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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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2007/08/15 00:18

소설을 보고 이런 식의 느낌을 받은 것은 오정희씨 소설을 읽은 이후에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오정희씨와 배수아씨 소설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지만.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그 누구에게도 감정 이입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아무래도 저만치 거리를 두고 이 텍스트와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훔쳐볼 수 있는 것들은 이미 제한되어 있다. 이 소설의 서사 속에 어떤 고통이나 멜랑꼴리 따위가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것들에 도저히 다가갈 수 없다. 나 같은 독자가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소설이 너무나 고매하거나 위대하고 또 고귀한 빛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닐게다. 다만 이 소설의 고통은, 혹은 어떤 것은 정말 내가 인식할 수 없는, 재현할 수 없는 것 같단 느낌이다. 내가 개별의 인물들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 순간, 그 인물들은 이미 텍스트에 흉한 상처를 남기고 뛰쳐나갈 것 같다. 그럼 그건 더 이상 배수아씨의 <철수>라는 소설이 아니게 되겠지. 그렇기에 나는 이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밖에 쓸 수 없는 거겠지.

나 아파, 아파요, 라고 노골적으로 떠들어 대는 서사는 도처에 널려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도 어쩌면 이러한 '자기 연민'일 것이다. '나'-미디어인 블로그나 미니홈피들을 돌아다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마도 '나'-미디어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과 목 언저리에 각인된 (어딘가 닮은) 서로의 상처 자욱들을 확인하고, 그것들을 모아서 모든 이들이 퀭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떠돌아 다니는 한밤중의 저잣거리 속에 내던져버리며, 너도 아프구나(그렇지만 내가 더 아파), 라고, 누구에게 전달되는지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되뇌이며 돌아다니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것들은, 슬픔을 온 몸에 체현하고 돌아다니는 수많은 몸뚱아리들의 영원히 반복할 수밖에 없는ㅡ그렇게 하지 못하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리고 그 누구도 그 반복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단언할 수 없는 '자기 설명'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자기의 슬픔과 고통은 온전히 자기 것이고 따라서 자기 서사는 특별하다 생각하며, 자기는 자신의 텍스트 속에서 벌거 벗었다 착각하면서(그러니 너도 벗어! 라고 말하며), 그러나 이미 기표로 둘러쌓인 두터운 외투와 가면을 걸친 채 나 몰라라 하며, 자기의 나르시스적인 독백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면서, 끊임없이 같은 서사를 반복하고 또 생산하는 그 욕망의 지리멸렬한 쳇바퀴들. 그것의 소비, 클리셰, 그리고 카타르시스.

만약 이 텍스트가 그런 구조를 택했다면, 충분히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카타르시스적인 배설이나 만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화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고통'은 아닌지도 모른다. 누구든 무엇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니까. 주인공의 "늑대의 눈" 속에 있는 그 욕망과 고통과 슬픔의 무게들에 대해서는 (적어도 나는) 언어화 할 수 없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하여 나는 배수아씨를 그리고 그녀의 소설을 굳이 특권화 하고 싶진 않다(그러나 어떤 의미에선 '숭고'로 의미화 하고 있기도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소설을 본 이후에 나는 혼란스럽지도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오늘 하루 끊임없이 어디로 튈지 몰라 들끓었던 마음은, 갑작스럽게 편하게 정돈되었다. 어쩌면 배수아씨의 소설을 접하게 된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읽지 않은 배수아씨의 다른 소설이 어딘가 무서워졌음도 말해두고 싶다.

겨우 100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그래서 이불 위에 누워서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끊이지 않고 다 읽어 버릴 수 있었던 이 소설을, 나는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더 설명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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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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