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뭔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쓰는 때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감추기 위해서도 쓴다. 이만큼 이해했거나 이만큼 할말이 많았다고 드러내는 글이 있는 반면, 이해하지 못한 것과 할말이 없는 사실에 대해서 감추기 위해서도 쓴다. 후자는 대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또 대학원 과제는 늘 솔직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왠만해서는 그렇게 쓰지 않는다. 나는 대놓고 드러내는 글이 늘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에둘러가고 최대한 피해가며 최대한 포장한다. 왜냐면 여기에도 그렇게 좋은 것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좋은 것에 대해서는 얼마든 좋게 쓸 수 있겠으나 나쁜 것에 대해서는 나쁘게 쓸 수 없다. 안타까운 딜레마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게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근래 내가 쓰고 읽힌 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을 동시에 얻는다. 긍정적인 반응은 요약컨대 그런 것이다. 뭔가 있어 뵌다, 화려하다, 공을 많이 들였다, 뭐 그런 것. 부정적인 반응은 요약컨대 그런 것이다. 핵심을 안찌른다, 미사여구, 겉멋.. 뭐 그런 것. 이런 말들이 정곡을 찌르는 것이 있기 때문에 썩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완전히 바꿀 생각은 없다. 어쨌든간에 글은 어떤 질감으로든 최대한 있어 보여야 한다고 믿으니까. 그래서 나는 글이 생각을 담는 틀이라는 믿음이 싫다. 글은 다만 글일 뿐이다. 글에는 별 다른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글을 양식화하는데 공을 들일 뿐이다. 뭐 나중에 논문은 논문답게 써야겠지만.
그런데 위에 쓴 부분에서도 읽어낼 사람은 읽어내겠지만 나도 인정욕구에 미친 사람이란게 드러나서 계속 실소가 나온다. 나는 한 줌의 선의와 호의에도 쉽게 감동하고 넘어간다. 그걸로 살아가는 이상 결핍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아는데도, 무엇보다 그게 끔찍하게 싫은데도, 그렇게 몸이 반응한다. 결핍이 결핍으로서 에너지가 되는건 삶을 통째로 갉아 먹는건데도.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흡연모드로 바뀌었고 지난 일주일간 내내 태운 연기로 폐와 혀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숨이 쉽게 가쁘고 혀가 까끌까끌해졌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당분간 피우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건강문제가 아니라 그냥 마음문제다.
아침저녁으로는 몹시 쌀쌀하고 한동안 우울했던 것은 며칠 사이 많이 없어졌다. 무엇을 잃어버렸나, 아직도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 남아 있기는 하나 생각하다보니 겉잡을 수 없이 쓸쓸해졌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좋아할 수 있는 건 사람일 뿐이구나 싶어서 사람을 조금 더 좋아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래도 될만큼 충분히 안전해보이는 사람들을 몇몇 만났다. 이상한 데에 마음 빼앗기는 일도 잦아졌지만, 한편 이상한 데에 마음 쏟는 일도 비례해서 줄어들었다. 이게 조금씩 현명해지는 과정이라 믿는다. 전자는 새로운 것을, 후자는 옛 것을 향한다. 나는 그리 많은 사람에 마음을 쓸 수 없는 소인배. 이 한계 안에서 경제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성균관스캔들 진짜 좋다 ㅠ
박민영, 안내상 둘이 최고 ㅠ 박민영이 제일 좋을 때는 건반! 하고서 밥 맛있게 먹을 때 ㅋㅋ
오랜만에 고향 집엘 왔다. 역시나 고속도로는 꽉차 있었고, 평소보다 2배나 걸리는 시간이 들었다. 같이 살던 강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방에 처박힌 지금은 내 방이었던 이 공간이 너무 낯설다. 집에만 오면 생기는 알러지 반응이 역시나 시작되었다. 코가 막히고 재채기가 나오고 머리가 웅웅 울린다. <성균관 스캔들> 7화를 구해 두었다.
