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 2010/09/03 13:38
바람이 세게 불었던 어제 아침, 내가 좋아하는 악보가 그려진 검은 우산을 들고 나가면 금방 부서질 것 같아 신발장에서 새 우산을 꺼냈다. 우산은 튼튼해보였지만, 손잡이엔 누구의 칠순잔치라는 게 써 있었고, 그게 창피했던 나는 그걸 모두 긁어내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우산은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에게 그걸 말해두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 우산은 내것이 아니라는 예감, 그러나 좋아하는 우산이랑 비슷하고 지금 필요하니까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 예감대로 나는 커피를 사러 들어갔다가 그 우산을 놓고 나왔고,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두고 나왔고, 열람실에다 놓고 나왔다. 그 때마다 모두 머지 않아 서둘러 돌아가 찾았다.
그러나 택시를 타고 낙성대 역에 도착했을 때, 마침내 그 우산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어제 낮, 해가 떠서 더 이상 우산이 필요 없었을 때, 차라리 우산을 버리고 돌아다녔으면 어땠을까? 그러나 나는 시작부터 내것이 아니었던 우산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다. 내것이 아닌 것 같으면 처음부터 내것이 아닌데. 그러나 나 스스로는 내것이 아닌 우산을 절대 버리지 못할 것이고, 마지막 혹은 파국에 이르러야 내 의지에 역행해서 우산과 결별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여러 일들이 떠오른다. 문제는 <우산>이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