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샌 잠을 많이 자게 된다. 8시간 씩, 9시간 씩. 일상에서 잘 풀리는 일이 없다 보니 점점 잠으로 도피하는 것 같다. 방에서 깬 상태로 있을 때는 엎드려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뒤적인다. 새 책을 읽지 않게 된다. 예전에 좋았던 책은 보통 책귀가 많이 접혀 있다. 더 좋았던 책은 책의 앞뒤에 메모, 옮겨쓰기, 요약까지 들어 차있다. 그런 것들을 다시 읽는다. 다시 읽다보면 책귀 접힌 부분이 수정되기도 하고, 새 책귀가 접히기도 한다. 그걸 보면서 내가 겪은 변화를 짐작해 본다. 이제부터 읽을 책들은 언제 읽었나를 표시해 둬야겠다. 까먹지 않도록 아예 책 등에 표시를 해둘까?
2. 애드리언 리치(Adrienne Rich)는 영미권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책에 자주 언급되는 시인이고, 얼마 전에는 그 시인이 쓴 <The Burning of Paper Instead of Children>(링크 있음)을 감동 깊게 읽었다. 나중에 맘이 맞는 사람들 있으면 함께 리딩리스트 뽑아서 공부해봐도 좋을 시인인 것 같다. 시인데도 굳이 읽었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아무래도 연구(?)를 하면서 봐야 했기 때문에(=_=). 예전에 영문학 강의 들을 때도 시를 읽을 때면 머리를 쥐어싸곤 했는데(근데 대체 대학에서 시의 가운데를 뻥뻥 비워놓고 채우라는 시험은 왜 보는거야?). 여하튼 시가 너무 좋아서 번역을 해둘까 했는데 미천한 실력이라 조금 해보다가 그만 두었다. 그래서 그 중 가장 좋았던 부분 2가지만.
시는 미국의 평화운동가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Daniel Berrigan이 볼티모어의 재판장에서 했던 말을 제사로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나의 도덕적인 충동을 실존 밖으로 언어화해야하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I was in danger of verbalizing my moral impulses out of existence)." "충동"이라는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추진력? 여하튼 이 말을 보고 나니 <경계도시2>에 이 말이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계도시2>를 국보법 관련 이슈(한국에서는 좌파든 우파든 국보법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식의)로 보기보다는, 차라리 개인의 실존에 대한 텍스트로 읽었다. 얼마나 사람들과 사회가, 집단과 정의의 이름으로 한 사람의 실존을 무참히 짓밟을 수 있는지를 말이다. 송교수에게 자꾸만 설명하라고, 증명하라고, 결단을 내리라고 촉구하던 언론과 주변 사람들. 누구나 할 것 없이, 송교수님은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며 저마다 처방과 전략을 내어놓던 남자들. 침묵하는 법, 각각의 개개인을 '견뎌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말이 많아질수록, 말할 것을 강요 당할수록, 점점 침잠하고 잦아드는 송교수의 미간 주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다른 하나. "억압자들의 지식 / 이것은 억압자들의 언어이네 // 그러나 당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는 이 언어가 필요하네(knowledge of the oppressor / this is the oppressor's language // yet I need it to talk to you)". 미국 이주자들의 신산스러운 역사를 반영하는 것일테다.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규범적인 '표준 영어'와 소수인종이 사용하며 규범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여러 방언들의 문제도. 지식-언어-억압-권력, 그럼에도 이 언어를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순-분열-역설-자의식. 이 구절을 보고 올해 여성영화제에서 보았던 한국 단편 <파마>가 떠올랐다. <파마>는 결혼이주여성과 결혼이주여성을 맞는 한국 사회에 대한 영화다. 이주여성으로 나오는 출연자는 재밌게도, 그리고 천연덕스럽게도 한국인 연기자다. 유머와 위트를 잘 구사하는 영화인데 주제의식이나 문제의식은 정말 여러모로 묵직해서 기억에 많이 남는 영화였다. 그 중에 정말 일부분만.
이주여성은 막 입국해서 '시어머니'를 따라 재래시장의 미용실에 들어와 있다. '시어머니'는 자기가 돈을 쓰고 있다는 걸 강조하면서 이주여성에게 옷을 사주고 파마를 해주지만, 사실 이 여성의 마음에 들지도 않고 또 한국에서는 '촌스러운' 것일 뿐이다. 말이 한 마디도 안통하는 사람들은 이 여성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지만(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다루듯이 말이다. 마치 언어를 모르면 사회적으로는 '아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이. 그러니 자기들 뜻대로 막 다루고 귀여워해주고, 그러다 짜증나거나 맘에 안든다 싶으면 화를 마구 내고 혼낼 수 있다는 듯이. 이는 이주'여성'이었으니 가능했을 이야기일 것이다. 사회가 젊은 '여성'을 대하는 방식의 스펙트럼에서. 반면 흔히 이주'노동자'로 표상되는 이주'남성'들에게 한국 사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우한다), 아무것도 소통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변의 한국인들은 끝까지 이 이주여성에게 '한국어'로만 말을 건넨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범람하는 한국어는, 차라리 어떤 폭력처럼 느껴진다.
예전에 김연수 소설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주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한국 문학을 쓰게 하는게 목표라고 말한 적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를테면 한국어와 한국문학의 결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즉 한국 문단의 배타성과 주제 중심성(문학 미학에 대한 관심보다는, 문학의 주제와 작가 생애 등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문단의 관행)을 벗어날 수 있다는 요지였다. 동의할 수 있는 구절이지만, 한편으로는 난 이런 목표가 위험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주자들이 구사하는 한국어가 한국인과 한국문학에게 어떤 의미와 효용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뿐, 한국 이주자들에게 한국어가 어떤 의미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뷰는 짧았기 때문에 소설가가 하는 생각을 다 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땅에서, 한국의 지배언어인 한국어로 이주자들에게 말을 건네되, 그리고 한국어로 말을 하되, 그것이 한편으로는 "억압자들의 언어"일 '수 있다'는 점을 더 깊게 감안하지 않는다면, 한국어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될까?
3. 오랜만에 사진기를 들고 나갔음. '출사'라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 때문에 나간 것은 아님. 역시 지나친 관광지가 아닌 절은 죠쿠나~
수학/학업계획서를 쓰다 보니 왠지 모르게 우울해졌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앞으로의 계획을 최대한 '젊은이'스럽게 말하고 있는데도 우울하다니 말이다. 그나마도 짧게 쓰지도 못해서 표준 서식의 5배를 초과해서 써버렸다. 짧게 쓰지 못한 건, 결코 이 정도로는 내 원대한(ㅋㅋ) 계획을 다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5배를 넘게 쓰고 여러 번 줄이기 위해서 잘라내고 수정했지만, 실제로 구상하고 있는 것은 반도 못담았다. 그러나 계획서의 단순 길이는 애초부터 문제가 아니었다. 이보다 더 길게 썼으면 더 좌절했을 것이다. 그건 과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였을까? 처음 생각난건 계획서에서 내가 젊은이인 것처럼 열정을 가장했다는 점이었다. 즉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별로 믿지도 신뢰하지도 않는 학과 커리큘럼이 정말 재미있을 것처럼, 정말 내가 학과에 흥미있는 것처럼 글을 써야만 했고 그렇게 썼다. 학기강의계획서를 하나하나 열어보면, 몇몇 과목을 제외하고는 좀 시시하던데. 그러나 나는 거짓말을 잘하는 편이고, 또 일상에서 거짓말에 죄책감을 가진 적이 거의 없다. 거짓말 없이 어떻게 세상을 산담? 게다가 거짓말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다보면, 그 수행은 어느 새 나와 내 주변의 상황을 규정하는 힘이 된다. 그럼 거짓말은 하나의 진실이 된다. 그러니 이건 문제의 원인은 아닐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난 건, 아직 유예기간인 내가, 내 인생에서 실제로 뭔가가 '되는' 걸 거부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대학교 3~4학년들이 흔히 겪는 병이 아직도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대학원에 간다는 건 사실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교육학과에 가는 건 교육학자가 되겠다는 것이고, 특히 하위 분야에서 질적 연구를 다루는 전공에 지원하는 건 그 중에서도 마이너리티로 가는 걸 의미한다. 물론 나는 진짜로 '그 쪽'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학위는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니까. 최대한 재빨리 처리하고, 기나긴 '본 게임'에 들어가야할 하나의 예비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니까. 갈수록 구조화, 고도화, 폐쇄화 되어가는 이 제도적 몸짓의 장에 들어가야 하는게 못내 씁쓸하지만.