서울은 넓고 또 넓고 돈만 있다면 먹고 마실데도 많은데, 왜 이렇게 갈 곳이 없는지 모르겠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주변으로는 당연히 아무 것도 없고, 명동이니 강남이니 하는데도 꾸준히 싫다. 그러다보니 결국 발길을 돌리게 되는 것은 홍대이다. 홍대는 특별하다기 보다는 아주 무난한 동네다. 어제도 그제도 약속이 모두 홍대였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이제 자연스럽게 홍대가 디폴트가 되었다. 옛날엔 자주 약속 장소가 되었던 녹두나 신림, 입구역 근방에서 만나는 건, 조금 궁상스럽게 느껴질 때도 많아졌다. 왠지 이 근처를 약속 장소로 잡으면 미안한 감정마저 든다. 나는 홍대 문화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홍대 피플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언제나 갈 수밖에 없다. 왜 그럴까? 이렇게도 장소가 없는거야?
어제는 오랜만에 Y와 독대했다. 내가 조금만 더 컨디션이 좋았어야 했는데.. 여하튼 가장 일상의 동기가 된 부분만 기술하자면, 우리는 어쨌든 석사 과정에 들어섰고 앞으로 논문을 쓰게 될텐데, 여기에 쏟아 부은 노력들을 석사 논문으로만 내보내고 창피해하는 것보다는, 이 결과를 다른 것들로 전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다. 일본에서 만화 원작이 나오면 영화도 만들고 애니도 만들고 드라마도 만들고 캐릭터 사업도 벌이듯이. 석사 논문을 바탕으로 출판을 한다거나 하는 것. 저자가 되는 것에 대한 욕심, 그래서 최대한 널리 읽히고 독자들과 영향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 그러려면 어떻게 '핫'한 아이템을 찾아서 논문 작업을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버리는 것. 물론 이런 것들이 굉장히 야심차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굉장히 소박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쏟아 부은 노력에 대해, 나 스스로가 나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일 뿐이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얼마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술을 마시게 되면 사실 우리는 술 자체보다는, 어떤 계기의 폭발을 기다리게 된다. 그럴 때 단어들은 질서 정연한 소우주를 위해 폭발을 시작하고,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의 우주를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는 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혹시나 서로 눈치보며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누군가가 꼬인 혀를 빌어 폭력적으로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혹시나 마음이 통하지는 않을까, 혹시나 왠지 싫은 사람이 싫은 이유를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까, 혹시나 무슨 조짐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서, 혹시나 싶어서, 혹시나.
Rey Chow, Ethics after Idealism―Theory-Culture-Ethnicity-Reading, Indiana Univ Press, 1998, pp.XIII~XVI
Introduction
대학원생이었던 이래로, 나는 비판이론에 열린 태도를 지닌 학과와 과정에 속해있었다. 이러한 사실의 이점이 있다면,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 “이론에 대한 저항”을 하면서 보는 눈을 잃어가는 것과는 달리, 일상적인 차원에서 “이론”의 폭넓은 역사적 함의를 고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론”이라고 말할 때, 나는 지금도 대학원생들이 배우고 있는 플라톤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포괄적으로 발전해 왔던 철학 그리고 해석학, 문예비평 및 해석의 전통이라는 의미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나는 1960년대 이래로 영미권 학계를 급진적으로 만들어온 해석 방식을 대표하는, 일반적으로 “후기구조주의”나 “해체”라고 불리는 용어를 의미하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이러한 용어들에 특정한 뉘앙스나 정확한 의미를 두지 않을 것이다. 대신 지난 몇 십 년간의 지적작업에 일반적으로 영향을 미쳐왔던 “이론”을 기술하기 위해, 이러한 용어들을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어왔던 방식으로 축약해서 사용할 것이다.
이렇게 제한된 의미에서 이해되는 “이론”의 명백한 성과가 있다면, 그것은 지시성(referentiality)을 근본적으로 문제 삼았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에게 있어, 이러한 문제화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일반 언어학 강의(1916)>에서 언어학적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를 상대화했던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소쉬르의 구조 언어학의 전통을 따르면서 고정된 기원을 유보하고 불안정하게 만들어왔던 이러한 일반적인 추세는, 부분적으로 롤랑 바르트와 자크 라캉,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같은 철학자들의 작업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또한 이러한 추세는 “실재”(언어, 텍스트, 이야기, 저자, 자아, 정체성, 커뮤니티 등 무엇으로 실재를 정의하든 상관없이)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내파했던 작업을 관통하며, 이 작업은 최근에도 여러 방식의 보편주의적 비평(젠더, 인종, 계급, 성적 선호 등등에 대한 탐구를 거쳐)으로부터 많은 반향을 얻었다. 지시성을 의미작용과 의미 사이의 투명성을 가정하는 것으로, 혹은 조금 더 잘 정의하자면 재현의 문제에 있어서 끈질기게 [투명한] 반영성(reflectionism)을 강조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이러한 지시성 문제는 실질적으로 완전히 문제시되거나 중지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엄밀하게는 사라지지는 않았다. 실증적인 것(the positivistic)의 뼈아픈 고역으로 채워진 이론적 거부반응으로서, 지시성은 대신 “문화연구”라 불리는 영역으로 추방되었다.
