다. 검지와 약지 길이의 비율 계산으로 성격과 젠더를 짐작할 수 있다니 뭐 이런 엉뚱생뚱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이다. 아동의 행동과 인지에 대한 최근 실험들도 생각을 복잡하게 만든다. 뭔가 나름의 통찰은 준다. 물론 지금처럼 잠깐 흥미는 가더라도, 오래가는 재미는 못느낄 주제들이기는 하지만... nature vs. nurture에 대한 해묵은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신념과 실천의 문제란 생각이기 때문이다. 난 무조건, 일관되게 후자 지향.


4. 요즘엔 내가 가진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이 유난히 크게 보인다. 그렇다고 자기 연민은 아니고, 좀 더 질투와 갈망이 세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빼앗고 싶거나 흡수하고 싶다. 꼭 갖고 싶은데 너무 비싸서 못사는 책을 서점의 서가에서 몇 분이고 서서 바라볼 때 같은 느낌. 상당히 오랜 기간 마음 속에 누적되어 폭발할 듯 말듯 무언가가 있는데, 계기를 아직 못만난 것 같다.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 탓이라면 상황 탓일테고, 도화선에 불을 붙여줄 관계를 못만난 탓이라면 그것 탓일테다. 여하튼 아슬아슬하게 찰랑찰랑대고 있다는 것. 위험한 충동일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기분은 썩 좋지 않다. 이럴 때는 "Protect me from what I want."를 주문처럼 되새김질 하는 수밖에.


5. 요즘엔 자꾸만 내가 예전에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그 말에 따르면 예전에 나는 신념에 찬 '애정분배주의자'였다. 그게 올바르다고 생각해서다. 연애 관계든 아니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집약적인 심적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주변 관계에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연애 관계에 깊이 몰입하고 헌신하면서, 다른 관계나 일상 생활 자체가 뒤흔들리는 걸 사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올바르지 않다'고까지 여긴 적이 있다. 특히 여이연 강좌 들으면서 바이섹슈얼리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는 말이다(이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하게 살았는지).

그러나 사실 이는 생존전략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대학 시절에만 하더라도 내가 하기 싫거나 귀찮은 일을 해야할 때가 많았고, 그때만 되면 늘 소진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때에만 하더라도, 나는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좋아하는 일이 가능했다(이게 생각대로 하면 되고~도 아니고. 이제와 돌이켜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거기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근근히 '일상'을 버텨나갈 수 있었다(그리고 이는 성적표에 반영 되기도 했다; 애정을 철회해야 할 때면 급락하는 성적표 숫자...;). 하기 싫은 일, 그리고 주변 관계에, 그 에너지를 공평하게 분배해서 말이다. 

지독히 나르시시스틱한 선택이었고, 결과적으로도 이도저도 아닌 선택이었는데다, 어쩌면 천성에 반하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르는 탓에,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방어기제였다는 생각도 들고. 요즘엔 좀 바뀐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6. 요즘엔 어떤 다른 글쓰기 양식에 대한 욕심도 부쩍 커지고 있다. 앞서 3번에서 말한 게 이것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영화 <시>를 보고 나서 정말 크게 느꼈던 부분이었다. 내가 자주 썼떤 글은, 기껏해야 의미(meaning)을 분석하거나 해석하려들 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하고 의미있는 글쓰기는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 같다. 그러한 글쓰기는, 이를테면 'sense'를 전달해야 한다. '센스'는 감각과 의미를 동시에 전달하는 것. 그러므로 태생부터 결핍으로 시작하는 논문식 문체 같은 걸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일전에 영화 <시>를 보고 여기에 썼던, 그리고 이내 지웠던 글이 한없이 부족하고 한심해 보였다면, <시>가 이야기하는 방식이 어떤 '의미'를 설명하고 재현represent하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대신 <시>는 'sense'를 내 앞에 '제시present'ㅡ거부할 수 없는 방식으로 들이밀어서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ㅡ했다. 그러므로 내가 택했던 글쓰기 방식은 완전히 틀렸던 셈이다. <시>에 대해 쓰려면, 완전히 다른 글쓰기를 택해야 한다. 내가 갖지 못한 어떤 방식으로 말이다. 그것은 차라리 문학적인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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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5/15 20:45

오늘 오후엔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마당에 오도카니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흘려보내며 시간을 보냈다. 왠지 선심을 쓰고 싶은 마음에 같이 살고 있는 할머니강아지에게 소세지를 사주었는데, 이상하게 잘 먹지를 않았다. 오늘은 왜 안 드시나요,하는 궁금증을 담아 눈빛을 쏘아보내는데 강아지님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먼 풍경만 바라보았다. 특유의 아련한 표정을 하고는. 나는 아련하니 싸-한 강아지님의 그 표정이 너무 좋다. 도대체 그 표정을 하고 무엇을 바라보는지.

내가 마음 속 깊이 좋아하는 것들은 한결같이 이런 존재들이었다. 쓸쓸해뵈지만 도도하고, 외로워뵈지만 당당하고, 슬퍼뵈지만 웃을 줄 알고, 포기한 듯 뵈지만 지푸라기는 결코 놓지 않는 존재들. 충동적이지만 헌신하는 존재들. 무엇인가 잃었지만 잃은 게 뭔지는 잘 모르고, 그럼에도 잃은 것을 그리워할 줄 아는 존재들. 가끔 너무 배고플때면 기억과 슬픔과 추억을 폭식해 마음을 지방간으로 만드는 존재들. 그러므로 어딘가 엇나가 있거나, 뿌리 뽑혀 있는 존재들. 절망이 얼마나 안전한 은신처인지 알기에 다른 용기를 내는 존재들. 에고를 지탱하려다 에고에고 힘들어 놓아버리는 존재들. 별자리가 그리는 지도에 위안 받는 존재들. 개구리와 지렁이 냄새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존재들. 그렇기 때문에 집안의 천치들, 조직의 수치들, 사회의 얼간이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척하려고 안간힘을 짜내는 존재들. 안간힘의 흔적을 제대로 지우지 못하는 존재들.