그러니 학위 과정, 학과에 대한 환상은 거의 없다. 다만 어딜 가든 좋은 동료, 선후배, 세미나 메이트, 교수자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만, 그래도 교육학과 교수들은 타과 교수들에 비해 낫다는 평판을 들었다. 그들은 어쨌든 교육학과에 다니니까 교육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 단순한 생각도 든다. 학과에서 케어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나는 알아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쨌든 지금 거기에서 버티고 있는 친구도 있으니, 내가 가서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은 될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 싫다. 지금의 나는 하루바삐 무엇인가가 되고 싶고, 그 무엇인가가 75%만 마음에 들고 25% 남은 내 공간을 옥죄지만 않는다면 뭐든 상관없다. 또 나 같은 사람은 100%가 가능하리라 생각하지도 않고, 100% 만족하는 순간엔 아마도 죽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이것도 문제의 원인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가 오늘에서야 그 끝없는 우울에 대한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읽던 책의 끝을 넘기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마음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내가 고학력자가 되어가는 모든 과정은 믿음을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석박사급 고학력 실업자, 학자금 빚더미와 바꾼 졸업장/학위증명서, 낮은 사회적 지위, 뭐 이런 것 때문에 학위과정에 대해 믿음을 잃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에 (무엇인가에 대한) 믿음을 잃다니, 그것만큼 진부한 대학원생이 어딨어? 하지만 그 안에서의 관계가 문제였다. 이를테면 교수자와 학생의 일방적인 착취 관계, 열정과 흥 따위는 없는 강의실, 서로를 믿지 않는 학생과 교수자들, 뭐 이런 것들이었다. 더 추가하자면, 더럽고 치사하고 비루한 교수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영원히 모를 것이라는, 그럼에도 그들에게 저항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 결국 사람에 대해, 관계에 대해, 내 신념에 대해 믿음을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그 모든 과정이 믿음을 잃어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게 되리라는 두려움. 결국 그게 깊은 우울의 원인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어떤 책을 보는데, 저자는 페미니스트 운동/관점(movement/perspective)과 페미니스트 관심(feminist concern)을 구분하고 있었다. 페미니스트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 참 많아졌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페미니스트 관점을 가졌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관심은, 오랜 기간에 걸친 운동과 관점의 발전에 의해 가능해진 연구 주제다. 페미니즘의 주제와 방법론을 전유했기 때문에 언뜻 보면 페미니즘 연구 같지만, 그 연구자를 실제로 만나보거나 그의 행보를 보면 페미니스트라고 할수는 없는 사람들이 있다. 연구자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이나 삶의 윤리를 성찰하지 않고도 페미니스트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나 역시도 수학계획서에는 페미니즘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젠더 연구, 젠더에 민감한 연구라는 표현을 썼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단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이것조차도 어떤 징후를 감지하게 하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오늘 펴본 어떤 책의 저자는 페미니즘의 죽음을 누가 두려워하랴,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모르겠다.
요새 며칠 몸이 좀 안 좋았다. 오랜만에 다시 재미들린(?) 네이트온 탓에 요 며칠 잠이 부족해서였을까? 혹은 다른 무엇이었을까? 잠을 10시간 넘게 잔 오늘 아침에도 좀 좋은 상태는 아니였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거기에 늘 거주하는 50대 남자사람에게 인사했더니, 이상하게, 아니 너무나 이 사람답게, 이 남자사람이 몇 분동안 막 화를 냈다. 그렇게 인사할거면 아예 하지 말라나. 그렇게 인사하면 차라리 인사를 안하는 것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겠냐고. 너는 부모님이나 윗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인사하냐고. 도대체 너는 왜 사람을 안 쳐다보고 얘기하냐고. 넌 내가 싫냐고, 사람들을 대하는게 싫냐고. 기운이 쭉 빠지는 걸 느끼면서, 뭔 말인지 알겠다고, 지금은 그냥 몸이 안 좋다고, 정신이 없을 뿐이라고 얘기해도, 이 남자사람은 듣지 않고 계속 게거품을 물길래 그냥 귀를 닫고 예, 예, 예 하고 말았다. 그냥 대꾸 안하고 대답만 잘하면 곧 잠잠해지니까. 나도 화가 많이 나고 뭐라고 또 쏘아붙여야하나 하다가, 그냥 또 울컥해버려서 관뒀다. 그랬다간 50대 남자사람이 또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말할까봐 겨우 꾹 눌러참았다. 왜 나는 화나면 눈물부터 나는 걸까? 오래된 컴플렉스.
일상적인 의례보다는 사람을 신뢰하고, 말과 설명보다는 차라리 순간의 눈깜빡임과 눈빛, 숨결, 망설임, 말과 말 사이의 침묵, 체온 같은 걸 더 믿는 나에게, 인사치레 같은 건 아무래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아빠라고 불리는 50대 남자사람도 그렇고, 이 50대 남자사람도 그렇고, 남자사람들은 대체로 나이를 먹으면서 의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집에 왔을 때 내다보지 않거나 차고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집에 같이 사는 50대 남자사람은 정말 상처받는 얼굴을 한다. 내가 대놓고 모욕할 때는 알아채지도 못하면서. 의례와 절차가 전부인, 삶이 죽어버린 사람들. 그래서 차라리 시체들, 좀비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법을 알지 못해서, 오로지 자기에게 치뤄지는 형식적인 경의와 의례로만 관계를 정의하고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사람들. 의례와 삶의 절차가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불안해 견디지 못하는 남자사람들.
때론 나에게도 편리하기 때문에 그들의 일상을 채운 의례와 삶의 절차에 편승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정말 가끔은 그들이 측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무실의 50대 남자사람은 자기에게 하나 뿐인 애인에게도 마찬가지로 군다. 애인이 3번 이상 전화벨이 울릴 때까지 받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놀러가자는 자신의 제안에 1.5초이상 뜸들이면 역정을 낸다. 아따 전화를 왜케 안 받는가이 전화는 어따 놓고 다니는 거란가? 하하. 아따, 왜케 대답을 안하는가이, 진짜로 답답해 죽겠네이. 하하하. 아니, 그럼 예약한 거 취소하란 말인가이? 위약료가 얼만지는 아는가? 하하하하.
이 남자사람은 성질이 급하고 화를 잘 내지만, 그가 정작 화 낼 수 있는 대상은 이 세상에 '부하직원'들이거나, 자기의 아내이거나(사채 놓은 돈 떼였을때 아내에게 막 화를 낸다), 혹은 더 맥락 없게 애꿎은 고객센터의 전화 상담원들일 뿐이다. 지마켓, SK텔레콤 고객센터, 각종 보험회사 노동자분들, 제가 대신 사과드려요. 그 남자사람은 차마 애인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화도 못내요. 화를 못내서 상심하고나면, 나나 다른 애에게 감정노동을 바라더라고요. 저도 이 미친놈 어쩌라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정말 가끔은 불쌍한 사람 같아요.
1. 어젯밤, 여기에 썼던 삐뚤어진 글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블로그에 쓰는 글들이 대체 누구를,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봤다.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간 왠지 좀 창피했다. 나는 그럴 의도로 쓴 글이 아니었는데 그냥 그렇게 쓰였다. 그런 글은 안쓰겠다고 결심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좀 비루해진 느낌이다.
2. R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문자를 보냈더니 학교 음악 감상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대학원생인 R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면 바로 전화를 걸었을 것 같은데, 음악 감상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니 뭔가 대단히 방해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게 낭만으로 느껴져 괜히 가슴이 콩닥콩닥 했다. 그리고 지금 쯤이면 참 예뻤던 학교의 봄을 생각했다. 봄과 가을을 맞을 때면 열병을 시름시름 앓았던 그 순간들도 기억이 났다. 봄 학기 중간고사는 늘 바닥이었고, 바닥을 찍고 반전해서 기말고사는 늘 성공했다. 그랬기에 봄학기 수강신청 때는 기말고사만 보거나 기말 레포트만 제출하는 수업을 찾느라 눈이 빠져나오는 줄도 몰랐다. 중간 기말이 둘 다 있거나, 출결관리가 엄격한 수업은 늘 안타까운 학점이었다. 가을학기는 늘 추락에 추락이었으니 강의를 찾을 것도 말 것도 없었고. 그래도 그런 나의 행동을 받아주는 고마운 선생들이 있었기에 뻘쭘한 학점은 안 받았지만.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무작위로 오가던 때가 있었지.
어느 새 나는 그런 열병들에 어느 정도는 시큰둥하게 되었고, 왠만한 것에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게 되었다. 그 변화에 대해서는 ㅇ과, 지금 마무리해가는 2년 여의 시간에 감사할 뿐이다. 이제는, 조금 무덤덤하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천천히 스며들어와 마음의 결을 따라와 어느 샌가 확 번져오는 게 좋다. 예컨대 박노수 화백의 전시회에 갔을 때, 그림의 구도나 주제 따위 보다는 종이에 차분하게 번진 남빛과 청록빛이 무척 좋았다. 색깔과 사물에 경계(border line)가 분명치 않아서 훨씬 좋았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 같았다. 똑똑 떨어지고 결을 따라 번져와 점점 더 선명해지는 색깔.
이렇게 쓰고 보니 아직 내가 무슨 '태'를 벗지 못한 것도 같고만. 이런 '태'는 어서 벗어야는데.