최근 들어 지식인 간의 논쟁에서 팽배한 “문화”라는 개념의 두 가지 유형은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기술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개념은 인류학에서 유래했는데, 일반적으로 “생활세계” 혹은 “삶의 방식”을 일컫는데 사용된다. 다른 하나는 “문명화된” 삶의 세련된 성취의 총합으로서 더 엄밀하게 정의되는데, 이는 주로 문예이론, 예술이론, 클래식 음악 등 이른바 “고급문화”를 구성하는 것과 흔히 연결된다. “문화” 개념의 첫 번째 정의는 아주 근본적인 것이다. 이 관점은 문화를 공통의 신념, 태도, 행동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며, 또 모든 집단의 인류에게 기초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두 번째 정의는, 자주 지적되고 있듯이, 이데올로기적이고 배타적이며, 그 자체로 특정한 계급이해관계의 헤게모니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개념은 각각 다른 종류의 문화정치학을 만들기 위해 각자가 강조하고 있는 바를 옮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이들이 “문화”를 소유한다고 간주하여 잠재적으로 민주적일 수 있는 개념은, 모든 문화가 엄격하게 “특수성” 안에서만 이해되어야 한다는 보수적인 문화적 관점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거꾸로 문화가 “고급문화”라는 개념은 엘리트주의적일 수는 있지만, 모든 나라에 존재하는 “세련된 성취”라는 생각을 가능하게 하며, 그리하여 “문화”는 역설적으로 지역적이라기보다는 비교 문화적 현상으로서 평등이라는 개념으로 보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 개념은 오늘날 실천되고 있는 문화연구의 추진력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러한 추진력은 “문화”를 미완성의 과정이자 끝없이 해체되고 재구성되어야 하는 사회관계의 별자리―절대 소박한 의미가 아니다―라고 보는 인식에서 유래한다. 몇몇 비평가들은 문화연구가 현대적이고 동시대적이기에 진지한 지적 관심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다고 간주되는 연구대상에 습관적으로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문화 자체의 미완성적인 특성과 정확하게 관련된다. 끝없이 열린 역사를 “지금”이라는 말보다 더 잘 상징하는 시간의 순간이 있는가? 또 끝없이 열린 평가에 대해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넘겨진 것들보다 더 잘 드러내는 대상이 있는가? 문화의 미완성이라는 특성은 일반적으로 형이상학적이거나 존재론적인 의미작용의 “모호성”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특성은 국제 노동 분업에 내재한 엄청난 불평등의 지속적인 효과 때문에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평등은 사회적 재현과 정치적 권력에 대한 접근의 문제, 또 문화자본의 소유와 교환 그리고 강화의 문제에도 내재해 있다. 탈식민주의 시대와 탈냉전 시대는, 부분적으로 후기구조주의의 유산에서 유래했던 보편적 가치에 대한 탐구를 사회주의적 가치의 외관에 천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필수적으로 취해야 하는 정치적 행동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엄청난 불평등은 이 시기를 거치면서도 소실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해왔다.
그렇다면 문화연구는 문화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고 이해하면서, 기호의 해체와 함께 출발한 문화상대주의의 단순한 연속이고 확장에 지나지 않을까? 문화연구와 비판이론의 관계는 무엇인가?
만약 “고급문화” 대 “생활세계”라는 문화의 공식화를 따른다면, 최근 몇 십 년간 학계의 실천은 두 개의 학풍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를 “문학(인문학의 패러다임으로서, 인간을 언어의 주체로 간주하는)”과 “인류학(사회과학의 패러다임으로서, 인간을 문화적 환경의 대상이자 생산물로 간주하는)”으로 부르자. 또 최근에는 “비판이론”과 “문화연구” 사이에 유사한 분화가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러한 최근의 분화는 내가 뒤에 자세히 설명할 측면에서 볼 때, 문화에 대한 연구의 잠재적인 인종주의화를 의미한다.