지난 몇 달간 나는 어울리지 않게 흔들렸고, 아무 것에도 위안받지 못했다. 모든 것에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그랬기에 이미 내것이 아니라 생각했던 하나에 부질없게도 조그마한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 기대 때문에 침몰하고 있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끝내 부인했다. 어느 때보다도 위안이 필요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나 늦었고, 돌이킬 수 없이 침몰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혹은 너무 가까이 하려고 한 대가로 새까맣게 타버렸거나.

나는 아마도 떨리는 손으로 일기장에 <끝>이라고 기록할 것이다.


다행히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오후 늦게부터 지금까지, 오랜만에 그들의 생존을 확인했다.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한 채, 술을 마시고, 사랑을 그리워하고, 시나 소설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며 사는 사람들. 혹은 혼자 쓰는 방이 싫어 갈데가 없음에도 밖으로 끝없이 나도는 사람들. 그들은 고른 치열을 갖기 위해 교정을 하는 대신, 차라리 웃을 때면 드러나는 덧난 치열을 손바닥으로 감추기로 한 이들이다. 오랫동안 못봤던 미소가 뜬금없이 보고 싶다. 

그들은 어쩌면 나의 나르시시즘의 조각들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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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5/14 22:51

1. 

<시>에 대한 감상을 쓰다가 그만뒀다. 한글2007로 A4 3장이 넘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지워버렸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았는데, 정작 그렇게 쓰고나니 굉장히 싫어졌다. 길게 중언부언 늘어놓는 일이 의미 있는 것 같지 않아서다. 글을 짧게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신념'을 갖는 사람들을 보면 여러 생각들이 겹친다. 정치나 정체성에 대한 신념이 아니라, '커리어'가 곧 자기의 인생이 된 사람들. 자기가 택한 일이 너무 좋아서 거기에 미쳐버린 사람들. (보통 남자들이 많다지?)

얼마 전에 면담한 교수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 교수는 해당 하위 학문 분야에 있어서는 한국의 최고 권위자이자 '아버지'이다('아버지'라는 말의 부정적 어감도 약간 포함해서). 물론 그에게도 학문적인 '선친(先親)'이 있기는 하지만, 그 뒤를 이어 받아(심지어 연구실도 물려 받았다 했다) 그 학문 분야의 모양새를 그럴싸하게 갖춘 주역이 바로 그라는 느낌을 준다. 그가 '아버지'라는 말은, 요즘 그 학문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제 논리체계의 정당화를 위해 인용하는 인물이 바로 그라는 얘기다. 그는 자기가 공부하는 영역이 너무나 좋다고 했다. 공부도 너무 좋고 이 분야도 너무 좋아서 미쳐서 공부했다고. 심지어 다음 생에 태어나면 지금의 파트너와 같이 살지는 못해도 이 공부를 계속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할게 너무 많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할게 많긴 한데, 그런 말을 하는 그는 정말 어딘가 틈이 없어보였다. 적어도 이야기하는 도중에는 말이다.

원래 단단한 걸 보면 자꾸만 깨고 싶어지는게 인지상정인지라, 면담 중에 내가 했던 질문이라고 해봐야 그의 커리어에 대한 신념을 에둘러 의심하는 것 밖에 없었다(사실 별로 궁금한 게 없었기 때문에). "어디에서 '개종'이라는 표현까지 쓰셨는데, 원래 이 분야만 공부하셨나요?" 라든지 "원래 공부하면서 이런 저런 다른 생각이 들기 마련이잖아요?" 라든지 "공부를 하시기 전엔 뭐 하셨나요?" 뭐 그런. 그러나 답변은 계속 견결했다. 결국 자기도 한 때 '꿘'이었기에 잠시 다른 일을 할까 고민하기는 했다는 답변을 얻고 만족해야 했다 ㅋㅋㅋ 

3.

정말 내 인생 걱정된다. 일단 눈앞에 닥친 입시에 합격해도 걱정, 못해도 걱정. 내 친구들은 정말 다들 훌륭해서 조만간 다 자리 잡고 쭉쭉 나갈 것 같은데, 난 절대 안 그럴거 같애. 배고픈 일 하는 건 전혀 걱정 안되는데, 일단 거기 가서 섞일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워낙 작은 동네라 못 어울리면 안되는데여 ㅠㅠ 찌질대며 사는 건 아닐까. 최소한의 품위는 지키면서 살아야는데... 이상하게 살 것 같으면 콱 죽어버릴거야.

4.

<테이킹 우드스탁>은 정말 재밌는 책이다. 어떤 공간을 그려내고, 그 역사와 역동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안 그래도 마음을 빼앗는 사건을 그리는 실화바탕 소설인데, 디테일도 세밀하고 섹시해서 쿵쾅쿵쾅 마음 졸이며 읽다가 눈물 찔끔 흘리며 읽다가 했다. 물론 우드스탁이라는 특별한 배경이 없었으면 평이한 소설이었겠지만, 그걸 이렇게 그려내는 것도 정말 용한 일이다. 게다가 정말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유려하고 위트있게 번역을 할 수 있었던건지 놀랍다. 소설을 읽고 난 유일한 부작용이 있다면, 아무래도 마이클 랭 같은 광야의 초인을 기대하게 되었다는 점..?ㅋ 그리고 엘리엇 타이버가 엄청 부러워졌다는 점? 저에게도 우드스탁과 앙드레 에르노트를 내려주세요 오오

5.

