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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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 2010/06/28 22:18
그가 골수 수집가가 되는 것은 이보다는 오히려 그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아마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어떻게 수집가의 특성이 될 수 있을까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건 나에게 금시초문인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 사실은 전혀 새로운 것이 못된다. 이 방면에 조예가 있는 사람은, 이러한 것이 옛날부터 있어온 해묵은 일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다시 아나톨 프랑스의 말을 인용해보자. 어느날 그는 그의 서재를 보고 감탄하고는 으레 의무적으로 하는 물음, 즉 "당신은 이 책을 모두 읽었습니까?"라는 어느 속물의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십분의 일도 읽지 못했습니다. 혹시 당신은 매일같이 본 차이나로 식사를 합니까?"

발터 벤야민, <나의 서재 공개>, 반성완 譯 에서


첫 번째 두려움은 독서의 의무라고 이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독서가 신성시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머지않아 사라질테지만 아직까지는 그런게 사실이다. 특히 일정 수의 모범적 텍스트들이 그런 신성시의 대상ㅡ물론 그런 텍스트들의 리스트는 분야에 따라 다르다ㅡ이 되는데, 그런 책들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금기이며 이를 어기면 눈총을 받게 된다.
두 번째 두려움은 정독해야 할 의무로 불릴 수 있는데, 이는 첫 번째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읽지 않는 것도 눈총을 받지만, 후딱 읽어치우거나 대충 읽어버리는 것, 특히 그렇게 읽었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눈총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사람들로서는 프루스트의 작품을 정독하지 않고 대충 읽어보기만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ㅡ강의자들 대부분이 그런 경우임에도 불구하고ㅡ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세 번째 두려움은 책들에 대한 담론과 관계된다. 우리의 문화는 우리가 어떤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임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한데 내가 경험해본 바로 우리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누군가와 열정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대화 상대 역시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앞으로 점차 보게 되겠지만, 경우에 따라 심지어 어떤 책에 대해 정확하기 말하기 위해서는 그 책을 통독하지 않거나 아예 펼쳐보지도 않는 편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어떤 책에 대해 말하거나 평문을 쓰고자 하는 사람의 경우, 그의 책읽기에 어떤 위험들이 들러붙는지를 부단히 강조해나갈 것이다. [...]

이런 저런 책을 읽지 않았다는 건 교양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비록 그가 그 책의 '내용'을 정확히 모른다고 하더라도, 종종 그 책의 '상황', 즉 그 책이 다른 책들과 관계 맺는 방식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의 내용과 그 책이 처한 상황의 이러한 구분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양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별 어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덕택이기 때문이다.

피에르 바야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벤야민의 저 부분은 좀 웃겨서 퍼왔다. 원문엔 세브르 도자기라고 되어 있는데..
피에르 바야르의 책은 심심할 때면 펴보게 된다. 무엇보다 재밌다. 다른 책도 몇 권 번역되었는데 다른 것들은 별로고. 바야르의 책을 여러 번 읽다 보니, 지금 인용한 부분에도 등장하는 "눈총"이라는 말이 이 책의 핵심 단어인 것 같다. 그의 전공인 정신분석학에서도 그렇고.

버는 돈은 그다지 없는데 식비보다 책 구입비가 더 많이 나갈 수 있는 지금이, 그래도 좋을 때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서울 생활 시작하면 지금 같은 호사는 누리지 못할테니까. 밥도 대체로 사먹어야 될테고- 교통비도 많이 나올테고- 무엇보다 술값이 많이 들겠지. 그렇게 되면 통장 잔고를 끝없이 생각하며 필요한 책과 사고 싶은 책, 훔치고 싶은 책 따위를 끝없이 비교하며 갈등하게 되겠지.

그렇지만 책도 많이 사버릇해야 감식안이 생긴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 땐 그래서 언제나 삐끗하기 마련이다. 최근엔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를 넘어 한국 동시대 소설을 섭렵(수집)하겠다는 의지로 소설책을 막 구입하기 시작했는데, 정말 뼈아픈 실패를 겪었다. (요샌 소설책도 양장본이 많고 비싸단 말이야.) 읽다가 재미없어서 내던져버린 책, 읽고 나니 너무 못써서 슬퍼진 책... 어떤 평론가는 나쁜 작품은 같은 이유로 나쁘고 좋은 작품은 저 나름의 이유 때문에 좋다고 했는데, 나쁜 책에도 저 나름의 이유 때문에 나쁜 경우도 있다. 이런 책이 열다섯권이 쌓일 때 쯤, 나는 비로소 쉽게는 출판사의 마케팅 스킴에 낚이지 않을 눈을 갖게 된 거 같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저자의 이력은 어떤지, 번역자의 이력은 또 어떤지, 출판사는 어딘지, 참고문헌은 무엇이 있는지 ,특히 유명한 저자들에서 인용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책의 어느 부분에서 인용해 왔는지, 인용할 때의 태도는 어떤지, 서문의 분위기는 어떤지(저자의 철학적 입장이 나타난다), 으레 쓰는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따위로 내게 좋은 책인지 아닌지를 좀 더 쉽게 판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게 교양이라면 교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편협과 습관이라면 그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그래도 아직 멀었지.

헌데 교양이란 말은 너무 넓은 말이고, 사실 내가 딱히 '교양' 있는 집에서 태어나 자란 게 아니기 때문에 사실 교양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주눅들기 일쑤다. 근데 문제는 교양인이 되는 것도 좋고 교양을 쌓는 것도 좋지만, 쌓으려면 제대로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양 속물은 되어서는 안된다는 거지. 통속적이고 진부한 지식을 단정적으로 젠체하면서 말하는 건 정말 티 난다구. 계속 그러면 진짜 솜털까지 서버린다고, 내가 다 부끄러워서. 이를테면 이런 것. 인류학을 공부하겠다하면, 아 그거 제국의 학문이지, 미국에서나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것. 사회학이나 통계를 공부하겠다하면, 아 그거 엘리트를 위한 학문이지. 뭐 이런 것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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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6/27 21:41

요 며칠 읽었던 텍스트들엔 빛나는 문장이 참 많았는데, 쉬겠다는 명목으로 흐리멍텅하게 주말을 보내고 나니 모두 사라져버렸다. 하여, 갈수록 내 기억력을 의심하게 된다. 읽었던 책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고, 다시 읽었을 땐 아예 다른 부분에 감동을 받으며, 방금 봤던 영화의 제목이나 주인공의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하긴 언제 내 기억력이 좋았을 때가 있었던가.

갈수록 어떤 절대적인 힘 앞에서 나를 비우는 상태, 즉 케노시스(kenosis)가 절실해진다. 몽테뉴는 "나는 존재를 그리지 않는다. 단지 그 행보를 그릴뿐."이라고 말했다. 나도 존재가 아니라 행보로서 삶을 설명해야 한다.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존재에 대한 유아적 관심은 존재를 실체화하려는 충동에 지배된다. 존재에 대한 실체화 충동은 사춘기의 정체성 탐구에나 적합한 일이다. 그걸 어서 벗어나야 한다.

여기 내 형편없는 기억력 덕분에, 언젠가부터 내 머리 속으로 흘러들어와 새겨진 이미지가 있다. 나는 그것을 어딘가에선가 읽었을 수도 있고, 들었을 수도 있고, 영화 따위에서 봤을 수도 있다. 가로로 6m, 세로로 3m 쯤 되는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일만배(一萬拜)를 올린다. 불상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섬기기 위해 일만배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은 채 행위에만 몰두한다. 그러나 이들은 외딴 섬이 아니다. 그 행위로서, 그들은 진정성으로 서로에게 연결된다. 옷깃 스치는 소리와 바닥에 몸 부딪히는 소리, 거친 숨소리만이 적막을 채우는 공간은,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듯 하다. 서로의 땀 냄새와 체취를 담은 입자들도 후각 세포에 자극을 주지 못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일만 번의 똑같은 행위에 철저히 몰입한다. 일만 번의 행위가 끝난 후, 이들은 모두 이전과 같지 않은 그 무언가가 되리라.

제임스 클리포드는 모든 뿌리(roots)는 도로(routes) 위에서 생긴다고 말한 바 있다. 호미 바바는 "정주하지 않음unhomeliness"에 대해 말하며, 아르준 아파두라이는 어떤 회절(diffraction)에 대해서 말한다. '트랜스'와 '경계border'라는 말을 중심부가 본격적으로 전유하면서 애초에 가졌던 힘을 상실한 오늘날에도,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매력적이다. 앞으로도 전위avantgarde는 될 수 없을 것이고 되지도 않을 것이지만, 케노시스의 과정을 거쳐 돌아와 변경frontier에 서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기에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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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영화 / 2010/06/26 23:31

잊혀진 역사를 현재에 소환하는 영화적 시도는 언제나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영화의 작품성이나 완결성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제주 4.3 항쟁을 모티프로 한 <꽃비>는 충분히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꽃비>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과 현장을, 제주도에 있는 한 고등학교의 교실과 학생들의 관계로 축소해 놓는다. 영화가 시작하고 곧 쫓기듯 섬을 떠나는 형석은 <일본>을, 형석이 떠난 자리에서 급장이 되기 위해 싸우는 도진과 민구는 각각 <남한>과 <북한>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문득 찾아와 '투표'를 제안하며 포르노와 초콜릿으로 아이들을 포섭하는 동일은 <미국>을 상징한다. 그리고 도진과 민구가 마음을 빼앗기 위해 노력하는 서연은 훨씬 더 복잡한데, 아마도 한반도(혹은 민족, 혹은 역사)를 상징할 것이다. 각각의 국가(정체)를 상징하는 인물들은 (감독이 해석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이 일련의 과정이 지나치게 눈에 도식적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영화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체스 경기를 녹화해서 보고 있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경기의 결과를 알고 있다고 해서 그 과정이 진부한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의 디테일과 영화적인 암시와 비유들을 직시하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해야하고, 해석해야 할 것은 해석해야 하며, 아픈 것은 부정하지 말고 제대로 아파하고, 애도해야 할 것은 끝까지 애도해야 한다. 또한 <꽃비>는 제주 4.3 항쟁이라는 사건을 단지 현대사의 한 비극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맥락과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을 주문한다. 그래야만 4.3 항쟁의 아픈 기억을 훼손하지 않고도 제대로 기억할 수 있지 않겠냐 하는.

