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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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2012/01/04 16:31

경향신문 - '방' 강화길
작품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1012012425&code=960100
심사평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1012023205&code=960100
당선소감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1012022095&code=960100

동아일보 - 중편소설 '숲의 정적' 김영옥, 단편소설 '치킨 런' 김혜진
http://www.donga.com/docs/sinchoon/2012/index.html

서울신문 - '홍루' 김가경
작품: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03033003
심사평: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03035004
당선소감: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03035003

세계일보 - '신 귀토지설' 박송아
작품 :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20101001984&ctg1=01&ctg2=&subctg1=01&subctg2=&cid=0101050100000
심사평 :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20101002039&ctg1=01&ctg2=&subctg1=01&subctg2=&cid=0101050100000
당선소감 :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20101002040&ctg1=01&ctg2=&subctg1=01&subctg2=&cid=0101050100000

조선일보 - '삼각조르기' 안숙경
작품& 당선소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30/2011123001234.html
심사평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30/2011123001175.html

한국일보 - '내기의 목적' 김솔 , '고열' 정경윤 공동 당선
'내기의 목적' 김솔
작품: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culture/201112/h2011123108043984210.htm&ver=v002
당선소감 :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culture/201112/h2011123108015484210.htm&ver=v002

'고열' 정경윤
작품: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culture/201112/h2011123108011384210.htm&ver=v002

당선소감: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culture/201112/h2011123108005884210.htm&ver=v002
심사평: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culture/201112/h2011123108014084210.htm&ver=v002

 

강원일보
작품: http://www.kwnews.co.kr/nview.asp?aid=212010100151&t=601
심사평: http://www.kwnews.co.kr/nview.asp?s=601&aid=212010100126

소감: http://www.kwnews.co.kr/nview.asp?aid=212010100125&t=601


경남신문

작품: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13339

심사평: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13341

소감: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13340


경인일보

작품, 심사평, 소감 :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26188


경상일보

작품: (상)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5280

(하)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5283

심사평 :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5282

당선소감 :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5281


광주일보

작품: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25170800456704007

심사평: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25170800456705007

당선소감: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25170800456706007


국제신문
작품: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20&key=20120102.22041191952
심사평: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20&key=20120102.22041191340
당선소감: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20&key=20120102.22041191716


(대구)매일신문
작품: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75666&yy=2011
심사평: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75668&yy=2011
당선소감 :

무등일보
작품: http://www.moodeungilbo.co.kr/read.php3?no=378924&read_temp=20120101&section=7
심사평: http://www.moodeungilbo.co.kr/read.php3?no=378926&read_temp=20120101&section=7
소감:http://www.moodeungilbo.co.kr/read.php3?no=378925&read_temp=20120101&sectio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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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문학 / 2010/12/15 20:48
국수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녚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생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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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국수, 백석,
문학 / 2010/03/25 14:56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말 줄임표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구나 싶은 시. 말 줄임표 하나하나가 칼날이 되는 듯 혹은 망치가 되는 듯. 이런 시는 처음. 나, 킥킥.

"당신"이라는 단어를 보면 왜 이렇게 일상이 흔들리는지. 이게 다 3월의 봄바람 탓일 뿐일지. 이인칭 중에 "너"나 "그대"라는 단어보다도, 역시 "당신"이란 단어가 훨씬 좋게 들린다. "너", "그대", "당신"이란 단어는 각각 다른 거리감을 주는 탓에.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당신"은 굳이 말하자면 "너"나 "그대" 사이 어딘가에 놓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너"는 너무 직접적이고(일상 대화체 느낌), "그대"는 너무 먼 느낌이면서 추상적인 느낌을 주지만(철학이나 인생관 내-음새, 그래서 언제든 대체할 수 있다는), "당신"은, 바로 내 눈앞에, 혹은 내 근처,에 있다는, 그런 강한 존재감과 구체적인 감각을 주는 듯, 그러나 입을 열고 말하는 순간 한편으로는 어딘가 쓸쓸해지는 느낌.

