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남자로 만드는 마법의 레시피를 알려드리죠. 일단 재료를 준비하세요. 재료는 간단해요. 소년, 소녀, 로맨스, 그리고 일(꿈)입니다. 재료가 준비되면 시작은 쉬워요. 여름방학을 맞이한 소년은, 언제나 신비로운 모험(로맨스)과 소녀를 바라기 마련이거든요. 소년은 소녀를 만나면 즉각 화학작용을 시작해요. 우리가 손써볼 틈도 없어요.
일단 화학작용이 시작했으면 500일 동안 가만히 소년을 지켜보세요. 모두 알다시피 여름방학의 시작은 달콤한 기대로 충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쓴 맛을 느끼게 되죠. 혹시 소녀와의 관계가 어려워서 소년이 우울해하거나 힘들어하면, 주위에서 기운을 북돋아주세요. 소년의 마음은 상처받기 쉽고 섬약하니까요. 설령 소년이 공격적으로 나온다고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쑥스럽고 여린 마음을 감추기 위한 거라네요. (註 : <소년백서>, 2010) 이게 견디기 어려우시면, 그만 두셔도, 뭐, 상관은 없다네요. 그렇게 500일을 꾹 참고 지내면, 소년의 여름방학은 끝나요.
여기까지 왔으면 거의 다 된거에요. 여름방학이 끝나면 곧 가을이거든요. 드디어 결실을 맺을 때가 된거죠. 이제 소년은 남자가 될동말동한 상태예요. 여기에, 우리는 마지막 남은 재료를 조심스럽게 추가해야돼요. 소년은 (꿈꾸던) 일을 만나야 해요. 일이 잘 풀리면, 소년은, 드디어 가을학기를 맞이하고, 비로소 남자가 될 수 있어요. (물론 이건 도박이에요. 될수도 있고, 안 될수도 있고)
참, 조심해야할 점이 있어요.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소년은 또 다른 500일의 긴 여름방학을 맞이해야 해요. 그 길고 긴, 여름방학을, 또 다시 말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 소년이 우울해하고 힘들어 할 때 기운을 넣어주지 않으면, 소년은 어떻게 될지 몰라요. 가라오케에 토를 할 수도 있고, 종업원을 때릴 수도 있고, 알콜 중독이 될 수도 있고, 스토커가 될 수도 있어요. 정말 조심해야해요. 한 번 잘못되면, 소년은 영원한 소년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500일의 썸머>는 시작부터 이 영화가 러브스토리가 아니며, 대신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이야기라고 못박는다. 그렇다. <500일의 썸머>는 '소년'이, 어떻게, 어떤 심리적 과정과 사건을 거쳐서, 비로소 '남자'가 되는지에 대한 영화다. 마치 500일만 제대로 주어진다면 '소년'이 '남자'가 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10대 초반의 작은 여동생에게 인간관계 상담을 하곤 하는 소년 톰에게, 어느날 썸머는 마법처럼 다가온다. 소년 톰에게 썸머는 신비로운(그래서 불가해한) 에로스 그 자체다. 썸머는 우유부단하고 감정적으로 미숙한 톰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톰은 이에 속수무책으로 썸머에게 빠져든다. 영화에서 썸머가 어떤 감정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도통 읽어낼 수 없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이 영화가 소년인 톰의 입장에서 500일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선언했듯,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때문에 영화의 서사는, 만남에서 이별에 이르는 일반적인 로맨스의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영리하게도, 날짜를 짜깁기 하는 방식으로 연애의 에피소드를 배치한다. 썸머와 함께한 500일은 혼란스럽게 재구성된다. 이를테면 톰이 썸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매혹적인 순간을 맞이한 장면 바로 뒤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썸머에게 이별 통고를 받은 후 축 늘어진 톰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톰이나 썸머에게 감정이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다소 혼란스럽게 배치된 영화의 에피소드의 얼개를 맞추는 일은 보통의 멜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의 몫이다. 맞추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그건 이 영화가 의도한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썸머는 카드 회사에서 직장 동료로 만난 톰과 관계를 유지하는 대신, 카페에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고 있을 때 책에 대해 질문하던 남자와 결혼한다. 결혼한 썸머는 '수트'(남성 세계의 상징)를 입은 톰을 찾아와 샤프하다고 칭찬해준다. 톰은 자신의 애인으로 규정되기를 거부했던 썸머가 갑자기 결혼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상처받은 소년 톰은 썸머에게 이제 사랑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지만, 썸머는 오히려 자기가 틀렸고 톰이 옳았다고 말해준다. 톰은 여기서 크게 깨닫는다. 톰은 이제 원하던 직장을 얻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가고,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여성, 어텀(가을)을 만난다. 꿈꾸던 일과 로맨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소년' 톰은 드디어 썸머(여름)에 안녕을 고하고 '남자' 톰이 된다. 날짜를 가리키는 숫자는 500에서 1로 바뀐다. (가만, 그러다 윈터를 만나면 어떻게 되는거지? 그땐 '중년' 톰이 되는건가)
이 긴 500일의 과정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얼마나 몰입하는지하는 차원을 떠나서(난 나쁘게 말하는 이야기는 이제 쓰지 않기로 결심했음. 하하하하하), 영화의 만듦새가 제법 훌륭하다. 얼굴부터 아메리칸 보이스러운 배우도 영화와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이 정도면 훌륭한 성장드라마 아닌가? 감독의 첫 데뷔작이라는데 앞으로도 기대해볼만 한 것 같다.
덧1) 시나리오 작가는 과연 '남자'가 되었을까? 영화가 시작하면 작가의 말이 뜬다. "본 영화는 허구이므로,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비슷한 점이 있더라도 완전히 우연일 뿐입니다. 특히 너, 제니 벡맨. Bitch." (...)
덧2) 유독 소년에게 너그러운ㅡ심지어 한국의 가부장제는 4~50대의 얼굴을 했지만 감정적으로는 소년인 남자들의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ㅡ한국에서는 500일 갖고도 안될지도 모른다. 이거, 마늘과 쑥만 먹으면서 1000일은 썩어야 할지도...
김연수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용산 참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같은 큰 사건은 우리들의 마음에 검은 그림자를 발생시키고, 우리는 거기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떤 감정을 느낀다고. 그리고 그 어떤 감정은 가치의 판단(누가 옳으냐 그르냐, 무엇을 지키거나 버려야하느냐)과는 거리가 있고, 대신 찌꺼기 같이 남은 그 감정을 없애기 위해서 사람들은 슬퍼한다고. 그러나 이내 사람들은 그 감정을 말끔하게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된다고.
나는 이런 그의 말이 그 어떤 고만고만한 논객들의 말보다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그것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정치적/도덕적 진정성을 물었던 사람들은, 사실상 모두 틀렸다. 적어도 번지를 잘못 짚었다. 이는 어떤 감정에 대한 문제이며, 그 감정은 사람들 개개인의 마음에 어떻게 자국을 남기며 한편으로는 그 감정이 사람들을 어떻게 묶여주는가ㅡ그로스버그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정동적 연합(affective alliance)을 어떻게 이루는가ㅡ라는 문제와 관련이 된 것이다. 그것은 언어화될 수 없거나 지독하게 어려운 그 무엇이다. 행위로서, 혹은 의례로서 애도해야하는 그 무엇이다.
주말에는 풀리지 않을 의혹을 남기고 있는 큰 서해 참사도 있었다. 3월 바다는 몹시 찬데. 그리고 오늘은, 최진실씨의 동생 최진영씨가 자살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찰랑대는 이 낯익은 감정이 뭔지는 모르겠다.
서경식 교수와 타와다 요코 작가의 서한집 <경계에서 춤추다>에는 고향에 대한 챕터가 있다. 여기서 서경식 교수는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 독일어로는 하이마트(Heimat)가 어디냐는 질문에서 어떤 폭력을 읽는다. 이 책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고, 어딘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서경식 교수의 이런 느낌은 여러 차례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바이고, 고향에 대한 감각이 어떻게 제국주의나 파시즘에 동원되었는지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특히 이 부분은, 뭐랄까, 서경식 교수가 폭발한다고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애써 튀어오르는 감정의 다발을 억누르는 느낌. 그래서 역설적으로 고향에 대한 그의 강한 애착이 느껴지고 상실감이 느껴지는, 그러나 채워질 수 없는, 그래서 강한 추동력이 될 수 있는, 그 무엇.
이와는 조금 달리, 내게는 구체적으로 고향이 어디냐하는 질문은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게 서교수와 나의 결정적 차이겠지.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고향을 떠나는게(어차피 고등학교가 별로 없었으니 '유학'을 가야만 했다) 학교를 다니는 목적이었고, 고등학교부터는 마침내 그 목적을 성취했다. 그 뒤 얼마 간은 고향의 냄새를 지우는 게 일상의 실천이기도 했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더듬기 일쑤였고, 에둘러 대답을 피하기에 바빴다. 그건 시골에 살았다는게 창피해서도 아니고, 시골에서 사는게 두려워서도 아니다. 시골 출신이라고 말하면 거기서는 제일 가는 수재였겠네하며 눈을 동그렇게 뜨는 서울 사람들의 얼굴을 향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많은 순간들, 그런 촌구석에서 도대체 어떻게 사냐며 자기의 경험 부족과 상상력 부족을 자랑하는 서울 사람들을 뒤돌아 욕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다만 내게 구체적인 고향이 생긴다는 게 무서웠달까. 외롭지만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도시의 부유하는 일상 속에서 어떤 구체성이 붙박히는게 싫었달까.
그 생활을 청산하고, 지난 약 1년 4개월은 불가피하게 '고향'에 있어야 했다. 물론 자주 서울에 다니긴 했지만. 고향에서 중요한 것은 아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 일이었다. 거리에서 중고등학교 동창이나 알던 후배들을 멀리서 보면, 그들을 여전히 쉽게 알아보고 이름을 기억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반가움보다는 당혹감이 앞서 저만치 도망가버리곤 했다. 가끔 나를 알아보고 반기는 어른들이나 동창생들이 있어도 이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주춤 물러나 사라져버리곤 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말 걸고 싶고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아주 구체적인 욕망도, 이 망각에 대한 욕망 앞에선 쉽게 사그러들었다. 그들이 싫었던게 아니라 여기에 나의 구체적인 일상, 구체적인 기억이 박히는 게 싫었을 뿐이다. 여기서 내가 기억하게 될 그 무엇이 더 이상 내 일상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쩌다 중학교 때 앨범을 보게 되었다. 하필이면 오늘은 괜히 심심했고, 한강 작가의 새 장편소설을 마침내 다 읽었고, 읽고 난 뒤 알 수 없는 갈증과 허기를 강하게 느끼면서, 그 공허감을 즉각 피할 수단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앨범이 컴퓨터가 있는 책상에 꽂혀 있었던 탓이다. 짙은 초록색 표지에, 책등엔 2001년 제 54회 ㅇㅇ중학교가 금색으로 새겨진 얇은 앨범이.
그 앨범을 펼치면서 놀라웠던 건, 내게 그렇게도 많은 기억이 남아 있었다는 것, 그 기억은 매우 신체적이라는 것, 그리고 거기엔 여러 감정들이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 친하지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어떤 아이의 손이 사진을 찍는 순간에 내 어깨에 올라왔던 것, 그 손이 유난히 불쾌했었던 기억이 그대로 재생된다. 가볍지만 어딘가 땀에 절어 끈적한 손이 어깨에 올라온 느낌을 받았고 이내 불쾌해졌다. 애들을 테니스채로 마구 때리곤 했던 기술 선생님이 컴퓨터를 잘한다고 알려진 나를 데려다 시험지 채점과 점수 입력을 시키며 내 어깨를 두드리던 것, 그 손길을 뿌리치고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던 기억도 재생된다. 싫다고 짜증을 내던 내 몸을 기어코 만지던 남자애들과의 불쾌했던 경험도 재생되고, 결국 어떤 애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고야 말았을 때 내 주먹에 남았던 그 둔탁한 타격감도 재생된다. 교실의 찌든 냄새도, 애들이 흘린 불쾌한 땀냄새도, 씻지 않아 나는 군내도, 화장실의 지린내도 재생된다. 선생님들의 목소리도 남아서 귓가를 울린다. 여하간 기분이 더럽다. 좋았던 기억이 그리 없구나.
내가 알았던(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고) 어떤 여성학 교수는 사석에서, 단식원에 들어갔다왔다며, 단식의 놀라운 효과에 대해 장광설을 풀어놓았었다. 거기서 기억에 남는 건 단식의 구체적 과정 같은게 아니라, 단식을 얼마간 할 때마다 몸이 아팠다는 것, 그리고 그 아팠던 부분은 사실 과거에 크게 다쳤던 부분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날이 지날 때마다 아픈 부분은 계속 달라졌고, 놀랍게도 아픈 순서는 다쳤던 순서와 역순으로 일치했다. 다쳤던 부분은 물리적으로는 다 나아서 일상에 지장이 없지만, 몸은 그것을 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구체적인, 신체적으로 남은 이 기억들이 싫다. 앨범을 태워버리고도 싶지만, 그랬다가는 모든 근거들이 사라질까 싶어 차마 그렇게 하진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작가는 서울이 자신을 닮아서 서울을 떠날 수가 없다고, 결국엔 서울로 돌아오고야 만다고 말한 적 있다. 에세이집 <Stay>에서 김영하가 말했던 것처럼(사실은 너무나 흔한 스테레오타입이긴 하지만) 서울은 아무래도 망각에 익숙하다. 물론 서울에도 소중하고 좋아하는 공간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서울이 공간에 대한 망각이 쉽게 일어나는 곳이란 건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공간을 망각한다는 건 그 공간과 연결된 여러 구체적인 기억들을 망각한다는 것과 유사한 이야기다. 잊을 수 있다는 건 슬프거나 피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일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힘이다. 모든 것을 지워야하는 것은 아니다.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따로 있고 나는 그것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144일 남았다. 조금만 더 견디자.