그러나 영화는 인물간의 관계와 서사의 진행을 모두 남성 정치의 맥락으로 치환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영화의 서사는 노골적으로 젠더화된다. 다소 어설픈 남성 학원물 형식을 빌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3 항쟁을 직접 겪어 실어증에 걸린 서연의 어머니와 서연은 영화 내내 침묵한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행위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단지 남성 행위자들에게 영향을 받을 뿐이다. 특히 서연은 중요한 순간에 하얀 옷을 입고 '청순한' 모습을 하고 등장한다. 서연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대신 노래를 흥얼거린다(사이렌의 경우처럼, 여성의 노래는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공포 아니면 매혹, 혹은 공포와 매혹을 동시에 의미한다). 서연은 늘 도진과 민구에게 다투지 않을 것을 주문하지만, 민구가 사라진 자리에서 도진과 동일은 서연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차례로 성폭행한다.

이렇게 정치적 폭력을 <성애화eroticize>해서 성폭력의 문제로 치환하는 건, 언제나 남성 정치의 몫이었다. 예컨대 탈식민시대에 제국주의에게 강탈당한 민족-국가의 영토는 '어머니 영토'로 재현되고, 소위 민족-국민의 수난은 제국주의 남성에 의한 성폭행으로 간주된다. 이에 대한 남성적 복수의 판본은 (상대방 남성에 대한 직접 폭력이 아니라) 상대방 남성과 관계를 맺는 여성들에 대한 성애화된 폭력이다. ('fucking USA' 같은 노래를 생각해보자.) <꽃비>와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성화된 범주에 대한 남성 주체의 맹목적인 사랑은 곧 성폭력으로 연결된다. 사랑-증오-(성)폭력은 같은 스펙트럼 위에 있다.

이런 식의 비유는 남성만이 진정한 역사적/세계적 행위자라고 간주하며, 남성 범주에 대응하는 여성이라는 타자 범주를 '생산'하고 수동적인 것으로 의미화한다(물론 이는 남성 정치의 맥락에서만 유효할 뿐이다). 또한 이는 남성 정치를 <성애화>하고 사적인 욕망으로 축소시키며, 이를 <낭만화>한다. 이는 실재하는 폭력을 은폐하며, 그 결과를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역사와 정치를 그런 케케묵은 위험한 비유를 동원해서 기억할 것인가. 우리는 영화의 포스터에 쓰인 "너 때문에 싸우는 거야"라는 말의 무서운 폭력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너 때문에"가 아니라, 그냥 당신들이, 당신들의 욕망으로 싸우는 거다. "너 때문에" 싸운 거라면, '사랑'의 스펙트럼 위에서 발생한 성폭력의 원인도 "너" 때문인가? 당신들의 싸움에 타자를 동원하지 말고, 또한 폭력을 낭만화하지 말라. (그러나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타자 없이는 사업이 없는 한심한 제국"처럼, 타자가 없다면 싸움이 있을수나 있을까. 입이나 가진 사람이면 모두가 민주주의자이자 문명인을 자처하는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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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조각들 / 2010/06/23 00:21
http://news.nate.com/view/20100622n18790?mid=c0200의 제목만 보고 새삼 든 생각. 곧 새벽에 경기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제목도 기사의 의도 자체도 너무 싫다. 

"아시아"라는 말과 "아프리카"라는 말은 새삼 지적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일상적으로 오용(catachresis)되고 있는 오염된 범주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의 단어 사전에서 "아프리카"라는 말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처럼 설명된다.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상상하지, 구체적인 하위 범주 하나하나를 상상하지 않는다/못한다. 아프리카는 그저 "아프리카"일 뿐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아프리카"라는 단어에 의해 과소 대표된다. 이는 최근 들어 미국이 자기 스스로를 아메리카 대륙의 일개 연합국가로 재현하지 않고, "아메리카(America)"라고 칭하며 스스로를 과대 대표하고 있는 것과는 정확히 반대된다. 여기에 대고 사실 "아프리카"에는 수없이 많은 국가가 있고, 한편에는 국가로 포함할 수 없는 민족과 부족이 여전히 살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역사는 너무나 다양하고 현실의 상황도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아프리카"라는 단 하나의 어휘로는 아프리카를 절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이야기해봤자,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힌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환상으로서, 그리고 지배언어(master word)로서의 "아프리카"이지, 이런 저런 '아프리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전에 찾았던 한 전시회에서, "아시아"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을 만났다. 지도를 크게 붙여 놓고, 관객들이 투명한 필름을 그 위에 대고 자기가 상상하는 '동아시아(East Asia)'를 직접 그려보게 하는 참여식 작품이었다. 나도 하나 쯤 그려보려고 했다. 중국의 민족분리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지도를 그리려고 했는데, 부끄럽게도 정확한 지리적 위치를 몰라서 포기하긴 했지만(-_-;;)... 내 것을 그리는 대신, 사람들이 이미 그려 놓고 떠난 필름들을 비교해봤는데 꽤 재밌었다. 같은 지도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북한만 쏙 빼놓고 한-중-일 3국만 그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남아시아'를 '동아시아'의 범주로 포함하는 사람도 있었고, 몽고를 넣은 사람도 뺀 사람도 있었으며, 서부를 제외한 러시아의 거대한 땅덩이까지 포함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아시아라고 말할 때 같은 것에 대해 말한다고 할 수 있나?

최근에 출간된 어떤 책에서 어떤 정치학자는 '감정의 지정학'을 들먹이면서, "희망의 아시아", "두려움의 유럽", "굴욕의 이슬람"으로 나누어 세계의 정치-경제학적 배치와 관계를 살핀다. 감정이 요새 나의 키워드기 때문에 꽤나 재밌을 것 같아서 서점에서 읽어 봤다가 너무 끔찍해서 그만두었다. 새뮤얼 헌팅턴의 아류, 혹은 희극적 반복일 뿐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헌팅턴의 유명한 '문명의 충돌'이라는 명제를 '무지의 충돌'이라고 비꼬았던 에드워드 사이드도 생각났다. 그렇다면 나도 '감정의 지정학'이 아니라 '무지의 지정학'이라고 비꼬아도 좋을까. 이 책은 미디어 스케이프와 통념적인 현실 정치지형도를 배경으로 추론과 직관으로 쓰였는데, 이러한 직관이 신선하거나 통찰력 있게 느껴지면 모를까 진부하기 짝이 없는 편견의 결정체이자 재생산품에 지나지 않았다. 정치엔 언제나 감정이 동원되고, 동원된 대중 감정은 미디어와 일상의 실천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며, 이렇게 재현된 감정이 '공식적인 감정'이 된다는 당연한 과정을 분석하지 않고, 감정과 정치를 실체화하는 책이다. (마지막에 가서 수십 년 뒤의 모습을 '예언'하려 드는 선지자적 자세도 잊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 범주가 우리에게 주는 이득이 무엇이란 말일까?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움이 되기는 한다는 것일까? 아무 해당 사항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이런 범주는 특정한 정치-경제적인 이해관계의 효과일 것이라는 것. 그 범주는 매우 유동적이며 역사적, 정치적인 범주라는 것. 유럽연합에 터키가 가입하고자 하니까 극렬히 반대하는 유럽연합의회와 유럽 인민들을 생각해 보자(하긴 터키와 유럽 문제는 하루이틀된 얘기가 아니지). 곧 돌아가게 될 학교에는 아시아 연구센터였나 하는 난해한 이름을 가진 연구동도 들어선다고 알고 있다. 돈 깨나 들여 짓는 것 같던데, 한동안은 삐까뻔쩍하게 잘나갈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라는 말은 나름의 힘을 갖고 계속 쓰일 것이다.

... 난 여전히 모르겠어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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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아시아
일기 / 2010/06/20 23:53
* 나에게 차학경의 인상은 어떤 장면으로 남아 있다. 작은 여자아이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 쌓여 있다. 아이는 철저히 혼자다. 그 언어는 힘이 세서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도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그 언어는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이 배울 가치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 언어를 잘 쓰지 못한다. 하여 아이는 그들에게 지적 무능아로 낙인 찍힌다. 아이가 쓰는 언어는 잡음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의 언어는 철저히 부정당하고, 심지어 모욕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자비로운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 연민을 품고 아이에게 언어를 가르쳐주기 시작한다. 아이는 더듬더듬 따라 하고, 부르는 대로 받아 쓰며, 암송하고, 똑같이 옮겨 쓴다. 아이가 잘하지 못하면 그들은 한숨을 쉬거나, 고개를 젓거나 연민의 미소를 띤다. 아이는 그들에게서 경멸을 읽고 약간의 두려움과 수치를 느끼지만, 그런 감정은 서둘러 삼키고 시키는 대로 언어를 모방한다. 반복되는 모방 속에서 그 언어는 의미가 제거된 채 오로지 음성으로만, 삐뚤빼뚤한 글씨로만 존재할 뿐이다.

어제 ㅅㄱ 미술관에 처음 가봤다. 차학경의 작품이 하나 전시 된다고 해서, 오로지 그걸 보기 위해 전시회에 갔다. 가는 길에 있던 건물들이 기억난다. 건물들은 높지는 않았지만, 위압적인 벽과 대문, 철조망, 그리고 CCTV 카메라가 있었다. 어느 골목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건물엔 식당이라고 간판이 있었지만 큰 철제 대문이 있어 안을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대문 앞에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 벨이 붙어 있다. 그 벨을 누르지 않으면 식당에 들어갈 길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감히 누가 그 식당에 들어가려고 할까. 거기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있을텐데, 그들은 누구일까. 이런 것들이 모이면 gated community가 되는 걸까. 그 길을 따라서 미술관에 가는 건 왠지 지치는 일이었다. 골목골목에 설치된 카메라를 모두 부수고 싶었다. 차학경의 작품에 대해서는, 함구.


* 대안영상을 상영하는 홍대 근처의 공간에서 <버라이어티 생존 토크쇼>를 봤다. 사회의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되는, 혹은 이미 노출된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아무래도 고통받고 슬픔에 젖어 제대로 일상을 꾸리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이미지가 구체적인 사람들의 일상을 얼마나 타자화하는지.. 아마 정희진 씨의 글에서 읽었었지.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성산업 종사 여성들을 방문한 자원봉사자들이, 이 여성들이 밝게 웃는 모습을 보자 아이고 밝게 사셔서 보기 좋네요, 라고 말했다던 일화. 이 엄청난 타자화에 깔깔깔 웃지 않을 수 없었지.