3. S는 다른 연극도 준비하려는 모양이다. 이번에도 프린지에 상연할 예정인 것 같다. 작년에는 가보질 못해서 피눈물만 질질 흘렸는데. 여하간 그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나도 뭔가 도울 게 있으면 하겠다고 덥석 물어 버렸다. 스탭이든 뭐든 할 수 있게 되면 해야지. 난 서점에서 책은 싸가지 없게 팔았지만, 이 연극 티켓은 상냥하게 잘 팔 수 있다. 이번 팀에는 모르던 사람들도 한다니까 왠지 더 하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것에 오직 손님이나 관객으로만 참여하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미술관에 가서 좋은 작품들을 보면, 그 작가와 친구를 하고 싶어지는 건 기본이고 그게 안될 것 같으면 1주일 정도 무급으로 조수라도 하면서 말을 붙여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좋은 공연을 봐도 그렇고, 좋은 블로그 포스팅을 봐도 그렇고, 좋은 책을 봐도 그렇고, 옷을 예쁘고 잘 어울리게 입은 사람을 봐도 그렇다. 찾아 가서 두 번째 손가락으로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저기요~' 하면서, 좀 쑥쓰러운 듯. 하하. 이런 욕심이 강한 걸 보면 나도 사교성이나 사회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아니 이런 것더러 사회성이 없다고들 하는 건가?).
어쨌든 이건 내가 아직 어딘가에 뛰어들 입장이 아니어서 그런가? 물론 지금도 하고 싶은 거야 있지만, 절대 다른 것들을 그냥 놓치고 싶지는 않다. 이건 네이버에 의해 이십대 중반으로 분류되는 스물 여섯살이 가질 수 있는 오기다. 스물 여덟, 스물 아홉이 되면 쉽게 갖기 어려울지도 모를 오기. '수레바퀴따라 난 한 길'이라는 어원을 가진 '커리어'라는 말이 옛날부터 싫었다. 그건 어딘가 퀴퀴하고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는 단어다. 그래도 일단 해야 할 것을 하면서, 이렇게 조금씩 발을 담글 수만 있다면야 뭐. 참, 어제는 드로잉 기초에 관한 책을 한 권 구입했다. 내일 사무실에 가서 연필만 깎으면 된다. (그림을 책으로 배우려 한다 하하 모 CF처럼 동영상도 아니고)
4. A는 이번 대학원 입시에 함께 붙어 나랑 밥친구 하기로 해 놓고서 입시 준비를 안한다. ㅠㅠ
근데 넌, 이 블로그 주소는 모르겠지만, 꼭 대학원 가야 돼 ㅎㅎ 빨리 공부하라고.
임고는 버리자. 그건 너도 얼핏 언급했다시피 네 체질도 아닌 것 같고, 물론 내 체질도 아니야 하하
5. 입시요강에 출신학과 교수 추천서를 제출하라고 해서 지도교수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성적표와 수학계획서를 보내달라고 하셨다. ㅎㅎ 성적표는 어디다 쓰시려고요? ㅎㅎㅎㅎㅎㅎㅎ 그래도 적당히 포맷에 맞춰서 이름만 바꿔 써주는게 아니라, 나름대로 읽어 보시고 성의껏 써주신다는 얘기 같아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지원하려는 학과 교수들은 읽어보지도 않을 것 같기는 한데. 과제 왜 안내냐고 너만 지금까지 안냈다고, 동그란 눈으로 재촉하시던 교수님 얼굴이 떠올라 그저 죄송할 따름; (이거 성적표 보고 악담쓰시는거 아냐?) 덕분에 애초에는 5월 초부터 쓰려고 했던 수학계획서를 지금 잡고 있다.
이 포스팅은 부분적으로 수학계획서를 쓰기 싫어서 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고 돈 내고 공부하겠다는데 그냥 뽑아주면 안되나?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몰라 낑낑.
6. 오늘의 문장 2개.
Giroux, "우리는 경험에 비판적으로 몰두할 수 있으며, 그 경험을 넘어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을 부인할 수는 없다."
MacKinnon, "우리는 삶을 통해 사물을 알며, 아직 어떤 이론으로도 만들어지지 않은 지식을 경험한다."
<언 에듀케이션>은 제목 그대로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는 '학교교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교육이 보편화, 제도화, 국가화되면서 일반적으로 '교육'은 곧 '학교교육'으로 쉽게 치환되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교육'을 제대로 받았느냐 하는 여부는, 그 사람이 정규 학교 과정을 이수했느냐 그리고 학교가 발행한 졸업장으로 공인을 받았느냐의 문제가 된다. 옥스포드에 가고 싶어하는 16살 제니에게 접근한 데이빗은, 이러한 '공인' 자격증을 갖지는 못했으나 스스로는 "인생 대학"을 졸업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학교교육'은 아니지만 '교육'의 한 형식(an education)이다. 비록 데이빗 스스로도 잘 이수하지는 못했다고 이야기 하지만.
10대 청소년기를 꼼짝 없이 '학생 정체성'에 저당잡혀야 하는 입장에서, '학교교육'은 제니가 이야기하듯, 한없이 "지루한" 것이다. 제니가 보기에 데이빗은 정규 대학과정을 이수하지 않았지만, 교양있고 재미있고 품격있는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다. 데이빗은 돈이 많은데다가 미술과 음악에 대해 잘 알며, 그의 친구도 마찬가지다. 데이빗은 고급 레스토랑, 미술품 경매장, 콘서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에 반해 제니의 아버지는 옥스포드를 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한 보수적인 하위 중간 계급 출신 속물이며, 학교에서 제니를 담당하는 교사는 제니가 보기엔 캠브리지를 나왔음에도 '지루한 학교에서 아이들이나 가르치며 가사 노동이나 하는' 그저 그런 교사 인생일 뿐이다. 물론 제니의 담당교사는 제니가 보기에도 멋있고 아름답지만, 제니에게 있어 담당교사는 캠브리지를 나와도 여성에게 '허락된' 삶은 '그 정도'일 수밖에 없다는 영국사회 현실의 상징이 된다.
그렇게 옥스포드는 "인생 대학" 앞에서 힘을 잃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제니는 옥스포드를 가지 않고 대신 데이빗이 다니는 "인생 대학"에 가서ㅡ혹은 바로 데이빗과 함께/데이빗의 후광 아래 그 "인생 대학"에 가야만ㅡ, 옥스포드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어떤 고급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고 느낀다. 제니에게 그 고급문화는 매력적이고 근사한 것이다. 그리고 하위 중간 계급인 제니의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다. (물론 데이빗과 그의 통장 잔고가 허락하는 한이겠지만)
한편 <언 에듀케이션>은 '학교교육'이 "지루하다"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봤을 때 '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니가 데이빗에게 청혼을 받아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를 만류하던 교장과 담당 교사조차도 학교가 지루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극적으로 폭로된다. 교장조차도 사실 우리는 너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게 없으며, 학교는 단지 퍼블릭 서비스일 뿐이라고 언급한다. 학교에 한 명 쯤은 있는 명문대 지망생인 제니는 그렇게 학교를 나간다. 한국처럼 대학이 서열화 된 영국의 양대 명문 대학인 캠브리지를 나온 담임 교사도, 제니가 원하는 그 "인생 대학"의 '교육' 앞에서는, 그리고 제니의 말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지고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언 에듀케이션>은 이 '학교교육'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인생 대학"에서 한편의 소녀 성장 드라마를 상연한 뒤, 제니는 결국 씁쓸함을 안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목표는 다시 옥스포드가 된다. 제니는 교장을 만난 뒤 담당 교사를 찾아간다. 그렇게 찾아간 담당 교사의 집은 러블리하고 책과 그림이 있으며 페이퍼백도 엽서도 있다. 여전히 멋있는 담당교사는 돌아온 제니의 말을 듣고 "노련해지고 현명해(old and wise)"진 것 같다고 말하지만, 제니는 "노련해지긴 했으나 그리 현명하지는 못하다(I feel old, but not very wise)"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제니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고, 담당교사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그 말을 들으니 기쁘다"고 대답한다. (이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은데 언어가 부족해서... 어쨌건 이 선생님 진짜 멋있어 이런 선생님들보면 진짜 임용고사 준비해야나 싶어진다) 이제 제니는 비록 지루하고 무용한 '학교'를 다녀야 하지만, 그래도 이 멋있는 교사와의 관계에서, 더욱 현명하고 주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언 에듀케이션>은 교육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교육의 한쪽에는 '학교제도'가 있고, 그 밖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인생 대학"이 있다. 영화는 그런 것에 본격적으로 가치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제니가 처해 있으며 (얼마간의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현실일 뿐이다. 그러나 <언 에듀케이션>은 그 모든 것 보다도, 사실은 제니가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가 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요컨대 결국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니 스스로의 성장인 것이다. 그리하여 제니는 성장에는 "지름길(short-cut)"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언 에듀케이션>이 제시하는 '교육'은, 이러한 제니의 성장을 돕는 것이자, 또 제니 스스로의 성장이다. '교육(an education)'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성장이어야 한다.
