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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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7/27 00:21
1.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책의 저자는 홍콩 출신으로 미국 학계에서는 깨나 이름 날리는 학자. 그는 미국 문화연구계의 현실을 고발하면서, 포스트콜로니얼한 상황에서의 보편성/특수성과 오리엔탈리즘/지역주의라는 이항 대립 관계, 낭만주의적 태도와 문화주의에 의해 은폐되는 현실의 정치경제학 문제들, 지식인들의 자발적인 서발턴화ㅡ자기를 피해자화하면서 역설적으로 획득하는 권력과 돈ㅡ와 문화연구계에 주류화되는 서발터니티,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더욱 침묵에 빠지고야 마는 사람들, 세계화 된 담론 시장에서 불안해하고 상실감 속에서 우울증에 빠진 제1세계 지식인 주체들, 제국 담론에서 흔히 발견되는 중심부/주변부 이분법 등등의 이면을 치밀하게 폭로한다.

그는 또한 오늘날 말하는 자들이 어떤 포지션에 있으며, 그 포지션은 어떤 현실적인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뒷받침되는지, 그리고 말하는 자들이 발화의 기원을 은폐함으로써 언뜻 중립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을 최상의 정치적 행위자로 만드는 현실에 대해서도 끝없이 심문한다. 논문의 제목, 에세이의 한 구절도 이 학자 앞에서는 최악의 죄로 규탄된다. '대기업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회장들이 이사로 있는 모임에 들어가야'하는 현실도 비난한다. 모두 옳다. 물론 옳은 말들이지만 사실은 너무 피곤하다. 그런데 그런 피곤함이 기분 좋은 것도 사실이다. 그 책의 원제목은 <Writing Diaspora>이다. 글을 쓴다는 것, 혹은 무언가를 '쓰는' 행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물질세계에 자국을 남기는 행위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인 것 같다. 그의 끈질긴 성찰성이 조금은 부럽다. 그러나 그 성찰성을 자기에게도 조금은 투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가 쏟아내는 비판은 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이사를 가는데 제일 문제가 되는 건 역시 책들이다. 한국에선 책이 내용을 담는 도구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상품'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책들이 정말 한결같이 무겁다. 왠만한 소설책도 누워서 읽다보면 손목이 지끈지끈 아플 정도다. 책상에 정자세로 앉아서 허리 건강 생각하라는 배려는 아닐테고... 깔끔한 모노톤의 표지에 포인트를 주고 가벼운 종이를 쓰는 페이퍼백 형태의 저가 책이 나오면 좋을텐데. 수집벽을 자극하는 북디자인이 별로 없다. 펭귄클래식 같은 느낌도 좋을 것 같은데..

여하튼 책의 무게도 무게지만, 이사를 갈 때 집에 두고 갈 책과 가지고 갈 책을 구별하는 큰 일이 남았다. 천권 정도 되는 책들을 다 가져갈 순 없을테고... 아마 대학교 1학년 때랑 2학년 때 샀던 책들을 가져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뜻도 모르고 허세를 부리겠다고 산 책들이 많아서. 3, 4학년 때 충동적으로 산 책들도 그다지 가져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에센스를 뽑아 딱 고것들만 가져가고 싶은데 욕심을 버리진 못하겠다. 유학가는 선배는 책을 나눠줄 생각을 하던데, 나는 왜 그런 행동을 못하지.


3. 이제 4번만 더 나가면 조금 긴 휴가가 있고, 그 휴가의 끝에서 하루를 더 지내면 끝. 돌이켜보면 여유 시간이 많았음에도 시간이 훌쩍 참 빨리 간 것 같은데, 나는 해놓은게 없어서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지금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들도 이미 누군가들은 선취해 놓았다. 그들은 먼저 읽었고 먼저 썼다. 먼저 사유했고 먼저 다른 길로 재빨리 들어섰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글을 쓰든 은연 중에 누군가의 반복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 두려움의 정체는 뭘까? 무엇을 향한 두려움일까? 경쟁자들의 이름을 올린 리스트에서 누락될까봐? 권력을 가진 타자의 인지/인정을 획득하지 못하리라는 불안?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타자의 인지는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할 수도 없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잘 모르니까. 그런거, 잘 모르니까 그냥 할 수 있는거나 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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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7/25 21:09