폭력에 노출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상징체계로서 사회는 언제나 모든 개인들에게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피해자화' 하지 않고서도 자신에게 가해진 사회적인 폭력을 의미화하고 폭력에 저항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사람이 사회의 온전한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사회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피해를 당당하게 입증할 수 있으며, 심지어 있지도 않는 피해를 만들어낼 권력을 가지고 있다(예컨대 힘을 가진 이들이 명예훼손 고소를 남발하지).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기꺼이 귀 기울인다. 반면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실재하는 피해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에 대해 말하는 입을 부정한다. 그건 그 사람의 무능 탓이거나, 폭력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사회 구조의 탓이다.

다큐는 참 좋았다. 아픈 부분도 많았고 즐거운 부분도 많았다. 피해는 실제로 있으며, 그 피해 때문에 괴로운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 괴로움을 평생 안고 가야할지 모른다. 그러나 피해를 피해로서 인정하고, 피해를 정당하게 언어화하며, 피해자 정체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복원하는 순간을 만드는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권리이다. 실제 구속력을 가진 사법의 언어가 성폭력 피해와 폭력을 의미화하는 언어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다큐에서 읽을 수 있던 여러 노력들과 언어들과 관계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사법체계의 언어 따위는 언젠가는 낙후될 것이다. 그리고 사법의 언어만이 유일하게 정당한 언어는 아니므로, 언젠가 우리는 복수의 정당한 언어 체계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는, 신형철 평론가가 인용해서 최근 더 유명해진 한나 아렌트의 말을 여기에 끼워 넣어도 좋을까. 이 말을 이 글에 맞게 조금만 바꾸면, "모든 (성)폭력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아렌트가 제대로 말하지 않은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앞서 말한대로 그 이야기가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관계와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물론 아렌트의 저 말은 그 관계와 공간의 가능성에 대한 선언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런 관계와 공간이 없다면 이야기로 만든다고 하여도 무슨 소용일까. 관계와 공간은 이야기의 선행 조건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쓰고 말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위한 관계와 공간을 만드는 게 몇 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얼마나 더 멀리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할까. 나도 힘을 보탤 수 있다면 보태야지.


* 어제는 오랜만에 S를 만나 꽤 괜찮은 (하지만 예전에 종로 모처에서 먹었던 게 더 훌륭했던) 단호박 해물찜을 먹고, 신림에서 녹두로 가는 길을 걸었고, 녹두에서는 커피를 마셨다. (녹두는 커피 값이 착해서 정말 좋다. 나는 절대 녹두에 살지 않을 거지만, 커피 값이 매우 싼 카페는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나는 뭔가에 굶주렸다는 듯 말을 많이 했고, 어제는 좀 피곤했던터라 말을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던 순간도 많았다. 그리고 교지 모임에도 갔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 반가운 얼굴들. 술을 많이 마셨다. 말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어제 하루는 정말 길었고, 길었던 시간 만큼이나 말도 참 많이 했다. 말을 많이 한 날은 늘 후회하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말도 많이 했던 것 같지만, S라면, 그리고 교지 친구들이라면 아무래도 이해해 줄 것이다.


* 그제 올렸다 지운 글에 함께 올렸던 영상.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아쿠아리움이라고 했다. 가끔 보면 정말 좋다. 느긋해지지는 않아도 왠지 위안은 좀 된다. 잠수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심해에 오래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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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조각들 / 2010/06/18 23:15

*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돌아가셨다. 새벽 4시 쯤이었나, 혼곤하게 잠에 빠져 있을 무렵 밖에선 약간의 소란이 느껴졌지만 나는 계속 잤다. 일어나니 부모님과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동생을 깨우고 학교에 갔다. 컴퓨터 수업을 하던 도중 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비로소 할머니의 부고를 들었다. 그러나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건, 단지 할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할머니가 해주곤 했던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할머니의 입장에서 봐도 할머니는 매일 아침마다 팔에 찔러 넣던 인슐린 주사도 더 맞을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더 이상 찌를 곳이 없어 찌른 데 또 찌르며 아파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조만간 들이닥칠 시끄러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 순간 가장 궁금했던 건 고부간의 갈등으로 늘 마음 고생을 하며 눈물을 몰래 흘려보내던 엄마의 얼굴이었다. 엄마는, 지금, 기뻐하고 있을까.

수업시간에 불려갔던지라 돌아와서 다시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애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더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호들갑을 떤건 내가 아니라 그 애였다. 너, 그럼 빨리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무슨 수업이냐고, 큰일 났는데 이거 어떡하냐고. 주변이 웅성웅성하면서 내게 시선이 쏠렸다. 나는 너무 놀랐다. 그 순간 왠지 울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울음이 나왔다. 할머니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해서가 아니라 어떤 시선과 압력에 의해서, 나는 울었다. 나는 울먹이며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러라고 했다. 나는 나오면서도 멍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집이 장례식장으로 변해 있었다. 배불뚝이에 검은 양복을 입고 소주를 들이켜는 사내들과 똑같은 파마머리를 한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십이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데 "아이고, 저 어린 것이 너무 충격을 받았나봐유. 눈물 한 점 없네..." 라는 말이 들려왔다. 3일 내내 나는 방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들어 앉아 있었다. 밖은 너무 복잡했고 가짜 통곡 소리로 오염되었다. 과장된 울음 소리는 너무 시끄러웠다. 그래서 이튿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수 앨범과 미니 카세트를 샀다. 바닥에 누워 핑클과 S.E.S의 노래를 들으며 지루한 시간을 견뎠다. 부모님은 너무 바빠서 나를 찾지 않았고, 나는 때가 되면 알아서 나가서 밥을 먹고 다시 드러누워 노래를 들으며 잠을 잤다. 학교도 가지 않았다. 자유, 그것도 기묘한 밀집 속에서의 첫 자유. 해방감마저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죽음의 의미를 잘 모르는 어린애의 반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3일 째 되는 날, 마침내 장지로 갈 때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울었다. 아빠와 그 형제들은 소리내어 울부짖었고 그 형제들과 결혼한 이들도 같이 울었다. 할머니의 친구들도 통곡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서 있었다. 이 자리에 불려온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시간은 언제 지나가나. 주위를 둘러보다 엄마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때서야 나는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다른 이들처럼 퉁퉁 불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기대에 따르면 엄마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안되었는데도 말이다. 그것이 연기인지, 혹은 엄마의 분노와 슬픔이 가짜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할머니의 죽음도, 사람들의 슬픔도, 장례식의 온갖 의례들도. 사람들의 울음에 드리운 그림자는, 진짜였을까, 가짜였을까.

내가 비로소 할머니를 애도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어느 날이었다. 돌아가신지 3년이 되던 해, 할머니의 부재가 생생한 어느 날 밤이었다. 할머니의 냄새와 목소리, 할머니의 말투, 할머니와의 기억. 그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나는 기숙사의 침대에서 밤새 울었다. 다음 날도 울었다. 룸메이트들이 깰까봐 베갯닢에 얼굴을 파묻고 3일 밤을 내리 울었다. 그때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슬펐다. 그 때의 슬픔은 진짜였다. 상실에 대한 슬픔은, 무려 3년 뒤에야 찾아왔다.

(만약 그렇다면 사랑하는 감정도 3년 뒤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법은 없지 않을까?)


*

그럼에도 모든 시간과 장소에는 그에 합당할 것으로 기대되는 감정이 있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울어야만 하는 시간과 공간은 정해져 있다. 그 테두리를 벗어나 우는 건 심지어 민폐가 될 수 있다. 허나 감정의 시간과 감정의 장소는 현실과 전혀 조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갑작스러운 소중한 이의 죽음 앞에서 슬픔은 너무 뒤늦게 찾아올 수도 있고, 장례식장에서도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보릿자루 같이 한 구석에 처박혀 있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이의 배신을 예상하며 미리부터 고통에 빠질 수도 있고 마침내 배신을 목격하고는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무례하게 구는 사람을 만나도, 보는 눈이 많아 황망히 도망갔다가 엉뚱한 베개에 화풀이를 할 수도 있다. 감정의 적재적소는 지나치게 어려운지도 모른다. 감정은 너무 뒤늦게 찾아오거나 너무 일찍 찾아오고, 부적절한 곳에서 폭발해 버린다.

감정의 적재적소라는 것, 그것은 예의바른 것, 도덕적인 것, 철이 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실제 나의 감정 상태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이방인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 결혼식장에서라면 기뻐하고 장례식장에서라면 슬퍼하는 것, 자기 중심적인 친척 어른 앞에서도 살갑게 굴 수 있는 것, 지루한 말에도 맞장구 치는 것, 일을 하고 피곤에 절어 돌아와서도 같이 사는 이에게 활짝 웃는 것, 그리고 너와 내가 만나면서 기대하게 되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감정이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기대와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감정은 사회적이다. 중요한 건 이들이 자동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의 시간과 장소의 적절함을 어릴적부터 학습해 왔다. (그렇다면 '나의 감정'이란 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나는 이 학습의 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아직도 그 사회화 학교 주변을 떠도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항상 부적절하게 맥락을 놓친다. 중요한 순간에 늘 말을 더듬고 허둥거린다. 그리하여 나는 늘 차가운 사람, 감정이 없는 사람, 정이 없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공부만 할 줄 알고 책만 좋아하지,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 거만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기억과 기대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꺼이 부응한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 새벽의 적막이 몸을 무겁게 누르고 모든 세상 소음을 흡수해버렸을 때, 그리하여 비로소 적요히 혼자가 되었을 때에야, 그때 느끼고 표현했어야 할 감정을 느낀다. 시간과 공간의 어긋남. 뒤틀린 이음새. 때늦은 후회.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삶의 숙제다.