덧) <언 에듀케이션>은 이렇게 한 편의 웰메이드 성장 영화지만, 한편으로 흥미로운 정보도 많이 제공한다. 1960년대 영국의 인종주의(유태인과 흑인을 대하는 주류 백인의 태도와 그들이 가진 이미지)에 대해서, 옥스브리지라는 양대 대학교가 영국의 맥락에서 어떤 위상을 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영국의 교육제도와 문화에 대해서, 영국의 하위 중간 계급 남성의 정체성(제니의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이 남성 정체성이 어떤 맥락에서 갈등을 겪으며 얼마나 취약한지에 대해서, 계층화된 '계급 문화'에 대해서, 그 계급 문화가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상처와 자국을 남기는지에 대해서, 소년과 소년의 성장에 대해서, 또 한편으로 더 중요하게는 젠더 시스템 등등에 대해서도. 이 모든 것들을 생략한 채 어느 한 가지만 가지고 영화의 서사를 비난하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견해가 될 것이다.
"다문화주의"라고 하면 늘 답답함을 느끼던 중에, 드디어 반색할만한 연구 성과가 나온 것 같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258 그래도 이제 겨우 시작이란 느낌이다. 역시 모든 건 현장에 가봐야 아는 거다. 보수적인 자유주의 냄새를 풍기는 다문화주의로는 언제나 부족하거나, 심지어 나쁘기까지 하다.
2.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저자가 쓴 최근에 출간된 어떤 책의 성공과, 오늘 온 책이 일으켰던 예전의 반향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 잘 팔리는 책, 아니면 적어도 영향력 있는 책을 내려면, 지나치게 영민한 내용을 담거나 잘난체 해서는 안된다. 남들이 다 알만한 것, 혹은 남들이 이미 심적으로는 동의하고 있는 것을 잘 잡아내는게 우선이다. 그리고 책에서는 그 부분을 살살 긁어주면서, 마치 그것이 저자 고유의 생각인 것인양 기술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해결 불가능한 논쟁이 오래 축적된 주제라면, 그 논쟁을 절대 길게 언급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자기가 마치 최초의 첫번째인양 기술해야만 한다. 논쟁은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씹어 삼키기 좋은 데이터를 제공하고, 독자들에게 생각의 기준점을 비교적 명료하게 제시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다. 그 기준점이 사실상 얼마나 훌륭한 것이냐 하는 점은, 아쉽게도 책의 인기와는 큰 상관이 없다. 물론 여기에 출판사나 서점의 marketing scheme까지 곁들여야겠지만. 이건 절대 질투나서 이러는 건 아니다. 윽. ㅠ
3.
전주 영화제 예매가 모두 성공! 10시 50분부터 접속 시도를 했는데, 11시 30분 넘어서야 겨우 예매를 끝냈다. 이틀에 걸쳐 4편을 예약했다. 5월 3일이랑, 5월 5일. 이거 이틀 다 가야할까? 예매한 4편 중에 3편이 매진이라 왠지 꼭 가야할 것 같은 느낌이다. 흑. 여기서 전주 가는 차량은 하루에 2대 밖에 없는데. 그것도 시외버스 환승해서 가는 수밖에 없는데. 흑.
4.
모든 게 자조(self-help)와 자기책무성으로 설명되는 시대, 안 바쁜게 죄처럼 느껴지는 세상.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쁘지 않다는 건 마치 자기를 방기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자기계발의 시대에 자기 방기는 그야말로 죄악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쓸모 없는 인간이다. 에릭슨의 고전적인 사회심리학 발달이론을 보면 4세부터 5세 사이는 주도성 대 죄책감이 발달하는 시기다. 부모가 아이가 발달시키는 주도성을 억압하거나 책망하는 등 이를 박탈하면, 아이는 역으로 죄책감을 발달시키게 된다. 이게 꼭 지금 사람들 모습 같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몰라도, 아등바등하면서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것 같아서. 안타깝긴한데, 이런 장면이 무척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이렇게 다같이 네다섯살 난 아이로 퇴행해버리는 걸까?
시간은 언제나 만들기 나름이다. "바쁘다"는 얘기는 정말 물리적 시간이 없다는 것을 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마음의 여유가 없음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즉 자기의 삶 그 자체, 혹은 자기가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을 대하는, 특정한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이다. 바쁘다는 건, 이를테면 언제나 무엇인가 쫓기듯, 높은 장대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보려 애쓰는 삶을 표현하는 말이다.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무엇인가 벅찬 것을 대해야만 하는 삶을 표현하는 말이다.
나는ㅡ사실 어느 정도 불안하긴 하지만ㅡ언제나 시간이 많다. 헤헤. 놀 시간은 언제나 많다고. 사실은, 그러니까 숨거나 바쁘다고 하지 말고 놀아달라는 얘기 ㅎㅎ 그러기 위해서는 시스템에 어느 정도까지만이라도 등록을 포기하면 된다(다 포기하는 건 물론 아니다). 포기는 소유의 한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로지 포기함으로써만, 물러섬으로써만 소유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니, 소유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포기는 소유이자 연결의 한 형식이다. 포기함으로써 소유하게 되는 것들이 있고, 연결되는 것들이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5.
봄이 너무 더딘 것 같다. 이러다가 진짜 봄이 훅 가버리면 어떡하지? 아직 난 제대로 봄맞이도 안했는데. 이 달콤쌉싸름한 느낌은 오로지 봄에만 느낄 수 있는데. 요즘 허파에 바람은 잔뜩 들어갔는데 내쉴만한 곳이 없다.. 휴.
벨 훅스는 상처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 또 치유하기 위해 이론을 공부했다고 고백한다. 내면의 고통이 너무나 격렬해 살아가기 힘든 인생의 순간, 자기의 내부와 주변에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이론에 매달렸다고 했다. 벨 훅스는 이론에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공간, 현재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가정이 주는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 대신 이론의 공간에 머물렀다. 이론의 공간에서는 일상 공간과는 달리 자기의 생각과 분석을 마음껏 '실행'할수도 있었다. 벨 훅스는 이론의 공간에서 자신의 상처가 왜 생겼는지를 밝히고, 자신의 상처를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었다. 이론은 개인에게 공간을 개방하는 몇 안되는 영토 중에 하나이다. 이론은 상징자본이 되어 타인을 지배하는 도구의 계열이 아니라, 오로지 아침이슬이나 반딧불이처럼 고독하고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의 계열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론은 사회에 의해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잡을 수 있는 마지막 풀뿌리이다.
연구자와 이론가는 겹칠 수 있는 범주이지만, 평생 연구자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필연적으로 이론가도 겸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연구자는 되고 싶다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론가는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살다보면 그냥 되는 것이다. 책을 읽거나 쓴다고 해서 이론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실천이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의 삶, 자기의 고통, 자기의 욕망을 설명하는 방법을 찾는 이들은 반드시 이론가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학계에서 일하는 연구자나 여러 단체의 실천이론가가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이론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론가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 개인, 그리고 그 존재와 정체성 그 자체다.
그래서 이론은 쉽게 섞이거나 융합되지 않는다. 이론은 오로지 개인의 것이다. 그래서 이론은 공격될 수도 없고, 이론가 개인이 생존해 있는 한 사라질 수도 없다. 물론 누군가의 연구물이나 삶을 다룬 기록물은 건조하게 암기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론을 공부하는 건, 우선 그 이론가의 존재와 삶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론 공부는 누군가의 이론을 암기하는게 아니라, 누군가의 이론을 나에게 적용해보는 것이며 나 스스로가 흡수하는 것이다. 이론가의 앞에서 정보는 지식이 되고 지식은 이론화 된다. 이론가에게 진정한 공부는 곧 이론화의 과정이다. 그런 탓에 공부를 하면서 누군가의 이론을 비판하거나 비난한다는 것은, 사실 그 이론을 만든 개인에게보다는 차라리 자신을 향해 메시지를 날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론 공부를 통해 무엇인가를 알게 된 것이 단지 하나의 앎-지식으로 그치지 않고, 그 앎에 대한 나의 감정과 나의 역사가 수반될 때 그것은 나의 이론이 될 가능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과 내가 감정 세계를 공유할 수 없다면, 나의 이론은 그냥 외롭고 고독하니 잠자리 베갯닢에 찍힌 긴 물의 흔적과 다를게 없다. 역으로 내가 세운 이론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다른 사람과 내가 감정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그 때 누군가의 이론은 나의 이론이 되고, 나의 이론은 누군가의 이론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래서 이론가들은 필사적으로 자기의 이론이 들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성주의가 너무나 다양하기에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복잡다단한 여성주의(들)일 수밖에 없다면, 부분적으로 여성주의는 단지 이념이나 연구물이 아니라 이론(틀)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주의가 이론(틀)이라면, 여성주의는 개인의 맥락에서, 개인의 감정과 삶을 반드시 수반해서, 그리고 외우고 학습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실천되는 그 무엇일 수밖에 없다. 흔히 언어의 환상 속에서 이론과 실천을 나누어 생각지만, 이론(틀)로서 여성주의 안에서 그 둘은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그렇게 여성주의는 수없이 많은 다른 '-주의'들과는 존재론부터 다른 그 무엇이다. 또한 여성주의는 다른 보통의 '주의'들과는 달리, 내가 앞서 언급한 '이론'을 향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와 학제로서의 여성학은 다른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겹칠 가능성은 있다. 여성학은 학적인 연구 성과일수는 있으나, 이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물론 여성학 연구를 읽는 사람들에 의해 여성학은 이론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루는 소재나 인식론이 얼마나 유사하냐와는 큰 관계 없이, 여성학과 여성주의는 실천되고 공유되는 방식에서 갈리는 것일테다.