오늘은 내가 태어난지 딱 25년 되는 날(해피 버스데이 투 미~♬). 스무살 초반이 넘어서 생일은 보통 일부러 시간을 내서 혼자서 보낼 때가 많았다. 여행을 간다던지, 영화관이나 미술관에를 하루 종일 간다던지, 사고 싶었던 것을 무리해서라도 구입을 한다던지. 지금까지 살아왔다는게 너무 장하다는, 그냥 나에게 주는 하루 어치 선물인 셈이었다. 그게 좋았다 싫었다, 혹은 혼자 지내는게 좋다 나쁘다는 문제가 아니고. 그런데 25살 되는 날 생일에는 발품 팔아 열심히 방을 구해야했으니 이거 원ㅋ 그러나 며칠 만에, 수십 개의 방을 본 끝에, 하늘에서 내린 선물처럼, 그 귀하다는 "맘에 쏙 드는" 전세 투룸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 ㅠㅠ! 동네가 하늘 받드는 곳이라는 지명을 가진 땅이었는데, 하늘과 이번 방을 구하느라 등골이 휜 부모님께 감사를! 이건 최고의 선물이야!! 아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쌩유 베리마치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셰셰 메씨 보꾸 당케 쉔 마할로 그라찌에 그라씨아스!!


대략적인 집의 배치도. 공간의 상대적인 크기 같은 건 잘 모른다. 1.5층에 전용 면적으로는 대략 14.5평 쯤 되고, 방이 2개(하나는 미닫이 문으로 거실과 침실로 사용 가능)이고, 방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크기지만 <서고>로 쓰기엔 괜찮은 작은 방이 하나 더 있다. 혼자 살기엔 좀 넓을지도 모르겠으나 둘이 살기엔 너무 커서 휑하지 않은 적당한 크기일 것 같다. 베란다엔 물건 보관하기 좋으며, 세탁기와 보일러가 있다. 방쪽 창은 넓은 편이지만 앞에 또 건물이 있어 전망은 그리 좋진 않다. 그래도 나름대로 나무도 심어져 있다. 욕실은 좁지 않고 깨끗하다. 베란다 쪽에서는 산이 보인다.

신혼부부가 살던 집이라 벽지도 하얗고 장판도 깨끗하며 거실 한쪽 면에는 포인트 벽지도 붙어서 예쁘다. 센스 있게 칙칙한 철문에 나무때깔 포인트 스티커도 붙여 놓으셨다. 여기에 책장 몇 개, 옷장 하나, 책상 하나, 부엌에 둘 미니테이블과 스툴 몇개 정도 챙겨 오면 가구 배치는 끝. 전자렌지, 가스렌지, 밥솥, 각종 부엌 집기류, 세탁기 이런 건 다 구입해야 한다. 주인 신혼부부는 인상도 좋고 이래저래 성실해 보여서 좋았다. 아기도 엄청 예뻤고. 스윗 홈을 세주고 자기들은 직장 관계로 경기도로 이사가서 살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낡은 싱크대는 교체하고 나간다고 했다.

