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 2010/03/29 18:34
김연수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용산 참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같은 큰 사건은 우리들의 마음에 검은 그림자를 발생시키고, 우리는 거기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떤 감정을 느낀다고. 그리고 그 어떤 감정은 가치의 판단(누가 옳으냐 그르냐, 무엇을 지키거나 버려야하느냐)과는 거리가 있고, 대신 찌꺼기 같이 남은 그 감정을 없애기 위해서 사람들은 슬퍼한다고. 그러나 이내 사람들은 그 감정을 말끔하게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된다고.
나는 이런 그의 말이 그 어떤 고만고만한 논객들의 말보다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그것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정치적/도덕적 진정성을 물었던 사람들은, 사실상 모두 틀렸다. 적어도 번지를 잘못 짚었다. 이는 어떤 감정에 대한 문제이며, 그 감정은 사람들 개개인의 마음에 어떻게 자국을 남기며 한편으로는 그 감정이 사람들을 어떻게 묶여주는가ㅡ그로스버그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정동적 연합(affective alliance)을 어떻게 이루는가ㅡ라는 문제와 관련이 된 것이다. 그것은 언어화될 수 없거나 지독하게 어려운 그 무엇이다. 행위로서, 혹은 의례로서 애도해야하는 그 무엇이다.
주말에는 풀리지 않을 의혹을 남기고 있는 큰 서해 참사도 있었다. 3월 바다는 몹시 찬데. 그리고 오늘은, 최진실씨의 동생 최진영씨가 자살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찰랑대는 이 낯익은 감정이 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런 그의 말이 그 어떤 고만고만한 논객들의 말보다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그것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정치적/도덕적 진정성을 물었던 사람들은, 사실상 모두 틀렸다. 적어도 번지를 잘못 짚었다. 이는 어떤 감정에 대한 문제이며, 그 감정은 사람들 개개인의 마음에 어떻게 자국을 남기며 한편으로는 그 감정이 사람들을 어떻게 묶여주는가ㅡ그로스버그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정동적 연합(affective alliance)을 어떻게 이루는가ㅡ라는 문제와 관련이 된 것이다. 그것은 언어화될 수 없거나 지독하게 어려운 그 무엇이다. 행위로서, 혹은 의례로서 애도해야하는 그 무엇이다.
주말에는 풀리지 않을 의혹을 남기고 있는 큰 서해 참사도 있었다. 3월 바다는 몹시 찬데. 그리고 오늘은, 최진실씨의 동생 최진영씨가 자살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찰랑대는 이 낯익은 감정이 뭔지는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