나는 이인칭이 너무 좋아서, 이인칭이 없으면 삼인칭의 세계로 나가지 못 하겠다. 이건 어찌보면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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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문학 / 2010/03/08 22:54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_백석,「북방에서-정현웅에게」中
 
이 부분을 두고 백석 연구자들 사이에 해석이 분분했다고 했다. '민족주의' 국문학자들은 3행, 즉 "숭가리를"에 마침표를 찍어서 1행의 "떠났다"를 서술어로 간주했다. 시의 화자는 비록 떠났지만, 숙신이나 여진, 요, 금 같은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민족사'의 일부인 부여와 발해를 "배반하지"는 않았으니 백석을 '민족문학사'의 일부로 넣으려는 학자들로서는 그게 훨씬 편이로웠을테다. 화자가 "배반"한 것은 고작 "범과 사슴과 너구리"에 지나지 않으니까.
 
지금 읽고 있는 백석 연구자의 해석은 이보다 더 한걸음 나아간다. 단지 추정되었을 뿐인 유사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면서 '나'를 무려 고구려와 동일시한다. 잠시 아연해지고.. 아 어떻게 이 시를 그런식으로.. 부여까진 그렇다 쳐도 발해, 여진, 요, 금은 어쩌고? 그런 역사학적 해석을 뛰어 넘는 훨씬 아름다운 시인데.. 책 전반이 다 재밌다가 마지막 장에서 삐끗해버렸다.
 
한국을 무려 반만년 역사로 보려는 국가민족주의적 국사학의 움직임탓에, 한국에서 근대 이전의 한반도 역사를 말하는 건 과장해서 말하면 바보가 되어버리는 지름길이 되어버렸다. 모든 역사 서술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국에서, 아니 동북아에 있어 통용되는 상식은 그렇지 않나?
 
물론 이건 비단 한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고작 스물 세살에 걸출한 논문을 썼지만, 네이션의 산물인 '사적 언어학'이 태동하던 프랑스에서의 교수자리를 고사해버리고, '중립국'인 스위스의 작은 대학교에서 평생 책 한권 제대로 내지 않았던 소쉬르를 생각해보면. 소쉬르가 남긴 강의에는 네이션 언어학에 대한 경계심이 녹아 들어있다고 했다.

백석이 지금 한국에 살았다면 진작에 "배반하고" "떠났"을거라고. 백석의 저 시는 단지 모든 유배자/유랑자들의,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노래로 바쳐져야 해.

시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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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백석, , 역사
문학 / 2009/08/15 00:16

공지영 씨에 대한 남성 작가와 비평가들의 불만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공개적으로(언론지면에서, 그것도 좀 의식있다는 <한겨레>에서 말이다) 공지영 씨의 소설을 씹으면서 "소녀적 감수성", "조숙한 여자아이 수준의 인식", "고집스런 어린아이의 투정", "미성숙한 자아", "신파", "감상의 과잉 분출", "자의식의 과잉" 운운하며 그녀를 폄하하던 그 비평가들의 수준은 도대체 뭐라 평해야 좋을지. 잘 나가는 작가에 대한, 그리고 '작가'라는 집단에 대해 괜한 열등감을 느끼기 쉬운 비평가들의 일상적인 질투라고 생각하기엔, 사실 너무 마초적이고 저열하기 짝이 없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뭐라 반박하자면 내가 한없이 더러워지고 꼴 사나워지는 것 같고, 내 수준도 한없이 떨어지는 것 같게 만드는 사람들.

그런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남성 작가와 비평가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밖에 없는 소설을 오늘 단숨에 읽었다. 신작 <도가니>. 공지영 씨의 소설이 너무 잘 읽히는게 장점이자 불만이라던 남성 작가ㅡ예전에도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얼마 전에 뻘소리로 9회말 투아웃 만루 상황에서 아웃성 파울을 때려 버려서 이제는 절대 좋아할 수 없게 된ㅡ의 평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달까(물론 그 작가는 저 위에 비평가들처럼 공지영 씨를 싫어하는게 분명하게 느껴졌지만;).