집에 살게 되면 야심차게 추진할 것들이 있다. 제일 먼저는 <포인트 벽지>와 <포인트 스티커> 구입. 내가 쓸 안방 한 면을 예쁜 포인트 벽지로 덮어버릴거다. 창문에는 스티커를 붙일 거고. 대략 7만원 정도의 돈과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면 해결이 될 것 같다. 다음으로는 <빈 백(bean bag)> 구입. 주말이나 저녁에 집에 돌아와 늘어지듯 빈 백에 누워서 소설이나 시집을 보면 정말 좋겠다. 근데 이 녀석이 생각보다 비싸서 고민하는 중. 마지막으로는 <시리얼 디스펜서> 구입. 예쁘장한 <커피 메이커>는 조금 나중에. 그걸 사려면 그라인더 같은 부수기재도 사야하니까 고민 중. TV는 놓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아쉬운 건 지하철 역에서 10분 정도 걸린다는 거고, 오르막길을 지나야 한다는 것, 주변에 공사를 한다는 것, 뒷산이 예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거실이 넓진 않아서 둘러 앉는 파티는 못하게 될 거라는 것(동생이 오기 전엔 방을 거실로도 쓸 수 있어서 가능하겠지만). 그것 외엔, 뭐, 내가 다닐 학교 근처에 있는 조용한 동네니까 아주 만족한다. 좀 걸어 나가 길을 건너면 마을버스타고 강의실로 바로 갈수도 있고. 바로 밑에 있는 중학교도 밤 12시까지 개방한다고 하고. 조금만 신경 쓰면 재래시장에 가서 장을 봐 올 수도 있고. 만약 노력을 더 한다면 집에서 12~3분 정도 걸어가서 1주일 3시간 강습하는데 한달 수강료가 28,700원 밖에 안하는 수영레슨이나 스쿼시레슨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거 구하려고 정말 눈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눈물의 시간이란 건 문자 그대로다. (ㅠㅠ) 지난 2주는 온통 생활 공간을 구하는데 신경이 쏠려 있었다. 돈 문제, 지역 문제, 부모님과의 가치 갈등, 타이밍 문제 등등 온갖 문제가 일상에 산적하여 책이고 논문이고 뭐고 아무것도 읽지도 못한 채 시간을 모두 쏟아부어야 했다. 사무실에서는 직거래 카페에서 매물 보기에 바빴고... 전세 대란이라더니, 진짜 방 잠깐 보고 생각 좀 해보겠다고 나왔다가 몇 시간 뒤에 전화 걸면 방이 나갔다고 하고 그랬다. 여하튼 이젠 이 번잡한 생활도 끝이구나. 몸 누일 공간 하나 제대로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여기서 5년이고 6년이고 계속 살면 좋겠다. 다 귀찮다. 두 번은 못하겠다.

그리고 제발 8월 중순부턴 여기에 진짜 살게 되길 바란다. 돈도 부쳤으니 계약 파기하시면 안돼요. 흑흑


덧) 미니 테이블은 이런 느낌이면 어떨까? 하지만 난 당분간은 혼자 살잖아? 안 될거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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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스크랩 / 2010/07/16 11:28
스크랩 출처 : http://hook.hani.co.kr/blog/archives/8435

_정희진


이 세상에는 몸 둘 곳이 없었을까? 무대 밖으로 자기 몸을 영원히 숨긴 배우의 죽음을 수사한 경찰은, “(음주 후)충동적인 자살”이라고 최종 발표하였다. 이유는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마음에 걸렸다. 자살 사건의 90% 이상이 비계획적이지만, 그것이 곧 ‘충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것이라 조심스러운 생각이지만, 나는 그저 그가 유서를 쓸 만한 심신의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경찰이 잘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충동’이라는 표현은 죽음을 선정적으로 수사(修辭)할 뿐, 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감정을 가로 막는다.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하는 자살은, 질병(우울증)의 경과점 혹은 투병의 과정으로서 자살이다. 예전에 어떤 신문에서 방한한 외국 가수를 “한때 우울증에 빠져 방황했지만 재기했다”고 소개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우울증에 빠져? “빠져”는 자발적 탐닉이라는 의미로 대개 마약, 알코올, 도박 등과 결합하여 사용되는 말이다. 물론 심각한 중독은 병이지만, 마약 등은 중독의 대상이지 그 자체가 질병은 아니다. 다시 말해, “당뇨에 빠져”, “암에 빠져” 이런 말은 없다. 정신적 불편함(mental disease), 흔히 말하는 ‘정신병’은 몸도 마음도 편안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에서 ‘육체적인’ 질병과 다르지 않다. 우울증은 독감이나 교통사고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질병’으로 인구학적 특징이 ‘없다’. “마음의 감기”도 우울증을 왜곡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감기 역시 질병이지, 탐닉이나 타락의 상징은 아니다. “우울증에 빠져”, 이 말은 우울증에 대한 모든 편견을 집약하고 있다.