이를 상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질문을 던져보자. “비판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문화연구를 하찮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화연구가 “이론적 엄격함”을 결여했다는 비판을 차치하더라도, 흔히 들을 수 있는 강력한 이유는 문화연구 실천가들이 “문화”를 물화(reify)한다는 것이다. 즉 문화연구는 문화를 유기적인 총체로 간주하면서, 오랜 전통의 연속주의적(continuist) 사유에 속해있는 역사주의와 경험주의, 실증주의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다른 두 “가치체계(regimes of value)”, 즉 이론적으로 늘 깨어있음을 상징하는 한 쪽 체계와 문화적 물화(reification)를 상징하는 다른 한 쪽 체계의 통약불가능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가? 만약 이론을 뺀 문화에 대한 표현이 있을 수 없다면, 문화를 뺀 이론에 대한 표현은 가능할까? 나는 “문화”가 무엇이어야 한다고 느끼는 바로 그 감정은 언제나 문화연구에 대한 “이론적” 거부라는 측면에서 작동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나를 포함해 작업이 “너무 이론적”이라고 비판받아온 이론가들이 영리하게 반박했던 것을 빌자면, “이론”에 대해서 가장 잔인한 비평가라 할지라도 이미 언제나 특정한 이론적 위치에서 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화”와 “문화연구”에 대해 가장 잔인하게 말하는 비평가들 역시도 특정한 문화적 위치에서, 또 특정한 문화적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해, 문화는 “비판연구”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는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특정한 형식으로 작동하고 있는데, 이는 영미권이나 불어, 독어권의 정전 텍스트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명백하게 드러난다(나는 그러한 특정 형식이 무엇인지 곧 상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오로지 비판이론에만 헌신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문화연구는 흔히 문화적 추상화의 정반대로 간주된다. 이들에게 문화연구는 상스러운 것과 단순한 것들의 쓰레기장이자, 투명하고 이해가능하며 접근도 쉽게 가능한 현상들의 하수처리장이다. 게다가 문화연구의 대상이 자주 유색인종에 연관된다는 사실 때문에, 문화연구는 “우리”라기보다는 “그들”과 동일시되어왔다. 일반적으로 “비판이론”이 사용될 때에도 연구주제가 비서구와 관련되거나 이론이 비서구의 비평가들에 의해 사용되면, 연구는 자동적으로 품격이 떨어지는 “문화연구”의 자리로 “추락”하게 된다. 후기구조주의 학자들이 이러한 위계적 분화의 조건 위에 있기 때문에, “지시성”을 문제화했음에도 지시성이 간단히 사라질 수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는 “지시성”이 “문화”에 대한 연구로 추방당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는 의미적 투명성을 가졌으며 따라서 지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현상이 내가 언급한 방식처럼 이야기되지는 않지만,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비판이론”으로 가는 노동력과 “문화이론”으로 가는 노동력을 구별하는 계급차이(class distinction)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계급은 사회계층의 전통적인 경제 지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 프로우(John Frow)가 지식의 소유와 사용의 관점에서 기술했던 용법을 말하는 것이다. 프로우에 따르자면 지식인들은 곧 “지식 계급”이다. 지식의 습득을 통해, 특정한 사회화 과정이 시작된다. 예컨대 특정한 스타일로 쓰는 것이나 특정한 텍스트의 세부사항에 주목하는 것, 특정한 유형의 매력적인 문학적 비유를 찾는 것은 어떤 습관을 수양하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 또한 이는 전문적 공동체의 특정한 영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자격증을 발급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지식”계급에 대한 프로우의 개념에 더해 지식계급 자체에 계급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계급차이는 “비판이론”과 “문화연구”의 관계에서 논쟁을 유발해왔다. 이러한 점 때문에 문화연구 실천가들이 비판연구자들만큼이나 주의 깊게 읽고 열심히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학계의 낮은 계급지층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 지식을 생산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이유이다. “문화자본”은 단순히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비판이론”에 유창한 상위계급의 감각과 실천, 습관의 문제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노동 종류의 분화 또 백인 문화와 비백인 문화 사이의 분화를 중첩시킬 때, “지식계급”에 내재한 계급차이의 공식화는 급진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요컨대 비판이론과 문화계급의 분화는 지식노동자들에 대한 제도적인 인종주의화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인종주의화는 귀족정치라는 결과와 “지식”의 생산과 배포의 관점에서 종속적인 계급을 낳게 될 것이다.