S가 스치면서 했던 얘기는 정말 충격이었다. 내가 배척했던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 따르면 나는 진지하거나 간절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너무 작거나 비겁했거나, 혹은 마음 속 뿌리부터 아예 믿지 않았거나. 그 말을 듣고는 진심으로 S를 존경하게 되었고, 나는 나의 무감과 불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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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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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5/13 19:25
1. 원서를 내러 잠깐 휴가 냈던 게 오늘로 끝. 다시 일상으로.. (꽥) 한숨을 쉬며 일기나 써볼까..


2. 월요일엔 학교에 갔다가 정말 의외로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월요일엔 학관 계단에서 JH를 만났고, 이어서 JH과 밥약속이 있던 JE도 만났다. 그리고는 5개월 만에 YK를 만났고, 이어서 꽃집 앞에서 SH를 만났다. YK랑 헤어지고 R을 만나러 가는데, 거의 2년 만에 Y를 만났다. Y는 이제 석사 5학기로 논문학기라 했다. Y와 잠시 환담을 하고 R을 만나 벤치에서 얘기했다. R을 만나는 중에, 활동을 같이 하진 않았지만 같은 동아리였던 C씨와 인사를 했다. R과 헤어지고 교수와 잠깐 면담을 했다. 생각보다 활기차고 자기 영역에 대한 믿음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인사도 안하는 사이였는데 나보고 착하다고 하셨던 D씨를 길 위에서 봤다. 버스를 타고 J회의를 하러 학교 밖으로 가는데 버스 창 밖으로 TH를 만나 조금 얘기했다. 잡지 발간을 기다리게 됐다. 여하튼 헑,소리나는 월요일의 오후. 1년 동안 만난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버렸으니.

참 이날엔 휴가 기간이면 내가 머물곤 하는 이모네 집에서 아기 100일 파티가 있었다. 이종사촌 아들의 100일. 나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짐풀러 갔다가 급당황했다.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파티엔 가지 못했지만, 왠지 모를 압박감에 백화점을 유령처럼 떠돌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샀다 아하하... ㅠㅠ 도대체 아기 100일엔 뭘 해줘야는거지? 생활무능력자ㅠ


3. 화요일엔 덕수궁 미술관에 기획전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를 보러 갔다. 이번 전시는 내가 갔던 덕수궁 미술관 전시 중에서 가장 공간 활용이 좋았다. 이번 전시에 설치 작품이 많았던 탓인지는 몰라도, 빛의 활용이나 어쿠스틱이 공간감을 잘 살리고 있는 듯 했다. 물론 덕수궁 미술관이 좀 비좁은 곳이니까 한계는 있겠지만.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소설가 한강의 최근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에 등장하는 인상 깊은 작업을 볼 수 있었다. 한은선 작가의 작품인데 제목은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2전시관에서 나오니 작가의 인터뷰도 볼 수 있게 해놓아서 오도카니 앉아 두 번 봤다.

미술관을 나오는데 빗방울이 투두둑,떨어지기 시작했다.


4. 수요일엔 학교 축제에 갔다. 졸업생 이후로 처음 간건데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거야. 복잡한 길 위에서 오래 못만날 것 같았던 사람들도 우연히 만났다. D와 M, 그리고 또 JE와 Y. W와 JH와는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여하튼 잔디밭에 죽치고 앉아 신기한 사람들 구경도 했고, JI, SS, R, YK, H와 술도 마셨다(취하진 않았다). 그러나 자리를 만들었던 S는 오지 않았다(ㅠㅠ)

와플을 먹을 때만 해도 더 학교에 다녀도 좋으리라는 생각을 했었건만, 스타 리그 하는 학교 축제장을 보고 있자니 과연 더 다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이창동 감독의 <시>를 봤다. 처음엔 그냥 중소도시의 문인에 대한 그런저런 이야기일 줄 알고 봤는데, 이 감독이 <밀양>의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다가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 <밀양>에 비해서 덜 종교적이었지만, 더 웅숭깊어졌다. 화면도 그렇고 서사도 그렇다. 조만간 리뷰를 써야지.


6. 유년 시절, 기억의 늪이 있다. 그런 기억은 쉽게 부채감으로 전이된다. 그 부채감은 내가 영원히 갚지 못할 것인데, 가끔은 그 부채를 상환해야할 순간이 갑자기 찾아 온다. 이를테면 J회의 중에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한숨이 너무 무거웠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말을 더듬고 말을 잇지 못하게 되었다. 죄송,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부담스럽다. 말을 아끼다가 다음으로 약속을 미뤘다. 기약 따위는 없었다. 그냥 다음, 다음이 좋겠다,였을 뿐이다. 진작에 집 전화번호는 스팸 리스트에 넣었다. 이제는 계속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고 있다... 이젠 왜 전화를 안 받느냐는 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밉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7. 기억할 만한, 아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1초, 길어야 2초 남짓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엔 무언가 두려워서 시선을 빨리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게도 쉽게 연루되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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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일기, 휴가
일기 / 2010/05/08 12:59

3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새벽 1시 타임 근무에 들어갔더니, 많은 게 바뀌어 있었다. 어제 인근에서 또 구제역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야 했고.