의사(醫史)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질병과 증상의 정의, 병의 탄생과 소멸, 특정 질병에 대한 인식(오해)은 자연의 질서가 아니라 인간 역사의 산물이며 고대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통치성(統治性)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동성애가 ‘치료해야 할 정신병’에서, 신사회운동에서 논하는 중요한 정치적 정체성의 하나가 된 것은 그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정신 건강과 관련된 질병에 대한 편견은 완고하다. 가장 어이없는 경우는 이 단견과 성찰 없음을 자신은 그만큼 ‘정상’이라는 증거로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일반적 통념은 “누가 진짜 미쳤는지”를 생각하게 할 만큼 대단히 모순적이다. 우울증은 결정권(권력)이 많은 기업의 리더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이 걸린다는 인식도 있지만, 정반대로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사치스런 병이라는 인식 역시 집요하다. 이를테면, ‘일하는 건강한 민중’은 심리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롭다는 식이다. 이 편견의 효과는 단 하나, 아픈 데 돈 없는 사람들이 넘어서야 할 정신과 병원의 문턱만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아픈 이가 누구냐에 따라 우울증은 다르게 인식된다. 천재나 예술가의 우울증은 예민한 감수성을 상징하는, 재능 있는 자의 특권처럼 여겨지지만, ‘보통 사람들’의 우울증은 낙오자의 나약함, 의지박약, 손쉬운 도피로 간주된다. 감기라는 비유처럼 사소하고 가벼운 증상으로 치부하면서도, 우울증 병력자나 환자는 비정상, 비이성, 잠재적 폭력범 등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라는 공포가 있다.

우울증에 대한 모순된 인식의 배후에는 다양한 문화적, 정치경제적 이해(利害)관계와 담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양가적 인식들의 공통점은, 우울증에 대한 무지 그리고 이 무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우울증이 자살로 연결될 만큼 고통스러운 질병이라는 것을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살은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의미를 넘어 ‘폐가 망신’, ‘인생 실패’, ‘참극’ 등 과도한 낙인을 안게 된다.

새삼 지금 한국사회의 자살 사태(沙汰)를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자살을 예방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살을 권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이고, 또 하나는 자살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는 것이다. 두 가지는 병행되어야겠지만, 나는 후자가 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이는 우울증의 고통을 “살아있는 죽음”으로 표현한다. 나는 자살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자살을 생명과 대립시키는 ‘자살 방지 캠페인’에서, 우울증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이냐 죽음이냐가 아니라, 고통이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살은 다른 질병에 비해 위로, 간병받지 못한 병사(病死)일 뿐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통증의 해결이지 죽음 자체가 아니다. 자살은 ‘생명 경시 풍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생명의 고통을 경시하는 풍조에 대한 개인의 외로운 처방전이다. ‘병사로서의 자살’은 자살에 대해 관대해지자는 주장이 아니라 예방책에 대한 논의이다. 한 때 죽고 싶을 만큼 아프고 괴로왔다는 병력이 이후 인생의 불이익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소통될 수 있다면, 자살은 줄어들 것이다. 최소한 지금보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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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조각들 / 2010/07/16 00:33
억양을 버려야만 프랑스 문학계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내 억양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여겼다.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의 억양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부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억양이 더 두드러졌다. 가족끼리 있을 때, 혹은 친숙한 곳에서 화를 내거나 감탄할 때, 공적인 자리보다는 사적인 자리에서 그랬다. 하지만 나는 출판물에서는 나의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의 억양이 드러나지 않으면 좋겠고, 그렇게 바라도 좋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으로서는, 그리고 반박하는 입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독서를 통해' 내가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없을거라 생각한다. 나 자신이 그런 언질을 주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처럼 세심하게 억양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나는 일종의 후천적인 지식을 얻었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무슨 교의로 삼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프랑스어 억양은 무엇이든 간에, 특히 억센 남부 사투리의 억양은 공적 발언의 지적 위엄과 양립할 수 없다.