비록 멘토링 프로그램이 “청소년들의 문제 행동을 제거하고 건강한 발달을 촉진”(Hamilton, 1991) 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자주 장려되고 있지만, ‘멘토’의 전통적인 역할이 청소년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 ‘여성들’에게 적절하거나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위기의” 청소년들을 다루는 문헌에서 묘사되듯, ‘멘토’의 역할은 청소년들을 가르치거나 사회화하며, 그들을 위한 역할 모델로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탈학교(dropout)나 ‘학교를 다니는 엄마들(school-age motherhood)’로서 위기에 처해 있는 도시 청소년 여성들에 대한 이 연구는, [청소년 여성들과] ‘여성들’의 영향력 있고 건강하게 유지되는 관계는 청소년들의 지식과 경험, 감정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이해하고 정당화하는 ‘여성들’의 능력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제안한다. 청소년 여성들의 관점을 인지하고 존중하지 않은 채 무작정 가르치려들 경우, 그녀들의 경험과 지식을 강화하기 보다는 깎아내릴 수 있다. 또한 청소년 여성들이나 여성에게 해로운 사회적 관습을 사회화하려든다면 마찬가지로 파괴적일 수 있을 것이다.
초기 그리스 문학과 신화에서 유래한 멘토링 모델은, 청소년 여성들을 위해 널리 행해지고 있는 멘토링 모델의 한계를 보여준다. 오디세우스의 조언자 멘토는, 오디세우스가 오래 떠나있는 동안 아들인 텔레마코스를 보살피고 교육해야할 책임을 맡는다. 이 멘토링에 대한 묘사는 멘토와 텔레마코스 관계의 중요한 특징을 포함하고 있다. 멘토의 역할은 선생님이자 아버지의 대리자이며, 그리하여 멘토 관계는 대체로 성인 남성과 청소년 남성 사이의 관계가 된다. 내 연구는 멘토와 언어학적으로 뿌리가 같은 뮤즈를 다른 은유로 보여주고자 한다. 뮤즈는 영감의 원천이었던 신화 속의 여성들이다. 뮤즈의 역할은, 책임을 맡은 사람들의 천재성이나 예술성을 알아보고 그것에 불꽃을 일으키거나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뮤즈라는 은유는 청소년 여성들의 내면의 자원이나 가능성으로 초점을 이동한다. 이는 청소년 여성들이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데 치중하는 관계에서는 쉽게 무시될 수 있는 강점이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의 약점을 가정하는 멘토링이라는 조력 모델(helping model) 대신, 이 연구는 여러 배경에서 온 청소년 여성들의 다양한 요구와 자원을 인정하는 관계적 모델(relational model)을 제안한다. 또한 이 연구는, 청소년과 성인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점(vulnerabilities)과 동시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가정하며, 관계 속에서 이 두 파트너 모두의 공헌을 높이 평가한다.
Amy M. Sullivan, <From Mentor to Muse : Recasting the Role of Women in Relationship with Urban Adolescent Girls>, Urban Girls : Resisting Stereotypes, Creating Identities, p. 226-7의 번역.
note 번역 중 girl과 women의 구분이 조금 불편해서, girl은 '청소년 여성'이라고 했고 women은 성인 여성 혹은 그냥 여성이라고 바꿨다. school-age motherhood는 마땅한 번역어를 찾을 수 없다. 흔히 쓰는 말은 으레 '10대 미혼모' 일텐데, 이 말은 10대라는 말도 문제지만 미혼모라는 말도 문제여서 쓰지 않았다.
이야기/이미지 산업의 맥락에서 뮤즈는 대체로 더 이상 젊다고는 하기 어려운 중년 이상 남성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재현된다. 또한 대체로 뮤즈들은 남성 예술가들의 필요에 따라 쉽게 '용도 전환'된다. 보통은 제자나 팬으로 시작해서, 영감을 제공하면서 성적 관계를 맺고, 후에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거나 심지어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식이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아주 남자 중심적인 설명이고 프레임이다. 뮤즈들이 어떤 관심과 욕망을 가지고 그런 관계에 헌신했는지, 그 관계에서 뮤즈들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전략적으로 행동했는지, 그리고 뮤즈들의 욕망은 어떤 사회적 관계에서 가능하며 또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으며, 그것이 나쁘다면 어떻게 돌파할 수 있으며 때로는 해체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별 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뮤즈는 어디까지나 신화적인 느낌을 주는 신비로운 인물일 뿐, 현실에 존재하는 남성 예술가와 그들을 옹호하는 문화적 맥락에서는 뮤즈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계는 옴니버스 영화 <뉴욕 스토리>에서 한 번 뒤틀린 모습을 하고 등장한다. 그 영화를 보면서 조금은 즐거웠었는데, 그 영화의 문제는 그 남성 예술가가 겉으로 보기에도 좀 찌질했었다는 점이다. 뭐, 사실 대다수가 그럴 수도 있고)
이러한 뮤즈는 에이미 설리번의 논문에 오면 아주 적극적인 주체로 모습을 바꾼다. 주로 남자-남자 모델, 혹은 남자-여자 모델을 가정하는 멘토링은, 뮤즈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수사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자-여자 모델도 마찬가지로 멘토링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청소년과 (부모이든 부모가 아니든) 성인과 맺는 관계의 특징이나 수행되는 방식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뮤즈링은 하나의 규칙이나 규범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수행의 결과'로서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설리번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근대 국민국가의 일반적인 교육과정(10대는 학생이자 청소년)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반드시 그것에 한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30-50대면 어떻고 동년배면 또 어떻고.
이 글을 읽으니 떠오르는 경험. 예전에 대학교 다닐 때 잠깐 멘토링을 한 적이 있다. 인근 중학생들 중 사교육을 받기 힘든 아이들 3~4명을 멘토링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매주 2번씩 2시간, 과외 시간처럼, 그 중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을 만나 멘토링을 하는 거였다. 물론 페이도 받았다. 과외랑 똑같이. 8회 40만원. 같은 돈을 받고 과외 따위를 하느니 더 여러 아이들을 만나서 멘토링을 하는데 당연히 흥미를 가질 수밖에.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결국엔 상담을 조금 가미한 과외로 굴러갈 가능성이 컸다. 물론 1달에 몇 번 멘토들이 모여서 슈퍼바이저와 함께 회의를 해야했는데, 당시 내가 보기에 그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관심은 어떻게 '결손된' 청소년들을 올바르게 학교 질서와 사회에 편입시킬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관제 프로그램이었으니 그럴 법도.
그런데 심지어 어떤 남자 멘토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굴복시킬 것인가'에만 관심이 컸다. 애들이 말을 안듣는다고 짜증을 내는 사람이 멘토링을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니들부터 가르치고 사회화해야겠다 이놈들!) 정말 그런 광경은 끔찍했고, 사실 내가 만난 아이들도 그 관계를 관(官)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과외로 인식할 뿐이었다. 게다가 3~4명이었다. 1대 1도 아니고. 결국 빛 좋은 그룹 과외가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도망쳤다. 미안하고 죄책감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당시에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내 나름대로 노력을 할 수도 있었고, 또 그때가 멘토링 프로그램 초기 단계였으니 시행착오 단계로 봐도 좋았다. 다른 멘토들이 저질이든 쓰레기든 상관할 바 아니었다. 나만 잘하면 되었을 것을. 그때 이 논문을 읽었다면 진짜 좋았을 것 같은데...
차라리 활동비만 실비로 받고 따로 돈을 받지 않는 관계였다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 뭐, 지금 같아서는 더 잘할 자신 있다. 하하하. 후, 열린 교실 또 한 번 하고 싶네... 분명 힘들었지만 정말 기쁘게 보냈던 시간. 지금도 기억에 뿌리 박힌 경험. 그리고 그 아이들. 이야, 이젠 대학생된 애들도 많겠네!
얼굴이 나이를 제대로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 하나를 잃어가고 있다(음?) 반드시 얼굴 탓은 아닐 것도 같지만 ㅎㅎ 어쨌든 난 남들이 내 성별 헷갈려 하는 걸 정말로 즐기는 편이다. 특히 나이가 좀 되는 사람들이 많이 헷갈려 한다. 물론 꼭 그렇기만 한 건 아니어서, 예컨대 예전에 참관 수업 나갔을 때 중학교 애들이 처음 내게 했던 질문도 "남자예요, 여자예요?" 였긴 했다만ㅋㅋ 그런데 대다수, 아니 정말 99.9999%의 사람들은 처음 만났을 때 내 성별을 헷갈려하면, 정말이지 되게 미안해 한다. 즉각 사과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순간 공기를 채우는 어색함까지... 그리고 그렇게 한 번 헷갈린 분들은 보통 내게 말을 다시 안건다. 너무 미안해서 그런건지, 혹은 싫어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근데 난 그런 반응 진짜 좋아하는데. 난 전혀 안 불쾌한데. 난 그 말 칭찬으로 듣는데. 그래서 오히려 그래주면 정말 고마워하는 편인데. 이건 어쩌면 관계 맺을 때 내어 놓을 수 있는 내 자원이기도 하니까. 어딜가도 가끔씩 완전 주변부 인간처럼 느껴질 때가 많긴 하지만, 그런 점도 난 아주 편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보통은 다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받거든 흐흐. 그건 어릴 때부터 그랬기 때문에 뭐 인생 그 자체가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그래, 정말 난 태어나서 그런 말 들어도 한번도 불쾌한 적 없었는데.
물론 이건 내 외모 탓은 아닐 것이다. 외려 어떤 행동의 패턴이랄까, 예를 들면 걷는 습관이랄까,하는 점에서 순간 헷갈리게 하는게 분명히 있는 듯. 근데 나이 먹으면서 그런게 차츰 줄어드는 것 같아 슬플 뿐 ㅠㅠ (그래도 스물 여섯이라 말하면 놀라는 사람들 아직은 꽤 된다고!)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말 줄임표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구나 싶은 시. 말 줄임표 하나하나가 칼날이 되는 듯 혹은 망치가 되는 듯. 이런 시는 처음. 나, 킥킥.
"당신"이라는 단어를 보면 왜 이렇게 일상이 흔들리는지. 이게 다 3월의 봄바람 탓일 뿐일지. 이인칭 중에 "너"나 "그대"라는 단어보다도, 역시 "당신"이란 단어가 훨씬 좋게 들린다. "너", "그대", "당신"이란 단어는 각각 다른 거리감을 주는 탓에.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당신"은 굳이 말하자면 "너"나 "그대" 사이 어딘가에 놓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너"는 너무 직접적이고(일상 대화체 느낌), "그대"는 너무 먼 느낌이면서 추상적인 느낌을 주지만(철학이나 인생관 내-음새, 그래서 언제든 대체할 수 있다는), "당신"은, 바로 내 눈앞에, 혹은 내 근처,에 있다는, 그런 강한 존재감과 구체적인 감각을 주는 듯, 그러나 입을 열고 말하는 순간 한편으로는 어딘가 쓸쓸해지는 느낌.
나는 이인칭이 너무 좋아서, 이인칭이 없으면 삼인칭의 세계로 나가지 못 하겠다. 이건 어찌보면 비극.
세계를 성애화된 비유로 표상하는 집단적인 담론 구조에서 혁명의 꿈은 개인의 시간으로 환치되고, 사랑의 열정과 사랑의 대상과 하나가 되었던 황홀한 순간은 배신에 대한 증오 앞에서 멈춰서버린다. 그래서 세계를 성애화된 비유로 표상하는 서사에서 꿈은 '청춘의 열병'으로, 혁명의 시간은 개인의 생애사적 시간 속의 빛나는 순간으로 그려진다. 이 서사는 지속되지 못한 혁명에 대한 사랑의 열병은 '아름답게' 그려내지만, 혁명을 살아남은 자의, 개인의 생애로 환수한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의 '좌절된 꿈'의 시간으로 환수된 혁명의 시간은 배신에 대한 증오와 환멸, 혹은 자기모멸의 시간 앞에서 멈춰 서버린다. 따라서 세계를 성애화된 비유로 표상하는 서사에서 사랑은 빛나는 순간 속에서 멈춰 서기를 반복한다.
_권명아, <죽음과의 입맞춤 : 혁명과 간통, 사랑과 소유권>, 문학과 사회 2010 봄, p. 298
이 글을 읽고 있자니 학부 때 알던 여러 남자들의 얼굴이 아주 새삼스럽게 스쳐 지나간다. 저마다의 구호를 갖고, 저마다의 학정조(학생정치조직)등 집단의 후광을 두고, 가끔씩 일이 있으면 연례 사업처럼 깃발 들고 나가기도 하고, 술집에서는 과장된 영웅담이나 허세를 부리거나 고뇌를 연출하여 후배들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고, 선거철이 되었다 싶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수트를 빼입고 컬러 포스터 속에 등장하던 남자들. 그 남자들을 둘러싼 담화는 오직 뒷담화일 뿐이고, 그들은 군대에 입대하거나 고시 공부를 하기 위해 잠적하기 전까지는 매우 잘나가는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당연하다는 듯, 그들은 수없이 많은 연애를 했고, 그 연애의 끝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 남자들만큼은 그 공동체 속에서 끝끝내 생존해 남았다. "혁명의 문법에서 사랑이 정치와 탈정치를 둘러싸고 젠더화된 위계를 구성하는 것은 혁명에 대한 열정이 특정 주체를 중심으로 배타적으로 위계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혁명의 문법에서 청년의 열정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지만, 여성, 미성년, '무지한 대중'의 여정은 과잉되거나 부족한, 혹은 훼손되거나 결여된 것으로 간주된다. (같은 글, p. 295)" 음. 계속 다른 부분도 인용.
생애사의 리듬 속에서 혁명은 젊음의 열정, 젊은 날의 추억이 된다. 그 추억 속에서 첫사랑의 열병은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이 되지만, 결국 그 열병은 성장을 위해 누구나 겪는 성장통처럼, 통과제의와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추억 속에서 혁명은 통과제의와 같은 자연사의 한 과정처럼 되어 버린다. 그래서 생애사의 서사에서 혁명은 역사가 아니라 자연 과정이 되어버리고, 현재가 아닌 과거의 몫이 된다.
또한 추억 속의 혁명은 혁명의 좌절에 대한 책임을 언제나 사랑의 대상에게 전가시키고, 추억의 주체는 혁명을 생애사의 원형적 기억으로 곱씹는다. 이렇게 추억이 된 혁명 속에서 변절은 언제나 타자의 몫이며, '나'는 혁명을 순수한 기억으로 소유할 수 있는 배타적 소유권을 지닌 '순수한 주체'로 면죄된다. 추억이 된 혁명이 혁명에 대한 소유권, 혹은 혁명의 원본과 변절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즉 혁명을 생애의 "원형 기억"으로 추억하려는 욕망은 혁명을 과거에 고착시키는 동시에 혁명의 좌절을 타자에게 전가한다.