어떤 친구들은 내가 어떤 일이든 하게 되면 잘 할 것 같다고 위로해주지만, 나는 내가 어떤 일이든 잘해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규칙적인 주5일 칼 출퇴근이나 안정적인 통장 잔고를 동경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생활을 시작하면 내가 어떻게 차례로 무너져 내리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만약 주말 출근이냐 야근을 해야하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차츰 몸이 무너지기 시작해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될 것이고(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는다. 병원에 가도 단지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랬고, 또 그렇다), 그러면서 마음이 무너질 것이고 이어서 내 생활과 관계 전체가 붕괴할 것이다. 어차피 이런 식으로 내가 안티소셜이자 사회부적응자일 수밖에 없다면, 소위 '사회 생활'에 적응할 수 없다면, 또 일반적이면서 위압적인 이성애적 연애 산업과 시장에도 적응할 수 없다면, 이 세계의 위계 질서와 권력, 억압적인 젠더 체계가 몸서리처질 정도로 싫고 못견디겠다면, 차라리 열심히 공부해서 윤리적인 연구자(혹은 작가)이자 탁월한 이론가가 되는 걸 꿈꿀 수밖에.
물론 지금 가려는 대학원이나 학계가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예술가가 되기엔 언어적 재능도 공간적 재능도 음악적 재능도 부족한 나로서는, 그곳이 이 세계에서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소재와 줄거리, 플롯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언젠가는 소설을 쓰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젠가의 이야기). 나는 거기서 잘 살아남을 것이고, 또 거기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 해야할 것이다.
지금 하는 것도 다 열심히 할 것이고, 또 언젠가는 실패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관계에도 열심히 걸어볼거다.
어제 아침은 여느 때와는 좀 달랐다. 집 근처에 있는 2차선 도로를 시내버스가 가로막고 있었고, 거기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내리는 중이었다. 한두 분이 내리시는 게 아니었다. 한 분이 힘겹게 내리셨다 싶으면 또 다른 분이 이어서 내리셨고, 이제는 다 내리셨나 싶으면 또 다른 지팡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게다가 버스가 애먼데 멈추는 바람에 도로가 완전히 막혀버렸고, '(시골에서는) 젊은이'들이 탄 자동차들은 시위라도 하듯 경적소리를 요란하게 쏟아냈다. 그러던 중에 할아버지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앞문으로 가서 문을 두드려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그 손짓에 순종하듯 앞문이 열렸고, 할아버지는 미처 못 챙긴 짐을 챙기고 다시 뒷문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도로를 채운 운전자들이 온통 난리가 난 것은 물론이다. 도로가 부글부글 들끓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이라 무척 바빴던 아빠는 과속을 했고, 저 멀리에서 비틀비틀 낡은 쌀집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건너려고 하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할아버지는 오른쪽만 보고 위태롭게 길을 건너기 시작했고, 아빠는 할아버지의 왼편에서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끼익- 급정거. 그러나 할아버지는 놀랄 것도 없다는 듯 차를 힐끔보시더니 유유히, 그러나 비틀비틀 도로를 건너가셨다. 엄청 놀란 아빠는 욕을 했다.
내가 5565세대(베이비붐 세대)의 마인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듯, 어제 아침 경적을 울리고 욕을 하고 브레이크를 밟았던 사람들은 2010년에도 까만색 쌀집 자전거를 타거나 등이 굽은 채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저 제 인생에 방해만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시골 환절기에는 초상집이 많다. 가을에서 겨울이 가장 많고, 겨울에서 봄도 그에 못잖게 많다. 어제도 그냥 씨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일주일전에는 저냥 씨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쌀집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들과 등 굽은 할머니들은 그렇게 하나둘 모습을 감춘다. 어쩌면 5565가 은근히 원했던대로, 혹은 어제처럼 대놓고 행동했던대로,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잊혀지고 사라진다.
이렇게 한 세대가 저물어 간다는 느낌이다. 지금의 세상과는 어딘가 어긋난 세대가. 그러나 우리는 결국 깔끔하게 다 잊을 것 아닌가. 오늘 아침, 사무실 근처 주민센터에는 무료 암 진단 차량이 서 있었고, 흰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약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주민센터는 너무 좁아서, 추운 날씨에도 의자는 밖에도 배치되어 있었다. 하루 동안 '봉사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버스 안의 의사들은 선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며, 할머니 할머니들은 그들에게 무척 공손할 것이다. 공무원들은 왠지 귀찮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저만치 멀리 돌아서 출근했다.
새삼 국제여성영화제가 12회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어느덧!!). 그리고 여전히 빵빵한 기업 스폰서들까지(물론 얼마나 지원받는지는 모르나). 심지어 광장 공연의 인터미션에 스폰서 기업 광고도 상영되더군. 그만큼 영화제가 커지고 영향력 있다는 얘기인지라, 예전에는 반씁쓸함을 느꼈지만 이제는 오히려 아예 왕창 더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4년 여름에 여성주의에 입문(?)한 뒤에 2005년부터는 계속 갔으니까 이제 어느덧 나도 6년 째 도장 찍었다는 거(나도 나이 먹어가는구나). 꾹꾹. 10년, 20년, 30년이고 계속 개근 도장 찍어야지 싶다. 같이 나이 먹어갔으면 좋겠다. 하하
사실 재작년이랑 작년은 별로 흥미가는 영화도 없었지만 어줍잖은 의무감 비슷한 걸로 영화제에 갔었던 기억이다(이건 진짜 부끄러운 일; 이 블로그에는 그때 당시에 쓴 완전 창피한 글도 있다). 그런데 그건 영화제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관객인 나의 매너리즘 탓이었다. 악은 악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에 내재해 있다는 말처럼, 권태로운 눈동자엔 모든 게 권태로워 보이는 것이다. 이번에도 사실 약간은 의무감에 예매를 했지만, 그 결과는 역시, 문제는 갈수록 풍성해지고 세련되지며 외연이 넓어지는 영화제 문제가 아니라, 결국 나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토요일 아침에 서울에 가면서 챙겨 갔던 책은, 다름아니라 사놓고 그냥 책꽂이에 꽂아두었던 벨 훅스의 <벨 훅스, 경계넘기를 가르치기>였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짬나는 대로 술술 읽었던 이 책 덕에 몇년 간 정체되었던 내 문제가 뭐였는지를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었다. 이 책을 5개의 'ing'로 얘기하자면, encouraging, empowering, inspiring, fascinating, easy-going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ㅎㅎ 'easy-going'하다는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킬수 있을 것 같아 첨언하자면, 절대 내용이 쉽다는게 아니라 문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철학적 계보를 후광으로 하는 복잡한 개념어(이 책을 이해하려면 칸트/헤겔이나 프로이트부터 읽어라!!)를 동원하지 않고, 경험과 직관적인 언어를 써서 날카롭지만 또 따뜻하고 설득력있게 글을 이어나간다. 진짜 멋있어! 최고야!!
올해 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다가올 그날(The Day Will Come)>은 정말 멋진 영화였다. 줄거리나 세세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건 그만두고, 인상 깊었던 부분(인지 뭔지) 2가지만. (거칠게 말하는 거니 이상하다 싶어도 패스패스해주세요.)
하나는 흔히 말하는 '모성'에 대한 것이다. 흔히 모성은 자연(타고난 것)으로 간주되지만, 여성주의에서 말해주는 상식은 모성은 전혀 자연적이지 않으며 사회와 경험 속에서 '학습'하고 실현하는 그 무엇이다. 또한 사라 러딕이 <모성적 사유>에서 말했듯, '모성(motherhood)'은 '어머니 역할(mothering)'과 구분되는 것이다. '어머니 역할'은 모성과 관련되어 있지만, '보살핌' 혹은 '양육'에 관한 지침이나 실천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 러딕에게 '어머니 역할'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에게 할당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그 구분법에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모성'과 '어머니 역할'이라는 구분법에 다른 차원(?)을 개입시킬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거칠기 짝이 없지만, 일단 각 개념에 '공식적' 차원과 '비공식적'차원을 고려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오해를 막기 위해 언급하자면 공식적이라는 말은 자연스럽고 탈정치적이며 모두에게 동의되는 올바른 개념이기에 '공식적'이라는게 아니라 다분히 지금의 문화적인 코드를 반영한 것이며, 비공식적이라는 말도 안 중요하기 때문에 비공식적이라는게 아니다.)