이전 근무지와는 달리 새 근무지에는 가스 난로도 있어서, 밖은 추웠지만 정미소 내 천막의 공기는 매우 훈훈했다. 그랬던 탓에 나는 얼마간 혼곤한 기분으로 잠이 들었다 깨어났다를 반복했다. 매미가 찌르릉찌르릉 우는 초여름의 어느 오후, 독한 감기약을 먹고 지루한 고등학교 수학 수업시간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넌 대체 낮에 뭐했길래 이렇게 계속 잠만 자냐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니(잠시 눈 좀 붙이라는 얘기는, 계속 자라는 얘기는 아니었다는 것).

그렇게 꼬박꼬박 조는데 아저씨들이 갑자기 나랑 다른 사람들을 깨웠고 나는 멍하게 일어나서 밖에 나갔다. 저쪽에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이상하게 몸집만 거대한 차량 두 대가 들어와 있엇다. 불빛이 향하는 곳에는 소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 그 큰 소가 스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처음보는 '안락사'였다. 잠이 벼락처럼 쏟아지는 듯 소는 조금씩 무너져내려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소는 그 와중에도 꼬리를 계속 흔들었다. 꼬리 만은 죽음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차량들은 그런 소에게 밧줄을 연결해 들어올린 뒤,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떠나는 차의 백라이트 불빛은 망막에 잔상을 남겼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들은 소가 참 안됐다고 했다. 불쌍하다고, 차에 실릴 때까지 소는 꼬리를 계속 흔들었다고, 눈은 몹시도 졸려보였다고. 그러나 어쩌겠냐고,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하는데 쟤들이 뭘 어쩌겠냐고, 그래도 옛날처럼 생매장 당하던 것은 아니니 괜찮은 것 아니겠냐고, 뭐 다 그런 것 아니겠냐고. 흠뻑 때려주고 싶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고작 그런 것일까. 시시하고 시덥잖고 포기하게 되는 것일까. 다 그런 것 아니겠냐는 말을 떠받들어야만 버틸 수 있게되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나는 뭐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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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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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5/07 15:00

1. 이상하게 불길한(?) 예감은 잘 틀리지 않는다. 가끔은 이런 예감이 병인듯한 때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확률상으로 잘 맞는다는 얘기다. 나쁜 예감이 하나 둘 누적되면 확신이 되고, 확신이 되는 순간 결정적 증거를 찾고자 하는 충동에 시달린다. 여느 때와 같은 싸이클이다. 결말은 항상 같다. 맥락은 좀 다르지만, 예컨대 이런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바사니오는 금상자, 은상자, 납상자 중에 한 상자를 열어야 한다. 금상자에는 "나를 택하는 자는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라 써있고, 은상자에는 "나를 택하는 자는 그 가치에 합당한 것을 얻으리라"고 써있고, 납상자에는 "나를 택하는 자는 그 가진 바 모든 것을 주고 모험을 해야 하노라."라고 써 있다. 그 상자 중에 단 하나만 포셔의 초상화가 들어있다. 금상자에는 해골이 들어 있고, 은상자에는 바보의 그림이 들어 있다. 주인공 바사니오는 당연히 납상자를 열고, 그 안에는 포셔의 초상화가 있다. 선택의 순간에, 나는 언제나 납상자를 열지 않는다. 내가 여는 건 금상자 아니면 은상자다. 그 안에는 늘 해골이나 바보가 들어있다. 해골은 두 번 만났고, 바보는 셀 수도 없다. 예감이 맞아 떨어진 것만 기억해서 그런가? 아무튼.


2. 문화적 취향은, 당연히 그 취향을 가진 사람 자체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누군가가 특정한 인물이나 음악, 사조, 장소 따위를 좋아한다고해서, 그 사람이 그 인물이나 음악, 사조, 장소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숭배하는 사람들을 보면 깨지고 바스러지기 쉬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서인지 혹은 다른 이유인지, 결국에는 영 싫어진다(정말 무서운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 사람이 가진 문화적 취향 때문에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는 언제나 배반당하기 마련이다. 글을 읽고 좋아하게 된 사람을 만나면 늘 실망하게 되듯이.
 
그러나 문화적 취향은 사람을 판단하는데 매우 간편한 준거가 되기도 한다. 취향은 그 사람이 가졌다고 가정되는 것에 대해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 취향이 대화와 관계에서 권력이 되는 순간이 생긴다. 누군가의 입을 막고 누군가의 귀를 열어주는 취향, 그리고 취향을 말할 수 있는 권력도.


3. 소설을 읽다가 내가 '고독'하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고독'은 삶에서 선택가능한 한 형식이고, 그러므로 고독은 '외로움'과는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고독을 택한 인물이라고 외로움을 못/안 느끼지는 않는 거다.) 그 인물들은 한결같이 '이유가 없을 때' 운다. 그들에게 눈물은, 지나치게 늦게 찾아오거나, 혹은 지나치게 일찍 찾아온다. 이를테면 부모나 애인, 친구 등 소중한 타자가 죽거나 헤어졌을 때, 이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지정되고 공인되는 의례의 장소(장례식장, 장지, 죽은 이의 방 같은 곳)에서 결코 울지 않는다.