*

이 영상은 마음이 복잡할 때 멍하게 들여다 보게 된다(전체 화면을 추천). 어딘가에서 보고 다운 받았다. 다 괜찮을 거라고, 지나갈 거라고, 그 누구의 말보다도 더 설득력있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바다에서 잠수해보고 싶지만, 나는 물을 무서워하므로, 차라리 엄청나게 커서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지는 수족관에 가보고 싶다. 이 영상이 좋은 예다.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수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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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감정
독서노트 / 2010/06/17 13:52
사적인 젠더 관계에는 좀더 큰 사회에서 맺어진 양성 간의 유력한 합의라는 밑바탕이 있다. 전체적으로 여성을 경시하는 사회에서 평등주의를 주장하는 부부는 감정 교환의 기본적인 차원에서 이미 동등해질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어느 여성 변호사가 남편만큼 많은 돈을 벌고 존경을 받으며서 일하고 있고 남편도 그런 상황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 여성 변호사는 여전히 남편이 진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집안일에 동등하게 참여한다는 사실에 자신이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여성 변호사의 발언권은 남들이 보기에 눈에 띄게 센 것이고, 남편의 발언권은 눈에 띄게 약하다. 시장 상황 속에서 다른 배우자를 만난다면 남편은 가사노동에서 자유로워질 수도 있겠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 좀더 큰 사회적 맥락을 고려할 때, 이 여성 변호사는 남편을 잘 만난 것이다. 그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는 현실에 화가 나더라도 그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그 여성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앨리 러셀 혹실드, <감정 노동(Emotional Labor)>, 이매진, p. 116의 각주에서. 강조는 내가



이 각주를 읽고 나니 일전에 여성학 협동과정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접했던 여러모로 당혹스러웠던 발언들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이해가 될 것 같다. 당시 나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기혼' 여성학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불편하고 어색했었다. 그 태도를 요약하자면, 당신은 어떻게 결혼 생활을 시작했으며, 어떻게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당시에 나는 그런 일반적인 질문을 '기혼' 여성학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여겼다. 왜냐면 대체로 '기혼' 여성학자들은 그런 질문 앞에서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을 얼버무리거나,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거나, 잘 모를 때 멋모르고 결혼을 했다고 말하거나, 아이 때문에 코가 꿰였다고 말하거나. 결혼 생활은 어떤 모종의 규범에 어긋난 것이므로, 감추고 '변명'해야하는, 어떤 수치였다. 물론 결혼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의 대립, 결혼의 제도성과 폭력성, 배타성 등에 대해 모르는 바도 아니었고,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규범이 있다는 것도 이해를 하고 있었지만, 당시 나는 그걸 개인의 삶에 갖다 대는 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좀 미워하기도 했다.

사실 그걸 '공격'으로 이해했던 건, 어디까지나 프라이버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 주관에서 우러나온 것일 뿐이다. 물론 그 사람들이 던졌던 질문이 진짜로 인신 공격에 가까웠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질문들이 위에 인용한 부분과 관련이 있는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기혼' + 여성학자라는 조합이 그만큼 예외적이고 눈에 띄는 공식이라는 것이며, 이는 비단 여성학자의 문제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전문적이라고 간주되는 직업을 가진 이들 모두에게 해당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 말이다. 우리 사회의 부박한 성별 구조를 다시금 드러내고 증명하는.. (분절되어 따로 놀던 경험과 지식이 통합되는구나 ㅎㅎ)

평등한 개인과 개인으로 구성된 세계를 창조하는, 그러니까, 불평등한 사회가 우리에게 강제로 입힌 옷을 벗어버리고, 평등한 개인과 개인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아무래도 판타지일 것이다. 여전히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판타지. 물론 판타지라고 해서 나쁘다거나 비현실적이라는 게 아니다. 왜냐면 판타지는 낭만의 언어이자 비판과 가능성의 언어이며, 개인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형식이자, 하나의 유기체가 대중무리가 아닌 다른 개인 유기체를 발견하고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 역시도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성적 구조를 반영한다는 사실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어제는 어떤 대학원생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실천>에 대해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입학하는 대학원이다. 실제 시민사회운동을 하면서, 혹은 활동가 정체성을 강하게 지향하는 이들이 모여서 함께 공부하고 학위를 따는 곳이다. 활동가에게도 학위가 요구되는 사회니까.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학위가 계급이 되는 사회니까. 어쨌든 그 블로그를 2시간이 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왠지 좀 초조해졌다. 불평등의 문제를 직접 다루는 것보다는, 불평등이란게 무엇인지 그리고 불평등이 가능한 조건부터 따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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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스크랩 / 2010/06/16 10:34
어제 번역을 시작했던 데이비드 하비의 에세이였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무실에서 아침에 검색을 해보니까 이미 어떤 훌륭한 분이 멋지게 번역을 해놓으셨다구(..) 게다가 내가 조금 번역 했던 부분과 비교해봐도 훨씬 매끄럽게 번역하신 것 같다. 역시 번역가는 다르구나 싶고 ㅎㅎ 나는 꼬꼬마니까 번역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마음도 들고하여 멋대로 스크랩해왔다. 글 자체의 내용도 괜찮은 편인 것 같고. 특히 용산참사나 최근에도 눈에 띄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재개발, 그리고 최대규모의 토목질을 목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읽기에 적당한 부분이 있다.

사실 특정한 '결정론'의 입장을 가진 사람의 글은 아주 명쾌하게 읽힌다. 모든 모순과 갈등의 원인이 특정한 결정적 모순으로 수렴하니까, 논리가 간명할 수밖에 없다. 데이비드 하비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도 결국에는 유물론자이자 경제결정론자라고 할 수 있지. 그러나 결정론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내공을 가진 건 아니니까, 하비 같은 결정론자라면 즐겁게 글을 읽을 수 있다. (원래는 다시는 이런 종류의 글은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정작 읽으니 재밌더라고 ㅠㅠ)

그나저나 나는 뭐를 번역하면 좋나. 요즘 같이 마음이 복잡하고 우울할 땐 역시 번역만한게 없는데. 네시간이고 다섯시간이고 쉽게 몰입할 수 있고, 그렇게 번역을 하고 나면 탈진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되는데 말이지. 이런저런 글을 뒤지다가 하비의 글이 제일 만만해서 선택했던건데, 이렇게 번역 결과가 있으니 어쩌면 좋나. 그럼 나는 뭐를 번역하면 좋으려나? 게일 루빈이나 버틀러의 에세이는 너무 어려워 오역의 부담이 크고, 뉴레프트리뷰에 있는 에세이들은 잠깐 시간내서 읽기엔 재밌지만 대체로 오래 두고 보기엔 좀 약하고... 크르릉......

참. 네이버에서 이택광 교수가 연재하는 <인상파 아틀리에>의 초창기를 보면, 글의 내용에 등장하는 오스망 남작의 파리 재건축 계획이 어떻게 당시 파리의 회화와 풍속에 연결되는지를 아쉽게나마 읽을 수 있다.


* * * * *

출처 : http://blog.naver.com/ecopeace/10038638164 (다른 곳으로 스크랩하지 마세요)

뉴레프트리뷰NLR 53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우리는 인권이라는 이상이 정치적, 윤리적 공간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데 있어 인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데도 주위에 돌아다니는 인권 개념 대부분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자유주의적/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나 현재 지배적인 합법성 및 정부활동에 근본적인 도전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사유재산권과 이윤에 대한 권리가 다른 모든 권리에 앞서는 세계에 살게 되었다. 이 글에서 나는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이제까지 잘 논의되지 않았던 색다른 종류의 인권에 대해 파헤치고자 한다.

「도시에 대한 권리」계속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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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독서노트 / 2010/06/15 09:13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은 매우 잘 알려진 심리학 실험 중에 하나다. 실험의 개요는 이렇다. 사람들을 실험실로 초대해서, 처벌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다고 배경을 깔아둔다. 초대된 사람은 '피험자'가 된다. 다른 초대자도 같이 등장하지만, 그는 '희생자'로 역할이 결정된 배우이다. '피험자'는 선생이 되어 희생자가 문제에 오답을 말할 경우 전기 충격을 주게 된다. 최소 15V에서 최대 450V까지 버튼이 있다. 물론 전기 충격은 가짜다. 희생자는 연기를 할 뿐이고, 피험자는 실험자의 사전 지시와 독려에 따라 버튼을 누르면 되는 일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사전 설문조사에서는 10%도 안되는 사람들이 최대 전압까지 충격을 줄거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엄청난 결과가 나왔다. 무려 65%나 되는 사람들이 희생자에게 450V까지 충격을 줬던 것이다. 나머지 35%의 사람들도 실험 도중에 중단했을 뿐, 희생자에게 전기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의 복종 실험이다. 물론 그의 책 <권위에 대한 복종>은 이 실험에 대한 자세한 소개, 그리고 실험 결과에 대한 그의 세세한 분석도 함께 수록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복종은 불가피한 것일까? 복종은 어떤 맥락에서 일어날까? 복종의 맥락에 들어가면 개인들은 어떤 변화를 겪을까? 복종하는 개인은 자율적인 개인과 어떻게 다를까? 복종은 어떤 경우에 유지되며 어떻게 정당화 될까? 밀그램이 드러내는 바가 너무 많아서 요약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상황에서는 가치와 도덕이 행동의 유일한 원천이 아니다"라는 점일 것이다. 즉 자신의 도덕적 신념이 어떻고, 자아이상이 어떠하든 상관 없이, 실제 상황에서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힘에 있어서, 가치는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성장배경, 권위체계, 이데올로기, 상황, 심리적 압박 등이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권위 있는 실험자(예일대 연구자, 하얀 제복, 과학자)의 지시에 따라 위험하다 싶을 정도의 전기 충격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희생자가 심장에 병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실험을 중단하라고 외쳐도, 심지어 기절한 것처럼 보여도 말이다.


밀그램이 분석하는 '복종의 선행조건'은 이렇다. 복종하는 개인은, ⓐ 가족(도덕적 명령을 처음 배우는 곳. 부모는 도덕적인 명령을 아이에게 하는 것을 통해 1) 구체적인 도덕적 내용을 2) 명령과 권위자에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 제도적 환경(학교라는 제도적 권위와 선생과의 관계라는 일상적 권위체계 하에서, 아이들은 조직의 틀에서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 ⓒ 보상(복종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구체적 보상이 있다. 승진이 대표적인 예인데, 승진은 개인에게 만족감을 줌과 동시에 권위체계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제도이다)이라는 일반적인 선행 조건을 갖는다. 그리고 구체적인 맥락에 와서는 ⓐ 권위에 대한 지각(권위는 맥락 안에서만 유효하며, 이 권위는 개인이 가진 특성이 아니라 사회구조가 부여하는 비인격적인 지위에 따라 부과된다), ⓑ 권위체계로의 진입(권위를 지각함과 동시에 나와 관련이 깊은 권위자라는 걸 인식하면 권위체계로 진입한다), ⓒ 권위자의 명령과 기능의 조화(권위자가 발휘하는 기능과 실제 명령은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아무리 권위가 있는 사람이라도 사적인 애정까지 명령할 순 없다), ⓓ 강력한 이데올로기(상황의 통제자는 합법적이어야 한다.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은 훌륭한 합법적 이데올로기로 사람들의 자발적 복종을 확보한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승인된 자발적 동의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으며, 거대한 비용지출 없이는 붕괴하지 않는다) 등에 의해 복종은 유지된다.