_자크 데리다



모두에겐 나름의 사정이 있지. 누군가는 그것을 감추고 싶어할테고, 누군가는 그걸 자원삼아 관계를 지배하는 열쇠로 삼으려고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나름의 사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우리는 그것을 그것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우회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왜냐하면 저마다의 사정이란 것은 저마다에게 주어진 억압의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억압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저마다의 슬픔, 저마다의 상처, 저마다의 억압, 저마다의 과제, 저마다의 이야기. 데리다의 저 이야기는 어떤가? 데리다의 복잡한 철학이 어떤 개인적 사정에서 출발했는지를 조금이나마 보여주지는 않는가?

'모두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과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는 욕망은 언뜻 모순되어 보인다. 나의 사정은 보편적이어야 하지만, 우리 모두에겐 나름의 사정이 있으므로 나의 사정은 절대로 보편적일 수 없다. '저마다'였던 우리는, 그냥 '저마다'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결국 보편을 향한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소설로, 누군가는 논문으로, 누군가는 블로그로, 누군가는 영화나 음악으로 보편을 꿈꿀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의 소설, 나의 논문, 나의 포스팅, 나의 영화, 나의 음악이 오로지 나의 사정이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이면 보편성에 실패하는 탓에,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철저히 암호화한다. 깊은 사정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이 감추고 더 많이 꾸미고 더 많이 분열한다.

발견되길 기다리는 저마다의 사정, 간절히 해독되길 기다리는 저마다의 암호... 그러나 보편성 획득에 실패하고 주목받지 못한, 오로지 개인소장하게 될 뿐인 이야기들. 내가 인터뷰하는 사람 혹은 필드워크 하는 사람이 된다면, 바로 이러한 사정, 암호, 이야기에 흠뻑 빠져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온전히 보편화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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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독서노트 / 2010/07/12 12:17

<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82359.html>
그런데 너무 비싸... 그리고 읽다 보면 돌아버릴지도.


실존주의-구조주의 논쟁 촉발한 ‘그’ 책
사르트르 후기 대표작 50년만에 번역
20년 정치적 실천의 ‘사상적 응축’

고명섭 기자 

〈변증법적 이성 비판 1·2·3〉
장폴 사르트르 지음, 박정자·변광배·윤정임·장근상 옮김/나남·각 권 3만8000원

<변증법적 이성 비판>은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1905~1980·사진)의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저서다. 프랑스 지식계를 뒤흔들었던 1960년대 실존주의-구조주의 논쟁의 진원이 된 저작이기도 하다. 1960년 <변증법적 이성 비판> 1권(한국어판 1·2권) 출간 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에서 사르트르 저서를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논쟁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그 논쟁을 타고 이른바 ‘구조주의 시대’가 열렸다. 미완으로 남은 <변증법적 이성 비판> 2권(한국어판 3권)은 사르트르 사후인 1985년에 유고 상태로 출간됐다. 1권이 출간된 지 50년 만에 이 기념비적 저작 전체가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한국사르트르연구회 소속 전공자 네 사람의 공동 노력의 소산이다.