이들은 울음과 슬픔이 일종의 퍼포먼스라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눈물을 내보이지 않으면 자기가 '괴물'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눈물은 이를테면 인간성의 지표이기 때문이다(아무리 악독하고 사회적인 패악을 일으킨 사람이라도, 눈물을 흘리는 순간 용서가 곳곳에서 발생한다. 그의 눈물은 그 역시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쁜 정치가들은 이 사실을 잘 이용한다.) 그래서 눈물을 흘려야만 그는 '사람들'에게 소속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울음을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순간 자기들이 <빼앗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안다. 즉, 타자와 내가 내밀하게 공유하던 영토를 약탈당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 그건 고독한 이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그러다가 울음은 어느 순간, 이들의 삶 어딘가의 코너에서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다. 그러나 여기엔 이유가 없다.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빗방울 소리가 너무 듣기 좋아서 운다.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이 너무 아파서, 조각이 찔러서 운다. 책을 읽다가 활자의 획이 회칼처럼 가슴을 길게 찢어서 운다. 또 어느 50대 남자의 흰 머리칼을 보고 운다. 어느 30대 여자의 마른 어깨를 보고 운다. 그리고 어떤 감정의 폐허와 만난다. 그러나 이유를 찾을 순 없다. 그렇게 그들은 고독을 선택했고, 또 고독에 선택당했다. 고독은 개체성/관계/감정/내밀한 영토를, 언어/사회/의례에 맞서 보존하기 위한 투쟁struggle이다.


4.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다음 주 4일 동안의 짧은 휴가에는 J회의, 면담, 오랜만에 만나는 Y를 제외하곤 별다른 일정이 없을 줄 알았는데 또 이틀 사이에 금방 차버렸다. 꽉 채워서 재밌게 보내야지. 그리고 정신 놓고 지내는 사이에 보고 싶은 영화가 많이 개봉했다. <하하하>, <경>, <시스터 스마일>, <원 나잇 스탠드> 외 몇 개. 그리고 전시회 한두 개? 이거 다 섭렵하고 올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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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5/04 19:13
구제역 때문에 생활이 완전히 불규칙하게 뒤엉켜버렸다. 그동안 내가 이토록 규칙적인 삶에서 안정감을 찾았었던가, 싶을 정도. 그도 그럴 것이 어떤 날은 자정, 어떤 날은 저녁 6시, 어떤 날은 새벽 6시, 어떤 날은 오후 1시에 출근이니까. 시간 비는대로 짬짬이 과외도 2개 해야하고. 적어도 7시간은 자야 하루 동안 심리적 육체적으로 안정이 되는 나로서는 이 생활이 정말 버겁다. 난 낮에는 잠을 못잔단 말이야. 피부도 막 거칠어지고 트러블도 생기고. 요새 일상이 이래서인지 별일 아닌 일에 화도 많이 나고, 내가 이 퍼블릭 서비스를 하면서 가장 하기 싫었던 일도 점점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고, 여하간 정말 싫다. 이 생활하면서 느낀건데, 난 정말 공공형 인간이 아니다. 돈을 억만금을 준대도 공공형 인간은 못될거야. 5월 15일까지 별 일 안나서, 그때면 이 상황이 완전히 끝나길 바랄 밖에. 에휴.

어제는 근무를 서면서 김소연 시인의 시집 <눈물이라는 뼈>를 완독했다. 사둔지는 꽤 된 시집이거든. 집이나 사무실 같이 산만한 환경에서는 시를 읽을 수 없었는데, 구제역 근무 서는데가 워낙 조용한 곳이다 보니 술술 곱씹어가며 잘 읽혔다. 음, 시를 '읽는다'고하면 실례가 되려나? 여하튼. 이번 시집에도 좋은 문장이 정말 많았다. 예전에 몇번 들춰본 산문집 <마음사전>도 그랬었는데(이 책은 처음부터 통독하기보다는 말 그대로 '사전'처럼 읽는게 좋다. 심란한 밤, 설레는 밤, 슬픈 밤, 우울한 밤 가릴 것 없이 마음이 뒤숭숭해서 마음을 다스려야 잠이 올 것 같은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뒤적이면 좋은 책이다). <눈물이라는 뼈> 뒤에 실린 해설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마음사전 놀이"라고 표현했던 놀이는, 나도 정말정말 해보고 싶었는데..ㅋ 슬프게도 같이 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안 떠올라서 포기했었는데. 그런 놀이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니 평론가님은 복받으신거예요. 오늘 오후에는 시집에서 시를 몇개 옮겨두고 싶었는데, 옮겨보려고 시집을 다시 들추니 왠지 감춰두고 몰래 보고 싶어서 그만두기로.

오늘은 오랜만에 벅스에 들어갔더니, 김윤아 새 앨범이 나왔더라. 노래를 듣는데 왠지 모르게 어딘가 조금 어색했다. 대체 내가 그녀에게 가졌던 이미지가 뭐였길래? 여하튼 어떤 노래를 듣고 있자니, 아이와 같이 산다는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하게 된다. 오늘 과외 하고 오는 밤길에서는 어떤 엄마와 아이를 봤다. 둘이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데 아이는 불꺼진 상점을 보며 무서워,무서워,라고 반복했고, 엄마는 다정한 목소리로 그럼 이제는 엄마랑 같이 안나올거야?,라고 말했고, 아이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즐겨찾기에 등록한 블로그는 많지만, 갈때마다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는 블로그는 정말 적다. 그 중에 요새 닫는 블로그도 좀 있는데, 다들 안 그러시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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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일기
일기 / 2010/05/04 12:58
1. 감상에 젖지 않을 것
2. 징징 대지 않을 것
3. 말을 믿지 말고 말을 아낄 것
4. 타인에게 연루되지 않을 것
5. 화를 내지 않을 것(그러나 안 낼 수 있을까?)

일단 당분간만 잘 지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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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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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5/02 18:11
요 며칠 이상한 캠프에 다녀와야 했고, 그에 바로 이어서, 갑자기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해버렸다. 반강제 계약직 퍼블릭 서비스에 종사하고 있는 처지에, '아직 또렷한 대책은 없지만 전 공무원 일단 출동!'하면 예예, 하고 가야지 뭐. 구제역이 끝날때까지는 '매일출근주말반납'은 도저히 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아무 대책도 없고 장비도 없고 돈도 없으면서 일단 나가라고 한다. 그래도 내 일상에 닥친 더 큰 위기는 겨우 모면. 이걸로 일단은 OK.