이렇게 복종하는 개인은, 자율적으로 기능하는(자신의 행동 자체에 자기 스스로 책임을 지는) 개인이기를 멈추고 밀그램이 <대리자적 상태(agentic state)>라 부르는 상태로 진입한다. 이런 상태에 진입한 개인은 평소의 성격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게 되고, 이 개인들은 대리자적 상태에 진입한 자신의 모습을 '진정한' 자기의 모습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일단 대리자적 상태에 들어서면 개인들은 권위자의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가 될 뿐이다. 대리자적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 조율(권위자는 구체적인 일반 개인들보다 더 강한 초인적 특성을 가진 인간으로 재정의 되는 조율을 거친다. 반대로 폭력의 희생자들은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된다. 권위자의 말만이 '들을 만한 것'으로 인지된다), ⓑ 상황의 의미를 재정의(권위자는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통제한다. 이는 공식적 해석이 되며, 한 번 상황이 정의되면 그 상황의 논리에 따라 행동을 하는 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를 '프레임'이라 봐도 좋다) 하며, ⓒ 책임감의 상실(복종하는 사람들은 권위자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느끼지만, 지시한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잃는다. 하급자는 권위자가 요구한 행동을 수행한 여부에 따라 수치심이나 성취감을 느낀다)을 거치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리자적 상태로 진입해 권위자에 복종하면서 책임감을 상실하게 된 개인들은, 어떻게 이 상황에 계속 구속되는 걸까? 밀그램은 크게 세 가지 정도를 지적한다. 하나는 ⓐ 행동의 순차적 특성이다. 즉 초기에는 권위자의 명령에 도덕적인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행동을 반복함에 따라 그 행동을 계속하는데 불편함을 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인지불균형이론 같은 느낌을 주는데, 개인들은 상황과 신념이 모순되는 상황에 처하면, 모순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바꾸기 어려운 상황보다 훨씬 더 바꾸기 쉬운 신념을 바꾼다는 것이다. 신념을 바꾸면 모순은 쉽게 해소되고 상황은 정당화 된다. 그렇게 초기의 도덕적 불편함은 연쇄되는 후속 행동으로 중화되며, 이는 전기 충격이나 학살 같은 파괴적 행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다른 하나는 ⓑ 상황적 의무이다. 모든 상황에는 행동을 규제하는 상황적 불문율이 있는데, 일단 상황이 규정되면 그 상황에 대한 도전은 '도덕적 위반'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의무와 위반의 경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회화된 존재들이다. 그래서 복종하는 사람들은 대개 권위자(권위를 지녔다고 인식되는 사람들)의 면전에서 권위자를 거부하는 걸 지극히 어려워 한다. 이에 대해서는 밀그램이 제시하는 일상적인 실험도 있다. 대학생이라면 교수에게 찾아가서 '교수님'이라는 호칭 떼고 이름만 불러보라는 것이다(어이, 김 교수, 혹은 조XX씨!). 그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면, 상황적 의무가 개인들을 얼마나 구속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인들은 이 위반과 위반에 따르는 긴장을 피하기 위해 차선책으로 복종을 선택한다. 또한 권위자를 부정하는 것은 권위자보다는 피험자에게 감정적 동요를 주는 것으로, 피험자에게 훨씬 더 고통스럽고 상처를 주는 일이다. 도덕적 위반일 뿐 아니라, 어떤 접대를 받아야 마땅할 권위자에게 해당하는 접대를 하지 않아서 상처를 줬다는 느낌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 불안이 있다. 권위자에 대한 규칙을 위반하는 건 개인들에게, 자기 파괴적이고 자기 위협적인 감정을 유발한다. 즉 나 혼자만 조직을 붕괴시키고 질서를 교란한다는 불안감이다.


책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이와 관련해서, 나치 독일에 복무한 사람들의 심리적 특성을 조사한 연구도 어디선가 봤었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의식이나 개인적 신념을 중화(neutralization)시키는 심리적 매커니즘에 대한 연구였다. 기억나는대로만 써 보겠다. 먼저 ⓐ 책임감의 부정(denial of responsibility)이 있다. 즉 자신이 저지른 만행은, 자기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한 결과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단지 의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밀그램 역시도 실험에서 이런 점을 지적하는데, 450V까지 전기 충격을 가한 피험자들은 오히려 희생자가 못났기 때문이라고 탓하거나, 실험자와 맺은 계약을 이행할 의무 때문이라거나, 과학의 발전에 이바지 하기 위해서 전기 충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자기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희생의 부정(denial of victim). 희생자는 공동체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로 의미화되며, 따라서 희생자에 대한 공격은 학살이나 폭력이 아니라 정당방위가 된다. ⓒ 상해의 부정(denial of injury). '학살'이 아니라 '최종 해결책', '정화(cleansing)', '목표 제거', '목표 거부', '부수적 피해' 같은 단어들이 동원되어 피냄새를 감춘다. ⓓ 인간성의 부정(denial of humanity). 희생당한 이들은 희생당해 마당한 존재들이었다고 주장한다. 비인간(subhuman), 짐승, 원숭이 같은 단어들을 동원하면서 희생자들의 인간성을 부정한다. ⓔ 비난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condemning the condemners). 희생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비난한다. 예컨대 과거사를 들먹이면서 너희들은 우리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더 높은 가치에 호소하기(appealing to higher loyalties).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충성', '의무', '신성' 같은 가치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책임감과 도덕적 견실함을 유지한다. (이런 걸 보면 꼭 한국의 꼴보수우파들이 생각난다니까-_-)

당연히 이러한 실험을 보고 있자면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이히만 같은 독일 나치 전범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정신병자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믿기 싫은 주장. 그러나 이러한 실험과 분석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신념과 다르게 어떻게 복종에 충실히 복무하게 되며, 그 복종의 결과를 어떻게 부인하면서 심지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까지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체제가 저지르는 거대한 폭력과 권위 앞에서, 우리는 개인이기를 포기하고 권위자의 대리자가 되어야 할 뿐일까? 선택권 따위는 없을까?


스탠리 밀그램은 여러 차례 변형 실험을 통해, 단지 복종할 뿐인 개인이 아니라 저항하는 개인의 모습도 보여준다. 예컨대 처음에 말했던, 450V까지 충격을 가한 65%의 사람들은 희생자의 모습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실험을 진행했다(원격조건). 희생자는 격리되어 있고, 피험자는 희생자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만 느꼈다. 여기서는 35%의 사람들만이 실험 도중에 저항했다. 상황이 조금 바뀌어 희생자가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자, 37.5%의 사람들이 저항했다(음성반응 조건). 희생자를 같은 방 안에 두자 60%의 사람들이 저항했으며(근접성 조건), 희생자가 전기 충격을 받기 위해서는 실험자가 직접 희생자의 몸을 만져야 되는 조건에서는 70%의 사람들이 저항했다(접촉-근접성 조건).

그리고 피험자들에게 전기 충격의 강도를 선택할 기회를 주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낮은 최소한의 전기충격만을 가했다. 한편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험 도중에 극도의 '긴장'을 보여준다. 이러한 긴장은 피험자들이 실험에 진지하게 임했다는 것과, 자신이 저지르는 행동이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긴장은 피험자의 약점보다는, 오히려 권위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에서 실천되는가를 증명하는 것으로 권위의 약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권위자의 눈만 현장에 없으면 대체로 피험자들은 충격을 주기를 거부하거나 실험자를 속였다). 또한 밀그램은 '집단 효과'라는 희망도 보여준다. 동료를 추가해서 실험했을 경우, 동료가 저항을 시작하자 동조 효과에 의해 놀랍게도 40명 중에 36명이 실험에 반항했다. 밀그램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상호 지지하는 것은 과도한 권위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방어벽"이라고 주장한다. 즉, 실험의 결과에 충격을 받을 순 있지만, 그들의 도덕성을 의심할 것 까지는 없다. 우리는 상황 속의 인간이지, 도덕적으로만 존재하는 인간은 아니므로.


그러나 밀그램은 또한 현대 관료사회에서는, 파괴적인 목적을 위해 권위를 동원하더라도 <직접> 수행하는 경우가 드물어 폭력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첫째로 과학이나 정치 같은 합법적인 권위가 폭력의 수행을 정당화 할 수 있으며, 둘째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폭력에 참여하지는 않고 중간 관리자 같은 역할만을 수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개인들은 체제에 들어가면 온전히 통합된 개인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분절으로만 존재한다. 여기서 책임감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도 권위가 저지른 폭력의 결과를 직시하지 않는다. 실제로 명령에 따라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은 매우 폭력에 둔감하고 권위에 충실한 일부의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 일부를 비난하면서 우리의 도덕적인 견실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그 폭력과 권위를 지탱하는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직면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내 도덕적 감정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폭력을 저지를 수도 있다. 순수한 악인은 드물게 존재하고 대부분은 선량한 악인들이다. 우리는 복종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고 태어났다. 그리고 "삐딱한 지적저항"은 권위와 폭력 앞에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기는 하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건 자위일 뿐이고 실제로는 오히려 권위의 의지 실현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복종은, 반복 강조하지만, 심리가 아니라 행동의 과정이자 그 결과이다.

그 밖에도 밀그램의 책에는 다소 묵시록적으로 읽히는 부분들도 굉장히 많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지금이 두 번째 독서이지만) 여전히 믿기 싫은 부분들도 있다. 그리고 그 실험이 대체로 남자들의 남자들에 대한 복종에 대한 것이라는 인식까지 오면, 조금은 더 부정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어쩌겠어. 다른 나라의 맥락에서 진행한 실험은, 오히려 복종율이 더 높게 나왔다는데. 한국에서는 훨씬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텐데.

권위의 폭력에 동조하지 않으려면 권위와의 관계를 아예 끊는 수밖에 없다는 그의 말이 새삼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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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6/13 20:10
1. 어제는 퀴퍼를 갔다 왔다. 매년 핑계만 대고 안 가다가 올해 처음 가봤다. 비가 많이 와서 부스 구경은 제대로 못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거리를 전유하고 행진한다는 건 언제든 기분이 썩 괜찮은 일이다(쫓길 때 말고!). 단체로 산책하는 것 같잖아. 트럭에 탔던 YK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고(대단해!), JH, AR, SS 같이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도 만났다. 비만 안왔으면 음료수나 맥주라도 하나씩 돌리고 잠깐 얘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비가 많이 올지 모르고 신발을 잘못 신고 갔더니, 하루 종일 젖은 양말과 신발을 신고 돌아다닌 꼴이었다.