어쨌든 <도가니>를 쓰기 위해 취재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또 한 포털에 연재를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글을 뱉었어야 했을 공지영 씨가 (주제 넘게도)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스스로 작가의 글에 밝히고 있듯, "나답지 않게 자주 아팠고, 초교, 재교를 보고 나서 한번씩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열에 들떠 며칠씩 누워 있어야 했"다는 말이 너무 와닿았기 때문이다(이해란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 말일 수밖에 없는지!). 소설의 내용에도 그렇다. 아니다, 와닿았다기보다는, 나도 그리된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아니, 아니,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현할 언어가 없다. 이 순간, 언어가 터무니 없이 빈한해진다. 기억의 질서와 담론의 질서에 속하지 않는 것에게 말을 걸어야 할 때, 근본적으로 빛의 세계를 지향하는 언어가 밤을 만나면서 완전히 말소되는 순간, 전시(展示)를 거부하는 모든 것들을 만나는 찰나, 더 나아가 압도적인 말과 권력의 폭력이 갑자기 체감될 때의 그 먹먹한 느낌.

'그런 것'에 대해 예민하게 감응할 수 있는 생생한 촉수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을 말로 옮기려 드는 사람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언어가 무의식을 만들고 실재(계)를 만든다면, 필경 언어는 폭력이고 억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것'을 말하려면 다른 외피를 써야만 한다. 정희진 씨의 석사 논문(<성폭력을 다시 쓴다>라는 이름의 단행본으로 출간된)처럼 사회과학 논문['객관'을 위장한 건조한 기술(description)]의 형식을 갖든, 아니면 <도가니>처럼 몇 가지 충격 완화장치를 도입하든지. 하지만 어쨌든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아픈 것은 어디 가는게 아니다.

줄이면서 <도가니>에서 아쉬운 점을 굳이 찾자면, 사실 이 작품에 도입된 충격 완화장치일지도 모르겠다. 정희진 씨의 책이 정말 읽기 힘든 것에 반해(필력 있는 정희진 씨의 글인데도!) 상대적으로 easygoing하기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건 내게는 어쩜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서는 '안전한'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해야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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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2008/11/24 20:44

사랑의 변주곡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 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3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 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ㅡ불란서 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의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 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 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이 아닐 거다

/김수영 1967. 2. 15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 의심할 거다! / 복사씨와 살구씨가 /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위에서 김수영 시인이 말한, '그 날'이 올까?, 했던 의구심을 접어두고, '그 날'이 지금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던, 지난 날. "눈을 떴다 감는 기술ㅡ불란서 혁명의 기술 / 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을 알 수도 있지 않을까, 했던 지난 날..

그냥 '지난 날'이라고만 추억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참 싫은(혐오스럽기도 한) 요즘..


정말, 당최 내가 어찌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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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tort Brecht


Original Poem in German

Morgens und abends zu lesen

Der, den ich liebe
Hat mir gesagt
Daß er mich braucht.

Darum
Gebe ich auf mich acht
Sehe auf meinen Weg und
Fürchte von jedem Regentropfen
Daß er mich erschlagen könnte.


Translation in English

To read in the morning and at night

My love
Has told me
That he needs me.

That's why
I take good care of myself
Watch out where I'm going and
Fear that any drop of rain
Might kill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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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림자가 없다 -김수영  (0) 200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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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문학 / 2008/02/21 23:00
연기(煙氣)는 누구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해발 이천육백 척의 고지에서
지렁이같이 꿈틀거리는 바닷바람이 무섭다고
구름을 향하여 도망하는 놈
숫자를 무시하고 사는지
이미 헤아릴 수 없이 오래된 연기

자의식에 지친 내가 너를
막상 좋아한다손 치더라도
네가 나에게 보이고 있는 시간이란
네가 달아나는 시간밖에는 없다

평화와 조화를 원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선수(選手)
백화가 만발한 언덕 저편에
부처의 심사(心思) 같은 굴뚝이 허옇고
그 위에서 내뿜는 연기는
얼핏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연기의 정체는 없어지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필 꽃밭 넘어서
짓궂게 짓궂게 없어져 보려는
심술맞은 연기도 있는 것이다


<1955.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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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커크 더글러스나 리처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요릿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
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戰線)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전선은 됭케르크도 노르망디도 연희고지도 아니다
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초토작전이나
「건 힐의 혈투」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환담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 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수업을 할 때도 퇴근시에도
사이렌 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그림자가 없다

하…… 그렇다……
하…… 그렇지……
아암 그렇구말구…… 그렇지 그래……
응응…… 응…… 뭐?
아 그래…… 그래 그래.