학부 때 그나마 좋아했던 선생님들은 모두 문학 교수였다. 한 분은 영국문학, 특히 시에 관심을 가졌고 다른 한 분은 미국문학, 특히 소설에 관심을 가졌다. 그 중 영국문학 전공교수가 이번 학기에 퇴임하신다고 했다. 정년기념 강연회를 한다는데... 영어교육과에 대한 애정은 털끝 만큼도 없지만 이 강연회는 가봐야 하나 싶어. 정년기념 강연회라니 이렇게 애틋한 이름이 있을 수 있나.
그러나 내 경험상, 영어교육과라는 학과에서 문학의 지위는 늘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에 문학전공으로 들어간 친구로부터는 아마 이 선생님들이 퇴임하시고나면 문학교수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거기엔 어떤 의외성도 없었고 차라리 자연스러움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되어야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문학이란 것은 고작 그런 지위인 것이다.
물론 문학이란 것이 특권일 필요는 없다. 즉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졸업한 영어교육과처럼 실용적인 학풍을 가진 학과에서라면, 문학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것일 뿐이다.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에서 냉소적으로 묘사되었던 바 영문학과에서는 문학이 여전히 가치 있을 수 있겠지만, 영어교육과에서는 교양으로서의 가치도 거의 없다. 문학 수업을 좋아하는 이들은 매우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 영어 공교육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 어느 교과서 텍스트에서도 문학을 쓰지는 않는다. 그러니 부족한 영어학, 영어교육방법론 교수를 초빙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교과서 전문가를 초빙하거나 수업 전문가를 초빙해서 학생들 임용고사 준비를 시키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영어교육과에서는 착하디 착한 얼굴을 한 영어 '전문가'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난 내 출신을 언제고까지 부정하게 될 것이다. 내가 거기를 어떻게 졸업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2.
갈수록 확신은 떨어져가고 그 사람의 이름만 보면 기운이 빠진다. 시작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러는 것인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 계속 가고는 있지만, 이런 무기력한 상태로 그 사람을 봐야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인가 싶다. 여전히 올바름이나 윤리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나는, 실제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면서 이렇게 전전긍긍하기만 한다. 그래서 오늘 했어야 할 전화를 망설이다가 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면대면 상황에서 이야기 드려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비겁한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이해관계가 생긴다는 것이 이렇게 비참한 일인 줄은 몰랐다. 사실 누구라도 이해관계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거기에 속하는 것을 애써 부정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피터팬 컴플렉스라고, 모라토리엄이라고 욕해도 좋다. 그러나 나는 이제 완전히 그 논리에 포섭되어 가는 느낌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오늘도 욕과 한숨으로 하루를 보냈다.
3.
그것에 대해서 나는 "찌질하다"고 표현했고, 그것은 한참이나 언어를 고르고 골라 추상화 한 결과물이었다. 경험의 농축과정, 그 결과물이 "찌질하다"라는 것일 줄은 나도 잘 몰랐다. 그건 내가 가장 거부하고 싶었던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입 밖으로 나와버린 말은, 앞으로 그것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벤야민이 말했듯 말은 생각을 정복하기 때문이다(벤야민에 따르면 글은 그 말을 지배한다. 그러나 나는 내 말에 거스르는 글을 쓸 마음이 없다). 물론 선생님은 "아름답다"라고 말씀했지만, 아름다움이란 결점을 사랑하는 것이어서, 그 결점이 태도를 바꾸어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순간, 그 잔여물에 매달리는 건 최소한의 존엄마저 포기하는 일이 된다. 나의 오랜 집착은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가진 환상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었을 뿐이다. 역사는 처음엔 비극으로, 다음엔 희극으로 온다고 했던가. 그러나 세번째를 위한 드라마는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세번째는 그냥 ridiculous하기 때문 아닐까). 환멸의 영토에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한 느낌이고, 마침내 지쳐버린 것 같다. 지쳐서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다. 지금 당장은 구토하고 싶고, 그러고나면 이제는 연애나 하고 싶다. 여기까지 오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리석었던 시간들에 안녕과 애도를.
4.
