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 2010/03/27 22:48
서경식 교수와 타와다 요코 작가의 서한집 <경계에서 춤추다>에는 고향에 대한 챕터가 있다. 여기서 서경식 교수는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 독일어로는 하이마트(Heimat)가 어디냐는 질문에서 어떤 폭력을 읽는다. 이 책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고, 어딘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서경식 교수의 이런 느낌은 여러 차례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바이고, 고향에 대한 감각이 어떻게 제국주의나 파시즘에 동원되었는지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특히 이 부분은, 뭐랄까, 서경식 교수가 폭발한다고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애써 튀어오르는 감정의 다발을 억누르는 느낌. 그래서 역설적으로 고향에 대한 그의 강한 애착이 느껴지고 상실감이 느껴지는, 그러나 채워질 수 없는, 그래서 강한 추동력이 될 수 있는, 그 무엇.
이와는 조금 달리, 내게는 구체적으로 고향이 어디냐하는 질문은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게 서교수와 나의 결정적 차이겠지.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고향을 떠나는게(어차피 고등학교가 별로 없었으니 '유학'을 가야만 했다) 학교를 다니는 목적이었고, 고등학교부터는 마침내 그 목적을 성취했다. 그 뒤 얼마 간은 고향의 냄새를 지우는 게 일상의 실천이기도 했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더듬기 일쑤였고, 에둘러 대답을 피하기에 바빴다. 그건 시골에 살았다는게 창피해서도 아니고, 시골에서 사는게 두려워서도 아니다. 시골 출신이라고 말하면 거기서는 제일 가는 수재였겠네하며 눈을 동그렇게 뜨는 서울 사람들의 얼굴을 향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많은 순간들, 그런 촌구석에서 도대체 어떻게 사냐며 자기의 경험 부족과 상상력 부족을 자랑하는 서울 사람들을 뒤돌아 욕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다만 내게 구체적인 고향이 생긴다는 게 무서웠달까. 외롭지만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도시의 부유하는 일상 속에서 어떤 구체성이 붙박히는게 싫었달까.
그 생활을 청산하고, 지난 약 1년 4개월은 불가피하게 '고향'에 있어야 했다. 물론 자주 서울에 다니긴 했지만. 고향에서 중요한 것은 아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 일이었다. 거리에서 중고등학교 동창이나 알던 후배들을 멀리서 보면, 그들을 여전히 쉽게 알아보고 이름을 기억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반가움보다는 당혹감이 앞서 저만치 도망가버리곤 했다. 가끔 나를 알아보고 반기는 어른들이나 동창생들이 있어도 이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주춤 물러나 사라져버리곤 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말 걸고 싶고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아주 구체적인 욕망도, 이 망각에 대한 욕망 앞에선 쉽게 사그러들었다. 그들이 싫었던게 아니라 여기에 나의 구체적인 일상, 구체적인 기억이 박히는 게 싫었을 뿐이다. 여기서 내가 기억하게 될 그 무엇이 더 이상 내 일상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쩌다 중학교 때 앨범을 보게 되었다. 하필이면 오늘은 괜히 심심했고, 한강 작가의 새 장편소설을 마침내 다 읽었고, 읽고 난 뒤 알 수 없는 갈증과 허기를 강하게 느끼면서, 그 공허감을 즉각 피할 수단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앨범이 컴퓨터가 있는 책상에 꽂혀 있었던 탓이다. 짙은 초록색 표지에, 책등엔 2001년 제 54회 ㅇㅇ중학교가 금색으로 새겨진 얇은 앨범이.
