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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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2/2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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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과 염증에 쩔어 가만 누워 있는데, 전도유망했다는 어떤 물리학 교수의 죽음을 타전하는 뉴스가 들린다. 연구 압박에 시달리다 자택에서 유서를 남긴 채 뛰어내렸다고 했다. 이어서 뉴스는 변성처리한 다른 교수의 인터뷰도 전한다. 자살 소식을 듣고 물리학 교수 세계에서라면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누구라도 저런 충동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없으리라는 인터뷰였다.

어차피 버려야만 자유롭게 생존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쉽게 버릴 수 있는건 제 목숨일 것이다. 하나 둘 소유를 시작하는 '성인'이 된 후에는, 내가 버리고자 한다고 하여 기꺼이 버려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회가, 관계가, 끈덕지게 그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혹은 "my"라는 소유격 문법은, 마치 나의 의지만으로 소유관계를 맺거나 청산할 수 있으리라는 언어적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my"로 묶여버린 관계는 그때부터 "나의" 것이 아니다. 그때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실존적인 선택은 어쩌면 그 물리학 교수가 한 일일지도.

결국에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한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것도 가지고 싶지 않다.


#

오늘 오후엔 어쩌다가 고기를 먹어야 했다. 근처에서 돼지를 잡았다했다. 냄새가 무척 비렸다. peer pressure로 나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비육식을 한다고 했을 때, 내 선언에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들이 쏘았던 불편한 시선을 기억한다. 아마도 나 스스로가 고기를 먹는 일이 끔찍한 일이라 여겼던 시절의 일이었을 것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자기가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며 끔찍하다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고기를 먹는 일이야 말로 아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할 것이다. 그런 시선을 받을 때면 애써 그들을 달래고 안심시켜야 했다. 나는 네가 고기를 먹는 것을 끔찍한 일로 보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여러 횡설수설(하지만 너도 나도 끔찍해). 그래야 그들은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고기를 즐겼다.

오늘 오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비계를 제거한 부분만 조금씩 먹었고, 그들은 비계가 참으로 맛있다 했다. 나는 비계가 싫다고 했다. 고기에서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입맛을 잃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또 애써서 다른 말을 꺼내서 그들을 달래야 했다. 나는 다른 고기는 좋아한다고, 제일 좋아하는 건 닭이라고, 옛날엔 어떻게 고기를 먹곤 했다고, 지금 먹는 고기는 대충 요리해서 냄새나는 것 같다고(그러면서 고기 요리법 하나를 추천했다), 또 니들이 비계를 좋아하고 고기를 늘 즐겨먹고 붕어와 개를 잘 먹는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내가 단지 못먹을 뿐이라고.

진짜, 이런 식으로 살아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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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소설집 <그저 좋은 사람>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영어 원제인 <The Unaccustomed Earth>가 더 마음에 든다. 뭐, '길들지 않은 땅'이라는 소설이 맨 앞에 실려 있고 오늘은 이 소설만 읽긴 했지만. 여하간 작가의 얼마간 날카로운 관찰력과 표현력 덕분에 심심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내가 언젠간 쓰고 싶었던 주제를 먼저 다룬 것처럼 읽히는 대목에서는 질투도 났다. 기억해 둘만한 장면도 있었고.

그래도 여전히 불편함은 남는다. 아직 전부 읽지 않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작가의 이력을 보면 역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2~3세대 이주자이다. 그의 이력이야 그렇다 쳐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부와 경제적 삶의 여유는, 단지 소설의 소소한 배경이나 설정이 아니라 그의 소설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조건으로 읽힌다. 인물의 창조, 관계의 설정, 서사의 유지와 전개를 지탱하는 조건일 뿐만 아니라, 그의 소설이 미국 사회,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유통될 수 있는 어떤 조건 말이다.