이 저작의 번역이 이렇게 늦어지게 된 것은 1400쪽에 이르는 원서의 방대한 분량에도 이유가 있지만, 한국의 사르트르 수용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1950년대 전후 상황에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은 한국 지식인들의 황폐한 마음을 다독여주는 지적 안정제 노릇을 했다. 전기 사르트르 사상을 대표하는 <존재와 무>(1943)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찍이 번역됐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그의 과격 좌익 활동이 알려지면서 ‘과격파 사르트르’가 외면받기 시작했고, 후기 사상이 집대성된 <변증법적 이성 비판>도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사르트르가 이 책을 쓴 것은 1957~1960년 사이 3년 동안이었다. 대작을 쓰는 과정에서 사르트르는 건강을 잃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다가오는 죽음의 땅거미에 쫓겨 미친 듯이 글을 썼고, 각성제 코리드란을 끼고 살았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그때의 사르트르를 이렇게 묘사했다. “아주 빠른 속도로 펜을 휘갈겨대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하루에 코리드란 한 튜브를 복용하기도 했다. 해질 무렵이면 그는 녹초가 됐다. 그는 가끔 모호한 제스처를 하기도 했고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쓰고도 대작을 완성하지 못했고, 다만 건강을 되찾았다.

<변증법적 이성 비판>이 사르트르 후기 사상을 대표한다는 말은 곧 그의 후기 활동을 종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2차세계대전 와중에 그는 현실 자체와 마주치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첫 번째 개종의 경험’을 하게 된다. 종전 이후 사르트르는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소련의 ‘동반자’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52년 사르트르는 ‘두 번째 개종의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 그는 공산주의와 자신을 거의 일치시켰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반공산주의자는 개다. 나는 평생 결코 공산주의에서 빠져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956년 소련이 헝가리를 침공하자 그는 다시 공산주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이후 미국도 소련도 아닌 제3세계 사회주의 혁명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변증법적 이성 비판>은 바로 이 20년에 걸친 정치적 실천이 사상으로 응축된 작품이다.

이 저작의 출발점이 된 것은 ‘1957년의 실존주의 상황’을 주제로 한 글을 써 달라는 폴란드 잡지사의 요청이었다. 거기에 응해 쓴 글이 이 책의 서두에 놓인 ‘방법의 문제’다. 170쪽 분량의 이 글이 사실상 결론에 해당하는데, 그 뒤의 본문은 이 결론에 이르는 긴 도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방법의 문제’는 원제가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였는데, 이 제목이 주장의 요체를 좀더 쉽게 파악하게 해준다.

사르트르의 관심은 마르크스주의에 실존주의를 수혈하는 데 있었다. 그가 보기에 당시 마르크스주의는 딱딱하게 굳은 상태였다. 마르크스주의가 역사의 주체인 인간들 각각의 삶을 사물로, 대상으로만 취급할 뿐 살아 있는 실존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진단이었다. 세계를 창조하는 살아 있는 주체를 불러들임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 그러려면 역사 창조의 주체인 인간에게 합당한 지위를 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인간학을 정립해야 한다.

그런 구상에 입각해 이 책에서 세워나가는 것이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인간학’이다. 전기의 <존재와 무>가 나(개인)와 타자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주제로 삼고 있다면, 이 후기의 대작에서는 그 개인이 집단적 주체를 이루어 역사적·사회적 지평에 선다. 이 인간 집단이 역사와 사회를 만들고 다시 역사와 사회가 인간 집단을 제약하고 형성하는 이중적 과정이 변증법적 과정이고, 이 변증법을 포착하는 이성이 ‘변증법적 이성’이다. <변증법적 이성 비판>은 이 이성의 힘과 한계를 시험하고 탐구하는, 다시 말해 칸트적 의미에서 ‘비판’하는 저작이다.