그 앨범을 펼치면서 놀라웠던 건, 내게 그렇게도 많은 기억이 남아 있었다는 것, 그 기억은 매우 신체적이라는 것, 그리고 거기엔 여러 감정들이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 친하지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어떤 아이의 손이 사진을 찍는 순간에 내 어깨에 올라왔던 것, 그 손이 유난히 불쾌했었던 기억이 그대로 재생된다. 가볍지만 어딘가 땀에 절어 끈적한 손이 어깨에 올라온 느낌을 받았고 이내 불쾌해졌다. 애들을 테니스채로 마구 때리곤 했던 기술 선생님이 컴퓨터를 잘한다고 알려진 나를 데려다 시험지 채점과 점수 입력을 시키며 내 어깨를 두드리던 것, 그 손길을 뿌리치고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던 기억도 재생된다. 싫다고 짜증을 내던 내 몸을 기어코 만지던 남자애들과의 불쾌했던 경험도 재생되고, 결국 어떤 애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고야 말았을 때 내 주먹에 남았던 그 둔탁한 타격감도 재생된다. 교실의 찌든 냄새도, 애들이 흘린 불쾌한 땀냄새도, 씻지 않아 나는 군내도, 화장실의 지린내도 재생된다. 선생님들의 목소리도 남아서 귓가를 울린다. 여하간 기분이 더럽다. 좋았던 기억이 그리 없구나.
내가 알았던(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고) 어떤 여성학 교수는 사석에서, 단식원에 들어갔다왔다며, 단식의 놀라운 효과에 대해 장광설을 풀어놓았었다. 거기서 기억에 남는 건 단식의 구체적 과정 같은게 아니라, 단식을 얼마간 할 때마다 몸이 아팠다는 것, 그리고 그 아팠던 부분은 사실 과거에 크게 다쳤던 부분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날이 지날 때마다 아픈 부분은 계속 달라졌고, 놀랍게도 아픈 순서는 다쳤던 순서와 역순으로 일치했다. 다쳤던 부분은 물리적으로는 다 나아서 일상에 지장이 없지만, 몸은 그것을 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구체적인, 신체적으로 남은 이 기억들이 싫다. 앨범을 태워버리고도 싶지만, 그랬다가는 모든 근거들이 사라질까 싶어 차마 그렇게 하진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작가는 서울이 자신을 닮아서 서울을 떠날 수가 없다고, 결국엔 서울로 돌아오고야 만다고 말한 적 있다. 에세이집 <Stay>에서 김영하가 말했던 것처럼(사실은 너무나 흔한 스테레오타입이긴 하지만) 서울은 아무래도 망각에 익숙하다. 물론 서울에도 소중하고 좋아하는 공간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서울이 공간에 대한 망각이 쉽게 일어나는 곳이란 건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공간을 망각한다는 건 그 공간과 연결된 여러 구체적인 기억들을 망각한다는 것과 유사한 이야기다. 잊을 수 있다는 건 슬프거나 피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일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힘이다. 모든 것을 지워야하는 것은 아니다.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따로 있고 나는 그것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144일 남았다. 조금만 더 견디자.
이와는 조금 달리, 내게는 구체적으로 고향이 어디냐하는 질문은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게 서교수와 나의 결정적 차이겠지.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고향을 떠나는게(어차피 고등학교가 별로 없었으니 '유학'을 가야만 했다) 학교를 다니는 목적이었고, 고등학교부터는 마침내 그 목적을 성취했다. 그 뒤 얼마 간은 고향의 냄새를 지우는 게 일상의 실천이기도 했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더듬기 일쑤였고, 에둘러 대답을 피하기에 바빴다. 그건 시골에 살았다는게 창피해서도 아니고, 시골에서 사는게 두려워서도 아니다. 시골 출신이라고 말하면 거기서는 제일 가는 수재였겠네하며 눈을 동그렇게 뜨는 서울 사람들의 얼굴을 향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많은 순간들, 그런 촌구석에서 도대체 어떻게 사냐며 자기의 경험 부족과 상상력 부족을 자랑하는 서울 사람들을 뒤돌아 욕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다만 내게 구체적인 고향이 생긴다는 게 무서웠달까. 외롭지만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도시의 부유하는 일상 속에서 어떤 구체성이 붙박히는게 싫었달까.