<1960.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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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김수영,
문학 / 2008/02/10 20:45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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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2007/12/09 12:02
사랑의 변주곡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는
열렬하다
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이 아닐 거다

<196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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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김수영,
문학 / 2007/10/24 22:22

지금은 Oscar Wilde의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를 보고 있다. 금요일에 <영미희곡> 시험이 있거든. 읽다 보니 문득 이 희극에서, 대체 왜 하필? 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사가 눈에 띈다.

Jack : [...] Hallo! Why all these cups? Why cucumber sandwiches? Why such reckless extravagance in one so young? Who is coming to tea?
: [...]이봐! 이 컵들을 어디에 쓰려고? 웬 오이 샌드위치? 새파랗게 젊은 인간이 왜 이렇게 생각없이 낭비를 하나? 누가 차라도 마시러 오나?

대체 여기서 왜 하필 "오이 샌드위치 cucumber sandwich"가 등장하는지 무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게 왜 '낭비extravagance'랑 연결이 되는지. 다른 비싼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왜 오이 샌드위치보고 비싸다 그런건지? 도대체 왜 Aunt Augusta는 일부러 Algernon보고 오이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으라고 했을까? 여기서 말하는 오이가 우리가 아는 그 오이가 아닌가? 유기농이라서 비싼가? 오스카 와일드가 살 시절에는 오이가 '금 값'이기라도 했나? 오이는 귀족들이나 먹는 채소? 아니면 이것도 설마 오스카 와일드 식의 블랙 유머?!?! 헉

공부를 하기 싫으면, 공부를 하면서도 이렇게 괜히 이상한게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이런게 있을리 없지 싶기도 했지만, 혹시나 해서 검색을 좀 해봤더니... 헉, 있다!

요약: 오이 샌드위치는 전통적으로 영국의 티타임에 제공되었던 음식이라고 한다. 오이 샌드위치는 매우 적은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배가 차지 않는("not filling") 음식으로 간주되었다. 반면 당시 노동자 계급은 배가 차는("filling"),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즐겨 섭취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이 샌드위치는 대체로 상류 계급이, 노동자 계급과 '구별 짓기'를 위한 음식 소비 취향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문학 작품에서 오이 샌드위치는 상류층들을 경멸하는 의미에서도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출처 : http://www.xasa.com/wiki/en/wikipedia/c/cu/cucumber_sandwich.html



오오.. 그렇군. 이제 다시 읽으러 가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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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문학 / 2007/10/24 21:46

욕망하는 것은 득이 되고 또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도 득이 된다ㅡ왜냐하면 욕망은 그렇게 함으로써 증가되니까. 내 진실로 그대에게 말하느니, 나타나엘이여, 욕망의 대상의 늘 거짓될 뿐인 소유보다는 매번 욕망 그 자체가 나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느니라.

[...]

이단 중에서도 이단이던 나는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된 의견들, 극단적으로 우회하거나 서로 대립하는 생각들에 항시 마음이 끌렸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면 나는 오직 그의 남들과 다른 면 때문에 흥미를 느낄 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마음속에서 공감을 몰아내 버리기에 이르렀다. 공감이란 다만 공통된 감동의 인정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타나엘이여, 공감이 아니라ㅡ사랑이어야 한다.

행동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를 '판단'하지 말고 행동할 것. 선인지 악인지에 개의치 말고 사랑할 것.
나타나엘이여, 내 그대에게 열정을 가르쳐주리라(Nathanael, je t'enseignerais la ferveur).

평화로운 나날보다는, 나타나엘이여, 차라리 비장한 삶을 택하라. 나는 죽어서 잠드는 휴식 이외의 다른 휴식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만족시키지 못한 모든 욕망, 모든 에너지가 사후까지 살아남아서 나를 괴롭히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나는 내 속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든 것을 이 땅 위에다가 다 표현한 다음 흡족한 마음으로 더 바랄 것 없이 완전하게 '절망하여' 죽기를 '희망'한다.

공감이 아니라, 나타나엘이여, 사랑이어야 한다. 그대도 알겠지만 그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이따금 내가 슬픔, 근심, 괴로움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런 것들을 좀처럼 견디지 못하였을 것이다. 인생의 걱정은 각자에게 맡겨두라.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민음사, pp. 22-23

읽으면 계속 불쾌할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재미는 있다. 다만 주의해서 읽어야 할 텐데, 내가 보기에, 여기서 앙드레 지드가 말하는 '욕망'은 흔히 생각하는 욕망과는 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상 다른 의미를 가진다.

