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8년 봄여름, 광화문에 나갈 때 제일 무서웠던 건, 사실 경찰이라기보다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들이었다. 참전유공자의 붉은 띠를 몸에 두르고, 군복을 맞춰 입고 근엄한 표정으로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할아버지들. 월남참전용사회, 뭐 이런 이름의 단체였던가? 고엽제 전우회였던가? 아무튼 이 할아버지들에게 언제 어떻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라서, 행진 대열을 마주치면 괜히 저만치 돌아서 도망가버리던 기억이 많다. 할아버지들에게 정당하게 또박또박 항의하던 사람들은 온갖 욕설과 호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경찰들은 이 할아버지들이 원군이라도 되는 양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사람들에게 못되게 구는 경찰들은 밀쳐도 되고 항의해도 되고 심지어 욕해도 괜찮지만, 아무래도 할아버지들한테는 그럴 수가 없었다. 방패를 쿵쿵 울리며 고함을 질러대는 무리 앞에서 덜덜 떨었어도 괜찮았고 물대포를 맞아 감기 걸렸던 것도 괜찮았고 발암물질이라는 소화기 가루 흡입해도 괜찮았고 도망치다가 진압봉이나 방패로 한두 대 쯤은 맞아도 다 괜찮았지만, 도대체 이 무서운 할아버지들의 욕설과 호통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어쨌든 그들은 '할아버지'였으니까. 할아버지들에게는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랐다. 당시엔 솔직히 말해 그냥 집에서 쉬시지, 손녀 손자도 없나, 이런 나쁜 생각까지 들었다. (에고고;;)
이건 나의 나이주의 탓이기도 하겠지? 근데 나 혼자 나이주의를 집어 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주의는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사람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엮어 주는 사회적 논리이며 사람들이 서로와 관계맺는 방식이니까. 그건 어쩌면 미/추 혹은 쾌/불쾌를 다루는 감성(미학)의 차원에 속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깨기 어려운.
2.
그런데 지난 주 한겨레21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요즘 들어 자주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단체에 대한 르포 기사였다(도대체 어떻게 취재를 다녀올 수 있었을까? 참 대단해). 단체 이름이 대한민국 어버이회였던가? 계란 투척부터 시작해서 온갖 욕설에 모욕에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어디까지나 강퍅한 '남성' 노인들이 모인 단체.. 가장 재밌는 말은 "여기 나와야 그나마 숨통이 트여"라는 말이었다. 또 "노인네들 빨리 죽으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나."라는 말도, "우리는 애국자야. 그런데 요즘 우리가 받는 대접이 뭐야.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한국 사람인데 우리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고."라는 말도, "거기 청년들이 우리더러 '어디서 돈 받고 왔느냐'고 묻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까지는 안 했어."라는 말도, 모두 정말 많은 것을 드러내는 말들인 것 같다(생애사 연구해도 재밌을 것 같다. 내가 할 맘은 없지만). <'과격한 어르신들'의 속사정>이라는 커버스토리에 딱 들어 맞는달까.
물론 기사 자체에 공감하며 읽지는 않았다. 이 기사는 진보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몽적 말투로 이 어버이회 회원들을 분석하고 또 처방하고 있으니까. 예컨대 이 '어르신들'이 삶의 과정에서 반공사상만을 주입받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장단점을 비교해가며 스스로 가치판단을 해볼 수 있는 교육을 박탈당한 세대"라며 이들도 "시대의 피해자"라고 이야기하는 걸 읽고 있자면, 잠시 아연해지면서 너무 단순한 분석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특히 "이들도 시대의 피해자"라니. 이런 알량한 온정에 고마워하기라도 해야할까? 이 기사의 말미에서 어떤 진보자유주의자 교수는 "굴절된 인식을 가진 이 노인들에게 그들의 행동에 대한 비판을 합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그럼 할아버지들에게 다른 가치관을 교육하면 되나? (어디까지나 가치판단이 함축된 단어인) 올바르고 정당한 정보를 제공하면 학습자들은 그걸 스폰지처럼 습득하게 되는 걸까? 그렇게 정당하게 간주되는 정보를 만들어내고 제공/강요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는 걸까? 정말 사람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일상에 대해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3.
이런 기사를 읽으면 사회의 '성원권'이라고 불러야 할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성원권은 개인의 지위를 결정하는 수없이 많은 요인들(출신 지역, 성별, 성정체성, 정치적 성향, 경제력, 학벌, 문화자본 등등등)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러한 요인들을 정당한 것으로 납득시키고 설득하고 강요하는 규범화/주체화의 논리와 테크닉들, 그리고 더 중요하게, 그렇게 규정된 지위와 성원권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속사정, 즉 <마음>에 대한 고려까지 포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세넷의 말을 바꾸어서 말하자면 "성원권의 숨겨진 상처(hidden injuries of the membership)"까지 말이다. 이 할아버지들의 "과격"하고 "날 선 주장"은 기사에서 표현되듯 "소외감"과 "모순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것이다. "소외"된 사람들은 상처입고 취약한 언어를 구사해야한다는 생각은 도대체 누구의 언설인가? 피해자의 정치학.
사회/정치 분석이 단지 학술적, 저널리즘적 언어로 표현되는 <말>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 또 사회적인 인정과 그 인정과 관련된 사람들의 상처도 고려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오랜 기간 관찰하고 소통하면서 발견되는 <행동>의 차원일 것이다. 그런 상처를 애써 봉합하지 않으면, 얼마든 그 상처는 여러 다른 조건에 의해 다른 폭력으로 촉매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분들이 좌파, 빨갱이, 친북 등을 논하는 건 어디까지나 이 분들이 계몽이 덜되서 그런게 아니라, 행동을 정당화 할 때 인용할 수 있는 한국의 역사적 내러티브 자체가 그정도 밖에 안되니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내러티브는 인종이나 계급, 성별, 성정체성 등 어떤 내용으로도 대체가 가능할 것이다. 이제 내러티브 분석은 충분하다고 믿는다.
4.
사실 제일 궁금한건,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의 차이다. 왜 무서운 할머니라기 보다는 무서운 할아버지들이 광장에 나타나는 걸까? "위안부 여성"은 흔히 "위안부 할머니"로 재현되지만, 이들 "할아버지"들은 "어르신"이나 "어버이"로 재현되는데, 이 차이는 도대체 뭘까? 풀어내고 싶은 젠더 연구 과제도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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