이야기에 굶주린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옴니버스 영화 <어떤 방문>의 첫 번째 단편을 보면, 할아버지를 여읜 재일조선인(?)이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남은 족자를 유언에 따라 돌려주기 위해 한 일본 가정에 방문한다. 할아버지는 이 집주인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었고, 그 보답으로 족자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집주인은 방문한 이에게, 이전에 할아버지에게 받았던 부채를 돌려준다. 이 부채의 내력이 있냐고 물으면서 말이다. 내력이라니...! 사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사물에 깃든 이야기를 점점 더 들을 수 없게 된 요즘에는 '내력'이라는 말이 갖는 아우라가 있는 것 같다. 비단 사물 뿐 아니라, 장소에 깃든 이야기 조차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듣기'보다는 기록된 것을 읽어야 하니 말이다. 소설을 '읽는' 것도 조금 지친 것 같다. 꿈 이야기도 좋고 옛날 이야기도 좋으니, 이야기나 좀 듣고 싶어.
5. Must-see 강연!
초청 강연자: 타니 바로우(Tani Barlow) 교수
강연 제목: New Trends in the Debates in Colonial Modernity and Critical Asian Studies
(식민지 근대성 논쟁의 새로운 흐름과 비판 동아시아학)
*일시: 2010. 9. 15 (수) 오후 2:00 ~오후 6:00
*장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강당
달에서 흘러 내리는 빛은 한낮의 우리 삶이 벌어지는 무대를 비추는 것이 아니다. 달빛이 의심스럽게 빛을 던지는 구역은 지구가 아니라 지구의 반대편, 혹은 지구의 부속지인 것처럼 보인다. 그곳은 더 이상 달이라는 위성을 가진 지구가 아니다. 스스로 달의 위성으로 변한 지구이다. 그 땅의 넓은 가슴은ㅡ그 가슴이 호흡할 시간이었는데ㅡ움직이지 않았다. 마침내 삼라만상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대낮에 빼앗긴 긴 베일을 다시 착용할 수 있게 된다. 나무 블라인드 틈새로 내게 밀려온 창백한 빛을 보면서 나는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불안 때문에 나는 잠을 설쳤다. 들락날락하면서 달은 내 잠을 토막 내버렸기 때문이다. 달이 방 한가운데 들어와 있을 때 잠에서 깨면, 나는 그 방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 방은 달 이외에는 아무도 거기에 들여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벤야민, <달>, <<베를린의 유년시절>> 중.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풍부하게(다른 의미를, 다른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낳는다는 의미에서) '달빛'에 대해서 쓸 수 있는 걸까. 번역자의 번역에 조금 더 유려했다면 좋았겠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한다. 조금 이질적인 느낌의 글이 주는 이국성도 매력일 수 있으니까. 오늘도 그의 글쓰기에 대한 질투는 거세질 뿐이다. 벤야민이 유년시절을 보냈을 저 방도 몹시 탐난다.
습하거나 건조한 달빛, 유혹하거나 관조하거나 물리치는 달빛. 그 어느 것조차도, 언제 어느때라도 모두 매력적이다. 서울은 광해(光害)가 심하기 때문에, 달빛이 강렬할 때 조차도 빛을 느끼기가 너무 어렵다. 그러나 가끔은, 오래된 캐러멜 같은 가로등 빛을 뚫고 달빛이 몸에 내려 앉을 때가 있다. 그럴때면 왜 늑대인간(werewolf)이라는 괴물이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달빛을 뜻하는 '문샤인(moonshine)'은 '밀수입한 술' 혹은 '밀조한 술'이라는 의미도 있다. 엄격한 금주령에 굴하지 않고 밤에 술을 몰래 빚어 달 밝은 밤에 들이켰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애잔하면서도 또 즐겁다. 빛이 세상을 지배하기 이전, 혹은 빛이 세상을 지배해야만 하는 시대 이전에는 밤이 얼마나 길고 달빛이 밝았을까.