_같은 글, pp. 300-1
권명아 평론가의 이 글은 4. 19에 대한 것이지만, 그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이는 단지 4. 19세대만에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386세대", "87년 세대"에게도 마찬가지인 어떤 모종의 규칙이다. 대학생으로 대표되는 '젊음'과 사랑과 혁명과 열정과 섹스와 젠더의 결합 공식이랄까. 이 공식을 잘 풀어낸 사람들만이 그것에 대해서 말할 자격을 갖는다.
60년이나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추억하는 서사들을 읽을 때 큰 불편함을 느꼈던 게 <정확히> 이런 점들 때문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도 매혹적인 배우들과는 별개로 불편하게 볼 수밖에 없었던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남자 작가들이 보여줬던 당시 세계는 분명히 예컨대 공지영 작가가 90년대 초반에 그려냈던 세계와는 다르다. 좀 더 생각과 독서를 이어나가야 할 주제.
뤽 볼탕스키(Luc Boltanski)라는 프랑스 사회학자가 있다. 설치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가 그의 동생이라고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뤽 볼탕스키는, 한국에 그리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피에르 부르디외 이후 프랑스 사회학계의 중심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자신의 형이자 언어학자인 장-엘리 볼탕스키가 부르디외와 친구였던 관계로, 일찍부터 부르디외와 각별한 친분을 맺고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 부르디외의 대표적인 공저자이자 수제자로 꼽혔던 그는 1980년대 들어 부르디외 사회학과 근본적으로 단절하고 독자적인 방향을 모색해 나가면서 프랑스 학계에 작은 파란을 일으킨다. 당시 볼탕스키의 부르디외 비판은 호사가들에 의해 ‘부친 살해(parricide)’라는 이름이 붙었을 만큼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또 프랑스 사회학의 패러다임 전환과 분화를 가져온 의미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볼탕스키가 2008년 소책자를 하나 펴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Rendre la réalité inacceptable』라는 제목의 이 책은 동시에 나온 『지배이데올로기의 생산La production de l'idéologie dominante』이라는 책의 부록과도 같은 성격을 가진다. 좀 더 부연하자면, <지배이데올로기의 생산>은 1976년 볼탕스키가 같은 제목으로 부르디외와 공저한 논문을 책의 형태로 재출간한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는 바로 이 “지배이데올로기의 생산”의 재출간을 계기로 볼탕스키가 그 논문의 기원, 문제의식, 논점, 스타일, 수용 등을 여러 개인적인 일화와 더불어 정리한 책이다. ‘부친살해’ 이전 볼탕스키의 궤적을 부분적으로밖에 알고 있지 못한 내게 부르디외와의 협력 시기에 대한 볼탕스키의 회고는 자못 흥미로웠다. 그 가운데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어떻게 두 사람이 주역이 되어 《악트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라는 학술지를 창간했는지 서술한 대목이다.
《악트》의 놀라운 마법
지금은 세계적인 학자들로 자문위원과 편집위원의 진용을 갖춘 프랑스 사회학계의 대표적인 학술지로 성장해 있지만, 초창기의 《악트》는 약간의 저작 경력만 있는 40대와 30대 초반의 사회학자 둘이서 고생 고생해 만들어낸 일종의 ‘학문적 동호회지’나 다를 바 없었다. 물론 거기 실린 논문들이 새롭고도 어려웠으며 신랄하면서도 발랄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부르디외와 볼탕스키는 사회과학고등연구원으로부터 얻어낸 약간의 지원금과 몇 명의 조력자(편집자, 디자이너, 인쇄공)를 데리고 일 년에 자그마치 여섯 호씩 나오는 학술지를 펴냈다. 1975년 첫 호가 나왔으니, 바야흐로 손으로 쓴 원고를 다시 타자로 치고 각종 시각자료를 가위, 풀로 오려붙여 레이아웃을 짜면 연구원 지하 2층의 인쇄소에서 오프셋으로 책을 찍어내던 시절이었다. 부르디외와 볼탕스키는 몇몇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논문 원고를 채우면서, 잡지를 편집, 제작하고, 학교의 아는 사람들을 통해 직접 배포까지 해야만 했다. 그렇게 만든 창간호 2천부가 2주 만에 다 팔리고, 일 년 만에 《악트》의 정기구독자가 1천4백 명을 헤아리게 된 상황을 볼탕스키는 “진정 마법의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초창기 《악트》는 사실 지금 들춰봐도 놀라운 감이 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다양한 주제(이를테면 만화·패션·스포츠·자동차·사진 등등)를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한 논문들, 그리고 종종 중요한 외국 저자들의 번역논문들을 빽빽이 실은 이 학술지는 내용에서만이 아니라 스타일상으로도 전위적이고 도발적이었다. A4 용지 크기의 판형에, 논문의 형식은 내용에 따라 들쭉날쭉했다. 일반적인 논문 외에 한 두 페이지짜리 연구노트나 비평, 서한문이 실리는가 하면, 『지배이데올로기의 생산』처럼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논문도 실렸다. 부르디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마르틴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나는 철학자다』라는 제목으로 국역본이 나와 있다.) 역시 원래 이 잡지에 먼저 실렸던 한 편의 ‘논문’이다. 게다가 《악트》의 논문들에는 그 주제와 개념을 시각화한 그림·사진·도표·통계·만화·인터뷰 발췌문 등이 덧붙었다. 볼탕스키에 따르면, 그러한 구성은 그즈음 프랑스에서 한창 유행 중이던 만화 팬진(fanzine)을 모델로 삼았다는 것이다!
폐쇄된 자유의 공간
책에서 볼탕스키는 이 회고담의 의도를 명확히 밝힌다. 그것은 ‘좋았던 옛 시절’의 노스탤지어나 나르시시즘에서가 아니라, 현실 비판의 의지 속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는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삼십 년 전에도 가능했던 일이 왜 오늘날 이루어질 수 없겠는가?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이는 무엇보다도 대학 사회가 더 ‘규범화’ 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도 장애물은 많았다. 권위적인 학장이 있었고, 땍땍거리는 보직교수들이 있었고, 정치적인 반동분자와 바보들이 있었고, 오만한 구식 관료들이 있었다. 그래도 ‘근대적인’ 경영과 관리 기술이 학계와 문화계 곳곳에 침투해 있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의미의 ‘능력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연구자들과 놀고먹는 교수들이 뒤섞여 있었고,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볼탕스키는 흥미롭게도 다음과 같이 논의를 이어간다. 이러한 관리상의 허점이 바로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만든 자유의 공간을 열어주었노라고. 주변인들은 주변부에서 편하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노라고.
볼탕스키에 따르면, 그 시절 프랑스의 대학 사회가 어느 정도 파편화되고 분절되어 있었기에, 규범은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내면화되어 있지 않았다. 세속적인 성공이나 대단한 보상을 바라지 않는 연구자들은 규범을 무시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적당히 보호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조건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그 결과 지속적인 위반이 이루어졌다. 그럴듯한 경력이나 직위나 성과가 없는 사람들, (부르디외나 바르트나 샤르티에처럼) 박사학위도 없는 사람들, (푸코나 들뢰즈처럼) 때로는 약간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까지 아우르는 대학 사회의 소세계가 있었고, 뭔가 새로운 사건은 바로 거기서 벌어졌다. 이른바 ‘정상과학’의 바깥에서, 지금껏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와 대안적인 접근방식, 예기치 못한 이해관심이 계발되었던 것이다. 프랑스 주류 사회학계의 학회지에 맞선 학술지 《악트》는 그렇게 탄생했고, 새로운 학풍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지금은? 볼탕스키는 씁쓸하게 되묻는다. “오늘날 누가 그런 잡지에다가 자기 논문을 출판하겠다고 나서겠는가? 타자기로 치고 통계와 미키마우스가 나란히 콜라주된데다 노골적으로 비판적인, 편집위원회 조차 없는 프랑스어 잡지. 누가 자기 경력을 위해서 그런 잡지를 바라겠는가? 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단’이 사라진 대학 사회
20세기 후반의 인문학계는 프랑스 학자들이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문학·언어학·역사학·사회학·정신분석학 등 각 분야에서 프랑스 사상은 ‘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포스트모더니즘’ · ‘프랑스 이론(french theory)'·'새로운 역사학’ 같은 다양한 꼬리표를 달고 영미권과 유럽은 물론 아시아 곳곳에까지 퍼져나갔다. 그 덕분에 우리도 프랑스에 세계적인 ‘석학’들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그런데 민족이나 인종 ․ 개인의 ‘천재성’이라는 신화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그들 역시 특수한 사회적 조건 아래 생산된 존재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볼탕스키의 회고는 프랑스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뒤바꾼 학자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의 일단을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곱씹어볼만하다. 그것은 ‘더 많은 이단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해줄 수 있는 대학 사회의 분위기’야말로 학문의 혁신과 발전에 핵심적인 요인이 아니겠느냐고 넌지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왜 《악트》 뿐이겠는가? 《텔켈Tel Quel》, 《코뮈니카시옹Communications》, 《르세르쉬Recherches》, 《트라베르스Traverse》, 《악튀엘 마르크스Actuel Marx》 등등 숱한 아방가르드 잡지와 학술지, 그리고 크고 작은 출판사의 새로운 총서들이 가장 생산적이었던 시기의 프랑스 학계를 들끓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우리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지금의 대학 사회에 과연 이단들을 위한 자리는 있는가? 안타깝지만 규범화의 압력, 정상성의 독재가 우리 사회 다른 어디보다 더 심해진 곳이 바로 대학 사회다. 교수 선발에서는 어느새 영어 발표와 영어 강의가 의무화되었고, S(S)CI와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 목록은 유일하게 권위 있는 평가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연구자들은 학교에 취직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공부한 지역이나 전공분야에 관계없이 영어학원에 다녀야 하고 등재지 논문의 출판에 조바심쳐야 한다. 이렇게 해서 공정한 경쟁의 외양 아래, 영미권 이외의 지역에서 공부한 연구자 집단은 대학 사회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되기에 이르렀다. 다른 연구 관심, 다른 문제틀, 다른 지적 전통 아래 공부하는 이들이 대학교수직에 안착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정규직 임용이나 승진을 위해 연구자들은 무엇보다도 등재지 논문의 양산을 요구받는다. 그러니 누가 등재되지 않은 지면, 정해진 논문 형식에서 벗어난 글, 다작이 어려운 연구를 택하겠는가? 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데 말이다.
‘바깥의 사유’를 위한 자원의 배분이 필요하다
학문의 세계에서 ‘선택과 집중’만이 능사일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자유와 다양성’이야말로 창조의 바탕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정부와 대학 또한 당연히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브레인 코리아’, ‘인문한국’, ‘월드 클래스 유니버시티’를 원한다면, 그런 이름표를 단 프로젝트 추진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외래강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입법과 정책안 마련부터 꾀해야 한다. 그 필요성을 간절히 호소한 개인적 희생이 이미 몇 차례나(!) 있었고, 최근에도 비정규직 교수노조의 장기농성이 있었다. 어렵게 학문의 길을 택한 이들이 대학의 비정규직 위치에서나마 안정적인 연구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일이 왜 그리 어려운 것일까? 학계에 지원할 예산이 있다면, 실속 없는 각종 세미나와 해외석학 초빙, 그리고 대형 프로젝트가 아닌, 강사들에 대한 합당한 지원에 우선적으로 돌려져야 한다. 그들이 연구재단의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얽매이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자신이 원하는(혹은 만든) 지면에 발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학술 출판에 대한 지원 또한 대폭 늘려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원의 절대량보다는 자원의 배분이 문제이며, 그 배분을 결정하고 정당화하는 가치가 문제다. 예산의 새로운 배분은 세미나 준비와 프로젝트 관리에 바쁜 교수들에게 ‘시간’을 지원해주는 역설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수들에게 긴요한 자원은 돈이 아니라 ‘시간’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대학이든 정부든 그들에게 ‘시간’을 지원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현재의 대학 사회와 한국연구재단이 부과하는 ‘규범’이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며, 우리 학계에서 일정한 성과를 일궈냈다는 사실마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규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이상, 어느 시점에서는 그것의 완화 내지 분화가 학문의 발전에 더 효율적인 방편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규범을 최대한 다원화하고 그것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지대, 틈, 사이를 내버려두기. 규범에서 벗어나는 연구들이 학계에서 우글거리며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기. 비정규직 연구자들이 상징적 보상만을 추구하면서도 생활할 수 있도록 대학 강의에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기. 그들에게 사유의 실험과 시행착오를 위한 시간을 보장해주기. 바로 그러한 기반 위에서 학문의 이단은 무럭무럭 성장할 것이며 ‘정상과학’의 혁명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기』를 읽으며 내가 떠올린 생각들이다. 2010.3.22 ⓒ 이상길
오늘은 때늦은 폭설이 내렸고, 커피체인점 중에서는 가장 조명이 마음에 드는 커피숍에 들어가서 서경식 교수와 타와다 요코 작가의 서한집을 읽었다. 개인적인 선호와는 별개로, 정말 아름다운 글들. 몇몇 구절은 노트에 옮겨 적고, 스쳐가는 아이디어를 많이 기록해 두었다. 훔칠 수 있는 건 최대한 훔쳐야 한다. 역시 빌리는 거로는 부족하다. 모든 것은 "최초의 첫번째"처럼 해야.
일요일에 ㅈㅇ 모임이 끝나고는 오랜만에 술을 많이 마셨다. 너무 좋고 또 고마운 사람들. 4명이 3000cc 4통 조금 못되게 마셨으면 많이 마신 것 맞지? 자리를 뿌옇게 채웠던 연기는 차라리 아늑했고, 담배 꽁초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태우고 재털이에 머리부터 꽂혀 수북하게 쌓여갔다. 그리고 그 풍경에 어울리는 이야기의 토픽들. 오랜만에 나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 덕에 분명해진 무엇인가가 있었으며, 그래서 조금은 행복했고, 한편으로는 반대편으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도 했다. 내가 여태껏 가져왔고 앞으로도 가져가야하며 가져갈 수밖에 없는 것들, 오롯이 혼자 버텨내고 견뎌내고 참아내고 지켜내야 할 모든 모나고 못난 것들이 그 긴 그림자로 남았다. 그러나 그 그림자야 말로 내가 기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지도 몰라서, 그걸 잃는 순간 내 위태위태한 일상이 아예 뿌리 뽑히게 될른지도 몰라서,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구나 어렴풋 느끼게 되었는지도 몰라서, 머무르던 방으로 돌아와서 엉엉, 집으로 돌아와서 엉엉 엉엉. 갑자기 왠 청춘스케치람.