그 생활을 청산하고, 지난 약 1년 4개월은 불가피하게 '고향'에 있어야 했다. 물론 자주 서울에 다니긴 했지만. 고향에서 중요한 것은 아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 일이었다. 거리에서 중고등학교 동창이나 알던 후배들을 멀리서 보면, 그들을 여전히 쉽게 알아보고 이름을 기억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반가움보다는 당혹감이 앞서 저만치 도망가버리곤 했다. 가끔 나를 알아보고 반기는 어른들이나 동창생들이 있어도 이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주춤 물러나 사라져버리곤 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말 걸고 싶고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아주 구체적인 욕망도, 이 망각에 대한 욕망 앞에선 쉽게 사그러들었다. 그들이 싫었던게 아니라 여기에 나의 구체적인 일상, 구체적인 기억이 박히는 게 싫었을 뿐이다. 여기서 내가 기억하게 될 그 무엇이 더 이상 내 일상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쩌다 중학교 때 앨범을 보게 되었다. 하필이면 오늘은 괜히 심심했고, 한강 작가의 새 장편소설을 마침내 다 읽었고, 읽고 난 뒤 알 수 없는 갈증과 허기를 강하게 느끼면서, 그 공허감을 즉각 피할 수단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앨범이 컴퓨터가 있는 책상에 꽂혀 있었던 탓이다. 짙은 초록색 표지에, 책등엔 2001년 제 54회 ㅇㅇ중학교가 금색으로 새겨진 얇은 앨범이.
그 앨범을 펼치면서 놀라웠던 건, 내게 그렇게도 많은 기억이 남아 있었다는 것, 그 기억은 매우 신체적이라는 것, 그리고 거기엔 여러 감정들이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 친하지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어떤 아이의 손이 사진을 찍는 순간에 내 어깨에 올라왔던 것, 그 손이 유난히 불쾌했었던 기억이 그대로 재생된다. 가볍지만 어딘가 땀에 절어 끈적한 손이 어깨에 올라온 느낌을 받았고 이내 불쾌해졌다. 애들을 테니스채로 마구 때리곤 했던 기술 선생님이 컴퓨터를 잘한다고 알려진 나를 데려다 시험지 채점과 점수 입력을 시키며 내 어깨를 두드리던 것, 그 손길을 뿌리치고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던 기억도 재생된다. 싫다고 짜증을 내던 내 몸을 기어코 만지던 남자애들과의 불쾌했던 경험도 재생되고, 결국 어떤 애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고야 말았을 때 내 주먹에 남았던 그 둔탁한 타격감도 재생된다. 교실의 찌든 냄새도, 애들이 흘린 불쾌한 땀냄새도, 씻지 않아 나는 군내도, 화장실의 지린내도 재생된다. 선생님들의 목소리도 남아서 귓가를 울린다. 여하간 기분이 더럽다. 좋았던 기억이 그리 없구나.
내가 알았던(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고) 어떤 여성학 교수는 사석에서, 단식원에 들어갔다왔다며, 단식의 놀라운 효과에 대해 장광설을 풀어놓았었다. 거기서 기억에 남는 건 단식의 구체적 과정 같은게 아니라, 단식을 얼마간 할 때마다 몸이 아팠다는 것, 그리고 그 아팠던 부분은 사실 과거에 크게 다쳤던 부분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날이 지날 때마다 아픈 부분은 계속 달라졌고, 놀랍게도 아픈 순서는 다쳤던 순서와 역순으로 일치했다. 다쳤던 부분은 물리적으로는 다 나아서 일상에 지장이 없지만, 몸은 그것을 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구체적인, 신체적으로 남은 이 기억들이 싫다. 앨범을 태워버리고도 싶지만, 그랬다가는 모든 근거들이 사라질까 싶어 차마 그렇게 하진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작가는 서울이 자신을 닮아서 서울을 떠날 수가 없다고, 결국엔 서울로 돌아오고야 만다고 말한 적 있다. 에세이집 <Stay>에서 김영하가 말했던 것처럼(사실은 너무나 흔한 스테레오타입이긴 하지만) 서울은 아무래도 망각에 익숙하다. 물론 서울에도 소중하고 좋아하는 공간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서울이 공간에 대한 망각이 쉽게 일어나는 곳이란 건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공간을 망각한다는 건 그 공간과 연결된 여러 구체적인 기억들을 망각한다는 것과 유사한 이야기다. 잊을 수 있다는 건 슬프거나 피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일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힘이다. 모든 것을 지워야하는 것은 아니다.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따로 있고 나는 그것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144일 남았다. 조금만 더 견디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