어쨌든 이 탓에 소와 돼지가 몰살 당하고 있다. 규모도 엄청나 수천마리에 이른다. TV에서 종종 구제역 뉴스를 볼 땐 숫자로만 실감했던 것들이, 이제 내 일상에 가까이 오니 다른 무게감으로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 수없이 많은 소와 돼지들은, 질병에 걸렸거나 혹은 걸릴 위험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절하게 하루 아침에 학살당하고 있는 것이다. 저 멀리 개활지에 보이던 환한 불빛과 바삐 움직이던 포크레인들. 그 와중에 사람들은 싼값에, 혹은 무료로 한우의 뒷다리를 먹을 수 있지 않겠냐며 군침을 삼킨다. 심지어 매립지에서는 이미 소고기를 굽고 있었다. 소를 40여 마리 키우고 있다는 어제 만난 한 축산업자는, 이번 구제역 발생지역 선포로 인해 자신의 꿈이 어떻게 무너졌는지에 대해, 자기가 어릴 때부터 소를 얼마나 좋아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비싼' 안락침을 맞아야 하는 소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정심도 표현하지 않았다. 소들은 허망하게 죽어버리거나, 500kg 나가는 600여만원 짜리 '재산'일 뿐인 것이다.

예전에 소위 '광우병' 파동이 있었을 때, 가장 절실하게 공감했던 표현은 '미친소'가 아니라 '병든소'라는 표현이었다. 광우병은 결국 거대 축산기업 네트워크와 효율성 논리에 의해 탄생한 재앙이었다. 그 병을 만든건 소가 아니라 결국 인간이었고, 그럼에도 정말 많이 아팠던 건 소들이었고, 그럼에도 인간에게 미친 영향의 원인은 '미친소'에게로 귀결되었다. 이번 구제역의 경우는 또 어떨까? 고기를 더욱 싼 값에 먹겠다는 시장의 욕망은 결국 축산농가의 밀집화, 기업화, 효율화를 이끌었을 뿐, 그런 열악하다못해 처절한 환경에서 돼지와 소가 어떻게 성장하고 자라나고 학살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소와 돼지, 닭 같은 '인기 품목'이 어떻게 사육되고 있는지는 가본 사람만이 안다. 그렇게 밀집된 환경 속에서 구제역은 더욱 쉽게 전염된다. 적어도 축산 농가 주변에 목초지만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도, 발생지역 3km이내 무조건 모든 소 돼지 학살은 없을 것이라 했다.

지하철, 버스 따위에서 과도한 밀집은 사람을 정말 미치게 한다. 사람들은 1.5평짜리 독서실에서 우울증에 쉽게 빠진다. 어떤 동물행동학자는 과밀로 인한 총체적인 행동의 왜곡을 '싱크(sink)'라고 표현했다. 28개월 동안 5마리의 쥐는 5만 마리의 쥐떼가 될 수 있지만, 일정 크기의 공간에 사는 쥐들은 결코 일정 개체수를 넘어서 번식하지 않는다. 일정 수를 넘어서 과밀이 발생하면, 쥐들은 서로 꼬리를 물어 뜯어가며 싸우고 태어난 새끼를 죽인다. 소와 돼지, 닭(한국에서만 닭은 하루에 70만 마리, 월드컵 기간엔 200만 마리가 도살당한다)에게 유독 전염병이 빠르게 전파되고 치명적이었던 이유를 다시 짐작하게 한다. 출퇴근 시간에 인사를 건네곤 했던 소들이 생각난다. 다시 한 번, 육식을 하지 않아야겠다. 이건 최소한으로 지킬 수 있는 삶의 윤리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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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4/25 11:34
1. 요샌 잠을 많이 자게 된다. 8시간 씩, 9시간 씩. 일상에서 잘 풀리는 일이 없다 보니 점점 잠으로 도피하는 것 같다. 방에서 깬 상태로 있을 때는 엎드려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뒤적인다. 새 책을 읽지 않게 된다. 예전에 좋았던 책은 보통 책귀가 많이 접혀 있다. 더 좋았던 책은 책의 앞뒤에 메모, 옮겨쓰기, 요약까지 들어 차있다. 그런 것들을 다시 읽는다. 다시 읽다보면 책귀 접힌 부분이 수정되기도 하고, 새 책귀가 접히기도 한다. 그걸 보면서 내가 겪은 변화를 짐작해 본다. 이제부터 읽을 책들은 언제 읽었나를 표시해 둬야겠다. 까먹지 않도록 아예 책 등에 표시를 해둘까?


2. 애드리언 리치(Adrienne Rich)는 영미권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책에 자주 언급되는 시인이고, 얼마 전에는 그 시인이 쓴 <The Burning of Paper Instead of Children>(링크 있음)을 감동 깊게 읽었다. 나중에 맘이 맞는 사람들 있으면 함께 리딩리스트 뽑아서 공부해봐도 좋을 시인인 것 같다. 시인데도 굳이 읽었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아무래도 연구(?)를 하면서 봐야 했기 때문에(=_=). 예전에 영문학 강의 들을 때도 시를 읽을 때면 머리를 쥐어싸곤 했는데(근데 대체 대학에서 시의 가운데를 뻥뻥 비워놓고 채우라는 시험은 왜 보는거야?). 여하튼 시가 너무 좋아서 번역을 해둘까 했는데 미천한 실력이라 조금 해보다가 그만 두었다. 그래서 그 중 가장 좋았던 부분 2가지만.