주말엔 많은 걸 봤다. 연극 <인형의 집>도 봤고, 영화는 <도와줘, 에로스>, <경계도시2>를 봤고, 시립미술관에 가서 2009년 수집 작품 전시를 봤다. <경계도시2>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니 나중에 다른 포스팅으로 기록해 두기로. <인형의 집>은 원작자 거장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는 걸 느꼈고, <도와줘, 에로스>는 이제는 좀 질릴것 같기도 한 대만 감독들의 서사와 문법과 영상이 여전히 매혹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 2009 수집 작품전에서는 기억에 남는 두 작품 정도를 건졌다. 몇 번 작품으로 접했던 작가들의 작품도 있어서 반가웠고. 근데 미술관은 왜 조명에는 신경 안쓰는거야? 대개 조명은 회화 중심이어서 공예작품에는 어울리지 않고, 그나마 회화를 비출 때도 썩 좋지 않다. 개별성은 고려 안하나? 나한테 전권을 위임해주면 진짜 잘할 자신 있는데.
안경을 새로 했는데 가격면에서 좀 무리했다. 이번엔 완고하고 결벽증있는 섬약한 지식분자 엘리트(-_-) 나부랭이 이미지로 연출하고 싶었다. 점원분 괴롭혀가며 심사숙고해서 테 고를 땐 진짜 마음에 들었는데, 정작 렌즈까지 맞추고 써보니 의도했던 이미지도 안나오고, 무엇보다 안 어울린다. 이번엔 좀 큰 테로 하고 싶었는데 그게 결정적인 실패 이유인듯. 눈 나쁜게 죄지. 죄인은 그저 울지요 ㅠㅠ 만성 다크서클만 없어도 렌즈하면 좋을텐데. 참, 그 안경점에서는 여태껏 못해봤던 테스트를 여러 가지 했는데(이상하게 안경점에서 하는 테스트는 삶이 좀 윤택해지는 느낌을 준다), 그 테스트 하는 도중에 점원이 갑자기 "손님 성격이 좀 예민한 편이시죠?" 라고 그래서 뜨끔했지만 "아, 뭐 그다지; 왜요?"라고 작게 대꾸했더니, 검사해서 나온 난시 각도를 보면 다 알 수 있단다. 이 난시 각도를 가진 손님들은 대개 신경이 예민하다네. 신기함.
이상하게 이번 봄에는 가고 싶은 훌륭한 기획 강연도 많고 세미나도 많다. 게다가 보통 주중에 진행하네. 여름까지는 주중에 꼼짝 못하는데... 왜 하필 이럴 때만. 휴가도 꼭 써야할 때가 있어서 못쓰고. 지산 락 페스티벌도 1주일만 늦게 해도 당장 갈텐데. 가을에 할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엔 꼭 가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을 것 같아. 그래도 조만간 여성영화제 한다. 주말에 가려면 미리 막 찍어둬야는데.
말이 나오는 맥락이야 늘 다르지만, 어떤 사람을 불가피하게 외모로 설명해야 할 때가 언제나 있다. 정치적 올바름 같은 건 별로 상관없이 말이다. 그럴 때면 아직도 언제나 비끗해버린다. 아직도 예쁘다, 아름답다, 잘생겼다, 섹시하다, 못생겼다, 추하다, 키가 크다 하는 식으로 외모를 직접 묘사하는 단어를 잘 쓰지 못하겠다. 그래서 아주 노골적으로 "예뻐?", 혹은 "잘 생겼어?" 라고 물어보거나, 마치 뭔가를 아는 듯 "아, 그 사람 예쁘지/잘 생겼지"라고 말하면... 정말 답도 안 나온다. 아직까지 그 말에 전혀 호응을 할 수가 없다. 그럼 서둘러 에둘러 표현할 뿐; 음.. 예컨대 이런 식으로 "(삐질삐질) 어... 어떤 기준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사실 이 단어들은 어느 수준의 '객관'을 가정한다. 즉 이 단어들은 사회적으로/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어떤 (성애적인) 외모 특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주관적 판단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판단에 가깝다. "예뻐?", "잘 생겼어?" 따위의 질문이나 "예쁘다", "잘 생겼다"라는 진술은 잠재적으로 yes나 no로 판단할 것을 요구하게 되고, 주관식 판단은 이단과 탈주로 간주된다. 이 말에 yes, no 따위로 판단하는 건 그 말 안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외모에 대한 이성애 사회의 규범을 일단 승인하고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들을 쓸 때 "내가 볼 땐..."이나 "내 기준에서는" 같은 단서를 붙인다 해도 크게 다를 바 없으며, 그 뒤에 덧붙이는 설명도 단지 변명처럼 들리게 될 뿐이다. (흔히 쓰이는 "귀엽다"는 말은 노골적으로 권력을 드러내는 말이니 사람에 대해서는 더더욱 쓰기 어렵다)
그에 비해 사람의 외모를 표현할 때 "매력적이다", 아니면 좀 고풍스럽게 말하자면 "곱다", 하는 식의 표현은 조금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 같다. 이 단어들은 앞서 언급한 단어군에 비해 '이차적'인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해 이 단어들은 직접 외모에 호소하기 보다는, 차라리 어떤 모종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한 때 유행했던 형용사 "훈훈한"이 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단어는 외모로는 '2급'이지만 친근감 있다는 뉘앙스로 쓰였다). 그것은 주관적 체험을 암시한다. 그 말은 다만 내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전체 호감도를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외모에 대한 사회의 규범을 비판하지는 않아도 슬며시 피해가는 효과가 있다. 쓰기에 큰 무리가 없고 안전하다는 얘기다. 시각보다는 청각과 후각이 더 민감한 나로서는 선택하기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단, 누구도 "그 사람 매력적이야?" 같은 질문을 하거나 "그 사람 되게 매력적이더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게 문제; 또 많은 맥락에서 "매력적"이라는 말은 외모에 관한 말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어떤 지적/감성적 능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쓰인다. 그러니 이제는 고어(古語) 내지는 사어(死語) 느낌까지 주는 "곱다"는 단어는 말할 것도 없다(백석의 시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에 나오는 표현에 꽂힌 탓에 퍽 좋아져 버린 단어인데...). 그러니까 제발 내게 자꾸 묻지 말라고 ㅠㅠ 난 잘 모르겠다고 엉엉
3월의 어느 저녁엔 눈이 많이 내렸고, 나는 여느 때처럼 우산을 챙기지 않고 걸어 나갔다. 어둠에 젖은 시골 중심가에는 여느 때처럼 사람들이 없었고,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 몇 대만이 젖은 마찰음을 내며 스쳐갈 뿐이었다. 가로등 빛은 밝았으되 거리 전체를 밝힌 것은 아니었다. 몇 안 되는 상점의 백열등 조명은 거리의 물기 어린 적막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바람은 다소 강하게 불었고, 또 내쪽을 향해 불고 있던 탓에 많은 눈송이들이 내 점퍼에, 비니에, 가방에 부딪혀 내려 앉았다. 마침 후드티를 입고 나간 터라 목은 훤히 드러나 있었고, 목에 직접 닿은 눈송이들은 쉽게 사그라졌다. 그리고 당연한 물리 작용으로 눈은 몸에서 온기를 앗아갔다. 추웠다. 그 뿐이었다. 오로지 그 뿐이었다. 몸도 마음도, 오직 날씨가 춥다는 감각적 사실에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으아, 춥다.
어느 덧 나도 왠만한 것엔 일희일비하지 않을 정도의 기억과 경험이 쌓이게 되었다. 왠만한 것엔 놀라지 않고, 왠만한 것엔 실망하지 않고, 왠만한 것에는 자극받지 않고, 왠만한 것은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게 되었다. 무언가에 쉽게 매혹되기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고, 그 탓에 더 조심스러워졌고, 더 많은 걸 의심하게 되었다. 관계에 기대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이제는 차라리 모든 걸 걸어야 하는 모험이 되어버렸다. 물론 모든 모험이 그러하듯, 그 안에서 말은 언제나 빗나가고 행동은 실패하지만, 아직은 끝나려면 멀었고 결과도 예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 모험은 이제 스릴 넘치는 도전이라기보다는, 때로는 실패한 단어들 위에 쌓인 기억과 감정의 빚더미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애처롭게 진력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전자냐 후자냐 하는 것도 내 결정의 몫이라곤 전연 할 수 없다.
날씨는 계속 추웠고, 나는 여전히 그 감각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우산을 쓰지 않고 혼자 눈을 맞는 일은 없을 것이다.
눈사람님 덕에 알게된 곡. 이 곡이 연주되었다는 입센의 연극을 꼭 보고 싶은데..
아쉬운대로 이번 주말엔 연극 보러가기로 했다. 입센의 <인형의 집>.
지금 내가 바라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의 연극인데다가, 각색을 좀 했다고는 하지만.. 뭐.
-산문과 소설을, 가볍게 쓰는 글과 힘주어 쓰는 글을 뚜렷이 구분하는 태도가 보입니다. 소설에 대해서는 각별히 경건한 것 같습니다.
=천재의 소설이냐 소설이 아니냐가 아니라 진짜 훌륭한 소설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늘 그와 비슷한 소설을 추구하지만 항상 실패하죠. 그리고 다음에는 더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에세이는 평상시의 자아로 쓰는 글인데, 소설을 쓸 때는 개인으로서 쓴 적이 없어요.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소설 속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는 저보다 인생 전반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이야기를 해석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책도 많이 보고 기술적인 것도 배우고 경험도 하죠. 그대로의 저는 제가 쓰고자 하는 소설을 쓸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제 자신이 점점 소설 쓰는 자아로 변했고 제가 나아지고 있어요. 거기에 대해서는 거의 간증을 할 수도 있어요. (웃음)
-보통은 그냥 “작가로서 성숙했다”고 표현할 텐데 복잡하네요. 같은 사람이지만 소설을 쓰는 순간의 자신은 다른 존재라고 여기시나 봅니다.
=왜 소설 쓰는 자아와 제 자아가 다르냐면 창작하는 과정에 단절이 있어요. 처음 사회적 자아로서 뭘 쓰겠다고 결심하고 나면 먼저 스토리를 만드는데 쓰레기 같은 것들이 나와요. 평소의 내가 얼마나 후진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죠. 마감을 앞두고 잠도 안 자고 더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고쳐 쓰다 뻗어버리는데, 내 자만심도, 습득한 지식도 다 부정하고 아무것도 없이 깡그리 벗겨진 그 상태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예요. 그러니 평상시의 저와는 다른 존재가 썼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에요. 그 작품을 끝내는 순간에는 “이것은 소설임에 틀림없다”는 환희가 들었어요. 독자들도 제 에세이와 소설이 다르다는 걸 알아요. 에세이와 평소의 저를 좋아하지만 소설은 어려워하는 분도 있어요. 저 역시 독자들을 만나 소설을 설명할 때면 이미 평소의 자아로 돌아가 있기 때문에 남이 쓴 작품을 말하듯 어색해요. 문예지에 연재할 때는, 첫회가 제일 쉬워요. 마감하고 한달 놀고 한달 자료 찾고 마지막 달에 2회분을 쓰려고 첫회를 읽어보면 너무 잘 썼어요. 도저히 이렇게 쓸 수가 없고 남이 써줬다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겠다 싶어요. 그렇게 비참해하다가 간신히 쓰죠. 그리고 3회에 가면 또 가까스로 썼다고 여긴 2회분이 훌륭해 보여요. 그 상황이 반복되는 거죠. (웃음)
-역사소설을 쓸 때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취재하십니다. 고증에서 상상력으로 갈아타는 지점을 어떻게 정하세요?
=상상력 자체가 자료에 기초해요. 자료로 더이상 알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자료를 보죠. <꾿빠이 이상> 같은 경우 마지막 순간에 이상이 갖고 있었던 마음이 가장 중요한데 그건 자료가 말해주지 않는 부분이에요. 그 부분을 제가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읽는 이들이 자료로 써진 부분을 읽으면서 유추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게 제가 한 작업이었어요. 그게 인문학적 상상력인 것 같아요. 어떤 진실의 순간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쓰지 못해요. 방계의 정황들로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으면 제일 좋다고 생각하죠.
-사료나 옛날 신문의 중립적이고 짤막한 기록을 볼 때 가장 궁금한 부분이 무엇인가요?
=구체적 감각이 와닿는 사건들이죠. 예를 들어 고문이 있었다면 고문방법의 종류는 자료에 다 나와요. 그러나 제가 궁금한 건 1인칭화된 고문이에요. 당연히 아픔이 있었겠지만 아픔은 그 인간에 대해 말해주는 게 없죠. 고문당하는 와중에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일까? 그건 고문 자체의 고통이 아닐 수도 있어요. 김근태씨의 경험담을 보면 고문자들이 애들 교육문제를 잡담하는 소리였다죠. 그것만 해도 많이 들어간 건데 전 그것도 성에 안 차요.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가 당사자조차 모르는 무엇을 알아내야 해요. 그리고 사람들은 제가 취재를 한다고 하면 옛날 인물의 복식 같은 걸 찾는다고 생각하는데 좀 달라요. 예컨대 1940년에 태어나 60년에 대학 들어간 인물을 쓴다면 그 무렵 그가 읽었을 법한 책을 무작위로 읽어 그의 교양수준, 접했던 어휘, 감각적으로 노출됐던 폭력, 인식의 지평을 체화해야 해요. 그렇게 인물의 상태를 파악한 다음, 극적인 상황에 던져놓아야 고유한 행동이 나와요.
2008년 봄여름, 광화문에 나갈 때 제일 무서웠던 건, 사실 경찰이라기보다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들이었다. 참전유공자의 붉은 띠를 몸에 두르고, 군복을 맞춰 입고 근엄한 표정으로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할아버지들. 월남참전용사회, 뭐 이런 이름의 단체였던가? 고엽제 전우회였던가? 아무튼 이 할아버지들에게 언제 어떻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라서, 행진 대열을 마주치면 괜히 저만치 돌아서 도망가버리던 기억이 많다. 할아버지들에게 정당하게 또박또박 항의하던 사람들은 온갖 욕설과 호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경찰들은 이 할아버지들이 원군이라도 되는 양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사람들에게 못되게 구는 경찰들은 밀쳐도 되고 항의해도 되고 심지어 욕해도 괜찮지만, 아무래도 할아버지들한테는 그럴 수가 없었다. 방패를 쿵쿵 울리며 고함을 질러대는 무리 앞에서 덜덜 떨었어도 괜찮았고 물대포를 맞아 감기 걸렸던 것도 괜찮았고 발암물질이라는 소화기 가루 흡입해도 괜찮았고 도망치다가 진압봉이나 방패로 한두 대 쯤은 맞아도 다 괜찮았지만, 도대체 이 무서운 할아버지들의 욕설과 호통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어쨌든 그들은 '할아버지'였으니까. 할아버지들에게는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랐다. 당시엔 솔직히 말해 그냥 집에서 쉬시지, 손녀 손자도 없나, 이런 나쁜 생각까지 들었다. (에고고;;)
이건 나의 나이주의 탓이기도 하겠지? 근데 나 혼자 나이주의를 집어 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주의는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사람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엮어 주는 사회적 논리이며 사람들이 서로와 관계맺는 방식이니까. 그건 어쩌면 미/추 혹은 쾌/불쾌를 다루는 감성(미학)의 차원에 속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깨기 어려운.
