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과 염증에 쩔어 가만 누워 있는데, 전도유망했다는 어떤 물리학 교수의 죽음을 타전하는 뉴스가 들린다. 연구 압박에 시달리다 자택에서 유서를 남긴 채 뛰어내렸다고 했다. 이어서 뉴스는 변성처리한 다른 교수의 인터뷰도 전한다. 자살 소식을 듣고 물리학 교수 세계에서라면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누구라도 저런 충동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없으리라는 인터뷰였다.
어차피 버려야만 자유롭게 생존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쉽게 버릴 수 있는건 제 목숨일 것이다. 하나 둘 소유를 시작하는 '성인'이 된 후에는, 내가 버리고자 한다고 하여 기꺼이 버려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회가, 관계가, 끈덕지게 그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혹은 "my"라는 소유격 문법은, 마치 나의 의지만으로 소유관계를 맺거나 청산할 수 있으리라는 언어적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my"로 묶여버린 관계는 그때부터 "나의" 것이 아니다. 그때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실존적인 선택은 어쩌면 그 물리학 교수가 한 일일지도.
결국에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한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것도 가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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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엔 어쩌다가 고기를 먹어야 했다. 근처에서 돼지를 잡았다했다. 냄새가 무척 비렸다. peer pressure로 나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비육식을 한다고 했을 때, 내 선언에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들이 쏘았던 불편한 시선을 기억한다. 아마도 나 스스로가 고기를 먹는 일이 끔찍한 일이라 여겼던 시절의 일이었을 것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자기가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며 끔찍하다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고기를 먹는 일이야 말로 아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할 것이다. 그런 시선을 받을 때면 애써 그들을 달래고 안심시켜야 했다. 나는 네가 고기를 먹는 것을 끔찍한 일로 보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여러 횡설수설(하지만 너도 나도 끔찍해). 그래야 그들은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고기를 즐겼다.
오늘 오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비계를 제거한 부분만 조금씩 먹었고, 그들은 비계가 참으로 맛있다 했다. 나는 비계가 싫다고 했다. 고기에서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입맛을 잃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또 애써서 다른 말을 꺼내서 그들을 달래야 했다. 나는 다른 고기는 좋아한다고, 제일 좋아하는 건 닭이라고, 옛날엔 어떻게 고기를 먹곤 했다고, 지금 먹는 고기는 대충 요리해서 냄새나는 것 같다고(그러면서 고기 요리법 하나를 추천했다), 또 니들이 비계를 좋아하고 고기를 늘 즐겨먹고 붕어와 개를 잘 먹는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내가 단지 못먹을 뿐이라고.
진짜, 이런 식으로 살아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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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소설집 <그저 좋은 사람>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영어 원제인 <The Unaccustomed Earth>가 더 마음에 든다. 뭐, '길들지 않은 땅'이라는 소설이 맨 앞에 실려 있고 오늘은 이 소설만 읽긴 했지만. 여하간 작가의 얼마간 날카로운 관찰력과 표현력 덕분에 심심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내가 언젠간 쓰고 싶었던 주제를 먼저 다룬 것처럼 읽히는 대목에서는 질투도 났다. 기억해 둘만한 장면도 있었고.
그래도 여전히 불편함은 남는다. 아직 전부 읽지 않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작가의 이력을 보면 역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2~3세대 이주자이다. 그의 이력이야 그렇다 쳐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부와 경제적 삶의 여유는, 단지 소설의 소소한 배경이나 설정이 아니라 그의 소설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조건으로 읽힌다. 인물의 창조, 관계의 설정, 서사의 유지와 전개를 지탱하는 조건일 뿐만 아니라, 그의 소설이 미국 사회,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유통될 수 있는 어떤 조건 말이다.
거기에서 아슬아슬한 균열이 엿보인다. 허울좋은 다문화주의를 라이프스타일로 제시하면서 이국취향을 즐기는 '고급' 자유주의 독자들의 취향을 거스를만한 어떤 조건들이 역으로 보이는 것이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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