그러나 이 웅장한 작품은 곧바로 혹독한 공격을 받았다. 출간 이듬해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 저서 <야생의 사고>의 한 장(‘제9장 역사와 변증법’)을 할애해 사르트르를 “자기 사유에 갇힌 포로”, 서구문화 안에 갇힌 존재라고 비판했다. 사르트르가 서구 문명인 사회만 ‘참된 변증법’의 대상으로 보고, 이른바 ‘미개사회’를 저차원으로 깔아뭉갰다는 것이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사르트르의 주체였다. 사르트르가 역사 창조의 주인공이라고 보았던 그 주체를,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구조의 효과’, 곧 구조가 만들어내는 결과로 보았던 것이다. 옮긴이들은 구조주의 맹위에 밀려 사르트르의 주체가 모욕받은 채 후퇴했지만, 이제 그 구조주의도 퇴각한 마당에 사르트르의 주체는 다시 주목받아 마땅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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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독서노트 / 2010/07/11 12:32
근대 서구의 '미적 태도'는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근대의 과학과 미학에 그 연원을 둔다. 근대 과학의 이식론은 그때까지 사물에 부여되었던 의미들을 벗겨내고 객관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에서 구현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이후 18세기 후반의 낭만주의에서는 계몽주의의 전도가 일어난다. 대상에 미적 태도를 견지하고, 미적으로 평가하는 자세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칸트는 대상에 대한 태도를 크게 세가지로 정의한다. 하나는 참인가 거짓인가를 다루는 인식적 관심, 다른 하나는 선인가 악인가를 다루는 도덕적 관심, 마지막으로 쾌인가 불쾌인가 하는 취미 판단. 칸트는 세 가지 판단이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영역이 분명히 구분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우리도 이 세 범주의 혼용 속에서 사물을 관찰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괄호 넣기"라는 개념이다. 이는 과학적 태도에서부터 연유한 것으로, '무관심'을 그 기본으로 한다. 즉 사물의 어떤 측면엔 관심을 잠시 꺼두고, 특정한 인식론으로 사물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칸트는 여기에서 '주관의 능동성'에 대해 언급한다. 즉, 미는 감각적 쾌적함에 있는 것도 아니고, 대상 그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니며 그저 무관심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칸트는 사물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방기하는 데서 미가 생겨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이 잘 드러나는 것은 칸트의 숭고론인데, 숭고라는 미적 판단은 감성적 유한성을 넘어서는 이성의 무한함에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숭고는 이성적 무한성을 자기와 대립하는 대상에서 찾는 '자기소외'이다. 여기서 얼핏 보기엔 불쾌한 대상에 대응하여, 그것을 넘어서는 주관적 능동성이 적극적으로 발휘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적 태도는  역사 속에서 구구히 유지되어 오고 있다. 이를 심미주의적인 태도라고 한다면, 인류학·민속학이라고 하는 쌍 개념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식민주의·제국주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새디스틱한 지배로 간주되는 식민주의·제국주의는 미적 태도에서 자신의 최고조에 달한다. 타자를 오로지 미적으로 바라보고 심지어 존경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심미주의자는 일견 반식민주의를 표방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어디까지나 산업자본주의의 실현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그 기원을 은폐하며,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괄호에 넣은 것들을 타자 그 자체나 타자에 대한 동경과 혼동한다. 파시즘 같은 경우도 일견 반자본주의적이지만, 바로 그러한 것을 통해 자본주의의 경제적 모순을 미적으로 승화시킨다.

중요한 것은 괄호를 벗기고 다시 괄호를 씌우는 비평적 과정이다. 페미니즘, 게이 이론은 통상의 남성 독자들이 괄호 속에 언제나 넣어두었던 것들, 그리고 괄호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에 대해 괄호를 벗길 것을 요구하는 이론이다. 괄호를 벗긴다는 것은 작품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비판을 잠시 괄호에 넣고 다시금 작품을 읽어낼 수 있다. 물론 이럴 때에도 비판은 소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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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독서노트 / 2010/07/09 22:29