'공식적인 모성'은 교훈과 이념화를 지향하며 널리 유통되는 이념이다. 이는 일종의 사회적인 서사나 이야기로 존재한다. 예컨대 고대로 올라가 어머니 자연부터 시작해서, 현대에 이르러 아이가 자동차에 깔렸을 때 번쩍 차를 들어올린 슈퍼 엄마의 이야기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모성'은, 모성은 위대하고 자연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사회적 상식이되며, 대체로 억압적이다(엄마들은 모두 위대한 모성을, 혹은 최소한 모성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공식적인 모성'은 일종의 판타지이지만, 전쟁, 군대, 징병제, 남성성(남성들은 '모성'을 쉽게 폄하하지만, 실제로는 깊은 애착관계가 있다)을 깊은 곳에서부터 유지하고 지탱하는, 정말 중요한 형식이다. 천안함 참사를 둘러싼 언론의 보도들도 상처를 봉합하는데 다시금 '모성'을 동원하고 있다. '비공식적 모성'은 자기에게 소중한 타인, 특히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아이(자신이 낳았든 낳지 않았든, 혹은 어떤 관계에서 아이가 생겼든)에게 갖게 되기 쉬운 강한 애착이다. 차라리 생물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아이의 현존보다는 부재와 상실에서 더 잘 드러난다. 아이의 부재와 상실에는 엄청나게 강한 에너지를 지닌 상실감과 슬픔이 찾아온다. 단지 마음이 슬픈게 아니라, 몸이 반응한다. 사랑은 자기와 관계를 맺을 아이를 만나는 순간에(혹은 그 이전에도) 즉각 시작할 수 있지만(물론 사랑의 실천에는 온갖 우여곡절이 있지만), 그러나/그렇기 때문에 상실의 애도에는 정말 오랜 기간이 걸린다.
'공식적인 어머니 역할'은 '공식적인 모성'보다는 훨씬 역사적인 맥락화가 가능하며 유동적이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덕스럽게 변하는 일종의 규범이다. 이를테면 공식적인 어머니 역할은 아이의 생애주기에 따라 어머니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려준다. 언론과 온갖 전문가들, 혹은 엄마의 엄마나 친구들 등 '주변 사람'들이 '어머니'라면 마땅히 어떻게 해야한다고 조언하는게 '공식적인 어머니 역할'이다. 태교는 모짜르트나 영어 회화로 해야한다는 식의 조언부터, 아이의 대학 입학과 결혼 대상자 선택, 혹은 그 이후에도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어머니 역할'은 온갖 조언들로 가득차 있다(이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하지는 않지만, 어머니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 혹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진 것으로 취급된다). '비공식적인 어머니 역할'은 '공식적인 어머니 역할'과 얼마나 조응하든 상관없이, 양육하는 개인의 역사나 습관, 혹은 욕망이 반영되어 실제로 실천되는 '어머니 역할'이다. 이는 만고불변이며 보편적인 게 아니라, 개인의 것이며 따라서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개인의 상황 등에 따라 '어머니'로서의 양육이 중단될 수 있다는 것도 함의한다.
이렇게 나눈 것에다가 사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아마도 독일의 적군파? <바더 마인호프>가 생각나는 군)도 고려해야하는데, 그것까지 하면 진짜 나도 병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으니 그만두어야 할 듯. 여하간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구분법이 떠올랐고, 이 구분법은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의 주인공인 알리스와 주디스의 관계, 그리고 주디스와 주디스가 새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들과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키워드가 되었다(그래서 영화에 몰입하지를 못했다 흑흑). 관계 뿐 아니라 관계의 변화하는 측면까지도. 아아.
하나가 너무 길었는데, 여하간 다른 하나는, 이 '모성'을 둘러싼 이해에 성차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과잉 일반화(over-generalization)의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성차가 무조건 실재한다는 게 아니다. 여하튼 영화에서는 알리스ㅡ주디스가 과거 독일에서 낳은 딸ㅡ와 프란신ㅡ프랑스에서 만난 새 남편과의 관계에서 낳은 딸ㅡ이 주디스를 대하는 방식과, 주디스가 프랑스에서 만난 새 남편과 그 아들이 주디스를 대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영화 내에서 여성 인물과 남성 인물의 태도가 다르다는 얘기다. 영화의 초반과 중반에는 알리스, 프란신, 남편, 아들이 모두 주디스를 한 명의 개인이 아니라 각각 '날 버린 매몰찬 생물학적 어머니', '날 이해 못하고 화만 잘내는 꼰대 엄마', '과거를 잘 알진 못하지만 일 잘하고 사랑스러운 아내', '사회운동을 열심히 하긴 하지만 날 사랑하는 엄마'로 이해한다. 이들에게 주디스는 어쨌든 개인사와 의지를 가진 개인이 아니라, 단지 엄마이자 아내이다.
그러나 알리스가 찾아온 뒤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주디스는 엄마이자 아내로 '묶어두기'엔 <지나치게> 많은 역사와 사연을 가진 개인임이 차츰 밝혀진다. 남편과 아들은 이를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주디스에게 진실의 해명을 요구하고, 해명된 진실 앞에서 주디스를 괴물로 바라본다. 진실이 밝혀지자, 그들의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사람은 분명히 실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들은 이에 묘하게도 배신감을 느낀다(대체 무엇을 믿었고 배신당했다는 것일까?). 그러나 프란신은 주디스가 과거에 은행을 털었다는 사실을 알자 그에 배신감을 느끼기는 커녕 "엄마가? 은행을? 멋진데(cool)!"으로 응수한다. 프란신은 영화 내내 한번도 주디스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디스가 떠나는 장면에서 남편과 아들이 배신감에 휩싸여 주디스를 냉큼 보내는 반면, 프란신은 주디스를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고 잡아두려고 한다. 알리스도 차츰 주디스와 관계를 조율하면서,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비로소 주디스를 '날 버린 엄마'가 아니라, 역사 속의 행위자였던, 정치의식과 신념을 가졌던 한 명의 타인이자 개인임을 인정하고 타협하기에 이른다.
<아시아 단편 경선1>도 봤는데, 다섯 개의 단편 영화가 모두 좋았다. 투표는 <파마>에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거짓말>을 찍을까 했는데, 이 영화는 정말 웰메이드였지만 20대 중후반의 감수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결정은 <파마>로. <파마>는 길지 않은 상영시간에 결혼이주 여성이 한국에서 겪을 수 있는 일, 혹은 한국이 결혼이주 여성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매우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언어의 문제, 일반적인 한국 가족 관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강압적인 위계질서, 소위 '못 사는 나라'에 대한 한국적인 환상(경멸 섞인 동정심), '미혼 남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처방 등에서 시작해서, 개인이 느끼는 감정과 감각에 이르기까지, 정말 섬세하고 넓게 다루면서도, 유머감각까지 갖춘 영화였다. 정말 멋지다능!
오늘 본 영화는 <아시아 스펙트럼 : 인도네시아, 포스트 98>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4개의 단편 영화 중에 마지막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일단은 모두 좋았다. 좋았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보았다는게 아니고, 정말 불편한 마음으로 봤다. 그 중에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이주 노동과 성매매(성노동)를 각각 다룬 <위태로운 삶 : 홍콩의 연인들>, <위태로운 삶 : 중국인 묘지> 2편이 기억에 남는다.
예전에 어떤 논문을 읽으면서, 인도네시아에서 여성 노동력 이주가 심해서 인도네시아 내 '사회적 문제'가 된다는 내용을 본 적 있다. 물론 이 '사회적 문제'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인도네시아 남성들이나 인도네시아 국가의 기준으로 설정된 것이다. 인도네시아 남성의 기준에서 보자면 너무 많은 여성들이 해외로 나가는 탓에 인도네시아 본토의 남성들이 성욕을 못풀고 결혼을 못하게 되었기에 '문제'가 되며(물론 여기엔 계급문제도 끼여든다), 국가의 기준에서 보자면 인구학적인 '재생산' 문제가 달려있기에 '문제'가 된다. 그래서 여성노동자들의 이주가 해결되어야 할 '사회적 문제'로 취급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농촌 노총각'이 재력과 공권력을 투입해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되었듯이(심지어 내가 사는 지역의 관공서에서는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일 년치 예산에 '국제 결혼' 지원 예산도 포함하고 있다).
그 논문의 저자는 유명한 인류학자기는 해도 페미니스트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숫자가 차츰 적어지면서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운 관계'가 깨지고 있다고 본다(기존의 여남 관계가 도대체 얼마나 좋고 조화로웠는지는 알 수 없다. 오늘 본 영화를 보면 그리 좋았던 과거는 아닌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도네시아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이 점점 더 왜곡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즉, 결혼 같은 '정상적'이고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라, 성매매나 성착취가 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지적에 대해서도 귀담아둘 필요는 있지만, 오늘 본 두 영화가 보여주는 것들에 대해서 먼저 제대로 인지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다가올 그날>에 대해 너무 길게 써서 탈진해버렸다. 뒤에 영화들도 이에 못지 않게 할 얘기가 많은데... 난 이제 자야하므로 그냥 내 마음 속에 남겨두자 하하
덧) 티켓 끊는데서 우연히 들은 어이없는 대화. 남자애 - "와, ㅇㅅ영화제라더니 스텝들도 전부 여자네." 여자애 - "응, 그렇네" 남자애 - "(선심이라도 쓰듯) 그래, 오늘만큼은 여자의 날이다! 하하!" 아 제발 쫌 -_-;;; 당장 이런 애랑은 헤어지라고 할수도 없고 이거...