2. 퀴퍼 전에 조조로 <하녀>를 봤는데 상당히 심심했다. 탐욕스러워야 할 장면에 진지하지 않았고, 아름다워야 할 장면에 피식 웃음이 났고, 분노해야 할 장면에 미지근했다. 대화 부분이 어설프게 쓰인 소설을 보는 것 만큼이나 괴로운 일이었다. 원작을 못 봐서 모르겠지만, 원작을 리메이크할 정도면 제작자가 감동이나 영감을 받았다는 얘기인데, 어느 부분에서 그랬을까? 리메이크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시대 배경을 옮겨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3.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내가 이런 저런 이유로 포기했던 과거에는 늘 죄책감을 안고 가게 된다. 그런 과거들은 삶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튀어 나와 내 옆에 우뚝 선다. 오늘도 어떤 과거의 최근 소식을, 매우 간접적으로 접했다. 한 때 정말 1년 정도는 계속 고민했던 것과 관련이 되는 과거였다. 그건 나의 삶에 매우 밀접하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내 의사와는 상관 없이 어떤 중대한 결정이 나면서 그 과거는 내 삶과 거리가 아주 급속히 멀어져 버렸다. 내 욕심, 내 안위, 내 이해관계에 유리한 것을 따지기 시작하자, 당시 1년 간의 고민은 단지 헛짓이자 죄책감의 근원이 될 뿐이었다.


4. 우연히 초등학교 6학년 때 일기장이랑, 중학교 1학년 때 어떤 캠프가서 작성한 '자기성장' 어쩌고 하는 기록장을 발견했다. 일기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컴퓨터 대회를 준비하러 6시 쯤 학원에 갔다가 선생님이 문제를 안주고 게임만 하길래 나도 밤 10시까지 게임만 했다는 내용이었다. 왜 문제를 안푸느냐고 선생님이 묻자 선생님이 게임만 해서,라고 답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어렸을때부터 남 탓은 잘 했었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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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6/10 21:53
사무실에 출근해서 오늘 오후에 있을 일들을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가득 받고 있는데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강아지가 죽었다는 문자였다. 어떻게 해얄지 모르겠다고. 처음에는 이해를 못해서 잠깐 눈꺼풀만 끔벅끔벅했는데, 곧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알 것 같았다. 집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시든 것이다. 올해 들어서 세 번째, 내가 집에 잠시 살게 된 걸로 따지면 네 번째로 말이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너무너무 건강해서 마당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강아지였는데, 너무너무 사람에게 들러붙길 좋아해서 그제 아침만 해도 스스로 발 밑에 들어와 밟히곤 하던 강아지였는데, 갑자기 죽다니 믿기 어려웠다. 거짓말이면 정말 화내려고 전화해봤는데, 동생 목소리에도 물기가 있는 걸로 보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벌써 파리가 꼬이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무덤을 만들어 줄수는 없겠냐고 하니까 못 하겠다고 했다.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때까지 잠깐 박스로라도 덮어서 파리는 안 꼬이게 해달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에 와서 보니 육개장 라면 박스가 마당 한 구석에 있었다. 그리고 벌어진 틈새로 보이는, 움직이지 않는 갈색 털뭉치.. 죽은 몸은 잠자는 몸과는 달랐다. 숨을 쉬지 않는 작은 몸은 어쩜 그렇게 쉽게 눈에 띄는건지..

슬프기 보단 화가 났다. 출근에 과외에 입시 준비에 바쁜 척 굴었던 나는 이 강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남 탓부터 하고 보는 나로서는, 이 강아지에게 사람들이 가했던 온갖 '학대'들이 먼저 떠올랐다. 먹을 걸 절제를 못하는 개에게 잘 먹는다고 마구 부어준 먹거리들, 똥을 아무데나 싼다며 내려치던 것들, 등등. 입에 독설들이 차올랐다. 같이 살고 있는 다른 강아지에게 내뱉을 말들, 엄마 아빠 동생 등 이 강아지와 관계했기에 강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쏟아낼 독설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향한 독설. 혀 뿌리에 보라빛 피가 쏠리는 듯 했고 터져버릴 것처럼 아팠다. 그러나 내뱉는 순간 누가 다치게 될지는 뻔히 알았기 때문에ㅡ바로 나ㅡ말을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갑자기 죽었을까, 하는 질문은 정말 쓸모가 없다. 제발 집에 다시는 생명을 들이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집에 다시는 동물을 들이지 말자고 말을 해놓은 상태다. 나도 내가 완전히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는, 절대 다른 생명과 같이 살지는 않을 것이다. 다들 너무나 무책임하다. 

무력함을 느낀다. 언제나 현재만을 살아왔고 가끔 과거라는 기억의 쓰레기장을 들여다 보며 살았던 나로서는 생로병사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 태어나는 생명을 알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을 알지 못하며, 병이 들어보지도 병든 사람을 간호하지도 못했으며, 죽은 이와 대면한 적도 없다. 어느 것 하나에도 진짜 책임감을 갖지 못했다. 억울하고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단순한 분노와 슬픔을 느낄 뿐, 정확히 어떻게 해야는지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표현도 없다. 그래서 애도도 없다.

그냥 꿀꺽, 무거운 침 한번 아프게 삼키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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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조각들 / 2010/06/09 23:06
기사 링크 : <곽노현의 '탈권위', 서울 교육청 '긴장'>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6070022485&code=940401

권위는 개인의 됨됨, 성품, 지식, 인성 같은데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들먹이며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줄 것을 요구하는 권위주의자들은 그냥 스놉들처럼 보일 뿐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경기 교육감은 참 잘 되었다며 기뻐하던 중에 위에 링크한 기사를 읽어서 더 기뻤다. 온화한 외모 만큼이나 일상적인 자리에서의 행실도 참 고까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 또 학생들을 실제로 어떻게 대할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저런 사람도 정말이지 드무니까.

한편 씁쓸했던 건 그의 '탈권위'적인 언행 앞에서 '긴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탈권위'적인 행동을, 교육청 직원들은 새로운 '권위'로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탈권위 역시도 하나의 권력이자 권위가 되는 상황이다. 곽노현 교육감 당선자가 얼마나 탈권위적이고 실제로 권위에 반대하든지 상관없이, 그의 임기 동안 사람들은 새 수장의 방식에 적응하게 될테지만 궁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다음 교육감 당선자가 전통적인 권위적 인물이라면, 교육청 사람들은 이내 거기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물론 지난 대선 결과가 말해 주듯, 선거 한 방, 당선자 1인으로 공직 관료 문화가 바뀔리도 없을 것이다. 대선 한 방에 관료 문화는 얼마나 빠르게 바뀌었는가.

한국 사회에서 탈권위적으로 살려는 노력은 쉽게 좌초하기 마련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학생들을 대할 때 탈권위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처음엔 좀 긴장 관계가 유지되지만(대체로 새로운 방식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훨씬 더 자유롭고 편하게 수업을 할 수 있고 관계도 맺을 수 있다. 탈권위라고 해서 권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훈육가로서 교사의 권위를 벗고(탈권위) 좀 더 인격화된 옷을 입으면 일상적인 관계를 맺는데 훨씬 더 유리할 때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돌발 사건은 생기기 마련이고, 화가 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럴 때 교사의 분노나 포지션은 탈권위적 관계를 쉽게 전통적 권위의 모습으로 재배치해 버린다. 어쨌든 전통적인 권위와 탈권위를 선택할 수 있는 건 학생들이 아니라 교사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교실에서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권력자이다. 곽 당선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떤 책에서 조금 마음 아프게 읽었던 부분이 있었다. 흑인 노예제도가 온전히 살아 있던 미국의 맥락에서 백인 여성 '주인'과 흑인 여성 '노예' 사이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였다. 소수의 마음씨 좋은 백인 여성 '주인'은, 백인 남성들이 지배하는 일상의 맥락에서 자신들의 편이 되어주곤 했던 흑인 여성 '노예'들과 인간애적인 우정을 만들어 나간다. 친구까진 아니더라도, 흑인 노예 '유모'에 대한 추억을 미화하는 내러티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노예'들의 삶은 언제나 불안정한 것이었기에, 이들의 우정도 시한부 우정에 지나지 않았다. 많은 백인 여성 '주인'들은 아름답고 진정했던 짧은 '노예'와의 우정에 대해서 썼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주인'의 입장에 지나지 않았다. 이 여성 '노예'들은 물론 이런 소수의 맘씨 좋은 백인 '주인'에게 호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이 백인 '주인'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 흑인 '노예'들이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면ㅡ특히 권력 관계의 변화를 원하는 듯 보일 때면ㅡ백인 여성 '주인'들은 대개 다시 '주인'의 입장에서 이들을 벌하고 억압했다. 인격적인 관계조차 노예제도와 인종주의의 맥락에서는 변덕스러운 한 개인의 선택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 고어에서 'free'가 자유라는 뜻과 함께 관계/우정이라는 뜻이 있었다는 점도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는 것 같다. 개인들을 분별하고 권력을 차등 분배하는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않은 개인들은, 관계와 우정을 맺을 수 없다는 것. 스놉의 정의가 '타인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타인을 정의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스노보크라시에서는 자리를 넘어 관계와 우정을 맺을 방법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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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조각들 / 2010/06/09 16:29
(뻘글 경보!)

ㅈㅅ의 트윗을 통해 한 때 오래 몸 담았던 동아리(?)의 발족 취지문을 발견하고 처음 들었던 감정은 역시 막연함, 두 번째는 먹먹함, 세 번째는 약간의 우울함이었다. 그 세 가지의 감정이 짧은 시간에 순서를 거치며 스쳐 지나갔고, 이내 뒤섞이면서 마음 속에 작은 물방울 자국들을 남겼다. '막연함'이라는 건 내가 거쳐올 수 없었던 세계에서 있었던 일이기 때문일 것이고, '먹먹함'이라는 건 그 세계에서는 이렇게 통할 수 있었던 것이 내가 속한 세계에서는 왜 이토록 답답한 일이어야 했으며 한편 그 세계는 어디로 또 왜 그렇게 빠르게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울함'은, 지금 내가 속한 세계에서는 가능한 것이 별로 없지 않냐는 약간의 좌절감과 그 세계에 대한 막연한 질투 섞인 환상, 그리고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이 세계에서 하기 위해서는 그런 우울함을 극복하고 완전히 새로운 직물을 짜야하지 않겠냐는 다소 부담스러운 의식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지금으로서는 다 부담스러운 짐짝이다.