보부아르는 '여자(woman)'라는 것은 역사적 관념일 뿐 자연적인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생물학적 사실성으로서의 섹스와 문화적 해석 혹은 생물학적 사실성의 의미작용으로서의 젠더는 구분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그러한 구분법에 따르자면 여성이라는 것(to be a female)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실성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구분법에서 여자라는 것(to be a woman)은 여자가 되어간다는 것(to become a woman)이며, 신체를 '여자'라는 역사적 관념에 순응하도록 강제한다는 것이고, 역사적으로 제한된 가능성에 신체를 복종시키고 물질화하는 것이며, 신체적 프로젝트의 하나로서 이러한 과정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급진적인 의지의 창조적인 힘을 제안하는 '프로젝트'라는 개념보다는, 젠더 수행이 언제나 그리고 다양하게 일어나는 일종의 감금 상태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전략'이라는 개념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왜냐하면 젠더는 문화적 생존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존 전략으로서의 젠더는 징벌적 성격의 결과를 낳는 수행이다. 젠더는 하나하나의 개인들을 '사람으로 만드는(humanize)' 동시대 문화의 한 부분이다. 사실, 젠더를 올바르게 행하지 못한 이들은 규칙적으로 처벌받는다. 젠더가 표현하거나 외재화하는 '본질'이란 것도 없고 젠더가 갈망하는 객관적인 이상이란 것도 없으며 그리고 젠더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젠더의 다양한 실천은 젠더에 대한 관념을 생산하며 그러한 실천 없이는 젠더는 존재할 수도 없다. 따라서 젠더는 규칙적으로 그 기원을 은폐하는 하나의 구성물이다. 문화적 픽션으로서 분리되고 양극화된 젠더를 수행하고 생산하고 유지하는 암묵적인 집단적 동의는, 그것이 생산하는 신빙성에 의해 애매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젠더의 저자는 젠더의 구성과정이 개인의 신념을 필연성과 자연성으로 강제하는 [문화적] 픽션 속으로 점점 빠져들게 된다. 다양한 신체적 양식을 통해 물질화된 역사적 가능성은, 단지 감금된 상태에서 체현되고 위장된 징벌적 규제를 강제하는 문화적 픽션에 지나지 않는다.

_주디스 버틀러, <수행적 행위와 젠더의 구성>의 일부분


사실 글 자체는 이해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지만 내가 과문하여 한국어로 제대로 옮기지를 못하고 있다. 공유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참 많은데... 내 언어 실력에 한숨만 나오는 요즘. 여하튼 오랜만에 다시 접하는 과거의 버틀러는 여전히 매혹적. 누군가는 이러한 이야기를 진부하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비록 타 학과에 속해있지만, 어쨌든 나는 인류학 전공을 희망하는 대학원생이( 될 예정이)다. 전공은 anthropology of education 이지만 나는 근본적으로는 인류학 지향이다. 이를테면 그런 것이다. 옛날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도 교육학이나 인류학은 모두 인간의 문화화와 사회화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나는 인간을 사회화하는데 관심을 갖는다기보다는 사회를 인간화하는데 관심이 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좀 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는 건 교육학이라기보다는 인류학이라는 생각이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난 후자를 택할 것이다.

페미니스트라고 알려진 어떤 인류학자는, 페미니스트 인류학은 젠더의 구성에 대해 묻는 학문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제도들이 어떻게 젠더라는 프리즘을 통해 구성되는지를 밝혀내는 학문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일면 타당한 주장이다. 모든 사회 제도와 문화적·언어적 실천들은 모두 젠더라는 프리즘 없이는 제대로 구성될 수도, 이해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째서 페미니스트 인류학인가? 그냥 젠더 연구지. 그의 관점에 따를 경우에도 젠더는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자연화된다. 그리하여 젠더는 아무런 질문 없이 실체이자 본질이 된다.

반대로 버틀러는 그러한 실체화와 본질화 과정에 대해 끈질기게 의문을 제기하는/했던 얼마 안되는 사람 중에 하나다. 때론 잊고 지내도 결국엔 다시 돌아와 참조하게 되는게 바로 그녀의 글이다. 가끔은 유일하게 신뢰하며 읽을만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오래된 이야기처럼 들릴지라도 말이다.


덧) 보부아르가 한 유명한 말인 "여자는 태어나는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표현의 영역본은 "One is not born, but, rather, becomes a woman"이다. 한글 번역에서 "만들어진다"는 표현은 실존주의자로서의 보부아르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이 말을 인용하는 버틀러의 맥락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영역본에 따르면 여자가 "된다"는게 맞다. 현상학적 실천, 제한된 가능성 속에서 주체의 극화된(dramatized) 실천으로서, 스스로 '되어가는' 과정을 강조하는 번역이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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