요즘도 글에 불필요하게 힘이 들어간다. 이건 어디까지나 별 생각 없이 그냥 막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글의 스타일 자체가 이렇게 굳어 버린건 아닐까 걱정되네. 담긴 생각은 묵직해도 그걸 일상어라면 일상어로 가볍고 적당한 길이로 풀어내는 거야말로 왠만한 내공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씨네21 인터뷰에서 봤던건데, 신형철 평론가가 한겨레에 기고하면서 원고지 10장으로 쓰는게 어렵다고 했더니 담당 기자가 아무래도 훈련이 덜 된거라고 훈련 좀 해야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오오 그렇다 훈련이다! 내가 여기에 쓴 글도 다시 읽기 어려운 정도면 정말 게임 셋. 뭘 써도 길게 쓰는 건 결코 자랑이 아니다. 논문 쓸때나 자료 열심히 모아서 충실하게 쓰면 모를까. 적어도 블로그에 쓰는 글은 가볍게 쓰고 싶은데. 사실 어떻게 연습해야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훈련이 필요하다구요! 흠 지금은 조금 가볍게 써볼까.
어제 대학원 입시 일정이 발표났다. 그런데 예년에 비해 정원이 4명에서 5명으로 1명이 늘어났다는 거! 대학원 정원은 늘기보단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게 왠일이람. ㅎㅎ 예전에 정원 줄인다는 말도 있었고. 사실 성골 진골 출신 자과생 졸업생 2명이 이미 지원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ㅡ그리고 입시에서도 자과생 우대정책이 알게 모르게 있다고 들어서ㅡ동일 단대 유사업종 전공으로 6두품 출신인 나로서는 자리 하나가 굉장히 컸는데(어떤 친구는 내가 6두품이라고 했더니 6두품의 다른 말이 득난이었다고 했음-_-ㅋ 아아 고등학교 국사여), 이젠 조금 마음이 놓인다. 물론 내정자가 5명이라서 정원을 5명으로 늘린 거 아닌가 하는 음모론도 지울 수는 없다 하하
며칠 전부터 <ㅇㅍㄹ의 유령> OST가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OST를 괜히 다시 들었다가 요렇게 푹 절어버렸고. 아직 뮤지컬은 계속 하는 중인데 예매를 해둬야할까 역시 며칠 째 고민중. 5월 평일 특정한 날에는 20%할인하던데, R석이 8만원. 낮 3시 공연이라 그런지 자리가 아직 많다. 잘만하면 앞쪽에 좋은 자리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뮤지컬 뮤지컬. 할인해도 8만원이라는 게 너무 크다. 이래서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걸까? 이거 가면 아무래도 그린 플러그드는 패스해야 되겠지? 대규모 락 페스티벌은 일단 가면 좋은데, 막상 가면 너무 사람이 많아서 싫다. 공연 무대 근처에 가면 싫은 신체접촉도 해야되고, 이런 저런 냄새가 섞여 코도 마비되거든. 여름 때 하는 야외공연은 또 엄청 뜨겁겠지? 사람의 체열이나 냄새 같은게 싫은게 아니지만 불특정 다수라는게 싫다. 막 섞이다보면 이상한 남자애들하고도 부딪히고 아아. 그렇다면 여기 뮤지컬 예매인가 ㅎㅎ
대학원에 붙든 안붙든 서울 생활을 다시 시작하겠지만, 아마 이번엔 예전 살던 동네엔 안 살 것 같다. 그래서 일상에서 가장 필요한 건 아무래도 동네친구들인듯. 편한 복장으로 만나 맥주 500cc씩 하면서 얘기하다가 다시 편하게 각자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음 좋겠다. 아니면 주말 오후엔 소박한 동네 카페에서 만나 각자 읽고 있는 책 읽으면서 인상 깊은 구절도 나누고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음 좋겠고. 이것도 임대료 비싼 서울 땅에서는 큰 욕심일까? 그렇게 모여서는 얼마 전부터 시작해서 수십 명이 총에 맞아 사망한 키르키즈스탄의 (<가디언>지가 명명하기로는) "전나무 혁명(fir tree revolution)"에 대해서도 좀 심각하게 얘기할 수 있음 좋겠고, 한명숙 총리 무죄 판결에 대해서도 아무리 봐도 어이 없는 천안호 참사에 대해서도 얘기하면서, 뭔가 할 수 있을지 작당모의할 수 있음 좋겠다. 물론 잘 안 돼가는 연애 얘기를 해도 좋고, 나쁜 상사/동료/교수를 매일 같이 씹어도 좋고, 온갖 연예인 가십이나 소문 얘기도 좋고(나 어이없는 뜬소문 완전 좋아하는데!). 학교 친구도 좋긴 하지만 동네 친구만큼 캐주얼하게 보지는 못하니까.
서울에 왔다갔다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완전 버닝하고 있는 과자. 터미널 근처 편의점에서 팔고 있는데, 아무래도 나만 사먹는 것 같다. 이러다 없어지면 어쩌나 싶어 자주 사먹어야겠다고 결심. 버스 안에서 야금야금 먹다보면 2시간 동안 입이 심심하지는 않은 분량이다. 맛도 맛이지만 봉지를 딱 열었을 때 확 올라오는 크랜베리의 향기가 진짜! 감동이다. 왜 빅뱅이론의 꽃사스미 셸든이 크랜베리 소스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900원이라는 만만찮은 가격이지만 진짜 맛있어! 맛있다고!
근대국가의 제도권 공교육의 기원과 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국가가 있다면, 아무래도 프랑스일 것이다. 역시 마찬가지로 자주 거론되는 영국의 경우 서구식 근대교육제도의 보편적 모델으로 삼기에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이 있다보니까, 아무래도 한국은 영국보다는 프랑스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로랑 캉테 감독의 프랑스 산 영화 <클래스>를 보면, 너무나, 너무나도 낯익은 장면을 많이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다.
<클래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클래스의 정규학기만을 다룬다. 영화는 방학이나 방과 후의 학교 밖 풍경은 전연 다루지 않는다. 또한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는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며 학교 안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전혀 다루지 않는 건 물론이고, 마랭 선생의 학교 밖 일상도 아예 다루지 않는다. 그리하여 <클래스>는 말 그대로, 한 '클래스'에서 교사와 아이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만을, 가장 '보통'의 수준에서 다루고 있다. 형식적으로도 공립학교에서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는 '보통'은 이런 것이다. 정규 수업시간에, 교사와 학생으로서 만나는 것 외에는, 서로에게 무지하고 또 무심하다. 한명의 개인대 개인으로 만나기 보다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역할지위로서 만날 뿐이다. 1년간 생활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입지만, 어디까지나 교사와 학생이므로 지킬 선을 지키며 각자에게 의무로 주어진 학기의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다. '보통'은 그런 것이다. 심지어 이 영화는 공립 보통학교를 배경으로 하며(한국의 평준화 학교를 연상시킨다), 프랑스의 인종 비율까지도 학생 집단의 구성에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가장 '보통'의 교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심지어 마랭과 갈등하는 학생들은 '보통'의 편견이 그렇듯,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용어를 쓰자면 '유색인종' 아이들, 혹은 비코커시언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등장하는 교사들도 모두 나름대로 전형성을 갖는다. '보통' 학교에 이런 교사들이 '보통' 있지 않냐는 듯이 말이다. 규칙은 규칙이며 여기에 예외는 없다고 주장하는 교사(그래서 퇴학 조치도 당연하다), 아이들의 태도에 분노하는 교사, 아이들을 냉소적으로 보는 교사, 아이들 고유의 성격이나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이미지와 행동으로만 평가하는 대다수의 교사들. 물론 마랭 선생은 이런 가장 '보통'의 교사들 사이에서도 나름대로 특별한 교사로 등장한다. 마랭은 아이들의 엉뚱한 질문으로 수업을 못하거나 어이없게 말꼬리를 잡혀도 쉽게 분노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아이들을 납득시키고 설득하려고 노력하며, 수업 중에 자기가 틀린게 있으면 곧바로 인정하고, 또 교실에서 평등한 토론 문화를 만들기 위해 각별히 노력하는데다, 학교에서 강제하는 규율이 교사와 학생 관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훌륭한 교사로 등장한다.