물론 그 세계를 미화하는 건 올바르지 못하다. 전혀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았고, 반성 없이 행해진 폭력들도 많았다. 그 세계가 낳은 세계도 그리 썩 훌륭한 편도 아니었다. 그 세계가 남긴 유산이나 그 세계의 상속자들,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지만, 그 세계에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게 있다면, 어떤 사고와 행동을 지배했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바로 형식일 것이다. 이는 이를테면 낭만주의적 사고라 할 수 있겠지. 보수적인 사상가로 알려진 이사야 벌린이 정의한 바에 따르면, "의지의 필연성", "사물의 구조의 부재"로 크게 묶을 수 있는 낭만주의.

'삶'과 나이주의에 치여서 젊은 시절의 낭만주의를 잃는다는 건, 가장 진부한 라이프 스토리다. 여기에 "젊은 시절 맑시스트가 아니었던 사람은 바보"라는 식의 해괴한 말을 대입하는 건, 앞서 언급한 낭만주의 정의와 상충하는 것이다. 낭만주의는 맑시즘이라는 '파파', 아니 '그랜드 파파' 같은 계보/구조를 요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자들은 계보나 족보 따위는 자발적으로 버린지 오래된 이념적 고아들이고, 공모를 바라지만 연대를 강요하지 않는 실천파 길고양이들이다. 끝.


덧) 하지만... 반성하지 않는 낭만주의는 이사야 벌린의 책을 번역한 강 모씨의 표현에 따르면 '지랄'이기 때문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써놓으면 꼭 철 없이 구는 운동권 아저씨들이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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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6/07 14:28
1. 글이 읽히고 쓰이는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특정한 파토스를 공유한 글들이 널리 읽히고 또 쓰일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해서. 새로운 세대는 늘 새로운 번역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우리가 읽고 쓰는 글들도 마찬가지로 세대, 환경, 물질/사회심리적 조건들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조건에서는 어떤 성격의 파토스가 공유되고 있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간 오늘날은 이삼십여년 전 글들이 읽히고 쓰였던 조건인 진정성, 정치, 운동(movement), 연대, 투신/기투 같은 것과는 거의 관련이 없게 된 것 같다. (이거, 무척 새삼스럽고 진부하네.) 하여간, 그건 이를테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올바르고 아름답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대체로 좀 고색창연하고 머리 아프거나 어려운 것이 되었다.
 
대신 오늘날에는 훨씬 세련된 윤리나 삶, 스타일 같은 것으로 거시적인 초점이 이동했다. '연대solidarity'에서 공동체로, 정치에서 윤리로, 기투에서 참여로, 죽음에서 생으로, 애도에서 행복으로, (분명한) 책임에서 (불투명한) 죄책감으로, 등등... 그리고 현세적이고 실질적인 관점에서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더 잘 받아들여진다. 그러니까, 생활 공동체, 라이프 스타일, 생활 협동조합, 뭐 이런 것들 말이다. 또한 오늘날에는 일상의 관계에서 '가능성의 언어'를 찾아보기 어려우므로, '워크샵', '강좌', '캠프' 같은 게 더 자주 보이는 느낌이다. 일상에서의 가능성이 막혀있으니 다소 인공적인 모임으로 갈증을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인문학도 생활 속의 인문학이라기 보다는 인문학 공동체 같은 데에서 강좌를 들어야 하는 일이 되었고... '사회에 책임을 진다'기보다는, 무려 '재능 기부' 같은 말이 나오는 현실이고...

사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나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우울하고 허탈하고...
암튼 좀 그렇다. 이건, 뭐 내가 촌스러운 거지.


2. 여하간 나는 어떤 글들을 써달라는 요청을 몇몇 사람들에게 보냈고, 그에 대한 응답은 전혀 받지 못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책보다는 남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인데도, 이번에는 스스로에게 좀 회의가 들었다고 해야 하나. 확실히 이건 과오이자 일종의 착각이기도 했다. 시도 자체가 돌이켜보면 좀 나이브한 측면도 있었고. 일단은 던졌던 질문 자체가 막연하고 어려웠다. 또한 그 질문이 써달라고 요구하는 답변 자체도, 더군다나 오늘날에는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이었다. 질문이 좋은 질문도 아니었지만, 써야하는 글 자체도 위에서 말한 것과 비슷하게 오늘날과 시차가 좀 있는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그리고 내가 보냈던 메일 자체가 풍기는 애매모호한 분위기도 한 몫했을 것이다. 또한 이메일이라는 형식도 그렇고, 추가로 요구했던 사항도 부담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것이 쉽게 통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니까. 이렇게 된 원인이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가장 마음 편하게 보자면, 그냥 깜빡하셨을 수도 있고, 바쁘셨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적확한 원인이야 앞으로도 영영 모를 수밖에 없겠지. 하여튼 오늘 잠시 통화한 ㅇ쌤은, 그 요청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좀 걸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결국엔 알쏭달쏭한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전화로 얘기했던지라 다소 막연하게 들렸지만, 무언지는 조금 알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어쨌거나 나는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힘이 빠진다거나 하진 않고, 오히려 조금 힘이 생기는 것 같다.


3.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문자가 전달하는 내용은 실제로 전달될 수 있는 내용에 비하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어떤 과격한 연구에 따르면, 문자로만 전달했을 때는 실제로 전달할 수 있는 단서의 30%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맥락에 상당히 의존하기 때문이다. 문자메세지를 받고서 송신자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웠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지. 그런데 나에게는 전화도 마찬가지다. 전화는 음성이라는 단서가 추가되기는 했어도, 문자메세지보다 더 나은 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확실히 전화로 얘기하면 이런 저런 공백이 많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전화도 싫고 문자도 싫다. 근데 그것 말고 뭐 다른 방법이 있기는 하단 말인가?


4. 나는 자주 아프거나 한 사람이 아닌데, 어제는 좀 심하게 체했었다. 점심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후에 뭔가 얹힌 것 같고 머리가 살살 아파왔다.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누워만 있다가 잠깐 자고 일어나니 체했다는 게 확- 느껴졌다. 4시 쯤에 아예 이불 깔고 누워서 한숨만 쉬고 있다가, 동생이 준 이상한 한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중간 중간 자꾸 깨면서 아침 7시 반까지 잠만 계속 잤다. 잠을 자면서도 뭔가 이상한 꿈들을 많이 꾸었다. 꿈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잠이 잠깐 깰 때면, 몸은 축 늘어져 있었지만 마음은 너무나 또렷해서, 머리 속에 여러 가지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음에 걸렸지만 해결되지 못한 일들, 마음에 걸리는 일들, 소소히 걱정되는 일들 같은 것. 그것들 생각하느라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렇게 골머리를 썩다가도 다시 잠들고, 꿈 꾸고, 다시 깨어나서 머리 깨져라 고민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아침이 밝아왔다. 그런데 그런 긴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생각나지 않았다는 게, 조금 싫었다. 그냥 어딘가가 아프면 사람들을 잊고 자기에게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겠지.


5. 오늘을 마지막으로 구제역 근무가 끝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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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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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6/03 22:03

나는 교생 갈 때 정장을 입고 오라는 게(교생 때 맞추어 사는 정장은 사범대생들에겐 어떤 통과의례 비슷한 것이다) 속 뒤집힐 정도로 싫었고, 대학 졸업식도 단지 정장을 입는 게 싫어서 가지 않으려 했었다. 단언컨대 나는 정장이 정말 싫다. 정장을 입은 사람도 싫고, 내가 입어야 되는 상황도 싫다. 정장이 상징하는 보수성이나 어떤 체제의 권위, 질서, 통제 같은 것이 정말 싫다. 정장을 입는 순간, 나는 적어도 그 체제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그 체제에 이미 소속된 사람이다. 왜냐하면 옷을 입는 스타일과 취향은 우리 몸과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옷을 입었을 때 우리 몸은 나의 취향과 감수성을 타인에게 전시한다. 나의 옷은 특정한 방식으로 타인들의 인정을 요구하고, 또 인정을 받게 된다. 설령 그것이 실제로 인정 받는 것이 아니라, 현상학적으로 단지 나에게 지각된 것일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정장이 부여하는 취향과 감수성을, 단지 '아 싫어-' 정도가 아니라 physically 하게 싫어한다. 정장을 만지기만 해도 몸에 소름이 돋는 식이다.

사실 복장을 순수한 '자기 취향'에 따라 입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느 광고에 나오듯 낯간지럽게 "내 스따일이야"라는 식으로 말하더라도, 그건 나의 스타일을 '멋진 것'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에 가깝다. 당연히 옷은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게 아니다. 심지어 학부 캠퍼스에서 얼핏 자유로워보이는 캐주얼이 아닌 정장을 입으면 무슨 일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회사원들은 회사 동료와 상사의 요구나 사무실이라는 공간질서가 요구하는 규범에 맞게 자기가 입을 옷을 조율하게 될 것이다. 홍대입구역 5번 출구에 많이 보이는 귀엽고 활기찬 젊은 아기들도 마찬가지로 홍대스러움에 조율을 한 옷을 입는다. 그래서 자기들이 회사원이라는 것(출퇴근 시간 준수, 근무 규율 준수 따위를 상징하는)을 드러내고, 홍대인이라는 사실(젊음, 음악, 세련된 인디 소비문화 등을 상징하는)을 드러낸다. 회사원들도 그렇고 홍대 베이비들도 그렇고 자기들이 보기엔 각자 다른 취향을 추구하고 있겠다고 생각할 순 있겠지만, 밖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순수한 자기 취향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여하튼 나는 정장이 싫다는 것이다.

조만간 면접을 봐야할 일이 있는데 그 면접 자리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장을 입고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수 몇 사람을 앞에 두고 약 10분 정도 면접 및 구술고사를 보는 자리다. 물론 수험생 주의사항에 정장을 입고 오라는 얘기는 없지만, peer pressure도 무시할 수 없는 잠재적인(감추어진) 요구사항이다. 교수들이 면접자의 옷차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이 신경을 쓰는지 안 쓰는지 알 수 있을 리 없고, 만약 교수들이 의외성을 싫어하거나 내 옷 입는 취향을 싫어해서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어 떨어지더라도 알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무난한 선택은 당연히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입고 가는 것 일테다. 스트레스 받고 신경 쓰여서, 지금 거의 돌아버릴 것 같아서 쓰는 글이다. 이런 현상은 학과가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학과여서 그런 걸까, 혹은 다른 학과들도 다 그런 걸까? 아니면 학교의 특성일까? 아니면 대학원이라는 공간의 특성일까?