보통 쓰는 의미에서의 욕망desire은 대상(objet petit a)과의 관계를 말한다. 대상에 의해 촉발되고 대상을 향하는 리비도의 투사. 그러나 욕망은 엄밀한 의미에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결여'와의 관계다(요구demand 빼기 욕구need 에서 나온 차이가 욕망desire). 그러면서도 욕망을 하는 주체는 그가 실행하는 욕망을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위장하지만, 사실상 그 욕망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정확히 사회와의 관계를 이룬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즉 언제나 이 욕망은 다른 주체들 사이에서, 다른 주체 간에 서로서로 감지된 욕망 사이에서 변증법적인 관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욕망은 대타자 속에서 발생하는 '인정 투쟁'이다(라캉은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 즉 '대타자의 욕망의 욕망'이라고 언급한다).
 
지드가 말하는 사랑은 바로 그 토대 위에 서 있다. 지드는 공감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드가 말하는 공감은 정확히 그 욕망desire의 구조 안에 있다. 공감은 너와 나의 감정의 상호 인정, 그것을 통한 서로의 존재에 대한 확인과 승인을 뜻한다. 공감은 공감할 '대상'을 찾아야 성립할 수 있다. 공감은 대상을 가르고 버리고 선택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지드가 말하는 '사랑'은 욕망이 가진 순환고리를 벗어던진 것을 의미한다. "선인지 악인지에 개의치 말고 사랑할 것". 다시 말해 우리는 여기서 라캉적인 의미에서 충동drive의 윤리를 발견한다. "완전하게 절망하여 죽기를 희망"하는, 바로 그 순간. 충동에 '(대상을 향한 일직선의) 방향'이 있을리 없다. 그것은 대상이라는 목표goal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쾌락원칙을 위반하는/넘어서는 유일한 방법이다(예컨대 "죽어서 잠드는 휴식 이외의 다른 휴식을 바라지 않는다"). 물론 중요한 것은 공감을 '버리고'가 아니라는 점이다. 개념상 욕망 없이는 충동도 없으니...

새삼스럽게 이런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뭐 이런 '라캉'적인 소설이 있나 싶어서다. 이건 이 사람들이 하는 얘기랑 뭐 거의 똑같잖아!!! (내가 억지로 끌어다 맞추는건가;) 근데 난 역시 공감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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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막연하게 노동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오직 생계를 위한 직업을 찾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직업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것이 처음 찾아왔을 때는 너무 압도적이고 감당하기 힘들었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도 나는 내가 이토록 빠른 시기에 직업을 구해야 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직업과 그것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생활을 나는 언제나 경멸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한 뒤에 나는 결심을 굳혔다.