시는 미국의 평화운동가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Daniel Berrigan이 볼티모어의 재판장에서 했던 말을 제사로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나의 도덕적인 충동을 실존 밖으로 언어화해야하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I was in danger of verbalizing my moral impulses out of existence)." "충동"이라는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추진력? 여하튼 이 말을 보고 나니 <경계도시2>에 이 말이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계도시2>를 국보법 관련 이슈(한국에서는 좌파든 우파든 국보법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식의)로 보기보다는, 차라리 개인의 실존에 대한 텍스트로 읽었다. 얼마나 사람들과 사회가, 집단과 정의의 이름으로 한 사람의 실존을 무참히 짓밟을 수 있는지를 말이다. 송교수에게 자꾸만 설명하라고, 증명하라고, 결단을 내리라고 촉구하던 언론과 주변 사람들. 누구나 할 것 없이, 송교수님은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며 저마다 처방과 전략을 내어놓던 남자들. 침묵하는 법, 각각의 개개인을 '견뎌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말이 많아질수록, 말할 것을 강요 당할수록, 점점 침잠하고 잦아드는 송교수의 미간 주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다른 하나. "억압자들의 지식 / 이것은 억압자들의 언어이네 // 그러나 당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는 이 언어가 필요하네(knowledge of the oppressor / this is the oppressor's language // yet I need it to talk to you)". 미국 이주자들의 신산스러운 역사를 반영하는 것일테다.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규범적인 '표준 영어'와 소수인종이 사용하며 규범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여러 방언들의 문제도. 지식-언어-억압-권력, 그럼에도 이 언어를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순-분열-역설-자의식. 이 구절을 보고 올해 여성영화제에서 보았던 한국 단편 <파마>가 떠올랐다. <파마>는 결혼이주여성과 결혼이주여성을 맞는 한국 사회에 대한 영화다. 이주여성으로 나오는 출연자는 재밌게도, 그리고 천연덕스럽게도 한국인 연기자다. 유머와 위트를 잘 구사하는 영화인데 주제의식이나 문제의식은 정말 여러모로 묵직해서 기억에 많이 남는 영화였다. 그 중에 정말 일부분만.

이주여성은 막 입국해서 '시어머니'를 따라 재래시장의 미용실에 들어와 있다. '시어머니'는 자기가 돈을 쓰고 있다는 걸 강조하면서 이주여성에게 옷을 사주고 파마를 해주지만, 사실 이 여성의 마음에 들지도 않고 또 한국에서는 '촌스러운' 것일 뿐이다. 말이 한 마디도 안통하는 사람들은 이 여성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지만(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다루듯이 말이다. 마치 언어를 모르면 사회적으로는 '아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이. 그러니 자기들 뜻대로 막 다루고 귀여워해주고, 그러다 짜증나거나 맘에 안든다 싶으면 화를 마구 내고 혼낼 수 있다는 듯이. 이는 이주'여성'이었으니 가능했을 이야기일 것이다. 사회가 젊은 '여성'을 대하는 방식의 스펙트럼에서. 반면 흔히 이주'노동자'로 표상되는 이주'남성'들에게 한국 사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우한다), 아무것도 소통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변의 한국인들은 끝까지 이 이주여성에게 '한국어'로만 말을 건넨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범람하는 한국어는, 차라리 어떤 폭력처럼 느껴진다.

예전에 김연수 소설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주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한국 문학을 쓰게 하는게 목표라고 말한 적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를테면 한국어와 한국문학의 결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즉 한국 문단의 배타성과 주제 중심성(문학 미학에 대한 관심보다는, 문학의 주제와 작가 생애 등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문단의 관행)을 벗어날 수 있다는 요지였다. 동의할 수 있는 구절이지만, 한편으로는 난 이런 목표가 위험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주자들이 구사하는 한국어가 한국인과 한국문학에게 어떤 의미와 효용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뿐, 한국 이주자들에게 한국어가 어떤 의미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뷰는 짧았기 때문에 소설가가 하는 생각을 다 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땅에서, 한국의 지배언어인 한국어로 이주자들에게 말을 건네되, 그리고 한국어로 말을 하되, 그것이 한편으로는 "억압자들의 언어"일 '수 있다'는 점을 더 깊게 감안하지 않는다면, 한국어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될까?


3. 오랜만에 사진기를 들고 나갔음. '출사'라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 때문에 나간 것은 아님. 역시 지나친 관광지가 아닌 절은 죠쿠나~
절에 가면 누구나 찍는 풍경(風磬) 사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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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4/19 22:17
1. 어젯밤, 여기에 썼던 삐뚤어진 글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블로그에 쓰는 글들이 대체 누구를,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봤다.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간 왠지 좀 창피했다. 나는 그럴 의도로 쓴 글이 아니었는데 그냥 그렇게 쓰였다. 그런 글은 안쓰겠다고 결심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좀 비루해진 느낌이다.


2. R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문자를 보냈더니 학교 음악 감상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대학원생인 R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면 바로 전화를 걸었을 것 같은데, 음악 감상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니 뭔가 대단히 방해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게 낭만으로 느껴져 괜히 가슴이 콩닥콩닥 했다. 그리고 지금 쯤이면 참 예뻤던 학교의 봄을 생각했다. 봄과 가을을 맞을 때면 열병을 시름시름 앓았던 그 순간들도 기억이 났다. 봄 학기 중간고사는 늘 바닥이었고, 바닥을 찍고 반전해서 기말고사는 늘 성공했다. 그랬기에 봄학기 수강신청 때는 기말고사만 보거나 기말 레포트만 제출하는 수업을 찾느라 눈이 빠져나오는 줄도 몰랐다. 중간 기말이 둘 다 있거나, 출결관리가 엄격한 수업은 늘 안타까운 학점이었다. 가을학기는 늘 추락에 추락이었으니 강의를 찾을 것도 말 것도 없었고. 그래도 그런 나의 행동을 받아주는 고마운 선생들이 있었기에 뻘쭘한 학점은 안 받았지만.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무작위로 오가던 때가 있었지.

