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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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8/25 22:25
휴가를 나와 이사한 집에서 머물던 동생이 갑자기 뇌수막염 판정을 받고 입원했다. 친척들과 부모님 집들이하랴, 병원 왔다갔다 하랴, 정신없이 보냈던 며칠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동생이 퇴원해서 국군병원으로 간다. 야간엔 눈이 잘 안보이고, 처음 가는 서울 길을 무서워하고, 오래 운전하면 너무 피곤해서 자주 조는, 또 이제는 50 중반 들어선 아빠는, 내일 아침 일찍 동생을 홍천 국군병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서울 집에 와 있다. 그리고 지금은 내 방에서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나는 아마 오늘 밤 잠을 설치게 될 것이다. 엄마는 여느 때처럼 묻지마 세트를 잔뜩 보냈고, 나와 동생은 그것들을 정리하다가 조금 짜증이 났다. 도대체 아무도 먹지도 않는 곶감은 왜 가져왔냐며, 변하니까 도로 가져가지도 못하지 않냐며, 제발 좀 미리 물어보고 주든지 말든지 하라고 대놓고 역정을 내는 자식들에게, 아비는 순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외삼촌과 소주를 마시고 눈이 벌개져 돌아온 아비가 외삼촌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나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궁금해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어지러워 아무 책이나 집고 폈는데, 하필이면 그게 공지영 작가의 옛 소설책이었다. 그 소설책의 몇 소설들은, 90년대식 부채감을 가진 자아로 80년을 회상한다. 90년대식 부채감을 가진 소설의 자아는 '살아남았고', 약간의 죄의식으로 '잘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혹은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전에 두 번 읽었던 이 소설책에서, 나는 이전과는 다른 구절들을 인상 깊게 읽고 책귀를 펴고 접는다. 오늘 만났던 A에게, '삶이 간결해지고 있다',고 말했던 건 실은 이 책에서 읽었던 표현이었다. 원작 소설과는 다른 맥락이었지만 말이다. 이 소설책은 지나간 것들에 대해, 혹은 지나간 것들의 이름으로 현재를 이야기한다.

구체적인 소재는 다르지만, 요즘의 내 상태와 책의 정서 구조는 밀접하다. 영원히 정리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무엇인가가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인가는 차곡차곡 정리되어 내 과거의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에 전시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여야만 하는데, 혹은 원래 오늘 가려고 했던 심포지엄의 주제인 어느 철학자의 표현을 조금 빌자면, 오래 지속되는 미래이어야만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하나 둘 씩 자연스럽게 과거가 된다. 지금의 내게 남은 게 별로 없다는 느낌이다. 내일은 S와 이태원에 가기로 했다. J도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했다. 만나면 좋겠는데. 약속 시간은 늦은 저녁이다. S를 만나기 전엔 오랜만에 종로에서 청춘을 다룬 영화 한편을 볼 것이다. 그리고는 좋아하는 커피 체인점에 잠시 앉아 있어야 겠다. 이태원에 가서는 술을 마시겠지만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과음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내일이다.

길었던 8월이 마침내 가고 있다. 비가 많이 온다. 더위도 좀 해결이 되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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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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