일 년이나 일 년 반 동안 두 가지나 가능하면 세 가지의 외국어를 책을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올릴 것이다. 물론 공부는 주말과 밤에 한다. 나는 생계를 위한 노동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짓은 하지 않겠지만, 노동이 삶의 수단을 제공해준다는 사실은 분명히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노동에의 집중과 성실이 '읽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연마하는 훈련이 됨을 인정하기로 했다. 노동은 삶과 함께 지속될 것이고 삶과 동시에 종말을 맞을 것이다. 나의 독서가 어떤 가시적인 성취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닌 오직 그 자체로서 목적인 것처럼 노동 또한 생계라는 원래 이외의 목적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느냐에 대해서 신경쓰지도 않을 것이고 무슨 일을 하지 못하느냐에 대해서 증오나 질투를 품지도 않을 것이다. 최대한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오직 공부에 쏟는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소박하고 낮은 수준의 경제와 단순 육체 노동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흔 살 까지는 생계를 위해서 필요한 돈을 버는 이외의 시간은 오직 혼자서 책을 읽으며 공부할 것이다. 마흔 살까지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눈 팔지 않고 공부할 것이다. 마흔 살까지 나는 오직 공부에만 미칠 것이다. 마흔 살까지의 내 삶은 언제나 내가 꿈꾸던 교통수단이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으리라. 구술언어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으리라. 스무 살, 이제 그곳으로 나는 배를 타고 떠난다. 저녁의 광장에 희미한 불이 켜지는 시간이면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책을 펼칠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도 멀리할 것이다. 사람을 만나거나 직접 대화하는 것도 피할 것이다. 한국에서 살 수 없는 읽고 싶은 책들은 외국의 출판사에서 직접 주문하고 그렇게 읽은 모든 책들에 대해서 독후감을 쓸 것이다. 그것들은 마흔 살까지 내 사적인 일지를 대신하게 되리라. 나는 술도 마시지 않고 영화관에 가거나 바닷가에 놀러가지도 않을 것이다. 결혼이나 사랑도 필요하지 않으며 어느 순간에 타인을 상대로 뭔가 아는 척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해지더라도 자신을 엄하게 꾸짖을 것이다. 내가 형편없이 미숙하고 내 목소리를 내기에는 아직도 한참 부족한 존재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언제나 내 교만을 압도해버리는, 내가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이상의 것들을 찾아서 읽으리라. 그리하여 마흔 살까지는 어떤 영감을 받더라도, 독후감 이상의 것은 쓰지 않겠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겠지만 초조해하지도 않으리라. 분명히 고독하고 틀림없이 두렵기도 하겠지만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러다 이윽고 마흔 살이 되면, 그때 나는 스스로 만든 대학을 졸업할 것이다. 그 때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선명한 존재가 되어 있을 것임을, 나는 의심하지 않겠다.

"브라보."

내 설명이 끝나자 S는 그렇게 한 마디만 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 모자를 들고 그리고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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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보고 이런 식의 느낌을 받은 것은 오정희씨 소설을 읽은 이후에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오정희씨와 배수아씨 소설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지만.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그 누구에게도 감정 이입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아무래도 저만치 거리를 두고 이 텍스트와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훔쳐볼 수 있는 것들은 이미 제한되어 있다. 이 소설의 서사 속에 어떤 고통이나 멜랑꼴리 따위가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것들에 도저히 다가갈 수 없다. 나 같은 독자가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소설이 너무나 고매하거나 위대하고 또 고귀한 빛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닐게다. 다만 이 소설의 고통은, 혹은 어떤 것은 정말 내가 인식할 수 없는, 재현할 수 없는 것 같단 느낌이다. 내가 개별의 인물들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 순간, 그 인물들은 이미 텍스트에 흉한 상처를 남기고 뛰쳐나갈 것 같다. 그럼 그건 더 이상 배수아씨의 <철수>라는 소설이 아니게 되겠지. 그렇기에 나는 이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밖에 쓸 수 없는 거겠지.

나 아파, 아파요, 라고 노골적으로 떠들어 대는 서사는 도처에 널려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도 어쩌면 이러한 '자기 연민'일 것이다. '나'-미디어인 블로그나 미니홈피들을 돌아다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마도 '나'-미디어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과 목 언저리에 각인된 (어딘가 닮은) 서로의 상처 자욱들을 확인하고, 그것들을 모아서 모든 이들이 퀭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떠돌아 다니는 한밤중의 저잣거리 속에 내던져버리며, 너도 아프구나(그렇지만 내가 더 아파), 라고, 누구에게 전달되는지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되뇌이며 돌아다니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것들은, 슬픔을 온 몸에 체현하고 돌아다니는 수많은 몸뚱아리들의 영원히 반복할 수밖에 없는ㅡ그렇게 하지 못하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리고 그 누구도 그 반복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단언할 수 없는 '자기 설명'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자기의 슬픔과 고통은 온전히 자기 것이고 따라서 자기 서사는 특별하다 생각하며, 자기는 자신의 텍스트 속에서 벌거 벗었다 착각하면서(그러니 너도 벗어! 라고 말하며), 그러나 이미 기표로 둘러쌓인 두터운 외투와 가면을 걸친 채 나 몰라라 하며, 자기의 나르시스적인 독백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면서, 끊임없이 같은 서사를 반복하고 또 생산하는 그 욕망의 지리멸렬한 쳇바퀴들. 그것의 소비, 클리셰, 그리고 카타르시스.

