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 2010/08/19 22:03
요 며칠 중요한 신변의 변화가 생겼고, 이 급격한 변화는 기실 몇 달 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기 때문에 변화 자체에서 혼란을 느끼지는 않고 있다. 변화한 뒤의 여러 날을 미리 살아왔다는 듯이. 하긴 뭐 상징적인 의미만 클 뿐, 실질적인 변화는 아니라고 보아도 좋으니까. 여하튼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해야겠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 핑계가 모두 사라졌으니까. 일상을 조금 더 조여도 좋을 것이다. 느슨한 건 가끔이면 족하다.
오늘 책 정리를 끝으로 이사를 모두 마쳤다. 이번 이사는 그냥 원룸이 아니라, 방 2개(+ 작은 방 하나) 세를 얻어 들어오는 것이어서 살림살이를 모두 마련해야 해서 일이 컸다. 아니, 일이 컸다고 말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 대부분은 구입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집에 이것저것을 설치하고 갔다. 이렇게 서울에 다시 살게 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 특히 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경우엔 사람들이 한없이 친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치가 끝나고 갈 때는 전화가 오면 친절하게 설치를 받았다고 한 마디만 해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이 엄청난 더위에, 온 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싫은 내색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 무시무시한 감정의 조절, 통제, 그리고 감정을 둘러싼 여러 규율들. 얼마 전까지 살았던 동네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다. 거기서는 택배가 온다는 시간도 들쑥날쑥하고, 집에 있겠다고 했다가 잠시 외출이라도 했다치면 전화로 욕을 먹기(?) 일쑤였는데. 그러나 나는 후자가 더 좋다. 나쁜 소리를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나빠지지만, 나는 서울에서 느끼는 어떤 황송함 내지는 부자연스러움이 너무 싫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건지. 피부로 느끼기엔 이런 시스템이 2008년보다 훨씬 더 한데.
간만에 생활인이 되고 나니까 예전엔 귀찮았던 것들을 척척, 하게 되는 것 같다. 빨래도, 설거지도, 쇼핑도, 청소도 미루지 않고 척척, 하게 되었다. 이불도 일어나면 척척, 갠다. 식사도 대충 라면이나 끓이거나 참치나 김 따위로 때우지 않고, 뭔가를 가열하고 요리해서 먹게 되었다. 반찬도 조금씩 만들어보고 있다. 반찬도 보관통채로 꺼내서 먹지 않고, 적당히 먹을 양을 접시에 덜어서 먹는다. 자기 전에는 쌀을 씻어 아침밥 취사 예약을 해놓고 잔다. 이 생활패턴이 자리 잡히면 영양학도 신경쓸 것이고, (지금도 거의 채식이지만) 채식 위주의 식단도 연구해봐야지. 이제 적당한 운동만 시작하면 되는데, 일단은 돈이 들지 않는 러닝을 해볼까 생각중이다. 2분 거리에 학교 운동장이 있으니까. 이렇게 해야 우울하지 않게, 또 건강하게, 성실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당분간은 충실하게 실천해보려고 한다. 막상 행동으로 옮기면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예전처럼 미루면서 해야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 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유명한 이론가들을 읽고 그것을 재맥락화하여 글로 옮기는 것, 그리고 '독창적인' 사유를 하고 글을 쓰는 것,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게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얼마 전까지는 정신분석학(특히 지젝)을 인용하는 글을 보면 부끄럽고, 랑시에르나 바디우, 푸코를 인용한 글을 보면 그저 피곤해지고, 맑스나 알튀세 등등을 인용한 글을 보면 왠지 모르게 입안이 텁텁해진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건 내가 그 이론가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거장들을 읽는 건 자칫하면 '사유능력의 과부하(마치 인용하는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굴다가 글이 자기 통제력을 넘어버리는 것)' 혹은 '사유의 자판기 효과(어떤 현상을 이론적 자판기에 집어 넣으면 자동으로 그 현상을 진단하는 글이 요리되어 나오는 것)'를 낳는다. 그렇다고 그 반대축으로 가버리면 어떨까? 문자 그대로 '독창적인' 사유와 글이 과연 있을까. 외면상 인용이 없다고 한들, 그 글이 과연 거장들을 현란하게 인용하는 글과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가장 바라는 건, 나 스스로도 쓰면서 즐겁고 독자들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글을 쓰고, 현상과 맥락에 맞는 사유를 하는 일인데. 다시 말해 좋은 글을 읽고 쓰고 읽히고 듣는 일인데. 모든게 너무 어렵다. 왜 나는 글을 잘 못쓸까? 앞으로 본격적으로 학교에서 공부 하면서는 심히 노력을 하는 수밖에... 모르는 걸 창피해 말고 내가 가진 것들 사이에서 길을 잘 찾아야지. 적어도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는 서서히 보이고 있다. 아직 명징하지는 않지만, 여하튼 좋은 징조일 것이다.