2.
그런데 지난 주 한겨레21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요즘 들어 자주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단체에 대한 르포 기사였다(도대체 어떻게 취재를 다녀올 수 있었을까? 참 대단해). 단체 이름이 대한민국 어버이회였던가? 계란 투척부터 시작해서 온갖 욕설에 모욕에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어디까지나 강퍅한 '남성' 노인들이 모인 단체.. 가장 재밌는 말은 "여기 나와야 그나마 숨통이 트여"라는 말이었다. 또 "노인네들 빨리 죽으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나."라는 말도, "우리는 애국자야. 그런데 요즘 우리가 받는 대접이 뭐야.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한국 사람인데 우리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고."라는 말도, "거기 청년들이 우리더러 '어디서 돈 받고 왔느냐'고 묻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까지는 안 했어."라는 말도, 모두 정말 많은 것을 드러내는 말들인 것 같다(생애사 연구해도 재밌을 것 같다. 내가 할 맘은 없지만). <'과격한 어르신들'의 속사정>이라는 커버스토리에 딱 들어 맞는달까.
물론 기사 자체에 공감하며 읽지는 않았다. 이 기사는 진보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몽적 말투로 이 어버이회 회원들을 분석하고 또 처방하고 있으니까. 예컨대 이 '어르신들'이 삶의 과정에서 반공사상만을 주입받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장단점을 비교해가며 스스로 가치판단을 해볼 수 있는 교육을 박탈당한 세대"라며 이들도 "시대의 피해자"라고 이야기하는 걸 읽고 있자면, 잠시 아연해지면서 너무 단순한 분석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특히 "이들도 시대의 피해자"라니. 이런 알량한 온정에 고마워하기라도 해야할까? 이 기사의 말미에서 어떤 진보자유주의자 교수는 "굴절된 인식을 가진 이 노인들에게 그들의 행동에 대한 비판을 합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그럼 할아버지들에게 다른 가치관을 교육하면 되나? (어디까지나 가치판단이 함축된 단어인) 올바르고 정당한 정보를 제공하면 학습자들은 그걸 스폰지처럼 습득하게 되는 걸까? 그렇게 정당하게 간주되는 정보를 만들어내고 제공/강요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는 걸까? 정말 사람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일상에 대해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3.
이런 기사를 읽으면 사회의 '성원권'이라고 불러야 할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성원권은 개인의 지위를 결정하는 수없이 많은 요인들(출신 지역, 성별, 성정체성, 정치적 성향, 경제력, 학벌, 문화자본 등등등)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러한 요인들을 정당한 것으로 납득시키고 설득하고 강요하는 규범화/주체화의 논리와 테크닉들, 그리고 더 중요하게, 그렇게 규정된 지위와 성원권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속사정, 즉 <마음>에 대한 고려까지 포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세넷의 말을 바꾸어서 말하자면 "성원권의 숨겨진 상처(hidden injuries of the membership)"까지 말이다. 이 할아버지들의 "과격"하고 "날 선 주장"은 기사에서 표현되듯 "소외감"과 "모순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것이다. "소외"된 사람들은 상처입고 취약한 언어를 구사해야한다는 생각은 도대체 누구의 언설인가? 피해자의 정치학.
사회/정치 분석이 단지 학술적, 저널리즘적 언어로 표현되는 <말>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 또 사회적인 인정과 그 인정과 관련된 사람들의 상처도 고려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오랜 기간 관찰하고 소통하면서 발견되는 <행동>의 차원일 것이다. 그런 상처를 애써 봉합하지 않으면, 얼마든 그 상처는 여러 다른 조건에 의해 다른 폭력으로 촉매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분들이 좌파, 빨갱이, 친북 등을 논하는 건 어디까지나 이 분들이 계몽이 덜되서 그런게 아니라, 행동을 정당화 할 때 인용할 수 있는 한국의 역사적 내러티브 자체가 그정도 밖에 안되니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내러티브는 인종이나 계급, 성별, 성정체성 등 어떤 내용으로도 대체가 가능할 것이다. 이제 내러티브 분석은 충분하다고 믿는다.
4.
사실 제일 궁금한건,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의 차이다. 왜 무서운 할머니라기 보다는 무서운 할아버지들이 광장에 나타나는 걸까? "위안부 여성"은 흔히 "위안부 할머니"로 재현되지만, 이들 "할아버지"들은 "어르신"이나 "어버이"로 재현되는데, 이 차이는 도대체 뭘까? 풀어내고 싶은 젠더 연구 과제도 정말 많다.
시즌이 지날 때마다 <문학동네>랑 <문학과사회>의 주제를 보고 한 권씩 사모으곤 하는데, 이번 봄에는 두 계간지 모두 재밌어 보인다. <문학동네> 2010년 봄호는 지난 겨울호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 재밌게 읽을 글이 많다. 김연수 작가의 산문, 신형철 평론가의 소설론, 정이현 작가 인터뷰,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의 연설문, 한유주 작가의 단편소설, 등. 두꺼운 탓에 아직 눈길 한 번 두지 않은 페이지가 많다. 이번 <문학과 사회>는 일단 내리비치만 봐서는 한강 작가 인터뷰가 있다는 점, 그것 하나로만 기대하는 중! (왜 배송이 안오는그야..)
그리고 지금 방금은 헤르타 뮐러의 연설문을 읽었는데, 그는 시를 '썼다'는 표현을 하지 않고 '낱말을 모아 콜라주했다'고 표현한다. 이 말이 주는 느낌이 참 좋다. 시를 '쓴다'는 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어쩌면 남자들이 경쟁하는 세계에 속한 것일지 몰라서, 연륜을 갖춘 남자들이 이성과 직관의 조합에 의해 정전에 오를 시들을 창조해내는 매커니즘을 가리키는 말일지 몰라. 그래서 시를 통해 정치와 역사와 더 거창하게는 철학을 쓰는 것이지. 아직 그럴 순번이 안되서 못하는 젊은 남자 시인들은 자의식과 욕망에 대한 시를 쓰겠지. 여기서 시의 대상은 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씌어지는 것이겠지. 그렇게 '시를 쓴다'는건 사물에 대한 인식론이기도 하지. 또한 시를 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를 읽는다는 것도, 전통적인 시 미학이 허용하는 규칙 속에서 쓰고 읽을 수 있을때 가능한 일이 되지. 그렇다면 선생에 대한 존경(그리고 동시에 그를 배반해야 내가 산다는 숙명)은 '시를 쓰는' 행위 자체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겠지.
그러나 시를 쓰지 않고 헤르타 뮐러처럼 '낱말을 모아 콜라주'하는 건 어떨까. 그 행위는 시를 쓴다는 표현에 대한 지극히 정당한 항거가 아니었을까. 헤르타 뮐러는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작가들의 모임 악치온스그루페 바나트의 유일한 여성 멤버였다고 했다. 이랬던 그의 삶의 흔적이 시를 쓰는게 아니라 '낱말을 모아 콜라주'한다고 표현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라고 조심스레 상상하게 된다. 그건 사물을 다루는, 또 다른 인식론일테니.
<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를 통해 읽은 '다다의 마마' 한나 회히도 베를린 다다이스트들 중에서 얼마 안되는(혹은 유일한?) 여성 멤버였다고 했다. 그런데 회히는 다다의 마마였으므로 모임에서 샌드위치도 제공해야했고 유지비용도 대야 했다. 그랬는데도 첫 국제 전시회에서 회히는 제외되었고, 회히는 "아내가 설거지를 하라고 했을 때 정신발작을 일으키는 남자 예술가(ㅋㅋㅋㅋㅋㅋ)를 조롱하는" 연극을 공연해서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독일에서 여성이 스스로를 현대적인 예술가라고 칭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 동지들은 오랜 기간 우리 여성 예술가들을 매력적이고 재능 있는 아마추어 쯤으로 여겼지요. 전문적인 지위를 부정한 채 말입니다."
뮐러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알면 좋겠는데. 이상하게 작품을 읽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연설문에서 좋았던 구절 한 문단.
할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곧잘 아들 마츠에 대해 비통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래, 깃발이 나부끼면 이성은 트럼펫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법이지." 할아버지는 이 말의 뜻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경고는 나치즘에 이어 나타난 독재, 나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그 독재에도 맞아 떨어졌습니다. 크고 작은 이익을 좇는 사람들의 이성이 트럼펫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날마다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트럼펫을 불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p. 422)
헤르타 뮐러씨, 저도 트럼펫을 불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은지 좀 되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르겠어요. 트럼펫을 불지 않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자꾸만 말도 꼬이고 일상도 꼬여요. 봄 바람을 맞아 마음만 싱숭생숭.
몸 건강도 그리 좋지 못하고, 마음에도 여유가 없다(여유가 있던 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피곤하다. 나는 내 시간 갖는 게 정말 필요한데, 하루에 내 시간은 2시간 남짓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방해 받을 가능성이 높아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 글을 쓰거나 책을 집중해서 읽을 때 나는 유난히 신경을 곤두세우기 때문에, 방해 받을 가능성이 조금만 있어도 이내 산만해진다. 그렇다고 문을 잠그면 부모님이 서운해 하는 것 같고, 또 사춘기 청소년도 아닌데 잠글 것 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 방해를 받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적어도 방에 들어올 땐 노크를 해달라고 어렵게 말씀드렸는데, 말한 이후엔 노크를 하면서 동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빠의 경우엔 이 집의 주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런 걸 더 이해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다시 독립해 사는 생활이 5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기다리게 된다. 서울 전셋값이 많이 올라 좋은 집은 못구하겠지만, 어쨌든 부모님께서 전세방을 구해주신다고는 하셨으니 미리 좀 알아봐둬야겠다. 어디가 싸고 괜찮으며 어디 교통이 좋은지. 주변에는 도서관이랑 운동장이 있음 좋겠다. 주변에 주말 같은 때 놀러가도 되는 이가 살고 있음 더 좋고. 이것저것 따졌을 때 위치는 사실 마포구가 딱인데, 어떤 블로그에서 보기로 1억원 미만 전세가 마포에 몇백가구 밖에 안 된단다. 아이고 1억원이라니. 앞으로 예정된 내 삶의 수순을 보면 1억원 모으려면 20년도 더 걸릴 것 같은데. 대체 난 어디서 살아야 하나. 에고고, 서울 외곽으로, 또 외곽으로 밀려나겠구나. 경기도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만약 경기도에 살게되면 언제나 시계(市界)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게을러질 것 같다. 지명이 주는 느낌은 단순한게 아니란 말이지.
이번에 살게 되면 동생과 같이 살게 되겠지만, 뭐 그리 큰 걱정은 안 된다. 어차피 패밀리 스타일로 성장한 건 아니기 때문에, 각자 삶에 바쁘게 살거다. 또 이번에 방을 구하게 되면 집의 개방도(?)를 좀 높일 계획이다. 동생과 타협을 잘 해야겠지만. 어쨌든 예전에 살았던 방은 세명만 둘러 앉아도 꽉찬 느낌을 줬었는데, 투룸을 구하게 되면 작으나마 거실도 있을 거라 믿는다. 어쨌든 지금 생각 중인 여러 모임을 집에서 할 수 있게 호스트로서의 역량을 좀 길러놔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밖에서 돈 들이면서 모임을 하고 싶진 않다. 카페는 혼자나 둘이 가는게 제격이지 네명 넘어가면 골치 아프다. 그러니까 부엌에서 즉석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요리라든지, 모임에 필요할 몇 가지 도구라든지, 내 성격과 화술로는 어렵겠지만 좁은 공간에서 그리 친분이 깊지 않은 이들이 여럿이 앉았을 때 불편함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든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연습을 해둬야 할 듯하다.
2010년 들어서 1주일 마다 하루 어떤 모임에 간다(이 글을 보시진 않겠지?). 매주 서울에 가는 일이 쉽진 않지만 가는 것도 습관이라 이제는 차 안에서 왕복 4시간을 때우는 데 좀 익숙해졌다. 2달 쯤 지난 지금은 그 모임이 지금 내 삶의 유일한 활력이 되어 버렸지만, 사실은 여전히 그 모임에 가면 늘 긴장하고 있다. 여느 때처럼 아무 기대를 안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면 그냥 막 지를수도 있을텐데(지르고도 후회하진 않을텐데), 이 모임을 시작하기 전부터 호감을 가졌던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라서 막 말하지도 못하고 말하고 나서도 후회할 때가 많다. 내가 이렇게 인정 욕망이 셌던가 싶기도 하고. 이와 비슷한 예전 모임에 들어갈 땐 거의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어서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그런 친구들끼리만 모이는 모임은 한동안 가능하지 않을 것 같으니... 어쨌든 그 모임에 다니면서 내 언어와 위치, 말하기 방식에 대해서 계속 더 고민하고 회의(懷疑)하게 된다. 한동안 무뎌져 살았던 것 같은데, 다시 자극받게 되는 것 같다. 의무감에 써서 오늘 들고간 글은 결국 못 쓰게 되었지만, 못 쓰게 된게 정말 다행인 것 같다.
휴. 내일은 또 출근. 끝나기 까진 156일 남았다. 얼마 전부터 같이 사무실에 있게 된 아이한테 할 말이 점점 쌓이고 있다. 이러다 한 방에 열받아서 터트리면 안 되는데. 그러니 조금씩 풀어 내야는데, 별로 듣는 귀도 없는 애 같아서 걱정이다. 나와 상식이 통해야 얘기를 해도 할텐데. 걔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 말 같은게 마음에 드는 구석이 정말 단 하나도 없기 때문에, 별게 다 짜증난다. 사무실에서 사적인 전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큰 목소리로 하는거, 자기 할 일 안하고 매일 졸리다고만 하는거, 뻘한 소리 지껄이고 "그지?" 하고 동의를 꼭 요청하는 거, 중얼중얼 말하면서 일하는 거, 그런데도 내가 좀 짜증내는 것 같으면 막 눈치 보는 거, 사실 이거 다 별거 아닌데 하나하나 다 짜증난다. 아 정말. 어쩌면 진짜로 난 보통 일반 남자들하고 같은 공간에 오래 있는 걸 아예 못 견디게 된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점점 안티 소셜이 되가는군.. 이래 놓고 무슨 인류학을 전공하겠다고. 품을 더 키워야는데. 뭐, 이런게 싫진 않다.