거기에서 아슬아슬한 균열이 엿보인다. 허울좋은 다문화주의를 라이프스타일로 제시하면서 이국취향을 즐기는 '고급' 자유주의 독자들의 취향을 거스를만한 어떤 조건들이 역으로 보이는 것이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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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TAG 일기
독서노트 / 2010/02/23 23:37

"이 책[<역사와 계급의식>]을 프랑스에서 읽었을 때는 비선동적으로 느껴졌는데, 여기서 읽을 때는 선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책읽기가 단순한 활자 읽기가 아니라 그 책이 던져져 있는 상황 읽기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 정황의 차이가 그 책읽기의 차이를 부른 것이리라 생각한다." (89)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내가 사유의 주체가 아니라 내 육체가 사유의 주체라는 생각에 더 깊이 사로잡힌다. ... 내 사유의 주체는 내 육체이다. 내 육체의 슬픔과 괴로움, 즐거움과 환희를 이해해야 나는 내 사유를 이해할 수 있다." (96)


생애 말년에 쓴 일기를 엮었다는 이 책을 보면서, 어떤 '아저씨'의 이미지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배는 볼록도 아니고 불룩하게 튀어나와 늘어졌으며 목과 턱이 구분되지 않아 살집이 두둑하지만, 다리는 몸집에 비하면 얇은 그런 아저씨.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니고 유행 한참 지난 고지식한 양복을 입으며 구두 역시 마찬가지다. 셔츠는 늘 꼭 윗단추까지 모두 잠그기에, 접시 위에 얹힌 돼지 머리를 상기시킨다. 바지는 늘 배바지다. 손목엔 금시계. 양말은 흰색이거나 검정색인데 늘 종아리 중간까지 올려 신으며 무좀 치료를 위한 발가락 양말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머리에 든건 많은데 그 학식이 땀으로만 배출되는지 봄 중순부터 가을 중순까지 몸을 움직일 때는 늘 땀을 흘리며 행여 식당에서 기름기 둥둥 떠있는 매운 찌개를 먹을 땐 티슈를 한통씩 써버리기 마련이다(그렇지만 맵고 짠 찌개를 좋아한다). 그래서 산에라도 올라가서 찌개를 끓여 먹다가는 그 자리에서 나무아미타불 할지도 모른다. 물론, 젊었을 때엔 클레릭 이미지였을수도 있다.

책 읽기가 단지 책 읽기가 아니라 상황 읽기라는 그의 말, 그리고 사유의 주체가 '나'가 아니라 '내 육체'라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물론 그의 말에는 어폐가 좀 있다. 육체는, 어떤 초유기체적인 '나'가 있어서 '내'라는 소유격 명사를 통해 소유할 수 있는 대상(문법의 환상)이 아니라, 그냥 나 자체일 것이다. 그는 여전히 수없이 많은 한국 남자 지식인들이 그랬고 그래왔으며 지금도 그렇듯이 정신주의자였던 셈이다. 앞서 인용한 문단에서 김현은 데카르트 흉내를 내고 있지만(생각하다가 생각에 도달한다? 이 얼마나 @#$!한 표현인지), 의미심장하게도 뒤에 인용한 문단에서는 비교적 솔직하게 그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그의 말은 그 자체로 어떤 사회적 맥락의 냄새를 풍긴다.

그는 말년에 건강이 많이 안좋았다고 한다. 누구나 말년이면, 별 다른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이상 건강이 안좋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자기(=육체)를 둘러싼 관계의 질서는 바뀌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는 불가피하게 의존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일기에는 건강한 그의 동료와 친구들이, 건강이 악화된 그를 어떻게 배려하고 도와주는지에 대해 서술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앞서 인용한 96쪽에서 여기에 따오지 않은 내용을 보면, 젊었을 적 그의 육체는 추상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을 때엔 육체가 그런 사고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개인적, 합리적, 비의존적 <사유>라는 환상은 건강한-이성애-개인-남성-육체에 의해 지배되고 관장된다. 그건 하나의 문화적 각본일 것이다. 그 환상이 생산하는 글 역시 어떤 육체 조건에 기반한 것이리라. 그런 각본이 죽음을 앞두고서야 깨진다는 건 상당한 불운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바치는 '후배'의 말을 보면, 그 후배 역시도 이 불운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선생은 자신의 육체적 징후들을 통해 몸 속 깊이 번져가는 죽음의 증식을 보고 있었고, 주위에서는 아무도 예측을 못한 끝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깊이, 그 응시와 사유의 궤적들을 글로 드러내왔었다."

그에 반해 시인 김수영은 좀 더 명민하다 할 수 있다. " 이렇게 앉아서 고드름이 얼어붙은 창을 어린아이같이 내다보는 것이다. 창을 내다보며 공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무슨 무기체와 같이 그냥 앉아있는 것이다. 지금 내 몸은 전부가 공상의 덩어리가 되어있다. 내가 나의 작은 머리를 작용시켜서 공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전신이 그대로 공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낙타과음(駱駝過飮) 중에서) 어떤 사람이 창작에 몰두할 때, 그 사람의 몸을 한 번 보자. 그는 빼어난 머리와 빠른 손으로 창작하는 게 아니라, 그저 온 몸으로 창작을 하고 있을 것이다.