어느 새 나는 그런 열병들에 어느 정도는 시큰둥하게 되었고, 왠만한 것에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게 되었다. 그 변화에 대해서는 ㅇ과, 지금 마무리해가는 2년 여의 시간에 감사할 뿐이다. 이제는, 조금 무덤덤하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천천히 스며들어와 마음의 결을 따라와 어느 샌가 확 번져오는 게 좋다. 예컨대 박노수 화백의 전시회에 갔을 때, 그림의 구도나 주제 따위 보다는 종이에 차분하게 번진 남빛과 청록빛이 무척 좋았다. 색깔과 사물에 경계(border line)가 분명치 않아서 훨씬 좋았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 같았다. 똑똑 떨어지고 결을 따라 번져와 점점 더 선명해지는 색깔.

이렇게 쓰고 보니 아직 내가 무슨 '태'를 벗지 못한 것도 같고만. 이런 '태'는 어서 벗어야는데.


3. S는 다른 연극도 준비하려는 모양이다. 이번에도 프린지에 상연할 예정인 것 같다. 작년에는 가보질 못해서 피눈물만 질질 흘렸는데. 여하간 그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나도 뭔가 도울 게 있으면 하겠다고 덥석 물어 버렸다. 스탭이든 뭐든 할 수 있게 되면 해야지. 난 서점에서 책은 싸가지 없게 팔았지만, 이 연극 티켓은 상냥하게 잘 팔 수 있다. 이번 팀에는 모르던 사람들도 한다니까 왠지 더 하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것에 오직 손님이나 관객으로만 참여하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미술관에 가서 좋은 작품들을 보면, 그 작가와 친구를 하고 싶어지는 건 기본이고 그게 안될 것 같으면 1주일 정도 무급으로 조수라도 하면서 말을 붙여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좋은 공연을 봐도 그렇고, 좋은 블로그 포스팅을 봐도 그렇고, 좋은 책을 봐도 그렇고, 옷을 예쁘고 잘 어울리게 입은 사람을 봐도 그렇다. 찾아 가서 두 번째 손가락으로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저기요~' 하면서, 좀 쑥쓰러운 듯. 하하. 이런 욕심이 강한 걸 보면 나도 사교성이나 사회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아니 이런 것더러 사회성이 없다고들 하는 건가?).

어쨌든 이건 내가 아직 어딘가에 뛰어들 입장이 아니어서 그런가? 물론 지금도 하고 싶은 거야 있지만, 절대 다른 것들을 그냥 놓치고 싶지는 않다. 이건 네이버에 의해 이십대 중반으로 분류되는 스물 여섯살이 가질 수 있는 오기다. 스물 여덟, 스물 아홉이 되면 쉽게 갖기 어려울지도 모를 오기. '수레바퀴따라 난 한 길'이라는 어원을 가진 '커리어'라는 말이 옛날부터 싫었다. 그건 어딘가 퀴퀴하고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는 단어다. 그래도 일단 해야 할 것을 하면서, 이렇게 조금씩 발을 담글 수만 있다면야 뭐. 참, 어제는 드로잉 기초에 관한 책을 한 권 구입했다. 내일 사무실에 가서 연필만 깎으면 된다. (그림을 책으로 배우려 한다 하하 모 CF처럼 동영상도 아니고)


4. A는 이번 대학원 입시에 함께 붙어 나랑 밥친구 하기로 해 놓고서 입시 준비를 안한다. ㅠㅠ
근데 넌, 이 블로그 주소는 모르겠지만, 꼭 대학원 가야 돼 ㅎㅎ 빨리 공부하라고.
임고는 버리자. 그건 너도 얼핏 언급했다시피 네 체질도 아닌 것 같고, 물론 내 체질도 아니야 하하


5. 입시요강에 출신학과 교수 추천서를 제출하라고 해서 지도교수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성적표와 수학계획서를 보내달라고 하셨다. ㅎㅎ 성적표는 어디다 쓰시려고요? ㅎㅎㅎㅎㅎㅎㅎ 그래도 적당히 포맷에 맞춰서 이름만 바꿔 써주는게 아니라, 나름대로 읽어 보시고 성의껏 써주신다는 얘기 같아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지원하려는 학과 교수들은 읽어보지도 않을 것 같기는 한데. 과제 왜 안내냐고 너만 지금까지 안냈다고, 동그란 눈으로 재촉하시던 교수님 얼굴이 떠올라 그저 죄송할 따름; (이거 성적표 보고 악담쓰시는거 아냐?) 덕분에 애초에는 5월 초부터 쓰려고 했던 수학계획서를 지금 잡고 있다.

이 포스팅은 부분적으로 수학계획서를 쓰기 싫어서 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고 돈 내고 공부하겠다는데 그냥 뽑아주면 안되나?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몰라 낑낑.


6. 오늘의 문장 2개.
Giroux, "우리는 경험에 비판적으로 몰두할 수 있으며, 그 경험을 넘어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을 부인할 수는 없다."
MacKinnon, "우리는 삶을 통해 사물을 알며, 아직 어떤 이론으로도 만들어지지 않은 지식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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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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