문학동네 2010년 봄호에 실린 김연수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제목부터 김연수 작가스러운 느낌을 주는 산문이었다. 「오직 매일 쓰고, 다시 쓸 때에만 문학은 애도할 수 있다」라니. 어디에다 갖다 붙여놔도 김연수 작가가 썼겠거니 싶은 제목이다. (ㅎㅎ) 오랜만에 읽는, 참으로 올바르고 똑하니 서있다는 느낌을 주는 에세이였다. 그의 최근 소설들이 보여주는 어떤 문제의식이 느껴졌지만, 완전히 색다른 느낌을 주는 글이다.
김연수 작가를 중견 소설가라고만 부르는 게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한지 오래되었다. 신형철 평론가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라고 밝히고 다녔다고 했던 여러가지 설명 중에 하나대로, 그가 세태 관찰보다는 인문사회과학서적 독서에 열심인 작가라고 생각해서만은 아니다. 그를 단지 훌륭한 스토리텔러라고 설명하면 어딘가 아쉬움과 잉여가 남는다. 언제나 그의 작품에는 이야기와 함께 다른 메시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에 메시지가 있다는 말은, 그가 소설을 통해 무언가를 가르치려 든다는 것이 아니다. 메시지가 발신되었다고 모든 독자들이 수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메시지가 있고 메시지를 인식/수신한 독자들은 그것을 해석할 뿐이다. 이 메시지의 수신가능성을 과대 평가하면, 어떤 평론가처럼 김연수 작가를 386세대 끝물 소설가라고 비난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게 된다.
그렇다고 애도와 타자, 타자의 이해불가능성(폭력적으로 타자를 전유하는 것을 금지한다), 1인칭의 고통(삶과 고통은 그에게 고유한 것이다)에 대해서, 그리고 그 고독한 1인칭의 고통을 기반으로(그리고 그 고유한 고통을 제거하지 않은 채) 우리가 어떻게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를 소설에서 거듭 이야기하고 있는 그를 '윤리학자'라고만 부르기도 애매하다. 그는 윤리학자이기 이전에 훌륭한 스토리텔러이자, 또 상당히 인정받고 있으며 얼마간 두터운 고정 팬층도 확보하고 있는 중견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소설가이자 윤리학자가 아닐까? 어쩌면 이 애매성이 김연수 작가에 대한 내 좁은 이해를 조금은 넓혀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약간 돌아서 접근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피에르 마슈레는 철학이 문학을 전유하는 것도, 또한 문학이 철학을 전유하는 것도 반대한다. 철학이 문학을 전유한다는 것은, 이를테면 철학의 실현으로서 문학을 간주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학은 철학의 규제와 사법권 아래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실제로 몇몇 유명한 철학가들은 직접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이 소설은 스토리라기보다는 차라리 부드러운 대중철학서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물론 자신이 직접 문학을 쓰지 않더라도 철학은 문학을 전유할 수 있다. 상당한 수의 문학 비평가들이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수없이 널린 문학 텍스트들을 토대로 이러저러한 풍경을 선택적으로 읽어내거나, 우연한 문학적 풍경을 자신의 철학이 마침내 실현된 사건으로 간주하고, 그에 대해 규범적인 처방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와는 달리 문학이 철학을 전유한다는 건, 이를테면 문학을 신비롭고 영감을 주는 텍스트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위의 관점이 문학의 창작이나 해석을 통해 교육하고 설득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이 관점은 그런 다소 계몽주의적인 전제를 아예 포기하고 얼마간 낭만주의적인 관점으로 문학을 바라본다. 뛰어난 문학은 철학의 한계를 뛰어 넘은 그 무엇이며, 철학이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이미 성취하고 있는, 그래서 철학자가 오히려 배우고 겸허해져야하는, 대단한 그 무엇이 된다. 철학에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문학가와 문학 작품에 이미 진리가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단지 읽어낼 수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김연수 작가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면, 김연수 작가는 문학이 윤리를 삼키는 것도 윤리가 문학을 삼키는 것도 아닌 그 어딘가에 있는 것은 아닐까,싶어진다. 그래서 앞에서 어색한 단어를 조합시켰던 것이다. 소설가이자 윤리학자라고. 문학이 윤리를 삼키게 되면 윤리는 단지 당대의 문학이 발산하는 광휘 아래에만 가능한 그 무엇이 되어 버린다. 윤리는 문학적인 언어로만 표현되어야 한다는 필연성은 어디에도 없다. 윤리는 문학으로'도' 가능한 그 무엇이어야 한다. 반대로 윤리가 문학을 삼키게 되면, 이미 윤리와 진정성이 지배하던 세계를 한 차례 거쳐온 우리는 단지 신물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윤리가 문학을 삼키는 것은 특정한 사회문화역사적 시기에나 가능한 조합이 될 것이다.
김연수 작가는 문학과 윤리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고 나름의 세계를 탄탄하게 구축해 가는 중이다. 그건 문학적인 윤리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윤리적인 문학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세계를 읽어낼 언어가 없기에, 단지 극단적인 언어로만 이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다(정치가 죽었네 문학이 죽었네 2012년엔 멸망이네 하는 종언의 서사부터, 이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접어 들었고 이 세계는 완전히 승리했다는 팡파레의 서사까지). 그 극단의 언어가 아니면 깊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종언의 서사든 팡파레의 서사든, 사실은 이전의 vocabulary로는 세계를 읽을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함을 감추기 위한 '이야기'이다. 김연수 작가는 그 세계에 적합한 어떤 조합으로 소설을 풀어낼 수 있는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작가인 것 같다. 작품의 세부에 대해서는 사실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를 동시대에 읽을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행운인 것 같다.
이 부분을 두고 백석 연구자들 사이에 해석이 분분했다고 했다. '민족주의' 국문학자들은 3행, 즉 "숭가리를"에 마침표를 찍어서 1행의 "떠났다"를 서술어로 간주했다. 시의 화자는 비록 떠났지만, 숙신이나 여진, 요, 금 같은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민족사'의 일부인 부여와 발해를 "배반하지"는 않았으니 백석을 '민족문학사'의 일부로 넣으려는 학자들로서는 그게 훨씬 편이로웠을테다. 화자가 "배반"한 것은 고작 "범과 사슴과 너구리"에 지나지 않으니까.
지금 읽고 있는 백석 연구자의 해석은 이보다 더 한걸음 나아간다. 단지 추정되었을 뿐인 유사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면서 '나'를 무려 고구려와 동일시한다. 잠시 아연해지고.. 아 어떻게 이 시를 그런식으로.. 부여까진 그렇다 쳐도 발해, 여진, 요, 금은 어쩌고? 그런 역사학적 해석을 뛰어 넘는 훨씬 아름다운 시인데.. 책 전반이 다 재밌다가 마지막 장에서 삐끗해버렸다.
한국을 무려 반만년 역사로 보려는 국가민족주의적 국사학의 움직임탓에, 한국에서 근대 이전의 한반도 역사를 말하는 건 과장해서 말하면 바보가 되어버리는 지름길이 되어버렸다. 모든 역사 서술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국에서, 아니 동북아에 있어 통용되는 상식은 그렇지 않나?
물론 이건 비단 한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고작 스물 세살에 걸출한 논문을 썼지만, 네이션의 산물인 '사적 언어학'이 태동하던 프랑스에서의 교수자리를 고사해버리고, '중립국'인 스위스의 작은 대학교에서 평생 책 한권 제대로 내지 않았던 소쉬르를 생각해보면. 소쉬르가 남긴 강의에는 네이션 언어학에 대한 경계심이 녹아 들어있다고 했다.
백석이 지금 한국에 살았다면 진작에 "배반하고" "떠났"을거라고. 백석의 저 시는 단지 모든 유배자/유랑자들의,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노래로 바쳐져야 해.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모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야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하늘로 땅으로 - 나의 태반(胎盤)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 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 흥안령 : 중국 동북지방의 산맥, 음산 : 중국 몽골고원 남쪽의 산맥, 아무우르 : 흑룡강, 숭가리 : 송화강, 이깔나무 : 잎갈나무. 전나무과의 침엽 교목, 장풍 : 창포, 오로촌 : 중국 동북 지방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멧돌 : 멧돼지, 쏠론 : 쏠론족, 앞대 : 평안도에서 보아 남쪽 지방, 햇귀 : 햇발, 돌비 : 돌로 만든 비석, 보래구름 : 보랏빛 구름 (『백석의 맛』)
<클로이>는 이른바 '콜 걸'에 대한 영화적이거나 서사적인 '전통'이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면서 시작한다. 다시 말해, '콜 걸'이라면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어떤 문화적인 각본이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또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사랑'과는 별개로 다루어야 하는 '러브 어페어(Love Affair)'라는 주제는 대체로 중간 계급 이상의 계급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다루어지므로,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낭만적 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한 중간계급 이상의 가족을 배경으로 하는 설정 역시도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배경 탓에 잘난 미중년 남편과 역시 남편을 닮아 잘난 청소년 아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중년 여성이 편집증에 빠진다는 설정도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설정 탓인지 어쩐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클로이>는 분명 후반까지는 별다른 특색을 찾아볼 수 없는 영화다. 클로이의 눈길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빼면 말이다. 또한 스릴러 장르라고 선전은 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초반부터 영화의 결말이 예상 가능하다. 우선 문학과 영화를 비롯한 문화적 재현물에서 '팜므 파탈'로 그려지는 인물이 결말 부분에 가면 대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클로이의 미래를 쉽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클로이가 캐서린에게 의뢰를 받아 데이비드에게 접근한 뒤 접근 내용을 보고하는 장면 역시도, 클로이가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감추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 빛을 발한다. 벤야민은 "운율이 맞게 구상되었으면서 나중에 어느 한 구절에서 리듬이 빗나간 글이야말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산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일방통행로』 중에서). 우리는 벤야민의 말에서 '운율'에 맞게 산문을 쓴다는 표현을, 작가의 신성한 창의력에 따른, 혹은 뮤즈의 불가해한 부름에 따른 작품의 무기반적 '창조'가 아니라, 작품 자체의 흐름을 어떤 언어적 전통이나 문법, '질서'와 조율한다는 의미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클로이>는 전통을 무조건 거부하는 아방가르드적 실천을 섣부르게 감행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전통적인 몇몇 규칙과 문법을 적절히 합성하고 변주하며 따르다가 재빠르게 약간은 뒤틀린 모습을 하고 결말로 질주한다. 그 만듦새가 제법 좋다. 또 캐서린이 마지막 파티 장면에서 클로이가 준 핀을 머리에 꽂고 있는 장면이 상징하는 것도 좋다. 캐서린은 더 이상 이전의 캐서린이기를 멈추고 비로소 무언가를 뚫고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남는 하나의 의문. 왜 영화 속의 '팜므 파탈'들은 언제나 '소실하는 매개자(vanishing mediator)'의 역할만을 하냐는 것이다. 클로이는 영화현실 속의 인물이 아니라 차라리 단지 서사를 이끌어 가기 위한 가상의 인물 혹은 단순한 하나의 장치처럼 보인다. 많은 영화들은 '팜므 파탈'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 가에 대해 설명할 때도, 유사 정신분석학적으로 간단히 어릴 적 트라우마나 부모와의 뒤틀린 관계에서 찾을 뿐, 다른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팜므 파탈'을 일상적인 의미로는 이해를 전혀 할 수 없는, 그러나/그렇기에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그 무엇으로 그려낼 뿐인 셈이다. '팜므 파탈'을 만나 주인공의 일상은 파괴되지만, '팜므 파탈'은 결국 죽어 버리거나 어딘가로 사라지기 마련이고 주인공의 생사나 몰락과는 큰 상관없이, 질서는 되찾아진다.
덧1) 오늘 영풍문고에 들렀다가 완전 득템! +_+ 한강의 신작 장편소설이 나왔다!!!!!!! 흑흑 그저 감사합니다 저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웅얼웅얼...
덧2) 클로이가 캐서린의 아들 마이클 스튜어트에게 들려주는 노래가 좀 좋았다ㅎㅎ 캐나다의 인디 밴드 Raised by Swans의 노래라는데, 백조가 키워냈다고 믿기엔 좀...; 어쨌거나 동영상 링크ㅎ
오랜만에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를 만났다. 가슴 한쪽 구석부터 차오르는 따뜻함, 그리고 다른 한쪽에 남아버린 씁쓸함. bittersweet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적절한 것 같다. 영화는 얼마간 전형적인 로드무비다. 다소 답답해진 일상을 벗어나서 길따라 여행을 떠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겪은 뒤에 마지막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렇게 돌아온 집은 이전의 집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일은 뚜렷하지만 '직업'이 뚜렷하지는 않은 커플, 버트와 베로나는 버트의 부모님 댁을 방문하기로 한다. 베로나는 그 방문이 마뜩찮기는 하지만 아이의 출산이 임박했기에 그들을 찾아가기로 한다. 이제 아이가 생겨날 두 사람은, 이 둘 외에 이 관계를 살피고 도와줄, 그들의 말대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가족 같은 것" 아니면 "친구 같은 것", "친분 같은 것", "우리가 아는 사람 같은 그런 것"을 찾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찾아간 곳에서 버트의 부모님은 2년간 벨기에로 떠나버린다고 뉴스를 전하고, 집도 임대를 놓아버렸다고 한다. 충격. 그럼 이제 이미 떠나온 길을 따라 길을 더 갈수밖에.