뛰어난 비평가와 뛰어난 작가의 차이는, 이런 지점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서부터 나타나는게 아닐까?


여하간 그의 책은 신기하다. 불과 20년 전만해도 지금은 전혀 알 수도 없고 거론되지도 않는 시인, 소설가, 비평가, 작가가 수두룩 하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100년은 갈것 같은데.. 이 책을 보니 역시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다. 김현은 또 이렇게 적었다. "르네 샤르가 죽었다. 이제 대가들의 시대는 막을 내리는가보다." (148) 그러나 대가들은 늘 존재했고, 얼마 전에도 우리는 여러 대가를 떠나보냈다. 대가들의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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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2/15 19:23
스물 다섯 번째 맞이하는 설날은 이렇게 지나갔고, 여전히 나는 한국의 혈족 문화와 명절 문화가 싫다. 마치 이런 명절을 같이 보내지 않으면 혈족은 더 이상 혈족일 수 없다는 듯, 1년에 두번 만나는 걸로 서로에 대한 부채를 덜 수 있다는 듯, 아무튼 이상한 전제로 유지되는 것 같은 혈족, 명절 문화.

술에 취한 채로 점쟁이가 뭐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집안이 흥할 수 없다고 했다'며, 그 나쁜 년만 아니었어도,라는 말을 주억거리며 울분에 차곤 하던 삼촌은 다행히 이번에는 오지 않았다.

동생이 많이 컸다며, 많이 예뻐졌다는 둥 희희덕거리며 이상한 농담을 건네고, 자꾸 주변에 두려고 하면서 술 따르라 하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남자 어른 친척 새끼들은 종종 죽이고 싶었다. (왜?) 그들은 무슨 훈장을 차고 찍은 사진을 벽에 걸어 놨거나, 밖에 새까만 큰 차를 주차한 채 5만원권이 가득 든 세뱃돈 봉투를 자랑했다. 그들은 명절의 술자리에서 호기롭게 말을 나누고 호탕하게 웃을 줄 아는 이들이다.

동생은 그런 남자들을 만나면 혼자서 가라 앉았다. 그들의 얼굴에 주름이 패이고 머리에 흰색이 늘어난 만큼, 그들이 세상에서 지워질 날도 조금씩 가까이 왔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많이 늙었다. 물론 그들이 그저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에게 상처받았다기보다는 단지 그들의 여러 행위와 속물성에 분노할 뿐이다. 하지만 절대로 그들의 장례식장엔 가지 않을 것이다.

명절엔 그냥 편하게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쉬고, 필요하다면 각자의 사정에 따라 기념일을 만들어 기념하면 될 일이다. 생일이든, 뭐든, 그거야 말로 상상력이 절실히 필요한 지점이다.

1년에 두 번씩 전국의 도로를 가득 메우는 비환경적인 해프닝은 왜 안 없어지는거야?
도대체 음력 1월 1일이랑 8월 15일이 무슨 의미가 있담?


어쨌든 모두에게 복된 새해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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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일기 / 2010/02/12 00:33
예전에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옮겨간지 몇 달, 결국 돌아왔습니다 (..) 다른 블로그에 썼던 글들도 옮겨 뒀구요. 새 블로그에서는 아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가운데, 좀 다른 방식과 내용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결국 지금의 블로그와 같이 되더라고요. 네... 뭐 장소를 옮긴다고 달라지는 법은 없습디다.

메일 계정으로 도메인이 사라질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이 계속 들어왔었어요. 그 블랙메일 탓인지 도메인 소멸 하루 전인 오늘 <간편 연장> 버튼을 눌러버렸네요.. 하; 결제하고 나서는 이 블로그에 미련이 남았나 싶어 예전 글들을 살폈는데, 네, 아무래도 미련이 남았나봅니다.

사실 예전에 썼던 일기라든지, 멋모르고 썼던 이론가들의 말이라든지 모두 창피하기 이를데 없지만, 그냥 껴안고 가려고 합니다. 지금 쓰는 글도 몹시 창피하거든요. 대체 몇 번째 인지.. 예전에 떠난다는 글을 남기고 갔을 때, 댓글에 어떤 분이 몇 번째 보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정말 맞는 말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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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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