또 영화에서 다루는 감정의 결은 의외로 세밀해서, 영화의 원작인 소설을 쓴 사람이 실제로 교사 생활을 했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교사 마랭으로 나오는 사람이 바로 그 소설가다. 그렇기에 영화는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 때 교사가 상처받는지, 또 아이들이 어떤 점에서 상처를 쉽게 받는지, 또 그게 어떤 식으로 봉합이 되고 봉합되지 않는지를 섬세하게 다룬다. 아이들이 웃음짓는 순간, 또 교사에게 화를 내고 실망하는 순간도 잘 잡아낸다. 또한 아이들을 너무 손쉽게 평가하고 규율로만 다스리려 하는 다른 대다수 교사들 앞에서, 자기가 담임을 맡은 아이들을 변호하고 싶어지는 그 마음까지도 너무나 와닿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클래스>는 가장 상식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물론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상식일 뿐 -_-) 교사와 학생들의 아웅다웅 치고 받는 일상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그러나 <클래스>는 아이들이 단지 '학생' 정체성으로만 환원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분명히 아이들은 학생이기 이전에 하나하나가 타인들이다. 여느 누구와 똑같이 존중해야 하는, 각각 한 명의 개인이자 타인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마랭은 평소에는 아이들이 단지 공부하고(지적 학습) 규율에 따르는(정의적 학습) 것을 익히는 '학생'들이 아니라, 한 명의 타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배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랭은 그 사실을 인지만 하고 있을뿐, 실제로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데는 한계를 보인다(이것은 제도의 효과 탓인가?). 그래서 마랭은 자기가 아이들과의 게임에서 불리해질때가 되면, 자기는 누가 뭐래도 교사이며 원래 '꼬꼬마 아이들'인 너희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예컨대 아이들은 마랭이 스스로의 권위를 깎아 내릴 수 있는 '말 실수'(과연 이것이 단지 말 실수인가?)를 한 것에 대해 정당하게 항변하지만, 집단으로 '대드는' 아이들에게 감정이 상한 마랭은 그것을 묵살하고 무시한다. 그리고 발언의 문제성은 애써 무시된다.
마랭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그 스스로도 거리를 두곤 했던 교장과 동료 교사들을 위시한 학교 제도의 후광 덕이다. 아이들을 규율과 사회화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개별적 욕구를 지닌 인격체로 취급하는건, 안타깝게도 교사 마랭의 선택과 변덕에 달려있다. 아이들과 관계를 잘 맺는건 교사의 도덕적/윤리적 의무라기 보다는 마랭 개인의 자의식적 선택으로 비춰진다. 그래서 마랭은 자기가 불리한 순간엔, 그 강력한 학교 제도나 교사 연대와 별 트러블 없이 쉽게 공모한다. 이 제도 속에서 아이들은 하나의 타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자유의지와 재량권에 따라 '처벌'을 받고 심지어 '처분'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렇기에 영화는 아이들의 감정과 행위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정작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어쨌든 남는 건 다만 보여지는 행동(성적 혹은 교사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그것을 평가하고 상벌을 내리는 제도뿐인 것이다.
그래서 <클래스>는 학교 제도와 교사-학생 관계에 대한 가장 '보통'의 이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무리는 있겠지만 이 정도는 상식인이라면 납득할만한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클래스>의 마랭이 보여주는 상식까지 한국 제도권 교육에 바라는 건 무리일까? 한국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사실 누구나 교육'전문가'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고, 그렇기에 누구나 한국 교육이 문제라는 걸 알고 또 저마다의 견해를 갖고 있다. 언론에서도 대학 입시 중심의 교육, 방대한 사교육 따위의 문제가 언제나 이런 저런 이해관계가 얽혀서 복잡하게 제시된다. 또한 교육의 문제는 교육 외적인 영역에서 자주 다루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교육감 선거도 교육적 관점이 아니라 계급 이해관계의 실현의 측면에서 치뤄지지 않는가.
그러나 이런 거대 담론적 수준이 아니라 미시적 차원에서, 교사와 학생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전면에 부각되어 다뤄진 적은 정말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교사 학생 관계는 단지 '붕괴된 교권'의 측면에서, 언론을 통한 일종의 추문으로만 다루어진다. 교사와 학생은 그런 식으로 밖에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듯이. 우리에겐 상상력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상상력을을 뒷받침할 든든한 사람들까지. <클래스>는 마지막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끝난다. 마랭에 공감할 수 있는 교사가 1/3만 있다면, 한국 학교에도 어쩌면 봄의 샛바람이 불어올지도 모르겠다.
덧) 마랭을 보면서, 지금 일선 교사가 된 친구들이 어떤 상황에 부딪히고 어떤 고민을 하게 되는지를 좀 더 알 수 있을 것 같아졌다. 내가 교생 할때는 아무래도 student teacher다 보니, 아이들이 좀 더 편하게 대해준 것도 있었거든.
덧2) 학교 다닐땐 당연하다는듯 체벌에 적극 반대하던 선배가 있었는데, 임용 붙고 교사가 된지 1년 만에 술자리에서 애들은 때려야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때 나는 정말 엄청난 '변절'이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미안해지는구나. 안 친해서 직접 말은 못하겠지만, 미안해요, 선배.
덧3) 그러나 나는 아직도 체벌은 납득하기 어렵다. 사범대에 다닐 때에도 "애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충격이었다. 애들은 때려야 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정치인가?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내가 살던 동네엔 '매맞는 아내(battered wives)'가 많았다. 심지어 친할머니도 "여자들은 맞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할머니가 무섭게 보였던 최초의 순간). 그러나 이제는 남성 무의식의 차원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형법상의 차원에서는 '때리는 남편'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제는 누구도 아내가 맞아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건 사회가 개선되었다기 보다는, 단지 그런 생각이 시대에 뒤떨어져 낙후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일 것이다.
덧4) 한편 우리는 <클래스>가 보여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마랭은 어디까지나 남자 교사고, 교사와 아이들이 맺는 관계는 교사-아이간 성별에 따라 아주 다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해서부터 지금까지 주욱 깨달아온 바를 하나 들자면, 그건 내가 너무나 치기어린 꼬꼬마에 불과하다는 거였다. 근거 없는 자신감, 사람들에 대한 경멸과 환멸. 그런 것들이 삶의 맥락에서 더 강하게 빛을 내뿜을수록, 반대쪽 벽엔 그 빛을 받아 그림자가 더 짙게 드리워졌다. 이를테면 자신감은 낮은 자존감을 감추기 위한 허세에 지나지 않았고, 경멸과 환멸은 결국 질투일 뿐이거나 스스로의 오점을 타인에게 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과 타협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의외로 지난하게 힘든 과정이었다.
지금이 무척 짜증나고 힘들기는 하지만(아, damn, 진짜 힘들긴 하다), 어쩌면 이 유예 기간에 정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감정을 경험과 맥락 속에서 하나하나 학습하고 있고, 감각을 조금씩 꼬물꼬물 회복하는 중이다. 하나하나 고쳐배우고 학습하고 회복하고 기억한다. 그리고 '관계'를 보는 눈이 조금씩은 깊어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누가 바보 빵꾸똥꾸고 누가 훌륭한 사람인지 감별하는 눈도 넓어져간다. 또 제대로 분노하는 법을 알지는 못하지만, 무엇에 분노해야하는가는 조금씩 넓혀가며 알아가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평생 관심을 두고 해야할 작업이다.
내가 만약 대학 졸업 당시의 맥락에서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하고 논문을 썼다면 도대체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글을 써댔을까?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폭발해버렸을 것이다. 자기모순, 자기혐오, 자기연민, 컴플렉스 같은 지독한 것들로 만들어진 감정의 메가톤급 시한폭탄을 안고. 실제 이 블로그에도 남아 있는 그 당시에 썼던 글들은 대개가 그런 내용이었다. 어딘가 결기어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곧 안에서부터 폭발할 것 같은. 자기혐오로 자기를 내던져 버리기 직전인 사람이 쓴 글처럼. 자기의 정치나 자의식을 실현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에게 곧 닥쳐올 무시무시한 무언가를 유예하기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들은 결국 그런 폭탄을 안고 내부에서부터 터져버릴 것이다.
"그런데 저는 다른 데서 왔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저는 소설가는 타고난다는 말에 동의한 적이 없어요. 전 노력해서 소설가가 됐으니까요."
요즘엔 김연수 작가의 저 말이 힘이 된다(어떤 사진작가는 "감각도 노력"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나는 천재가 아니고 어딘가엔 굉장한 천재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만약 그런 천재가 있다면 이른바 능력주의 사회(meritocracy)에서는 그가 선두를 이끄는게 맞겠지만, 알랭 드 보통이 말한대로 세상이 진짜 능력주의 사회였던적은 한번도 없고 그렇게 될수도 없지 않은가. 어쨌든 그래서 삶은 조금은 쓸쓸하지만 우연으로 점철된 것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내 손을 벗어나 있다. 단계를 차곡차곡 밟아 올라가는 지속적 성장도 좋지만 우연한 비약이나 조락에 마음을 열고, 필연적이거나 당연한 듯 여겨지는 만남과 헤어짐보다는 우연한 감정의 촉발과 그 지속을 믿자ㅡ뾰족한 산을 오르내리지 말고, 오랫동안 고원plateux 위를 산책하자. 정당하게 이루어지는 일보다는 비겁하고 비루하고 더러운 일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는걸 어떻게든 인정하자. 그것에 분노하고, 싸울 땐 싸우면 된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나 스스로를 조일 필요는 전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결국엔 좀 더 해보고, 판돈을 한 번 걸어나 볼 일이다. 계속 하다보면 "감각도 노력"이라고, 혹은 "노력해서 소설가가 됐으니까요"라는 식으로 말해도 절대로 안 민망한 때가 오긴 오겠지. 근데 난 왠지 앞으로 되게 잘할 것 같다(ㅎㅎ). 그러므로, 여유. 정말 "모든 일은 내 일이 아닌 것처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