만약 이 텍스트가 그런 구조를 택했다면, 충분히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카타르시스적인 배설이나 만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화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고통'은 아닌지도 모른다. 누구든 무엇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니까. 주인공의 "늑대의 눈" 속에 있는 그 욕망과 고통과 슬픔의 무게들에 대해서는 (적어도 나는) 언어화 할 수 없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하여 나는 배수아씨를 그리고 그녀의 소설을 굳이 특권화 하고 싶진 않다(그러나 어떤 의미에선 '숭고'로 의미화 하고 있기도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소설을 본 이후에 나는 혼란스럽지도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오늘 하루 끊임없이 어디로 튈지 몰라 들끓었던 마음은, 갑작스럽게 편하게 정돈되었다. 어쩌면 배수아씨의 소설을 접하게 된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읽지 않은 배수아씨의 다른 소설이 어딘가 무서워졌음도 말해두고 싶다.

겨우 100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그래서 이불 위에 누워서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끊이지 않고 다 읽어 버릴 수 있었던 이 소설을, 나는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더 설명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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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


남의집 마당에 와서 마음을 쉬다

매일같이 마시는 술이며 모욕이며
보기싫은 나의 얼굴이며
다 잊어버리고
돈 없는 나는 남의집 마당에 와서
비로소 마음을 쉬다

잣나무 전나무 집뽕나무 상나무
연못 흰 바위
이러한 것들이 나를 속이는가
어두운 그늘 밑에 드나드는 쥐새끼들

마음을 쉰다는 것이 남에게도 나에게도
속임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쉰다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면서)
쉬어야 하는 설움이여

멀리서 산이 보이고
개울 대신 실가락처럼 먼지나는
군용로가 보이는
고요한 마당 우에서
나는 나를 속이고 歷史까지 속이고
구태여 낯익은 하늘을 보지 않고
구렁이같이 태연하게 앉아서
마음을 쉬다

마당은 주인의 마음이 숨어있지 않은 것처럼 安穩한데
나 역시 이 마당에 무슨 원한이 있겠느냐
비록 내가 자란 터전같이 호화로운
꿈을 꾸는 마당이라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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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김수영,
문학 / 2007/06/15 22:23

Lady Lazarus

Sylvia Plath



I have done it again.
One year in every ten
I manage it-----

A sort of walking miracle, my skin
Bright as a Nazi lampshade,
My right foot

A paperweight,
My featureless, fine
Jew linen.

Peel off the napkin
O my enemy.
Do I terri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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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se, the eye pits, the full set of teeth?
The sour breath
Will vanish in a day.

Soon, soon the flesh
The grave cave ate will be
At home on me

And I a smiling woman.
I am only thirty.
And like the cat I have nine times to die.

This is Number Three.
What a trash
To annihilate each decade.

What a million filaments.
The Peanut-crunching crowd
Shoves in to see

Them unwrap me hand and foot ------
The big strip tease.
Gentleman , ladies

These are my hands
사용자 삽입 이미지

My knees.
I may be skin and bone,

Nevertheless, I am the same, identical woman.
The first time it happened I was ten.
It was an accident.

The second time I meant
To last it out and not come back at all.
I rocked shut

As a seashell.
They had to call and call
And pick the worms off me like sticky pearls.

Dying
Is an art, like everything else.
I do it exceptionally well.

I do it so it feels like hell.
I do it so it feels real.
I guess you could say I've a call.

It's easy enough to do it in a cell.
It's easy enough to do it and stay put.
It's the theatrical

Comeback in broad day
To the same place, the same face, the same brute
Amused shout:

사용자 삽입 이미지
'
A miracle!'
That knocks me out.
There is a charge

For the eyeing my scars, there is a charge
For the hearing of my heart---
It really goes.

And there is a charge, a very large charge
For a word or a touch
Or a bit of blood

Or a piece of my hair on my clothes.
So, so, Herr Doktor.
So, Herr Enemy.

I am your opus,
I am your valuable,
The pure gold baby

That melts to a shriek.
I turn and burn.
Do not think I underestimate your great concern.

Ash, ash---
사용자 삽입 이미지

You poke and stir.
Flesh, bone, there is nothing there----

A cake of soap,
A wedding ring,
A gold filling.

Herr God, Herr Lucifer
Beware
Beware.

Out of the ash
I rise with my red hair
And I eat men like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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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lvia Plath, 1932-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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