달빛에 대해서는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아주 어릴 적이었는데.. 나는 뒷산에 동네 또래들이랑 쥐불놀이를 하러 올라갔었다. 그날은 정월대보름이었다. 마침 뒷산엔 교회를 짓고 있었고 우리는 쥐불놀이를 하다 말고 춥다는 이유로 폐자재로 불을 때며 쉬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갑자기 담력테스트를 하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뒷산 공동묘지로 올라갔다. 그날은 달빛이 너무나 환해서 불을 켜고 올라갈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한 명이 없어졌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묘지에 올라가서 이리 저리 살피는데- 없어졌던 한 명이 갑자기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혼비백산. 정작 우리가 모두 떠난 자리에 혼자 남은 그 한 명도 덩달아 혼비백산. 그렇게 숨 차오르게 뛰어 산을 내려왔을 때 내 눈 앞에 그 환한 달이 들어왔다. 크고 둥글었다. 세상은 온통 은은하고 차가운 은빛이었다. 그러나 왠지 따뜻한 느낌이었다.
달빛을 한껏 쬐고 싶은 밤이다. 왜 일광욕이라는 말밖에 없는 것이냐. 내일은 월요일이렷다.
바람이 세게 불었던 어제 아침, 내가 좋아하는 악보가 그려진 검은 우산을 들고 나가면 금방 부서질 것 같아 신발장에서 새 우산을 꺼냈다. 우산은 튼튼해보였지만, 손잡이엔 누구의 칠순잔치라는 게 써 있었고, 그게 창피했던 나는 그걸 모두 긁어내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우산은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에게 그걸 말해두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 우산은 내것이 아니라는 예감, 그러나 좋아하는 우산이랑 비슷하고 지금 필요하니까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 예감대로 나는 커피를 사러 들어갔다가 그 우산을 놓고 나왔고,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두고 나왔고, 열람실에다 놓고 나왔다. 그 때마다 모두 머지 않아 서둘러 돌아가 찾았다.
그러나 택시를 타고 낙성대 역에 도착했을 때, 마침내 그 우산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어제 낮, 해가 떠서 더 이상 우산이 필요 없었을 때, 차라리 우산을 버리고 돌아다녔으면 어땠을까? 그러나 나는 시작부터 내것이 아니었던 우산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다. 내것이 아닌 것 같으면 처음부터 내것이 아닌데. 그러나 나 스스로는 내것이 아닌 우산을 절대 버리지 못할 것이고, 마지막 혹은 파국에 이르러야 내 의지에 역행해서 우산과 결별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여러 일들이 떠오른다. 문제는 <우산>이었는지도 모른다.
2년 반 만에 '개강'이라는 걸 맞이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왠지 긴장되는 마음에 늦잠을 잤음에도 서둘러 집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02번 버스를 타는 줄은 무척 길어서 한참을 걸어서 줄을 서야만 했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았던가. 줄을 따라 햇볕은 뜨거웠고 공기는 눅눅했다. 정수기에서 뜬 차가운 물이 금방 미지근해졌다. 불쾌한 습기가 몸을 엷게 감쌌다. 한여름 장마철에 1회용 우비를 입은 느낌. 오래 된 마을버스는 에어컨도 잘 나오지 않았다. 과연 이게 잘 한 선택인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학교에 가서 아는 얼굴을 많이 만났다. 반가운 얼굴은 적고 피하고 픈 얼굴은 많다. 얼굴만 여러 번 봤던 후배들은 빠르게 지나쳐가는 나를 다시 한 번 힐끗 바라본다. 2년만 더 있다가 학교에 왔어도 이런 곤혹스러운 일은 당하지 않을텐데. 서둘러 단대 열람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는데 에어컨에서는 곰팡내가 난다. 열람실 한 편엔 옛날 NL이었던 사람이 고시인지 임고인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점심은 어쩌다보니 커피로 때웠다. 그 사람은 그냥 자리에서 굶는 것 같았다. 신입생 OT는 그럭저럭 40분 만에 끝났다. 밖으로 나오자 갈데가 없었다. 중앙도서관 열람실에도 내 자리는 없었고 단대에도 없었다. M 말대로 그 방에라도 자리를 잡고 싶었다. 내일 한 번만 더 권해주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제 S와 H랑 오래 술을 먹으면서 (나로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내 욕심이 어디까지인지, 내가 못하는 것 혹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침내 선명해지는 순간들!
유치한 감정들은 여전히 낯설고 내것이 아니어야 할 것 같지만, 이번 학기부터는ㅡ어쩌면 내 인생 사이클에서 마지막일지 모르므로ㅡ당분간 그 감정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다. 치기 어린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여지면 받아들여지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이렇게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이걸 긍정적이라고 볼 것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나를 낯설어하게 될 것 이다. 그것도 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