오늘 책 정리를 끝으로 이사를 모두 마쳤다. 이번 이사는 그냥 원룸이 아니라, 방 2개(+ 작은 방 하나) 세를 얻어 들어오는 것이어서 살림살이를 모두 마련해야 해서 일이 컸다. 아니, 일이 컸다고 말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 대부분은 구입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집에 이것저것을 설치하고 갔다. 이렇게 서울에 다시 살게 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 특히 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경우엔 사람들이 한없이 친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치가 끝나고 갈 때는 전화가 오면 친절하게 설치를 받았다고 한 마디만 해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이 엄청난 더위에, 온 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싫은 내색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 무시무시한 감정의 조절, 통제, 그리고 감정을 둘러싼 여러 규율들. 얼마 전까지 살았던 동네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다. 거기서는 택배가 온다는 시간도 들쑥날쑥하고, 집에 있겠다고 했다가 잠시 외출이라도 했다치면 전화로 욕을 먹기(?) 일쑤였는데. 그러나 나는 후자가 더 좋다. 나쁜 소리를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나빠지지만, 나는 서울에서 느끼는 어떤 황송함 내지는 부자연스러움이 너무 싫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건지. 피부로 느끼기엔 이런 시스템이 2008년보다 훨씬 더 한데.
간만에 생활인이 되고 나니까 예전엔 귀찮았던 것들을 척척, 하게 되는 것 같다. 빨래도, 설거지도, 쇼핑도, 청소도 미루지 않고 척척, 하게 되었다. 이불도 일어나면 척척, 갠다. 식사도 대충 라면이나 끓이거나 참치나 김 따위로 때우지 않고, 뭔가를 가열하고 요리해서 먹게 되었다. 반찬도 조금씩 만들어보고 있다. 반찬도 보관통채로 꺼내서 먹지 않고, 적당히 먹을 양을 접시에 덜어서 먹는다. 자기 전에는 쌀을 씻어 아침밥 취사 예약을 해놓고 잔다. 이 생활패턴이 자리 잡히면 영양학도 신경쓸 것이고, (지금도 거의 채식이지만) 채식 위주의 식단도 연구해봐야지. 이제 적당한 운동만 시작하면 되는데, 일단은 돈이 들지 않는 러닝을 해볼까 생각중이다. 2분 거리에 학교 운동장이 있으니까. 이렇게 해야 우울하지 않게, 또 건강하게, 성실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당분간은 충실하게 실천해보려고 한다. 막상 행동으로 옮기면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예전처럼 미루면서 해야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 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유명한 이론가들을 읽고 그것을 재맥락화하여 글로 옮기는 것, 그리고 '독창적인' 사유를 하고 글을 쓰는 것,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게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얼마 전까지는 정신분석학(특히 지젝)을 인용하는 글을 보면 부끄럽고, 랑시에르나 바디우, 푸코를 인용한 글을 보면 그저 피곤해지고, 맑스나 알튀세 등등을 인용한 글을 보면 왠지 모르게 입안이 텁텁해진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건 내가 그 이론가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거장들을 읽는 건 자칫하면 '사유능력의 과부하(마치 인용하는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굴다가 글이 자기 통제력을 넘어버리는 것)' 혹은 '사유의 자판기 효과(어떤 현상을 이론적 자판기에 집어 넣으면 자동으로 그 현상을 진단하는 글이 요리되어 나오는 것)'를 낳는다. 그렇다고 그 반대축으로 가버리면 어떨까? 문자 그대로 '독창적인' 사유와 글이 과연 있을까. 외면상 인용이 없다고 한들, 그 글이 과연 거장들을 현란하게 인용하는 글과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가장 바라는 건, 나 스스로도 쓰면서 즐겁고 독자들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글을 쓰고, 현상과 맥락에 맞는 사유를 하는 일인데. 다시 말해 좋은 글을 읽고 쓰고 읽히고 듣는 일인데. 모든게 너무 어렵다. 왜 나는 글을 잘 못쓸까? 앞으로 본격적으로 학교에서 공부 하면서는 심히 노력을 하는 수밖에... 모르는 걸 창피해 말고 내가 가진 것들 사이에서 길을 잘 찾아야지. 적어도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는 서서히 보이고 있다. 아직 명징하지는 않지만, 여하튼 좋은 징조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