예전에 무슨 방송연예채용박람회였나에서, 무한도전 김태호 PD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강연 자체는 아쉬웠던 점이 많았지만(본인도 어디 인터뷰에서 망한 강연이라고 했지ㅎㅎ), 자기는 모두가 정장을 입고 방송사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염색 한 머리에 귀걸이를 차고 청바지를 입은 채 들어간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그게 정말이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는 강연을 올 때도 뒤에 커다란 검은 백팩을 찬 채 자유로워 보이는 복장으로 등장했었다. 내가 한 때 방송사 입사를 동경했었다면 바로 그런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니까, 정장 따위는 안 입어도 되는 것 말이다. 여하튼 나는 정장이 싫다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대학원을 너무 편하게 생각했나봐. 하지만 난 그냥 늘 입던대로 입고 갈거야. 이것 때문에 떨어진다고 하면 다시 생각은 해보겠지만 으으.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힌다 화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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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6/01 23:39
내일은 선거 날. 이곳은 몇년 간 자유선진당이 득세해 오던 곳인데, 이번엔 어떻게 판세가 바뀔지 모른다고 한다. "충남정당" 자유선진당이 충남-대전 선거에서 패배한다는 건 좋은 신호라 생각한다. 원래 충청도는 지역색이 애매한 곳. 사투리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뭔가 밍숭맹숭한 곳. 그 와중에 자유선진당이 지역정당을 자임해 왔는데(자선당은 이번 선거에서도 "충남의 자존심"에 호소한다), 이번에 선거에서 자리를 우수수 빼앗기면 어떻게 권력이 재배치 될지 참 궁금하다. 더 이상 지역색을 입지 말고 좀 빼보자고. 파란색은 싫다고!

트위터에서 내가 팔로잉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진보신당 지지자들이다. 내 트위터만 보면 세상에는 진보신당 지지자 밖에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심상정 씨가 사퇴 선언을 했을 때 슬퍼하거나 분노했다. 한 때 진보신당에 이름만 올리고 당비만 내던 당원이었지만, 난 사람들의 말들을 그냥 지켜만 봤을 뿐. 이 상황에서 나는 슬퍼해야 하나, 아니면 분노해야 하나. 나는 그런 것을 선택하는 것조차 학습하지 못했던 걸까, 혹은 다른 이유일까.

정치라는 장에서 정당들의 색깔은, 본질적인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당 사이의 역학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것 같다.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보수파들은 계급 이해관계에 따라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을테고, 보수 정당이 내세우는 안정과 프라이드의 이미지는 이 사회의 가장 불안정한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진보 정당은 당연히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에게 어필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각 정당이 내세우는 정책 같은 건, 결국 당원들의 입김 따라 갈 수밖에 없으니까 나오는 것이지, 정당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어서 신념을 갖고 정책을 내세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보신당 같은 경우엔 정당들 중에서는 가장 훌륭하고 세련된 이념적/이론적 토대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진보신당 구성원들이나 그 정당이 존재 자체로 잘나서 그런게 아니라, 앞서 말했듯 한국 정치 정당들의 이념 스펙트럼에서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이미 규정되어 있던 어떤 상징들을 택한 것 뿐이란 생각이다. 더 삭막하게 말하자면, 다른 정당과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거. 사실 당이 내세우는 것, 면면을 따지고 들어가면 좀 진부하잖아. 이미 있던 것들이잖아. 단지 정당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신선하고 재밌고 좋은 거잖아. 실제로 내부에서 어떤 면면들이 있고 어떤 말들이 오가는지 잘 모르고 밖에서 지지하거나 욕하는 일은 참 쉬운거니까(두 스타 중에 심상정 씨는 잘 모르겠고 노회찬 씨는 몇번 구설수가 좀 있었지). 정당도 결국 이미지를 먹고 사는거고, 정당 정치도 결국 정치니까. 

내가 팔로잉 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숫적으로도 그렇고 파워로도 그렇고 사회의 소수들이니까, 그 사람들이 진보신당에 기대를 크게 갖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도 실제 객관적인 내 위치야 어떻든 마이너 지향이니까 진보신당에 호감을 갖는게 당연한 일이고. 그러므로, 그럴 일이야 10년 안엔 없겠지만 진보신당이 만약 지지율이 5~10%가 넘어가고 차츰 주류화된다면 (감히 칭하건대) '우리'들은 아마 예전 진보신당이 민노당을 나올 때 그랬듯, 치열하게 싸운 다음에 진보신당을 박차고 나와 진보진보진보신당을 기어코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니 가장 좌측에 있는 이들은 숫적으로 주류화되려 하지 말고, 자기들이 가진 생각과 언어의 힘을 키우는데 주력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숫자가 많아서, 돈이 많아서, 높은 자리에 있어서가 아니라, 가진게 고작 말 뿐이어서 오로지 말로써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


어쨌거나 나는 정당 정치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건 뭐, 정당정치는 근본적/근원적인 좌파 정치도 민주주의도 아니어서라는 둥, 선거를 통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당정치는 민중에게서 오히려 권력을 빼앗는 가짜 민주주의이며 실제로는 과두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둥, 모든 운동은 정당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둥 하는, 급진좌파를 자임하는 논객들과 같은 이유 때문에 신뢰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런 논객들에 맞서서 정당 정치의 가능성에 대해 옹호하고 싶으니까.

내가 정당 정치와 거리를 두는 가장 큰 이유는, 그냥 내 성격에 맞지 않아서다. 나는 정치적 의견을 같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비슷한 논리와 말을 구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서울에 있을 때 수없이 오던 문자와 전화, 결국엔 자동 수신거부로 넘겨 버렸던 번호들. 예전에는 이게 되게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근사근 연락을 해야하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고 외로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그렇게 연락을 회피하는 게 너무나 죄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내 일상에 그렇게 침투해 들어오는 걸 받아내는 게, 지금의 나는 너무 어려우니까.

나 같은 사람이 제대로 받아들여지는 정당도 있으면 좋겠다. 친구들이랑 만들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려나?


여하튼 낼 투표는 실수없이 잘 해야지. 대선 때 뻘줌한 표 던진거 생각하면 아직도 창피하다.

그리고 내일 결과도 무지 기대된다. 스릴 있을 것 같애. 여기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건 이미 민심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거다. 근데 여당을 지지하는 말은 공개석에선 쉽게 할 수 있지만, 야당을 지지하는 것(특히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 같은 건 스스로 검열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나는 빨갱이 아니여, 어디가서 신고하진 말어, 하면서 여당과 대통령을 아주 조심스럽게 욕한다(술이 더 들어가면 아주 적나라 하다 ㅎㅎㅎ 투표용지에 그 말들 좀 반영해주세요). 특히 천안함과 이번 선거의 북풍에 대해서, 사람들은 여전히 의혹을 많이 갖고 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고, 이제는 이 나라의 장관이라는 사람이 "그럼 믿지 않으시는 수밖에 없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신념과 선택의 영역으로 넘어 갔다. 일상에서 정부 발표를 믿는 사람은 허세 떨듯 그럼 어쩔거냐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의심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토를 달지 않고 마음 속으로만 의심한다. 반대세력이 되거나 반대의견을 내는게 그만큼 어려워진 정권이다. 불과 몇년 사이에. 내일이 지나면 어떻게 바뀌게 될까?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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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조각들 / 2010/06/01 00:23

분명 누군가들은 자기의 정체성 자체로 자기 언어를 정당화 할 수 있다. 애써서 존재를 포지셔닝 할 필요 없이, 정체성의 세계에 존재를 등록하고 발언권을 얻은 이들이, 이 사회에는 대다수다. 자신은 남성이니까 남성의 언어로 말하고, 이성애자니까 이성애자의 언어로 말하고, 백인이니까 백인의 언어로 말하고, 비장애인이니까 비장애인의 언어로 말하고, 자본가니까 자본가의 언어로 말한다. 이들의 정체성은 언어에 반영되고, 언어는 정체성을 수행적으로 강화한다. 거기에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고 정상적이며, 따라서 아무런 흠집이 없다. 자연스럽기에 애써 정당화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정당성을 얻는 언어들. 존재와 정체성을 반영하는, 투명한 언어들.

반면 아주 드문 경우 정체성 범주의 주민등록증을 거부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있었다. 그들은 정체성이라는 늪을 거부했으나 차츰 늪에 빠져드는 이들이었고, 그러면서 동시에 언어에 질식해 버리는 이들이었다. 그렇지만 섶을 지고도 불가항력에 불로 뛰어드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건, 오로지 포지셔닝 뿐이었다. 자기에게 사회적으로 할당된 정체성이 자신을 전혀 설명하지 않으므로, 그들이 의존해야 하는 건 오로지 유동적인 포지션 뿐이었다. 포지션이 없으면 언어도 없으므로, 언어가 없으면 곧 죽을 것 같았으므로.

나는 그런 이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어쩌면 매력을 느끼는 걸 넘어 동족으로 인식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이 땅 어딘가에서 트위터나 블로그 같이 작은 창 하나로 숨통을 트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금은 비로소 어딘가에 소속되어 정체성의 영주권을 받았을지도 모르고, 영악하게도 그때의 고민과 고통을 단지 한때의 성장통으로 치부해버리며 어디선가 떵떵거리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다들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다른 이들이야 날 어떻게 보든, 지금 내게 남은 것 혹은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이 포지셔닝 뿐이다. 여전히도 내게 있어서 정체성은 온안하고 온당하며 온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감옥에 가까우므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애매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유랑하는 포지셔닝은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며, 공격과 적의와 의심 앞에 깨어지고 바스라지기 쉽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뿌리 내리지 못한 언어는 성장이 없고, 안정되게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 수척하고 강퍅하며, 비바람 폭풍 앞에서는 쉽게 토대를 잃고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지금껏 나는 오로지 타인들의 환대에만 의존해 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소속될 수 없는 세계에서 일부 할당된 환대의 공간에, 환대의 언어에, 환대의 시간에, 잠시 머물며 흡혈하고 기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환대를 먹고 산다. 그러나 갈수록 자격 미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신감, 수치심, 죄책감, 무력감, 무능감, 이런 나쁜 것들이 요즘의 내 일상을 사로 잡는다. 만성적인 편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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