피닉스(Phoenix) - 투손(Tucson) - 매디슨(Madison) - 몬트리얼(Montreal) - 마이애미(Miami) - 집의 코스를 밟으면서 이들은 로드무비의 주인공들이 늘 그렇듯, 사람들과 사건에서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읽어낸다. 피닉스에서는 왜 결혼한 커플들이 자신들처럼 사랑하지 않을까를 궁금해하고(결혼은 관계의 파탄일 것이다. 베로나는 끝끝내 버트와의 결혼을 거부하던 중이었다), 투손에서는 베로나의 동생을 만나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애틋하고 얼마간은 애증이었던 관계를 떠올린다(자신이 부모가 될 때에, 비로소 부모라는 것에 대해 진지해질 계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매디슨에서는 정말 인상깊지 않을 수 없었던 버트의 이를테면 사촌인 엘렌을 만나고, 엘렌의 뉴에이지 일상에 충격을 받는다(부모와 태어난 아이와는 '적절한' 거리와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몬트리얼에서는 옛 대학 동기였던 부부를 만나는데, 그들에게서 버트와 베로나 두 사람에게는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방패막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두 사람<만의> 삶은 없어지고 책임감과 인내라는 중요한 가치가 두 사람의 관계를 덧칠하게 된다.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마침내 "친구 같은 것"을 찾아냈다고 생각해서 몬트리얼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던 두 사람은, 버트의 형이 전한 급한 연락을 받고 마이애미로 떠난다. 마이애미에서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던 형네 부부는 이미 파경이었다. 와이프는 이미 떠나서 잠적한 상태고, 버트의 형은 관계와 신뢰, 무엇보다도 평범한(정상적인) 삶이 무너졌다고 절망한다(결혼 생활 중이라도 얼마든 관계는 무너질 수 있고 세계는 붕괴할 수 있다. 아이가 있든 없든. 관계와 세계는 어쨌든 불확실성이 지배한다). 다소 작위적인가?
특히 마이애미에서 버트는 눈에 띄게 불안해 한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두고 무너진 커플의 신뢰 앞에서, 버트는 영 자신감이 없다.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야밤에 콩콩이를 뛰던 버트는 베로나와 인상깊은 장면을 연출한다. 속삭이듯 따뜻한 대화의 연속..
-(버트) 최소한, 결혼은 해줄 수 있겠어? / =(베로나) 절대 안 해. 그러나 절대 너를 떠나진 않을거야. / -(버트) 그래... / =(베로나) 약속할게 / -(버트) 그래 알겠어. 너는 나랑 절대 결혼을 하지 않을거야. 원하지 않으니까. 네 부모님이 결혼식 자리에 없으면 넌 절대 결혼하지 않겠지. 나도 알아. 그런데, 날 떠나지 않는다고 약속 할 수 있어? 우리의 이 아이를 절대 안 떠날거라 약속할 수 있어? / =(베로나) 그럼(I do). / [... 중략 ...] / =(베로나) 우리 딸이 뭔가를 말하려 할 때 진심으로 들어줄거라고 약속할 수 있어? 특히, 아이가 두려워 할때 말야. 그리고 아이가 싸울 때면 마치 자기 싸움인 것처럼 아이 편을 들어줄거라고 약속할 수 있어? / -(버트) 응(I do). 내가 부끄럽게 죽든 진부하게 죽든, 우리 딸한테는 아버지가 850명의 체첸 고아들을 구해주려다가 러시아 군인들과 맨손 격투를 벌인 끝에 죽었다고 말해줄거라 약속할 수 있어? / =(베로나) 응. 체첸 고아들, 알겠어. 응.
보통 결혼식장에서 주례를 보는 사람은 진부한 사랑의 맹세를 늘어놓고 커플에게 "네(I do)"라고 대답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 진부한 결혼식 대신, 그들은 사회문화경제적인 이익을 주는 '제도권' 결혼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두 사람만의 '결혼식'을 거행한 셈이다. 서른 넷이라는 나이에 "우리는 비현실적이야", "우리는 망할 수도 있어"라고 자조하기도 하고 "꼬꼬마야? 혼란스러워? 미숙해? 미국적이야?"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하던 두 사람은, 이렇게 얼마간 성장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비록 추운 날씨에도 히터를 켜면 전기가 나가는 집이기는 하지만... 정말 사랑스럽다.
덧)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하고 살찌는 것 가지고 베로나를 괴롭히던, 그래서 얼마간은 거북함이 들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던, 어벙꺼벙하고 우유부단하며 썰렁한 유머를 구사하던, 키만 껑충하게 큰(191cm) 버트 역을 맡은 존 크래진스키의 인터뷰 중에서 이런 말이. "제 이름은 원래 존 콜린스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재능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이름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크래진스키라는 폴란드 계관시인의 이름을 빌려왔어요. 완전히 쇼비즈니스계를 위한 이름이더라니까요." 아 이 배우 뭐냐고 ㅋㅋ
예전에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스크랩 했던 건데, 우연히 발견해서.. 예전엔 참 재밌게 읽었는데. 언젠가 다시 읽고 싶어지지 않을까해서 여기에도 옮겨둠 +_+
마초이즘은 현재 한국 남성(+일정 나이 이상의 여성)의 정신구조에서 끈질긴 고착성과 감염율을 보이는 문화(文化) 유전인자(遺傳因子)이다. 이 인자(因子)는 이것에 반대하는 세력이 점유하지 못한 모든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이 인자의 영향력 바깥의 사유를 구경하지 못하고 산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대학시절의 일부 기간 동안 페미니즘이라는 반마초적인 문화 유전인자의 세례를 받는다. 이것의 고착성과 감염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더 흘러야 논의할 수 있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이 안티-마초 유전인자는 마초 인자의 세례로부터 사람들을 막아낼 만큼 많은 시간동안 사람들을 점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자(文字) 유전인자로의 페미니즘은 마초이즘 보다 수만 배의 성공적인 증식(增殖)을 이루고 있으나, 문화 유전인자로서의 페미니즘은 아직 마초이즘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여하튼 중요한 건 일반적인 사람들은 마초이즘이 뇌수 하나하나를 다 끄집어내서 축축하게 담글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그것의 영향력 안에서 보내게 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초이즘이라는 인자가 항구적인 존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다른 문화 유전인자에 편승할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마초이즘의 강력한 고착성과 감염율 덕에 이것은 너무나도 성공적으로 변종(變種)을 만들고 있기에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는 지금부터 이것을 "마초이즘의 문화적 표류"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이것이 만들어내는 마초이즘의 다양한 양상들을 "계통 발생"이라고 부르자. 아래의 예시는 필자의 경험에서 나온 실례이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께서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다른 표류물들을 덧붙여 주면 감사하겠다.
* 해악도는 무한소를 0, 무한대를 100으로 지정, 상대성을 숫자화했다.
* 계산은 일반적인 평균치를 기본으로 했으며, 편차가 너무 클 경우 계산을 포기했다.
*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편의상 계통이 아닌 개체로 표류물들을 분류했다.
* 이 고찰은 문화적 표류물들에 초점을 맞춰 그 숙주(=마초)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 이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증상을 알고 싶은 분은 타인에게 부탁해 주시길 바란다. 자기진단은 짜가다.
A 부류
온순한 마초 (비교적 독성이 적은 마초이즘의 표류)
해악도 0-20
1. 마초 메저키스트(피학성 변태) 자기억압형
"나는 마초가 아니양....."
해악도 5.
자신의 마초이즘을 부정하면서 발병을 억누르고 있다. 가끔 자신의 마초성이 드러날 경우 "술취해서" "흥분해서" "화나서" 그랬다고 깨끗이 사과한다. 이 말을 대충 믿어주는 것이 인간관계를 위해 편리하다. 본인 스스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다른 이들에게 나쁘지는 않다. 다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경우 "마초 메저키스트 정신분열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2. 마초 커밍아웃 자기억압형
"저 마초 맞습니다...."
해악도 10.
내면의 마초이즘을 인정한 후 치유 혹은 확산금지를 위해 노력하는 주의. 가장 건전하고 발전가능성 있다. 그러나 이들의 대다수는 현 상태에 체념을 하는 동시에, 다른 마초들에게 묘한 우월감을 느끼고 있기에 발전이 정체된다. 낙제점 조금 넘는 점수로 학급 1등이라고 기뻐하던 그들은, 자신들이 너무 소심하다고 판단되면 "마초 커밍아웃 자기발산형"으로 진전할 가능성이 있다.
3. 마초 의무주의자
"내가 널 지켜줄게. 조건 없이."
해악도 15.
순수 마초 부류 중에서 해악도가 가장 낮다. 마초의 덕목 중에서 권리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의무에만 "싸나이"의 근성을 걸고 정진하는 부류다. 일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죄"로 스트레스를 주긴 하지만, 그 이상의 혜택이 있다.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으나, 아쉽게도 숫자가 많지 않다.
4. 마초 커밍아웃 자기발산형
"나 마초 맞다. 그래서? 죄만 안 짓고 살면 되지."
해악도 20.
1번 2번 3번 유형에 비해 좀더 많은 숙주를 보유하고 있는 인자이다. '죄만 안 지으면 되지'라고 말은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나쁜 짓 하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래도 여기에 다른 인자만 덧대어 가지고 있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말도 통하고 잘 지낼 수 있다.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좋은 사람이다.) 만약 친구가 대단히 섬세하다면, "무의식적인 나쁜 짓"을 지적해서 이 부류에게 정신적 혼동을 줄 수 있다. (그러나 2번에서 발전해온 부류는 이제 그런 공격에 끄떡하지 않는다.) 자기 나름대로의 윤리적 기준이 있어서 이 이상 수준으로 발전 안 하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B 부류
: 짜증나는 마초 (어느 순간 대화의 단절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마초이즘의 표류)
해악도 21-50
5. 마초 나르시스트 자기표현형
"글쎄, 그냥 편견없이 생각해도 여자애들이 별로 안 잘났더라구."
해악도 25.
사회적 요건 쏙 빼놓고 판단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자기들이 맞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부류다. "지금 현실"의 상황을 분석하며, 가능한 상황을 상정해 보지 않는다. (가령 문화적 편견 없이, 똑같이 교육시키면 그래도 "여자애"들이 별로 안 잘났을까라는 문제.) 실제로 얼마나 잘난 놈이냐에 따라서 내공 수위가 결정된다. 별로 안 잘난 놈은 잘난 여자에게 초전박살나고 "마초 나르시스트 자기방어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더 품위 있는 축은 잘난 여자를 발견하면 이 유형에서 깨어난다. (명탐정 셜록 홈즈를 생각해 보길.)
6. 마초 나르시스트 자기방어형
"너와 내가 불평등한 건 성(性) 문제가 아니고, 개체의 능력 문제야."
해악도 30.
4번 유형이었다가 잘난 여자에게 박살난 후 원한을 품고 온 부류와, 성결정론을 옹호하기를 포기하고 개인적으로 체화한 부류의 연합이다. 대개의 경우 이들은 객관적으로 "잘남"을 평가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잘남"을 확인하려 들며,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여성들의 발언권과 자기 표현기회를 교묘하게 억압한다. 자기 말 다 외치고 마이크를 끄는 건 이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앞에서 폼잡고 뒤에 가서 사정하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 "아줌마"의 오일권을 상기할 것.) 자기표현형은 가끔 하는 짓이 귀여워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이 부류로 넘어가면 주위 사람들의 불쾌지수가 상승한다.
7. 마초 로맨티스트
"아, 수컷의 섹시함이여, 영원하라!"
해악도 35.
상당히 자생적인 부류이다. 이들은 주로 문화예술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난 남자다"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거나, 영화 "친구"를 보며 의리를 다짐한다든지. 일부는 락 매니아Rock Mania와도 결합되어 있다. 개인주의적인 마초 로맨티스트의 경우 주위 사람들에게 그닥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이 사는 사람이라면, 깊숙한 대화를 나누다가 어긋나는 부분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8. 마초 논리주의자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다 해결되지 않겠어?"
해악도 40.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는 의지는 있는데, 그 능력이 수반되지 않는 부류의 증상이다. 이들은 동태 상황과 정태 상황을 구별 못하며 (이 점에선 나르시스트들과 같다. 그런데 나르시스트들이 개인적인 면에서 이 분석을 중지하는데 비해, 이들은 그것을 사회수준에까지 끌어들인다. 가끔 일부 나르시스트들이 이 부류로 "진화"한다.) 가능하는 논리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논리를 구별하지 못한다. "마초 다위니스트"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9. 마초 순수주의자
"내가 널 지켜줄게, 대신 넌 요리해."
해악도 45.
마초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모범적인(?) 마초 부류이다. 그래도 능력있는 녀석들의 경우 바깥일은 신경 안 써도 확실하고 화끈하게 처리해준다. 단순반복노동에 취미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라면 큰 해악을 입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이들은 설득이 힘들다. 그러나 딸을 낳은 후 딸이 이뻐서 부엌에 들어가는 경우는 있다. 딸이 조금 잘났을 경우 극적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평균값쳐서 해악도를 45로 계산했다.
10. 마초 중심주의자
"나는 마초도 싫지만, 극렬 페미니스트들도 싫어."
해악도 50.
이들의 중심을 잡으려는 의지를 고려하여, 딱 중심에 위치하는 해악도를 선정하는 것이 타당한 일일 것이다. 이들은 보통 자신들이 대립하는 두 사물이 있을 때 딱 중간에 위치한다고 야무지게 착각한다. 실제로도 이들이 대립하는 두 사물의 중간에 있기는 하다. 그러나 보통 만유인력의 법칙을 받아들여 질량이 큰 쪽에 가까이 있다. (간단한 수학계산을 해보면 이들의 입장이 어디쯤 위치해 있을 지 알 수 있다.)
상편을 서술한 후 비교적 짧은 시간에 몇몇 독자 분들로부터 제보를 받을 수 있었다. 성원에 감사드린다. 또 몇몇 분들은 상편을 보고 상심했다고 하는데, 상편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던 분들은 대단히 건전한 분들이기 때문에 안심해도 되겠다. 이제 해악도 높은 마초들을 다룰 차례다. 이들에 비하면 상편의 마초들은 "마초도 아니"다. 슬슬 시작해 보기로 하자.
C 부류
위험한 마초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마초이즘의 표류)
해악도 51-80
11. 마초 근본주의자
"남자애처럼 하고 다니는 여자애랑, 여자애처럼 하고 다니는 남자애들 재수없더라. 그게 뭐람?"
해악도 55.
남성성과 여성성을 분리하고, 생물학적 성이 반드시 문화적 성과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심리다. 문화적 성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못한 남성 혹은 여성, 그리고 성적 소수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휘두른다. 완곡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축과,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편견을 드러내는 축이 있다. 그래도 제대로 지적해 주는 친구만 있다면 독성을 상당히 뺄 수 있는 부류이기도 하다. 독성이 빠질 경우, 자신의 의견이 편견임을 알면서도 머리의 인식("저래도 돼.")과 가슴의 감정("재수없다.")의 괴리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된다. 최근 하리수의 등장으로 많은 이들이 역 괴리(머리="재수없다." 가슴="꼴린다;;;") 현상을 보이며 이 증상에서 구출되었다는 설도 있다.
