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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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2010/03/08 22:54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_백석,「북방에서-정현웅에게」中
 
이 부분을 두고 백석 연구자들 사이에 해석이 분분했다고 했다. '민족주의' 국문학자들은 3행, 즉 "숭가리를"에 마침표를 찍어서 1행의 "떠났다"를 서술어로 간주했다. 시의 화자는 비록 떠났지만, 숙신이나 여진, 요, 금 같은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민족사'의 일부인 부여와 발해를 "배반하지"는 않았으니 백석을 '민족문학사'의 일부로 넣으려는 학자들로서는 그게 훨씬 편이로웠을테다. 화자가 "배반"한 것은 고작 "범과 사슴과 너구리"에 지나지 않으니까.
 
지금 읽고 있는 백석 연구자의 해석은 이보다 더 한걸음 나아간다. 단지 추정되었을 뿐인 유사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면서 '나'를 무려 고구려와 동일시한다. 잠시 아연해지고.. 아 어떻게 이 시를 그런식으로.. 부여까진 그렇다 쳐도 발해, 여진, 요, 금은 어쩌고? 그런 역사학적 해석을 뛰어 넘는 훨씬 아름다운 시인데.. 책 전반이 다 재밌다가 마지막 장에서 삐끗해버렸다.
 
한국을 무려 반만년 역사로 보려는 국가민족주의적 국사학의 움직임탓에, 한국에서 근대 이전의 한반도 역사를 말하는 건 과장해서 말하면 바보가 되어버리는 지름길이 되어버렸다. 모든 역사 서술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국에서, 아니 동북아에 있어 통용되는 상식은 그렇지 않나?
 
물론 이건 비단 한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고작 스물 세살에 걸출한 논문을 썼지만, 네이션의 산물인 '사적 언어학'이 태동하던 프랑스에서의 교수자리를 고사해버리고, '중립국'인 스위스의 작은 대학교에서 평생 책 한권 제대로 내지 않았던 소쉬르를 생각해보면. 소쉬르가 남긴 강의에는 네이션 언어학에 대한 경계심이 녹아 들어있다고 했다.

백석이 지금 한국에 살았다면 진작에 "배반하고" "떠났"을거라고. 백석의 저 시는 단지 모든 유배자/유랑자들의,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노래로 바쳐져야 해.

시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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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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