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 2010/03/15 23:05
시즌이 지날 때마다 <문학동네>랑 <문학과사회>의 주제를 보고 한 권씩 사모으곤 하는데, 이번 봄에는 두 계간지 모두 재밌어 보인다. <문학동네> 2010년 봄호는 지난 겨울호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 재밌게 읽을 글이 많다. 김연수 작가의 산문, 신형철 평론가의 소설론, 정이현 작가 인터뷰,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의 연설문, 한유주 작가의 단편소설, 등. 두꺼운 탓에 아직 눈길 한 번 두지 않은 페이지가 많다. 이번 <문학과 사회>는 일단 내리비치만 봐서는 한강 작가 인터뷰가 있다는 점, 그것 하나로만 기대하는 중! (왜 배송이 안오는그야..)
그리고 지금 방금은 헤르타 뮐러의 연설문을 읽었는데, 그는 시를 '썼다'는 표현을 하지 않고 '낱말을 모아 콜라주했다'고 표현한다. 이 말이 주는 느낌이 참 좋다. 시를 '쓴다'는 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어쩌면 남자들이 경쟁하는 세계에 속한 것일지 몰라서, 연륜을 갖춘 남자들이 이성과 직관의 조합에 의해 정전에 오를 시들을 창조해내는 매커니즘을 가리키는 말일지 몰라. 그래서 시를 통해 정치와 역사와 더 거창하게는 철학을 쓰는 것이지. 아직 그럴 순번이 안되서 못하는 젊은 남자 시인들은 자의식과 욕망에 대한 시를 쓰겠지. 여기서 시의 대상은 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씌어지는 것이겠지. 그렇게 '시를 쓴다'는건 사물에 대한 인식론이기도 하지. 또한 시를 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를 읽는다는 것도, 전통적인 시 미학이 허용하는 규칙 속에서 쓰고 읽을 수 있을때 가능한 일이 되지. 그렇다면 선생에 대한 존경(그리고 동시에 그를 배반해야 내가 산다는 숙명)은 '시를 쓰는' 행위 자체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겠지.
그러나 시를 쓰지 않고 헤르타 뮐러처럼 '낱말을 모아 콜라주'하는 건 어떨까. 그 행위는 시를 쓴다는 표현에 대한 지극히 정당한 항거가 아니었을까. 헤르타 뮐러는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작가들의 모임 악치온스그루페 바나트의 유일한 여성 멤버였다고 했다. 이랬던 그의 삶의 흔적이 시를 쓰는게 아니라 '낱말을 모아 콜라주'한다고 표현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라고 조심스레 상상하게 된다. 그건 사물을 다루는, 또 다른 인식론일테니.
<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를 통해 읽은 '다다의 마마' 한나 회히도 베를린 다다이스트들 중에서 얼마 안되는(혹은 유일한?) 여성 멤버였다고 했다. 그런데 회히는 다다의 마마였으므로 모임에서 샌드위치도 제공해야했고 유지비용도 대야 했다. 그랬는데도 첫 국제 전시회에서 회히는 제외되었고, 회히는 "아내가 설거지를 하라고 했을 때 정신발작을 일으키는 남자 예술가(ㅋㅋㅋㅋㅋㅋ)를 조롱하는" 연극을 공연해서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독일에서 여성이 스스로를 현대적인 예술가라고 칭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 동지들은 오랜 기간 우리 여성 예술가들을 매력적이고 재능 있는 아마추어 쯤으로 여겼지요. 전문적인 지위를 부정한 채 말입니다."
뮐러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알면 좋겠는데. 이상하게 작품을 읽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연설문에서 좋았던 구절 한 문단.
헤르타 뮐러씨, 저도 트럼펫을 불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은지 좀 되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르겠어요. 트럼펫을 불지 않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자꾸만 말도 꼬이고 일상도 꼬여요. 봄 바람을 맞아 마음만 싱숭생숭.
그리고 지금 방금은 헤르타 뮐러의 연설문을 읽었는데, 그는 시를 '썼다'는 표현을 하지 않고 '낱말을 모아 콜라주했다'고 표현한다. 이 말이 주는 느낌이 참 좋다. 시를 '쓴다'는 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어쩌면 남자들이 경쟁하는 세계에 속한 것일지 몰라서, 연륜을 갖춘 남자들이 이성과 직관의 조합에 의해 정전에 오를 시들을 창조해내는 매커니즘을 가리키는 말일지 몰라. 그래서 시를 통해 정치와 역사와 더 거창하게는 철학을 쓰는 것이지. 아직 그럴 순번이 안되서 못하는 젊은 남자 시인들은 자의식과 욕망에 대한 시를 쓰겠지. 여기서 시의 대상은 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씌어지는 것이겠지. 그렇게 '시를 쓴다'는건 사물에 대한 인식론이기도 하지. 또한 시를 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를 읽는다는 것도, 전통적인 시 미학이 허용하는 규칙 속에서 쓰고 읽을 수 있을때 가능한 일이 되지. 그렇다면 선생에 대한 존경(그리고 동시에 그를 배반해야 내가 산다는 숙명)은 '시를 쓰는' 행위 자체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겠지.
그러나 시를 쓰지 않고 헤르타 뮐러처럼 '낱말을 모아 콜라주'하는 건 어떨까. 그 행위는 시를 쓴다는 표현에 대한 지극히 정당한 항거가 아니었을까. 헤르타 뮐러는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작가들의 모임 악치온스그루페 바나트의 유일한 여성 멤버였다고 했다. 이랬던 그의 삶의 흔적이 시를 쓰는게 아니라 '낱말을 모아 콜라주'한다고 표현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라고 조심스레 상상하게 된다. 그건 사물을 다루는, 또 다른 인식론일테니.
<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를 통해 읽은 '다다의 마마' 한나 회히도 베를린 다다이스트들 중에서 얼마 안되는(혹은 유일한?) 여성 멤버였다고 했다. 그런데 회히는 다다의 마마였으므로 모임에서 샌드위치도 제공해야했고 유지비용도 대야 했다. 그랬는데도 첫 국제 전시회에서 회히는 제외되었고, 회히는 "아내가 설거지를 하라고 했을 때 정신발작을 일으키는 남자 예술가(ㅋㅋㅋㅋㅋㅋ)를 조롱하는" 연극을 공연해서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독일에서 여성이 스스로를 현대적인 예술가라고 칭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 동지들은 오랜 기간 우리 여성 예술가들을 매력적이고 재능 있는 아마추어 쯤으로 여겼지요. 전문적인 지위를 부정한 채 말입니다."
뮐러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알면 좋겠는데. 이상하게 작품을 읽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연설문에서 좋았던 구절 한 문단.
할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곧잘 아들 마츠에 대해 비통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래, 깃발이 나부끼면 이성은 트럼펫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법이지." 할아버지는 이 말의 뜻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경고는 나치즘에 이어 나타난 독재, 나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그 독재에도 맞아 떨어졌습니다. 크고 작은 이익을 좇는 사람들의 이성이 트럼펫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날마다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트럼펫을 불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p. 422)
헤르타 뮐러씨, 저도 트럼펫을 불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은지 좀 되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르겠어요. 트럼펫을 불지 않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자꾸만 말도 꼬이고 일상도 꼬여요. 봄 바람을 맞아 마음만 싱숭생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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