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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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2010/03/01 19:08
예술은 현실 정치를 다뤄야 할까, 혹은 다루지 말아야 할까? 현실 정치를 다루면 예술이 아니고 프로파간다인가? 누군가는 예술이 곧 정치라고 주장하며, 예술화(미학화)된 정치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정치화된 예술(미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겠지만.

'선거' 만큼 진부한 운동 방식은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차피,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한국의 지방자치기구는 끼리끼리모여 쌈싸먹고 나눠먹는 허울 좋은 제도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또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선거 관련 부정부패비리는 너무나도 뿌리 깊은 것인데다, 출마하는 남자들의 면면과 야심 자체도 꼴불견인 경우가 많이 보였다. 그래서 선거 당일이 되면 (그나마) 선호하는 당을 보고 투표를 하거나 아니면 기권을 하는 것(그러나 투표장에는 반드시 가는 것)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모 정당에 일반 당원으로 가입해 적은 돈이지만 당비를 납부할 때도, 해당 정당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충분히 민주적이지도 급진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급진과 민주주의가 뭐길래.

어제는 영화 <밀크>를 정말 감명깊게 봤다. 많이 울었고, 많이 흔들렸고, 많이 무서웠다. 몇가지 흐름이 개연성 없이 보이는 장면도 조금 있었지만(예컨대 스캇과 하비가 뉴욕의 지하철 입구 계단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라든지, 댄 화이트가 갑자기 눈에 광기가 서린 인물로 나타나는 장면이라든지) 그럴 수도 있겠다 싶고, 전체적으로는 큰 무리 없는 설정이었다. 또 하비 밀크가 최초의 게이 정치인으로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으로 당선된 사람이라는 약간의 이력 외에는, 어떤 성격을 가졌고 누구와 어떻게 관계를 맺었으며 어떤 정치적 행보를 보여줬고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에, 2시간 5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선거'와 '의정 활동'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밀크>를 보면서 처음 느꼈다. 물론 그 과정을 단지 '아름답다'고 타자화(=미학화)하는 일은 온당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소수자 운동에 대해 보통의 남성 진보 지식인들이 보내는 찬사와 격려 따위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선거 운동의 지난하고 숨막히는 과정은 물론, 의정 활동에 마주하는 수없이 답답한 상황을 어쨌든 헤쳐 나가는 밀크의 모습에 푹 빠져들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가 청중을 향해 연설을 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벌떡 일어나서 그가 외치는 구호에 당장 동참하고 싶었다. "Gay Rights Now! Gay Rights Now!"
 
미국 보수 기독교 집단의 온갖 협박과 협잡은 치졸하고 유치한 것이었지만, 그랬기에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밀크는 처음 받은 살해 협박 종이를 아예 냉장고에 붙여 놓으면서, 그 종이를 숨기거나 찢어 버리자는 애인 스캇에게 이런 종이를 어디에 숨기거나 한다면 더 무서워질 뿐이지만 이렇게 붙여놓고 계속 본다면 익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자기에게 불리한 장소에서 공개 토론회를 거침없이 제안한다. 마이크를 잡으면 머리를 날려버리겠다는 엽서를 받아도, 그는 마이크를 잡고 감명 깊은 연설을 한다(그는 타고난 선동가였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예감한 밀크는 자신의 정치사, 생애사를 담은 육성 테이프를 남긴다(그가 원고를 써서 녹음을 했다는 것에 마음이 무너졌다. 외부의 폭력에 암살을 예감하고 유서를 쓰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상상할 수도 없어서). 그러한 모습은 낭만적 액티비스트의 모습 그대로였다.

불모지에 가까웠던 카스트로 구역을 명소로 만드는 과정이 영화에서는 충분히 그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도 남는다. 내가 어떤 공간에 붙박이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그렇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관악FM이나 마포FM같이 지역 라디오 방송사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고, 라디오는 없더라도 적당한 문화 인프라(관제가 아닌)가 있는 곳에서 잠자는 방과 서재 혹은 작업실로 쓸만한 방, 부엌, 개인 화장실을 갖춘 집에서 살면서 애착을 가질만한 지역 공간을 만드는 일을 언제나 꿈꿔왔었으니.

가장 좋았던 장면은 게이 인권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 권리로 가자며 밀크를 설득하는 사람들의 말에 밀크가 단호하게 대응하는 장면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타협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그렇게 자꾸 숨어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왜 게이의 권리이면 안되는가. 왜 인권이라는 두루뭉수리한 말로 현실을 감추어야만 하는가. 또 기억에 남는 다른 장면. 댄 화이트가 밀크 당신은 이슈가 많아 정치인으로서는 축복 받았다고 질투하는 장면에서, 밀크는 분개하면서 그건 단지 하나의 '이슈'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고 삶의 문제이며, 나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몇 가지 개인적으로 불편했던 점이 있었는데(단지 영화에 그치지 않는)... 그에 대한 생각은 벤야민을 인용하는 것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전통에 적대적인 사람일수록 다가올 사회적 상황의 입법기관으로 떠받들고자 하는 규범에 따라 철저하게 자신의 개인적 삶을 영위할 것이다. 아직 어디서도 실현되지 못한 그러한 규범들의 모범을 적어도 자신의 고유한 삶의 영역 안에서라도 보여줄 의무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에 반해 신분과 민족의 아주 오래된 전통과 자신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공적 생활에서 엄격하게 지키는 원칙과는 대조적인 사생활을 때때로 과시한다. 하등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는 그러한 자신의 태도가 마치 그가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원칙의 확고한 권위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라도 되는 듯 은밀히 찬양한다." <일방통행로>. 김영옥, 윤미애, 최성만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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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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