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씨에 대한 남성 작가와 비평가들의 불만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공개적으로(언론지면에서, 그것도 좀 의식있다는 <한겨레>에서 말이다) 공지영 씨의 소설을 씹으면서 "소녀적 감수성", "조숙한 여자아이 수준의 인식", "고집스런 어린아이의 투정", "미성숙한 자아", "신파", "감상의 과잉 분출", "자의식의 과잉" 운운하며 그녀를 폄하하던 그 비평가들의 수준은 도대체 뭐라 평해야 좋을지. 잘 나가는 작가에 대한, 그리고 '작가'라는 집단에 대해 괜한 열등감을 느끼기 쉬운 비평가들의 일상적인 질투라고 생각하기엔, 사실 너무 마초적이고 저열하기 짝이 없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뭐라 반박하자면 내가 한없이 더러워지고 꼴 사나워지는 것 같고, 내 수준도 한없이 떨어지는 것 같게 만드는 사람들.
그런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남성 작가와 비평가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밖에 없는 소설을 오늘 단숨에 읽었다. 신작 <도가니>. 공지영 씨의 소설이 너무 잘 읽히는게 장점이자 불만이라던 남성 작가ㅡ예전에도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얼마 전에 뻘소리로 9회말 투아웃 만루 상황에서 아웃성 파울을 때려 버려서 이제는 절대 좋아할 수 없게 된ㅡ의 평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달까(물론 그 작가는 저 위에 비평가들처럼 공지영 씨를 싫어하는게 분명하게 느껴졌지만;).
어쨌든 <도가니>를 쓰기 위해 취재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또 한 포털에 연재를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글을 뱉었어야 했을 공지영 씨가 (주제 넘게도)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스스로 작가의 글에 밝히고 있듯, "나답지 않게 자주 아팠고, 초교, 재교를 보고 나서 한번씩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열에 들떠 며칠씩 누워 있어야 했"다는 말이 너무 와닿았기 때문이다(이해란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 말일 수밖에 없는지!). 소설의 내용에도 그렇다. 아니다, 와닿았다기보다는, 나도 그리된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아니, 아니,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현할 언어가 없다. 이 순간, 언어가 터무니 없이 빈한해진다. 기억의 질서와 담론의 질서에 속하지 않는 것에게 말을 걸어야 할 때, 근본적으로 빛의 세계를 지향하는 언어가 밤을 만나면서 완전히 말소되는 순간, 전시(展示)를 거부하는 모든 것들을 만나는 찰나, 더 나아가 압도적인 말과 권력의 폭력이 갑자기 체감될 때의 그 먹먹한 느낌.
'그런 것'에 대해 예민하게 감응할 수 있는 생생한 촉수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을 말로 옮기려 드는 사람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언어가 무의식을 만들고 실재(계)를 만든다면, 필경 언어는 폭력이고 억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것'을 말하려면 다른 외피를 써야만 한다. 정희진 씨의 석사 논문(<성폭력을 다시 쓴다>라는 이름의 단행본으로 출간된)처럼 사회과학 논문['객관'을 위장한 건조한 기술(description)]의 형식을 갖든, 아니면 <도가니>처럼 몇 가지 충격 완화장치를 도입하든지. 하지만 어쨌든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아픈 것은 어디 가는게 아니다.
줄이면서 <도가니>에서 아쉬운 점을 굳이 찾자면, 사실 이 작품에 도입된 충격 완화장치일지도 모르겠다. 정희진 씨의 책이 정말 읽기 힘든 것에 반해(필력 있는 정희진 씨의 글인데도!) 상대적으로 easygoing하기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건 내게는 어쩜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서는 '안전한'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해야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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