12. 마초 비교우위론자
"내가 집안일을 하지 않으려는 건 아니야. 하지만 니가 훨씬 더 잘하잖아? 사람이 잘하는 일을 해야지."
해악도 60.
이들은 자신이 가사노동에 소질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남성들이 잘하는 일, 망치질이나 가구 운반을 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일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이 중 일부는 단순반복노동의 품위없음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설하지만, 대다수는 조용히 이렇게 외친다. "시범을 보여줘." 그리고 대단히 나쁜 학생이 된다. 이들의 나쁜 성적이 소질없음에서 연유하는지 의도적인 태만에서 연유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함부로 의도추정을 해선 안되겠다. 한가지 확실한 건 이들이 집안일을 지지리도 안한다는 것이다.
13. 마초 도덕주의자
"여자도 담배 필 수 있게 해달라구? 세상에, 허파 시커매지는 것도 평등이니?"
해악도 65.
엄격한 도덕률을 적용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남성은 그 엄격한 도덕률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문제는 폐암 발병률에 대한 의학적 소견이 아니라, 똑같은 짓을 해도 왜 누구는 묵인받는데 왜 다른 누구는 비난받느냐다. 이들은 이 문제를 회피하고, "이제부터" 그 엄격한 도덕률을 남성들에게 적용할 거라고 주장한다. 혹은, 남성들이 어기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여성들이 같이 어겨야 한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대충 맞는 말이긴 한데, 역시 위에서 말한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 것이다.) 그 근저에는 "욕망"을 여성성에 결부시키고, 그것에 "절제"라는 금제를 뒤집어씨우는 오래된 문화적 관념이 숨어있다. 이 점을 파헤쳐줄 경우 극히 일부가 교정의 가능성이 있다.
14. 마초 다위니스트(자연선택론자)
"인류의 역사를 통해 언제나 남성이 우월한 성의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남성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해악도 70.
힘의 논리 이외의 도덕윤리를 체화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에게 많이 들러붙는 표류물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우월이 단지 "힘의 우월"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정태성만 보고 동태성을 보지 못하던 마초 나르시스트, 마초 합리주의자 들이 진화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이다. 이들은 힘의 논리 이외의 도덕윤리를 체화하고 있지 않기에 윤리적으로 설득하기가 무척 힘들다. 여성성이 더 우위에 있는 일부 문화인류학적 자료를 인용한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승리는..."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다. 오히려 조금 치사하지만 침팬지와 보노보 등 유인원의 사례를 들이미는게 훨씬 효력이 있다. 즉, '침팬지는 암컷이 따로따로 노니까 막 두들겨 패던데, 보노보는 암컷이 연대하니까 함부로 못 패더라, 그러니 여권운동 필요하다'라는 식으로. 약자 두들겨 패는 게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겨우 납득을 하는 부류다. (그래도 이건 세계관의 문제라 잘 치유가 안된다.) 이들이 인류역사에 "끝까지 살아남아서" 자신들의 우월성을 인정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오래살며 두고 볼 일이다.
15. 마초 부도덕주의자
"너는 왜 그렇게 고루하니? 좀 만지면 어때서."
해악도 75.
마초 도덕주의자는 이들에 비하면 천사다. 성윤리 해방운동을 남성의 이득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룩한 위대한 문화인자이다. 이 부류의 극한은 인습과 도덕을 우습게 여기는 "문화혁명가"이며, 이 위대한 과업에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동참할 것을 "여성 동지"들에게 요구한다. 이 부류의 일반은 여자친구들의 고루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짜증을 부린다. 그러나 "당신의 여자친구, 당신의 딸, 당신의 아내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이란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논리의 일관성을 지키는 연습을 끊임없이 시키면 구제의 가능성이 있는 부류이다.
16. 마초 소피스트(상대주의자)
"마초라는 말은, 여성이 자신이 싫어하는 남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해악도 80.
한국 땅에서 남녀차별이라는 현상이 없고, 이미 여남 평등의 과업이 완성되었다고 주장하는 부류가 될 것이다. 혹은, 그러한 "현상"이 어째서 잘못되었는지, 그러한 일이 어째서 "과업"인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일 것이다. 첫째, 이 부류는 구제의 여지가 없다. 둘째, 이 부류와는 여성에 대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셋째, 이 부류는 "마초 메저키스트 정신분열형"과 결부할 가능성이 크다. 넷째, 이 부류는 서술할수록 서술자가 괴롭다....
D 부류
사악한 마초 (주변 사람들을 심각하게 다치게 하는 마초이즘의 표류)
해악도 80-100
17. 마초 권리주의자
"난 남자고, 남자는 하늘이고....."
해악도 85.
"마초 의무주의자"의 반대. "마초 의무주의자"(해악도 15)와 이 "마초 권리주의자"(해악도 85)를 섞은 것이 바로 "마초 순수주의자"(해악도 45)인데, 그 평균이 그래도 "의무" 쪽에 치우쳐진다는 점에서 "마초"의 따뜻함(?)을 찾아야 할까? 여하튼, 이 부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초",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능력없는 가부장이며, 실속없는 폭군 남편이며, 여성들을 억압하는 직접적인 기제를 만들어내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들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떠받들여 주기를 바라지, 그들을 괴롭히면서 쾌감은 얻지 않는다는 데에 지고의 악, "마초 사디스트"와의 차이점이 있다.
18. 마초 사디스트
"........."
해악도 95.
이들은 "말"이 없다. "폭력"은 동원될 수도 동원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이들은 "농담"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감히 더 이상 서술하지 않는다.
19. 마초 메저키스트 정신분열형
"나는 마초가 아니다. 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이다."
해악도 100.
지고의 악, "마초 사디스트"의 해악도를 능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가 있다. 이들은 마초 메저키스트 정신분열형이다. 자생적인 부류와, 가장 해악도가 낮은 마초인 마초 메저키스트 자기억압형에서 발전한 부류가 있다. 이들은 그리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아마도 이들은 쿨한 남자친구, 그럭저럭 괜찮은 남편, 자상한 아버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경우 이들은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인 파급력으로 무한대의 해악도를 발휘한다. 마초이즘의 땅, 대한민국에서, 마초이즘은 자신의 유일한 적인 "페미니즘"인자에 기생하는 방법을 터득해냈다. 이것은 마초이즘의 표류의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도약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인자의 전염력은 대단히 높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렇게 말하기 시작한다. 온갖 마초 짓을 다 하면서도 마초성을 인정하지 않고 페미니스트를 가르치려고 들거나, 페미니스트에 합류한 마초이즘, 마초 생존술의 극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F 부류
상대적 마초 (해악도 측정이 힘든 마초이즘의 표류)
20. 마초 귀차니스트
"내가 너 무시해서 일 안하냐....귀차나서 안하지....."
해악도 측정 불가.
귀찮아서 안 움직이는 마초이즘의 표류. 여자친구가 얼마나 부지런하냐에 따라 해악도가 천차만별이다. 만약, 여성 역시 귀차니스트라면 가사 분업은 완벽하게 이룩될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결벽증이라도 있다면 마초 귀차니스트는 가장 효율적이고 무자비하게 여성을 착취할 것이다.
21. 마초 니힐리스트
"남녀 평등? 난 원리는 안 믿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지?"
해악도 측정 불가.
어떠한 도덕윤리도 믿지 않는 마초이즘이다. 그러나 "마초 다위니스트"와는 달리, "힘의 윤리"에도 감염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역시 해악도가 천차만별이다. 여성분들께서는 이 부류의 남성을 만날 경우 "마초 다위니스트"로 빠지지 않게 주의하면서 상대해야 겠다. "그래, 남녀평등하라는 법 없지. 근데 남녀차별하라는 법도 없잖우?" "어, 그건 그러네." "그러니까 원칙을 일단 제껴두고 생각한다면, 우리 둘이서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만들면 되겠지?" "어, 그것도 그러네." "그럼 그런 방법을 찾아보자." "어, 그래." 이 부류의 해악도를 줄일 수 있는 필승해법이다. 이들을 위해 잠시 "유물론자" + "쾌락주의자"가 되시라.
후기
여성분들께는, 이 현상을 희화화시킴으로써 문제를 가볍게 본다는 느낌을 드린 것에 대해 사죄드린다. 이것은 농담의 대상이 될 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성분들은 뒤의 사과를 보고 필자의 의도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뒤의 사과는 이런 것이다. 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남성 마초분들께는, 이견이 있다고 해도 반박할 수 없는 "유머"라는 형식으로 이렇게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기준으로 여러분을 비난(!)한데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린다. 필자의 의도를 알았다면 반박하지 마시길. 사실 많은 남성들이 이글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언짢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언짢음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찾아보지도 않고 화낸다는 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땅에 사는 마초로써, 나와 같은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리의 일단을 상기하게 하는 곤란을 겪게 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린다.
예술은 현실 정치를 다뤄야 할까, 혹은 다루지 말아야 할까? 현실 정치를 다루면 예술이 아니고 프로파간다인가? 누군가는 예술이 곧 정치라고 주장하며, 예술화(미학화)된 정치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정치화된 예술(미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겠지만.
'선거' 만큼 진부한 운동 방식은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차피,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한국의 지방자치기구는 끼리끼리모여 쌈싸먹고 나눠먹는 허울 좋은 제도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또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선거 관련 부정부패비리는 너무나도 뿌리 깊은 것인데다, 출마하는 남자들의 면면과 야심 자체도 꼴불견인 경우가 많이 보였다. 그래서 선거 당일이 되면 (그나마) 선호하는 당을 보고 투표를 하거나 아니면 기권을 하는 것(그러나 투표장에는 반드시 가는 것)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모 정당에 일반 당원으로 가입해 적은 돈이지만 당비를 납부할 때도, 해당 정당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충분히 민주적이지도 급진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급진과 민주주의가 뭐길래.
어제는 영화 <밀크>를 정말 감명깊게 봤다. 많이 울었고, 많이 흔들렸고, 많이 무서웠다. 몇가지 흐름이 개연성 없이 보이는 장면도 조금 있었지만(예컨대 스캇과 하비가 뉴욕의 지하철 입구 계단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라든지, 댄 화이트가 갑자기 눈에 광기가 서린 인물로 나타나는 장면이라든지) 그럴 수도 있겠다 싶고, 전체적으로는 큰 무리 없는 설정이었다. 또 하비 밀크가 최초의 게이 정치인으로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으로 당선된 사람이라는 약간의 이력 외에는, 어떤 성격을 가졌고 누구와 어떻게 관계를 맺었으며 어떤 정치적 행보를 보여줬고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에, 2시간 5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선거'와 '의정 활동'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밀크>를 보면서 처음 느꼈다. 물론 그 과정을 단지 '아름답다'고 타자화(=미학화)하는 일은 온당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소수자 운동에 대해 보통의 남성 진보 지식인들이 보내는 찬사와 격려 따위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선거 운동의 지난하고 숨막히는 과정은 물론, 의정 활동에 마주하는 수없이 답답한 상황을 어쨌든 헤쳐 나가는 밀크의 모습에 푹 빠져들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가 청중을 향해 연설을 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벌떡 일어나서 그가 외치는 구호에 당장 동참하고 싶었다. "Gay Rights Now! Gay Rights Now!"
미국 보수 기독교 집단의 온갖 협박과 협잡은 치졸하고 유치한 것이었지만, 그랬기에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밀크는 처음 받은 살해 협박 종이를 아예 냉장고에 붙여 놓으면서, 그 종이를 숨기거나 찢어 버리자는 애인 스캇에게 이런 종이를 어디에 숨기거나 한다면 더 무서워질 뿐이지만 이렇게 붙여놓고 계속 본다면 익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자기에게 불리한 장소에서 공개 토론회를 거침없이 제안한다. 마이크를 잡으면 머리를 날려버리겠다는 엽서를 받아도, 그는 마이크를 잡고 감명 깊은 연설을 한다(그는 타고난 선동가였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예감한 밀크는 자신의 정치사, 생애사를 담은 육성 테이프를 남긴다(그가 원고를 써서 녹음을 했다는 것에 마음이 무너졌다. 외부의 폭력에 암살을 예감하고 유서를 쓰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상상할 수도 없어서). 그러한 모습은 낭만적 액티비스트의 모습 그대로였다.
불모지에 가까웠던 카스트로 구역을 명소로 만드는 과정이 영화에서는 충분히 그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도 남는다. 내가 어떤 공간에 붙박이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그렇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관악FM이나 마포FM같이 지역 라디오 방송사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고, 라디오는 없더라도 적당한 문화 인프라(관제가 아닌)가 있는 곳에서 잠자는 방과 서재 혹은 작업실로 쓸만한 방, 부엌, 개인 화장실을 갖춘 집에서 살면서 애착을 가질만한 지역 공간을 만드는 일을 언제나 꿈꿔왔었으니.
가장 좋았던 장면은 게이 인권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 권리로 가자며 밀크를 설득하는 사람들의 말에 밀크가 단호하게 대응하는 장면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타협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그렇게 자꾸 숨어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왜 게이의 권리이면 안되는가. 왜 인권이라는 두루뭉수리한 말로 현실을 감추어야만 하는가. 또 기억에 남는 다른 장면. 댄 화이트가 밀크 당신은 이슈가 많아 정치인으로서는 축복 받았다고 질투하는 장면에서, 밀크는 분개하면서 그건 단지 하나의 '이슈'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고 삶의 문제이며, 나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몇 가지 개인적으로 불편했던 점이 있었는데(단지 영화에 그치지 않는)... 그에 대한 생각은 벤야민을 인용하는 것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전통에 적대적인 사람일수록 다가올 사회적 상황의 입법기관으로 떠받들고자 하는 규범에 따라 철저하게 자신의 개인적 삶을 영위할 것이다. 아직 어디서도 실현되지 못한 그러한 규범들의 모범을 적어도 자신의 고유한 삶의 영역 안에서라도 보여줄 의무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에 반해 신분과 민족의 아주 오래된 전통과 자신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공적 생활에서 엄격하게 지키는 원칙과는 대조적인 사생활을 때때로 과시한다. 하등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는 그러한 자신의 태도가 마치 그가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원칙의 확고한 권위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라도 되는 듯 은밀히 찬양한다." <일방통행로>. 김영옥, 윤미애, 최성만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